노는 만큼 성공한다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프롤로그"이렇게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데, 무슨 '노는 이야기'를?"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다. 솔직히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혀끝까지 와서 맴도는 대답이 있다. "바로 그렇게 생각하는 당신 때문에 경제가 어려운 겁니다." 경제가 어려운 데 노는 이야기나 한다고 혀를 차는 이들의 걱정을 따라 하다가는 우리는 영원히 행복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우리나라 경제가 좋았던 적은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또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새해에 한 해 나라의 경제를 예측하는 경제학자들의 입에서 낙관적인 전망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경제학자들이 예상하는 경제는 항상 나쁘다. 그럴 수밖에 없다. 경제가 좋다고 전망했다가 '사이비'로 찍히는 것처럼 억울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나쁘다고 했다가 좋아지면, 애초의 나쁜 예상에도 불구하고 좋아진 이유를 찾아 분석하면 된다. 좋아진 이유는 아무래도 좋기 때문이다. 이유가 장황할수록 '전문가'로 여겨진다. 사람들은 나쁘다고 했다가 좋아지는 것은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나 좋을 것이라고 했다가 나빠지면 절대로 못 참는다. 이 원리를 아는 영악한 경제학자들의 한해 예상은 항상 부정적이다.
자유, 민주, 평등은 수단적 가치이지만, 행복과 재미는 궁극적 가치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기에는 장애물이 너무 많다. 이 장애물들은 일단 자유, 민주, 평등을 획득함으로써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재미와 행복이라는 궁극적 가치를 추구하는 법을 끊임없이 학습해야 한다. 정작 행복하게, 즐겁고 재미있게 살 수 있게 되었는데, 어떻게 해야 행복하고, 즐겁고, 재미있는지를 몰라 허둥대는 것처럼 절망적인 상황은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그러는 당신은 잘 노냐?"란 질문이 가장 두렵다. 하지만 그런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예를 들어 "사람은 교양이 있어야 한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그러는 당신은 교양이 있는가"라고 묻는 것처럼 악의적인 질문은 없다. 나 역시 노는 것과 관련하여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놀자'고 소리 높여 외치고 다니지만, 정작 제대로 놀 시간이 없는 황당한 지경에 빠져 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노는 이야기'를 할 때면 속으로 뭔가 항상 켕기고 집에 들어갈 때에는 아내와 아이들의 반응이 항상 두려운 사람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이 책의 내용은 내가 현실 속에서 느끼는 나 자신의 문제점들을 심리학 이론과 연관시켜 솔직하게 풀어낸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행복해지려는 이들, 재미있게 살고 싶어 하는 이들이 '놀면 불안해지는 병'. '재미있으면 왠지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는 몹쓸병'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
서장 - 한국, 놀 줄 몰라 망할지도 모른다우리의 여가 문화, 놀이 문화는 잘못되어 있다.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어 있다. 우리의 여가 문화도 사회경제적 변화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 경제적 발전에 상응하여 금융 시스템이 변하지 못해 IMF위기가 닥친 것처럼 여가 문화의 근본이 변하지 못하면 도덕적, 문화적 IMF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여가학자인 내 눈에는 생산적 여가 문화의 부재가 '1만 달러의 덫'에 걸리게 된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 제대로 놀지 못하기 때문에, 즉 놀면 불안해 지는 병 때문에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진입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하면, 21세기 사회문화적 변화를 따라갈 수 있는 창의적 마인드의 부족이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뜻이다. 창의적 마인드는 생산적 여가 문화와 직접적인 연관관계에 있다.
