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삶의 균형 더블 라이프
데이비드 히넌 지음 | 영진닷컴
맺음글 - 성공적인 또 다른 삶을 위한 20가지 핵심 포인트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11대 관장인 로렌스 M. 스몰은 관심 분야가 많은 사람이다. 그는 열광적인 토속 예술품 수집가이자 플라멩코 풍의 기타리스트이며, 전에는 금융기관의 사장이었다. 그는 4개 국어에 능통하며, 윈드서핑, 스쿠버 다이빙, 장거리 자전거 타기 등을 즐긴다.
미국을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 부유한 영국 과학자 제임스 스미스슨은 172년 전에 그의 전 재산을 미국에 남기고 사망했다.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은 현재 수도 워싱턴과 7개 주, 그리고 파나마에 있는 16개의 박물관과 갤러리, 국립 동물원, 그리고 11개의 연구센터로 구성되어 있다. 매년 약 4000만 명이 1억 4200만 개 이상의 동식물 표본과 예술작품들이 소장된 전시관들을 방문한다.
뉴욕에서 태어난 뒤 근교인 뉴로셀에서 자란 스몰은 브라운대 신입생일 때 우연히 기타를 접하게 되었다. 그 후 40년 동안 기타는 그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이후 스몰은 브라운대에서 스페인 문학을 공부하는 한편 주말에는 기타 레슨을 받기 위해 뉴욕으로 통학을 했다. 그의 대학 지도교수인 앨런 S. 트루블러드 교수는 그가 스미스 칼리지 2학년생들의 스페인 연수 프로그램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스몰은 "스페인에서 생활한 지 반 년쯤 지나서 나는 세계의 톱10에 드는 플라멩고 기타 연주자들의 리스트를 만들어봤다."고 말한다. "리스트를 분석한 결과, 모두 열두 살 전에 무대에 데뷔한 신동들이었으며, 스페인 집시였고, 키가 170센티미터 이하였고, 그리고 굵고 검게 빛나는 머리카락과 청동색 광대뼈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10명 중 단지 2명만 기타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으며 2명만이 읽고 쓸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것을 하겠다고 미국 아이비리그에서 온 키가 192센티미터나 되는 학생이었다. 잘 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스페인으로 갔으나 실패했다." 스몰은 실패했지만 기타에 대한 애착은 여전했다.
그는 직업 음악가가 되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스페인어 실력이 유창하고, 해외 생활을 좋아하므로 다른 일을 하기로 했고 국제 금융 분야에 뛰어들었다. 브라운대 4학년 때 지금은 시티그룹이 된 시티뱅크/시티코프가 그에게 6,136달러 연봉에 국제부문 일자리를 제공했다. 트루블러드 교수는 무척 화를 냈다. 기업이 가장 우수한 스페인 문학도이자 잠재적인 동료 중 한 사람을 빼앗아갔기 때문이다. 그러다 트루블러드는 스몰에게 월러스 스티븐슨의 시집을 선물했다. 트루블러드는 시집에 '월러스 스티븐스는 보험사 임원과 퓰리처상 수상 시인이라는 두 가지 삶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고 적었다. 스몰의 커리어 변경을 인정한다는 뜻이 담긴 이 선물은 스몰에게 음악과 언어에 대한 애정을 비즈니스와 균형 있게 추구하라는 격려의 뜻도 담고 있었다.
그는 남미에서 일하면서 부족 예술품을 모으고 복원하는 취미도 갖게 되었다. 특히 그는 깃털 장식품들을 전문적으로 모았다. 이러한 다양한 관심사에도 불구하고 스몰은 시티코프 내에서 훌륭한 경영인이라는 명성을 빠르게 쌓아갔다. 스몰은 엄격했지만 냉정하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엄격하게 통제하고, 그 다음에는 느슨하게 통제한다는 그의 자세는 1970, 80년대에 시티코프가 급성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85년, 그는 부회장 겸 집행위원회 위원장으로 승진했다. 6년 후, 회사의 회장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졌을 때 그는 자신의 다양한 관심사를 추구하기 위해 퇴직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 캘리포니아 부동산 투자가인 엘리 브로드가 스몰을 미국 최대의 주택담보대출 제공 전문회사인 패니 매에 추천했다. 1991년 스몰이 세계 최대의 비은행계 금융서비스 회사에 합류했다.
