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구본형의 변화 이야기
구본형 지음 | 휴머니스트
나, 구본형의 변화 이야기
구본형 지음
휴머니스트/2004년 3월/325쪽/12,000원
1장 지난 10년
마흔 살은 오래 끓어 걸쭉해지기 시작한 매운탕이다. 바야흐로 인생의 뼛속 진국이 우러나오는 시기다. 그러나 아름다운 절정을 살짝 지나치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마흔이 되어 잠을 깊이 자지 못하는 날이 늘어났다. 왜 그런지 잘 몰랐다. 잠든 것도 아니고 깨어 있는 것도 아닌 흐릿한 밤이 며칠 계속되면 한 곳에 정신을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이유는 분명치 않다. 분명치 않은 모호함이 나를 불쾌하게 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불면을 즐겼다. 내가 결코 좋아하지 않는 것들이 찾아오면 싸우지 않고 돌려보내는 것이 상책이다. 싸우는 것보다는 데리고 함께 즐기며 사는 것이 좋다. 불면증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내가 모르던 다른 세계를 접하게 해 주기도 하고, 또 내게 다른 고독을 즐기게 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단지 내 스스로 불면을 찾아가지는 않는다. 이놈이 찾아오면 맞아줄 뿐이다. 불면을 즐기는 방법으로 거대한 프로젝트 하나를 생각해보기로 했다. 남은 시간 동안 내가 인생 전체를 놓고 이루어야 하는 이미지에 대해 그려보기로 했다.
40대가 천천히 지나가면 청춘도 지나간다. 서서히 육체의 쇠락이 팽팽한 낚싯줄처럼 감지되고, 은은한 불안이 검은 동굴처럼 다가오면, 여자와 불같은 사랑을 하고 싶어진다. 남자는 ‘여자가 길들인 마지막 가축’이다. 그러나 반밖에 길들여지지 않아 늘 울타리 밖으로 튀어나가고 싶어한다. 사랑은 다른 애인을 찾아냄으로 진보하지 않는다. 그저 새로운 감정으로 위장된 반복 속에서 소모될 뿐이다.
40대가 서서히 지나가면 대머리가 되거나 머리카락이 희어지기 시작한다. 마흔 살에 들어서면서 제일 마음에 걸리는 것이 눈이며, 40대가 그 끝을 향해 다가서면 이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마흔다운 것은 건망증이다. 내가 40대의 모든 부정적인 현상을 나열하는 것은 노화에 대하여 말하려는 것 때문이 아니다. 죽음에 다가가는 어두움에 대하여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단지 내가 어디에 있는 것이며,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육체적 쇠퇴가 주는 또 다른 성숙한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이고 싶었다.
나는 비관적인 상황 속에서 곧잘 낙관적인 정신적 전환에 성공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마 이것이 나의 강점 가운데 하나일지 모른다. 나는 문제를 일상에 던져진 예기치 않은 모험과 도전으로 인식하곤 했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면 새로운 단면과 만날 수 있다. 물론 모든 문제들이 다 풀리는 것은 아니다. 문제를 안고 살아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 안고 살면 되는 거지.
나이와 더불어 인간의 경제적 쓸모도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40대의 10년은 급격한 감가상각이 이루어지는 시기다. 40대는 이제 특별한 사회적 상징을 담은 단어가 되었다. 그것은 가장 정력적인 나이에 버려진 나이다. 나는 이미 마흔을 넘어서고 있었고, 직장 속에서 나는 이미 지나간 세대에 편입되었다. 아무도 내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일이었다. 나의 과거는 거대한 사회적 방망이에 의해 가슴을 강타 당했다. 배반 같기도 하고 비애 같기도 하고 무력감 같기도 하고 허무 같기도 한 통증으로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뒷방 노인이 된 마흔이여.
