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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일 성실할 필요는 없다

수중류 지음 | 영진닷컴
1. 성실한 사람들의 현주소



성실한 사람은 쉽게 폄하당한다




누군가 "당신처럼 성실한 사람 처음 봤다."라고 말한다는 것은 바로 당신을 욕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남들이 쉴 때조차 당신은 늘 바쁘지만, 결국 모든 일의 결과는 다른 사람이 챙겨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실한 사람은 늘 손해를 본다."라고 한다. 이렇게 성실하기만 한 사람은 더 이상 필요가 없다. 여기서의 '성실함'이 바로 '폄하된 성실함'이다.

그러나 반대로 만약 누가 당신에게 "불성실하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성실하다'는 말보다 훨씬 더 심하게 당신을 욕하는 것이다. 당신이 쉴 때 남들은 열심히 일했고, 그 일의 결과를 당신이 챙겼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교활하고 잔머리를 잘 굴린다면, 이미 성실함과는 거리가 멀다고 봐야 한다. 여기서 불성실함의 반대 의미로 사용된 '성실함'은 바로 '칭찬받을 수 있는 성실함'을 뜻한다.

세상 누구도 '멍청이'나 '쓸모 없는 인간'이라 불리는 것을 싫어할 것이다. 누구도 불성실한 사람이라고 불리기를 원치 않으며, 너무 성실한 사람이라고 불리는 것도 원치 않는다. 결국 대다수의 사람들은 너무 성실하지도, 너무 불성실하지도 않은 중용의 도를 선택하여 실천해야만 한다.

성실한 사람은 남에게 기만당한다



성실한 사람은 일반적으로 겁이 많아서 새로운 일을 추진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현실에 만족하려 하고 상대방에게 실례가 되는 행동을 하려 하지 않는다. 만약 누군가 자신에게 실례가 되는 행동을 해서 불쾌할지라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속으로 앓을 뿐, 그 흔한 복수심을 품지도 않는다. 더군다나 상대가 일말의 양심이 남아 가볍게 사과의 뜻만 표시해도 절대로 잊지 못하며 어떻게 해서든 보답하려 한다.

이러한 성향 때문에 성실한 사람들은 남에게 따돌림당하거나 기만당하기 쉽다. 대개 사람들은 아무도 하겠다고 나서지 않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이런 성실한 사람들에게 시키는 것이 매우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어려운 일을 주는 경우나, 반대로 아예 일을 주지 않는 경우는 업무상의 지시일 뿐이지 개인 감정이 개입된 것은 아니다. 업무 이외의 사적인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보통 업무란 것은 사람의 성향과 태도, 평가에 따라 부여되기 쉽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뒤섞여 살아가고 있다. 나쁜 놈, 사기꾼, 악한 사람, 그리고 남에게 쉽게 기만당하는 성실한 사람. 그래서 성실한 사람이 남에게 기만당하거나 조롱당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성실한 사람은 쉽게 인정받지 못한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성실한 사람을 골라내기란 쉽지 않다. 특별한 영향력을 끼치지도 못하고, 특별한 일로 리더에 의해 발탁되기도 힘들다.

우선 성실한 사람은 자신의 존재가 두드러지는 것을 꺼린다. 자기의 유능함을 남들이 눈치 채기를 바라지 않고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길 바란다. 그래서 그들이 남들로부터 주목받는 존재가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성실한 사람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계획과 이익을 위해 노력해도 그다지 훌륭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일의 성과는 혼자서 판단하는 것이라기보다 사회 속의 인정과 평가가 반드시 수반되기 때문이다. 뛰어난 실력과 강력한 발언권을 가진다는 것은 모든 외교적, 사교적 행위에서 가장 기본적인 조건에 속하는데도 성실한 사람들은 그것을 간과한다.

