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을 이루는 변화의 법칙
빌 코트링어 지음 | 시아출판사
나의 꿈을 이루는 변화의 법칙
빌 코트링어 지음/김광수 옮김
시아출판사/2003년 2월/264쪽/10,000원
제1부 혼란의 시작
양자택일 - ‘흑’ 아니면 ‘백’
헌법 제1조 - 이것 아니면 저것.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중간이란 없다.
월요일 아침, 쥐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두 마리의 고양이(카오스와 컨퓨전)가 행동에 돌입했다. 카오스가 수고양이인 컨퓨전에게 말했다. “컨퓨전! 아무래도 쥐의 신체적 한계를 이용하는 게 좋겠어. 쥐는 앞과 뒤를 동시에 볼 수 없잖아. 처음부터 아예 뒤돌아볼 생각조차 못하도록 만들어야 해. 그래야만 눈앞에 보이는 반쪽 짜리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게 될 거야.” 이분법적 사고를 유발해서 혼란을 가져오겠다는 계획에 관해 충분히 생각한 카오스와 컨퓨전은, 첫 번째 법안을 만들었다.
헌법 제1조가 적용된 후, 쥐 세계에는 혼란이 찾아왔다. ‘중간’이라는 개념이 없어졌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쥐들이 늘어났다. 모든 것을 반으로 나누면 단순명료해질 것 같았지만, 오히려 세상은 복잡해졌다. 조화와 균형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모두 일이나 노는 데에만 빠져 있었으며, 융통성은 자취를 감추고 소극적이거나 공격적인 쥐만이 살아남아, 쥐들의 세계를 더욱 깊은 좌절로 빠져들게 했다.
월요일 오후, 쥐 세계에서는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클래리티와 심플리시티가 이분법적 사고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을 퍼뜨리고 있었던 것이다. 쥐들은 과다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와 폭식, 폭음, 흡연, 운동부족 등 자신을 돌보지 않은 생활태도 때문에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쥐들은 자신들에게 좀더 개선된 근무환경과, 좀더 많은 휴식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쥐에게도 정신적 성장의 기회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반쪽 짜리 세상을 전부인 양 생각하고, 다른 쥐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던 지난 시간들을 반성했다. 초저녁 무렵, 뭔가 심상치 않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음을 눈치챈 카오스와 컨퓨전은, 쥐들을 혼란에 빠뜨릴 새로운 방법을 궁리하기 전에 잠부터 자두기로 했다.
적대감 - 미움은 미움을 낳는다
헌법 제2조 - 모든 호의적이고 배려 깊은 행동을 금지한다. 쥐들은 서로 적대적으로 대해야 한다.
화요일 아침, 카오스와 컨퓨전은 이와 같은 법안을 만들었다. 그리고 쥐 세계에 두 번째 치명타가 날아들었다. 쥐 사회에는 인내와 관용의 미덕은 사라지고, 교만과 냉소주의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늘 투덜거리거나 불평만 늘어놓는 쥐, 혼자 잘난 척 뻐기는 쥐, 가식적으로 고상한 척하는 쥐, 약속을 마음대로 취소하는 쥐, 배신의 음모를 세우는 쥐 등 다른 쥐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쥐들이 넘쳐났다. 쥐들의 관계는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시간이 지나자 탄압과 저항이라는 분쟁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러나 이런 혼란도 클래리티와 심플리시티의 활동에 지장을 주지는 못했다. 자신들의 적대적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타당한 이유는 있는 것인지에 관해 반성해 보고, 상황을 개선하려는 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두 번째 조항은 두 고양이가 기대했던 만큼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언어의 바벨탑 - 이해를 말하되 이해할 수 없다
헌법 제3조 - 의미가 분명치 않은 말로만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건성으로 들으라. 경청은 금지한다.
수요일, 두 고양이의 노력은 사그라질 위험에 처했다. ‘절대 혼란’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공부를 한 카오스가 새로운 방안을 내놓았다. 이제 쥐 사회에서는 의사소통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졌고, 혼란은 가중되었다. ‘이해’라는 단어 자체를 찾아볼 수 없는 세상으로 바뀌고 말았다. 쥐들은 ‘나’라는 단어를 아예 ‘너’로 대체하여 모든 책임을 상대방에게 떠넘겼다. 그렇게 되자 정당한 자기 주장은 사라지고, 일방적으로 공격하거나 당하고만 있는 소극적 성향만이 남아 혼란을 더욱 부채질하였다. 한편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정보를 유포하면서 세상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집단도 생겨났고, 사이버 공간도 마찬가지였다. 특별한 규칙이 없고 익명이 보장되는 만큼 힘센 자가 사이버 공간을 지배하는 현상이 도처에서 벌어졌고, 온라인 대화방과 게시판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가득한 혼란의 도가니였다. 세 번째 법안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다. 안도감에 젖은 두 마리 고양이는 미소를 지었다.