서구 사회의 변화를 통해 볼 때, 생산적 여가 문화와 창의적 경제활동은 동전의 양면이다. 노동시간의 감소는 노동집약적 제조업에서 창의적 서비스업으로의 변화와 필연적으로 맞물려 있다. 상품의 생산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서비스업이란 대부분 여가시간에 이뤄지는 활동과 긴밀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변화하지 못하면 위기는 찾아오게 되어 있다. 경제발전을 따라가지 못한 금융 시스템이 IMF위기를 불렀듯이, 노동시간 단축에 상응하는 생산적 여가 문화가 형성되지 못하면 한국 사회의 총체적 위기는 또 다시 찾아오게 되어 있다. "놀면 불안해지는 병"과 '노동시간의 급격한 단축에 따른 생선적 여가 문화의 부재'라는 이중적 구조를 넘어서지 못하는 한 우리는 '1만 달러의 덫'에 결코 벗어날 수 없다.
1부 나는 놈 위에 노는 놈 있다일의 반대말은 여가가 아니라 나태사람들은 일에 반대되는 말을 여기나 놀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가는 일의 반대말이 아니다. 일의 반대말은 나태다. 사람들이 헷갈리는 이유는 지금까지 일은 남이 시켜서 하는 행위로만 여겨왔기 때문이다. 일이란 내가 자발적으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라 그저 남의 돈을 따 먹는 행위였을 뿐이다. 직원들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경영자들도 마찬가지로 생각한다. 경영자의 눈에는 직원들이 모두 어떻게 하면 '적게 일하고 많이 가져 갈 수 있을까'만을 생각하는 염치없는 인간들로 보인다. 따라서 경영이란 직원들이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직원들이 회사에 머무는 시간 동안만은 가능한 한 딴 생각하지 않고 일에 몰두하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를 골몰한다.
온갖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해서 직원들이 일에 몰두하도록 노력해 보지만, 그것도 한 때뿐이다. 갈수록 더 많은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웬만한 인센티브로는 직원들을 감동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안다. 인센티브란 돌고래가 재주넘고 받아먹는 썩은 생선이라는 것을. 그래서 경영자들은 항상 걱정이다. 어떻게 하면 직원들이 회사 일을 자기 일처럼 할 수 있을까? 이처럼 20세기적 기업 경영의 핵심은 다양한 금전적 인센티브로 사람들의 노동 의욕을 극대화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능력 있는 직원들은 더 높은 보상을 찾아 다른 직장으로 떠난다. 결국 뛰어난 인재들을 붙잡으려면, 갈수록 높은 보상을 약속해야만 한다. 프로 야구선수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다. 그러나 보상을 약속하면서 잡을 수 있는 사람들조차도 갈수록 줄어든다. 돈으로는 더 이상 살 수 없는 다른 종류의 인간들이 늘어난다는 이야기다.
우선 개인주의형 인간들이 늘어난다. 이들은 개인의 행복을 극대화하려는 사람이다. 재미가 없다면 언제든지 직장을 떠날 수도 있다. 또 다른 종류의 인간형도 나타난다. 이들에게는 가족주의형 인간이란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적당할 것 같다. 가족주의형 인간들에게 직장에서의 성공은 그리 큰 의미가 없다. 이들의 궁극적 관심은 훌륭한 아빠, 착한 남편이 되는 일이다. 보다 높은 지위를 보장해주고, 돈을 더 많이 준다고 약속해도, 이들에게는 가정이 우선이다.
이렇게 변화하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하지 못하는 기업 경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금전적 인센티브만으로 사람들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서구의 앞서가는 기업들이 채택한 새로운 제도가 있다. 'Work-Life Balance Program(WLB 프로그램)'이다. 이것은 직원들의 일과 개인적 삶의 조화를 배려하려는 새로운 인재 관리 전략이다. 우선 WLB 프로그램은 일과 개인적 삶의 불균형으로 야기되는 갖가지 문제를 유연 근무제, 육아 휴가, 변동 휴가제 등을 통해 해결하려 시도한다. 또한 개인의 경력 관리와 회사의 업무가 일치하도록 배려하는 갖가지 제도를 실시한다. 가족주의형 인간들을 위한 갖가지 복리후생 정책 또한 치밀하게 계획한다. 직원들이 개인의 여가와 가족과의 삶에서 즐거움을 상실하지 않도록 배려한다. 이렇게 배려 받는 느낌을 받아야 직원들은 회사 일을 자기 일처럼 배려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관심과 회사의 업무가 제대로 일치하지 않으면 직원들은 떠난다. 회사에서 꼭 필요한 능력이 있는 인재일수록 미련 없이 떠난다.
