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듣는 사람 끝까지 말하는 사람
무토 세에이 지음 | 들녘미디어
들어가는 글 - 잘 듣는 것도 '능력'이다1999년 11월, 도쿄의 분쿄구에서 참혹한 사건이 일어났다. 한 유치원의 학부형 사이에 감정 싸움이 벌어져 급기야 두 살짜리 여자아이가 다른 쪽 엄마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피고의 남편이 증인으로 출정하여 이렇게 진술했다. "저는 아내의 마음 속 갈등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사실 범행을 저지르기 전에 피고는 남편에게 여러 번 SOS신호를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남편은 무시하며 상대해주지 않았다. 사건이 일어난 후에야 남편은 그때 아내의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이지 못한 것을 가슴을 치며 후회하고 있었다.
최근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사건이 일어난 후 '고민을 털어놓았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남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사람'이다. 남의 이야기를 잘 듣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추측할 것이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막다른 곳에 몰려 있었구나.'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만큼 심한 고통이었군.' 지금 일본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러한 '예비 범죄자'가 아주 많은 것 같다. 그들의 범행은 대부분 원활하지 못한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끊어질 듯 말 듯 위기에 처해 있는 유대관계를 보다 강하게 연결하기 위해 그들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이처럼 살벌한 시대이기 때문에 '남의 이야기를 잘 듣는 사람'의 능력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1부 마음을 움직여라
1.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가 있으면 행복하다'말하기'와 '듣기'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어려울까. 당신이 말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지 않다면 대부분 '말하는 쪽이 더 어렵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일상생활에서 '말하기'의 어려움을 실감하는 상황은 그리 많지 않다. '눌변'을 자처하는 사람도 친구와 선술집에서 대화를 할 때 '말하기는 역시 어렵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말하기'가 어려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말을 통해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하기 자체가 목적이 되는 상황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 내용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얘기하고 있는 정황 자체가 즐거운 법이다. 이런 경우에는 말의 테크닉이 필요없다. 대부분의 경우 입에서 나오는 대로 수다를 떨면 된다. 서로 즐거운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나누면 그만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은 어떨까? '상대의 말소리가 자연스럽게 귀에 들어오니까 어려울 것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기껏해야 말 사이사이에 맞장구를 쳐주며 상대의 말을 유도하기만 하면 되므로 잠자코 듣는 일에는 특별히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고 여긴다. 과연 '듣기'가 그렇게 쉬울까.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고 있는가'를 생각하기 전에 먼
저 자기 자신이 최근 누군가에게 속내를 털어놓은 적이 있는지 떠올려 보자. 고민에 관해 그 사람에게 죄다 털어놓았다, 이 방면에 관해서는 이 사람이 항상 대화상대가 되어준다는 식으로 마음껏 대화를 해본 경험이 최근에 있는가?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눈에 띄지 않으면 식물이나 애완동물에게라도 말을 거는 것이 좋다. 결코 코웃음을 칠 상황이 아니다. 상대가 동물 또는 식물이라 해도 마음을 가진 대화상대로 간주하고 솔직하게 본심을 털어놓으면 이야기가 끝난 다음 이상하게도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말하기'는 '분리하기', '개방하기'와 통한다. 임상심리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소리내어 말을 한다는 것은 마음을 열고 그 속에 쌓여 있는 분노, 증오, 슬픔을 몸에서 분리해내는 것과 같다. 상대가 알로에든 고양이든 소리내어 말하는 효과는 아주 크다. 그것은 프로 카운슬러도 인정하고 있는 바다.
마음을 털어놓음으로써 얻게 되는 효과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요약된다. 마음을 털어놓으면 기분이 개운해진다. 마음을 털어놓으면 정신적인 친구를 얻게 되어 든든해진다. 마음을 털어놓으면 마음속 깊이 숨어 있던 것이 보인다. 당신 자신의 경험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기 바란다. 직장과 가정에서 본심을 털어놓음으로써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구원받은 듯한 기분이 든 적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간관계가 점점 각박해지고 있는 오늘날, '마음을 털어놓는 일' 자체가 경험하기 어려워져가고 있다. 즉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과 '들어주는 존재'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시대다. 어쨌든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은 '잘 들어주는 것'과 '진심을 털어놓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대화하기 쉬운 사람은 언제든지 이야기를 들어줄 것 같은 분위기를 띠고 있는 사람이다. 여기서 특히 문제삼고 싶은 것은 말하고 싶을 때 들어줄 수 있는가 여부다. 말하고 싶을 때 말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말하는 이를 향해 커다란 장벽을 세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일단 이야기를 들어주겠다는 약속을 했으면 가능한 한 빨리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적절한 타이밍에 하고 싶은 말을 해버리면 마음속의 무거운 짐을 그만큼 빨리 내려놓을 수 있다. 그러나 말하고 싶은 욕구의 유효기간이 지나버린 후에는 '그때 하고 싶다는 얘기가 뭐였어?'라고 재촉해도 '이제 됐습니다'라며 적당히 그 자리를 모면하려 할 것이다. '상대가 말하고 싶어하는 때'가 바로 '들어줘야 할 때'다. 그리고 바람직한 대화상대는 '들어달라'는 사인을 보내는 순간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다.
