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에 도둑맞은 탁월함
이재영 지음 | 원앤원북스
평범함에 도둑맞은 탁월함
이재영 지음
원앤원북스 / 2024년 3월 / 284쪽 / 19,000원
1부 피로사회를 떠나 여행을 떠나자
거미줄에 걸린 우리여름날 저녁, 나뭇가지 사이를 보면 어김없이 거미줄이 있다. 날벌레들은 거미줄에 걸려 버둥댄다. 아무리 힘을 써도 거미줄은 몸을 점점 감싸온다. 날벌레의 힘이 어느 정도 빠지면 거미가 다가와 꽁지에서 거미줄을 분사하여 날벌레를 꽁꽁 싸맨다. 힘이 빠진 날벌레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몇몇 날벌레는 날갯짓으로 거미줄을 찢고 탈출한다. 거미줄 밖의 공간은 자유이자 생명이다.
내면의 가시나무: 켈트 신화에는 ‘가시나무새’라는 이상한 새가 등장한다. 가시나무 새는 뾰족한 가시를 찾아다니다가 발견하면 달려드는 습성이 있다. 그렇게 가시에 찔려가며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마지막 노래를 부른다.
노래 <가시나무 새>는 우리 내면의 수많은 자아의 가시로 인해 쉴 곳 없는 영혼을 노래한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이 쉴 곳이 없다’고 말하는 노래는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로워서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다고 고백한다. 너무나 많은 내 속의 나, 그 뾰족한 가시의 나는 스스로를 불안하게 만든다. 다가오는 타인들도 가시에 찔려 떠나고 결국에는 외롭고 슬퍼지는 것이다. 가시 돋친 자아는 종종 스스로를 해친다.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는 50세 즈음에 갑자기 내면의 가시들에 찔려 자살 충동을 느꼈다. 그는 이미 명성과 부를 얻었지만 인생의 의미를 상실했다. 주변에서 뾰족한 물건들을 모두 치워야 했을 정도로 위험한 정신 상태에 있던 그는 지성이 결코 행복과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깨달음은 톨스토이의 농노들이 가난하고 고된 삶을 살고 있지만, 행복해 보였다는 사실에서 출발했다. 그들은 주변에 대해서 별 관심도 없고, 저녁에 모여 감자를 먹으며 웃었다. 누군가 병으로 죽으면 하루 정도는 통곡했지만, 금세 일상을 되찾고 굴러가는 나뭇잎을 보고도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톨스토이는 삶의 의욕을 잃은 상태에서 그들의 건강한 행복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자신을 고통스럽게 찔러대는 내면의 가시들이 그들에게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 내면의 가시들을 떨구어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자기 내면을, 그가 저질렀던 죄악들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크림전쟁에 참전해서 많은 사람을 죽였던 터라,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 실체를 잘 알고 있었다. 긴 성찰 끝에 그는 내면의 가시들을 떨구어낼 수 있었다. 이때 그 마음의 변화를 기록한 책이 『고백록』이다.
우리는 저마다의 거미줄에 걸려 있다. 열등감이라는 거미줄, 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는 거미줄, 사랑받지 못했다는 결핍이 던져주는 거미줄, 이 모두 자기 자신이 뿜어낸 것이다. 자아를 들여다보는 수많은 명상 프로그램이 유행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서구에서는 자아 과잉의 거미줄을 제거하는 일이 특히 중요해진다.
소셜 네트워크라는 가면 무도회: 우리는 소셜 네트워크에서 친구들의 일상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보는 시대를 살고 있다. 당연히 자신의 일상도 어느 정도 공개해야 한다. 사람들은 실체보다는 만들어진 이미지를 보기 원한다. 실제로는 매일 다양한 모습을 보이겠지만, 소셜 네트워크에서만큼은 변함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때로는 매일 행복에 겨워하던 사람이 잠시 계정을 쉰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는 이제 이 가면 무도회를 떠나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소셜 네트워크에는 눈길을 잡아끄는 뉴스가 가득하다. 그래서 시간을 많이 빼앗기지만 이미 소셜네트워크 중독자가 되어 쉽게 끊을 수 없다. 이 정도면 지독히 끈끈한 거미줄이다. 달콤한 설탕을 묻힌 거미줄이라고나 할까? 그 달콤함에 취해 우리의 몸은 어느새 거미줄에 칭칭 감기고 있다.
