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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억의 사나이

한원태·김영한 지음 | 다산북스
1장 석수동의 파견 청원경찰

옛 S은행 석수지점에서는 날마다 진풍경이 벌어졌다. 은행을 찾은 고객들이 맨 먼저 다가가는 곳은 은행창구가 아닌 객장 한 구석에 있는 조그만 책상 앞이었는데, 그 책상 위에 잔뜩 쌓여있는 서류들을 뒤적거리는 사람은 은행직원이 아닌 청원경찰이었다. 고객들은 "나 이거 잃어버렸어. 어떡하지?"라고 도움을 청하거나, 그에게 "어이,동생! 나 지금 일이 있어서 그런데, 이것 좀 해줄 수 있어?" 라고 말하고는 통장과 도장 등을 맡긴 뒤 황급히 은행을 빠져나가곤 했다. 또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우면, 그의 책상 앞에는 길게 줄이 늘어서 있고, 다른 은행직원이 일을 처리해주겠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누가 보아도 이해할 수 없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점장이 바뀌었고, 새로 부임한 지점장은 고객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하기 위해 안내를 부탁했는데, 직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이구동성으로 청원경찰 한원태를 추천했다. 지점장은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직원들이 추천하는데 마다할 수도 없어, 그와 함께 주민들에게 인사를 하러 다녔다. 그런데 주민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손을 내밀기는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석연치 않은 표정이었다. 이상한 느낌을 가지고 한 점포에 갔을때 점포주인이 말했다. "그런데, 한 지점장! 자네가 지점장 아니었나?" 한원태가 "아니에요. 저는 청원경찰이죠."라고 답했더니, "그래? 난 남들이 다 한 지점장, 한 지점장 하기에 정말 지점장인 줄로만 알았지 뭐야. 하긴, 그래도 우리 같은 사람들 위해서 발 벗고 뛰어다니면 지점장이나 다름없지. 안 그런가?"라고 점포주인이 말하는 것이었다.



한원태는 쑥스러워 하며 지점장을 바라보았고, 지점장은 그를 한쪽으로 데려가 넌지시 물었다. "이거 난 완전히 찬밥 신세군. 여기 사는 분들은 모두 한원태씨를 지점장으로 알고 있으니." 한원태는 당황해 하며, "지점장님.이분들이 농담으로 말씀하시는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라고 황급히 말했다. 며칠이 지난 후, 지점장은 왜 고객들이 청원경찰을 지점장이라 부르는지 똑똑히 알게 되었다. 은행을 찾는 고객들은 창구로 가기 전에 반드시 청원경찰을 찾았다. 그러면 그는 반가운 얼굴로 고객을 맞이했고,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었다. 만약 그가 자리에 없으면 고개들은 그가 어디 있느냐고 창구의 직원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리고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은행에 와달라고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고객들은 청원경찰을 마치 이 지점을 책임지는 사람처럼 대하고 있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한원태도 처음부터 특별한 사람은 아니었다. 한원태는 과거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간신히 기술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입대했다. 3년 만에 제대한 그는 어느새 훤칠한 키(180cm)의 청년이 되어 있었다. 그는 J모직 총무과에 지원하여 입사하였다. 월등한 신체조건 때문에 그에게 주어진 주 업무는 웨어링 테스트를 전문으로 하는 패션모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제품이 개발되었고 웨어링 테스트가 계획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소매가 꽉 낄 뿐만 아니라 양복 상의의 단추가 채워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다급한 마음에 억지로 양복 단추를 채우려 했다. 그러자 단추가 툭 떨어져 나가며 자신의 발치에 떨어졌다. 풀어헤쳐진 옷 사이로 둥그런 배가 드러나 보였다. 결국 그는 입었던 양복을 벗고 탈의실에서 나왔고, 놀란 총무과장이 물었을 때,"죄송합니다, 과장님. 몸이 불어서 이 양복을 입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웨어링 테스트를 하는 사람이 몸이 불어 양복을 입을 수 없다는 건, 곧 다시는 이 일을 할 수 없다는 것과 같았다.



