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인재의 이력서에는 무엇이 있을까
황숙혜 지음 | 리더스북
Part 1 Talk 핵심인재 6인과의 대담 -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성공한다는 것열정이 없다면 꿈꾸지도 마라언젠가 다니는 직장에 사직서를 던지고 개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샐러리맨은 임원까지 오르겠다는 꿈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다지고 있을 것이다. 수십 년 일한 직장에서 마지막 순간을 '기업의 별'이라 불리는 임원으로 장식했으면 하는 바람을 샐러리맨이라면 누구나 가져보았을 것이다. 많은 샐러리맨들이 이를 악물고 '기업의 별'이 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퇴직 시기를 연장하거나 억대 연봉을 탐내서가 아니다. 기사가 딸린 승용차나 사회적 혜택을 누리고 싶은 마음은 더욱 아닐 것이다. 그것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실력자가 되고 싶은 승부욕이며, 하나의 사업 부문을 통째로 주도하며 좀더 넓은 영역에서 꿈을 펼치고 싶은 마음이다. 오랜 시간 애정을 쏟은 직장이나 해당 업계가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고 더 나아가 세상에 작으나마 보탬이 되고 싶은 소망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신문이나 방송에 얼굴을 내밀며 성공한 인물로 소개되는 이들이 가진 남다른 능력은 무엇일까. 그들은 자신의 일을 항상 천직이라고 생각하며 100퍼센트 만족했을까.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출발해 임원의 자리에까지 오르고, 사내뿐 아니라 업계에서도 슈퍼스타라 불릴 정도로 눈부신 성공을 거둔 이들의 경험에서 중요한 핵심만 찾아내 그들과의 교집합을 넓힐 수 있다면 꿈을 향해 우리가 내딛는 발걸음이 조금은 빨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핵심인재 6인과의 대담 이들 6명의 핵심인재는 금융, 정보통신, 제약, 게임, 조리업계의 신화창조자들이다. 이들이 들려주는 일과 성공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는 성공을 꿈꾸는 샐러리맨들에게 꼭 필요한 양식이 되리라 믿는다.
필자 : 첫 번째 질문으로, 다소 엉뚱한 질문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스스로도 성공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조의주 : 성공했다기보다는 남들보다 인정받고 있다는 생각은 해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재미와 만족을 느끼고 있고요.
추연성 : 저 역시 성공했다기보다 지금까지는 재미있게, 행복하게 그리고 후회 없이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았고, 어려운 일을 겪기도 했지만 크게 흔들리거나 꺾이지는 않았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겠어요. 다만 성공이란 것이 현 시점에서 완결형으로 평가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최민상(C사 신입사원, 지방 K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 누구나 성공하고 싶어하고, 성공이나 처세에 관한 책들도 넘쳐나는데 정작 무엇을 성공이라고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성공의 기준을 어디에 두시나요?
조의주 : 성공이 대단히 거창한 것은 아닐 거예요. 본인이 하는 일에서 다른 누구보다 앞선다고 스스로 인정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성공이 아닐까요. 본인이 만족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르는 것 말이에요. 성공이라는 것이 완결형이 아닌 진행형이라 함은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그 경지를 지켜나가야 하기 때문이에요. 한 번 성공했다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거든요. 현재 최고의 실력자라고 하더라도 늘 새로운 도전자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너리즘에 빠지면 안 되고, 계속해서 자신을 갈고 닦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하죠.
필자 : 모두들 너무 겸손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충분히 성공하셨고, 또 이미 핵심인재들이신데 말이죠. 그렇다면 이번에는 질문을 좀 바꿔볼게요. 여러분들께서 일하시는 분야를 가만히 보면 하나같이 요즘 '뜨는' 분야입니다. 이동통신이나 게임은 말할 것도 없고 신약개발, 보험계리사, 금융, 웰빙시대에 맞춰 조리업까지 모두 잘 나가는 분야에서 일하고 계신데, 진로를 결정하실 당시부터 이 일이 뜰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나요?
