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의 세계로 나아가라
벤저민 잰더 지음 | 김영사
가능성을 여는 사고방식을 갖자우리들 주위에는 에너지와 생동감이 흘러넘친다. 우주는 생성력으로 반짝인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그 에너지원에 닿을 수 있을까? 어디에서 생명력이 흘러나오는 구멍을 발견할 수 있을까? 우리는 하루의 일을 해내기 위해 우리 자신의 에너지를 끌어올려야 할까, 아니면 우리를 초월한 어떤 에너지원에 기대야 할까?
이 세상 어디에나 생생하고 표현력이 풍부한 에너지가 흐르고 있다. 그것은 삶의 존재를 표현하는 수단이다. 하지만 그 에너지와 함께하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우리 내부에 있다. 우리의 의식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이 세상은 이미 분류된 상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별개의 개체이고, 형태는 일정한 테두리를 갖고 있으며, 사과와 오렌지는 서로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통합적인 에너지와 마주치게 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토끼 구멍으로 들어간 앨리스처럼 아주 우연한 기회에만 마주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아주 특별한 일을 할 때, 또는 아주 개인적이고 원초적인 수준에서 어떤 사람을 만날 때 이 막강한 에너지와 마주치게 된다. 이때 우리의 몸과 마음은 적극적으로 우리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우리가 전에는 뚜렷한 한계를 설정한 곳에서도 그 한계 너머의 경지를 엿볼 수 있게 된다.
누구나 자신이 바다의 파도나 풀잎에 이는 바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일체감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마찬가지로 연주자도 음악 전체와 하나 되는 느낌을 갖게 되는 순간이 있다. 연주자가 개별 음표나 화음에만 신경 쓰다 보면 하나됨의 느낌을 놓치게 된다. 자연과 자신이 하나라는 인식을 갖지 못하는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생명력의 흐름을 방해하듯이, 연주자도 개인적 감정, 국지적 색채, 화음 등에만 신경 쓰다 보면 전체적인 흐름을 놓치게 된다.
내가 뉴잉글랜드 음악학교에서 수업하는 소나타와 가곡 수업을 듣는 한 스페인 유학생이 있었다. 그는 바르셀로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차석 첼리스트로 취직하기 위해 오디션을 받으러 갈 예정이었는데, 나에게 코치를 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우아하고 정확하게 자신의 곡을 연주했다. 나는 그 정도의 실력이면 충분히 오케스트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의 연주에는 열정이나 진정한 리더십의 색깔이 빠져 있었다. 청중들에게 평소에는 느끼지 못한 정서를 느끼게 해주는 힘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함께 곡을 연주했다. 나는 피아노를 치면서 그에게 좀더 열정적으로 연주하라고 채근했다. 마침내 그는 형식적인 구속을 모두 내던지고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연주를 했다. 그는 자신의 정열과 에너지를 드보르작 협주곡에다 쏟아 부었다. 그가 아주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도중에 나는 그를 멈춰 세우고 말했다. "바로 그거야. 자네가 그런 식으로 연주하면 그들은 자네를 거부하지 못할 걸세. 모두 자네를 본받아 저마다 최선의 연주를 하게 될 거야."
3주 뒤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마리우스, 어떻게 되었나?" 나는 자못 궁금했다.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왜?" 나는 그를 위로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물었다. "저는 첫 번째 방식으로 연주했습니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괜찮아, 마리우스. 또 기회가 있을 걸세." "아니, 아닙니다. 저는 너무 화가 나서 곧장 마드리드 수석 첼리스트 자리를 노리고 오디션을 받았고, 두 배나 봉급이 많은 그 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 "어떻게?" 나는 깜짝 놀라면서 물었다. "저는 두 번째 방식으로 연주했습니다!"
