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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람들은 말의 절반이 칭찬이다

프란체스코 알베로니 지음 | 스마트비즈니스
제1부 칭찬을 즐기면 인생이 즐겁다



우리는 모두 남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을 필요가 있다. 인정과 칭찬은 사람에게 있어서 음식과 물처럼 필수적이다. 어떤 일을 달성했을 때 우리는 항상 많은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기다린다. 그런데 그 심사위원들은 각기 다른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많다. 전력을 다해 일한 끝에 어려운 임무를 달성하고 성공해서 모두에게 박수를 받아도, 정작 우리가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로부터는 박수를 받지 못할 때가 있다. 이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고 일부러 칭찬을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우리를 손에 넣기 위해, 또는 우리가 분노를 터뜨리거나 무기력하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말이다. 이처럼 칭찬하는 행동을 보여주지 않고, 한 마디 말도 건네주지 않음으로써 얼마나 많은 복수심을 유발시키는가. 쓸데없이 다른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런 유형의 심술이 넘쳐나서, 이것이 행동하는 사람들의 장애물이 되었던 불우한 시대도 있었다. 그런 시대에는 뛰어난 사람들이 일이 아니라, 시기심 많은 사람들과 싸워야 하는 쓸데없는 전투 때문에 지쳐 그 자리에 멈춰 서야 했다.



너그러움과 별다른 이유 없이 돈을 쓰는 낭비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돈을 흥청망청 쓰는 낭비가는 다른 사람들의 행복, 자신의 행동에 따르는 실제적인 자선 효과 같은 것은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는 무엇을 줄 때, 그리고 그로 인해 칭찬을 받을 때 기쁨을 맛본다. 낭비가들은 자신들의 과시 때문에 끊임없이 굴욕감을 맛보고 짓밟히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깊은 원한과 적의, 그리고 상황이 허락된다면 곧 드러날 증오심을 품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진실되고 깊은 감사의 마음, 고결한 감사의 마음은 너그러움과 타당함을 기초로 한다. 자신의 판단에 따라 너그럽게 베푸는 사람이라면 정말 타인의 행복을 염려해야 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우리를 대해주는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다.



정당을 이끄는 지도자든 종교 단체나 회사를 이끄는 지도자든, 지도자들에게는 어떤 공통된 능력이 있다는 인상을 자주 받는다. 바로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직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능력이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의미 있고 헌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에 기여하고 있다는 확신을 전달한다. 이런 확신을 경험하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이 그 사업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뽐내며 몸을 아끼지 않고 그 일에 온 힘을 쏟게 된다. 또한 변명을 하는 대신 상사와 동료들의 질책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한다. '훌륭하다'라는 말은 당신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감사한다는 것, 공동작업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칭찬을 해줄 능력이 없다는 것은 그런 판단을 내릴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뜻이다. 자유방임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에 몰두하지 않고 사원들이 일하는 대로 내버려두며 스스로 만족해서 꾸짖지도 칭찬하지도 않는 사장은 무관심과 절망감을 생산해낸다.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은 회사와 그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다.



낙관주의와 비관주의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인데 언뜻 서로 반대되는 장단점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실 낙관주의와 비관주의는 어려운 일과 미래의 일을 대하는 서로 다른 태도일 뿐 아니라,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이다. 낙관적인 사람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다른 사람들이 말을 하게 내버려두고 시간을 할애해서 그들을 관찰한다. 이렇게 그는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긍정적인 측면, 즉 북돋아주고 꽃피울 수 있는 성질을 알아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단결시켜 목표를 향해 가도록 이끈다. 유능한 관리자, 우수한 기업가, 뛰어난 정치가는 이런 능력을 지녀야 한다. 낙관적인 사람은 또 어려운 일을 쉽게 극복할 수도 있다. 그것은 그가 새로운 해결책에 대해 한층 열려 있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불리한 조건을 유리한 조건으로 신속하게 바꿔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열광자는 지치지 않고 꿈을 꾸는 사람이고 계획을 짜는 사람이며 전략을 창출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꿈을 남들에게 퍼뜨린다. 그는 맹목적이지 않으며 분별력이 있다. 그는 많은 어려움들이 있고 해결할 수 없는 장애물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열 가지 계획 가운데 아홉은 실패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꺾이는 일은 없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다시 한 번 더 되풀이한다. 그리고 인간의 야비함을 볼 줄 안다. 그는 금방 실망을 하지만, 선함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것을 지향하려고 마음먹는다. 그는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지닌 가장 창조적이고 관대한 부분에 호소한다. 그 부분을 활용해 좋은 결과를 얻으라고 사람들을 재촉하기도 한다. 사람들의 뜻을 거슬러가면서, 억지로라도 더 좋게 잘 살 수 있게 만들어준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의 잠재력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게 해준다. 그들은 열정을 가지고, 낙관적으로, 넓은 마음으로 행동하면 세상 모든 일이 다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사람들을 이끌어나간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평정이 필요한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은 될 수 있으면 피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나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은 전혀 거리낌이 없다. 그는 당신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런 사람은 당신을 보자마자 불쾌한 말을 전한다. 허물없는 사이라면 한밤중에 전화로 소식을 전한다. 아침에, 당신이 눈을 뜨자마자 그런 소식을 전해서 하루를 망쳐놓기도 한다. 나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은 그런 소식을 당신에게 전하는 것을 즐기며, 당황하고 불안해하는 당신의 모습을 보며 즐거워할 뿐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관해 한 험담을 전하는 바로 그런 종류의 인간이다. 나쁜 소식을 전해 듣고 위협을 느끼는 사람은 정보와 도움과 충고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자신에게 정보를 준 사람, 가까이에 있는 사람, 자신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주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바로 나쁜 소식을 전해준 장본인에게 매달리는 것이다. 그 사람이 동맹자, 구원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은 먹잇감을 자기에게 보다 더 종속시키거나 그 사람의 불안감을 가중시키기 위해 상황을 악용한다.



