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WORK
하워드 가드너 외 지음 | 생각의나무
GOOD WORK
하워드 가드너 외 지음/문용린 옮김
생각의 나무/2003년 6월/380쪽/12,000원
저자 서문
1994년부터 1995년 사이에 우리 세 사람은 캘리포니아의 팔로 탈토에 있는 행동과학고급연구센터(CASBS)에서 1년을 보냈다. 어느 날 오후 우리의 대화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모아졌다. “다음 10년 동안 당신의 전문 분야에서 어떤 문제를 다루고 싶은가?” 그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가 나오자 우리들 모두 상위 수준의 직무수행과 사회적 책임감, 즉 유능성과 윤리성의 관계를 심사숙고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질문에 부딪혔다. ‘대부분의 창의적인 과학자나 예술가가 이기적이고 야심만만한 것에 반해, 공공의 선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 사실인가?’ 등 유능성과 윤리성을 놓고 끊임없이 일어나는 이러한 의문들로 인해 ‘인간의 창의성’에 대해 언론계, 유전학계부터 법률계와 영화계에 이르는 최고 전문가들을 면담하고 관찰하려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그러한 전문직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배경, 가치, 목표, 전문가들이 일에 접근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비판적인 사람들의 성향과 그 사람들과의 갈등을 극복하는 전략을 알아내기로 했다.
연구가 진행되면서 우리는 ‘인간의 창의성’이라는 개념에서 ‘훌륭한 전문 직업인 되기, GOOD WORK', 즉 ’더 넓은 사회에 도움을 주는 전문적인 일을 하기‘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우리는 오늘날 훌륭한 전문 직업인이 되는 것을 촉진하거나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우리가 심도 있게 조사하기로 결정한 첫 두 분야는 유전학계와 미디어 분야다. 또한 두 직종에 대한 하나의 ‘병행 연구’ 즉, 인간 신체의 구성을 조절하려는 입장과 사람의 마음을 통제하려는 잠재력을 가진 직업에 관한 것을 책의 내용으로 하자고 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지속적인 변화의 시대에 ‘훌륭한 전문 직업인 되기’, 즉 질적으로 훌륭한 일을 하면서 사회적으로도 책임을 지는 업무 수행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두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훌륭한 전문 직업인 되기 연구 프로젝트(Project on Good Work)'가 생긴 것이다.
여전히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는 기술의 도래, 또는 시장의 압도적인 힘과 그에 따라 경쟁하는 다양한 이데올로기와 ‘-주의’의 쇠퇴, 한 직종의 모든 구성원의 결정사항과 행동을 통치하도록 계획된 윤리적 틀이나 합의된 원리의 점진적인 쇠퇴, 한 직종 안의 젊은 구성원의 사기를 북돋워주는 강력한 ‘영웅적’ 역할 모델의 소실과 그 영역의 미래가 불확실해질 것이라는 불길한 느낌 등의 요인 때문에 ‘훌륭한 전문 직업인 되기’가 오늘날 모든 분야에서 직면하고 있는 도전과제였다. 그리하여 이 책에는 다양한 직업 영역의 예가 인용될 수 있었다. 그러나 답을 얻기 위해서는 선정된 직업 분야에 대한 심층 분석이 필요하며, 직업들이 직면하는 도전에 대해 암시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유전학계와 언론계에 초점을 맞추기로 결정하였다.
우리의 기본적인 접근 방법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언론계와 유전학계 내의 세부 특정 분야에서 선도적인 실무 종사자들과 반구조적인 심층 면담을 실시했다. 100명 이상의 사람들과 이뤄진 면담에서는 실무 종사자들의 배경부터 현재 갖고 있는 야심과 관심사 그리고 자신들의 분야에 관한 전망까지 폭넓은 범위의 주제를 다루었다. 우리가 1990년대 중반에 면담을 시작했을 때만해도 이 두 직업 분야의 행보를 예측할 수도 없었고, 실무 종사자들이 직면하게 될 새로운 쟁점에 대해서도 예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이 두 영역은 점차 공공의 담화를 압도하게 되었다. 우리는 대학 안에서의 평범한 대화로 시작된 이 연구를 통해 우리 시대의 중요한 쟁점 속으로 밀려들어왔음을 깨달았다.
