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주식투자를 한다
저스틴 월쉬 지음 | 나비의활주로
나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주식투자를 한다
저스틴 월쉬 지음
나비의활주로 / 2021년 6월 / 287쪽 / 16,000원
시장을 이긴 경제학자의 돈과 인생
돈 버는 경제학자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사망한 지 5개월이 지난 1946년 9월, 그의 유산이 공개되었다. 그의 재산은 40만 파운드에 육박했는데, 현재 돈의 가치로는 3,000만 달러에 이르는 금액이다. 그는 시티(미국의 월스트리트 같은 런던의 금융 중심지)의 유력 금융기관의 이사회에 적을 두고 있었고, 또 잘 팔리는 저서들 덕분에 상당한 인세를 받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유산 내역이 발표되자, 뉴스를 접하는 세간의 놀라움은 매우 컸다. 왜냐하면 케인스는 사망하기 직전 6년 동안 영국 재무성에서 무보수로 일했고, 그의 부모가 케인스보다 오래 살았으니 물려받은 재산도 없었으며, 또한 대단한 예술 애호가였던 케인스는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많은 문화단체에 자금을 대기도 했기 때문이다.
케인스의 돈 버는 재능은 그에게 엄청난 부를 안겨주었는데, 케인스의 이런 재능은 그의 개인 계좌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케인스의 영적, 지적 그리고 세속적 고향이기도 한 킹스칼리지(케임브리지 내에서도 가장 명문으로 일컬어지는 대학의 하나) 역시 그의 재무 능력의 수혜자였다. 세간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투자에 대한 케인스의 능력은 특정한 집단 사이에서는 칭송의 대상이 되었고, 다른 대학의 투자 담당관들은 케인스를 만나기 위해 킹스칼리지까지 오곤 했다.
투자의 시련기와 낙관주의1919년 이전까지 케인스는 금융시장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22세이던 1905년에 첫 투자를 했다. 그는 생일에 받은 돈과 학교에서 받은 상금을 모아 처음으로 보험회사의 주식을 샀고, 이후 엔지니어링 회사의 주식도 샀다. 케인스는 1919년까지는 투자를 하는 둥 마는 둥 했지만, 대부분 보통주로 이뤄진 그의 포트폴리오의 평가액은 꾸준히 올랐다. 1918년 말에 그는 9,428파운드에 달하는 증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는 오늘날의 가치로 대략 62만 5,000달러 정도가 된다.
그가 진지하게 투자에 뛰어든 것은 『평화의 경제적 귀결』의 수정 작업에 한창이던 1919년 8월이었는데, 그는 전쟁 전 금태환제의 고삐에서 풀려난 환율이 들쭉날쭉 요동치는 외환시장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케인스의 전략은 간단했다. 자기 책에 쓴 견해대로 몇몇 유럽 통화에 대해서는 매도 입장을, 미국 달러에 대해서는 매수 입장을 취했다. 이 전략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케인스는 5개월 만에 6,000파운드가 넘는 이익을 실현했다. 오늘날의 돈으로 환산하면 37만 5,000달러 정도다.
처음부터 대성공을 거두자, 케인스는 더 큰 계획을 세웠다. 재무성 재직 당시 동료였던 오스왈드 포크와 팀을 이뤄 환 변동에 투자하는 신디케이트(금융기관들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차관단)를 만든 것인데, 가족과 친구들은 그의 사업을 열정적으로 지지했고, 순식간에 3만 파운드에 달하는 돈이 모였다. 1920년 1월 케인스와 포크는 구상해뒀던 사업에 착수했다. 그리고 포크는 통화시장에 유동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착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신디케이트에서 손을 뗐지만, 케인스는 버텼다. 그리고 착수 3개월 만에 9,000파운드에 달하는 수익을 실현했다. 하지만 5월이 되자 시장은 신디케이트에 불리해졌고, 손실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해 중반 케인스는 신디케이트가 막대한 손실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는데, 그는 “끔찍한 시간이었지만 나는 계속 철학적 자세를 유지했다”라고 블룸즈버리 그룹의 멤버인 바네사 벨에게 털어놓았다. 그의 부모도 손실을 아량 있게 받아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케인스는 대담하게도 자신을 내동댕이친 말에 다시 올라탔다. 그는 자신의 개인 주식 포트폴리오를 청산해 돈을 마련하고, 또 『평화의 경제적 귀결』의 인세를 미리 받아오고, 아울러 에드워드 왕의 개인 자산관리자인 캐슬 경을 회유하여 5,000파운드를 빌렸다. 캐슬 경에게 쓴 편지에서 케인스는 이렇게 말했다. “비록 나의 재원은 다 고갈되었지만, 외환시장에는 다시없을 투자 기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몇 달 정도만 시련을 참아낼 준비가 되어 있다면 경께서는 상당한 수익을 보상받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케인스의 낙관주의는 맞아떨어졌다. 그는 1920년 말 캐슬 경의 돈을 모두 갚았고, 1922년 12월에는 신디케이트의 부채를 모두 청산하고도 21,000파운드나 되는 순이익을 남겼다.