2. 마음의 귀를 열면 인간관계가 편안해진다속내를 털어놓는 기쁨을 알면서도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당신 주변에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잔뜩 늘어놓고 상대의 이야기에는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 상대의 이야기를 듣기는 하지만 이해는 잘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듣지 못하는 사람'에는 크게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 번째 유형은 '듣기'보다 '말하기'가 우위에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상대가 자신보다 위'임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고 착각하고 있는 이 유형은 '들을 마음이 없는 사람', '중증의 듣지 못하는 병에 걸린 사람'이다.
두 번째 유형은 '듣지 못하는 일과성 병에 걸린 사람'이다. 이 경우는 듣는 이 자신의 마음에 뭔가 응어리진 것이 있거나 스트레스가 축적되어 있어 다른 사람의 고민에 관심을 보일 여유가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은 어떤 감정이나 욕구에 사로잡히면 '듣는 기술' 이전에 '듣는 자세' 자체를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처음에는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가도 어느새 자신의 고민에 몰두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속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줄 만한 공간이 있는지 없는지를 가끔씩 점검해보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듣지 못하는 사람'의 세 번째 유형. 그것은 '들을 마음도 있고 자신은 듣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전혀 듣지 못하는 사람'이다. 원인은 '듣는 자세'와 '듣는 기술'이 몸에 배어 있지 않아서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의 말은 조용히 들어야 한다'는 가르침은 받지만, '상대가 말하기 쉽도록 들어야 한다'라든가 '점점 말하고 싶어지도록 이런 방법으로 들어라'와 관련해서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자기 류의 듣는 방식을 몸에 익혀 자신은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며 착각한다. 그러나 정작 상대방은 '괜히 얘기했다'며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앞서 '우리는 듣는 훈련을 받지 못했다'고 언급했는데, 그것이 일본 국민 전체가 걸려 있는 '듣지 못하는 병'의 커다란 요인이다. 일본의 가정, 직장, 특히 학교에서는 곧바로 답을 도출하는 예의범절과 교육만 중시해왔다. 일단 질문을 받으면 정확하고 신속하게 대답하는 데만 중점을 둬 그 의미나 배경을 심도 있게 고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무식하고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지 않으려면 즉시 정답을 말하는 습관을 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뭔가 좌절을 맛보거나 절망감이 들면 도중의 과정을 생략한 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만다. 아이들은 '말하기→듣기→생각하기→또 말하기→듣기'와 같은 과정을 밟으며 자기 고민의 본질을 깨닫고 정신적으로 성장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몸만 커져버렸다.
사회적ㆍ시대적 조건도 일본인의 듣지 못하는 병에 박차를 가했다. 고도 성장기에는 유대보다 경제를 최우선으로 놓았으며, 거품경제 시대에는 남의 기분보다 '개인의 쾌락'이 추구되었고, 거품이 터져버리자 끝없이 계속되는 불경기에 대한 권태감이 마음을 덮어버렸다. 구조조정이 휩쓸자 불필요한 과정은 생략하고 결과만 평가하게 되었다. 그런 살벌한 분위기의 직장에서 어느 누구도 남의 고민에 귀를 기울일 여유가 생길 턱이 없다. 그 결과 '듣기'보다 먼저 얼마나 요령 있게 상대를 누르고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킬 수 있는지가 주목받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시대이기 때문에 '들을 줄 아는 사람'의 존재가 더욱더 필요해지고 있다.
어떤 분야든 신망을 얻으려면 모름지기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 귀를 갖고 있어야 한다. 잘 듣는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정보가 축적되어 지식의 폭이 넓어지고 인간에 대한 이해도 깊어진다. 고민을 들어주면 상대의 마음을 위로해줄 수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어주면 자기 자신도 즐거워진다. 설령 상대가 자신을 비난한다 해도 그 이면에는 진심을 알아주길 바라거나 타협점을 찾고 싶어하는 마음이 숨어 있다. 친근한 사이라도 당신의 귀에 불평불만이 들려온다면 그것을 기회로 삼는 것이 좋다. 불만을 토로한다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이 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누군가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사인을 받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그에게 신뢰받고 있다는 의미다. 즉 당신은 선택받은 사람이다.
3. 바로 활용할 수 있는 '듣기 기술'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상대가 어떤 욕구를 충족시키고 싶어하는지를 수시로 확인해가며 대화를 진행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동료가 당신에게 상사의 험담을 하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대부분의 경우 남의 험담을 하는 사람은 단순히 '속시원하게 말하고 싶다'는 욕구를 충족시키고 싶어할뿐이다. 따라서 이야기를 들어주던 당신이 험담 내용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여 해결책을 제시하려 하면 말하는 이는 완전히 흥이 깨져버리고 만다. 이런 경우 반은 듣고 반은 흘려버리며 상대가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즉, 이야기를 들을 때는 단어 자체가 갖는 의미뿐 아니라 상대가 어떤 욕구를 갖고 말하는지를 알아차리는 센스가 필요하다.
