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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히는 친절한 반도체 투자

팀 포카칩(For K-chips) 지음 | 메이트북스


술술 읽히는 친절한 반도체 투자

팀 포카칩 지음

메이트북스 / 2024년 11월 / 280쪽 / 18,900원





CHAPTER 1 전 세계 반도체에 ‘시선집중’, 왜 그런 걸까?



K반도체, 어떻게 시작했을까?


반도체 산업이 한국에 싹을 틔운 건 1965년 미국 반도체 기업 고미(Komy)가 한국에 고미반도체를 세우고 일부 공정을 아웃소싱하면서부터입니다. 외국 반도체 회사들이 한국에 공장을 짓고 조립을 맡긴 겁니다. 1974년 1월 미국에 있던 강기동 박사가 한국으로 돌아와 경기도 부천에 ‘한국반도체’라는 회사를 세우며 K반도체의 자립 여정이 시작됩니다. 한국 반도체는 손목시계용 칩을 생산했지만 자금난을 겪고, 강 박사는 그해 12월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에게 지분 일부를 넘깁니다. 삼성은 1977년 12월 한국반도체 지분 전체를 인수했고, 1978년 3월 사명을 삼성반도체로 바꾼 뒤 삼성전자와 합병합니다. 이는 지금의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맨땅에서 만들어낸 반도체, 전 세계가 놀라다:
삼성도 미국 제너럴일렉트릭 등과 기술 제휴를 맺고 반도체 사업 확대를 시도했지만 기술도, 판로도 없던 시절이라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원래 기술을 받아오려 했던 미국 마이크론의 적대적인 반응으로 삼성은 결국 자체 기술 개발을 하기로 방향을 전환합니다.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은 건 1983년 2월 초고밀도 집적회로 개발·생산 진출을 선언하면서입니다. 이전까지 삼성은 반도체 중에서도 가전제품 등에 들어가는 고밀도 집적 회로만 겨우 만드는 수준이었습니다. 첫 메모리반도체 제품으로 D램을 선택하고, 당시 주력 제품이던 64K D램 개발에 나서게 됩니다. 이는 손톱만 한 크기의 칩에 영문 글자 8천 자를 기억할 수 있는 용량입니다.

1983년 5월에 개발을 시작해, 같은 해 11월에 세계에서 세 번째로 칩을 완성했습니다. 반도체 기반이 없던 한국이 이 같은 성과를 내자 글로벌 반도체업계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말하자면 ‘맨땅에 헤딩’을 한 셈인데 삼성이 어떻게 기술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당시 삼성은 한국과 미국에 각각 개발팀을 두고, 둘을 경쟁시켰다고 합니다. 선진국보다 5년 6개월이나 늦은 개발이었지만 이는 한국이 독자적인 기술력으로 세계 반도체 시장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4년 5월, 삼성은 경기도 용인시 기흥에 반도체 1공장을 준공하고 본격 양산에 나섭니다. 그해 10월에는 256K D램을 개발했고, 1986년 7월에는 1M D램을 개발해 선진국과의 격차를 2년으로 좁혔습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태동:
삼성전자는 반도체 공장 건설에 있어서도 기존의 상식을 뒤엎고 통상 18개월 이상 걸리는 공장 건립을 6개월 만에 끝냅니다. 그 공장이 바로 지금의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기흥캠퍼스입니다. 메모리 개발에 성공했지만 이후 난관도 있었습니다. 미국이 반도체 덤핑 문제를 제기하며 수출길이 막히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삼성은 “삼성이 반도체를 생산하지 않으면 일본 기업의 점유율이 높아질 것이고 반도체값이 상승할 것”이라고 설득했습니다. 삼성전자는 1992년 D램 시장에 이어, 이듬해에는 전체 메모리 시장에서 1위에 올라섭니다.

