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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에 하지 않으면 안될 50가지

나카타니 아키히로 지음 | 바움
제2의 성인식을 올려라

얼마 전, 샐러리맨으로서 나의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었던 하쿠호도(일본의 광고회사)의 입사동기에게서 메일이 왔다. 동기회를 하자는 것이었다. 회사를 그만둔 지 10년이 지났지만 동기회를 하자는 제안은 처음이었다. 동기회의 주제는 '성인식'. 올해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내딛은 지 스무 해가 되는 해이므로, 정식 사회인으로서 성인식을 올리자는 취지인 것이다. 내가 하쿠호도에 입사한 것이 1984년. 따라서 2004년은 사회인이 된 지 꼭 20년이 되는 해이다. 나의 1년 선배들은 작년에 성인식을 가졌다고 한다.



사람들은 흔히 40대를 '아저씨 세대'라고 말한다. 하지만 40대는 결코 아저씨 세대가 아니다. 사회인으로서는 지금까지 미성년에 불과했던 것이다. 20대에 회사에 들어갔다고 즉시 사회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지 20년이 지나고 성인식을 치러야만 비로소 어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즉 40대의 성인식은 이제야 겨우 사회인으로서 자각과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곳에 도착했다는 의미이다. 사회인으로서 성인식을 맞이한 지금, 당신은 자신의 삶에 자각과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10대에 했던 일을 다시 시작하라

사람의 인생에서 하나의 기준점이 되는 시기는 환갑, 즉 60세이다. 원을 그려서 0세와 60세를 똑같은 위치에 표시해보자. 그런 다음, 시계의 분을 표시하듯 원을 10세와 20세, 30세, 40세, 50세, 60세로 구분해보자. 그러면 0세와 정면으로 마주 보는 곳은 30세가 된다. 40대는 40세부터 50세까지의 시기를 가리키는데, 40대와 대칭적인 위치에 있는 것은 10세부터 20세까지의 10대이다. 다시 말해, 40대는 10대를 다시 한 번 살아가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40대에 접어들면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오게 되고, 앞으로 10년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될까?' '지금처럼 계속 살아가도 후회하지 않을까?' 이런 고민과 갈등은 10대의 방황과 매우 흡사하다.



20대는 일을 배우는 나이이고, 30대는 자기 스스로 일을 해내야 하는 나이이다. 20대를 어시스턴트 디렉터(AD: Assistant Director)라고 하면 30대는 디렉터(Director)이다. 그리고 40대가 지나면 전체의 일을 관장하는 프로듀서(Producer)가 된다. 프로듀서는 디렉터보다 한 걸음 물러서서 현장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인생도 되돌아보지 않으면 안된다.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고 그럭저럭 부끄럽지 않은 지위에 있지만, 매우 복잡미묘한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작은 성공을 거두었을지는 모르지만 미래의 행복을 보장받을 수 없는 시기. 그것이 40대의 정체이다. 당신은 지금 무엇에 대해 고민하고, 무엇에 대해 갈등하고 있는가?



지금부터 행동체력을 단련하라

40대에 '다시 해보고 싶은 일'은 '지금까지 해보지 못하고 남겨둔 일'이 아닐까? 20대와 30대는 개개인의 체력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다. 하지만 40대부터는 체력의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우리는 지금 '인생 80년'이라고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40대는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남아 있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10대와 40대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바로 체력이다. 40대가 10대의 반복이라고 해도 이미 10대의 체력은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40대 나름대로 체력을 키우는 방법이 있다. 체력이 있는 사람은 건강도 가지고 있고, 그곳에서 태어나는 정신력도 가지고 있다.



'체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행동체력과 면역력이 바로 그것이다. 행동체력은 빨리 달린다든지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리는 것을 가리킨다. 40대에 접어들면 이 행동체력이 확연히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행동체력은 정신력에 의해서 크게 좌우된다. '나는 이제 틀렸어'라고 여기면 틀린 것이고, '아니야, 나는 아직 괜찮아'라고 여기면 괜찮은 것이다. 그만큼 행동체력은 의식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자신이 도중에 포기하지 않으면 40대에는 10대에서 얻을 수 없는 행동체력을 얻을 수 있다. 당신은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미리 포기하고 미리 좌절하지는 않는가?



정신력이 필요한 분야에 도전하라

40대에는 행동체력과 면역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정신력이다. 다시 한 번 10대를 살아갈 때, 10대와 똑같은 방법으로 살아서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40대밖에 할 수 없는 방법으로 10대를 다시 살아가야 한다. 그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력이다.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에서는 10대에게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아무리 체력이 뛰어나도 정신력이 뛰어난 베테랑에게 이길 수 없는 종목도 있다.



