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장자 이력서
스티븐 스콧 지음 | 21세기북스
백만장자 이력서
스티븐 스콧 지음/김화수 옮김
21세기북스/2002년 7월/270쪽/10,000원
스티븐이 누구야?
고등학교 졸업 앨범을 보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을 선정해 놓은 부록이 있다. 이를테면 가장 성공할 것 같은 학생,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학생 등 말이다. 그때 나는 가장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으로 척 제임스를 뽑았다. 그는 3학년 학생회장이었는데 성적도 뛰어났고, 운동도 잘했으며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도 매우 높았다. 당시 학교에서는 각 부문마다 몇몇 후보의 이름이 적힌 투표용지를 나눠주었다. 물론 나는 후보 명단에 오르지 못했다. 아마 당시 학생들이 내 이름을 들었다면 의아한 표정으로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스티븐이 누구야?”
나는 그다지 잘 생기지도 않았고, 운동을 잘하지도 못했다. 성적도 중상위권 정도였다. 같은 학교를 다니던 또 한 명의 스티븐도 나와 비슷했다. 외모가 뛰어나지도 못했고, 운동도 그저 그랬기 때문에 ‘뛰어난’ 무리에 들지 못했다. 그는 그저 평범한 학생이었고, 클라리넷을 잘 불어 학교 밴드부에 있긴 했지만, 어쨌든 인기는 없었다.
그로부터 20년 후, 하루는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 고등학교 시절 스티븐 스필버그를 만난 적이 있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나와 같은 아카디아 고교의 학생일 리가 없다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졸업 앨범을 잘 뒤져보라고 하셨다. 나는 졸업 앨범을 찾아봤고 거기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수많은 축구 시합에서 내 옆에 앉아 있던 ‘스티븐’이 바로 그였던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스티븐 스필버그가 우리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어떻게 나나 다른 아이들이 여태껏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학교에서 그 당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세 가지는 바로 운동, 성적, 인기였다. 그래서 한 학생이 위의 영역 중 어떤 한 가지라도 부족하면 뛰어난 학생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학교라는 집단에서 스티븐과 나는 중요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래서 동료나 선생님들은 아무도 우리가 삶에서 주목할 만한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인구의 90%를 옭아매는 편견에서 비롯된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창 시절에 스타의 자리를 차지한 적이 없으면 어른이 되어서도 스스로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지 않는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의심 없이 우리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우리의 목표를 너무 낮게 잡아 우리가 이룩하고자 하는 성공에 대해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조련사는 코끼리가 태어나면 땅에 단단하게 기둥을 박고 아기 코끼리의 목에 줄을 달아 그 기둥에 묶어놓는다. 그러면 아기 코끼리는 빠져나갈 수 없다. 아기 코끼리는 밧줄에 묶여 있을 때는 아무 데도 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는 다 자라서 힘이 세져도 쉽게 빼낼 수 있는 작은 기둥에서 벗어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목에 밧줄이 걸려 있으면 아무 데도 갈 수 없다고 믿도록 훈련되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 또한 이와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야에서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을 그냥 평범한 인간으로 생각하며, 대단한 일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단지 작은 기둥에 매어 있는 밧줄에 자신의 목이 걸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다. 성공의 첫 번째 법칙은 과거의 일에 얽매이지 말고, 내가 성공할 수 없는 이유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당신은 해고야!
1976년에 내 이력서를 본 인사 담당자는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을 것이다.
내 이력서가 바로 누구라도 성공할 수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나는 1970년 마케팅 학사 학위를 받고 애리조나 주립 대학을 졸업했다. 그러나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한 건 아니다. 졸업 후, 나는 피닉스 사에서 경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마케팅 일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생명보험 회사에서 근무하게 되었지만, 생명보험 세일즈맨이 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4개월 만에 그 직장을 그만두었다.
생명보험 회사를 그만둔 나는 세 명의 친구와 사업을 시작했다. 그 중 둘은 자본을 대기로 했고, 나와 또 한 친구는 직접 사업을 맡기로 했다. 회사의 이름을 클래스 노트라고 지었다. 우리는 대학에서 ‘A'를 받는 학생들로부터 100여 개 과목의 필기노트를 구입해 이를 편집한 후 그것을 각 과정마다 하나의 책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새 학기 첫날부터 수업이 끝나고 나오는 학생들에게 전단지를 뿌렸다. 우리의 노트는 모든 학생들이 바라는 완벽한 필기노트 그 자체였다.
전단지를 뿌리고 일주일 만에 수강생의 85%가 우리의 노트를 구입했다. 그래서 우리는 곧 부자가 될 거라 믿었다. 우리는 동부에 사는 투자자에게 투자를 권했다. 그러자 그는 애리조나 대학처럼 메릴랜드 대학에서도 성공을 거둔다면 25만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메릴랜드 대학의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필기를 권유하지 않는 일을 자랑스러워했다. 그곳에서는 필기노트를 구입할 방법이 없었다. 우리의 꿈은 무산되고 말았던 것이다.