정영석 : 글쎄요, 그런 분이 있나요? 저는 아니에요. 아시겠지만 게임산업이 가파르게 성장한 것은 최근 몇 년 사이입니다. 1994년 그래픽 디자인으로 게임과 인연을 맺었는데 당시만 해도 게임산업은 굉장히 열악했어요. 게임업체의 규모도 작았고, 직원은 물론이고 사장도 배고프긴 마찬가지였어요. 게임 시장이 얼마나 커질지, 게임개발자의 연봉이 어디까지 오를지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었습니다.
최민상 : 좀 뜻밖입니다. 현재 이 정도의 성공을 이룬 분들이라면 이미 10년, 20년 전부터 남다른 백년대계를 세웠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조의주 :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되 계획 없이 무작정 할 수는 없죠. 계획도 분명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10년 이상 너무 멀리 내다보고 가는 것보다는 3년이나 5년 이내로 기간을 좁혀서 아주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효과적일 거라 생각합니다.
최민상 : 그렇다면 진로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추연성 : 어떤 분야에서 남다른 성과를 내려면 자신이 좋아하고 열정을 바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거기에 실력까지 갖춘다면 최선이겠죠. 하지만 두 가지를 다 못 가졌다면 우선 열정을 바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편이 앞으로의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출발할 때는 실력자와 차이가 나겠지만 일에 대한 열의가 있으면 그 차이는 금방 좁혀질 겁니다.
이성규 : 어떤 일이든 목적의식을 갖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공부를 할 때도 공부하는 이유를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큽니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봐도 목적의식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결과물은 분명히 차이가 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필자 : 제가 평소 궁금했던 것 중에 하나가 과연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사람들도 위기의식을 느낄까 하는 점이었어요. 어떠세요?
정영도 : 문득 드는 정도가 아니라 많이 느끼죠. 사실 임원이 되고 나서 위기의식이 더 커졌어요. 그만큼 책임도 많아졌고 경영진이 기대하는 수준도 높아졌으니까요. 문제가 생기면 직접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늘 긴장감을 갖고 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필자 : 어려운 순간들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일이 천직이라고 생각하셨어요? 일이 너무 힘들면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잖아요.
이주식 : 일을 하면서 계속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기만 하면 어떻게 계속할 수가 있겠습니까. 어려운 일들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지만 해결책을 찾아내고 일을 풀어가다 보면 힘이 생기고 기분도 좋아지고 그렇죠. 인생이란 게 항상 행복할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적어도 단순반복적인 일이 아니라 특정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일을 하고자 한다면요. 그런 점에서 이 일이 제게는 천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일이 마음먹은 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낙담하거나 신세를 한탄할 것이 아니라 해결책을 찾아야죠.
필자 : 마지막으로 사회에 첫발을 막 내딛은 최민상 씨를 위해 회사에서 인정받는 법이랄까, 사랑받는 후배가 되는 방법을 좀 알려주시죠.
이주식 : 함께 일하고 싶은 후배들의 유형을 말하자면 두 가지가 있어요. 일에 열정을 가진 후배들이 첫 번째입니다. 정말 자신의 혼을 불어넣어 일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다른 한 부류는 영리한 친구들입니다.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친구들이죠. 두 친구들이 모여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며 상승작용을 하면 높은 성과를 낼 수가 있어요.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중요합니다. 항상 먼저 남에게 베풀려고 하고, 좋은 관계를 갖도록 하는 자세도 중요해요. 어떤 조직에서든 독불장군은 오래갈 수 없거든요. 혼자 아무리 뛰어나도 조직 속에 융화하지 못하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 힘들어요.
필자 : 최민상 씨, 오늘 모임 어땠어요? 도움이 많이 되었나요?
