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의 세계로 나아가라
벤저민 잰더 지음 | 김영사
마음속에서 가능성을 넓혀라개구리는 어미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아름다운 석양을 감상하지 못하며, 색채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한다. 그들은 맛좋은 자그마한 벌레나 갑자기 다가오는 황새 등 잡아먹거나 잡아먹히지 않는 데 필요한 것들만 볼 수 있다. 개구리의 눈은 개구리의 뇌에 아주 선별적인 정보만을 제공한다. 따라서 개구리는 오로지 선별적인 감각 카테고리만을 지각하는 것이다.
인간의 눈 또한 선별적이다. 물론 그 지각의 범위가 개구리보다는 훨씬 넓지만 말이다. 우리는 막연히 우리가 '모든 것'을 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도 역시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감각만을 지각한다. 그리고 우리의 의식은 눈으로 지각한 것 중에서 마음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만을 인식한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지각능력은 더욱 제한받게 된다.
에티오피아의 메앤 족을 상대한 한 유명한 실험이 있다. 사진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그 부족에게 사람과 동물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사진의 2차원 이미지를 '읽지' 못했다. 그 부족은 사진을 손으로 쓰다듬고, 냄새를 맡고, 구기고, 구겨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사진을 조금 찢어서 맛을 보기도 했다. 그들의 의식 속에는 '사진'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마음속에서 가능성을 넓혀라'라는 말을 하는 이유는 모든 것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와 주변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스토리나 인식 틀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내면 어떨까하는 의미로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마음속에서 가능성을 넓힌다는 것은 진화된 두뇌구조를 통해서 우리가 이 세계와 정신의 구성물을 새롭게 지각한다는 것을 말한다.
과학은 이전에 획득된 진리를 바탕으로 지식을 축적해나가는 질서정연한 과정이다. 하지만 과학조차도 우리가 과거에 진리라고 믿었던 이론적 구성물을 허물고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우리가 뉴턴의 세계에 살 때에는 직선과 힘만을 볼 수 있었지만, 아인슈타인의 우주에서 살고 있는 오늘날에는 휘어진 공간과 시간, 상대성, 불확정성 등을 알게 되었다. 뉴턴 물리학이 여전히 유효하기는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특수한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전에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현상들을 새롭게 인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틀이다. 그것이 우리의 가능성을 규정하고 제한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모든 문제, 딜레마, 곤경 등을 한번 생각해보자. 그것은 과연 해결 불가능한가? 만약 그렇다면 어떤 특정한 인식 틀이나 관점 안에서만 해결 불가능한 것이다. 인식 틀의 크기를 넓히고 데이터 주변에 새로운 틀을 만들어낸다면, 문제는 사라지고 새로운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가능성의 세계로 나아가라측정, 저울, 기준, 등급, 비교 등으로 중심적 위치를 강조하는, 낯익은 일상적 세계를 이해타산적인 세계라고 한다. 일상적 스토리 속에서 우리 모두는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지금보다 더 나은 지위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목표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사람이 장애물이 될 때도 있지만 대부분 시간, 돈, 힘, 사랑, 자원, 내적 힘의 부족 등이 장애물이 된다.
이해타산적인 세계의 모든 현상은 우리의 의식에 감추어진 단 하나의 전제조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바로 인생은 살아남기 위한, 즉 결핍과 위험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경쟁이라는 전제조건이다. 우리는 이해타산적인 세계에서 성장했고, 사물을 측정하고 비교하며 대조하는 방법을 배웠다. 우리는 이웃집 아이를 통해 우리의 아이를 이해하고, 회사의 연초 예상목표치와 연말 실적을 대비하여 회사를 평가한다. 또한 우리는 자기 자신과 소속 집단을 남들 혹은 다른 집단과 비교한다.