직장에서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일중독자일수록 수많은 걱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일중독자와 정말 일 잘하는 사람은 다르다. 일중독자는 자신이 일주일에 70시간을 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일 잘하는 사람은 일주일에 40시간밖에 일하지 않는다. 일중독자가 일을 훨씬 더 많이 하는 것 같지만, 일하는 방식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일주일에 70시간을 일한다고 생각하는 일중독자가 실제 일하는 시간은 30시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나머지 40시간 동안은 일하기는커녕, 일에 대해 걱정만 하면서 보낼 뿐이라고 한다. 이들은 일요일 저녁이 되면 새로 시작되는 한 주가 기다려지기보다는 왠지 불안해진다. 주말에 너무 놀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월요병은 단순히 심리적 질병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병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심장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월요일에 제일 높다고 한다.
지나치게 생각이 많아 부질없는 걱정이 떠나지 않는 현상을 가리켜, 미시간 대학교 심리학과 놀렌 획스마 교수는 '오버씽킹'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오버씽킹이란,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는 현상을 뜻한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 이미 내뱉은 말에 대한 후회, 다른 사람에 대한 근거 없는 의심, 지나가면서 던진 동료의 한 마디에 도무지 끝이 나질 않는 추측 등….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오버씽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정말 중요한 일에 몰입하면 된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일이란 자기가 정말 재미있어 하는 일을 뜻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당황해한다. 재미있는 일이 중요한 일이라니? 이렇게 묻는 이들에게 나는 되묻는다. 아닌가? 자기가 정말 재미있어 하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중요한 일을 찾아서 그것에 푹 빠지는 재미처럼 오버씽킹을 예방하기 좋은 방법은 없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몰입'이라고 한다. 구태여 풀이하자면 '무아지경' 정도가 적당할 것이다.
놀이는 비실재성, 내적 동기, 과정지향성, 자유-선택, 즐거움의 다섯 가지로 특징지을 수 있다. 어쩌면 이 놀이의 다섯 가지 특징은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의 내용일 수도 있다. 놀듯이 사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기 때문이다. 내 삶을 이 다섯 가지 특징으로 판단해보면 내가 얼마나 행복한가를 측정할 수 있다.
- 나는 '여기와 지금'에 너무 매몰되어 있지는 않은가? 내 삶의 현실적 조건만 보고 좌절하고, 또 다른 삶의 맥락에서 이뤄낼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은 전혀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 나는 '남의 돈을 따먹기'위해 일하는가, 아니면 내 만족을 위해 일하는가? 내 삶은 무엇을 얻기 위한 삶인가, 아니면 내 만족과 행복을 추구하는 삶인가?
- 내 삶이 추구하는 목적이 과연 타당한가? 목적을 추구하는 과정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목적으로 인해 과정의 모든 중요한 것을 생략해 버리며 사는 것은 아닌가?
- 내 삶은 과연 내가 선택한 것인가?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내가 선택한 삶을 살아보긴 했나?- 하루하루가 과연 즐겁기는 한가? 하루에 도대체 몇 시간이나 행복한 느낌으로 사나?
