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습관
트와일라 타프 지음 | 문예출판사
창조성은 규칙과 습관의 산물이다나는 커다란 하얀 방 안으로 걸어간다. 이곳은 맨해튼 미드타운에 있는 댄스 스튜디오. 이 연습실은 사방이 240미터의 높다란 거울로 둘러싸여 있다. 연습실 한쪽 구석에는 오디오가 놓여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 이 텅 빈 방은 심오하고, 신비스럽고, 무서운 것을 상징한다. 그것은 곧 자기만의 방식으로 무(無)에서 완전하고, 아름답고, 만족스러운 것을 창조해 나가는 일을 뜻한다. 이는 작가가 타자기에 새하얀 종이 한 장을 집어넣는 것이나(요즘은 텅 빈 컴퓨터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작가들이 더 많겠지만), 화가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캔버스를 마주보고 있는 것이나, 조각가가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돌덩어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이나, 작곡가가 피아노 건반 위에 손가락을 올려두고 있는 상황과 다를 바 없다. 나는 직업상 평생 그 빈 공간과 마주해 왔다. 나는 무용가이자 안무가이다. 35년이 넘는 세월 동안 130여 편의 무용작품과 발레를 만들어냈다.
이제는 이 텅 빈 하얀 방에서 도전과 떨림뿐 아니라 가능성, 심지어는 마음의 평화까지 발견할 수 있을 만큼 일해왔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보낸 후에야 나는 창작이라는 것이 매일 정해진 일과가 있는 직업이나 마찬가지임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작가들이 자신만의 작업 습관을 갖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가장 능률적으로 일하는 작가들은 이른 아침에 작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 목표를 세우기도 한다. 하루에 1,500단어를 쓴다든지, 12시까지 책상 앞에 앉아 있겠다든지. 그러나 진정한 비결은 그들이 매일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철저하게 규칙적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매일의 일과는 제2의 천성이 되어버리고, 규칙은 습관으로 변한다. 그러나 창조성이 꼭 예술가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판매고를 높이려는 사업가나 문제를 해결하려는 엔지니어, 아이들이 다양한 시각으로 세상을 보기를 원하는 부모에게도 창조성은 필요하다. 나는 직장에서나 사생활에서나 매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창조성을 추구하는 일에 매달려왔다.
창조성은 습관이며, 최고의 창조성은 훌륭한 작업 습관의 결과다. 창조성이 습관이 되어야 한다는 개념은 역설적이다. 창조성은 모든 일을 신선하고 새롭게 유지하는 방법인 반면, 습관이라는 말에는 규칙과 반복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역설은 창조성과 기술이 서로 맞닿아 있다는 면에서 날 매혹시켰다. 당신이 상상하는 것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하다. 사실처럼 보이는 허구의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단어를 이용해야 하고, 노을 속의 건초 더미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물감의 색과 질감을 선택해야 하며, 맛있는 요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재료를 혼합해야 한다. 만약 예술이 우리가 우리 마음속에서 보는 이미지를 세상과 연결해주는 다리라면, 기술은 그 다리를 짓는 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습이 필요하다. 연습은 기술이 발전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자신만의 의식(儀式)을 만들어내라나는 매일 아침을 나만의 의식으로 시작한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연습복을 입고, 후드티를 걸치고, 모자를 쓴다. 그러고는 집 밖으로 나와 택시를 불러 세우고, 운전사에게 퍼스트 에비뉴 91번가에 있는 범핑 아이런 헬스장으로 가자고 한다. 내 의식은 매일 아침 헬스장에서 하는 스트레칭과 웨이트트레이닝이 아니다. 내 의식은 바로 택시다. 운전사에게 목적지를 말하는 순간, 내 의식은 끝난다. 간단한 행동이지만, 매일 아침 똑같이 하다 보니 이런 행동이 습관이 되었다. 계획을 취소하거나, 지레 겁을 먹고 물러서거나, 포기하거나, 잘못된 길을 가게 될 위험이 가장 높아질 때야말로 창작 과정을 시작하는 의식, 즉 자동적이면서도 단호한 행동 패턴을 정해두는 것이 필수적이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따르면 의식이란 '종교적 혹은 그밖의 숭배의식을 정해진 순서대로 실행하는 것'이라고 씌어 있다. 어떤 활동을 의식으로 생각하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완전히 달라진다.