글로벌 메모리 시장의 또 다른 주자 SK하이닉스는 당초 SK그룹이 아닌 현대그룹에 뿌리를 둔 기업입니다. 현대그룹이 1983년 2월 현대중공업에 전자사업팀을 신설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현대그룹은 이후 반도체 사업에 진출해 메모리 양산체제를 구축하고 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1990년대 후반 외환 위기가 발생하자 정부는 산업구조 효율성을 이유로 대기업 간 중복사업에 대한 합병을 추진했습니다. 당시 정부의 ‘빅딜’ 중재에 따라 메모리반도체 점유율 5위였던 현대전자가 4위였던 LG반도체를 인수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현대전자는 경영 악화와 반도체 시장의 경기 하강으로 워크아웃에 돌입하고 사명을 하이닉스반도체로 변경했습니다. 당시 자금난이 심각해지자 하이닉스반도체의 해외 매각설까지 나왔습니다. 약 10년간 주인을 찾지 못해 하이닉스는 독자적으로 생존해야 했고, 2012년 3월 SK그룹이 하이닉스반도체를 인수하며 SK하이닉스로 전열을 가다듬게 됩니다.



CHAPTER 2 K메모리가 잘나가게 된 이유



삼성이 메모리 1등으로 올라선 비결


“삼성전자 경영진은 여러분께 먼저 송구하다는 말씀 올립니다.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근원적인 기술 경쟁력과 회사의 앞날에 대해서까지 걱정을 끼쳤습니다. 그러나 삼성은 늘 위기를 기회로 만든 도전과 혁신, 그리고 극복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저희가 처한 엄중한 상황도 꼭 재도약의 계기로 만들겠습니다.”



전영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부회장)은 2024년 10월 초 3분기 실적 발표 당시 이런 내용의 ‘반성문’을 냈습니다. 고대역폭메모리(HBM)가 경쟁업체보다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하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이 부진했기 때문입니다. 한때 삼성전자에는 ‘30년 연속 메모리반도체 점유율 세계 1위’, ‘반도체 신화’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었습니다. 그 자리에 올라서는 과정이 쉽지 않았고, 위기도 많았습니다. 삼성전자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결단의 순간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높이 쌓기’ 결정, K반도체 명운 갈랐다:
1988년 이건희 선대회장은 4MD램을 만드는 방식을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반도체 칩 평면 공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당시 기술만으로는 더 이상 셀(Cell)의 물리적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반도체는 과거나 지금이나 집적도를 높이는 것이 핵심입니다. 한정된 공간에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칩을 쌓아올릴 공간을 많이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당시 메모리 용량은 빠르게 늘고 있었는데, 이를 위한 저장 공간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는 신기술이 필요했습니다. 한번 기술을 적용하면 바꾸기 쉽지 않고, 어쩌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미래까지 달라질 수 있어 이 선대회장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결정적인 순간 이 선대회장은 대다수가 선택한 ‘트렌치(Trench)’ 방식 대신 ‘스택(Stack)’을 선택합니다. 스택은 셀을 위로 쌓아올려 비교적 작업하기가 쉽고, 경제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또한 불량이 생겼을 때 쉽게 내부 회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면 트렌치는 셀을 아래로 파고 내려가며 쌓는 방식입니다. 안전을 확보함과 동시에 칩을 작게 만들 수 있지만 공정이 까다로운 데다가 내부 회로에 문제가 발생해도 해결이 어렵습니다.

이건희 선대회장의 선택은 결론적으로 성공이었습니다. 심지어 트렌치 방식을 표준으로 삼았던 많은 경쟁사는 오히려 시장에서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이는 1992년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 64M D램 반도체를 개발하고, 일본을 추월해 글로벌 메모리 시장에서 1위에 오르는 데도 결정적인 기반이 되었습니다. 이후 삼성전자는 30년 넘게 D램 시장에서 점유율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D램 신기술 전쟁, 위기의 순간도: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삼성전자를 포함해 메모리 기업들은 다시 한번 결단이 필요한 순간을 맞이합니다. 메모리 중에서도 차세대 D램 표준 방식을 두고 ‘램버스’와 ‘DDR(Double Data Rate)’의 2가지로 시장이 양분되었기 때문입니다. 1992년 미국 램버스사가 개발한 램버스 D램은 대역폭이 크게 향상된 메모리로 속도가 빠르다는 특징을 가졌습니다. 2000년대 초반 가장 널리 쓰였던 싱크로너스(Synchronous) D램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가 10배나 빨랐습니다. 반면 DDR D램은 높은 소비 전력 효율과 뛰어난 가격 경쟁력이 장점이었습니다. 당시 D램 시장에서 1위였던 삼성전자를 제치고자 일본 메모리 기업 NEC와 미국 마이크론, 독일 인피니언 등은 램버스 D램 투자를 대폭 늘렸습니다. 반면 삼성전자는 DDR D램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양분되었던 D램 시장의 상황이 정리된 시기는 2003년입니다. 이 해에 인텔은 램버스 D램 기반 칩셋의 제조 중단을 발표했습니다. 저가용 PC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했던 DDR D램의 시장 경쟁력이 더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이에 시장에서는 램버스가 아닌 DDR D램이 차세대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삼성전자가 보다 확실하게 D램 시장의 주도권을 가져가게 됩니다. 반대로 램버스 D램을 선택했던 경쟁사들은 막대한 적자를 안게 되었습니다.