2장 마흔 살
마흔이 되었을 때, 내게는 나의 세계가 없었다. 내 삶은 줄거리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창조적 주체가 아니었다. 그저 짜여진 일과 속에 놓여 있었을 뿐이었다. 지금 있는 곳의 위치를 알고 싶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우선 내가 있는 이곳을 객관화할 수 있는 지도 같은 것을 보고 싶었다. 마흔 살은 연령의 문제를 무시할 수 없게 된 나이다. 그리하여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마흔 살이 되면 인생의 마법을 떠나보낸다. 좀 더 순수하고 자유롭고 장난기 어렸던 젊은 시절을 떠나보내며, 사회적 관습이나 책임, 자의식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위대한 인생의 그림이 마흔이 되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내적인 관심이 자신에게서 가족에게로, 자식에게로 전이되는 것이다. 마흔이 넘으면 사람들은 외부를 변화시키는 것에 무력해진다. 그리고 중년의 여성은 ‘남성으로 변한 여성’이다. 성숙한 여성은 남자가 잃어버린 남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중년이 되면 남자와 여자가 그 성적 역할을 바꾸는 상징적 이미지다. 마흔 살은 남녀 모두에게 운명이나 숙명의 힘을 깨닫게 해준다.
중년의 개인들은 삶을 통해 인간에 대해 더욱 깊고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사회적 금기와 확신의 딱딱한 껍질을 버리고 각각의 독특한 개성을 자유롭게 발전시킬 기회를 갖게 된다. 젊은이들이 호전적인 도덕성을 들어 공격하면 그들은 비껴간다. 고귀하고 능숙하게 비껴가는 방법 가운데 최고의 것은 유머다. 유머는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자신을 약간 떼어놓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때 자신을 소재로 농담을 할 수 있게 된다.
마흔이 되면 한계에 대한 자각이 젊은 시절의 끝없는 희망을 대신하게 된다. 이상과 현실의 사이, 제3의 지점, 객관적이고 주관적인 자리, 스스로를 놀릴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흔 살 이후의 인생을 경기의 후반전으로 표현하거나 연극의 2막으로 빗대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맡겨진 배역이 없다. 그들은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여기저기서 찾아낸 ‘마법의 책’에 나오는 마흔 살 이야기다. 그러나 나는 이 서술들의 일부가 잘못된 기술이라는 것을 눈치 챘다. 마흔 살은 게임의 후반부나 연극의 2막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의미한다. 오히려 연극을 끝내고 진짜 현실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파괴와 창조, 죽음과 재생이라는 이미지와 직결된다.
내게 마흔은 각성의 시기였다. 40대는 사회적 폐기물이 된 자신을 구해내어 빛나는 삶으로 창조하는 시간이다. 전환과 변곡, 이 두 단어야말로 40대를 묘사하는 가장 적합한 언어다. 마흔 살은 가진 것을 다 걸어서 전환에 성공해야 한다. 이것이 내 지론이다. 다만 내가 거는 것은 돈이 아니다.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나 자신을 건다. 마흔이 익어 가면서 나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계획했다. 나는 비장했다. 한 세상이 어둠에 싸이게 될 때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은 어둠 속에서 새로운 빛으로 빛난다.
3장 직장 생활
나는 훌륭한 직장생활을 했다. 1980년 12월, 나는 한국 IBM에 입사했다. 그리고 호사스럽고 모양 좋은 특별한 20여 년을 보냈다. 밖에서 보는 시선, 나를 IBM에 다니는 직원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인정은 내 직장생활을 무난하게 해주었다. 20년의 세월은 내게 꽤 많은 유산을 남겨주었다. 나는 미국의 기업들이 변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깊은 관심을 가지고 변화의 방법과 모델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연구는 개인적인 것이었고 지루한 일상을 메워주는 탈출구였다. 그러나 변화경영은 직원들에게 인기 없는 관심사였다. 나는 이 인기 없는, 그러나 모두를 괴롭히는 과제에 집착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하는 시각을 갖게 되었다.
1990년대의 10년을 보내는 동안 나는 IBM이 격동의 세월을 보내는 것을 목격했다. 나는 그 전환의 몸부림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경영혁신의 현장에서 차갑고 냉정한 눈으로 생사를 건 변환의 투쟁을 주시하고 있었다. 거대한 배는 방향을 틀어 좌초와 침몰의 위기를 모면했다. 그리고 1990년대가 끝날 무렵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나는 감지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정착하고 위기를 지나게 되자 변화를 주도하던 사람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다. 내가 한국IBM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다한 것 같았다. 나는 세상이 참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마흔이 넘어서면서 한 곳에 너무 오래 있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이미 나는 지루해졌고 때묻은 책상 위에 내 미래가 놓여 있지도 않았다. 나는 조직이 변하는 것보다 더 빨리 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 역시 앞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굉장한 여행’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긴 여행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양식을 챙겨 떠난다 하더라도 곧 바닥이 날 것이다. 결국 나는 여행을 하며 양식을 조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 여행이 나만의 여행이 아니라 가족 모두를 데리고 떠나는 가족여행이라는 것이 가장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그래서 더 좋은 것일 수도 있었다. 그들 역시 이 여행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구경하게 될 것이므로.
