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상술
후지다 덴 지음 | 지니의서재
유대인의 상술
후지다 덴 지음
지니의서재 / 2025년 2월 / 288쪽 / 18,800원
이것이 유대 상술이다
‘78 대 22’의 우주 법칙유대 상술에는 법칙이 있다. 그 법칙은 우주의 대 법칙에 따른 것으로 우리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이 우주의 법칙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 유대인들도 이 대 법칙에 근거한 상술을 활용하여 결코 손해를 보지 않는다.
유대 상술의 기본 법칙에는 ‘78 대 22 법칙’이 있다. 예를 들어 정사각형 4개의 변에 내접한 원을 그린다고 생각해 보자. 정사각형의 넓이가 100이라고 할 때 내접한 원의 넓이는 78.5이다. 즉, 원의 넓이는 약 78이고, 정사각형과 원 사이의 넓이는 약 22가 된다. 결국 정사각형에 내접한 원의 넓이와 나머지 넓이의 비율이 ‘78 대 22 법칙’과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공기 중의 성분이 질소 78%, 산소 등이 22%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의 몸도 수분이 78%, 그 외의 물질이 22%의 비율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78 대 22 법칙’은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거스를 수 없는 대자연의 법칙이다. 인위적으로 질소 60, 산소 40 비율의 공기를 만들어 내더라도 인간은 호흡하기 어려우며, 인체의 수분 비율이 60%로 줄어든다면 인간은 생명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78 대 22 법칙’이라는 황금률은 ‘75 대 25’, 또는 ‘60 대 40’이 될 수 없는 절대 불변의 법칙이다.
돈을 버는 법칙도 ‘78 대 22’: 유대 상술도 이 법칙을 따르고 있다. 세상에는 ‘돈을 꾸려는 사람’보다 ‘돈을 빌려주려는 사람’의 수가 단연코 더 많다. 언뜻 생각하면 돈을 꾸려는 사람이 더 많을 거 같지만 실은 그 반대다. 은행은 다수의 사람에게 돈을 빌려 일부에게 빌려주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하는데, 돈을 꾸려는 사람이 더 많아지면 더 이상 영업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이를 유대인 식으로 해석하자면 세상에는 ‘돈을 빌려주려는 사람’과 ‘돈을 꾸려는 사람’이 ‘78 대 22’의 비율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돈을 빌려주려는 사람과 빌리려는 사람 사이에도 ‘78 대 22 법칙’이 존재한다. 나도 ‘78 대 22 법칙’을 활용해 돈을 번 경험이 많다. 그중 한 사례를 소개한다.
세계의 지배자, 그 이름은 ‘유대 상인’전후 일본경제는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만신창이가 된 일본을 이렇게 기사회생시킨 건 유대인들이다. 유대인 바이어가 일본의 물건을 사주지 않았더라면 일본은 달러를 벌 수도, 부를 축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유대인이라고 무조건 이스라엘 사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국적은 제각각이다. 미국인을 비롯하여 러시아인, 스위스인, 갈색 피부를 가진 시리아인도 있다. 국적은 달라도 유대인은 뾰족한 매부리코와 2,000년 동안 박해받은 역사를 간직한 하나의 민족이다. 그러한 유대민족이 오늘날 세계의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전체 인구의 2퍼센트도 채 안 되는 유대인들이 미국을 지배하고 있다. 세계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사는 유대인을 한데 모두 모아도 고작 1,300만 명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유대인이 이룬 위대한 역사적 발견이나 불후의 명작이 셀 수 없이 많다.