9년 동안 스몰은 빠르고 단호하게 행동했으며, 패니 매를 보다 효율적이고 훌륭한 금융회사로 변모시키는 데 일조했다. 1998년, 스몰은 봉급과 성과급으로 425만 달러를 벌었다. 패니 매에 있는 동안, 그는 기타 연주를 계속해서 연습했으며, 바쁘지 않을 때는 지역 병원과 기관에서 연주를 했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아내와 함께 그들의 늘어가는 예술품들을 전시할 공간을 찾았다. 그리고 집 근처 70평짜리 아파트를 개조해 개인 갤러리를 만들었다.
1998년, 57세가 된 스몰은 3년 뒤에 퇴직을 하고 "음악, 미술, 그리고 언어에 일생을 바칠 계획"을 세웠다. 이때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이 부부는 지인들에게 할리데이 카드를 보냈다. 그들은 이 카드에 자신들이 소장한 아마존 깃털 작품을 실었다. 1999년 2월,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관장의 후임을 찾던 이사회 멤버 웨슬리 S. 윌리엄스 주니어가 스몰의 할리데이 카드를 발견했다. 윌리엄스는 패니 매의 이사회 멤버인 아내에게 물었다. "래리는 어때? 그는 훌륭한 금융가일 뿐만 아니라 예술과 과학을 좋아하고, 모든 인종의 예술품들을 수집하며,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등 여러 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 또한 그는 워싱턴을 잘 알며, 여러 곳의 인상적인 이사회(브라운대, 모어하우스 칼리지, 시티코프, 파라마운트 커뮤니케이션 등등) 멤버로 활동했어."
하지만 스몰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당신이 과거에 관장으로 모셨던 사람들을 생각해 보세요. 지난 153년 동안 10명이 거쳐갔는데, 10명 모두 학계 출신이며 9명이 과학자였어요." 그러나 위원회는 그를 원했다. 일부 사람들은 그가 스미스소니언 관장이 되기 위해 연봉 90퍼센트나 깎이는 것 - 400만 달러 이상(패니 매)에서 33만 달러로 - 을 감수할 수 있을지 의문을 표했다. 일부에서는 그가 박물관 운영 기금의 70퍼센트를 제공하는 의회뿐만 아니라 기업 및 개인 기부자들로부터 지원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게다가 내부 다툼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걱정했다.
그러나 스몰은 이 모든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는 박물관을 더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 달에 300만 명이 방문하는 인터넷 사이트(www.si.edu)의 예산을 늘리고, 많은 과학적 자원들을 몇몇 선택된 분야에 집중했다. 그리고 경영에 있어 보다 엄격한 기준을 도입했다. "스미스소니언은 오늘날 다른 거대하고 복잡한 기업을 지배하는 것과 같은 경영 원칙을 준수할 정도로 성장했다."
기금 모금으로 스몰의 입지는 확실해졌다. 부임한 지 9개월 만에 그는 개인 기부금과 관련한 이전의 모든 기록을 깨뜨렸다. 1999년 개인 기부금은 1억 4700만 달러에 이르렀으며 다음 해에 약 2억 달러로 증가했다. 기금 모금을 위해 거물 기업인들과 연방 정부를 접촉하는 것 외에도 스몰은 전국에 있는 다른 박물관들과 생산적인 파트너십을 발전시켰다.
사람들은 스몰이 여러 가지 일을 해내기 위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묻는다. 답은 간단하다. 어떤 것에 충분히 열정을 가진다면 시간은 확장되는 것이다. 스몰은 잠을 줄이면서 시간을 확보한다. 보통 그는 새벽 2시쯤 잠을 자며 5시간에서 6시간 후에 일어난다. 스미스소니언 관장, 은행가, 음악가, 수집가 중 어느 것도 스몰이 꿈꿔오던 것은 아니다. 스몰은 "그 카드가 없었더라면 아무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우연한 삶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뜻밖의 행운이다."