1장 '훌륭한 전문 직업인'이 되기 위한 준비 과정
어려운 시대에 훌륭한 전문 직업인이 되는 것
훌륭한 직업인이 되려는 것은 높이 살 만한 목표고 한편으로는 유리한 조건이라도 달성하기 힘든 목표다. 현대에서 급격한 기술혁신과 공격적인 시장의 힘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신의 진료가 건강관리기구(HMO)의 지불승인을 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처방을 내리지 못하는 외과의사가 있는가 하면, 고용주의 떳떳하지 못한 행위를 변호하는 기업의 변호사, 별로 달갑지 않은 아이들은 껴안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학생들이 자신의 어깨조차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선생님들 등 이러한 윤리적이고 직업적인 딜레마가 새로운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정당화하면서 그러한 딜레마를 다루는 방법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위대한 종교, 성경과 다른 신성한 문헌, 직업 전통에 포함되어 오랫동안 수립된 행동모델, 알베르트 슈바이처와 요나스 소크와 같은 외과의사, 에드워드 머로우나 스톤 같은 모범적인 언론인들 중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그러나 종교적이며 직업적인 전통을 젊은 사람들에게 항상 적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또 항상 신뢰할 만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종교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많은 악행이 자행되었다. 심지어 그러한 우상들이 오점이 없고 관련된 문헌들이 철저히 연구되었다 하더라도 격변하는 환경 속에서 이 모델들에게 어떤 통찰을 이끌어내야 할지를 아는 것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머로우는 인터넷과 경쟁할 필요가 없는 시대에 살았으며, 아브라함 링컨은 연합군에게 지령을 내리면서 미디어로부터 그의 모든 사생활을 조사 당하고 끔찍하게 TV에 방영되거나 영화화되는 일을 겪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단순히 ‘훌륭한 전문 직업인 되기’가 아닌 ‘어려운 시대에 훌륭한 전문 직업인 되기’를 이야기하는 이유다.
사려 깊은 전문가는 갈등의 순간에 다음의 세 가지 기본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즉, 종사하는 직업의 특징을 정의하는 사명, 직업 내에서 이미 인정된 최고의 직무 수행 기준, 그리고 그들 개인의 본래 모습과 가치인 정체성이 바로 그것이다.
- 사명 : 모든 직업 종사자들은 각자 자기 분야의 전통적인 주요 사명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사명은 그 영역의 종사자들을 그 영역으로 끌어들인 원천이며, 어려운 시기에는 가장 중요한 지지대가 된다. 이러한 사명감은 이런 질문으로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 “사회는 왜 내가 하는 일에 지위와 특권을 부여하는가?”
- 기준 : 각각의 직업은 수행의 기준을 규정하는데 이중 어떤 것은 영구적이며, 또한 어떤 것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변호사는 개인적으로도 윤리적이어야 하며, 자신의 의뢰인을 위해 최선의 변론을 제공해야 하고, 법정에서 정보를 은닉하거나 위증해서는 안 되며,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 한편 기술자는 최고의 재료를 사용하고, 그들의 특별한 기술 및 지식을 제자에게 전수하며, 안일한 방법으로 일하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전문 직업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실무 종사자 중 누가 직업적 요구를 가장 잘 실현하며 왜 그런가?” 이에 대한 대답을 잘 정리해 보면 직업에서 구현되는 기준을 알 수 있다.
- 정체성 : 여기서 정체성이란 내가 누구인가, 한 사람의 직업 종사자, 시민, 그리고 인간으로서 나의 존재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한 개인이 깊이 느끼는 신념이다. 각 개인의 정체성은 가족사, 종교 및 이데올로기적 신념, 지역 사회의 소속, 그리고 개인의 특유한 경험들을 포함하는 여러 힘들의 혼합물로서 조형된다. 물론 통합된 정체성은 이상적인 것으로 거의 모든 사람이 때때로 정체성의 분열, 혼미, 혼란을 겪는다. 따라서 값진 삶이란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가 성취하기를 원하는 것 등에 대해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얻는 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 고려할 사항을 기준으로 직업 종사자들의 상황을 그려보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과 가치들에 관심을 가진다. 특히 개인의 심리학적 배경은 현대 직업인의 삶에 능력과 자원들이 가지는 강력한 역할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를 구체화한다. 사회학자로서 우리는 특히 경제, 정치, 사회, 문화의 강력한 힘을 잘 알고 있으며, 거기에 대항하면서 사람들이 종종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훌륭한 직업인에 대한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초점은 관련 종사자의 ‘머릿속’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문제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어떤 계획이나 행동을 추구하며 왜 그러한지라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심리학적 관점은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하여 개인적 수준의 본질을 이해하도록 해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자신의 상황을 평가하고, 자신의 가치와 목표에 근거하여 다양한 대안들의 경중을 따지며 주어진 환경에 적절하고 궁극적으로 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다.
