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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 돈의 안목

로버트 해그스트롬 지음 | 흐름출판


워런 버핏 돈의 안목

로버트 해그스트롬 지음

흐름출판 / 2026년 5월 / 336쪽 / 21,000원





제1부 돈의 안목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특별한 성취를 이룬 사람들에게는 전설 같은 유년 일화가 전해진다. 전 세계 최고의 투자자로 손꼽히는 워런 버핏도 마찬가지다. 6살 때 그는 할아버지 식료품점에서 25센트에 산 콜라 6개들이 한 팩을 개당 5센트에 팔아 20%의 수익을 남겼다. 7살에는 산타에게 채권 책을 졸랐고, 11살에 첫 주식투자를 했으며, 17살에는 친구와 25달러짜리 중고 핀볼기를 사 이발소에 설치한 뒤 사업을 키워 1년 만에 1,200달러에 매각했다.

복리를 이해한 자가 시간을 지배한다


1941년, 11살의 버핏은 오마하 공공 도서관에서 책 한 권을 발견한다. F.C. 미네커가 쓴 『백만장자가 되는 1,000가지 비밀』이었다. 408페이지 분량의 이 책은 수백 가지 사업 제안과 영업·광고·판매에 관한 교훈, 그리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 책에는 버핏에게 큰 영향을 준 사례가 있었다. 1933년 해리 라르슨은 식료품점에서 자신이 코인 체중계로 몸무게를 잰 뒤, 담배를 사려고 줄 선 몇 분 사이에 7명이 더 그 체중계를 쓰는 것을 목격했다. 가게 주인은 임대한 체중계로 한 달에 20달러를 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해리는 175달러로 체중계 3대를 사 매월 98달러를 벌었고, 그 수익으로 67대를 더 사들여 결국 70대로 늘렸다. 처음에 든 비용을 모두 회수하고도 상당한 돈을 모은 것이다. 매번 1페니씩, 이것이 복리의 핵심이다. 복리는 주로 이자에 적용하지만, 본질적으로 ‘수익을 이용해 추가 수익을 창출한다’는 막강한 개념이다. 훗날 버핏은 이 체중계를 예로 들며 “수익으로 더 많은 체중계를 사들이면 짧은 기간에 20대를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것이 버크셔 해서웨이를 이루는 근간이 되는 정신모형(mental model)이다.

미네커가 강조한 머니 마인드의 첫 단계는 ‘아는 것’이다. 시작하려는 사업에 관한 모든 자료를 읽고, 다른 사람들이 멈춘 그곳에서 시작하라는 것이다. 그녀는 사업 자료를 읽는 것이 그 사업가의 응접실에 앉아 문제를 논의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실제로 버크셔 본사 귀빈층에서 가장 넓은 공간은 버핏의 집무실이 아니라 도서관이며, 그곳에는 주요 기업들의 연례 보고서가 가득하다. 버핏은 이를 전부 읽고 어떤 전략이 성공했는지뿐 아니라 어떤 전략이 실패했는지를 배웠다.

두 번째 단계는 ‘행동을 취하라’이다. 미네커는 “돈을 벌기 시작하는 방법은 시작하는 것”이라며, 수많은 사람이 경기가 좋아지기를,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리느라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완벽한 순간을 미리 알기란 불가능하며, 그것을 기다리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안전함 뒤로 숨는 행위다. 다만 조언을 충분히 구했다면 이제 행동에 나서야 한다. 배우는 것과 행동하는 시점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 머니 마인드의 핵심이다. 미네커는 또 “항구를 떠나는 순간 당신은 그 배의 선장이 된다”며, 오직 자신의 판단에 기대는 것이 사업의 가장 큰 보람이라 했다.

주식은 숫자가 아니라 사업이다


1947년 와튼스쿨에 등록한 버핏은 이미 수백 권의 관련 도서를 읽은 터라 대학을 시간 낭비로 여겼고, 결국 자퇴하고 네브래스카대학에서 1년 만에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1950년 여름, 그는 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를 발견하고 ‘인생을 바꾼 책’으로 꼽는다. 그레이엄이 컬럼비아대 교수임을 알게 된 버핏은 컬럼비아대에 입학해 그의 수업을 들었다. 그레이엄의 방법은 명료했다. 기업의 현재 자산을 합산해 부채를 뺀 순가치를 구하고, 주가가 그 순자산 이하면 매수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1달러 가치의 주식을 50센트에 매수하라’는 이 체계적 접근법은 버핏의 수적 감각에 꼭 들어맞았다. 버핏은 그레이엄이 28년간 가르치며 준 최초의 A+를 받았다. 그러나 그레이엄-뉴먼에서 일하게 해달라는 부탁은 거절당했고, 그는 오마하로 귀향한다. 스물한 살 때였다.