또 성실한 사람은 기교나 재주를 부리는 데에 능하지 못하다. 인간 관계에서 기본 규칙을 어길 줄 모르고 고집불통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자신의 위신을 지키기가 매우 어렵다. 또한 자신을 단체나 조직 안에서 환영받는 사람으로 꾸밀 줄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성실한 사람은 어떤 이익집단에도 가입하지 않는다. 상대를 통해 이익을 얻는 경우도 드물며, 상대에게 이익을 주는 경우 또한 거의 전무하여, 이익 관계라는 사슬고리 안에서 사람들로부터 별로 인정받지 못하고 눈에도 띄지 않는 것이다.

성실한 사람은 단계 안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고 이익 분배 과정에서도 특별한 발언권이 없다. 조직이나 또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계획과 지시에 따라 수동적으로 행동한다. 남들은 맛있는 고기를 먹을 때 겨우 고기 국물로 목을 축이거나 심한 경우에는 국물맛도 못 보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악순환이 반복되면 성실한 사람은 이익 구조에서 위로도 올라가지 못할 것이고, 더 이상 내려설 곳도 없어진다.

성실한 사람은 단체나 집단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동안 고집해온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세상 사는 처세술을 익혀 근본적인 변화를 실천해야 한다.

성실한 사람은 오해받기 쉽다



성실한 사람은 늘 탄식에 젖어 있다. 좋은 마음을 전하려 하지만 꼭 좋은 결과를 얻지는 못한다. 선의와 선량한 태도는 종종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고 곡해되어 사심 없는 진실한 마음과 정감 있는 태도가 아예 무시되어 버린다. 그래서 좋은 결과를 얻기도 힘들다. 더 어이없는 일은 친한 친구들에게 죄를 짓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지도자에게 죄를 짓기도 하고, 군중을 긴장시키기도 하며, 하는 일이 베일 속에 가려져 버리기도 한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성실한 사람은 선의를 표현하는 데 그다지 익숙하지 않다는 데 일차적인 이유가 있다.

성실한 사람의 세계관은 직선적이다. 그들은 올바른 동기가 반드시 올바른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세상 모든 것이 '인과(因果)'로 설명할 수 있지만 그 모든 것이 전부 대응 관계에 있지는 않다. 만약 선의와 진실함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는 갖은 노력을 다해 그것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이로써 사람들이 진정 당신의 선의와 진실함을 마음속 깊이 느낄 수 있어야 한다.

2. 성실한 사람들의 사고 방식



성실한 사람은 타인의 성공담에 쉽게 현혹된다




성실한 사람은 성공한 사람의 경험담에 쉽게 현혹된다. 타인의 성공담을 따라하면 자신에게도 쉽게 성공이 따라올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결코 옳지 않다. 경험은 참고사항일 뿐이지 그대로 따라한다고 동일한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다.

책 속에 담긴 성공 스토리가 절대적인 비결은 아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생각과 경험을 배워나가는 것 자체는 꽤 괜찮은 생각이다. 그러나 그들의 비법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여 자신의 삶, 또는 사업에 그대로 적용하려는 것은 절대 금해야 할 사항이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일들은 각각 고유의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성공한 사람의 비법은 오직 그에게 맞는 방법일 뿐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대중적으로 공개된 방법은 벌써 보편적인 규칙이 되어 버렸다. 과연 사업에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만의 성공 비결을 공개하겠는가? 다시 말해 성공에 최고 관건이 된 그 '절대적 비결'은 영원히 누설할 수 없는 비밀인 것이다. 따라서 성공한 사람들의 경험과 방법을 그토록 신봉할 필요도, 놀라워할 필요도 없다. 성공한 사람들의 주관적·객관적인 상황이 당신과는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데, 똑같이 실천한다고 똑같이 성공할 수 있겠는가? 그야말로 남 꽁무니만 쫓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성실한 사람은 체면을 중시한다



