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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안의 기적을 깨워라

나폴레온 힐 지음 | 국일미디어
당신 안의 기적을 깨워라

나폴레온 힐 지음/강주헌 옮김

국일미디어/2002년 7월/263쪽/9,000원





누구나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미래의 아빠가 병원 분만실 앞 복도에서 초조하게 서성이고 있었다. 분만실 문이 열리고 두 간호사가 나왔지만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서둘러 지나가 버렸다. 다시 문이 열리고 의사가 나왔다. 의사는 그에게 들어오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미리 말해 둘 것이 있습니다. 아들이지만 귀가 없는 채로 태어났습니다. 평생을 귀머거리로 지내야 할 것입니다." 아버지는 의외로 차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귀가 없이 태어나더라도 그것 때문에 평생을 귀머거리로 지내지는 않을 겁니다."

"선생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이 나을 겁니다. 의학계에 이런 사례가 몇 번 있었지만 한 사람도 청력을 회복한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대답했다. "선생님, 어떤 의미에서 저도 의사입니다. 인간이 진실로 원하고 갈구한다면 어떤 역경이라도 극복할 수 있는 강력한 치유법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첫 단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어떤 경우라도 체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흘렀다. 그로부터 25년 후 한 의사가 손에 엑스레이 필름을 들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진료실로 들어왔다. "정말 기적입니다. 이 청년의 머리를 모든 각도에서 엑스레이 촬영을 해보았지만 청력기관의 징후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청년은 정상인의 청력 65퍼센트를 갖고 있습니다." 그 의사는 뉴욕 시에서 권위 있는 귀 전문의였다.

이 이야기는 조금도 꾸며낸 것이 아니다. 귀가 없는 채로 태어난 것을 결코 치유될 수 없는 숙명적 천형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아버지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거의 9년 동안 나는 아들의 청력을 회복시켜 주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로 아들의 청력을 정상인의 65퍼센트까지 회복시킬 수 있었다. 이런 '기적'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이 비밀을 밝혀 줄 결정적인 단서는 정신자세에 있다. 따라서 우리는 긍정적 정신자세의 무한한 가능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정신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상황을 조절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는 어떤 형태의 두려움이나 근심이라도 어렵지 않게 떨쳐 낼 수 있을 것이다.

토머스 에디슨을 예로 들어보자. 그는 1만 번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백열전구를 발명해서 위대한 전기시대를 열었다. 만약 그가 긍정적인 정신자세를 갖지 않았다면 1만 번의 실패에 따른 좌절감을 어떻게 이겨 낼 수 있었겠는가! 앤드류 카네기를 가난과 어둠의 세계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도 긍정적인 정신자세였다.

긍정적인 정신자세는 희망과 믿음의 결정체이다. 신앙과도 같은 신념의 결정체이다! 신념은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주는 열쇠이다. 그러나 그 열쇠는 긍정적인 정신자세를 굳건히 유지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질 뿐이다.



삶의 기적은 변화로부터 시작된다

삶의 기적은 끊임없는 변화에서 시작된다! 변화의 법칙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자연법칙의 하나이다. 변화가 없다면 오늘날처럼 풍요로운 문명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동안 변화가 없었다면 인류는 태초의 삶을 지금도 살고 있었을 것이며, 본능에 얽매인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비참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버지니아 가문은 버지니아 남동쪽의 산악지대에서 대대로 살아왔다. 상대적으로 빈곤한 마을이었지만 철로가 연결되면서 탄전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버지니아 가문은 가지고 있던 땅을 상당한 액수에 팔고 도시로 이주해 현대식 집을 지었다. 초현대식 설비로 된 화장실만도 3개인 집이 완성되었을 때 마무리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안주인은 건축업자에게 건축비 지불을 거부했다.

