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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투 윈(SIN to WIN)

마크 루이스 지음 | 한국능률협회
신 투 윈(SIN to WIN)

마크 루이스 지음/홍정희 옮김

한국능률협회/2003년 3월/292쪽/10,000원



1. 교만의 죄

교만의 죄는 치명적인 죄악의 목록 중에서도 최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통탄할 만한 일은 결코 아니다. 만일 당신 아이들이 공부를 잘한다면 그 아이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 만일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면 그 점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 게 마땅하다. 고통 받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평생 자선단체에 봉사한 업적을 인정받아 여왕의 생일 파티에 초대되었다면, 빛나는 훈장을 공개하며 버킹엄 궁전을 배경으로 사진 찍히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도대체 자부심에 관해 정확히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교만은 교회에서 말하는 첫 번째 죄이자 가장 중요한 죄이다. 그렇다고 그 이유가 교만이 가장 나쁜 죄이기 때문은 아니다. 교만은 사실 항상 나쁘다고만 할 수 없는 교활한 꼬마 불량배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혼란은 어휘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의미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팝 문화 덕분에 ‘bad'는 갑자기 예전의 ’good'의 의미를 나타내게 되었고, ‘wicked'는 사악하다는 뜻에서 의미가 전이되어 ’very good'을 의미하게 되었다.

‘pride' 역시 본래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 단어들 중 하나이다. 예를 들어, 일반인들에게 ’pain'이라는 표현은 치과 의사가 완성까지 총 20분밖에 걸리지 않는 가공 의치의 치료비로 2백만 원의 청구서를 내밀 때 느끼는 감정을 가리킨다. 그러나 프랑스 강연자에게는 ‘pain'이란 반으로 구부리지 않고는 쇼핑백에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길고 가늘면서 껍질이 딱딱한 빵을 의미한다. 이처럼 어떤 사람의 자존심은 다른 사람에게는 오만함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교만(superbia)은 ‘교만의 죄’를 성경 상에서 달리 표현한 말이다. 이 말은 라틴어에서 왔으며, 문자 그대로 ‘위에 있는 것을 향하여’라는 의미이다. 로마 제국은 교만이라는 토대 위에 세워졌다. 교만은 더 크고 나은 것에 대한 갈망으로, 교만이 최고의 죄가 된 것은 로마의 사례 때문일지도 모른다. 넓은 땅을 정복한 로마인들은 권력에 이끌린 자아도취 상태에 이르렀다.

로마 전성기에 ‘로마의’라는 말은 우수함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로마의 길’은 잘 만든 금속 화살처럼 곧게 뻗은 대로를 의미하였다. ‘로마의 목욕탕’은 세상 사람들이 그때까지 보지 못했고 그 후에도 1,000년 동안 볼 수 없었던 가장 뛰어난 난방시설과 수력 공학을 의미했다. ‘로마의 법’은 범죄자들이 희망할 수 있는 가장 공정한 법 체계였다.

오늘날 우리는 최고의 우수성을 나타내는 유사한 용어로 ‘롤스로이스’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그 용어는 자동차 업계에서 나왔다. 세탁기의 ’롤스로이스’, 진공청소기의 ‘롤스로이스‘ 등 어떤 상품에 대해 ’롤스로이스‘라고 칭송을 하는 것은 마케팅 담당자에게는 누구나 바라는 가장 높은 영예의 상징이 되었다. 로마 제국과 마찬가지로 롤스로이스 제국도 자존심의 토대 위에 세워졌다.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필요로 하지만, 반드시 롤스로이스가 필요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롤스로이스를 소유하는 것은 고사하고 롤스로이스를 타 본 경험이 있는 사람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좋은 차를 만드는 기업이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사람들은 누구나 ‘롤스로이스’라고 대답한다.

자존심은 분명히 좋은 것이다. 1971년에 ‘롤스로이스’가 로마 제국처럼 2억 파운드의 빚을 지고 붕괴할 운명에 처하게 되자 영국 정부는 기꺼이 나서서 롤스로이스를 곤경으로부터 구했다. 롤스로이스는 자존심이라는 토대 위에 세워졌을 뿐만 아니라 그 자존심 덕에 위기로부터 벗어나기도 했다. 롤스로이스는 전 영국 국민의 자존심에 의해 구제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전 국민’의 99.9%는 롤스로이스를 만져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자존심은 파워이다. 그런데 파워는 절대적으로 타락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파워에는 능력이 있다. 절대적인 파워에는 절대적인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절대적인 자존심에는 절대적인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자신의 자존심을 최대한 존중하라. 당신이 어떤 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결코 남에게 인정하지 말라.