우리는 이곳에 각기 자신의 삶을 공유한다. 그 삶은 우리의 평균적인 삶이다. 결국 평범이라는 테두리에 담겨있다. 우리는 소셜 네트워크가 던져주는 평범이라는 그물, 그 거미줄에서 결코 도망칠 수 없다. 이 평범을 깨려면 소셜 네트워크를 탈출해야만 한다. 그러면 우리는 ‘좋아요’와 댓글 수에 집착하면서 스스로를 점검하는 쓸데없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또 소셜 네트워크의 거미줄에 몸을 던진다. 이미 만들어진 거미줄을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거미줄 너머로 도약하라우리를 칭칭 감고 있는 그 끈끈한 거미줄은 우리에게 평범한 인생을 살도록 강요한다. 도저히 탈출할 수 없는 그물 같은 거미줄을 잘라내고 탈출한다면 밖에는 어떤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까?
그물 밖 자유로운 새: 탁월함의 ‘탁(卓)’은 ‘높다, 빼어나다’는 뜻을 갖는다. ‘卓’ 자는 새가 새 그물 위에 나는 모습이다. 사람이 쳐놓은 새 그물보다 훨씬 높게 나는 새는 높을 뿐만 아니라 자유롭다.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안전하다. 바로 그런 높이를 ‘탁(卓)’이라 한다. 우리가 인식한 평범이란 그물에 걸려들지 않을 정도의 높은 곳이라는 의미다. 이는 어떤 그물로도 잡을 수 없는 경지, 또는 그물에 걸렸어도 이를 찢고 탈출할 수 있음을 뜻한다.
탁월함은 시대에 따라 다른 말로 등장한다. 지고한 이데아를 추구하던 시절,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 플라톤과는 달리 현실을 바라보았다. 그는 탁월함을 현실에서 이룰 수 있는 어떤 가치나 상태로 설명하고자 했다. 그의 설명은 ‘아레테(ARETE)’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은 이 단어를 ‘어떤 존재의 본질이 드러남’ 혹은 ‘자기다움’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탁월함을 고민하면서 사람들을 평범으로 빠지게 하는 것이 ‘레테(RETE)’라고 보았했다. ‘레테(RETE)’는 앞서 말한 그물, 즉 거미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물이 없는 상태가 탁월하다고 생각해서 레테(RETE)에 ‘없다’를 나타내는 접두사 ‘A’를 붙여 ‘아레테(ARETE)’를 탁월함으로 표현했다.
운명의 그물에서 벗어나자: 시시포스는 언덕 위로 돌을 굴려 올려야 하는 벌을 받았다. 그의 운명은 반복되는 고통의 노동이다. 끊임없는 고통을 견디며 신의 징벌에 대항하는 이야기가 전해져오는 까닭은 우리 인생에도 이 같은 운명적 사건들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독일 실존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우리는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고 말했다. ‘현재 존재하는 나’ 즉 ‘현 존재’는 불가사의한 이유로 이 세계에 던져졌기에 우리는 모두 죽음을 향해 가는 개별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그는 실존을 설명할 때 이해할 수 없는 외부 변수를 ‘던져짐’으로 이해했다. 그렇기에 던져진 존재에서 현재에 이르는 과정이 피동적으로 흘러갈 수도 있지만, 던져짐을 극복하는 노력을 할 수도 있다. 운명이라는 그물에 던져진 존재는 그 운명의 그물 밖으로 이탈할 때 비로소 참된 존재로 설 것이다.
수많은 아이들이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다. 남들이 다 하는 공부를 못하기도 하고, 어린 나이에 가장의 책임을 떠맡기도 한다. 그러나 절대적인 악조건을 딛고 일어나 그물 밖으로 나오는 탁월한 사람들이 있다. 초기 미국인들은 의무교육의 혜택을 거의 못 보았기에 독학으로 자수성가한 자들이 많다. 이들 중에는 15세가 될 때까지 알파벳도 몰랐던 사람마저 있다. 그러나 그들 중 토마스 제퍼슨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가 되었고, 에이브러햄 링컨은 노예를 해방시킨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다. 이들은 던져진 운명의 그물을 단호히 거부하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날아올랐다.