땅 위를 걸어봐야 땅을 안다


그레이엄과 아버지 모두 지금은 투자할 때가 아니라고 조언했지만, 버핏은 “시작하는 것”이라는 미네커의 말을 따랐다. 그는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며 데일 카네기 강좌를 듣고, 대학에서 투자 원칙을 강의하고, 투자 칼럼을 쓰기도 했다. 1954년 마침내 그레이엄이 일자리를 제안했고, 버핏은 그레이엄-뉴먼에서 2년을 보냈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종목 아이디어는 대부분 퇴짜를 맞았고, 1956년 그레이엄이 은퇴하자 버핏은 “다시는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오마하로 돌아왔다.

평판과 경력 덕에 가족과 친구들이 그에게 앞다투어 돈을 맡겼고, 1956년 봄 총 10만 5,000달러로 버핏 어소시에이츠가 탄생했다. 그는 무한책임 조합원을 맡았다. 기본 규정은 유한책임 조합원에게 매년 6%를 지급하고, 이를 초과한 수익의 75%를 추가 지급하며 나머지 25%를 버핏이 갖는 구조였다. 약속한 수익을 다 지급하기 전까지 운용 보수는 없었다. 그는 단기 부침에 휩쓸리지 말고 최소 3~5년 기준으로 평가하라고 조언했고, 자신은 시장을 예언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 1957~1961년 다우존스가 74% 오르는 동안 버핏 합자회사는 누적 251%를 기록했고, 1961년 투자금은 720만 달러, 버핏의 몫은 100만 달러에 이르렀다. 그의 나이 31세였다. 1968년 버핏 합자회사는 59%라는 최고 성과를 거두었지만 버핏은 시장에서 더 이상 가치를 찾기 어려워지고 운용 피로가 쌓이자, 1969년 합자회사 청산을 선언한다. 13년간 연평균 29.5%(다우존스는 7.4%)를 기록한 그는 투자조합원들에게 세 가지 선택 방안을 제시한 후 자신은 버크셔 해서웨이로 옮겨 투자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투자자가 아니라 사업가의 눈으로 보라


버핏은 운영 초기 주가 7.50달러, 장부가치 20.20달러였던 방직회사 버크셔 해서웨이를 매수했다. 경제적 수명이 거의 없어도 값이 싸면 사라는 그레이엄식 ‘담배꽁초 주식’ 투자였다. 1965년 39%를 보유하며 위임장 쟁탈전 끝에 회사를 인수한 그는, 합자회사 자산의 25%를 가라앉는 기업에 쏟아부었음을 깨닫고 “차를 따라잡은 개꼴”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버핏은 더 강력한 원칙, 즉 장기 복리효과에 따라 다음 걸음을 내디뎠다. 그는 죽어가는 방직 사업에서 나오는 현금을 끌어모아 더 수익성 좋은 산업에 재배치했다. 그는 번 돈을 쓰지 않고 가장 수익성 좋은 곳에 재투자해 단일 품목 방직회사를 다각화된 복합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는 복합 기업이 세금·비용을 막으면서 성장성 낮은 부문의 부를 더 큰 성장 부문으로 옮길 수 있는 최적의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는 그레이엄의 전략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그레이엄은 저가 주식을 사 적정가치에 이르면 팔고 떠났을 뿐, 복리라는 단어는 그레이엄의 저서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반면 버핏은 운용 초기부터 ‘복리의 즐거움’을 말했다. 1963년 서한에서 그는 콜럼버스 항해에 3만 달러를 투자한 이자벨라 여왕을 예로 들며, 4% 복리였다면 500년 뒤 2조 달러가 되었을 것이라 했다. 그의 조언은 이렇게 정리된다. “오래 사십시오. 그리고 돈도 높은 이자율로 큰 복리효과를 누리게 하십시오.” 2021년 기준 버크셔는 자산규모 세계 6위 기업이며, 1962년 7.50달러에 산 주식은 33만 4,000달러에 거래된다. 놀라운 것은 이 성취가 신약이나 신기술이 아니라 17세기 개념인 재무적 복리효과라는 오래된 기적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제2부 워런 버핏의 스승들




투자는 사고 게임이다. 얼마나 힘이 세고 빠른지의 승부가 아니라, 세상과 그 속의 당신의 역할을 어떻게 개념화하는지가 중요한 게임이다. 타고난 기질, 살아온 경험, 교육, 읽은 책, 영향받은 사람들에게서 흡수한 생각들이 뒤섞여 ‘정신적 모자이크’를 형성한다. 워런 버핏의 경우, 주식시장은 대체로 효율적이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고 보는 것이 그의 관점이고, 종목들이 집중되고 회전율이 낮은 포트폴리오를 운영하고, 미래 잉여현금흐름을 현재할인가치로 평가하는 것이 그의 투자 ‘방법’이며, 다음으로 중시하는 것이 투자자의 ‘기질’이다. 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룬 사람을 ‘머니 마인드를 가진 이’라 부를 수 있다. 우리는 대체로 버핏의 방법론만 분석할 뿐 그 철학적 기초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데, 이 장에서는 그 뿌리를 들여다본다.

