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No)로 시작하라
짐 캠프 지음 | 청림출판
'노'라고 말하기, '노'를 유도하기, '노'를 듣기. 이 모든 것들은 체계적인 훈련만 받으면 협상가에게 아주 강력한 도구가 되어줄 수 있다. '노'는 사적인 거절이 아니며, 논의될 수 있고 뒤집힐 수도 있는 솔직한 결정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노'라고 말한다 해서 결코 비즈니스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관계를 구축한다. '윈윈'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노'를 말하고, '노'의 여지를 주고 '노'를 들어라. 그것이 바로 진정한 '윈윈'이다.한 거대 다국적 기업이 어떤 프로젝트를 위해 세 곳의 서로 다른 중소기업과 협상을 시작 했다. 이때 그 거대 기업은 한 회사를 그 다음 회사와 경쟁을 붙이고, 그 회사는 또 그 다음 회사와 경쟁을 붙여서 양보를 강요하고 가격을 계속 내렸다. 결국 처음 선택된 중소 기업 A 사는 거대 기업의 이런 횡포에 지쳐서 협상에서 빠지기로 결정했다. A 사는 더 이 상 가격을 내려줄 수도 없고, 그럴 의사도 없다고 통보했다. '노'를 했으니, 거대 기업도 그에 대한 답변으로 '노'를 해올 것이 분명했다.
이제 거대 기업의 입장에서 살펴보자. 이들은 그 프로젝트를 위한 최적의 회사를 아직 확 보하지 못했다. 그런데 A 회사가 '노'를 하는 바람에 다른 회사도 A 사와 같은 태도를 취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에 몰렸다. 한 회사가 더 이상 절충을 하느니 차라리 거래를 하지 않는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면서 다국적 기업이 협상가들을 난처한 입장으로 몰고 간 것이다. 결국 그 거대기업은 '노'라는 의사를 표현한 A 사에게 유리한 정보를 제 공하기 시작했고, 결국 A 사가 그 프로젝트를 따냈다. 이것이 바로 '노'의 힘이다.결과를 통제하려 애쓰지 말라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윈윈'이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읽고, 또 들어왔는가? 이제 '윈윈'은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진부한 표현이 되어 버렸고, 어떤 종류를 막론하고 상호작용에 관한 유일한 모범 답안으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 '윈윈'이라는 것에 도대체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윈윈'이 우리를 그렇게 현혹되게 만드는 묘약은 무엇일까? 바로 타협이라는 것이다. 많은 협상가들은 조심성 없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초기에 타협안을 제시하도록 만들어 '윈윈'게임을 즐긴다. 하지만 말솜씨 좋은 협상가들은 결코 타협 따위는 하지 않는다. 단지 상대방으로 하여금 타협하도록 유도할 뿐이다. 호치민이 베트남을 놓고 벌인 그 숙명적인 협상에서 과연 '윈윈'게임을 벌였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 닉슨 대통령과 키신저, 그리고 그 측근들은 분명 '윈윈' 전략을 썼다.
나는 협상 상대를 종종 '적'이라고 생각한다. 협상가는 '대립 관계에 있는 상대방'과 협상을 해야 한다. 내가 협상 상대를 굳이 적이라는 용어로 부르는 것은 협상 테이블의 맞은편에 앉은 사람들이 친구가 되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거나 심지어는 아예 친구인 양 행세하려 드는 것을 경계하라는 말이다. 이웃과 바비큐 파티를 하면서 숯불을 몇 시에 붙일 것인가를 정하는 협상에는 '윈윈'만큼 적절한 것도 없다. 그러나 비즈니스 세상에 있는 노련한 협상가들을 상대할 때에는 절대 '윈윈'이란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윈윈'은 불필요한 절충을 강요하고, 결정이 아닌 감정에 기반을 두게 하며, 머리가 아닌 가슴에 작용하기 때문에 '윈 루즈'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윈윈'은 명확한 원칙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다분히 감상적인 측면에 의지한다. '윈윈'식 마인드에 젖어 있는 사람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모두 눈 대중으로만 총을 쏘는 것으로 가정하고 자신도 그저 눈 대중으로만 총을 쏜다. 하지만 프로들은 망원렌즈를 이용해 상대를 노리고 있다. 이는 절대 공정한 싸움이 되지 못한다.어째서 호랑이의 눈은 얼굴의 앞쪽에 붙어서 전방을 향하고 있을까? 호랑이는 먹이를 찾아 언제나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공격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인간의 눈 또한 얼굴 앞쪽에 붙어서 전방을 향하고 있을까? 우리 인간도 호랑이와 마찬가지로 공격자이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들의 세상에도 남을 누르려 하고 약한 상대를 못살게 구는 등 경쟁적 본능이 존재한다. 인간의 이런 본능은 평생 동안 이어진다.
다른 모든 공격자들처럼 우리 인간도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공포, 불안감, 나약함, 그리고 곤궁함을 이용한다. 물론 인간은 이타심이라는 아름다운 기질을 지닌 존재이기는 하지만 빈틈없는 비즈니스와 협상의 세계에서만큼은 그런 이타심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협상에 숨겨진 포악함을 설명하기에는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세계'라는 말도 모자랄 수도 있다.