이 승패의 세상에서 가장 극적인 행동은 이기는 것, 남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다. 거의 모든 동화책, 거의 모든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이러한 패턴을 따라가고 있다. 경쟁은 성공으로 가는 수단이며, 경쟁적 스포츠와 전쟁에 바탕을 둔 비유가 거의 모든 상황에 적용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처럼 정해진 틀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한다. 부유하게 살든 가난하게 살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 인생은 생존경쟁의 연속이며, 한정된 자원의 세상에서 앞서나가야 한다는 단서를 붙이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하지만 이제 이해타산적인 세계를 초월하여 무한의 세계, 생성의 세계, 풍요로움의 세계 등 모든 세계를 포함하는 가능성의 세계를 한번 생각해보자. 매일 매일이 생존경쟁이라는 근심 걱정에서 해방되고 자원 부족이라는 통상적 한계 상황에서 자유로워진다면, 사람들은 탁 트인 마음과 함께 커다란 가능성의 공간 안에 우뚝 서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장래의 모습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가능성의 세계에서의 행동은 생성성(生成性)을 특징으로 한다. 새로운 삶을 설계하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창출하며, 의미를 부여하고, 기여하며, 관계의 힘에 따른다. 사람이나 사물 그 자체가 아닌 사람과 환경 사이의 관계가 강조된다.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감정들이 여기에서는 풍성하게 발견된다. 환희, 은총, 외경, 온전함, 열정, 공감 등의 감정들이 생겨난다.
모든 사람의 삶 속에는 생존경쟁을 초월하는 순간이 있다. 손자를 처음 안아보는 순간, 올림픽 기록이 깨지는 순간, 평범한 시민의 용감한 행동을 목격하는 순간 등이 그러한 경우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는 순간에도 그리고 27년간의 옥중생활에서 풀려난 넬슨 만델라를 보는 순간에도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프로젝트와 목표를 기쁜 마음으로 추진하되 자신의 인생이 실적 달성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더 많은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마음을 갖게 될 때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 잘 맺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관대하게 대하며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정열적인 인생에 가담시킬 때, 필요한 자원을 더 잘 조달할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렇다면 우리를 가능성의 세계로 안내해주는 실천방안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이해타산적인 세계의 숨겨진 인식 틀을 폭로하는 것이다. 그 인식 틀이 당신의 삶을 규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당신은 가능성의 세계로 성큼 들어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인식 틀 자체를 초월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신 자신을 평가하는 것이나 인생을 투쟁 혹은 고생으로 표현하는 것이 매우 우스꽝스럽게 보이게 된다.
A학점 주기남가주 대학에서는 매해 리더십 강좌를 개설한다. 그런데 이 강좌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전국 2만7천 개 대학에서 선발된 50명의 가장 우수한 학생들로, 이들은 소속 학과에서 특별 추천된 학생들이다.
하지만 이 강좌가 끝나면 담당교수는 학생들을 3등분하여 1/3에게 A를, 또 다른 1/3에게는 B를 그리고 나머지 1/3에게는 C를 주라는 학점 배정 지시를 받는다. 이 강좌의 맨 꼴찌 학생이 그 대학의 다른 어떤 학생들보다 월등하게 우수하더라도 C밖에 받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C를 받은 학생은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학점은 실제로 이와 같이 상황을 거의 반영하지 못한다. 교수가 학생에게 어떤 개념을 잘못 해석했다거나 수학 문제를 잘 못 풀었다고 말하는 것은 학생의 성과를 구체적으로 지적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학생에게 B를 주는 것은 학생의 구체적 성과에 대해서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못한다. 단지 다른 학생들과의 비교에 불과한 것이다. 학점이란 결국 학생들을 서로 비교하기 위한 것임에 불과하다.
미켈란젤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돌덩어리와 대리석 안에는 아름다운 석상이 깃들어 있다. 그 예술품을 드러내기 위해서 군살만 제거하면 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혁명적인 개념을 교육에 적용한다면 학생들을 서로 비교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될 것이다. 그 대신 학생의 자질과 능력 향상, 자기표현 등을 가로막는 군살만 제거해 주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실천을 'A학점 주기'라고 부른다. 이는 대인 관계에 있어서도 획기적인 방식으로, 당신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변화시킬 수 있다. 일종의 태도 변화인 것이다. 당신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자아를 실현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다. 이처럼 'A학점 주기'를 실천하면 당신은 이해타산적인 세계에서 가능성의 세계로 옮겨갈 수 있다.