2장 유전학 분야에 대한 연구
유전학에 드리운 먹구름
유전학은 세기가 바뀌면서 전문가로서 눈에 띄는 좋은 면모를 가지게 되었다. 지도자와 중간 수준의 실무 종사자들은 일차적인 사명과 가장 기본적인 원칙, 원리적인 개인이 목표와 책임의 프로파일에 대해서 동의했다. 지도자와 중간 수준의 실무 종사자들은 일차적인 사명과 가장 기본적인 원칙, 원리적인 개인의 목표와 책임의 프로파일에 대해서 동의했다. 그들은 편안하게 자신들을 돌아보고 그들이 고수하는 정체성을 재확인했다. 환경이 별로 좋지 않은 영역의 전문가들에게 질투를 자아내는 것을 넘어서서 유전학은 아름다운 균형을 이룬 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즉, 실무 종사자들의 영감과 영역의 가치들, 그 분야의 실천과 주주들과 투자들의 희망이 조화롭게 하나로 섞이게 되었다. 지나간 과거의 황금기를 추억하며 좀더 풍부한 미래에 희망을 걸고자 하는 유혹이 있긴 하지만, 그 어떤 영역도 완전하지 않고, 그 어떤 실무 종사자도 이해, 염려, 불균형, 악몽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미 생물학에서는 1960년대와 1970년대 이후에 큰 변화가 있었다. 제임스 왓슨과 프란시스 크릭이 이중나선을 발견한 이후 분자생물학은 대단한 인기를 끌게 되었다. 일단 과학자들이 유전적 물질을 재배열할 수 있고, 새로운 생명 모형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의학적 연구와 현실에 대한 밀접한 관계에 관심이 모아졌다. 최근의 한 추정에 따르면 미국에 약 십만 명의 고용인과 매년 130억 달러의 수익을 가진 생명공학 사업체가 약 13,000개나 있다고 한다. 많은 과학자들이 캠퍼스와 기업체를 오가며 일하고, 매년 대학교와 비영리 연구 센터와 영리 기업체의 연합이 빈번해지고 있다. 여러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 삶의 한 단면이 된 것이다. 학교와 기업체가 보이는 차이점은 명백하다. 기업체들은 이익을 창출해야 한다. 그러나 대학과 연구기관들은 이익 추구가 허용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면세를 부여하고 연구 비용을 승인한 일반 대중은 그 일이 모범적으로 수행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쓰여지기를 기대한다.