성실한 사람은 체면을 중요시 여긴다. 그러다 보니 심할 때는 손해를 보기도 한다. '지나치게 체면을 차리는 사람은 사는 동안 꼭 죄값을 치르게 된다.'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더 나아가 자신의 정당한 이익이 손해를 입거나 위협을 당할 때, 성실한 사람은 오히려 체면이 구겨질까봐 겁이 나 속수무책이며, 나서서 정당하게 싸우지도 못한다. 결국 누군가가 자신의 이익에 손해를 입히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뿐이다. '벙어리가 황련을 먹는다(벙어리가 맛이 쓴 황련이라는 약재를 먹고서 쓰다는 소리도 못하고 인상을 찌푸리는 것 : '울며 겨자 먹기'라는 말처럼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있는 상태)'라는 표현이 여기에 딱 들어맞는다.

성실한 사람들이 체면을 차리는 데에는 공통점이 있다. 너무 체면을 차리다 보니 자신이 손해를 보면서도 방관하는 것처럼, 이론적인 것만 중시하고 실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실한 사람은 천생을 비관한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로 분류된다. 낙관주의자와 비관주의자. 둘 중 어떤 사람이 총명한 사람일까? 비관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단지 좀더 현실적으로 판단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늘 고단하다. 비관적인 사람은 처음부터 부정적으로 예측하기 때문에 예견했던 대로 문제가 발생해도 크게 실망하지 않는다. 성실한 사람은 바로 이렇게 천성적으로 비관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다.

성실한 사람은 보통 사람들에 비해 살면서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실패할 가능성에 대해 늘 생각하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성실한 사람은 자신감이 부족하여 자신이 생각한 것이 문제가 있고,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사회는 정말 공정하지 못하다.', '성실한 사람은 늘 손해를 본다.', '성실한 사람은 하는 일마다 어려움에 부딪힌다.'라는 증거를 대며 낙관주의적인 사람들과 대항하려 한다.

누구도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다.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바로 비관적인 자세가 아니라 낙관적으로 사고하고 예측하고 능동적으로 일하려는 자세다.

성실한 사람은 뒤쳐진 금전적 사고 방식을 갖고 있다



성실한 사람은 마음 깊숙한 곳에 자신의 행동을 제어하겠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 이러한 관념은 금전적인 것과 관련이 있다. 이것은 성실한 사람들의 삶을 통제하는 기준이 된다. 왜냐하면 보통 어떤 진리를 믿게 되면 곧 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만약 성실한 사람이 스스로 돈을 버는 방법을 제한하고 이것을 진리라 믿는다면, 그것은 바로 철칙 같은 기준이 되고 행동상 제약을 받게 된다.

성실한 사람은 돈이 있어야만 돈을 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꿈이 있고, 열정적으로 꿈을 추구한다면, 그 꿈이 실현될 것이다.

성실한 사람은 가난은 청렴결백한 것이요, 재물은 지저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난함은 본질적으로 부유함보다는 분명 깨끗한 것이다. 지식, 육체, 정서, 혹은 물질 환경을 막론하고 말이다. 사실 금전은 당신이 원하기만 하면 능히 사람을 돕고 사물을 좀더 깨끗하게 할 수 있다. 가난함과 청렴결백한 것은 결코 동일한 것이 아니다.

부유한 사람은 권세나 이익만을 쫓는 사람처럼 보인다. 부유한 사람들 중 일부는 오로지 자신의 권세와 이익만을 좇아 살아가는데, 가난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익과 권세를 좇는 마음은 자만하거나 선입견을 가지거나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나쁜 습관이며, 금전적 이익과는 큰 연관이 없다.

성실한 사람은 돈이란 살면서도 가지지 못하고, 죽어서도 가져가지 못하는 물건이라 생각한다. 돈을 가지고 갈 수 없는 곳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곳은 분명 당신에게 돈이 필요없는 곳임에 틀림없다.