잔뜩 기가 죽은 나는 아는 사람이 운영하는 통신판매 회사인 내셔널 리버티(NLC)사에 일자리를 얻었다. 나는 그 회사의 보조제품 관리자로 임명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마케팅의 기본을 비롯해 많은 일을 배울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광고나 대중매체에서 어떤 요소들이 좋은 반응을 얻고, 어떤 요소들이 반응을 얻지 못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때 얻은 교훈과 지식은 내 성공의 첫걸음이 되어 주었다. 잡지나 신문 광고를 성공적으로 만들 수 있는 방식도 그곳에서 배웠다. 적절한 유명 인사와의 계약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배웠다. 적절한 사람과 계약을 하면 매출이 10배로 늘어나지만, 잘못된 선택은 모든 일을 망칠 수도 있었다.
비록 내 월급은 1,000달러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배운 지식은 몇 천만 달러의 가치가 있었다. 몇 개월 후, 나는 광고 대행사와 함께 신문이나 텔레비전 광고를 만드는 일을 직접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상사들은 내가 창조적인 일을 하기에는 지위가 너무 낮았기에 일을 맡기려 하지 않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내 창의력을 계발하기 위해 회사의 다른 부서에서 무임금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한 부서의 책임자가 내 재능을 인정하고는 자기 부서에서 일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 그곳에서 내가 할 일은 그의 판매 부서를 위해 다양한 제품의 광고를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나는 이 일에 곧 동의했고, 다음주에 그의 부서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러나 나의 상사가 내가 다른 부서로 옮겨갈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는 잔뜩 화가 나서 나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서는 내게 평생 잊지 못할 한 마디를 내뱉었다. “당신은 절대 마케팅 분야에서 성공할 수 없어. 당신은 해고야!”
결국 나는 그 회사를 그만두고 애리조나에서 가장 큰 저축 대부 은행에 취직했다. 그로부터 3년 동안 나는 저축 대부 은행 마케팅 조사 부서에서 6개월을 근무하고는 곧바로 마케팅 컨설팅 회사를 차려 9개월 동안 운영했다. 그리고 통신판매 회사에서 4개월, 큰 은행에서 4개월, 큰 통신판매 회사에서 4개월을 근무했다. 아홉 곳의 직장 중 두 곳에서는 해고당하고, 두 번은 사업에 실패했다. 이것이 대학 졸업 후 6년간 나의 모습이었다. 한마디로 성공의 가망이 없는 사람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스트라이크 3개면 아웃이라는 규칙은 야구에나 적용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빨리 포기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회사에 사표를 냈다거나, 집에서 놀고 있거나 또는 실직 경험이 많은 점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일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마음가짐을 잃게 되는 것이다. 더 이상 꿈도 꾸지 않고 배우거나 성장하려 하지 않을 때 희망은 사라진다.
앞에서 말한 6년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사업에서 두 번이나 실패했기 때문에 엄청난 빚을 지게 되었고, 매달 받는 월급으로는 가까스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빚을 줄이거나 저축할만한 돈도 없었다. 상황이 매우 안 좋았지만 그래도 나는 한 번도 기죽지 않았다. 그리고 스스로가 실패자이거나 평범한 사람임을 단 한번도 인정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일했던 아홉 번째 직장에서 마이크는 나에게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나는 3개월에 걸쳐 광고를 만들었고, 그 광고는 회사의 연간 매출액을 3,000만 달러에서 6,000만 달러로 올려놓았다. 그러나 그 광고를 만든 지 한 달 후에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었다. 내가 사표를 건네자, 사장은 월급을 2배로 올려주고 마케팅 부서의 부사장으로 승진시켜주겠다고 제의했다. 상당히 매력적인 액수와 지위였으나 나는 이 제의를 거절했다.
만일 이 때 내가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면 내 인생에 다시는 없었을 기회와 수백만 달러의 수입을 놓쳤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놀라운 점은 내가 만든 광고가 회사의 매출액을 3,000만 달러나 증가시켰는데도, 그가 내게 제의한 액수는 고작 3만 6,000달러였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의 대기업들은 대부분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회사에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준 사람에게는 칭찬만으로는 부족하다.
당시에는 사장의 말을 듣는 편이 생활하는 데에는 더 도움이 되었겠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설사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고 해도 나는 꿈을 향해 나아간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옳은 길을 선택했던 것 같다. 20년 전 내가 떠난 그 회사는 현재 파산했으며, 나의 ‘꿈’은 현실이 되어 현재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이익을 내는 기업이 되었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꿈을 꾸는 것을 막는 회사에 몸담고 있다고 해도 절대 자신의 꿈을 잃지는 말라.
화려한 이력서가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내가 처음 밥 마쉬를 만난 것은 1971년 내셔널 리버티 사에 근무할 때였다. 당시 밥은 부사장이었고, 천재적인 마케터이자 기업가였다. 그는 일찍부터 나의 재능을 알아차렸고 자신과 같이 사업을 할 의향이 없는지를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내가 시카고에서 머물던 날 밤, 밥 마쉬는 나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우리가 마케팅할 수 있는 제품만 찾아내면, 같이 사업을 시작할 수 있을 거야. 그러면 우리는 정말로 부자가 되는 거지.”