전문가들의 시대에 우리는 종종 한 가지 이상을 잘하는 사람들을 잘못된 것처럼 비판한다. 그러나 래리 스몰의 다양한 성취는 인간 잠재력의 신축성을 보여준다. 항상 "무언가를 진행 중"이면서도 그는 영리와 비영리 세계에서 세계 최고 지위에까지 도달했다. 그는 더블 라이프를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그것을 하라!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라."윈스턴 처칠 - 붓을 든 수상내 인생의 행복을 위한 더블 라이프샐리 라이드 - 우주에서 웹 공간까지 탐험하는 여전사20세기 프랑스의 해양 탐험가로 유명한 자크 쿠스토는 젊은 시절 해군항해사가 되고 싶었으나 치명적인 교통사고로 새로운 길을 선택해야만 했다. 그는 부러진 팔을 단련시키기 위해 26세에 수영을 시작했고, 그 때문에 바다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수 년이 지난 뒤 쿠스토는 선원, 탐험가, 발명가, 베스트셀러 작가, 아카데미상 수상 영화제작자, 환경운동가, 사업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갖게 되었다. 지금도 쿠스토의 다양한 삶은 오직 하나의 직업에만 충실할 것을 가르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이해되지 않는다.
이제 직업은 수많은 경험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몇몇 현명한 이들은 일과 삶이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수많은 잡지 기사들과 자기계발서들은 일과 삶의 절충점을 찾아가고 있다. 이제 직업과 열정의 대상 - 본업과 취미 - 사이의 구분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일뿐만 아니라 다양한 관심사도 함께 만족시키겠다는 목표는 언제든 가능하다. 더블 라이프에 관한 탐구는 단 하나의 직업에 충실해야 한다는 오래된 믿음에 대한 도전이었다. 왜 사람들은 과거의 전통적인 성공가도를 버리고 자신들의 제1의 직업에 충실하지 않게 되었을까? 그들 대부분은 '이렇게 하면 내 삶이 좀더 충만했을 텐데' 하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다.
더블 라이프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인 천재들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책은 어떤 사람도 더블 라이프를 만들 수 있다는 관점에서 시작한다. 누구나 새로운 고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상상력과 본능적 욕구, 그리고 그 과정을 돕기 위한 몇 가지 유용한 도구들만 있으면 된다.
신경제(New Economy)는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최근 르네상스의 원인이자 결과이다. 긍정적 측면에서 보자면 신경제는 많은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 기술 혁신을 가져왔다. 그러나 정보시대는 부정적 측면도 갖고 있다. 즉, 사람들이 모두 일에 얽매여 살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가치 전환에 관해서는 경영전문가인 피터 드러커가 가장 명료하게 설명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더블 라이프에서 개성과 감흥을 찾도록 권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직업에서 정열을 소진해 기진맥진하고 지루해하기 전에 미리 새로운 관심사를 개발하라고 제안했다.
과거의 규칙은 더 이상 맞지 않다.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는 것은 수명과 아무런 상관 관계도 없다. 생명의 연장은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을 설계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미리미리 관심사를 결정하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기본 원칙을 세우라는 것을 의미한다. 인생에서 항상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이들은 무엇이 인생을 즐겁게 만드는지를 알고 있다. 그들은 숨겨둔 꿈을 펼침으로써 즐거움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많은 사람들은 직장에서부터 더블 라이프를 시작한다. 이것은 종업원뿐만 아니라 고용주에게도 이익이 될 수 있다. 진화론적 패러다임이 작용하는 경제시대에서 재능은 매우 중요한 것이며, 유능한 지도자들은 인간의 창의성을 질식시키는 게 아니라 발산시키는 기업 문화를 형성하려고 노력한다. 마이크로 소프트, 제너럴 일렉트릭, 그리고 시스코 시스템스 같은 영리한 조직들은 사람들이 또 다른 취미를 갖게 되면 기업의 따분함과 지루함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더블 라이프에 대해 고민한다. 조직은 짧은 기간 동안이라면 동조하겠지만 그들이 다른 분야에 더 흥미를 보이면 궁극적으로 불편해한다. 모든 조직에는 그 조직을 지배하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르네상스적 인간들은 이를 뛰어넘고 통제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더블 라이프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새로운 희망이 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는 불편한 길이 될 수도 있다. 영혼이 건강한 사람들은 종종 색다른 방식으로 삶에 대한 음미 방법을 발견한다. 그들은 또 다른 삶에 대한 도전을 행복에 관한 리트머스 테스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자크 쿠스토처럼 부유하고 유명해진다면 그것을 받아들이면 된다. 그러나 그들이 기대했던 것만큼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좀더 즐겁게 사는 방법을 발견한 것이다.· 자신의 가슴에 귀기울여라"행복은 하는 일, 희망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에 달려있다."는 중국 속담이 있다. 제2의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이 우선 관심 있어야 한다. 자신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명성? 엄청난 돈? 물질적 소유물? 자기 표현? 타인을 돕는 것? 그런 숨어 있는 꿈이 얼마나 강렬한가?