퇴사를 한 후 막상 무언가를 해보려 해도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가 한숨만 쉬자 곁에서 아내가 말했다. "여보, 그러지 말고 저랑 함께 행상을 다닙시다." 그동안은 한원태가 수입이 많지 않아 아내가 행상을 다녔다. 그는 아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힘없이 대답했다. "내가 행상을 할 수 있을까?" 그러자 아내는 "저도 하는데 당신이라고 못하겠어요?" 라며 그의 자신감을 북돋워주었다.



다음 날부터 그들 부부는 리어카를 끌고 안양 변두리를 휘젓고 다녔다. 그렇게 부부가 일 년 남짓 리어카 행상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의 아내가 무언가를 그의 앞에 꺼내놓았다. "이거 뭐야? 면허증 아냐?" "네. 틈틈이 학원에 다니면서 딴 거예요.그동안 모은 돈으로 트럭을 사서 본격적으로 행상을 하고 싶어요. 트럭행상을 하게 되면 리어카를 끌고 다니는 것보다 쉬울 테니, 저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어요. 그러니 당신은 다른 일을 찾아봐요. 당신까지 행상을 계속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는 아내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때까지 아내는 한번도 그를 타박한 적이 없었다. 힘들고 지칠 때가 많았겠지만 아내는 한번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는 아내의 깊은 마음 씀씀이에 감동했으며 또한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솟아올랐다.



한원태는 아내의 권유로 직장을 알아보던 중 우연히 용역경비를 모집한다는 신문광고를 보게 되었다. 아무래도 용역경비라면 신체조건이 좋아야 했다. 밤낮으로 운동을 해 어느 정도 근육이 붙고 체력에 자신이 생기자 그는 용역경비에 지원했고, 곧바로 채용되어 6주간의 교육을 받게 되었다. 교육을 마친 그는 수원에 있는 중소기업은행에 발령 받았다. 그러나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 안양에서 출퇴근하기에는 먼 거리였다. 출퇴근이 힘들다 보니 자연히 근무의욕도 떨어졌다.



한원태는 보다 열심히 일하기 위해 한국보안공사에 근무지를 바꿔줄 것을 요청했다. 다행히 그 요청은 받아들여져 그는 S은행 안양 석수지점으로 가게 되었다. 근무지를 옮기고 난 후 그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어느 날 지점장이 조용히 그를 불러 모니터링 보고서에서 지적한 사항을 일러주었다. 보고서에서는 한원태의 근무 태도가 너무 딱딱하고 위압적이라고 지적하고 있었다. 그는 속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름대로 청원경찰답게 일하려고 노력했는데, 이런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줄이야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고객들이 은행에 들어올 때 맨 처음 만나는 사람이 청원경찰입니다. 그건 곧 우리 은행의 얼굴이라는 뜻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은행의 얼굴이 그렇게 딱딱한 표정만 짓고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좀 더 부드럽고 편안한 표정으로 고객들이 무언가를 요구하기 전에 자신이 할 일을 찾아서 하면 한원태 씨 스스로도 보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지점장은 나무란다기보다 따뜻한 어조로 타이르듯 말을 이었다. 그는 지점장의 충고가 무척이나 고마웠고 많은 생각을 했다.