대법원에서 은퇴한 대법관 더굿 마셜에게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내게 있는 것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라고 간단히 대답했다. 이보다 더 위대한 평가가 있을 수 있을까? 그는 자기 자신에게 A를 주었다. 그리고 이 인식틀 내에서 재판상의 오류, 혹은 다른 견해를 가졌을 때 다르게 했을지도 모르는 행동을 자유롭게 털어놓았다.
자기 자신에게 A를 주는 것은 허세를 떨거나 자존심을 높이려는 태도가 아니다. 자신의 업적을 칭송하는 것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 자유롭게 주어진 A는 당신으로 하여금 성공이냐 실패냐의 강박관념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이해타산적인 세계가 아닌 가능성의 세계로 인도해 준다. 그것은 당신 자신을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당신의 구석구석을 돌아보게 해주고 당신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가능하게 해주는 인식 틀이다.
기여하는 사람이 되라해변을 산책하던 남자가 해변에서 춤을 추는 듯한 동작을 보이는 젊은 여자를 발견했다. 그녀는 허리를 숙이더니 다시 꼿꼿이 서서 팔을 활처럼 굽히는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녀 주변에는 무수히 많은 불가사리들이 있었으며, 그녀는 그 불가사리를 하나씩 집어서 바다에 던져 넣는 중이었다. 그는 그녀를 가볍게 조롱했다.
"이 해변에는 수 마일에 걸쳐서 불가사리가 무수히 널려 있어요. 그 중 몇 마리를 살려준다고 해서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그녀는 미소를 짓더니 다시 허리를 굽혀서 불가사리 하나를 집어 바다 쪽으로 던졌다. 그리고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이 불가사리에게는 차이가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아주 어릴 적부터 우리 앞에 성취해야 할 임무와 달성해야 할 목표가 있다고 배운다. 인생은 때때로 장애물 경주처럼 보인다. 성공을 극대화하기 위해 우리는 많은 시간을 들여가며 그 코스에 놓인 장애물이 무엇인지 알아내려 한다. 위 이야기 속의 남자는 무수히 널려 있는 불가사리를 말하면서 오로지 장애물만을 본 것이다. 그는 젊은 여자에게 장애물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녀의 행동이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다고 말한다. 너무 많은 불가사리, 불충분한 시간, 늘 부족한 재원,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 등등.
위의 이야기에서 구출작업이 성공했는지 또는 실패했는지 그리고 구출된 불가사리의 비율이 얼마인지는 나와 있지 않다. 과거를 말하지도 않고 미래를 예측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듣는 것은 젊은 여자가 미소를 지으면서 평온한 몸가짐으로 계속 춤을 추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작업의 진행과정을 평가하겠다는 자세는 아예 없다. 대신 인생은 기여해야 하는 곳이고 우리는 기여자라고 말할 뿐이다.
자기 자신과 남들을 기여하는 사람이라고 명명하게 되면, 우리는 자신의 이익에서 벗어나 좀더 넓은 인간관계의 무대로 옮겨가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는 의미 있는 차이를 만들어내게 된다. '기여' 게임에 있어서 그 보상은 깊고 지속적이다. 물론 성공 게임의 승자에게 돌아오는 돈, 명예, 권력의 3박자처럼 이해타산적인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 보상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는 직접 부딪쳐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규칙 제6조를 기억하라두 나라의 총리가 총리실에 앉아서 국사를 의논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남자가 상기된 얼굴로 총리실에 들어오더니 발을 동동 구르며 주먹으로 총리 책상을 내리쳤다. 그러자 주최국 총리가 그에게 주의를 주었다. "피터, 제발 규칙 제6조를 명심하게." 피터라는 남자는 순식간에 마음의 평정을 되찾더니 사과를 한 다음 물러갔다. 두 총리는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그러나 20분쯤 지나자 이번에는 어떤 여자가 정신병자처럼 머리를 산발한 채 온몸을 비틀거리면서 총리실에 나타났다. 총리는 또다시 그 여자에게 말했다. "마리, 제발 규칙 제6조를 기억하세요." 마리라는 여자는 순식간에 마음의 평정을 되찾더니 사과를 한 다음 물러갔다. 그런 장면이 세 번째로 연출되자, 방문국 총리가 주최국 총리에게 물었다.