숨바꼭질 - 가면 뒤에 숨어 있는 나는 누구인가?
헌법 제4조 - 누구든 숨바꼭질 놀이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놀이가 어떠한 의미를 갖는 것인지 알려고 해서는 안 된다.
목요일, 혼란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쥐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쥐들은 표면으로 드러나는 의미의 이면에, 존재하는 본질을 파헤쳐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각 매체에서는 ‘현재의 모습’과 ‘이상적인 모습’을 알리기 위한 글을 지속적으로 내보내면서 신중하게 용어를 선택했다. 그렇게 쥐들의 혼란은 서서히 극복되어 갔다.
두 고양이는 혼돈을 다시 불러일으키기 위해 새로운 쥐덫 하나를 고안해냈다. 카오스는 ‘건망증 놀이’를 도입하여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원인은 무엇인지를 완전히 망각하도록 하는 한편, 쥐들이 가진 기본적인 정체성마저 기억하지 못하도록 했다. 얼마 뒤 컨퓨전은 ‘담력 놀이’란 놀이도 퍼뜨리기 시작했다. 쥐들은 거짓말을 하거나, 약물을 사용하기도 했다. 고속도로에서 과속주행을 하는 것은 심한 축에 끼지도 못했다. 담력 놀이가 만연된 쥐 세계에서는 온전한 의식 자체를 송두리째 잃어버릴 수 있는 위기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 ‘숨바꼭질 놀이’는 여러 가지 현상을 초래했다. 부모와 아이, 교사와 학생, 상사와 부하직원 간의 모든 관계에서 원래 자신의 모습을 잊어버린 채, 그저 표면적으로 오로지 맡은 역할만을 연기할 뿐이었다. 이렇게 자신으로부터 ‘숨어 버리는’ 일에만 열중하다 보니, 스스로 책임져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린 쥐들도 생겨났다. 쥐들은 자신의 운명을 책임질 주체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이 놀이를 선택한 주체도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마저 망각해 버렸다. 쥐들의 혼란이 더해질수록, 고양이들의 밤은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억측과 비약 - 내가 한 번 옳다고 하면 옳은 것이다
헌법 제5조 - 논리적으로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이해하려는 모든 시도를 금지한다.
금요일 아침이 밝아오면서, 한 무리의 쥐들이 해결책 마련에 착수했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독창적인 방법 하나가 개발되었다. 이 방법은 양자택일을 해야 할 필요도, 다른 쥐에게 책임을 전가할 필요도 없는, 모두에게 유익한 윈 윈(win-win) 전략이었다. 쥐들은 더 이상 과거의 사고방식에 얽매이지 않았다. 새로운 사고방식을 응용하여 부정적 사고방식을 긍정적으로 바꾸자, ‘포용’과 ‘배제’ 사이의 갈등도 사라졌다. 새로운 사고방식이 가능해지면서 ‘이것 아니면 저것’ 식의 무조건적인 분할이 아니라, ‘이것과 저것’ 식으로 포용의 범위가 한층 넓어졌다. 또한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던 부정적 에너지 대신, 긍정적 에너지를 분출함으로써 합의에 이르는 길도 한결 쉬워졌다. 시간이 흐르자 많은 쥐들이 자아도취와 숨바꼭질 쥐덫의 긍정적인 측면까지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카오스와 컨퓨전으로서는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또 다른 법안을 만들었다.
쥐들의 세상은 다시 분명한 것과 불분명한 것, 옳은 것과 틀린 것, 좋은 것과 나쁜 것 등으로 양분되었으며, 둘 다 옳거나 틀린 상황은 결코 존재할 수 없었다. 쥐들은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상식이 사라졌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들이 지나친 일반화와 단순화, 운명론적 사고 등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마저 깨닫지 못했다. 쥐들은 생각과 감정도 혼동하기 시작했다. 생각이 곧 감정이고 감정이 곧 생각이라고 확신하게 된 쥐들은, 서로 편을 나누어 다투기 시작했다. 싸움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하지만 쥐들은 혼란을 극복하고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토요일 아침이 밝아올 무렵에는, 적지 않은 수의 쥐들이 논리적인 사고를 어느 정도 회복해냈다.