이처럼 자신의 말을 들어주기를 바라는 의사 표시의 이면에는 두 가지 의도가 숨어 있다. 하나는 이야기 자체의 내용을 문자 그대로 상대가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자신이 품고 있는 감정과 생각을 헤아려 그에 대응해주기를 바라는 욕구다. 듣는 이가 이야기에만 열중하면 그 이면에 숨어 있는 감정이나 욕구를 놓쳐버리기 쉽다. 상대가 입을 열기 시작하면 문맥을 따라가면서 그 이야기를 통해 그가 당신에게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센서를 가동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언제', '어디서', '누가', '왜',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라는 5W2H가 기본 원칙이다. 효율적으로 정보를 주고받으려면 이 일곱 가지 포인트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습관이 몸에 밴 탓인지, 우리는 사적인 대화를 하거나 상담을 할 때 자칫 일곱 가지 포인트를 상대에게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습관이 말하는 이의 '말하고자 하는 욕구'를 꺾어버릴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인간 심리의 재미있는 부분인데, 남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사람들은 5W2H에 구애받지 않는다. 즉 상대의 이야기 속에 일곱 가지 포인트 중 몇 개가 빠져 있다고 해도 일일이 캐묻지 않는 것이 '잘 듣는 사람이 되기 위한 비결'이다.
5W2H를 사용한 듣기는 마치 업무에 관한 정보 수집을 하는 것과 같은 방식을 취한다. 그렇기 때문에 듣는 이가 상대의 기분을 탐색하려고 하면 할수록 상대의 말하고자 하는 의욕을 꺾게 되어 털어놓고 싶었던 이야기의 본질에서 점점 멀어지는 결과를 낳고 만다. 남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은 주변 사정보다 우선 말하는 이의 기분과 감정에 스포트라이트를 맞춘다. 그래서 이야기가 논리적ㆍ합리적이지 않더라도 상대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을 듣는 이쪽에서 함부로 차단하거나 거부하지 않는다. 듣는 이가 이것저것 캐묻지 않아도 말하는 이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면 자연히 이야기의 전모가 드러난다. 왜냐하면 후렴 부분을 이해해준 상대에 대해서는 인트로부터 엔딩까지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이야기를 들을 때는 크게 나눠 이쪽에서 말을 걸어 탐문하는 경우와 상대방 쪽에서 먼저 입을 여는 경우가 있다. 후자의 경우에 특히 경계해야 할 것은 자신의 입장을 '그렇게 말하고 싶다면 들어주겠다'는 식으로 규정짓는 태도다. 말하는 이는 당신을 듣는 이로 선택했지만, 그렇다고 당신을 윗자리에 모셔놓고 의견을 여쭙겠다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라면 자신과 같은 입장에 서서 이해해줄 것'이라는 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가 '가르쳐달라', '충고를 해달라'고 확실히 의사를 표시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조언이나 충고 등을 통해 말하는 이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것은 상대의 연령이나 사회적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반드시 지켜야 하는 금기사항이다.
이제 잘 듣는 사람이 되기 위한 기본적인 마음가짐 두 가지를 살펴보자. 하나는 상대가 무슨 말을 하든 거부하거나 반론을 제기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카운슬링 전문 용어로는 이것을 '수용(acceptance)'이라고 한다. 상대의 이야기 내용이 귀에 거슬리거나 당신에 대한 비난이라 할지라도 곧바로 반론을 펴지 않고 일단 끝까지 듣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상대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려면 당신 자신의 선악, 좋고 싫음의 가치판단을 일단 옆으로 밀쳐놓아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갖춰진 다음에는 제2단계로 들어가 상대의 이야기를 긍정적 관심을 갖고 듣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이때도 사회 통념과 자신의 가치관을 제쳐놓고 경청한다. 그러는 동안 말하는 이는 듣는 이를 신뢰하게 되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공감하는 것이다. 즉 말하는 이가 이야기나 표정을 통해 보여주는 희노애락을 듣는 이가 자기 일처럼 느끼고 이해하는 것이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자신의 '공감 능력'을 시험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똑같은 감정을 느낄 수 없다 해도 자신이 같은 입장이었다면 어떤 심정일지를 여러 모로 헤아려 가능한 한 비슷한 기분을 가져보려고 하는 것이 '공감'이다. 이러한 공감 능력은 이야기를 듣는 태도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 말하는 이의 '진심'을 들으려면 앞서 설명한 수용적 태도와 함께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주의할 것은, 공감과 동정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르다. 동정은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마음의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동정은 공감이라고 할 수 없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하든 그대로 받아들일 작정을 하고, 상대가 느끼고 있는 기분을 가능한 한 공감하려는 자세도 갖췄다. 그런데도 말하는 이가 그러한 성의를 몰라주는 듯한 기분이 든다면? 매사에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