놀이는 창의성과 동의어19, 20세기를 산업 사회라고 한다면, 21세기는 지식기반사회, 정보화사회, 혹은 이 둘을 합쳐서 지식정보화사회라고 특징지을 수 있다. 산업 사회는 농경 중심의 전통사회가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공업이 주축이 되는 사회로 옮겨간 사회이다. 이 산업 사회에서는 육체적 노동이 이윤을 창출하는 원천이 되는 사회이다. 따라서 근면과 성실은 사회유지를 위한 필수덕목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식정보화사회는 이제까지의 물질과 에너지 중심의 사회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한 새로운 네트워킹을 찾아내는 인간의 지적 창의력이 21세기 사회발전의 근본동력이 된다. 토지나 자본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지식이 가치를 창출한다.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창의력은 '재미'를 적극적으로 추구할 때 개발된다. 이 '재미'가 근면, 성실을 뛰어 넘는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된다. 과거 노동과 자본이 없는 나라는 망했듯이, 21세기에는 새로운 지식이 지속적으로 창출되지 않는 나라는 망한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정보와 지식의 관계를 개념적으로 분명하게 구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식정보화사회에서 지식은 뭐고, 정보는 또 무엇을 의미할까?
'정보'는 인간이 세상에 일어나는 셀 수 없이 많은 사건과 사물들 중에서 의미를 부여한 최소한의 단위들이다. 안중근이란 사람이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사건은 수없이 많은 살인 사건들 중에서 의미 있게 기억된다. 정보로서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미 있게 기억된다고 해서 그 정보가 곧바로 지식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토 히로부미 살해 사건이 의미 있는 정보로 기억되기 위해서는 이 사건의 사회문화적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이토 히로부미 살해사건이 한국에서는 '안중근 의사(義士)가 조선 침략의 원흉을 응징한 사건'이 되고, 일본에서는 테러리스트가 되는 바로 그 맥락이다. 그리고 이렇게 맥락에 의해 해석 가능한 구체적 의미가 부여될 때, '정보'는 비로소 '지식'이 된다. 결국 정보는 그것이 속한 지식의 맥락에 따라 의미가 변할 수밖에 없다.
앞서 말한대로 '지식'은 정보가 사회문화적 맥락, 혹은 이론적 맥락에 의해 구체적 의미가 부여된 정보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더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지식은 정보와 정보들의 관계'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토 히로부미 살해사건'이라는 정보와 '안중근은 한국인', 혹은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인'이라는 정보가 서로 연관되면서 '안중근 의사가 조선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응징한 사건'이라는 지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형성된 지식은 보다 더 넓은 맥락에서는 정보로서 기능할 수도 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정보는 의미를 수용하는 가장 최소한의 인식단위이고, 지식은 이 정보와 정보들 간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지식의 생산은 어떻게 가능한가? 새로운 지식은 기존의 정보와 정보들 간의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바로 창의성이다. 이제 창의성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정확히 말해 창의성이란 아주 익숙한 것을 다른 맥락에 놓아 새롭게 느끼게 하는 능력을 뜻한다. 정보와 지식의 관계를 통해 설명하자면 창의성이란 다음의 두 가지로 정의된다.
(1)정보와 정보들의 관계를 이전과는 다르게 정의하는 능력
(2)정보의 맥락을 바꾸는 능력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것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비로소 창의성에 다가설 수 있다. 우리가 새롭다고 느끼는 것은 이전에 다 있었던 것들이다. 단지 그것들이 속한 맥락이 바뀌었을 뿐이다. 너무 익숙해서 아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을 새롭게 느끼게 만들어주는 이들은 근면 성실한 사람이 아니라 바로 '노는 놈'들이다. '노는 놈'들은 놀이를 통해 아주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하여 새롭게 느낀다. 바로 이 때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지식정보화사회에서 필요한 인재는 바로 이런 '노는 놈'들이다. '노는 놈'의 힘은 바로 '재미'다. 재미를 추구하는 자만이 창의적인 '노는 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행복한 집에서 자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안다. 뭐가 재미있고, 즐겁고, 기쁜지를 경험한 사람만이 그 재미와 기쁨과 즐거움을 적극적으로 추구할 수 있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한 국가의 문화적 수준은 그 국민들이 행복과 기쁨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능력이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21세기 국가의 경쟁력은 군사력, 경제력보다도 국민들이 얼마나 행복하고, 기쁘고, 즐거운가에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