삼성전자가 2006년 이후 18년째(2023년 기준) 1위를 수성해온 SSD(Solid State Drive)도 위기 상황에서 내린 결단이 주효했습니다. 저장장치 사업에서 삼성전자는 갈림길에 섰던 적이 있습니다. 바로 기존 저장장치 시장의 주류였던 HDD(Hard Disk Drive)와 차세대 제품인 SSD 중 어떤 방식을 택하느냐였습니다. HDD는 기계식 방식으로 대용량 메모리를 저장하면서도 가격이 저렴해 대중적인 저장장치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속도가 느리고 발열이 심하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습니다. 반면 SSD는 반도체에 메모리를 저장하는 디지털 방식을 활용합니다. 낸드플래시 기반이라 데이터 처리 속도가 굉장히 빠르고, 대용량 메모리를 저장하면서도 소형화가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또한 전력을 적게 쓰고, HDD처럼 발열이나 소음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HDD보다 다소 비싼 가격은 유일한 단점이었습니다. 삼성전자가 택한 것은 SSD였습니다.

이후 저장장치 시장에서는 HDD보다 SSD의 장점이 부각되며 SSD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는 상황입니다. 데이터센터나 인공지능(AI) 등에서 데이터 처리 속도의 중요성이 점차 증가하며 저장장치 제품의 주류가 SSD로 바뀌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점유율 47.4%(2024년 1분기 기준)로 전체 SSD 시장을 리드하고 있습니다.

이어진 신들린 결단, 낸드플래시 패권을 쥐다:
D램과 더불어 대표적인 메모리반도체인 낸드플래시의 경우 삼성전자의 선택이 전체 시장의 흐름까지 바꿨습니다. 현재 낸드플래시는 얼마나 높이 저장공간을 쌓아올리는지가 경쟁력의 척도입니다. 현존하는 기술력으로는 300단에서 최고 1,000단까지 양산하겠다는 계획도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낸드플래시는 초고층 아파트처럼 웨이퍼 위에 층을 차곡차곡 쌓아 저장공간인 셀을 많이 확보하는 원리입니다. 삼성전자는 이러한 시장의 ‘쌓기’ 흐름을 처음 만들어낸 기업입니다.

낸드플래시가 본격 상용화되기 시작한 2000년대 들어서 경쟁의 핵심은 ‘누가 더 미세한 공정 기술력을 확보하느냐’였습니다. 하지만 10나노(nm, 1억 분의 1m)급 공정에 들어서면서 기술적 한계에 부딪히기 시작했습니다. 통상적으로 반도체에 쓰이는 ‘나노미터’ 수치는 반도체 칩 사이인 회로의 선폭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선폭이 가늘어지면서 셀 간 간섭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럴 경우 데이터가 바뀌거나 저장 속도가 느려지는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때 삼성전자는 새로운 방식을 시도합니다. 바로 3차원(3D) V낸드 기술입니다. 여기서 ‘V’는 ‘수직(Vertical)’을 의미합니다. 기존 낸드플래시는 저장공간을 옆으로 붙여 수평 공간만을 활용했지만 이제 아래위로 쌓아 수직 공간까지 쓰기로 결정합니다. 당시 3D V낸드는 기존 10나노급 2D 플라나 낸드플래시보다 생산성이 높고, 속도와 내구성은 각각 2배, 10배 이상 뛰어났습니다. 소비 전력도 절반 수준으로 비용까지 아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이후 삼성전자는 2013년 3D V낸드 기술을 개발하고, 다음 해에 세계 최초로 수직 구조를 적용한 24단 3D V낸드를 양산하게 됩니다. 삼성전자가 3D V낸드를 양산하며 낸드플래시 시장의 기술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삼성전자는 3D V낸드를 탑재한 SSD도 선보이며 메모리 시장을 이끌기 시작합니다.