유명한 문장이 있다. "사람들은 나쁜 일을 당하면 대리석에 새겨두고, 좋은 일을 당하면 먼지에 써둔다." 이는 인간 정신의 어두운 측면이고 사악한 특징이며, 마치 원죄의 상흔이라도 되는 양 우리 내부에 가지고 있는 그 무엇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는 매일 신문이나 텔레비전 같은 매스컴을 통해 그것을 본다. 주의 깊게 문장 하나하나를 읽어보고 모든 단어를 조심스럽게 검토해 보라. 찬사의 말, 감탄, 칭찬하는 형용사가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사람들은 잘못만을 기억한다. 그것을 잊지 않고 과장하면서 대리석에 새긴다. 긍정적인 부분을 원상태로 되돌리고 아직도 살아 있는 기억의 잔해에서 그것을 뽑아내는 일은 아주 힘들다. 그러려고 해보면 기억 속에서 잘못된 행동들과 증오에 찬 말들이 와르르 달려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면 공정함이란 무엇일까? 공정함은 알리바이이다. 그것은 커다란 우산으로, 그 밑에서 공격성을 이성적으로 왜곡하고 스스로 문화인이 되고 고상해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니힐'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니힐리스트(허무주의자)들이 무엇인가를 원하기는 하지만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을 그렇게 불렀다. 그들은 원한과 증오에 가득 차 있으며 갑작스레 나타나는 것, 제 기능을 잘하고 있는 것, 건강하고 유쾌하고 승리를 거둔 모든 것에 반대한다. 우리가 사는 시대처럼 민주적이고 평화롭고 비밀경찰이 없는 시대에, 니힐리스트들은 찾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해서 박해자 역할을 수행한다. 니힐리스트들은 다른 사람들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가치가 있으면 있을수록 그를 공격하고 모욕을 주고 중상모략을 한다. 현대에서는 화형으로 자신의 증오를 표출할 수 없기 때문에 중상모략으로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당신의 주위에서, 당신의 동료와 가족과 친구인 체하는 사람들 속에서 니힐리스트들을 찾을 수 있다.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전체적으로 당신의 일, 당신이 공들여 헌신적으로 이루어놓은 업적을 조금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말 한 마디로, 단 한 번의 타격으로 그것을 송두리째 쓸어 없애버린다. 그들은 당신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행복을 느낀다.



약자들은 자신들의 약함을 이용하고 그것을 무기로 삼아 압력을 가할 수 있다. 너그러운 마음을 이용하는 것이다. 마약 중독자들의 경우가 그러한데, 그들은 매번 부모를 협박해 돈을 달라고 강요한다. 마약 중독자는 물건을 훔치고 거짓말을 하고 일을 혼란스럽게 만들지만 그들에게는 마약이라는 끔찍한 알리바이, 엄청난 변명거리가 있다. 개개인의 힘만으로는 정신적, 도덕적으로 그를 당할 수가 없다. 도저히 안 된다. 약자들은 대부분 다른 이의 관대함을 악용한다. 주로 자식들이 부모에게 그렇게 한다. 하지만 부모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엄마들이 아들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이지만 그런 뒤에는 마치 독점욕 강한 애인처럼 행동한다. 또 다른 엄마들은 딸의 죄의식을 이용한다. 그녀들은 자신을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하다가, 그 후에는 딸이 끊임없이 자신들을 도와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언제나 힘이 없고 허약한 사람은 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들을 실제보다 더 좋게 보려고 애쓰는 사람은 바로 우리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그들에 대한 의무를 지니고 있다. 이런 관계들은 대개 아주 미묘하고 어렵다. 헤아림과 신중함과 능력과 힘을 요구한다. 우리는 이 모든 관계들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만 한다. 성숙함이란 이런 복합성을 받아들이는 것, 이런 문제들을 회피하지 않는 것, 그것들을 아주 심각하게 여기는 것이다. 우리와 관계된 모든 것에 책임을 진다는 성숙함의 개념은 그 반대의 것, 즉 미숙함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미숙함은 삶을 자의적으로 단순화시키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한 가지 역할만을 수행할 권리를 가진 사람은 어린 아이 뿐이다. 아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벌써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부모와 선생님을 똑같은 방식으로 대할 수는 없다. 유년기를 벗어나 청년기로, 성인의 삶으로 옮아간다는 것은 아주 분명하고 복잡한 형태의 도덕성을 향한 힘겨운 통과의례를 거치는 일이다. 반면 게으르게 제자리에 멈춰 서서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일을 대신 해주길 기다리는 건 그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다.