매력이 없는 리더란 없다. 리더는 반드시 자신의 매력으로 대중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매력은 가장 자기다운 것에서 발산되는 페로몬이다. 나 역시 스스로를 마케팅하기 위해 강력한 매력이 필요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찾아야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나를 알리는 것이었다. 나의 존재, 나의 콘텐츠, 나의 가능성을 알려야 했다. 어떻게? 이것이 고민의 핵심이었다.
기회는 아주 우연히 찾아왔다. 갑자기 오랫동안 바라왔던 것, 변화경영에 대한 책을 내는 것이 생각났다. 나는 기뻤다. 내게 천둥처럼 할 일이 생긴 것이다. 갑자기 나는 내가 기획하는 세상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내가 기획하고 연출하고 배역을 맡는 이 훌륭한 놀이를 즐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열 달쯤 지나 책이 나왔다. 첫 책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독자에게 가는 선물이라기보다는 나에게 주는 메시지였다. 책은 잘 팔렸다. 신문과 방송, 그리고 잡지들은 세상에 내가 있다는 것을 광고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세상에 변화경영 전문가로 데뷔하게 되었다. 나는 새로운 직업을 하나 만들어낸 셈이다.
첫 책이 나오고 1년 뒤인 1999년 봄에 『낯선 곳에서의 아침』이라는 연속성이 있는 제목의 책을 냈다. 이것 역시 나에게 주는 메시지였다. 그리고 역시 경제경영 분야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나는 세 번째 책 『월드 클래스를 향하여』를 마무리지었다. 그리고 세 번째 책의 출간에 맞추어 2000년 3월, IBM에서의 20년 경력을 접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 나의 20년 과거는 죽었다. 나는 그 과거를 차디찬 물 속에 버리고 그 과거가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죽지 않고 새로워지는 것은 없다. 죽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새로워질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스스로의 작은 나라를 세워야 했다. 내 안에서 ‘군주적 본능’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나의 나라, 나의 세계, 나의 꽃을 피워야 했다. 피워야 할 꽃, 만들어야 할 세계가 생긴 것이다.
4장 얼굴 - 페르소나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은 부담스럽다. 얼굴은 놀랄 만큼 유연한 물체다. 언젠가 아주 지루한 날 오후, 커피숍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낙서라도 하고 싶은 때가 있다. 그때 생각나는 것이 내 얼굴이다. 어디 한번 그려볼까 하면 머릿속에 내 얼굴이 없다. 마음속에도 없다. 어디에도 없으니 그릴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은 내 얼굴에서 무엇을 읽을 수 있을까? 그들도 가끔 나를 만나게 되면 내가 지난번에 만난 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릴까?
사람은 행동으로 말하게 된다. 그래서 내 얼굴도 매일 변한다. 매순간 변한다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내 얼굴을 늘 잊는다. 얼굴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 미세한 것들이 인생의 지난 날들을 담고 있었다. 나는 조금 대머리여서 머리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 완전히 벗겨질 소지는 그렇게 많은 것 같지 않다. 또 내 얼굴은 길어서 비교적 모자가 잘 어울린다. 그런데 모자의 약점은 썼다가 벗으면 머리가 짓눌린다는 점이다. 아내는 모자를 싫어한다. 자기는 얼굴이 둥근데다가 커서 모자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다.
이마는 그 사람이 얼마나 학식이 많은지를 알려주는 아주 중요한 기준으로 알려졌다. 내 이마는 둥글고 넓적하고 시원하다. 그러나 중학교 다닐 때 사진을 보면 이마가 아주 좁았다. 언제부턴가 이마만 성장을 했는지 넓어지고 환해졌다. 나의 눈썹은 굵고 짙어서 사람들이 부러워한다. 수염은 매일 깎아야 하는데 귀찮다. 수염을 기를까도 생각해보았지만 관리하기가 힘들어 그만 두었다.