많은 나이에도 금메달을 딸 수 있는 대표적인 스포츠는 사격이다. 사격은 나이가 어린 선수보다 나이가 많은 역전의 노장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사격처럼 표적을 맞히는 게임으로는 볼링과 골프, 당구, 양궁 등이 있다. 이런 스포츠에서 중요한 것은 젊음과 체력이 아니라 경력과 노련미이다. 경력과 노련미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동안 얼마나 아수라장을 헤쳐왔느냐?'하는 정신력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40대에는 베테랑이 아니면 승리할 수 없는, 강인한 정신력이 필요한 분야에서 승부를 내야 한다. 당신은 정신력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작은 실수에도 즉시 사과하라

얼마 전, 한 호텔에서 서비스에 관한 강의를 했을 때였다. 강의를 마치고 휴대전화를 확인해보았더니 부재중전화에 똑같은 전화번호가 여러 번 찍혀 있었다. 처음 보는 전화번호였다. 아무리 모르는 전화라도 몇 번씩 찍혀 있으면 공연히 신경쓰이게 마련이다. 그때 또 그 전화번호가 찍힌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전화를 받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죄송하지만 몇 번에 거셨나요? 혹시 잘못 거신 게 아닌가요?" 그러자 상대방은 '알겠습니다!'라고 퉁명스럽게 말하며 불쑥 전화를 끊었다. 그런 경우 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일단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하지 않을까? 그때 문득 '혹시 나도 이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한 적이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등줄기가 차가워지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당신이 잘못했습니다'라고 지적해주었을 때 '미안합니다'가 아니라 '알겠습니다'로 대답하지는 않는지,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아야 한다. 상대방이 잘못을 지적해주면 순순히 사과하는 것이 진정한 사회인이 아닐까? 그런데 최근에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순순히 사과하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더구나 그 사람이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보통사람이라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40대에 접어들어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은 나이가 되었을 때, 미안하다고 사과할 수 있는 사람은 멋있는 사람이다. 큰 실수에 대해서 사과하는 것보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작은 실수에 대해서 사과하는 편이 삶의 윤활유가 되는 것이다. 당신은 실수를 저질렀을 때, 순순히 사과할 수 있는가?



부하직원에게도 먼저 인사하라

'멋있는 20대'와 '꼴불견 20대'는 별로 차이가 없다. '멋있는 30대'와 '꼴불견 30대'도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40대에 접어들면 '멋있는 40대'와 '꼴불견 40대'로 크게 나누어진다. 가장 큰 차이는 인사하는 방법이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직장에 들어가면 인사하는 방법부터 배운다. 그래서 20대에는 누구나 가정교육을 잘 받은 예의바른 어린아이처럼 공손하게 인사한다. 그것이 40대까지 계속 이어지면 인사에 무게가 담겨 있는 멋진 인사로 이어지는 것이다. 40대 이후의 정중한 인사에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과 무게가 담겨 있다. 멋진 50대, 멋진 60대가 되기 위해서는 40대에 예의를 배워야 한다. 40대라는 마지막 시기를 놓치면 영원히 예의를 배울 수 없다.



40대는 자기가 먼저 인사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거드름을 피울 수 있는 나이이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거만하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거만한 태도를 취할 수 있다. 하지만 부하직원에게도 먼저 인사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멋진 40대'가 될 수 있느냐 '꼴불견 40대'로 끝나느냐가 정해지게 된다. 20대는 접대를 받기보다 접대를 하는 쪽이다. 그러나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지위가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40대에 접어들면 접대를 하기보다 접대를 받게 된다. 어느 의미에서는 안전지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는 곳에서 도망치려고 하면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다. 더구나 거드름을 피울 수 있는, 인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결코 '꼴불견 40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당신은 부하직원에게도 고개를 숙이며 인사할 수 있는가?



반복연습을 통해서 성장하라

나이가 들수록 점점 하기 싫은 것이 있다. 바로 반복연습이다. 즉 반복연습이 귀찮아지는 것이다. 스포츠는 모두 반복연습이다. 학교 공부도 반복연습이며 일을 배우는 것도 반복연습이다. 그리고 외국어 공부는 반복연습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10대와 20대는 오로지 반복연습을 되풀이하는 과정이다. 지금 자신의 몸과 머리에 남아 있는 것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쌓아온 반복연습의 잔재라고 할 수 있다. 기억에는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이라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단기기억은 그 순간만 기억하면 될 뿐, 장기적으로 기억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반복연습을 하지 않아도 외울 수 있는 것이 있으나 그런 기억은 물거품처럼 즉시 사라져버린다.



무엇인가를 배우고 습득하는 과정은 모두 반복연습이다. 배움에 반복연습이 필요하지 않은 분야는 없다. 그리고 반복연습을 할 때는 끊임없이 쓸모없는 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능숙해지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40대에 접어들면 공인중개사나 소믈리에(Sommelier: 와인 감정사)와 같은 자격증을 따려고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려면 끊임없이 지식을 외워야 하는 반복연습을 거쳐야 한다. 육체적인 암기나 두뇌적인 암기 모두 반복연습을 많이 하는 사람의 승리로 끝나게 되어 있다. 따라서 40대라고 해도 장기기억에 필요한 반복연습의 중요성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당신은 지금 반복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 있는가?