2. 시기의 죄

시기의 죄는 대개의 경우 시샘하거나 감탄하는 불만족의 감정으로 묘사된다. 이것은 다른 누군가의 소유물이나 업적, 또는 개인적 자질에 대해 시샘하거나 감탄하는 마음에서 생기는 불만이다. 이런 시기심 때문에 사람들은 결국 남이 가진 것을 손에 넣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시기의 죄를 성경에서는 ‘비열하고 졸렬한 죄악’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광고 카피들은 구매자들의 마음속에 시기심이 도사리고 있음을 간파하고 이를 이용하고 있다. “그 세탁기로 뭘 하고 계세요? 통이 하나뿐이군요. 불쌍한 분! 완전하지 못한 세탁기를 가지고 계시네요. 우리 세탁기는 통이 2개거든요. 이제 당신에게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겠어요?”

그 말을 듣고 우리는 밖으로 뛰쳐나가, 최신형 투 드럼 세탁기를 사거나 먼지백이 없는 진공청소기를 산다. 겨우 6개월 전에 산 물건이라 말짱한데도 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자들은 매일 아침 날이 2개밖에 없는 면도기로 면도를 했었다. 그러다가 근육질의 사나이가 텔레비전에 등장하고, 금발의 아가씨가 그 남자의 턱을 사랑스럽게 어루만지는 모습을 보고는 너도 나도 면도날이 3개나 되는 면도기를 구입했다.

시기심은 경쟁을 부추긴다. 영국의 어떤 축구팀 감독도 프리미어 우승컵을 들어올릴 수 있는 기회를 결코 남에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성공적인 모든 스포츠 팀 감독들은 시기심을 무기로 사용하여 선수들이 더 나은 수준으로 매진할 수 있도록 채찍질한다. 그들은 스포츠 방송에서 자신들의 경기가 방송되기를 원하고, 프리미어 리그에서 우승하기를 원하며 더 높은 고지에 오르고 싶어한다.

또한 시기심은 경쟁의 승리자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빼앗고자 하는 열망이다. 축구 선수들은 서로에 대해 시기심을 가지고 있다. 열댓 명의 골키퍼 모두가 영국의 대표팀 골키퍼가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만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빼앗고자 하는 욕망인 시기심은 각 선수들로 하여금 더 열심히 연습하고, 더 열심히 매진하도록 만든다.

세상에서 준우승자를 기억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챔피언은 우리의 기억 속에 각인되며, 그 노력에 대해 찬양을 받는다. 당신이라면 어느 쪽이 되겠는가? 단순히 괜찮은 세일즈맨과 진정으로 위대한 세일즈맨의 차이점은 세일즈 기술이 아니다. 그들의 세일즈 기술은 대동소이할 것이다. 같은 세일즈 과정을 밟았고, 같은 사람에게 기술을 배웠으며 같은 기법을 갈고 닦았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바로 태도이다. 챔피언 세일즈맨은 사내 최고의 세일즈맨이 되기를 원한다. 지위에 대한 강한 열망이 그를 새로운 챔피언으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시기심을 부정적인 태도라고 배웠다. 크리스트교는 우리에게 시기심이 7가지 죄악 중에서도 가장 더럽고 추하며 비열하고 나쁘다고 말한다. 하지만 교회가 우리의 완전한 잠재 능력 발휘를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시기심을 이렇게까지 매도해도 되는 것일까? 교회가 우리를 기껏해야 2인자가 될 뿐, 운명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할까?

죄로서의 시기심은 ‘우리는 어떤 것도 획득할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1903년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여성사회 정치동맹’을 창립했을 때, 그녀의 여권운동은 시기심의 표현으로 간주되었다. ‘남성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특정 권리’를 여성들에게도 달라고 요구했다는 단지 그 이유 때문이었다. 당시 여성들은 결혼 후에는 일을 그만두도록 법적으로 강요당했으며, 남편에게 구타를 당하면서도 결혼 생활을 유지해야 했고, 심지어 여성들에게는 투표권조차도 없었다.