협상가라면 이런 사실을 반드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어떤 거래에서도 저자세로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 협상에서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하게 되면 통제력을 상실하고, 결국 좋지 못한 결정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공격자 앞에서 통제력을 잃게 되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지 아는가? 말 그대로 치명적이다. 협상가는 협상 테이블에서 자신의 욕구를 내비치거나 저자세로 매달려서는 결코 안 된다.
무서운 협상가란 바로 상대방의 간절한 욕구를 잘 포착해내는, 심지어는 그런 갈망을 만들어낼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거대 기업의 협상가들은 대량 구매니 합작 벤처니, 글로벌 제휴니 하면서 공급업체의 기대치를 한껏 올려놓는다. 마치 그 거래가 일생에 단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인양 하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거래에 '매달리도록' 만든다. 그리고는 상대방의 욕구가 조성되었다 싶으면 이번에는 태도를 바꾸어 변동 사항이니 예외 조항이니 하는 것들을 들이밀고 한껏 부풀려놓은 기대에 실망을 던져준다.
거절당할까봐 두려워하는 것도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협상가는 거절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누구에게 거절당할 수 있고, 누구에게 거절당할 수 없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모든 협상에서 상대방은 결코 나를 거절할 수 없다. 상대방으로부터 원하는 것이 없는데, 어떻게 거절을 당할 수 있겠는가? 불가능한 일이다.
능력 있는 협상가가 되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 안의 절실한 욕구를 내보여서는 안 된다. 욕구를 내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결코 그것을 느껴서는 안 된다. 절대로 그 거래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그냥 '원하는' 것만 드러낼 뿐이다. 매달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자신감과 믿음이 내비친다. 그래서 통제할 수 있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다시 한번 반복한다. "결코 저자세로 매달리지 말라."오래 전에 텔레비전에서 하던 <형사 콜롬보 시리즈>를 기억하는가? LA 경찰서 소속의 살인사건 담당 형사인 콜롬보는 낡은 트렌치 코트를 입고 털털거리는 푸조 자동차를 몰고 다닌다. 그리고 콜롬보는 조사 과정에서 결정적인 질문을 잊어버리기 일쑤다. 그래서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가 초인종을 누르고 사과한 다음, 잊어버리고 물어보지 못한 결정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상대방보다 덜 유능하고 부족하게 보이려 애를 쓴다. 그런 콜롬보 앞에서 상대방은 쉽게 자기 속내를 털어놓곤 했다. 자기 자신이 콜롬보보다 우월한 존재라고 느꼈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해졌던 것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우월감을 느끼도록 해주었다. '우월하다'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편안함과 안도감을 느낀다는 말이다.
문화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또는 지적으로 나를 열등한 존재로 느껴지게 하는 상대와 함께 있으면 우리는 방어적으로 또는 공격적으로 되고 괜히 부아가 치미는 등 복잡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나보다 열등해 보이는 사람을 대할 때는 우리는 우월감을 느낀다. 어떤 특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우리 마음은 편안해진다. 현명한 협상가는 어떤 협상이든 오직 한 사람만 우월감을 느끼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 한 사람은 바로 상대방이다.
상대방을 조금만 더 우월한 위치에 놓아주면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장벽을 허물 수 있다. 콜롬보 형사가 그랬던 것처럼, 상대방에게 그들이 통제하고 있다고 느끼게 하기만 하면 실제로는 이쪽에서 주도권을 쥐게 된다. 콜롬보의 어눌한 행동은 모두 계산된 것이었다. 콜롬보의 상대는 그것을 모르고 있지만, 시청자인 우리는 알고 있다.
협상에서 필요한 열등함이란 자신의 약점을 조금만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정말 아주 조금만 신경 쓰면 된다. 메모를 해야 할 때 펜이나 종이를 빌리는 정도면 된다. 적절한 질문을 찾지 못한 것처럼 잠깐 머뭇거려주면 된다. 다른 사람에게 '나'를 도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어라. 상대 협상가가 냉담하다거나 회의적인 것 같이 보이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상대방보다 조금 열등하게 보이려고 시도해보아라. 그러면 협상의 분위기가 즉각적으로 고무적인 방향으로 돌아서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나는 세미나나 워크숍에서 "협상에서 가장 좋은 '예스'는 다름 아닌 '노'이다."라고 말해서 사람들을 자극하는 것을 즐긴다. 하지만 이 말 자체는 단순한 자극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진실이기 때문이다. 협상은 '글쎄요'도 아니고 '예스'는 더더구나 아닌 확실하고 단정적인 '노'로 시작해야 한다. 어떤 협상이든 마찬가지다. 그 외의 것은 쓸데없는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는다.
'노'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신중하게 생각하도록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결정'이다. 확실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책임감은 협상의 핵심 사안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상대방은 '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노'로 인해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야기할 실질적인 대상을 가지게 된다.