저 자신의 어떤 점을 바꿔야 할지 고민한 후, 한원태는 우선 은행에 들어서는 고객들에게 인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안 하던 인사를 하려니 마치 부목을 댄 듯 뒷목이 뻣뻣하기만 했다. 그날부터 한원태는 집에 돌아가면 거울을 보고 인사하는 연습을 했다. 하루에 딱 백 번씩이었다. 물론 웃는 얼굴도 함께 연습을 해야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연습의 효과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객이 은행에 들어서면 저절로 허리가 굽혀지고 고개가 숙여졌다. 그리고 앞에서는 '안녕하세요? 어서 오십시오.' 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그러자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나이 지긋한 중년의 사내가 은행에 들어왔다. 한원태는 평소와 다름없이 허리를 숙이고 인사를 했다. 낯이 익지 않은 고객이었다. 한원태는 다가가 물었다. "처음 오신 것 같군요.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부담 갖지 마시고 저한테 맡겨주세요. 제가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그도 빙그레 웃으며 그에게 타행송금을 부탁했다. 일을 처리하는 동안 한원태는 직접 차를 타서 건네주며 말했다.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조금 있으면 다 처리되니 이 차라도 들고 계십시오." "고맙소." 중년의 신사는 밝은 얼굴로 대답했다. 일이 끝나고 그가 은행 문을 나서려 하자 한원태가 큰 소리로 말했다. "앞으로도 저희 은행을 자주 이용해 주십시오. 고맙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그 중년의 신사가 다시 은행에 나타났다. 한원태는 이번에도 그의 부탁을 받아 사소한 몇 가지 일을 처리해주었다. 훗날 알고 보니 그 사내는 은행 근처에 있는 한 개인병원의 원장이었다. 그 원장은 한원태가 근무하는 은행의 은행장과 사소한 다툼이 있어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동안 10년 넘게 다른 은행과 거래하는 중이었다. 그 후 어느 날 원장이 한원태를 불러 "여기 내 예금통장을 모두 자네한테 맡기겠네. 내가 쭉 지켜봤지만 자네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이제껏 본 적이 없네." 이렇게 해서 그 원장은 한원태와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원장은 그의 첫 고객이었다.



2장 생애 최고의 선물

그는 제복이 주는 선입견 때문에, 청원경찰이 아무리 고객들에게 밝은 표정을 짓는다 해도, 청원경찰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갖기가 힘들다고 생각하고, 한국보안공사와 은행측에 청원경찰의 제복을 바꿔줄 것을 요청했다. 이 제안은 받아들여져 제복은 양복 스타일로 바뀌었다. 바뀐 제복은 기대 이상의 효과를 가져왔고, 다른 은행에서도 좋은 반응이 나타나 급기야는 전국의 모든 청원경찰에게 전파되었다.

그리고 그는 새 상품이 나오면, 고객들에게 설명할 수 있도록, 누구보다 먼저 그 내용을 주의 깊게 살피고, 이전 상품과의 차별점, 장점, 단점 등을 비교ㆍ분석해 공부했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다보니, 고객들은 은행직원이 상품에 대해 설명해주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한원태가 설명해주면 고개를 끄덕였다. 왜냐하면 그는 고객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한원태는 고객에게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서면, 끈질기게 설득을 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데, 만약 설득하기를 포기한다면, 그건 고객이 마땅히 받아야 할 이익을 가로채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의 이러한 진심은 고객들에게 있는 그대로 전해졌다.



그런데 많은 고객들은 한원태를 은행의 정식 직원으로 알고 있었다. 물론 한원태가 청원경찰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고객들도 그 사이에 정식 직원이 되었겠지 라고 여기고 있을 정도였다. 사실, 한원태가 많은 고객을 유치하다 보니 지점장 역시 그를 정식 직원으로 잡아두고 싶었다. 그래서 그 지점을 거쳐 간 지점장들은 본사에 한원태를 정식 직원으로 채용해 줄 것을 건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본사에서 내려온 대답은 불가였다. 그를 정식 직원을 채용할 때 발생하는 가장 큰 걸림돌은 그의 최종학력과 나이 제한이었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면서 고객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움직임이 형성되었다.