밥이 이 말을 했을 당시, 나는 스물일곱 살이었다. 미국에 있는 어느 회사도 내 이력서를 본 후에는 나를 고용하려 하지 않았던 시절의 일이었다. 하지만 밥은 이력서보다는 창의력과 열정을 중시했으며 사람을 자극시켜 성공으로 이끄는 일에 능했다. 밥과 같이 일을 시작할 당시 밥은 경력 있고 유능한 경영자를 찾는 대신, 그의 두 아들과 두 사위를 고용했다. 네 명 모두 MBA는커녕 학사 학위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우리 회사에서 새로 일을 시작하는 파트너들에게는 항상 이 당시의 이야기를 해준다. 그리고 우리 팀이 되기 위해 이력서나 경력이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보다는 다른 파트너와 회사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동기 부여의 정도가 훨씬 더 중요하다. 이력서와 경력이 아무 쓸모도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상대적으로 동기와 책임감이 그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모든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관리에도 능하고, 마케팅에도 능한 사람을 찾아보라. 아니면 마케팅도 잘하면서 관리까지 잘하는 사람을 찾아보라.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마케터라면 모든 신경이 마케팅에만 집중되어 다른 세부 사항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리고 유능한 관리자는 모든 일들이 적절하게,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살펴보느라 다른 일을 할 시간이 없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업을 확장시킬 때 적절한 파트너를 영입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다면 회사를 100% 본인이 소유하고, 필요한 전문가나 경영자를 고용하면 되잖아?’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업 초기에 유능한 사람들을 고용할 만한 돈이 없다. 그리고 회사를 직접 소유하는 일만큼 사람들의 잠재력을 100% 향상시킬 수 있는 일은 없다. 이는 우리 회사에서 증명되었다. 미국에는 우리 회사보다 큰 기업들이 많지만, 내가 아는 한 우리 회사보다 많은 이익을 내는 회사는 없다.
나는 이 부분에서 ‘적절한 파트너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잘못된 파트너를 만나는 것이 적절한 파트너를 구하는 일보다 훨씬 쉽다. 잘못된 파트너는 적절한 파트너가 사업을 성장시키는 속도만큼 빠르게 사업을 무너뜨릴 수 있다. 내 경우에는 이 일이 쉽게 이루어졌다. 먼저 적절한 파트너가 나를 찾았기 때문이다. 운 좋게도 밥이 나에게 파트너십을 제의했던 것이다.
그 후 나는 적절한 파트너를 찾는 방법을 발견했다. 첫 단계는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평가하는 일이다. 나와 똑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은 필요 없다. 나의 약점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즉 내가 못하는 일에 재능이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나는 재능과 강점, 약점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서 사업을 하다 실패한 경우를 많이 봤다. 따라서 훌륭한 파트너를 찾으려면 먼
저 자신을 진단해봐야 한다.
일단 파트너에게서 필요한 강점을 발견한 후에는 어떤 요소들을 중요시해야 할까? 그 사람이 나와 같은 비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를 봐야 한다. 즉, 단순히 비전을 공유하는 게 아니라, 그것에 압도되어 있어야 하며, 나만큼 그것을 이루고 싶어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우리의 예비 파트너들에게 필요한 또 다른 조건은 성격과 인격이다. 이것은 재능을 발견하는 일보다 어렵지만,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그 사람의 도덕성과 품성이 좋지 않으면, 그는 언젠가 우리나 우리의 회사, 고객을 배신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내 절친한 친구는 아주 유능한 사람과 동업을 했고, 그 결과 몇 년 만에 커다란 증권회사를 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파트너는 친구 몰래 몇몇 손님과 비윤리적이고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결국 그 일이 증권거래위원회에 발각되었고, 두 사람은 모든 것을 잃었다.
예비 파트너의 그 밖의 조건은 성공을 이루기 위한 우리의 비전에 헌신적으로 동참하는 자세이다. 한 사람은 헌신적인데, 다른 사람이 그렇지 못하면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나는 80시간을 일하는데 내 파트너가 40시간만 일한다고 생각해 보라. 사업을 새롭게 시작할 때는 보통 많은 피와 땀, 눈물과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파트너의 이력서가 아닌, 선천적인 열정과 재능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지난 수년간 MBA를 획득한 사람들을 자주 만났는데, 그들은 대체로 뛰어난 이론가였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일하느니 차라리 독일산 셰퍼드와 일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최소한 셰퍼드는 직관력이라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내가 만났던 MBA 취득자들은 모두 사물을 설명하는 일에는 뛰어났지만 수백만 달러를 가지고 사업을 시작해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밥을 제외하고는 우리 회사의 초기 동업자들 중에 중요한 경력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밥은 우리가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우리의 길에 어떠한 장애물이 놓여 있어도 우리에게 그것을 극복할 만한 능력이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재능이나 능력보다는 타고난 열정을 중시했다.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소비자
대학 교육이 많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경우에는 대학 시절 들었던 40개 이상의 과목 중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과목은 네댓 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하루는 외부 기업에서 강사를 초빙하였는데, 그가 45분 동안 무슨 내용을 강의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가 했던 단 한마디는 내 평생의 마케팅 철학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