평범한 그들은 어떻게 탁월해졌는가?평범이란 늪을 벗어나는 길은 그물을 탈출하는 것이고, 경기장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이제 평범함에서 탁월함으로 달려간 사람들을 살펴보며 그들이 어떻게 그물을 벗어났고, 어떻게 경기장 밖에 자신의 세계를 만들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가난을 극복한 마이클 패러데이: 패러데이는 유도전기를 발견한 영국의 과학자다. 그의 발견 덕택에 우리는 모터를 돌려 에너지를 얻고, 전기자동차와 고속열차 등을 타고 빠르게 움직인다.
그는 지독하게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개신교도인 부모는 그가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글을 가르쳤지만 학교에는 보내지 않았다. 그는 학교에 가는 대신 제본소에서 일했다. 패러데이는 친구들이 공부하는 시간에 손에 멍이 들고 굳은 살이 붙도록 일을 했다. 가난한 가정 형편은 그물이 되었지만, 그는 그물을 찢어내고 탈출했다.
늘 제본을 맡기는 어느 신사 덕분이었다. 그 신사는 패러데이의 정성스러운 작업을 좋아했고, 고마움을 표시하고자 케임브리지대학의 화학 교수 험프리의 강연 티켓을 선물했다. 패러데이는 그 강연을 들으며 자기 인생을 바꿀 결심을 한다. 그는 강연 내용을 노트에 써서 책을 만들어 자신이 조수가 되고 싶다는 간곡한 편지와 함께 험프리에게 보냈다. 그리고 패러데이는 험프리의 조수로 고용되었다. 패러데이는 다시는 제본소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심과 함께 그물에서 벗어났다. 이후 패러데이는 화려하게 날아올랐고, 영국인이 지폐에 얼굴을 올릴 정도로 사랑 받는 과학자가 되었다.
실패의 굴레를 탈출하라: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공부를 해도 성적은 오르지 않았다. 참고서를 살 형편은 안 되었기에 가끔 선생님들에게 오는 증정본을 받아 공부했다. 그리고 서울대 의대에 합격한 선배가 주는 수학 문제를 풀면서 수학에 재미를 붙였다. 그러던 어느 날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3학년이 된 후 첫 모의고사를 보았는데, 주관식 문제를 척척 풀어서 전교 3등이 된 것이다. 전교 10등 안의 학생들끼리 모임을 가졌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공부했다.
하지만 대학입시에는 실패했다. 눈이 하얗게 온 날, 연탄가스를 마시고 시험장에 들어갔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부친은 재수할 돈은 없다며 알아서 공부하라고 했기에 일단 후기 대학에 들어갔다. 수석을 하면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으므로 일단 수석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던 차에 마음에 둔 후배에게 고백했지만 보기 좋게 퇴짜 맞았다. 작은 교회에 소문이 나고 창피하기 그지없는 상황이 이어지며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 모든 것이 대학을 떨어진 까닭이라며 자책했다. 입시 실패와 실연이 동시에 찾아오니 그냥 세상이 멸망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는데,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이런 생각이 몰려들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이 극도의 우울을 떨쳐내야 했다. 어차피 망한 인생, 지구를 폭파시키자는 엉뚱한 복수심이 생겨났다. 누구는 행복하고 누구는 불행할 것 없이 모두 죽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장 강력한 파워를 낼 수 있는 원자력학과를 전공으로 선택했다. 당시의 나는 그야말로 절망으로 비뚤어져 있었다.
문제는 지구를 폭파할 만한 위력을 만들려면 기초부터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규 수업 시간 이외에도 도서관에 가서 수많은 책을 읽으며 지식을 쌓아야 했다. 옛날 도서관은 분류표를 따라 카드 색인을 찾아서 사서에게 주면 책을 찾아주었다. 그리고 책 뒷면에는 언제 누가 책을 대출했는지 적는 공간이 있다. 내가 찾는 책의 뒷면을 보면 어김없이 대학 교수들의 이름이 보였다. 그들은 물리학에서 나름 명성이 자자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책을 찾으며 숨바꼭질하듯 그들이 가진 학문의 세계를 염탐했다. 가방을 무겁게 채우는 것도 모자라 손에는 항상 책을 몇 권씩 들고 다녔다.
점심은 4년 내내 학교 식당에서 파는 50원짜리 냉잇국, 아욱국, 미역국만 먹었다. 하루 종일 도서관에 틀어박혀 공부만 하는 일은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다. 봄 축제 기간에 친구 하나가 쓰러졌다. 사설 도서실에서 공부하다가 뇌출혈이 생겼다고 했다. 긴 수술 끝에 생명은 건졌지만, 그는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그런 친구를 보면서 공부하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 그래도 나는 지구를 폭파하는 것보다 공부하다가 죽는 게 사람들에게 유익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집중했다.