우리가 인식하든 못하든 우리 모두는 각자의 생활 속에 여러 가지 의식을 가지고 있다. 무용수들이야말로 철저히 의식에 의해 지배받는다. 그들의 의식은 매일 아침 10시부터 정오까지의 몸풀기 과정으로 시작되는데, 그 시간 동안 근육을 늘이고 풀어주며 기본적인 포지션을 해본다. 그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이 의식을 행한다. 무용수라면 누구나 근육을 강화하는 연습이 리허설이나 공연시의 부상에서 자신을 보호해 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필요성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하다 보니 그 일이 의식이 되어버렸다. 창조성이 습관화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하루를 시작하고 싶은 환경과 연결된 준비의식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를 그런 환경 속에 놓음으로써 그들은 창조적인 하루를 시작한다. 당신은 그 환경에 있는 것이 행복해야 하며, 일단 그런 환경을 찾아냈으면 그것을 고수하라. 창조적인 습관을 갖기 위해서는 그러한 습관이 형성될 만한 작업환경이 필요하다.
내가 아침마다 행하는 운동의식은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자기 의존이다. 그것은 다른 모든 일이 실패한다 해도 최소한 나 자신만큼은 믿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무엇보다도 바로 그런 점이 우리가 준비의식을 통해 얻는 혜택이다. 즉, 의식은 자신감과 자기 신뢰로 우리를 무장시킨다. 창작 활동을 시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 두려움을 갖게 마련이다. 그러나 미지의 세계란 원래 두려운 곳이며, 뭐든 새로운 것은 미지의 세계로 가는 발걸음이다. 원시 문화에서 의식이 생겨난 이유도 두려움 때문이다. 다른 부족에 대한 두려움, 사람을 잡아먹는 동물에 대한 두려움, 자연과 날씨에 대한 두려움. 따라서 신을 달래는 의식을 통해 그들은 식량과 가축, 종족의 번식, 안전에 대한 통제권을 얻기를 바랐다. 수세기가 지난 지금, 현대인들은 고대에 행해진 그러한 의식이 어리석다고 생각한다(물론 그 의식을 믿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그러나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거쳐 가는 크고 작은 의식들이 과연 그 의식들과 크게 다를까?
내가 아는 어느 사업가는 계약을 맺기 전에는 항상 1달러짜리 지폐를 펼쳐 잠시 조용히 바라보는 의식을 갖는다. 대머리 독수리와 상투적인 표어 EPluribus Unum(여럿으로 이루어진 하나라는 뜻. 1955년까지 미국을 상징하는 표어였다)이 적힌 국세청 마크 맞은편에 씌어 있는 말 때문이다. 거기에는 꼭대기에 신비로운 눈동자가 떠 있는 피라미드가 있고, 그 위에 Annuit coeptis라고 씌어 있는데 이것은 "신은 우리가 하는 일을 좋아하시느니라"라는 뜻이다. 습관, 더구나 신념이 부여된 습관은 그것을 위안과 용기를 주는 행동으로 변화시킨다. 이 사업가에게는 모든 계약이 용기와 신념의 행동이고, 1달러짜리 지폐 뒷면에 씌어있는 그 표어는 그의 은총인 셈이다. 결국 당신에게 적합한 작업환경을 선택하고, 매일 당신을 앞으로 나아가게 밀어붙이는 의식을 발전시키고, 자신의 두려움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다른 흥밋거리에 눈을 돌리지 않을 때 첫 번째 장애물은 뛰어넘은 셈이 된다. 당신은 이미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 창조성 기르기
고독에 대한 내성을 키워라 : 창조적인 사람을 죽이는 것은 고독이 아니다. 그것은 목적 없는 고독이다. 당신은 혼자이고, 괴로우며, 이 불행을 견뎌낼 만한 타당한 이유가 없다. 고독에 대한 내성을 쌓기 위해서는 목표가 필요하다. 하루에 10분씩 아무 생각 없이 정신적 방황을 해보자. 당신의 생각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어떤 말이나 목표가 형상화되는지 지켜본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으면 시간을 11분으로, 12분으로, 13분으로 늘인다. 그런 식으로 뭔가 재미있는 것이 떠오를 때까지 자신에게 필요한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낸다. 게일어(스코틀랜드 고지대에 사는 게일족의 언어)에서는 이런 상태를 가리켜 '외로움 없는 고요함'이라고 한다. 이 활동은 명상과 정반대임을 주목하라. 이는 마음을 비우거나, 의식적인 생각 없이 평온하게 앉아 있으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무의식에서 생각을 찾아내려 하며, 무언가 흥미로운 생각이 떠오를 때까지 계속 그것을 끌어내려고 조르는 것이다. 아이디어는 당신의 머릿속을 슬그머니 빠져나가려 들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붙잡고, 그것과 함께 놀고, 괴롭혀라. 이제 당신은 외롭지 않다. 당신의 목표, 당신의 아이디어가 당신과 함께 있다. 고독은 창조의 피할 수 없는 일부분이다. 그로 인해 얻게 되는 자립은 행복한 부산물이 된다.