성실한 사람은 돈 버는 일이 매우 고통스럽다고 생각한다. 가난함 역시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다. 힘들게라도 일하지 않는 동안 얻는 것은 바로 무료함이다.

성실한 사람은 "돈이 전부는 아니지…."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와 같이 직접적으로 돈 문제를 거론하는 것을 꺼리는 것은 마치 대화 중에 자신의 의견이 전달되지 못해 답답해하는 사람과 같다. "이것도 중요한 건 아니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궁색한 변명을 열거해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쓸모가 있긴 하다.

성실한 사람은 중요한 것은 돈과 별개라고 생각한다. 돈으로 물건을 살 때도 성실한 사람은 돈과 물건의 관계를 복잡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돈 때문에 느끼는 수치심, 번민, 상처 혹은 분노 등에 대해 좀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지기 바란다.

3. 성실한 사람들의 행동 방식



성실한 사람은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성실한 사람은 일반적으로 모든 일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는 원칙의 신봉자이다. 그 바탕에는 이런 의미가 숨어 있다. 평소에도 그들은 친구를 사귀는 데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더욱이 어떤 이해 관계나 특정 목적으로 사람과 교제하고 왕래하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사람이 홀로서기 한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 대해 지나치게 독립적인 태도는 자신의 짐을 내려 놓지 않고 혼자 짊어지겠다는 독단에 빠지기 쉽다. 왜 성실한 사람은 도움 청하는 것을 두려워할까?

첫째, 도움을 구하는 자세는 일종의 저자세이며, 자아를 억제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존심이 상처를 입게 되는 일이고, 성실함 사람들 대다수는 자존심을 지키는 최후의 방어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째, 성실한 사람은 도움을 청하는 것을 부도덕한 일이라 생각한다. 성실한 사람은 도덕적이고 이상적인 시각으로 이 사회를 바라보지만 현실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성실한 사람은 이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셋째, 성실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하고 그 경험이 부족하다. 도움을 청해도 종종 실패한다. 이로 인해 큰 낭패를 보기도 하고, 마음이나 뜻이 다르게 변질되기도 한다. 또 이런 일이 반복되면 더 이상 다른 사람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기가 힘들어진다.

넷째, 성실한 사람은 자아도취와 도덕적 우월감에 빠져 있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 것이 꽤 기특한 행동이라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능력의 한계와 범위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할 때, 필요한 조건이 우리가 가진 능력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며, 다른 사람의 역량을 빌어 조건을 충족시키고 원하는 목적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은 정상적인 사회 현상의 하나다. 이익 교환을 요청하는 행위다.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는 행위는 자기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본질은 상호의존, 상호협조를 통한 공존 사회이기 때문이다.

성실한 사람은 조리 있게 말하지 못한다



성실한 사람은 말을 할 때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무엇을 말해야 할지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깊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직설적으로만 표현한다. 이런 언어 습관은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상관없이 듣는 사람에게 다른 의미로 전달되기도 한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문제가 발생하며, 심지어는 노력해도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성실한 사람들에게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 그들의 심리 내면을 잘 들여다보면 몇 가지 중요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첫 번째, 성실한 사람은 말할 때나 일할 때 출발점은 있으나 되돌아올 반응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 목적을 말할 뿐 결과는 보지 않는다. 두 번째, 성실한 사람은 세상의 복잡하고 다양한 경향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타인을 대하거나 일을 할 때 경우에 따라 방법을 달리 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세 번째, 성실한 사람은 타인을 이해하고 심리를 파악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자신과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많지도 않고,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어느 산에 올라가 어떤 노래를 부를까?'라는 중국 속담이 있다. 이 말의 의미는 대상이 서로 다를 때 대하는 방식을 서로 달리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립하기 쉽거나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일을 하는 데에는 올바른 동기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실적이며 실현 가능한 방법으로 때와 장소에 맞게, 상대에 맞게, 일이 진행되는 추세에 맞게 그 상황에 맞게 적당한 방법을 가지고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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