과학적 연구가 과학자들 자신의 흥미에만 관련되어 있고, 능력 있는 연구자들을 위한 충분한 자리가 있다면 임무의 수행과 그 영역에서 원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직업이 고도로 경쟁적이고 높은 수입이 있으면, 종사자들(특히 젊은 사람들)은 전례 없는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특히 강한 윤리적인 원칙이나 임무에 대한 확고한 정의가 없는 사람들은 특히 시장에 감염되어 버리기 쉽다. 현재 과학은 통제되지 않는 상업적 업무가 이루어지는 영역으로 전락해 버리는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현실에서 연구를 통해 발견한 이론을 실제에 적용하기 위한 과도기는 매우 지루하고 확신이 서지 않으며, 비용이 많이 드는 과정이다. 만약 사회가 의학 지식들을 적용한 이러한 시도를 장려하려 한다면 기꺼이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고 책임을 떠맡은 자들을 확실히 보호해야 한다. 그리고 유전학 분야에서 소수의 과학자들이 개인의 유전학적 운명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신의 행세’를 하는 것, 생물학을 이용해 전쟁을 준비하는 비밀 연구에 대해서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게 된 상황에 대해서도 대처해야 한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기분이 상한 몇몇 유전학자들을 제외하면 응답자들 대부분은 그들이 자신들의 연구를 침해하던 세력들이 잘 조정된 황금기에 살고 있다고 확실히 믿고 있었다. 생물 세계의 법칙을 발견하는 것, 그 과학 분야가 가지고 있는 가치, 최근의 제도와 포상 시스템, 일반 대중이 바라는 것, 지원금을 줄 주주들이 과학 분야에 요구하는 것들이 연구자의 연구 목표와 놀랄 만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들은 점점 방대해지는 사회에서는 사실상 제한을 강요해야만 한다는 논쟁을 펼친다. 하지만 이런 식의 생각은 지나치게 무지한 것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많은 과학자들은 더 높은 수준의 유기체 복제는 불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유전학자들 대부분은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이해 부족을 안타까워하며 또한 많은 유전학자들이 미디어의 한정된 보도 범위를 비판한다. 그럼에도 그들 중 대부분, 특히 젊은 학자들은 자기들은 너무 바빠서 문외한인 대중들에게 지식을 알려줄 시간이 없다고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그러나 만약 탐욕스러운 기업가나 정치 지도자가 생물학을 수상한 의도로 사용하려고 한다면, 그리고 대중은 생물학에 대해 무지하고, 과학자들은 ‘이미 암암리에 합의된’ 상황이라면 유전학자들이 축적해 놓은 지식을 사악한 목적으로 오용하려는 것을 누가 막아낼 수 있겠는가?
3장 언론학 분야에 대한 연구
뉴스 미디어 분야의 권력 획득과 상실
오늘날 우리는 날씨, 교통 정보, 증권 시장이나 재테크 정보, 국내 및 국제 문제에 대한 최신 정보, 연예와 여가 등에 관한 정보 등 바깥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을 미디어에 의존하고 있다. 매체가 실제의 삶을 대체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 해석하는 방법, 경험하는 방식 등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요인이 된 것은 사실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언론에서는 윤리 기준과 보도 수준의 실종과 ‘목소리 낮추기(dumbiry down)'를 지적하는 많은 글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오랫동안 CBS 방송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인 <60분(60 Minutes)의 프로듀서였던 돈 휴잇은 최근 연설에서 이제 대부분의 텔레비전 쇼들이 ’우리 나라의 모든 거실에 넘쳐흘러 들어가는 오수 구덩이‘보다 조금도 더 나은 게 없다고 불평했다. 휴잇은 30년 전에 자신이 젊은 프로듀서였을 때는 매체 윤리가 ’명예를 지켜라‘라는 구호였다면, 현재는 ’돈을 벌어라‘라는 구호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의견은 단지 내부자 또는 엘리트 사회 윤리학자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의견 조사와 설문 투표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현재 뉴스 매체가 운영되는 방식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이나 반감을 표했다.
언론인들은 전체적으로 언론의 상태에 대해 비관적이었다. 비관론의 두 핵심 요소는 언론이 그 언론 산업 분야의 사업 목표에 순응하도록 하는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과 그 분야의 가치와 윤리가 뚜렷이 저하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영이나 소유의 위치에 있는 이들은 확실히 부정적인 변화보다는 긍정적인 변화를 훨씬 더 많이 언급하는 경향을 보였다. 최근의 변화를 긍정적인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낙관론의 핵심은 새로운 기술이다.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도움으로 뉴스 수집 능력이 향상되었고, 뉴스 보도의 질과 전파 영역이 확대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빠른 테크놀로지의 혁신은 사실 하나의 와일드 카드 같은 것이다. 테크놀로지는 끊임없이 시간적인 압박을 가하여 기자들이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단편적인 사실들에 유의미한 맥락을 설정할 능력을 줄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보도의 즉시성과 접근성 뿐만 아니라 뉴스 기사의 범위와 질, 속도, 정확성을 확대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영역의 전통적인 기준이 지켜지느냐 폐기되느냐 하는 것은 언론계를 통제하고 실무를 직접 담당하는 이들의 의도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