하워드 버핏, 자기 기준이 없으면 남의 삶을 산다


버핏은 네브래스카 오마하의 버핏 가문에서 태어났는데, 그 뿌리는 1867년 서부로 향해 1869년 오마하에 S.H. 버핏 상점을 연 시드니 호만 버핏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개척자들이 폭염과 질병, 위험을 무릅쓰고 서쪽으로 향한 이유는 단 하나, ‘자유’, 특히 가족의 안정된 미래를 위해 자기 사업을 꾸릴 자유였다.

워런의 아버지 하워드 버핏은 상점 사업에 관심이 없었고 저널리스트를 꿈꿨으나, 레일라 스탈과의 결혼을 위해 안정된 직업이 필요해 보험 영업으로 방향을 틀었고 이는 증권사 설립으로 이어졌다. 그는 돈보다 정치와 종교에 열정을 품은, 진실하고 솔직한 사람이었다. 1942년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고, 이후 여러 차례 당선되었다. 정치적으로 그는 뉴딜 정책에 반대한 자유지상주의 인물로 기억된다. 자유지상주의는 국가의 권위보다 개인을 우선시하는 철학으로, 그 미국적 기원에는 랄프 왈도 에머슨보다 위대한 인물은 찾기 힘들다.

에머슨과 두 버핏의 연결고리는 로저 로웬스타인이 처음 언급했다. 그는 버핏의 트레이드마크인 ‘자기신뢰(self-reliance)’가 아버지에게 배운 에머슨식 자립성의 결과라고 평가했다. 버핏이 다른 사람들의 근거 없는 이야기에 돈을 맡기지 않겠다고 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내 행위는 내가 관심 갖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에머슨의 불순응 정신과 닿아 있다. 에머슨은 고독을 지키는 것이 어렵다고 경고하며, “무리 한가운데 섞여서도 고독한 자기신뢰의 아름다움을 누리는 사람이 진정 위대하다”고 했다. 월가에서 1,200마일 떨어진 오마하의 버크셔 본사는 요란한 설교에서 멀리 떨어진 조용한 교회를 연상시킨다.

버핏은 아버지를 인생 최고의 스승이자 독서의 즐거움을 알게 해준 사람으로 꼽았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애국심과 정직, 도덕적 행동의 중요성을 배웠는데, “평판을 쌓는 데는 20년이 걸리지만 잃는 데는 20분이면 충분하다”는 조언을 인생 최고의 조언으로 꼽았다. 1964년 사망한 하워드 버핏은 워런에게 금전적 유산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이 더 큰 가치를 지녔다.

벤저민 그레이엄, 감정이 아니라 원칙으로 투자하라


1894년 런던에서 태어난 그레이엄은 컬럼비아대학을 차석으로 졸업한 명석한 학생으로, 여러 언어를 읽고 즉답하는 능력을 지녔다. 학장의 권유로 월스트리트에 진출한 그는 『증권분석』, 『현명한 투자자』를 펴내 재무분석의 대가가 되었다. 버핏은 그레이엄에게서 배운 가장 큰 가르침으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그날 시장의 움직임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 태도”를 꼽았으며, 그를 아버지 다음으로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영웅으로 여겼다.

그레이엄은 또한 특히 로마 황제이자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그의 『명상록』에 매료되어 스토아 철학을 자신의 철학으로 수용했다. 스토아 철학은 통제 불가능한 사건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감정적 반응이 합리적 판단을 방해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 목표는 ‘아타락시아’, 곧 굳건한 평정의 상태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미스터 마켓’ 비유다. 미스터 마켓은 정서적으로 불안정해 어떤 날은 흥분해 비싼 값을 부르고 어떤 날은 상심해 헐값을 매긴다. 가치와 가격을 구분하지 못하는 투자자는 오르는 가격은 탐욕으로, 떨어지는 가격은 두려움으로 바라보며 시장의 피해자가 된다. 그레이엄은 투자자의 가장 큰 적은 투자자 자신이라고 했다. 버핏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이 미스터 마켓보다 기업을 더 잘 이해한다고 확신하지 못한다면 이미 승산이 없다며 “포커에서 30분이 지나도록 누가 봉인지 모른다면 바로 당신이 봉”이라고 했다. 기업 가치평가를 끝냈다면 주가에 큰 관심을 두지 않게 되며, 재정적 행복은 시장의 일시적 의견이 아니라 궁극적 성과에서 온다.