쓸모없는 일에 도전하라

'더 효율적인 방법이 없을까?' '더 편안한 방법이 없을까?' 이런 식으로 40대에 접어들면 무슨 일에든 효율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른이 되고 나이가 들면서 '뭐가 이렇게 힘들고 복잡하지? 편안한 방법이 없다면 그만두자'라고 어떤 일이든 쉽게 포기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는 성공 확률 100퍼센트의 일도 없고, 실패 확률 100퍼센트의 일도 없다. 성공 확률이 70퍼센트, 50퍼센트, 30퍼센트라고 했을 때 얼마나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느냐는 매우 미묘한 문제이다.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은 대부분 확률에 의지한다. '내 성적이라면 이 대학에 70퍼센트는 합격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대학에 지원하자.' 이런 발상에 사로잡히면 40대에 접어들었을 때 할 일이 하나도 없어진다.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이 전부 쓸모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효율적인 방법으로 의미 있는 일만 하려는 발상이나 쓸모없이 체력과 정신력을 낭비하지 않으려는 사고방식으로는 창조적인 일에 도전할 수 없다. 원래 도전이란 단어에는 쓸모없는 작업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도전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한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애초에 70퍼센트 성공하는 것은 도전이라고 할 수 없다. 도전이란 성공할 확률이 극히 낮은 일들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부터 새로 시작하는 일은 거의 쓸모없는, 어쩌면 제로로 돌아가는 반복연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멋있는 40대'는 반복연습에 의한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사람이다. 때문에 '이것만 배우면 성공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 없을까?'라고 생각하지 말고, 끊임없는 반복연습에 의해 자기만의 방식을 터득하려고 하는 자세를 잊어서는 안 된다. 당신은 자신도 모르게 효율적인 방법만 찾고 있지는 않는가?



많이 고민하고 많이 반문하라

사람의 인생에는 죄질이 무거운 중대한 사건을 일으키는 2대 나이가 있다. 17세와 48세이다. 사람은 누구나 17세가 되면 난폭하게 날뛰고 심하게 흔들리고 격렬하게 폭발한다. 마음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무거운 불안이 마구 소용돌이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48세에도 난폭하게 날뛰고 심하게 흔들리고 격렬하게 폭발한다. 그래서 10대 후반을 사춘기라고 하고, 40대 후반을 사추기라고 한다. 사춘기와 사추기는 가장 크게 마음이 흔들리는 시기이자 자신의 가치관을 돌아보며 '이것으로 괜찮을까?'라고 반문하는 시기이다.



10대도 그러하지만 40대에 접어들면 자신의 내부를 향해서 '이것으로 괜찮을까', '이대로 나아가도 괜찮을까?'라고 끊임없이 반문하곤 한다. 모든 것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고 있을 때는 '이것으로 괜찮을까?'라고 고민할 기회가 없어진다. 그러므로 벽에 부딪히고 궁지에 몰리고 함정에 빠지는 10대와 40대는 오히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해야 한다. 10대처럼 방황하며 고민할 수 있는 마지막 나이인 40대. 자신의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고민할 수 있는 나이인 만큼, 40대에는 마음껏 고민하면 되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마음껏 고민하고 있는가?



성공 느낌에 휩싸이지 마라

40대에는 커다란 실수만 저지르지 않으면 그럭저럭 어느 정도의 지위에 올라간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성공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지금까지 열심히 일한 사람이나 어느 정도의 지위에 있는 사람, 고생을 많이 한 사람, 산전수전을 겪은 사람일수록 성공했다는 느낌에 휩싸인다. 성공했다는 착각에 빠진 시점에서 그 사람의 인생은 끝날 수 밖에 없다. 지금은 20대에도 성공했다는 느낌에 휩싸이는 사람이 적지 않다. 도쿄대에 들어간 것만으로 성공했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대학생들이 취업하고 싶어하는 10대 기업에 입사한 사람은 벌써 성공을 거머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것을 성공으로 여겨서는 인생의 목표가 너무 시시하지 않는가?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는 사람들은 일부러 '성공'이란 두 글자를 멀리하는 법이다. 지금 일류 기업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는 정신적인 역전현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신입사원들 중에 성공 느낌에 휩싸여 있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지금은 '벤처기업의 신화'라는 말을 듣는 회사도 처음에 시작할 때는 은행 문턱에서 쫓겨난 적이 있다. 때문에 그때 아수라장을 헤쳐나온 사람들과 이미 성공 느낌에 휩싸여서 입사하는 신입사원과는 전혀 의식이 다르다. 전자는 아직도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는데, 후자는 성공 느낌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40대에 접어들면 자기도 모르게 성공 느낌에 휩싸이게 된다. 그러면 그것을 끝으로 더 이상 성장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40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성공 느낌에 휩싸이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느냐 하는 의식의 긴장감이다.



자유시간을 많이 만들어라

며칠 전에 어느 기업의 경영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함께 식사하고 싶으니까 비어 있는 시간을 알려달라는 것이다. 나는 그 즉시 이렇게 대답했다. "언제든지 좋습니다. 사장님에게 맞추지요."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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