마비상태 - 눈 뜬 장님
헌법 제6조 - 해는 뜨기도 하고 뜨지 않기도 한다. 이해하려 하지 말라.
토요일, 두 고양이가 꿈꾸던 달콤한 휴식은 사라져 버렸다. 생각에 잠겼던 카오스가 입을 열었다. ”창조적인 모든 것들은 분명한 방식으로 표현될 때 이해도 빨리 되는 법이야. 하지만 미술작품이나 문학작품, 음악작품 같은 걸 보면 애매한 비유법을 써서 표현하고 있잖아. 그렇게 되면 진리를 알아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워지지. 치즈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고.“ 컨퓨전이 한마디 거들었다. ”우리의 계획을 성공시키려면, 쥐들의 감각과 인식 능력부터 마비시켜야 될 거야.“ 두 고양이는 새로운 법안을 제출하기 위해 의회로 달려갔다.
새로운 법의 시행으로 쥐들의 감각은 마비되었다. 카오스는 쥐들이 모르게 몇 가지 중요한 가치판단의 우선 순위를 뒤바꿔 버렸다. 고양이들의 음모는 쥐들의 무의식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성공에 앞서 실패를 경험해야 하는 이유, 이해에 앞서 오해를, 단순성에 앞서 복잡성을 거쳐야 하는 이유에 대해 어느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제 쥐들에게는 정말 필요할 때 요긴하게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의 황혼기를 대비하는 것이 돈을 버는 일차적 목표가 되었다. 그래서 젊은 시절에 좀더 많은 경험을 쌓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든지 하는 일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쥐들의 정부기관도 범죄자들을 수용하는 데는 엄청난 비용을 지출하면서, 정작 도움을 필요로 하는 범죄 희생자들에게는 아무런 대책도 세워 주지 않았다. 무질서를 인식하는 일 자체가 우선 순위에서 한참 뒤로 밀려 버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카오스의 얼굴에 비로소 만족스런 미소가 피어올랐다.
속도의 희생양 - 시간은 항상 부족하다, 빨리! 빨리!
헌법 제7조 - 시계와 달력을 보지 말라. 더 이상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 서둘러라. 빨리, 더욱 빨리.
일요일이 되었지만, 모든 계획들은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를 낳지 못했다. 혼란을 극복하자는 클래리티와 심플리시티의 말에, 귀를 기울인 쥐들이 힘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었다. 한편, 급박해진 카오스와 컨퓨전은 마지막 법을 만들었다. 이로써 쥐 사회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너무도 빨리 움직이는 세상은 많은 변화를 낳았다. 쥐들은 모든 일에서 즉각적인 만족을 얻으려고 했으며, 한편 낙오하는 쥐들이 생겨났다. 거리에는 노숙 쥐들이 급속도로 늘어갔고, 그것은 사회문제로 등장하였다. 몇몇 쥐가 그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대책 마련에 돌입했지만, 카오스와 컨퓨전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두 고양이는 다시 ‘시간은 무한하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무한하니 서두를 일도 없었지만, 부지런히 열중할 필요도 없어졌다. 최근에 개발된 초고속 인터넷도 시간을 낭비하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 그저 끝없이 많은 시간을 낭비하는 일밖에 달리 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극심한 혼란 속에서 절망에 빠진 클래리티와 심플리시티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마침내 고양이들의 목적은 달성된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변화의 수용 -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
특별법 - 이 조항 이외에 이제까지의 다른 모든 법은 모두 취소한다.
카오스와 컨퓨전 두 고양이는 이제까지 쥐 사회에 적용했던 법을 모두 취소한다는 내용을 담은 법을 제정하기로 정했다. 그 동안 쥐들뿐만 아니라 고양이들도 정신적인 쥐덫에서 비롯된 혼란으로 고통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법안은 모든 쥐들과 고양이들에게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쥐들은 비논리적 사고와 잘못된 의사소통이 빚어내는 폐단에 대해 생각해 볼 여유를 가졌으며, 지나치게 복잡한 일을 추구하는 대신 단순하고 분명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또한 이성적이고 창의적으로 문제의 본질적인 면을 파악함으로써 최선의 해결책을 이끌어냈다. 언어도 분명하고 명쾌하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쥐들은 실패나 실수가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후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또한 비논리적이고 주관적인 추측에만 집착하던 과거와는 달리, 핵심을 간파할 수 있는 올바른 질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균형의 의미를 이해하는 쥐들도 점점 많아졌다. 질서도 다시 회복되었다. 쥐들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격차에 대해서도 눈을 뜨기 시작했다. 또한 겸손의 미덕이 확산되면서 상대방에 대해 친절하고 배려심 많은 태도가 가능해졌고, 서로 협력하는 일도 그만큼 많아졌다.