복리 기계에 빠지다 / 보통주 전도사로 나서다케인스가 환 투기에서 멀어지게 된 것은 윈스턴 처칠 때문이었다. 당시 재무장관이었던 처칠은 1925년 영국 화폐를 금본위제로 복귀시켰다. 파운드를 고정시킴으로써 환시장에서의 가격 변동 폭은 급속히 줄어들었으며, 이에 따라 이윤을 취할 기회도 줄어들었다. 이 무렵, 케인스는 주식에 대한 재미있는 작은 책 한 권을 발견했다. 그 책은 애드가 로런스 스미스의 『장기 투자처로서의 보통주』였는데, 1866년부터 1922년까지 미국 보통주와 채권의 상대적 성과를 분석하고 있었다. 스미스는 인플레이션 시기에는 보통주 투자수익률이 채권투자를 앞서지만, 가격 하락기에는 반대가 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명백하게 합리적인 가설이었다. 기업은 원가를 상쇄할 만큼 가격을 올려 인플레이션을 방어할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가격이 상승하는 환경 속에서는 채권 이자가 고정돼 있기 때문이다.
한편 스미스는 물가 하락기에도 보통주의 수익률이 채권을 압도한다는 점을 발견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온 요인은 여러 가지이지만, 스미스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통주에 내재된 ‘복리 효과’를 꼽았다. 케인스는 스미스의 책에 대한 서평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일반적으로 제대로 경영되고 있는 제조업체들은 주주들에게 벌어들인 이익 전액을 나눠주지 않는다. 해마다 그러지는 못하겠지만, 업황이 좋은 해에는 이익의 일부를 유보해 기업에 재투자한다. 따라서 이런 주식에는 건전한 기업투자를 활성화하는 복리의 요소가 있다. 오랜 기간에 걸친 건전한 기업 자산의 실질가치는 주주에게 주어지는 배당금과는 별개인 복리로 증가한다. 따라서 주식의 장기적 수익률은 최초의 확정 금리보다 높다.’
‘복리의 화려한 미덕’에 유혹당한 케인스는 서평이나 주주총회는 물론, 투자 파트너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주식의 미덕을 극찬했다. 이후 스미스의 연구 결과에 대한 케인스의 설득력 있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되면서 보통주가 정당한 투자 수단이 되었다.
투기꾼, 게임을 하다
미인 선발대회와 신용순환주기 투자법투기꾼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주식 매수 및 매도의 시기를 정확하게 잡아내는 것이다. 투자에 뛰어든 초기의 케인스는 이런 믿음에 따라 투자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어떤 예측을 하는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케인스는 1920년대 말 저술한 『화폐론』에서 이 전략의 배후에 있는 이론적 근거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가장 현명한 주식시장 참여자는 사건의 실제 흐름보다는 군중 심리를 예측하고, 이런 예측을 통해 비이성을 흉내 낼 때 종종 이익을 보게 된다. 따라서 군중에 의존하여 특정한 방향으로 행동이 형성되는 한, 보다 많은 정보를 가진 전문가는 비록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도 한발 앞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이득이 된다.’
1920년대 케인스는 ‘신용순환주기 투자법’이라고 이름 붙인 전형적인 투기꾼의 시장 예측 접근법을 충실히 따랐다. ‘신용순환주기 투자법’이란 주식시장의 오래된 격언을 적용한 개념인데, 그 격언이란 ‘싸게 사서 비싸게 팔라’는 것이다. 케인스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보통주의 신용순환주기투자법이란 “시장 하락기에 시장을 선도하는 주식을 팔고, 시장 상승기에는 이를 사는 것이다.”