건축업자가 물었다. "대체 빠진 곳이 어딥니까?" "당신도 알잖아요. 뒷마당에 옥외변소가 없어요!" 건축업자가 어이없어 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도시에는 옥외변소가 필요 없습니다. 초현대식 설비가 갖추어진 화장실이 3개씩이나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옥외변소에 앉아 시어스 카탈로그를 보는 낙으로 살아왔어요. 당장 옥외변소를 지어주세요."

결국 옥외변소가 세워졌다. 내침 김에 건축업자는 수도관 외에 온수관까지 설치했고 전화선까지 연결시켰다. 덕분에 안주인은 옛날처럼 옥외변소에 앉아서 전화로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서 시어스 카탈로그를 읽을 수 있었다. 자기만족과 낡은 습관이 변화와 발전을 거부한 것이다.

낡은 습관에서 벗어날 때 예전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더 큰 기회를 맞이할 수 있다. 인간은 변화의 법칙에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역경과 육체적 고통, 걱정과 근심, 실패와 순간적 좌절이 덮칠 때 우리는 자연에서 어려움을 이겨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현재의 역경에서 무엇인가를 배워서 역경이 다시 닥칠 때 우리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세상을 살아오는 동안 숱한 변화를 겪었지만 한 번도 좌절한 적이 없었다. 내가 도저히 조절할 수 없는 처절한 상황에서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내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나 자신을 '철저하게 다시 만드는 작업'이었다. 이 작업을 통해서 나는 실패로 직결될 수밖에 없는 습관을 떨쳐 내고, 성공을 보장해 주는 습관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있었다.

현재의 습관을 어느 정도 변화시켜야 하는가는 전적으로 우리가 결정할 문제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균형 잡힌 삶을 원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다면 반드시 떨쳐 내야 할 잘못된 습관이 있다. 바로 7가지 원초적인 두려움이다. 첫째는 가난에 대한 두려움이고, 둘째는 비판에 대한 두려움이며, 셋째는 허약한 건강과 육체적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다. 넷째는 사랑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고, 다섯째는 자유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며, 여섯째는 연령에 대한 두려움이고 마지막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우리가 현재 위치에 있는 것은 현재의 습관 때문이다. 우리는 습관을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다. 따라서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라도 그 습관을 변화시킬 수 있다. 습관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에 따라 결정된다. 생각하는 방식은 창조주가 우리에게 관리권을 부여한 절대적 권리이기도 하다. 이 권리를 올바로 행사할 때 엄청난 보상이 뒤따르지만, 그 권리를 잘못 행사할 때에는 호된 죄값을 치르게 된다.



고통은 축복을 위한 자연의 선물이다

육체적 고통이 있을 때 우리는 즉각 반응하며 그 원인을 찾아 제거하려 한다. 예컨대 두통이 있을 때, 현명한 사람은 소화불량이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러나 현명치 못한 사람은 아스피린으로 두통을 억누르려 하면서, "아스피린이 두통을 없애 줄 거야."라고 자위한다. 물론 아스피린도 두통을 일시적으로 완화시켜 주겠지만 근본적인 치유책은 아니다. 두통의 원인을 치유한 것이 아니라 통증을 전달하는 신경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킨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고통과 질병이 우리를 위해 고안된 자연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에게 이것은 저주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자연은 우리를 병석에 눕게 만들 때 움직일 힘까지 빼앗아 간다. 모든 에너지를 건강 회복에 집중시킬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한 배려이다. 또한 자연은 우리에게 충분한 휴식과 시간을 주어 정신력을 되찾게 해줄 뿐 아니라 명상과 사색을 통해서 질병의 원인을 추적하게 해준다.