· 자신만의 잣대로 성공을 정의하라
자신이 정말 하고 싶어하는 것을 지금 하고 있는지 확인하라. 현명한 사람들은 그들이 좋아하고 잘하는 취미를 찾아낸다. 그들은 자신의 가슴으로 믿고 따르는 이유를 발견하고,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키는 프로젝트에 사랑과 에너지를 집중한다. 그들은 단순히 보상이 아니라 즐겁게 사는 방법을 찾아내고, 성공을 자신의 관점으로 정의한다.
· 매일 실천하라
날마다 자신만의 달력에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들 - 일, 가족, 기타 관심사 - 을 표시하라. 더블 라이프에 대한 진전을 주기적으로 재평가하라. 자신이 도달하지 못한 목표에 대해 이렇게 자문해보라. "내가 그것의 중요성을 달리 생각하게 됐기 때문에 이루지 못했는가, 아니면 도달하기 너무 높은 목표였는가?"
· 실패로부터 배워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들의 의지를 약화시키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다. 그것은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한한다. 위기는 직접 부딪쳤을 때 기회를 제공한다. 좌절을 패배와 동일시하지 말라. 사실 또 하나의 삶을 얻는 과정에서 기대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다는 점을 예상하라. 한번에 성취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 배움을 멈추지 말라
평생 학습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키워라. 그러면 기회가 올 것이다. 물론 늘 새로운 정보와 경험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을 유지해야 한다.
· 자문 그룹을 만들어라
인맥은 매우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더블 라이프를 사는 데 자문해줄 수 있는 사람들 - 교사, 동료, 그리고 친구들 - 로 구성된 핵심 그룹을 개발하라. 이들의 의견을 구하는 것이 꿈에 도달하기 위한 전력들이 현실적인지 아닌지를 알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 창의력을 재충전하라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라. 육체적·물리적 환경을 바꾸어라. 즉, 밖으로 나가서 걷거나 조깅을 하라. 앉아 있지 말고 서 있어라. 음악을 틀어라. 물리적·지적으로 사고를 급속 충전하라.
· 스스로를 재충전하라
직업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평가하지 말라. 그것은 새로운 자극을 줄 수 있는 기회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선택권을 없애버리거나 뒤로 미루지 말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자신이 잘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탐구하라.
· 보스의 마음을 파악하라
어떤 조직들은 초기에는 더블 라이프를 지지하지만 직원들이 더블 라이프를 좀더 적극적으로 추구하기 시작하면 불편해한다. 적어도 상사의 암묵적 지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기업들은 진심으로 더블 라이프를 지지할 것이다. 그러나 허락받았을 때조차도 우선 조직에 봉사하라.
· 양립 가능한 목표를 추구하라
시간과 정력을 너무 많이 소비하는 목표는 피하라. 직장에서는 승진을 위해 업무 외 시간에도 일을 하고, 밤에는 소설을 쓰려고 무리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동시에 추구 가능한 목표인지를 가장 먼저 확인하라.윈스턴 처칠은 작가, 예술가, 연설가, 군인, 정치가 등등 이 모든 것 이상이었다. 처칠은 일 외의 다른 분야에서도 성공을 거둔 이상적인 개성의 소유자였다. 그는 폭넓은 분야에서 자신의 재능을 계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