두 번의 ‘치킨게임’, 램 굳히기 통했다


한국이 메모리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순간은 2000년대 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발생한 두 번의 ‘치킨게임’입니다. 메모리 산업은 ‘규모의 경제’가 큰 경쟁력으로 작용하는데, 이로 인해 기업들 간 출혈경쟁이 불가피했습니다. 메모리가 상대적으로 기술력 등 진입장벽이 낮아 시장이 성장하면서 경쟁사가 우후죽순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이러한 출혈경쟁에서 두 번이나 굳건히 버텨 현재의 메모리 강국이 되었습니다.

반도체 산업은 경기 변화에 따라 상승과 하강이 반복되는 사이클 산업으로, D램 시장은 2007년과 2010년에 큰 고비를 맞았습니다. 2007년의 1차 반도체 치킨게임에서는 대만 D램 업체들이 생산량을 늘리며 가격 경쟁이 치열해졌고, 2009년에는 D램 가격이 급락했습니다. 이로 인해 독일의 인피니언 자회사인 키몬다가 파산했습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는 경쟁사가 무너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이 와중에도 양사는 글로벌 메모리 시장에서 1, 2위를 유지했습니다. 다른 메모리 기업들이 수천억 원의 영업손실을 낼 때 삼성전자는 되려 영업이익을 내기도 했습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 두 회사는 2009년 도합 글로벌 메모리 시장의 절반이 넘는 점유율을 차지하게 됩니다.

2010년에는 두 번째 치킨게임이 발발했습니다. 대만과 일본 기업들이 생산시설에 대규모 투자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공장 증설로 생산량을 늘렸고, D램 가격은 다시 하락했습니다. 결국 일본의 엘피다는 대규모 적자로 파산하게 되었고, 마이크론에 인수되었습니다. 현재 D램 시장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3강 체제로 압축되었습니다. 2023년 4분기 기준으로 삼성전자는 45.5%의 점유율로 1위를,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각각 31.8%와 19.2%로 뒤를 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두 회사의 점유율만으로도 77%를 넘기 때문에, 한국은 메모리 산업을 기반으로 반도체 생태계를 점차 확장하고 있습니다.

‘슈퍼사이클’로 승자독식이 펼쳐지다


치킨게임에서 승리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전 세계 메모리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게 됩니다. 메모리 제품 가격이 상승하는 추세를 ‘슈퍼사이클’이라 하며, 이 산업은 여러 차례 이런 상황을 겪었습니다. 1990년대 초 PC 산업 부흥기에 D램 가격이 급등하며 첫 번째 슈퍼사이클이 발생했습니다. 수요 폭증에 반도체 기업들은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며 생산능력을 확장했습니다. 하지만 1차 슈퍼사이클은 곧 부메랑이 되어 D램 가격은 2년 4개월 동안 하락하며 최대 87%까지 떨어졌습니다. 이후에도 여러 사이클이 있었고, D램 가격은 최대 90%까지 하락하는 등 큰 낙폭을 보였습니다.

2017년 시작된 사상 최대의 슈퍼사이클은 한국을 메모리 강국으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클라우드 서비스의 확산으로 데이터센터가 증가하면서 서버용 메모리반도체가 호황을 맞았습니다. D램 가격은 2017년 1월 약 36% 상승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빠른 속도로 수익성을 높였습니다. 삼성전자는 2017년에 영업이익률이 47.4%에 달했고, SK하이닉스도 영업이익률이 52%로 증가했습니다. 2016년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29조 2천 400억 원이었으나, 2017년에는 53조 6천 500억 원으로 급증했습니다. SK하이닉스도 2017년 13조 7천 213억 원, 2018년에는 20조 8천 438억 원으로 증가했습니다. 이들은 대규모 투자에도 성공하며, 한국의 수출 규모도 급격히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2018년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메모리 시장의 전반적인 수요가 감소하며 슈퍼사이클은 종료되었습니다.



CHAPTER 3 더욱 강화된 파운드리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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