육체적 고통의 정복은 수련과 극기를 통해서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숙제 중 하나이다. 또한 육체적 고통은 당신의 정신을 완벽하게 지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정신의 지배! 이것은 삶을 당신의 뜻대로 꾸려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아메리카 인디언은 육체적 고통에서 거의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심한 상처를 입었을 때에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씩씩하게 사냥을 다니고 밭을 갈았다. 남부 산악지대의 여인들은 아기를 낳은 다음 날부터 집안 일을 시작한다. 그들은 해산을 그저 가벼운 두통이나 감기쯤으로 여길 뿐이다. 요컨대 그들은 육체적 고통에 따른 두려움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육체적인 고통이나 정신적인 고통, 실망과 좌절, 슬픔 등에 따른 괴로움은 더 높은 곳을 향한 도약의 기회일 수도 있지만 영원한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타격일 수도 있다.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전적으로 당신의 정신자세에 달려 있다. 그런 상황을 장애물로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더 높은 곳을 향해 가는 디딤돌로 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역경을 성공으로 변화시켜라

악전고투! 이런 힘겨운 투쟁을 통해서 우리를 성장․발전시키고 더욱 강하게 단련시키기 위해서 자연이 만들어낸 교묘한 장치가 바로 역경이다. 역경은 시련일 수도 있지만, 그 원인을 찾아 해결할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해야 할 보람 있는 경험일 수도 있다.

지금 당신이 처한 입장을 곰곰이 생각해 보라. 하루라도 투쟁하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있는가?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서 무엇인가와 끊임없이 씨름한다. 투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하고 보람 있는 목표의 성취를 위해 투쟁하는 편이 훨씬 낫지 않겠는가! 뚜렷한 목표가 있을 때 판단력이 냉철해지고 열정이 샘솟으며 신념과 의지가 굳건해진다.

당신이 어떤 삶을 살고 있든 간에 쇠약과 죽음의 원인은 게으름이다. 자연이 결코 용납하지 않는 것이 바로 게으름이다. 계속해서 투쟁할 것인가 아니면 썩은 나무처럼 말라죽을 것인가? 자연은 우리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가장 강한 나무는 울창한 숲속에서 안전하게 서 있는 나무가 아니다. 툭 터진 평원에 외롭게 서서 비바람과 맹렬하게 맞서 싸우는 나무이다.

대부분의 투쟁에는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자연은 그 고통을 어떤 형태로든 보상해 준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고통이란 실질적인 체험을 통해서 어떤 역경이라도 이겨낼 힘과 지혜를 얻는다. 어떤 분야에서 성공한 지도자는 시련을 이겨내며 지도력을 쌓아갔다. 투쟁을 통해서 철저하게 검증 받지 않은 사람이 지금까지 인류에게 커다란 위기가 닥쳤을 때 지도자로 선택된 경우는 없었다.

나는 20년 동안 성공철학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들과 씨름했다. 성공철학에 필요한 지식 확보를 위해 씨름했고,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위해 힘겨운 투쟁을 했다. 또한 내가 만든 성공철학을 세상에서 인정받기 위해 더 큰 투쟁을 해야 했다. 20년간의 투쟁은 내게 어떤 물질적 보상도 직접적으로 안겨주지 않았다. 그러나 투쟁과정에서 내가 낙담하고 짜증을 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나는 처음부터 그 일의 성공과 승리는 내가 그 일에 투자하는 노동의 양에 비례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런 희망이 있었기에 결코 실망하거나 낙담하지 않았다.

또한 나는 그 투쟁을 통해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 투쟁을 통해서 내 영혼의 깊은 내면까지 들어갈 수 있었고, 그곳에서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의 존재를 보았다. 과거에도 내게 있었지만 그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던 힘이었다. 오직 투쟁을 통해서만 그 존재가 밝혀지는 힘이었다.