시기심이 체념의 원인이 된다면 시기심은 분명 더럽고 비열한 죄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기심을 적절히 이용한다면 자신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내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타인을 상대로 한 외적인 면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시기심 때문에 우리는 좀더 열심히 노력하게 되고, 발전하게 된다. 시기심 덕분에 우리는 챔피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3. 탐식의 죄

종교인들 사이에서 정욕이 섹스에 관한 것으로 분류된다면, 탐식은 음식에 관한 것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나치게 많이 먹는 것을 죄악으로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인 도덕적 기준이 될 때도 있었다. 예를 들어, 메뚜기 떼 피해를 당한 데다가 사라져 가는 노예 제도 때문에 식량 부족으로 굶어 죽던 과거 이집트 시절에는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모두를 먹여 살릴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식량이 생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끔 음식 좀 많이 먹는다고 도덕적으로 뭐 그리 큰 잘못이겠는가? 사실 지금도 어떤 나라에는 굶주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식량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분배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탐식을 여물통 속의 살찐 돼지에 비유하고 있다. 돼지는 시끄러운 콧소리를 내면서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양의 먹이를 우적우적 먹어 치운다. 우리는 여전히 과체중을 조롱하고, 기차에서 뚱뚱한 사람이 초콜릿을 먹는 모습을 보면 인상을 찌푸린다. 매일 헬스를 하고, 술을 멀리하며 저녁 식사에서 양상추 반쪽과 오이 한 조각 그리고 당근 주스를 시키는 사람을 칭찬한다. 죄라고 하기에는 터무니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탐식은 우리의 뇌리에 박혀 이제 결코 범해서는 안 되는 죄의 일부처럼 되어버렸다.

성경에 나오는 탐식은 음식 자체와 더불어 너무 많은 양을 너무 빨리, 게걸스럽게 먹었을 때 나타나는 결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 몸에 음식물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정기적으로 에너지원이 공급되어야지 한꺼번에 많은 양이 공급되어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정신은 그렇지 않다. 당신은 아인슈타인을 여러 명 합친 만큼의 지력을 갖춘,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상상력을 지닌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런데 뇌에 관한 반가운 소식은 아무리 뇌를 과식시켜도, 뇌는 살이 쪄서 동작이 느려지는 일이 없다는 점이다. 뇌는 정보에 관한 한 거의 무한대의 수용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쓸모 없는 정보란 없다. 인간의 뇌에 공급되는 영양분에는 모두 칼로리가 있다. 어떤 친구는 보통 사람이라면 쓸모 없다고 생각할 만한 정보를 모으고 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키가 작은 난쟁이 이름이라든지, 세상에서 가장 물이 많은 사막 따위의 재미있는 정보들을 모은다. 그는 빙하기에 상아가 없는 대머리 매머드 종이 살았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정보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아직은 모르지만, 적절히 사용하기만 한다면 모두 유용한 것만은 확실하다.

78세의 X씨는 정년퇴직을 하고 남겨진 많은 시간을 정원을 손질하거나, 부엌에 페인트를 칠하던 중 자신의 뇌가 녹슬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독서를 시작했다.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읽었다. 책, 잡지, 신문 심지어는 만화까지도 읽으면서 자신의 뇌를 운동시키고 싶어했다. 그렇게 해서 그는 독서의 대식가가 되었다.

어느 날, 휴가를 떠나려고 공항에 나갔다가 비행기의 연착으로 3시간 동안 공항에 발이 묶이는 일을 당하게 되었다. 전망대를 서성이다가 X씨는 한 무리의 남자들이 격납고를 해체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격납고는 알루미늄 판으로 만든 것이었다. X씨는 공항의 엔지니어링 시설물 담당자를 만나서 격납고에서 해체한 알루미늄 판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더니 고철로 쓸 거라는 답을 들었다. X씨는 그 고철을 영국의 어느 항구까지 배달에 주는 조건으로 3,000 파운드를 제시했다.