쥐 사회가 평온을 되찾자, 클래리티와 심플리시티는 비로소 자신들이 만들어낸 성공에 대해 자축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날 밤, 클래리티와 심플리시티는 세상에 끝없는 변화가 촉진되고 그로 인해 혼란과 혼돈의 상황이 닥치는 내용의 꿈을 꾸었다. 하지만 결코 두렵지 않았다. 어찌 보면 그것이 바로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었다. 누가 혼돈을 창조하고 누가 질서를 회복하든, 그러한 문제들은 앞으로도 반복해서 발생할 것이다. 무엇보다 분명한 사실은 혼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명확성과 단순성이 필요할 것이며, 그렇게 해서 다시 질서를 회복한다 하더라도 또 다른 혼돈의 발생으로, 삶은 더욱 흥미롭고 즐거운 모험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제2부 고양이들이 전하는 변화의 법칙
지난 일주일 동안, 모든 고양이와 쥐들은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주변의 환경과 싸워 나가야만, 치즈를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히려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더욱 쉽게 치즈를 손에 넣고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카오스와 컨퓨전은 가정을 꾸리고 몇 마리의 새끼 고양이를 입양하기로 했다. 부모가 될 두 고양이는 새끼 고양이들이 삶에서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항목들을 간추려 목록을 작성하기로 하였다.
1. 변화를 맞이하는 법
- 귀 기울이는 이에게만 들리는 소리가 있다: 컨퓨전은 다른 고양이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런 컨퓨전의 태도는 놀라운 변화를 불러왔다. 이전에는 자신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는 고양이가 없었는데, 이제는 많은 고양이들이 컨퓨전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컨퓨전은 상대방의 말을 들을 때는 이성과 감정을 적절하게 포괄하는 직관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상대방을 비난만 하다가는 영원히 가치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없게 될지도 몰라. 상대방의 말을 충분히 이해하고 들었을 때, 비로소 소중한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거야. 그래야만 상대방에게 좋은 대답도 해 줄 수 있어.” 카오스의 조언은 이렇게 끝을 맺었다.
- 길가의 작은 풀도 즐거움을 속삭인다: 카오스는 새끼 고양이들에게 평범하고 사소해 보이는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는 방법을 가르치기로 했다. “진정한 만족과 행복은 석양을 바라보며 새를 잡는 꿈을 꾸거나, 푸른 잔디밭을 여유롭게 걷는 것처럼 아주 작은 일에서 비롯되곤 하지.” 컨퓨전은 평범한 것에서 즐거움을 만끽할 줄 아는 카오스가 대단해 보였다. 두 고양이는 세상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카오스가 스스로를 합리화하듯 말했다. “언젠가는 세상의 모든 가치를 둘로 나누려는 시도 따위는 하지 않게 될 거야.” 컨퓨전도 한마디 거들었다. “아직은 둘로 나누려고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느껴져. 어떻게 하면 이런 행동을 중단할 수 있을까?” 해답을 알 수 없었다. 자신들이 겪는 시행착오를 새끼 고양이들에게 직접 행동을 통해 보여주기로 했다. 백 번의 말보다 한 번의 실천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 카오스와 컨퓨전은 ‘정보’와 ‘지식’의 차이, 즉 정보란 기억하고 있는 모든 세부적인 내용인 반면 지식이란 모든 사물이나 개념의 유기적인 조화가 깨졌을 때 회복시키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그리고 많이 안다고 해서 지혜롭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명하다는 것은 ‘현실의 자신’과 ‘이상 속의 자신’ 사이의 격차를 좁혀 나가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라는 사실, 그것은 그들의 삶에 전환점이 되었다. 그 격차를 줄이는 데에는 특별한 비법은 없었다. 다만 무엇이든 시도하는 것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컨퓨전은 과거와 미래 모두가 현재의 연장선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현재에 집중한다면, 더욱 많은 시간을 현명한 고양이가 되기 위한 노력에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