최민상 : 네, 분야는 각기 다르지만 성공한 분들 사이에는 어떤 공통된 키워드가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시련 앞에 굴하지 않는다거나 한 번의 성공으로 자만하지 않는다는 점도 그 중 한 가지인 것 같아요. 또 직장에서 윗분들이 후배들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 것 같아요. 지금까지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선천적인 자질이나 남다른 배경이 있을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그들과
저 자신을 이질적인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그런 벽이 많이 허물어진 것 같습니다. 어디선가 "성공하려면 성공한 사람을 만나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말의 의미도 이제는 알 것 같아요. 또 우리는 늘 지향해야 할 목표점을 설정해두고 그것을 통해 동기를 부여받는데, 이렇게 성공한 분들과 함께 한 자리가 제게는 그런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정말 유쾌한 시간이었습니다.
Part 2 Story 핵심인재 6인의 이력서 - 현재의 자리에서 최고가 된다는 것끈질긴 성실함은 태산도 옮긴다.
"고졸 조리사에서 요리 명장으로 - 정영도 프레지던트호텔 이사"음식 문화의 저변을 넓히기 위한 시도들 : 대생기업에서 경력자 공채를 한다는 신문광고를 보고 더 생각하지도 않고 입사지원서를 제출했다. 동양 최고의 빌딩에서 일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 여기서 승부를 걸겠다는 다짐도 있었다. 신설 기업이 경력 직원들에게 제시한 파격적인 대우도 입맛을 당겼다. 입사 후 포부를 묻는 면접관에게 조리사 출신의 임원이 되겠다고 힘주어 대답했다. 1급 조리사로 입사가 결정되었을 때에는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요리사가 되겠다고, 일에 한번 미쳐보자고 각오를 다졌다. 프랑스어와 일본어를 공부한 것도 이때였다. 대생기업이 호텔신라와 기술제휴를 맺은 후 레스토랑 경영과 조리사 교육을 호텔신라 측이 주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부분 영어로 된 책을 보고 양식 조리법을 익혔던 당시 호텔신라가 프랑스어로 된 조리법 교재를 던져주는 것이 아닌가. 새벽잠을 줄여 프랑스어 학원에서 기초를 다지고 퇴근 후에는 집에서 복습하며 요리책을 읽어나갔다. 제대로 된 요리 실력을 갖추기 위해서 언어는 필수였다. 일본어는 개인 강사까지 찾아가며 배우는 열의를 쏟았다. 평소 구멍이 난 양말도 꿰매 신을 정도로 검소한 그였지만 실력향상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한 부분에는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1990년 일본 오호쿠라호텔 연수를 시작으로 약 10년 동안은 해외시장 조사로 분주했다. 1993년 미국을 시작으로 이듬해 일본, 1996년 싱가포르와 1998년 호주까지 해외시장을 두루 섭렵하며 각국의 입맛과 음식 문화의 특색을 몸소 체험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자체 개발한 양갈비 요리를 선보인 정영도 이사는 청와대에서 먹었던 음식보다 더 훌륭한 맛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김치나 스테이크와 같은 대중적인 메뉴에 인삼을 곁들여 상품을 고급화하는 시도도 했다. 정영도 이사는 동물과 식물, 해산물과 주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식품 재료의 성분과 저장방법 및 특성을 분석했다. 여기에 응용할 수 있는 요리를 따로 정리했고, 3년가량 집중적으로 연구한 자료를 토대로『식품조리재료학』을 집필했다. 책은 사내에서는 물론이고 일부 대학교에서 교재로 채택될 만큼 높은 평가를 받았다.
요리 명장에 이름을 올리다 :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정영도 이사는 회사 설립 이래 두 가지의 기록을 세웠다. 외부에서 부장급으로 스카우트된 것도 그가 처음이고, 조리사 출신으로 임원이 된 것도 그가 처음이다. 첫 번째 '처음'은 억척스러움으로 얻어낸 결과였고, 두 번째 '처음'은 불모지를 옥토로 가꾸어내고 얻은 과실이었다. 정영도 이사는 노동부 산하 산업인력공단에서 선정하는 대한민국산업명장 가운데 요리 부문 명장에 이름을 올렸다. 네 번의 도전 끝에 거머쥔 성과였다.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요리사 가운데 사회봉사 활동, 독창적인 요리개발 성과, 조리법이나 식자재에 대한 지식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선발하는 명장은 그가 요리사 가운을 입은 이후 계속 꿈꾸어온 것이기도 했다. 프랑스 대사관에서 주관하는 프랑스조리사중앙회의 회원에도 등록했다. 회원 자격이 까다로워 프랑스 요리에 일가견이 있고 음식 문화 발전에 기여한 바 있는 요리사에게만 특별히 부여한다.