찰리 멍거, 격자형으로 생각하라


버핏은 아버지나 그레이엄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멍거와 함께했다. 1959년 만나 친구가 된 두 사람은 1978년 멍거가 버크셔 부회장으로 합류하며 영원한 동업자가 되었다. 1924년 오마하에서 태어난 멍거는 어린 시절 버핏의 할아버지 식료품점에서 일하기도 했고,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했다. 두 사람 모두 독립적 사고를 중시했고, 깊은 탐독가였으며, 벤저민 프랭클린의 평생학습 개념을 신봉했다. 멍거의 지식이라는 우물을 들여다보려면 세 개의 열쇠가 필요하다. ‘세상 사는 지혜의 추구’, ‘실패에 대한 연구’, ‘합리적으로 행동할 도덕적 의무’.

1994년 강연에서 멍거는 주식시장과 경제를 개별 주제가 아니라 물리학·생물학·사회학·수학·철학·심리학을 포함하는 더 큰 지식체계의 일부로 보라고 권했다. 멍거에 따르면 모든 학문을 통달할 필요는 없고, 각 학문의 핵심 정신모형을 이해하면 다양한 모형이 상호작용해 최상의 결과를 내는 ‘롤라팔루자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가령 뉴턴의 작용·반작용 법칙은 수요·공급 원리와 닿아 있어 불균형이 오래 지속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다윈의 생물학적 관점은 주식시장이 살아 숨 쉬는 개체로서 양의 피드백 루프를 통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설명한다. 사회학은 다양성이 무너지면 시스템이 과열·붕괴함을, 베이즈의 확률 이론은 새 경험으로 신념을 수정하는 법을 가르친다.

멍거의 두 번째 열쇠인 ‘실패학’은 심리학에서 시작된다. 우리의 실수는 대부분 심리적 착오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디트리히 되르너는 실패가 청천벽력처럼 오는 게 아니라 작은 실수들이 쌓여 점진적으로 자란다고 했다. 멍거는 행동재무학이 학문으로 정립되기 수십 년 전인 1948년부터 이미 인지적 실패를 피하기 위한 로드맵을 그렸고, ‘오판의 심리학’ 강연에서 25개의 심리적 경향과 해결책을 제시했다. 예컨대 ‘사회적 증거를 따르는 경향’에 대한 해결책은 “다른 사람들이 잘못됐을 때 그들을 무시하는 법을 배우라”는 것이다. 세 번째 열쇠는 ‘합리적으로 행동할 도덕적 의무’다. 멍거는 “버크셔는 합리성을 추앙하는 성전”이라며 합리성을 도덕적 나침반으로 삼았다.

실용주의 철학자들, 작동하는 것만이 진리다


르네 데카르트로 대표되는 합리주의는 사고와 연역적 추리로 얻는 선험적 지식을, 프랜시스 베이컨으로 대표되는 경험주의는 감각적 관찰로 얻는 지식을 강조한다. 두 학파의 치열한 갈등을 해소한 인물이 임마누엘 칸트다. 그는 양측을 통합하는 메타이론을 세웠다. 이를 인물에 적용하면, 그레이엄은 선험적 추론으로 기업 가치를 평가한 합리주의자(데카르트 진영)였다. 멍거는 기업 운영 전반을 관찰·분석하는 경험주의자(베이컨 진영)였고, 그의 영향으로 버핏은 “그저 그런 기업을 싸게 사지 말고 훌륭한 기업을 적정한 가격에 사라”는 청사진을 받아들여 그레이엄식 사고에서 탈피했다. 버핏 자신은 칸트적 종합형이다. 안전마진 원칙에 충성하는 합리주의자이면서, 회사 소유 경험을 높이 평가하는 경험주의자이기도 하다. “사업가이기에 더 나은 투자자가 되고, 투자자이기에 더 나은 사업가가 된다”는 그의 말이 이를 잘 보여준다. 멍거는 “최대한 합리적이 되는 것은 도덕적 의무”라며 합리성은 서서히 습득 가능한 자질이라고 했다.

이 칸트주의식 실용주의 덕분에 버핏은 65년에 걸친 투자 인생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다. 결국 머니 마인드를 지닌 사람은 에머슨처럼 자기 자신을 신뢰하며 왜 그 종목을 보유하는지 안다. 멍거처럼 다양한 핵심 정신모형을 익혀 세상 사는 지혜를 쌓는다. 스토아 철학적 태도로 공포와 탐욕에 휩쓸리지 않으며, 선험적 지식과 후천적 경험이 결합될 때 최대 가치가 나옴을 알기에 합리적이다. 마지막으로 실용적이되, 배움은 끝이 없음을 알기에 겸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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