세계를 견인하는 유대인 군상: 세계적인 재벌 로스차일드나 천재 화가 피카소, 20세기의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이나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 그리고 역사적인 미·중 수교를 이끈 일등 공신 키신저도 모두가 유대인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나에게 더 크게 와닿는 것은 미국과 유럽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다수 상인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이다. 나처럼 미국과 유럽에서 무역을 하려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반드시 유대인을 상대해야 한다. 유대 상인이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입’을 공략하면 돈이 굴러오는 이유유대 상술의 첫 번째 상품인 여성용 상품은 많은 돈을 벌어다 주지만, 이런 상품을 취급하려면 고도의 재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상품 선택부터 판매에 이르기까지 ‘장사의 재능’이 요구된다. 하지만 유대 상술의 두 번째 상품인 ‘입’은 평범한 사람은 물론이고 평범 이하의 재능을 가진 사람도 할 수 있는 장사이다. ‘입’이란 ‘입에 들어가는 음식을 취급하는 장사’를 말한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취급하는 장사가 벌이가 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설명된다. 입으로 들어간 것은 반드시 소화되고 배설된다. 판매된 상품이 그날 중에 소비되고 폐기되는 이런 류의 상품은 먹을거리 외에는 없다. 토요일이나 일요일도 쉬지 않고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은 은행예금 이자와 입으로 들어가는 상품뿐이다. 틀림없이 돈벌이가 된다. 하지만 입으로 들어가는 상품은 여성용 상품만큼 큰 수익을 기대하기 힘들다. 유대 상술에서 여성용 상품을 ‘제1의 상품’이라 하고, 입으로 들어가는 상품을 ‘제2의 상품’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햄버거로 일본인을 금발로 개조하다: 나는 그동안 핸드백이나 다이아몬드와 같은 제1의 상품을 취급해 왔는데, 올해부터는 제2의 상품 영역으로도 손을 뻗게 되었다. ‘일본 맥도널드’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그곳의 사장으로 취임하게 된 것이다. 이 회사는 미국 최대 햄버거 업체인 맥도날드와 제휴를 맺고, 일본인에게 햄버거를 저렴하게 제공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일본인은 총체적으로 단백질 섭취가 부족한 편이다. 그래서 신장도 작고 체력이 약하다. 국제 경쟁에서 이기려면 우선 체력부터 키워야 한다. 내가 햄버거를 선택하게 된 것도 일본인의 체질을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본인이 고기와 빵 그리고 감자가 들어간 햄버거를 앞으로 천 년 정도 꾸준히 먹게 된다면, 일본인도 하얀 피부와 금발을 한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햄버거를 통해 일본인을 금발로 개조하고 싶다. 황색 피부와 검은 머리, 검은 눈을 한 일본인은 전형적인 단일민족이며 단일국가다. 일본인이 금발이 될 때야말로 일본인은 세계에서 인정받게 될 것이다. 일본인이 금발이 되는 날까지 나는 열심히 햄버거를 제공할 작정이다.
나만의 유대 상술
차별에는 돈으로 맞서라
유대 상술과의 만남: 내가 처음 유대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949년 UN군 최고사령관 총사령부(GHQ)에서 통역 아르바이트를 할 때이다. GHQ에서 근무하게 된 나는 기묘한 무리들을 눈여겨보았다. 장교도 아닌 주제에 차를 끌고 다니면서 장교들보다 더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는 군인이 있었던 것이다. ‘일개 사병이 어떻게 저렇게 부유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걸까?’ 나는 부유한 삶을 사는 군인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들은 같은 백인이면서도 군 안에서 멸시당하고 있었다.
“쥬(Jew, 유대인)!” 그들이 없는 자리에서 군인들은 그들을 이렇게 불렀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이 유대인을 경멸하면서도 유대인의 눈치를 본다는 것이었다. 그 유대인들은 전우들에게 고리로 돈을 빌려주고 월급날이 되면 가차 없이 걷어갔다. 그들이 유대인에게 꼼짝 못 하는 이유였다. 유대인 군인들은 멸시당하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상처받기보다는 경멸하는 자들에게 대출해 주고 돈으로 그들을 압박하고 제압했다. 그토록 차별받으면서도 씩씩하게 사는 유대인에게 나는 자연스레 친근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외교관에 대한 꿈과 좌절: 나는 오사카 출신이다. 하지만 오사카 상인의 아들은 아니다. 아버지는 전기 관련 기술자였다. 그래서 나는 어릴 적부터 외교관이 되고 싶었다. 이웃에 구리모토 씨라는 외교관이 살았는데, 어느 날 나는 구리모토 씨에게 내 꿈을 말했다. 그랬더니 즉시 냉담한 반응이 돌아왔다.“너는 절대 외교관이 될 수 없어.”