기업의 임원이 된다는 것 : 입사 4년 만에 호텔 설립 이래 조리사 출신 임원 1호가 되었고, 요리 명장의 반열에도 올랐다. 그는 임원이 된 이후로 오히려 더 큰 위기의식과 책임감을 느낀다. 임원이 되는 것도 어렵지만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에서 실력을 갖추는 것은 기본이다. 그리고 자신을 상품화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의 임원이 매체에 소개되면 자연스럽게 기업을 홍보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마지막으로 인내력이 필요하다. 실력을 갖추고 보니 타이틀이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앞만 보고 달린 세월이 어느새 35년. 정상에 서고 보니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만큼 이룬 것도 세상의 덕을 본 것이라는 깨달음과 함께 나누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진정한 최고는 삶의 내공이 결정한다.
"국가 경제 해결사, 미스터 구조조정 - 이성규 국민은행 부행장"국가 경제의 성패를 두 손에 : 1998년 3월 하순, 어느 날 걸려 온 한 통의 전화가 모든 계획을 일시에 정지시켰다. 1년 정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생각으로 필요한 수속을 모두 마치고 비자도 받아놓은 상황이었다.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이헌재 전 금융감독위원장이었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은 대기업의 연쇄부도가 금융공항으로 이어져 국가 경제가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사태를 막아내기 위한 중차대한 일이었다. 벼랑 끝에 몰린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이헌재 씨가 발탁한 용병은 이성규 부행장이었다. 그는 기업구조조정위원회의 사무국장으로 기업 워크아웃 작업에 본격 착수하게 되었다. 고합 계열 4개사를 필두로 94개 기업의 35조 원의 여신과 대우 계열 12개사의 65조 원의 여신을 합쳐 총 100조 원에 달하는 부실채권이 이성규 부행장의 손에 달려 있었다. 그의 나이 불과 30대 후반이었다.
매순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기 : 이성규 부행장은 기업 워크아웃의 기초적인 매뉴얼을 작성했다. 워크아웃의 매뉴얼은 금융관행과 금융상품의 구조는 물론 채권자 구조와 법적인 권리, 책임문제까지 집대성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것은 정부나 이해당사자의 부당한 요구나 고집에 흔들리지 않고 곧게 중심을 세우는 의연함으로 이루어낸 결실이었다. 당시 한 해 국가 예산과 맞먹는 기업 부실을 정리한 일은 세계사를 통틀어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 워크아웃으로 말미암아 그에게 새겨진 '구조조정 전문가', '부실 해결사'라는 코드는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그를 호출했다. 2004년 다중채무자를 구제하기 위한 배드뱅크가 출범했을 때도 그 뒤에는 어김없이 부실 해결사가 함께 했다. 신용불량자가 여러 금융기관에 채무를 가지고 있을 때 채무조정의 창구를 단일화하기 위해 자산관리공사와 협상을 벌였다. 기업에 이어 개인까지 부실을 털어내게 한 툴은 그가 남긴 사회적 유산이다.
이성규 부행장에게 직장이란 아침에 출근해 퇴근하는 시간까지 조직이 원하는 만큼만, 월급 받는 만큼만 일해주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한국신용평가에서 발간하는 전문지의 편집을 맡았을 때는 맞춤법과 띄어쓰기만 손질한 것이 아니라, 기업분석 업무를 하면서 해당 기업의 가치를 산출하는 것은 물론 해당 산업의 본질도 함께 꿰뚫어보았다. 제일제당과 음반회사인 한국 EMI에서 일할 때는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산업의 가치를 움직이는 세력의 판도를 읽어냈다. 그러면서 콘텐츠 사업의 잠재력에 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