가난을 정복하라

가난은 부정적인 정신자세에서 비롯되는 결과이다. 실제로 보통 사람이 부정적인 정신자세를 완전히 떨쳐 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가난에 대한 두려움은 두려움 가운데 첫 손가락에 꼽히는 것이며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커다란 원인이다. 그러나 가난에 대한 두려움도 정신의 한 상태일 뿐이다. 따라서 가난에 대한 두려움도 정신력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은 대부분 가난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족쇄처럼 생각하며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가난은 창조주가 약한 사람과 강한 사람을 구분 짓기 위한 시험장치의 하나라 생각할 수 있다. 가난을 이겨낸 사람들은 물질적인 면에서만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도 여유 있고 현명한 사람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가난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이라는 잘못된 착각이나 가난은 싸울 가치조차 없는 것이라는 안이한 자세에서 벗어나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가난도 많은 이점을 갖는다. 가난은 우리에게 냉철한 판단력을 키워 주고 열정을 북돋워 주며, 어떤 장애물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 기꺼이 싸워 보겠다는 의지력과 도전정신을 키워 주려는 창조주의 계획일 수도 있다. 내가 어릴 때, 의붓어머니가 아버지와 재혼한 직후, 의붓어머니가 우리를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도한 첫걸음은 아버지에게 루이스빌 치과대학에 들어가 치과의사가 되라고 설득한 것이었다. 그녀는 첫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받은 생명보험금으로 아버지의 학비를 댔다. 아버지는 치과의사가 되었으며, 열심히 일해 벌어온 돈으로 그녀가 데려온 세 아이와 나, 그리고 내 동생을 대학까지 졸업시키고 우리가 가난에서 벗어날 길을 열어 주었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원대한 목표를 성취하겠다는 의욕을 북돋워 주는 자극제가 될 수 있다. 의붓어머니는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가난을 증오하면서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가난은 위대한 결실을 잉태시키기 위한 시련일 뿐이다. 가난은 정신자세에 따라서 얼마든지 부로 바뀔 수 있다.



실패를 축복으로 변화시켜라

실패는 불행이란 가면을 쓴 축복일 수 있다. 계획대로 성공했더라면 당혹감이나 처절한 파괴만을 야기했을지도 모를 원래의 목표를 돌이켜 생각해 볼 기회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실패는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어 주고, 시행착오라는 교훈을 통해서 현실을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지혜를 안겨 주기도 한다. 또한 실패는 효과 없는 방법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고 우리의 허영심과 오만을 치유해 준다.

당신이 스스로 선택한 상황에서 실패한 원인을 분석해 보라. 그러면 어떤 실패에서도 그에 합당한 보상의 씨앗을 얻을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실패가 잘 익은 열매를 보상해 준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당신에게 보상의 씨앗을 던져 줄 뿐이다. 따라서 그 씨앗을 찾아내서 발아시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려 있다.

나도 일찍이 20번 이상의 참담한 실패를 경험했다. 거듭되는 실패에서 나는 과거의 삶을 훌훌 털어내고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즉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찾았으며 만날 수 있었다. 내게 그 길을 인도해 준 것은 역시 실패의 교훈이었다.

누구도 실패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평생을 살아가면서 한두 번의 실패를 겪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각자가 원하는 대로 실패에 대응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개인의 힘으로 어찌 해볼 수 없는 상황은 십중팔구 실패로 치닫게 마련이다. 그러나 실패에서 합당한 보상의 씨앗을 찾아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당신의 의지력까지 빼앗는 상황은 어디에도 없다.

실패는 어떤 형식으로든 당신에게 영향을 미친다. 예전보다 더 노력하겠다는 도전의식을 불태울 수도 있지만, 좌절해서 인생의 낙오자로 전락할 수도 있다. 대다수의 사람은 실패의 징조만 얼핏 보여도 포기해 버린다. 정작 실패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또한 단 한 번의 실패에도 많은 사람이 더 이상의 도전을 포기한다.

이제 당신에게 물어 보자. 실패하거나 어려움이 닥칠 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실패와 역경에는 그에 합당한 보상의 씨앗이 있다는 진리를 기억하라! 이 진리를 기억하며 보상의 씨앗을 찾아내고 끈질기게 그 씨앗을 발아시킨다면, 실패를 실패라고 인정하기 전까지는 실패가 아니라는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분명한 목표를 세워라

우리가 어떤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성취할 계획을 세우면 우주의 보편 법칙은 그 목표의 성취에 필요한 습관을 우리에게 안겨주면서 그 목표에 향하도록 안내한다. 그리고 새로운 목표의 성취를 위한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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