X씨는 여러 잡지를 통해 독일의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알루미늄 차체를 실험 중이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문제는 새 알루미늄이 낡은 것보다 벼리기가 힘들며, 아직 알루미늄 가공기술은 초기 단계이므로, 격납고로 쓰던 알루미늄이 그들에게 매우 좋은 재료가 될 것은 틀림없었다. X씨는 독일에 전화를 걸어 50,000 파운드에 그 물건을 팔았다. X씨의 독서에 대한 목마름과 정신적인 굶주림이 본질적으로 다른 여러 가지 정보와 조합되어 돈이 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다양한 정보들을 조합하려면 우선 그런 정보들을 알아야 한다. 문제는 그런 정보를 모두 알기 전에는 어떤 정보가 필요한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출생 이후 지금까지 당신의 뇌는 보고, 듣고, 배우고, 생각한 모든 정보를 저장하는 데에 10% 미만을 사용해 왔다. 그러니 걱정할 것이 없다. 당신의 뇌에는 무한한 저장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정보의 대식가’가 되어야 한다. 새로운 소식들을 만찬으로 여기고 정보를 탐식하여야 한다. 세상 이야기들을 게걸스럽게 먹어 삼켜라. 정보의 대식가들은 ‘정보 과식’이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더 많은 정보를 삼킬수록 당신은 더욱 정보화되어지며, 더 많은 경쟁을 할수록 당신의 경쟁력은 더욱 강해진다. 따라서 당신이 먹고 소화시키는 것이 곧 당신 자신이 되는 것이다. 물론 탐식성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한 가지 일을 전문적으로 하라!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하고, 나머지는 전문가를 고용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양을 너무 빨리 먹지만 않는다면, 정보의 탐식성을 반대할 이유는 전혀 없다.



4. 정욕의 죄

왜 성경이 그토록 ‘정욕의 죄’에 매달리는지를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욕은 이기심에서 비롯된 죄로서, 타인에 대한 배려 없이 자신의 만족만을 추구한다. 아침이 되기 전에 잠자리에 은밀히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다시 깨어난다. 정욕은 음란, 외설, 호색, 음탕함이며 난잡함을 말한다.

정욕에 대한 종교적 해석은 한마디로 ‘육체의 성적 욕구’이다.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대개 바지 속에 감추어진 육체의 일부가 느끼는 욕구라고 할 수 있다. 순진한 소녀들이나 나이 든 아주머니들이 그렇듯이 선량한 종교는 육체의 일부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 종교의 눈으로 보았을 때 정욕은 ‘더러운 마음의 표출’이다.

14세 된 소년이 궁금한 점을 물어보기 위해 신부를 찾아갔다. “신부님, ‘vice'가 무슨 뜻인가요?”라고 소년이 물었다. 신부는 ’vice'란 사회에 부패한 영향을 끼치며, 타락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죄악으로서 정부(情夫)의 성적 만족을 위해 자신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여성들이 저지르는 행동이며, 뇌물을 쓰려고 하는 추잡하고 더러운 사람들의 사악한 마음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는 “겨우 14세밖에 안 된 네가 왜 그런 것을 물어보느냐?”라고 물었다. 아이는 “학교에서 저를 크리켓 팀의 'vice-captain'으로 임명했거든요.”라고 대답했다.

신부들은 대대로 ‘정욕의 죄’는 우리를 영원한 지옥의 불구덩이에 빠뜨린다고 설교해 왔다. 그들은 수백 년 동안 지저분한 성병을 증거로 대며 확신에 차 있었다. 사탄이 당신의 아랫도리를 지옥의 불구덩이로 이끈다는 그들의 이론은 만일 콘돔이 16세기에 나왔더라면 존재 기반을 상실하였을 것이며, 헨리 8세가 급속히 진행된 임질로 인해 지옥의 불구덩이로 떨어지는 증거도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정욕의 죄’는 꼭 아랫도리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정욕은 오히려 만족에 대한 욕구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정욕은 즉각적인 자기만족의 정수이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행하는 것이며,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능한 한 빨리 움켜쥐는 것이다. 또한 눈 깜짝할 사이에 상황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기도 하다. 기분 좋은 일을 가능한 한 빨리 하는 것이 왜 나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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