두려움과 직면하라 : 직장에서 아이디어 회의시간에 당신은 왜 큰소리로 말하지 못하는가? 어떤 이야기에 대한 아이디어가 머릿속을 스쳐갈 때 왜 그것을 붙들고 계속 추진하지 않는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가 왜 멈추는가? 다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몇 가지 두려움이다.
ㆍ"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 이건 분명 문제다. 한 가지 방법으로 해보고 잘 되지 않으면 다음에는 다른 방법을 시도하면 된다. 어떤 식으로든 하는 편이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ㆍ"사람들이 날 무시할 거야." - 당신에게 중요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ㆍ"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거야." - 미룬다고 해서 시간이 단축되지는 않는다.
ㆍ"돈이 들거야." - 창작 활동이 당신에게 가치 있는 일인가? 그렇다면 그 일을 우선순위에 두어라.ㆍ"너무 내멋대로야." - 자신과 자신의 노력을 소중히 여길 줄 모르면 타인도 별로 소중히 여기지 않게 된다.
이런 것들이 아마도 우리를 가장 얼어붙게 만드는 두려움일 것이다. 자신의 두려움을 면밀히 검토하고 나면 그것의 정체를 파악해, 당신의 발목을 붙잡는 두려움을 분해해버릴 수 있다. 두려움으로부터 달아나거나 무시하지 마라. 두려움의 목록을 적어 보고, 그 종이를 잘 보관해 둬라.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다. 유일한 잘못이라면 두려움이 당신의 일을 중단시키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당신의 창조적 DNA는?나는 우리 모두에게는 창조적 코드의 가닥들이 있고, 그것이 우리의 상상력 안에 회로처럼 얽혀 있다고 믿는다. 이 가닥들은 우리의 키나 눈동자 색깔을 결정하는 유전자 코드처럼 우리 안에 또렷이 새겨져 있으며, 다만 우리의 창조적 충동을 다룬다는 점이 다른 유전자 코드와 다를 뿐이다. 나는 이를 DNA라 부른다. 당신의 창조적 인격이나 창조적 회로라고 생각해도 좋다. 나 스스로 비평가가 되어 과연 내가 나 자신의 DNA에 충실했는지 따져볼 때 나는 종종 초점거리라는 관점에서 생각한다. 이는 카메라 렌즈에서의 초점거리와 같은 말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세상을 바라볼 때 편안하게 느껴지는 자신만의 거리가 있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그것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DNA가 결정하며, 대체로 그런 결정에는 주저함이 없다.