이는 증시 투자에 대한 ‘거시적 접근’이며, 투자 주기의 서로 다른 국면에서 전체 주식을 대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매수 및 매도의 시스템적 접근이었다. 이는 때로 ‘모멘텀 투자’라거나 ‘예측적 거래’ 등 보다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되었다. 이러한 접근법은 주식시장의 기류 변화를 파악하고 투자 타이밍을 정확하게 잡아낼 수 있는 투자자의 능력에 달려있다. 신용순환주기 투자법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내재적 가치 평가보다는 가격 모멘텀이 가장 중요한 투자 근거가 된다. 개인의 ‘군중 심리’와 같이 유동적이고도 변덕스러운 것을 예측해야만 하는 이런 투자 접근법은 케인스가 훗날 알게 된 것처럼 결코 실천하기에 만만한 것이 아니다. 케인스는 이 일을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설명했다.
‘100여 장 사진 가운데 가장 예쁜 얼굴 6장을 골라내야 하는 경연대회가 있다. 상은 전체 경쟁 참가자가 선호하는 평균에 가장 가깝게 일치하는 참가자에게 돌아간다. 따라서 각각의 참가자는 자기가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얼굴이 아니라, 다른 경쟁자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가장 좋을 것 같다고 여겨지는 얼굴을 골라내야 한다. 참가자들은 모두 똑같이 이런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이것은 자신이 최선을 다해 판단한 후 가장 예쁜 얼굴을 골라내는 것이 아니다. 또한 평균적 여론이 가장 예쁘다고 생각할 만한 얼굴을 골라내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평균적 여론이 기대하는 평균적 여론은 어떨 것인가에 대한 예측을 하는 데 모든 노력을 바쳐야 하는 단계에 이르러 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더 높은 단계에서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멘텀 투자자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미리 점칠 수 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움직인다. 사물이 끝없이 반사되는 거울 복도에서 개인들은 ‘평균적 여론이 기대하는 평균적 여론’이 무엇인지에 대해 통찰해야 한다.
황소의 돌진과 바보들의 행진강한 자신감과 자존심으로 무장한 케인스는 자신이 시장 정서라고 하는 표변하는 기류를 헤쳐 나가는 데 필요한 통찰력과 테크닉, 그리고 민첩성을 갖추고 있다고 확신했다. 이에 대해 그는 대학 시절 친구인 리튼 스트래치에게 이렇게 뽐내듯 말했다. ‘나는 철로를 관리하거나, 신탁을 결성하거나, 그도 아니면 투자 대중을 속여 그들의 돈을 갈취해보고 싶네. 이런 일들의 원리를 터득하는 것쯤이야 너무도 쉽고 매력적이지.’ 마침내 케인스는 대중을 이용할 기회를 잡게 됐다. ‘바보’를 벗겨먹고, 자신의 지적 우월성을 증명할 기회를 말이다. 그는 성공적으로 순환주기에 올라탈 것이라고 확신했다.
능수능란하게 시장의 꼭짓점과 바닥을 짚어내고, ‘시장’이라고 불리는 추상적인 용어, 즉 대중의 열광과 공포를 예측해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케인스의 이 같은 자기 과신은 1920년대 말의 무모했던 시절에 많은 사람들이 공유했던 특징이었다. 월스트리트는 투자자들의 도취의 물결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고 주식시장이 거침없이 치솟는 동안에 모멘텀 투자는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는 게임이었다. 오래된 월스트리트의 격언에 따르자면 밀물이 모든 배를 밀어 올리는 셈이었다. 몇몇 회의론자들은 1929년 여름 자신의 주식을 청산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맨 처음 파티장을 떠나는 사람이 되기 싫어 포트폴리오를 유지했다. 미래에 더 큰 수익이 찾아올 것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선지자의 경고케인스는 1929년 대공황 이전에 주식시장에 대한 비중을 크게 줄였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을 보였다고 케이스가 남들보다 선견지명을 가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렇기는커녕 이번에는 상품시장이라는 투기장에서 아찔한 모험을 감행해 다시 한 번 실패를 맛보았다. 1928년 케인스는 몇 년 동안 성공적으로 거래해오던 고무, 옥수수, 목화, 주식시장에서 기존의 포지션을 유지한 탓에 손해를 보게 되었다. 이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그는 상당한 규모의 주식을 팔아야 했다.