즉 고객들은 은행으로 몰려와 지점장을 만난 뒤 한원태를 정식 직원으로 채용해 줄 것을 청원했던 것이다. "지점장님, 우리는 한원태 씨만 믿고 이 은행과 거래하는 겁니다. 그런데 아직도 한원태 씨가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지 않았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지점장은 고객들의 쏟아지는 질타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예,예. 여러분의 견해에 저 역시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하지만 본사에서 허락을 안 해주니 어떡합니까?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도를 찾아 한원태 씨를 직원으로 채용할 수 있도록 노력할 테니,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 주십시오." 지점장은 이렇게 고객들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본사의 태도는 완강하기 그지없었다. 청원경찰을 정식 직원으로 채용하게 되면 다른 직원과의 형평성에서 어긋난다는 것이다. 지점장도 더는 어찌 해 볼 수가 없어 속으로 애만 태울 뿐이었다. 이런 지점장의 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개들은 다시 지점장을 찾아왔고, 그들의 손에는 무려 3백 명의 고객들이 연서한 정식 직원 추천서와 탄원서가 들려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고객이 한원태에게 근처의 다른 금융기관 지점장을 소개했는데, 그 지점장은 이미 본사와는 이야기가 마무리되었고, 한원태 씨가 자기 은행으로 온다고만 하면, 곧바로 정식 직원으로 채용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로서는 상상도 못 할 연봉을 제시했다. 한원태는 생각지도 못한 높은 연봉과 정식 직원 채용이라는 조건에 착잡한 심정이 되었다. 또 한편으론 마치 자신이 돈을 따라 이리저리 쫓아다닐 것 같은 사람으로 비쳐지기나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기분도 들었다. 그래서 그는 "정말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이 은행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보니 사람들과 정이 들어서…" 라는 말로 완곡하게 거절의 뜻을 밝혔다. 그러자 그 지점장은 조금 시간을 두고 생각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그들과 헤어지고 돌아 온 한원태는 며칠 동안 이 문제 때문에 고민을 했고, 안 되겠다 싶어 자기가 근무하고 있는 지점장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지점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보았다. 그는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을 제시했는지도 알려주었다. 지점장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물론 한원태 개인에게는 좋은 기회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은행 입장에서는 유능한 직원을 잃는 셈이었다. 그가 관리하던 많은 예금도 흔들릴 게 뻔했다. 지점장도 개인적으로는 그곳으로 가라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지점장이라는 공적인 입장에서는 차마 그렇게 말할 수가 없었다.



그로서도 한원태를 꼭 붙잡고 싶었다. 그래서 지점장은 새벽 네 시에 은행장의 집 앞으로 갔다. 그리고 집 앞에서 은행장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고, 마침내 은행장이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서자, 지점장은 은행장 앞에 무릎을 꿇고 간곡한 목소리로 "은행장님, 저는 석수지점의 지점장입니다. 석수지점의 청원경찰 한원태 씨는 단순한 청원경찰이 아닙니다. 그는 우리 은행의 얼굴이며 고객에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봉사하는 가족 같은 사람입니다. 이처럼 성실하고 유능한 인재를 다른 곳에 뺏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라고 말하고, 준비 해 온 고객들의 추천서와 탄원서를 은행장에게 내밀었다.

은행장은 지점장의 정성에 감동했을 분만 아니라, 한원태가 자신의 은행에 필요하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본사에서 공문이 날아왔다. 한원태를 정식 직원으로 채용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한원태는 매우 기뻤다. S은행 석수지점에 발을 들어 온지 꼬박 8년 만에 드디어 정식 직원이 된 것이다. 8년 동안 안양 석수 지역의 주민들과 동고동락한 결과였다.



3장 불혹에 흘린 눈물

"여보, 오늘 우리 가족끼리 소풍 가기로 했잖아요." "미안해. 당신도 알지? 혼자 사는 김씨 할아버지가 어제 목욕탕에서 미끄러져 팔이 부러지셨다는군. 한번 가봐야겠어." "당신이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요?"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둘러앉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날이라고는 일요일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일요일조차 쉬는 법이 없었다. 오늘은 일요일, 식탁 위에는 가족들이 소풍 가서 함께 먹을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아내는 거침없이 불만을 털어놓았다. "당신이 당신의 고객에게 쏟는 정성의 반만이라도 가족들에게 보여줬다면, 내가 이렇게 화를 내지도 않아요." 아내는 이렇게 화를 쏟아내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는 굳게 닫힌 방문을 보며 망연자실했다. 그 닫힌 문처럼 아내의 가슴은 꽉 닫혀버렸다. 집을 나와서 고객의 집으로 향하는 내내 한원태는 쓴 침을 삼켜야 했다.



그를 반갑게 맞이한 김씨 할아버지는 왼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늘그막에 혼자 사는 것도 서러운 일인데, 이처럼 돌봐주는 사람 하나 없이 다친다는 건, 또 얼마나 서러운 일일까. 그는 다시 집으로 갔다. 아내는 여전히 화가 난 듯 방에 틀어박혀 있었고, 아이들은 집안의 냉랭한 분위기를 눈치 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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