“왜요!” 나는 발끈했다.
“오사카 방언 때문이야. 외교관은 오사카 방언을 쓰면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거든.”
구리모토 씨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오사카 사투리를 쓴다는 이유로 오사카 출신은 유대인처럼 차별받고 있었다. 그런 차별에 맞서다 보니 오사카 사람에게는 도쿄 사람에게는 없는 억척스러움이 자연스럽게 장착된 것 같다. 차별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상대가 열등할 때 우월감에서 비롯되는 경우이고, 또 하나는 상대가 우수할 때 공포심에서 비롯되는 경우이다.
백인 군인들이 손가락질하면서 “저 새끼는 쥬야.”라며 차별하는 것은 유대인에게 가진 돈을 전부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공포심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도쿄 출신이 오사카 출신을 차별하는 것은 오사카 사람에게 도저히 장사로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이마루백화점’도 그렇고, ‘산와은행(현 미쓰비시 UFJ은행)’이나 ‘스미토모은행(현 미쓰이스미토모은행)’도 그렇다. 영화만 하더라도 대부분이 관서 지역에서 도쿄로 올라온 것들이다. 도쿄에서 아래 지역으로 내려온 것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나는 이것이 오랜 역사와 깊은 연관성이 있다고 본다.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것은 역사가 짧은 나라보다 상대에게 매료되거나 속거나 싸운 경험이 더 많이 반복되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역사가 짧은 나라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역사가 오래된 나라에 이길 수 없다. 따라서 역사가 짧은 미국인이 5,000년의 역사를 가진 유대인에게 끌려 다니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400년의 식민지 역사만을 가진 도쿄인은 닌도쿠천황 이후 2,000년의 역사를 보유한 오사카인에게는 상대가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이 분했던 도쿄 출신이 오사카 방언을 트집 잡아 외교관이 될 수 없다고 억지를 부리는 것 아닐까. 오사카 방언으로 영어를 하는 게 아니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도쿄 사람들은 듣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그런 연유로 외교관의 꿈을 단념해야만 했다. 패전 이후 정신적인 안식처를 잃어버린 내 눈에 비친 유대 상인의 용기는 살아남기 위해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듯이 보였다.
유대 상인의 용기, 나를 이끈 방향: GHQ에서 통역하던 당시, 나는 도쿄 대학 법학부에 재학 중이었다. 아버지는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어머니 홀로 오사카에 계셨는데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나는 아르바이트로 생활비와 학자금을 벌어야만 했다. 패전 후 그동안의 가치체계는 혼란 속에 흔들렸고 살아가기 위한 정신적 지주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 당시 내게 남은 것은 오사카 사람 특유의 ‘죽어도 질 수 없다’라는 오기뿐이었다. 전쟁에는 졌을지 몰라도 사회의 혼란과 경제적 궁핍에는 지고 싶지 않았다. 가난을 몰고 온 점령군에게조차 지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돈을 벌어야 한다면 적의 무리 속으로 들어가자.’ 처음 통역을 시작했을 때는 이런 마음이었다. 외교관을 꿈꿨던 만큼 허접한 수준의 영어였지만 어떻게든 영어로 문장을 구사할 자신은 있었다. 게다가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통역은 보수가 몇 배나 높았다. 패전한 나라의 국민, 황색 인종, 그런 차별을 신물 나게 겪으면서 나는 통역 일을 시작했다.
오사카에서 태어나 별수 없이 쓰게 된 방언 때문에 차별당해야 했던 오사카 사람인 내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으면서도 돈으로 동료를 묵묵히 제압하는 생명력 강한 유대인에게 매료된 이유는 이러한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유대 상술과 오사카 상술
‘박리다매’는 어리석은 상술: 내 고향 오사카의 상술은 일본을 대표하는 상술이다. 하지만 억척스럽기로 유명한 오사카 상술도 유대 상술 앞에서는 ‘상술’이라 부르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유치한 수준이다.오사카 상술을 요약하자면 ‘박리다매(薄利多賣)’로 악착같이 돈을 버는 방식이다. 그런데 유대인은 박리다매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많이 팔면 많이 벌어야지.” 또 유대인은 어김없이 이렇게 말한다. “박리로 많이 판다면 오사카 상인은 바보가 아닐까. 바보임이 틀림없어.”