우리는 다시 질문을 던진다. "가능성의 전기 소켓은 어디에 있는가? 삶을 바꾸어주는 에너지는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그것은 음표 위, 새들이 날아오르는 곳에 있다. 우리는 음악의 템포를 찾아 음악에 온몸을 던짐으로써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의 경계를 과감히 허물어뜨려라. 그리고 참여하라!1963년 8월 어느 무더운 여름날,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워싱턴 광장에 운집한 군중들에게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유명한 연설을 했을 때, 그는 그 자리에 모인 수많은 군중들만을 상대로 부르짖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온 세상 사람들이 품고 있던 꿈을 깨우쳐주었다. 범죄자나 소외된 사람들, 백인이나 흑인, 이념이 다른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바라는 바를 전해 주었던 것이다. 그는 온몸과 마음을 다해 꿈을 가진 자만이 변화를 이룰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인간은 잠재된 위험을 극복하고 보금자리를 지켜갈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인간에게는 모든 사물이 힘차게 살아 움직이고, 창조적인 힘이 강력하게 작용하며, 보이지 않는 고리가 서로를 굳게 이어주는 가능성의 세계로 나아가는 창문을 열어젖힐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는 어떤 위치, 어떤 자리에 있든 다른 사람이나 이 세상에 가능성을 제시해주는 인간관계를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다.
예전의 지도자처럼 적을 물리치는 탁월한 힘이나 식량을 구해오는 뛰어난 능력은 현대 사회에서는 필요하지 않다. '가능성을 제시하는 지도자'는 서로의 유대감을 강화시키고 두려움이라는 적에 맞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동정심을 고취시키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이와 같은 지도자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최고경영자이든 피고용자이든, 평범한 시민이든 선택받은 특권층이든, 교사이든 학생이든 어떤 위치에 있건 상관없다.
초등학교 2학년인 한 어린 소녀가 백혈병에 걸려 약물 치료를 받았다. 차도가 있어서 학교에 다시 다니게 된 소녀는 치료를 받느라 머리카락이 다 빠져서 스카프를 쓰고 다녔다. 하지만 짓궂은 친구들은 소녀의 스카프를 벗기고 깔깔대며 놀렸다. 소녀는 놀림감이 되기 싫어서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다음날 아침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갔을 때 몇몇 아이들이 킥킥거리며 머리카락이 없는 소녀를 놀리고 있었으며, 소녀는 부끄러워 의자 깊숙이 몸을 숨기고 있었다. "애들아, 안녕!" 선생님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머리에 썼던 스카프를 벗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선생님의 머리는 완전 민둥머리였다.
그 일이 있은 후 아이들을 선생님을 따라 머리를 빡빡 밀어달라고 엄마들에게 졸라댔다. 그리고 머리카락이 조금 자란 소녀가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때 반 친구들은 소녀를 보며 모두 깔깔대고 웃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놀리는 웃음이 아니라 재미있다는 웃음이었다. 모든 아이들의 머리가 똑같이 고슴도치처럼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훌륭한 지도자였던 선생님은 지혜로운 방법으로 자기 반에서 발생한 갈등을 해결했다. 한 아이의 특별한 외모에 대한 인식을 바꿔줌으로써 왕따가 될 뻔한 아이를 구해주었다. 선생님이 발견한 가능성은 머리를 깎는 것이었다. 말이 아닌 몸으로 실천하는 언어를 가르쳐주고, 과감한 행동의 선택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며, 위기를 하나의 게임으로 이끌어 결속력과 유대감을 다지는 절호의 찬스로 만든 것이다.
가능성의 영역에서는 생각과 행동, 몸과 마음, 꿈과 현실이 분리되지 않는다. 지도자들의 비전은 그렇지 못한 우리들에게 평범하지 않은 용기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비전이란 음악을 연주하기 위한 악보와 같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는 흘러나오는 모차르트의 오페라인 <피가로의 결혼>을 들으면서 한 죄수의 영혼이 높은 담을 뛰어넘어 한없이 멀리 날아오르고 있다. 이와 같이 비전은 우리를 지엽적인 문제나 관심으로 인한 삶의 무게와 혼란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며, 보다 멀리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갖게 해준다.남가주 대학에서는 매해 리더십 강좌를 개설한다. 그런데 이 강좌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전국 2만7천 개 대학에서 선발된 50명의 가장 우수한 학생들로, 이들은 소속 학과에서 특별 추천된 학생들이다.