안셀 애덤스는 인간이 손상시키지 않은 미국 서부를 찍은 흑백 풍경사진을 통해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개념을 설립한(이건 대단한 업적으로 미 전역에 환경운동의 불씨를 지폈을 정도다) 사진작가다. 그는 무거운 카메라를 끌고 황야나 산꼭대기로 한참을 들어가 가장 넓은 시야에서 하늘과 땅을 보는 데서 위안을 찾았다. 그지없이 광활하게 펼쳐진 하늘과 땅이야말로 애덤스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었다. 그것이 곧 그의 사인(signature)이었으며, 그의 창조적 기질의 표현이었고, 그의 DNA였다. 우리의 회로는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얽혀 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술가들이 우리네 삶의 평범한 요소들을 채택해 그것을 그들의 상상력을 버무려 우리를 놀래켜 주길 바란다. 당신이 천성적으로 고독한 사람이라거나 개혁가, 아웃사이더, 광대, 낭만주의자, 우울증 환자 따위의 수십 가지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특질이 당신 작품속에 녹아 흐를 것이다. 일단 자신의 창조적 DNA의 가닥들을 이해하면 그들이 어떻게 변형되어 당신 작품에서 일반적인 성향을 형성하게 되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수록 자신의 힘을 발휘해야 할 때가 언제이고, 맞서야 할 때가 언제인지 더 잘 알게 된다. 과감히 자신의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렇게 한다.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은 불편한 것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과 정비례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의 또 다른 장점은 자신이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이는 일찍 발견할수록 마음고생과 실수를 많이 줄일 수 있다. 남보다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한 가지 이상 갖추었기에 자신의 진짜 소명에서 빗나가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것은 축복이라기보다 저주다. 한 가지 재능밖에 없다면 잘못된 선택을 할 리가 없다. 재능이 두 가지라면 잘못될 확률이 50퍼센트나 된다. 내 경우에는 다행스럽게도 '화가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하는 생각을, 떠오른 즉시 마음에서 떨쳐내 버렸다. 그림 그리기가 아무리 재미있어도 화가가 되어야 한다는 확신은 들지 않는다. 나는 움직임을 통해 내 '이야기'를 풀어갈 것이다. 그러니 춤을 춰야 한다.
* 창조성 기르기
관찰은 많은 것을 전해준다 : 함께 있는 남녀 한 쌍을 골라 그들에 대해 무엇이라도 스무 개까지 기록해 본다. 남자가 여자에게 기댄다. 여자가 몸을 빼거나 아니면 남자에게 기댄다. 여자가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아니면 지갑 속을 뒤진다. 남자가 지나가는 여자를 보려고 고개를 돌린다. 이 모든 것을 써라. 이 리스트를 들여다보면 상상력을 발휘해 그 커플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지어낼 수 있다. 하지만 이 연습의 목적은 그것이 아니다. 다시 한번 해보자. 이번에는 또 다른 커플을 고른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생기는 일 가운데 재밌게 생각되는 것, 미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당신을 즐겁게 하는 것만 기록한다. 장담컨대 이런 식으로 스무 개를 찾아내려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당신의 관찰력에 '판단'을 적용하면 그렇게 되는 법이다. 당신은 선별하고, 편집한다. 당신의 특별한 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걸러낸다. 이제 두 리스트를 연구한다. 당신의 흥미를 끈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보다는 두 리스트의 차이점이 무엇인가가 더 중요하다. 당신이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렸는가 하는 것은 당신이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이 연습을 하다 보면 패턴이 보인다. 세상이 당신에게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당신이 드러내야 한다.
아이디어는 공기처럼 도처에 널려 있다창조적 행위의 첫걸음은 어둠 속을 더듬는 것과 같다. 마구잡이면서 혼란스럽고, 열에 들떠 있으면서 두텁고, 분명하게 정의내릴 수 있는 목표도 눈에 보이지 않는 가운데 마냥 분주하기만 하다. 우리에게는 뭔가를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나는 그것을 '긁어 모으기'라고 부른다. 여러분은 즉석복권을 사서 당첨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긁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내가 작품을 시작할 때 하는 일도 바로 그것이다. 나는 무엇이라도 찾기 위해 모든 것을 파헤친다. 긁어모으기는 빌려오기 또는 차용하기로 보일 수 있으나 그것은 창조의 필수적인 과정이다. 이는 가장 기초 단계이며 또한 매우 개인적인 일이기도 하다. 나는 종종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으세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관객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기꺼이 내보이는 사람이라면, 늘 이런 질문을 받기 마련이다. 이에 대한 간단한 대답은 아이디어는 어디에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숨 쉴 공기를 어디서 찾으세요?"라고 묻는 것과 같다. 아이디어는 도처에 널려 있다.
내 생각에 사람들이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으세요?"라는 질문에서 정말로 묻고 싶은 것은 "어떻게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