나는 유대와 오사카의 역사를 비교해 보았다. 오사카는 닌도쿠 천황 이후 2,000년의 역사를, 유대는 5,000년의 역사를 가졌다. 안타깝게도 유대 역사가 2배 이상 길다. 유대가 3,000년 이상의 역사를 만들어 갈 때 일본은 문자조차 없었다. 유대 상인이 오사카 상인의 박리다매 상술을 보면서 바보가 아니라면 정신 나간 상술이라고 비웃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박리 경쟁은 죽음의 경주: 동종업계 간에 박리다매로 경쟁하다가 둘 다 망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옆집보다 조금이라도 싸게, 조금이라도 많이 팔겠다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싸게 팔겠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얻겠다는 생각은 왜 못하는지 모르겠다. 제조업이나 상사의 경우 수익이 낮으면 언제든지 쓰러질 위험에 노출된다. 하물며 ‘박리 경쟁’까지 한다는 것은 서로의 목에 줄을 묶고 ‘시작’ 신호와 함께 서로의 목을 조이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상술이다. 박리 경쟁이라는 ‘죽음의 경주’는 어쩌면 도쿠가와 시대에 권력을 이용해 상인들을 탄압하여 물건을 헐값에 팔게 했던 그때의 잔재가 남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후리다매 상술로 벌어라
희소가치는 돈이 되는 상품: 후리다매(厚利多賣)는 ‘희소가치’를 팔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오래전에 필리핀에서 가져온 진귀한 항아리를 “이것은 영국의 보물이옵니다.”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상납한 사카이(오사카만의 항구도시) 상인이 있었다고 한다. 히데요시는 매우 귀한 것으로 생각하고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다이묘에게 이 항아리를 선물로 하사했다. 다이묘도 대대로 자손들에게 이것을 가보로 물려주었다. 그런데 300년간의 도쿠가와 쇄국이 풀리고 나서야 비로소 그 항아리가 서양의 변기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그 변기가 보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까닭은 그때 일본에는 그와 같은 물건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히데요시나 다이묘는 그 희소가치를 높게 평가한 것이다. 남들에게 없는 것이 나에게는 있다는 것만큼 인간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도 없다.
무역상이 재미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해외에서 1,000엔이면 살 수 있는 것을 일본에 가져오면 100만 엔에 팔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상품의 희소가치가 높을수록 이익률은 높아진다. 상품을 싸게 수입해서 비싸게 팔 수 있는 사람, 반대로 희소가치가 있을 법한 물건을 해외에 비싸게 팔 줄 아는 사람이 능력 있는 무역상이다.
문명의 낙차를 팔다: 외국산 제품에 비싼 가격이 매겨지고 잘 팔리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오스트리아에는 액세서리를 제작하는 업체가 300여 군데나 있다. 그런데 그 어느 업체도 다른 업체의 제품을 절대로 모방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창작한 결과물에 자긍심을 가지고 몇백 년 동안 독자적인 제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곳에서는 일본처럼 남의 제품을 재빠르게 카피하는 일은 절대로 생기지 않는다. 제품 하나하나에 오래된 역사의 무게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몇백 년 내지는 몇천 년 동안의 역사적 무게, 지혜의 결정으로 빚어낸 제품이다 보니 비싼 가격을 매겨도 사람들은 그 가치를 인정해 준다. 이것이 비싸지만 팔리는 또 다른 이유이다. 무역상은 오랜 문명과 새로운 문명과의 낙차에 값을 매기고, 문명의 낙차가 만들어 낸 에너지를 이익으로 전환해 장사한다. 물론 그 낙차가 클수록 더 큰 돈이 된다.
‘엔화’를 빨아들인 유대 상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