하지만 이 강좌가 끝나면 담당교수는 학생들을 3등분하여 1/3에게 A를, 또 다른 1/3에게는 B를 그리고 나머지 1/3에게는 C를 주라는 학점 배정 지시를 받는다. 이 강좌의 맨 꼴찌 학생이 그 대학의 다른 어떤 학생들보다 월등하게 우수하더라도 C밖에 받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C를 받은 학생은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학점은 실제로 이와 같이 상황을 거의 반영하지 못한다. 교수가 학생에게 어떤 개념을 잘못 해석했다거나 수학 문제를 잘 못 풀었다고 말하는 것은 학생의 성과를 구체적으로 지적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학생에게 B를 주는 것은 학생의 구체적 성과에 대해서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못한다. 단지 다른 학생들과의 비교에 불과한 것이다. 학점이란 결국 학생들을 서로 비교하기 위한 것임에 불과하다.
미켈란젤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돌덩어리와 대리석 안에는 아름다운 석상이 깃들어 있다. 그 예술품을 드러내기 위해서 군살만 제거하면 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혁명적인 개념을 교육에 적용한다면 학생들을 서로 비교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될 것이다. 그 대신 학생의 자질과 능력 향상, 자기표현 등을 가로막는 군살만 제거해 주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실천을 'A학점 주기'라고 부른다. 이는 대인 관계에 있어서도 획기적인 방식으로, 당신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변화시킬 수 있다. 일종의 태도 변화인 것이다. 당신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자아를 실현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다. 이처럼 'A학점 주기'를 실천하면 당신은 이해타산적인 세계에서 가능성의 세계로 옮겨갈 수 있다.
대법원에서 은퇴한 대법관 더굿 마셜에게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내게 있는 것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라고 간단히 대답했다. 이보다 더 위대한 평가가 있을 수 있을까? 그는 자기 자신에게 A를 주었다. 그리고 이 인식틀 내에서 재판상의 오류, 혹은 다른 견해를 가졌을 때 다르게 했을지도 모르는 행동을 자유롭게 털어놓았다.
자기 자신에게 A를 주는 것은 허세를 떨거나 자존심을 높이려는 태도가 아니다. 자신의 업적을 칭송하는 것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 자유롭게 주어진 A는 당신으로 하여금 성공이냐 실패냐의 강박관념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이해타산적인 세계가 아닌 가능성의 세계로 인도해 준다. 그것은 당신 자신을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당신의 구석구석을 돌아보게 해주고 당신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가능하게 해주는 인식 틀이다.해변을 산책하던 남자가 해변에서 춤을 추는 듯한 동작을 보이는 젊은 여자를 발견했다. 그녀는 허리를 숙이더니 다시 꼿꼿이 서서 팔을 활처럼 굽히는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녀 주변에는 무수히 많은 불가사리들이 있었으며, 그녀는 그 불가사리를 하나씩 집어서 바다에 던져 넣는 중이었다. 그는 그녀를 가볍게 조롱했다.
"이 해변에는 수 마일에 걸쳐서 불가사리가 무수히 널려 있어요. 그 중 몇 마리를 살려준다고 해서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그녀는 미소를 짓더니 다시 허리를 굽혀서 불가사리 하나를 집어 바다 쪽으로 던졌다. 그리고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이 불가사리에게는 차이가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아주 어릴 적부터 우리 앞에 성취해야 할 임무와 달성해야 할 목표가 있다고 배운다. 인생은 때때로 장애물 경주처럼 보인다. 성공을 극대화하기 위해 우리는 많은 시간을 들여가며 그 코스에 놓인 장애물이 무엇인지 알아내려 한다. 위 이야기 속의 남자는 무수히 널려 있는 불가사리를 말하면서 오로지 장애물만을 본 것이다. 그는 젊은 여자에게 장애물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녀의 행동이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다고 말한다. 너무 많은 불가사리, 불충분한 시간, 늘 부족한 재원,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 등등.