"나는 전에 많은 광경을 보아왔지만, 이처럼 놀라운 광경은 처음입니다. 나에게 규칙 제6조가 무엇인지를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주최국 총리가 말했다. "그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규칙 제6조는 당신의 일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 정말 멋진 규칙이로군요. 그러면 나머지 규칙은 무엇인가요?" "나머지 규칙은 없습니다."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당신 자신이 먼저 마음을 가볍게 가지면 주위 사람들도 밝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남들을 향해 밝은 마음을 가지라고 강요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당신 자신이 주체가 되는 것이다. 당신은 긴장 상황에서 그 긴장을 푸는 하나의 완화책으로서 농담을 던질 수도 있다. 유머와 웃음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유머는 남의 멱살을 잡고 싶어하는 우리 자신을 극복하게 해준다.
또한 규칙 제6조를 기억하는 것은 '이해타산적인 세계'의 경쟁적 환경에서 발달된 우리의 자의식을 완화시켜준다. 그런 자의식을 통상 계산적 자아라고 부른다. 계산적 자아는 자신이 아주 중요하게 취급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규칙 제6조를 실천하면 우리는 계산적 자아에서 탈피할 수 있으며, 계산적 자아의 영향력을 깨뜨릴 수 있다.
계산적 자아는 결핍의 세계에서 무엇보다 먼
저 자신의 생존에 신경 쓰는 존재이다. 총리실에 뛰어 들어온 피터와 마리의 목소리는 비탄과 슬픔에 찬 계산적 자아의 도착을 알리는 목소리이다. 우리들의 자아가 겉으로는 아무리 자신감 넘치고 균형감 있게 보일지라도, 그 안에는 자기 자신이 나약하고 주변적이며 모든 것을 잃어버릴 위험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는 계산적 자아가 존재한다.
언젠가 뉴캐슬의 페스티벌에서 마스터 클래스를 가르쳤는데, BBC가 그 수업을 녹화했다. 마침 그 시간에 참석한 제프리라는 한 학생은 젊은 테너 가수였는데, 최근 밀라노의 저명한 라 스칼라 오페라 극장에 취직했으며, 그의 태도는 자신감이 흘러 넘쳤고, 자신이 올린 성공적인 성과를 아주 대견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는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중에서 <봄의 꿈>이라는 노래를 부르기로 되어 있었다. 이 노래는 애인에게 버림받은 한 젊은이가 영혼의 겨울을 견뎌나가는 우울한 여정을 이야기하며 결국 다시는 애인을 품에 안지 못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이와 같은 분위기를 제대로 표현하려면 슬픔, 상실, 끝없는 실패의 뉘앙스를 뼛속 깊이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막상 제프리에게 노래를 시켜 보니 그에게서는 이러한 우울과 우수가 느껴지지 않았으며 풍부하고 아름다운 이탈리아적인 소리만이 흘러나왔다. 나는 먼저 그에게 코치를 받을 의사가 있느냐고 물었다. "물론 나는 코치받기를 좋아합니다." 45분 동안 나는 제프리와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물론 제프리라는 사람을 상대로 싸운 것은 아니었다. 그의 자존심, 그의 성대 훈련, 잘 보이려는 태도, 아름다운 음성에 쏠렸던 몇 년 동안의 칭찬 등을 상대로 싸워야 했다.
마침내 겉껍질이 벗겨지고 슈베르트 음악 속의 실연한 젊은이의 가슴 아픈 마음에 다가설수록, 그의 목소리는 번지르르한 껍질 속에 내재된 영혼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지막 가사를 부를 때, 제프리의 목소리는 소리가 아닌 어떤 다른 채널을 통해 우리의 영혼 속으로 직접 들어오는 것 같았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청중도 BBC 방송팀도 모두가 침묵 속에 녹아들었다. 이어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