'글쎄요'로는 상황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글쎄요'라고 말한다면, 상대방으로부터 도움이 될 만한 반응이나 정보를 전혀 이끌어낼 수 없다. '글쎄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상대방으로부터 '글쎄요'라는 말을 듣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글쎄요'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스를 뜻하는 것인가? 아니면 거의 예스 쪽으로 기울었다는 말인가? '글쎄요'는 결코 결정이 될 수 없으며 협상가의 이성적 마인드와는 하등의 관계도 없는 말이다.
상대방의 감정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 약한 협상가들은 '글쎄요'라는 표현도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협상 시작부터 '예스'부터 하고 본다. 그러나 '예스'는 '글쎄요'보다 하나도 나을 게 없다. 그 또한 결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협상 시작부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예스'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애당초 협상은 왜 시작했는가?
더욱 중요한 것은, 상대로부터 '예스'라는 말을 듣는 순간 우리 몸은 흥분 상태로 돌입한다는 사실이다. 아드레날린이 과다 분비되고, 머릿속에는 곧 만지게 될 거액의 커미션이 떠다니며, 벤츠를 살 것인가 BMW를 살 것인가 행복한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자, 어떤가? '예스'를 듣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저자세로 매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그 순간, 우리는 통제력을 잃는다.
'글쎄요'는 아무런 득이 안 되며, '예스'는 위험하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노', 즉 진정한 결정뿐이다. '노'는 협상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을 이성적 상태로 이끈다. '노'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은 이성적 상태로 전환된다. '노'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요구되면서 논의해야 할 진정한 주제를 갖게 되는 것이다.'윈윈'은 최악의 전략이다협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약점콜롬보 효과'노'로 시작하라"2년이 넘도록 제 고객으로 만들려고 노력해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매달 첫 번째 월요일, 아침 8시 반 정도가 되면 저는 어김없이 그 사람을 찾아갔죠. 그 사람은 아주 좋은 성격 의 소유자입니다. 하지만 그는 제가 하는 말에 영 집중을 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어쨌 든 저는 그 사람의 집이 저의 집과 가까워서 계속해서 찾아갔습니다.
어느 날 오후, 회사 일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시간이 좀 남더군요. 그래서 그 사람 집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이전하고는 전혀 다른 사람이지 뭡니까? 제가 하는 말을 아주 진지하게 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계약을 하자는 겁니다. 필요 한 서류를 작성하고 나서 저는 그 사람에게 왜 오늘을 계약을 하기로 결심했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사실, 전 당뇨병을 앓고 있습니다. 아침 무렵이면 유난히 혈당 수치가 떨어지지요. 10시 정도가 돼야 겨우 상태가 호전됩니다. 어느 날 문득 생각 해보니까 오전에는 계약 같은 걸 일체 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렇게 꾸준히 찾아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라구요.""거기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보았으면 하는데요." "그러시군요. 하지만 지금은 곤란합니 다. 제가 귀사의 현 상황과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관심사에 대해 알고 있다면 그 점을 표현할 수 있을 텐데요. 프레젠테이션을 원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십시오. 귀 사는 7년 동안 A 사와 거래를 해왔습니다. 아마 최적의 가격 조건으로 거래를 하고 계시 겠지요. 우리로서는 귀사가 왜 지금 우리 회사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 다."
"하지만 전화를 먼저 해온 쪽은 그쪽이 아닙니까?" "예, 그랬었지요. 저는 다만 A 사와의 관계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했을 뿐입니다. 귀사가 우리와의 만남에 응하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회사에 대해 분명 관심이 있다는 말씀이 지요. 우리는 그 점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솔직히 나는 프레젠테이션이란 아주 기본적인 협상 기술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협상 교육 기관들은 프레젠테이션이 대단한 가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프레젠테이션이 그 프레젠테이션을 실시한 쪽에게 대단히 나쁜, 때로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던 협상 사례를 많이 목격했다. 그 대신 나는 협상가가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프레젠테이션은 상대방이 보지 못하는 프레젠테이션이라고 말하고 싶다.
혹시 세일즈맨이나 협상가를 마주하고 앉았을 때 그 상대가 딱 5분만 입을 다물어준다면 편하게 결정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은 없었는가? 또 상점으로 들어가자마자 점원이 찰거머리처럼 찰싹 들러붙어서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녀서 짜증이 났던 적은 없었는가? 아마 수도 없이 많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그 자리에서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하기로 마음먹었던 경우는 몇 변이나 되는가? 장담하건대, 단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협상은 상대방의 세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의문사형 질문을 해야 하며, 그에 대한 상대방의 대답을 통해 비전을 창출해 내야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프레젠테이션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그야말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한다. 그와 동시에 프레젠테이션에서 보여준 것을 상대방이 받아들여주기를 원한다.
상대방의 고통을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는 협상가에게 프레젠테이션이란 단지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일 뿐이다. 어떤 협상가가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싶다고 말을 한다면 그 사람은 아직 상대방의 고통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만약 상대방의 고통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