나는 인내심이란 가장 기본이 되는 사람의 미덕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먼저 말하자면 인내심은 결코 선천적인 게 아니다. 인내심은 습득되는 것이고 강인한 의지의 훈련을 통해 형성된다. 인생의 어려운 순간에도 우리는 끈기 있게 목적을 추구할 줄 알아야 하며 정신력을 모두 모아 그 목적에 뜻을 집중시킬 줄 알아야 하지만, 마찬가지로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분노를 터뜨리고 문을 쾅 닫아버리기는 얼마나 쉬운가! 힘이 드는 것은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실패를 견뎌내어, 그때마다 새로이 시작하고 새로운 길과 새로운 동맹자를 찾으면서 일을 다시금 계획하는 일이다. 용기는 시작할 줄 아는 미덕이다. 인내심은 다시 시작할 줄 아는 미덕이다. 우리는 매일 아침, 매시간, 매분마다 다시 태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끈기 있기' 위해서는 끝없이 새롭게 시작할 필요가 있다.



어려운 사업에서 성공을 하려면 꼭 해내야 한다는 강한 동기와 뛰어난 기술이 필요하다. 몇 달 몇 년을 약해지지 않고 쉬지 않으며, 주의 깊고 겸손하게 목표에 관심을 기울이며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바깥에서 보는 사람들은 모든 게 너무 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학생이 매번 좋은 성적만을 받는 일은 쉽지 않다. 시험은 언제나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목표에 완전히 빠져들어 전력을 다하고 전념하여 승부를 걸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 승부를 걸어야 한다. 왜냐하면 언제든 때려치울 준비가 되어 있고 어깨를 으쓱하며 물러설 수 있다면, 성공에 필요한 강인함과 주의력을 절대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과 같은 경쟁 체제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맞서야만 하고 이기려고 해야 한다. 그러므로 매번 실패할 위험을 무릅써야만 한다. 한계와 실패를 인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겸손이다. 겸손함에서 우러나오는 칭찬 속에서 살아라. 그것이 우리를 구하게 될 것이다.





제2부 사람을 읽으면 일이 즐겁다



이제 사람들에게 민족, 군대, 교회는 가치를 잃었다. 정당, 전체주의 이데올로기 등, 한때 공동의 가치관과 목표를 통해 사람들을 공동체로 결속시켰던 모든 것들이 중요성을 잃어가고, 개인적인 자유와 자주적인 결정이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어딘가 소속될 곳, 뭔가 추구할 만한 이상의 필요성 역시 점점 커진다. 우리는 사회적인 존재이다. 우리 자아가 안정을 느끼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우리들 마음속에서 그 힘을 잃어가는 정당이나 교회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또 다른 사회적 현실이 있다. 바로 회사이다. 가끔씩 나는 지금과는 다른 사회적 규칙과 행동 모델, 다른 가치관들이 작용하는 새로운 형태의 기업들만이 미래에 살아남아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도시 공동체나 종교 교파, 정당과 아주 유사한 기업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런 기업은 끈기 있고 유능하게 시장을 공략하는 기업이며, 이와 동시에 사람들이 도덕적으로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결속된 공동체 같은 기업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그 시작에서부터 표면적으로는 서로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 사회적 의무를 부과한다. 경쟁과 연대감이 그것이다. 모두가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스포츠에서처럼 경쟁은 질서의 시작이다. 대기업도 기업 내부에 자율성, 책임, 경쟁, 회사 전체의 연대감 등의 조건이 마련되었을 때에만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다. 모든 근로자와 사무원들이 자신들의 기업가적인 창의력을 표현할 수 있고, 이것으로 상을 주는 회사는 번영할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비굴하게 만드는 권위적인 기업과, 최선을 다하도록 자극하지 않는 관료주의적인 기업들은 제대로 발전하지 못할 것이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지만, 근대 경제 체제의 견고성은 위대한 기업가들이나 정치가들을 근거로 하기 이전에 일반인들을 토대로 삼는다. 일반인들의 작업 능력과 기술 능력, 배우려는 의지, 청렴함을 바탕으로 경제 체제가 튼튼히 설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는 맞지 않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 예상치 못했거나 과소평가 했던 난관에 부딪힌다면 어떻게 될까? 그 결과는 그의 인간적인 자질에 달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완전히 정반대 되는 반응을 보인다. 회사에 해를 끼치는 사람이 있고 자기 자신을 해치는 사람이 있다. 첫 번째 유형은 자신의 부족함을 이해하지 못하며,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인정할 수도 없다. 반대로 두 번째 유형은 그것을 인정한다. 두 번째 유형 같은 자기 파괴적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실패를 받아들이고 스스로 직업을 바꾸어볼 생각을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어느 한 분야에 특별한 소질을 보이는 우리들의 능력과 마찬가지로 무능력 역시 어느 한 분야에서만 특별히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역할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다른 분야에서 아주 뛰어나게 일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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