읽는 책의 숫자는 하루하루 늘어갔고, 학교 수업과 무관하게 독학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자 위대한 학문의 탑을 쌓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처럼 지구를 폭파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꿈을 꾸는 멍청이와는 비교가 안 되는 탁월한 사람들이었다. 처음에는 이들을 나와 비교함으로써 더 큰 절망으로 빠져들었다. 나는 멍청이라는 자괴감에 나날이 괴로웠다.
그런데 어느 날 도서관에서 얇은 책을 발견했다. 아인슈타인의 전기였다. 자타가 공인하는 천재 이야기를 읽으며 위로를 받았다. 그는 고등학교 때 아예 퇴학을 당했고, 대학입시 실패는 당연지사였다. 실연 빼고는 나와 비슷하거나 약간 더 못했다. 나는 고등학교는 졸업했으니 말이다. 아인슈타인은 대학교에서도 그다지 좋은 학생이 아니었다. 졸업은 간신히 했고, 친구 아버지의 도움으로 특허청에 취직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탁월한 사람은 아닌 걸로 보였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기적의 해라 일컬어지는 1905년에 세 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그 논문들은 하나같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런 일도 다 있구나, 절망하면 안 된다. 나도 할 수 있다. 이런 마음으로 나는 책이 누렇게 바래고 표지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갖고 다니며 마음을 다잡았다. 친구들이 취업 걱정을 할 때도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한번은 공기업에서 시험을 봤는데 우수한 성적으로 붙었다. 얼마 후 임원으로부터 특별한 코스를 마련할 테니 꼭 입사하라는 전화가 오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부친께 이 얘기를 전해드리며 취업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부친은 매우 섭섭해하며 어떻게 살 것이냐고 물으셨다. 나는 나의 원대한 계획을 말했다. 취업은 안 할 것이고, 당연히 결혼도 안 할 것이다. 그 대신 1년에 딱 한 달만 막노동을 하고 번 돈으로 공부만 하겠다고. 그러자 부친은 고개를 돌리셨다.
나는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리겠다고 생각했다. 무인도에 가서 등대지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고독한 장소에서 방정식을 푸는 모습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장난 삼아 친 카이스트 시험에 덜컥 붙어버렸다. 그것도 수석이었다. 대학에서 계속 수석을 하긴 했지만, 그것은 장학금을 받기 위함이었다. 카이스트에서도 국가장학금으로 공부했다.
돌아가신 부친에게 이렇게 황당한 녀석이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만도 다행이라 생각한다. 돌아보면 젊은 날의 대책 없는 질주가 결국 온갖 그물을 다 뚫었던 것 같다. 나는 탁월함을 이야기하는 사람이지, 아직 탁월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언제고 나를 둘러싼 그물을 뚫고, 경기장 밖으로 도약하려는 의지가 있기에 탁월함을 향해 매일 나아가고 있다.
방탄소년단 이야기: 방탄소년단은 한국의 기업형 아이돌 키우기와는 다른 여정을 통해 성장했다. 평론가들은 방탄소년단이 흙수저라 불릴 만한 중소형 기획사에서 성장한 아이돌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방시혁 PD는 2016년 5월 어느 날 방탄소년단 멤버들에게 편지를 썼다. 방탄소년단이 처음에는 뭔가에 짓눌려서 시선도 못 마주치는 주눅 든 소년들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들을 변화시키려고 했다. 그렇기에 다그치고 몰아세웠다. 일어나라고, 왜 멀리 못 보냐고, 왜 자신을 못 믿느냐고 소리쳤다. 비판적 냉소주의라는 그물에 걸려든 소년들은 소리를 지르며 그물을 흔들어도 더욱 거미줄에 얽혀들었다. 소년들은 그물에 걸린 채 흔들리며, 그물 밖의 세계는 너무나 멀어서 닿을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년들은 매일 밤 잠을 설치며 고민했다. 마침내 거미줄이 흔들렸고, 그들의 몸과 마음도 흔들렸다. 마침내 방탄소년단의 진동과 방시혁 PD의 진동이 공진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거미줄보다 강한 힘을 찾아서 탈출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