위의 이야기에서 구출작업이 성공했는지 또는 실패했는지 그리고 구출된 불가사리의 비율이 얼마인지는 나와 있지 않다. 과거를 말하지도 않고 미래를 예측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듣는 것은 젊은 여자가 미소를 지으면서 평온한 몸가짐으로 계속 춤을 추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작업의 진행과정을 평가하겠다는 자세는 아예 없다. 대신 인생은 기여해야 하는 곳이고 우리는 기여자라고 말할 뿐이다.
자기 자신과 남들을 기여하는 사람이라고 명명하게 되면, 우리는 자신의 이익에서 벗어나 좀더 넓은 인간관계의 무대로 옮겨가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는 의미 있는 차이를 만들어내게 된다. '기여' 게임에 있어서 그 보상은 깊고 지속적이다. 물론 성공 게임의 승자에게 돌아오는 돈, 명예, 권력의 3박자처럼 이해타산적인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 보상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는 직접 부딪쳐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두 나라의 총리가 총리실에 앉아서 국사를 의논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남자가 상기된 얼굴로 총리실에 들어오더니 발을 동동 구르며 주먹으로 총리 책상을 내리쳤다. 그러자 주최국 총리가 그에게 주의를 주었다. "피터, 제발 규칙 제6조를 명심하게." 피터라는 남자는 순식간에 마음의 평정을 되찾더니 사과를 한 다음 물러갔다. 두 총리는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그러나 20분쯤 지나자 이번에는 어떤 여자가 정신병자처럼 머리를 산발한 채 온몸을 비틀거리면서 총리실에 나타났다. 총리는 또다시 그 여자에게 말했다. "마리, 제발 규칙 제6조를 기억하세요." 마리라는 여자는 순식간에 마음의 평정을 되찾더니 사과를 한 다음 물러갔다. 그런 장면이 세 번째로 연출되자, 방문국 총리가 주최국 총리에게 물었다.
"나는 전에 많은 광경을 보아왔지만, 이처럼 놀라운 광경은 처음입니다. 나에게 규칙 제6조가 무엇인지를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주최국 총리가 말했다. "그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규칙 제6조는 당신의 일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 정말 멋진 규칙이로군요. 그러면 나머지 규칙은 무엇인가요?" "나머지 규칙은 없습니다."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당신 자신이 먼저 마음을 가볍게 가지면 주위 사람들도 밝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남들을 향해 밝은 마음을 가지라고 강요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당신 자신이 주체가 되는 것이다. 당신은 긴장 상황에서 그 긴장을 푸는 하나의 완화책으로서 농담을 던질 수도 있다. 유머와 웃음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유머는 남의 멱살을 잡고 싶어하는 우리 자신을 극복하게 해준다.
또한 규칙 제6조를 기억하는 것은 '이해타산적인 세계'의 경쟁적 환경에서 발달된 우리의 자의식을 완화시켜준다. 그런 자의식을 통상 계산적 자아라고 부른다. 계산적 자아는 자신이 아주 중요하게 취급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규칙 제6조를 실천하면 우리는 계산적 자아에서 탈피할 수 있으며, 계산적 자아의 영향력을 깨뜨릴 수 있다.
계산적 자아는 결핍의 세계에서 무엇보다 먼
저 자신의 생존에 신경 쓰는 존재이다. 총리실에 뛰어 들어온 피터와 마리의 목소리는 비탄과 슬픔에 찬 계산적 자아의 도착을 알리는 목소리이다. 우리들의 자아가 겉으로는 아무리 자신감 넘치고 균형감 있게 보일지라도, 그 안에는 자기 자신이 나약하고 주변적이며 모든 것을 잃어버릴 위험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는 계산적 자아가 존재한다.
언젠가 뉴캐슬의 페스티벌에서 마스터 클래스를 가르쳤는데, BBC가 그 수업을 녹화했다. 마침 그 시간에 참석한 제프리라는 한 학생은 젊은 테너 가수였는데, 최근 밀라노의 저명한 라 스칼라 오페라 극장에 취직했으며, 그의 태도는 자신감이 흘러 넘쳤고, 자신이 올린 성공적인 성과를 아주 대견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