나의 코는 잘 생겼다. 크고 우뚝하고 기름하다. 콧방울이 너무 강마르지 않아 꼬장꼬장한 샌님처럼 보이지 않고 후덕한 사람으로 보이는지도 모른다. 코에 관한 한 나는 코털이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가끔 손질만 해주면 된다. 입술에는 별로 자신이 없다. 나의 입술은 두껍다. 아내도 입술이 두껍다. 눈은 바깥쪽 꼬리가 조금 처져 있어서 남자다운 사나운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지금까지 건강하게 별 탈 없이 잘 살았다. 다만 눈빛이 좀 약하다는 것 빼고는 말이다. 얼굴은 갸름하여 요새 사람들이 선호하는 달걀형이고, 광대뼈도 작다.
내 얼굴은 사회가 인정하는 정상의 한계 속에 머물면서 겨우 몇 가지의 모습으로 고착되어 있었다. 고착의 패악은 정신을 경직시킨다는 점이다. 어느 날 나는 내게 ‘날마다 먹이를 주는 손’을 거부했다. 그리고 몇 년 후 아파트를 팔고, 대중의 선호와 관계없이 내가 좋아하는 동네로 이사 왔다. 나는 나답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다운 것에 천착했고 매달렸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달라야 한다. 나는 슬그머니 나를 묶고 있는 줄 하나를 끊어냈다. 다른 줄도 끊었다. 나는 인형에서 자유인이 되었다. 그리고 자유인이 가지는 자유와 책임 모두를 가지게 되었다.
5장 가족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정 하나를 만드는 것, 이것이 몇 년 전부터 내 삶의 의미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하나가 되었다. 나는 좋은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너무 가까우면 지켜야 할 것이 지켜지지 않아 상처를 받고, 적절한 간격을 두면 그 간격이 허전하다. 아비 역시 스승과 친구의 역할을 모두 해야 하는 것 같았다. 부모로서 가르침이 있어야 하고, 가르침 너머 함께 즐기고 어울리고 공유하는 친구로서의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큰아이는 세상일에 관심이 많고 세속적이다. 이 아이의 가장 큰 장점은 부드럽다는 것이다. 큰아이가 학교에 갈 때 가능하면 내가 차로 데려다준다. 나는 차 안에서 큰애 친구들의 이야기, 전날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듣는다. 큰애는 가끔 차 안에서 잠이 들기도 한다. 학기 중에는 잠이 늘 모자라기 때문에 내 차로 이동하면서 30분 정도 잘 수 있어서 좋다. 모두 바쁘고 서로의 세계 속에 빠져 있지만, 공유할 공간과 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우리를 이어주고 서로 생각하게 해주었다.
그런가 하면 작은아이는 좀 엉뚱한 면이 있다. 나를 빼닮았다. 생긴 것도 그렇고 성격도 그렇다. 시험 운이 없는 것까지 닮았다. 지식에 대한 허영이 있는 것도 그렇다. 이 아이의 가장 큰 특성은 숯불처럼 늘 불씨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아이의 불길은 늘 살아난다. 최근에 나는 이 아이와 1주일에 서너 번 함께 영어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부모가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하면 잘 되지 않는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린 둘 다 배움이 느린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고 서로 애를 쓰다 보니 조금씩 요령이 늘어가고 서로를 견디게 되었다. 나는 아이가 생각할 때까지 기다리게 되고, 아이는 나를 학습의 도우미로 여기게 되면서 학습을 계속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시간이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식구들은 나를 ‘미숙이’라고 부른다. 특히 내가 운전할 때는 여지없이 그렇게 부른다. 나는 ‘미숙한’ 운전사다. 난 밖을 즐기며 가는 사람이며, 한 곳을 향해 앞만 보고 가는 것을 멋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이 조급한 세상에서 가장 먼 그림을 그려보려고 하는 자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채는 속도가 느리고 상황판단이 재빠르지 못하다. 사건을 ‘미숙하게’ 처리하는 경우도 많다. 나는 ‘미숙이’라는 별명을 좋아한다. 웬만한 사람들은 들어도 뜻을 모를 것이고, 알게 되더라도 ‘그래서 변화경영을 하게 되었나 보다.’ 하고 생각해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