투기꾼의 게임을 그만두다케인스는 베르사유 조약이라는 ‘빌어먹을 재앙의 문서’를 근거로 동맹국에서 차출하는 가혹한 조공에 대해 경고했다. 또한 전쟁 전의 환율을 기준으로 하는 금본위제로 회귀한다면 교역과 자본의 흐름은 왜곡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세계가 깊은 수렁 속으로 비틀거리며 들어서고 있는 상황에서 갈수록 보호주의자가 되어가는 정부가 ‘근린궁핍화’ 정책을 펴는 것을 비관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에서 이미 10년 가까운 경기 후퇴를 겪었던 케인스는 대공황이 그저 경기순환 현상 이상이라는 것과 전 세계가 이 진흙탕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기본적이고 구조적인 요인 때문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그는 이전에도 신문기고, 팸플릿, 국가수반 등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그리고 재무부에 대한 제안 등을 이용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그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에너지를 쏟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핍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실업이라는 어마어마한 궤도 이탈이 발생하는 현상을 설명하고 해결할 수 있는 경제 이론이 필요했다.
케인스는 현대 경제의 거품과 붕괴를 설명할 수 있는 혁명적인 이론을 개발하기 위해 금융시장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본 자신의 경험을 이용했다. 케인스의 핵심적인 주장은 금융시장이 항상 효율적이지는 않으며, 통화 분야에서 일어나는 격변이 실물 경제에 동요를 가져온다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케인스는 자신에게 어마어마한 부를 가져다 준 몇 가지 투자 원칙을 발견했다. 이는 최초로 공식화된 가치투자 철학 가운데 하나로, 이후에 워런 버핏 등이 받아들인 원칙이었다. 아무튼 케인스는 1920년대 말 변동성 심한 시장에서 금전적으로 큰 손실을 입었다. 하지만 케인스는 전문가로서의 평판을 갈고 닦아 침체에서 벗어났고, 더욱 큰 부자가 되었다.
케인스의 6가지 투자원칙
제1원칙 - 저평가 미인주를 찾아라현명한 투자자들은 주식이 나타내는 기업의 내용에 집중하지만, 투기꾼들은 기업 내용과는 무관한 주가에만 초점을 맞춘다. 다시 말하면, 가치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항상 내재가치를 의사결정의 토대로 고려한다. 주가란 그저 그 주식의 내재가치 예측치로부터 심하게 벗어나 있는지 아닌지를 보여주어 시장 진입(또는 퇴장) 시점을 알려주는 수단일 뿐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자와 100달러짜리 지폐: 주식시장에서 반전을 경험한 케인스는 시장 가격 대비 미래 예상수익률을 비교해 이를 근거로 투자 결정을 내리는 가치투자야말로 주기적으로 찾아드는 야성적 충동을 억제하는 최고의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가치투자는 주식의 시장 가격과 그 내재가치 사이에 지속적인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효율적 시장 이론의 근본적 교리를 거부한다. 가치투자자들은 ‘강형(强形)’ 효율적 시장 이론을 패러디하기 위해 경제학자와 100달러짜리 지폐의 우화를 즐겨 인용하는데, 강형 효율적 시장 이론이란 소위 프로 투자자들 사이의 금융 거래에서는 아무도 발견하지 못해 묻혀 있는 헐값의 제품도, 반대로 지나치게 비싼 값의 제품도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가치 측정 게임: 주가에는 항상 주식의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공개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효율적 시장 지지자들은 한 가지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데, 이에 대해 워런 버핏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많은 학자와 투자 전문가들은) 시장이 자주 효율적이라고 올바르게 관측하고도, 시장이 항상 효율적이라고 올바르지 못한 결론을 내리곤 한다. 이 두 진술은 하늘과 땅 차이다.’ 가치투자자들은 강형 효율적 시장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주식의 가격이 내재가치에서 벗어나는 때가 있으며, 현명한 투자자들은 이런 시장 일탈의 상황을 이용하여 이익을 도모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주식시장의 단기적 효율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효율적으로 형성될 것이라고 믿는다. 다시 말하면, 단기적으로 주가는 실질가치를 둘러싸고 등락하며, 때로는 이 진폭이 상당히 클 수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주가는 정확한 가치가 구현되어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가치투자자들에게는 시장 효율성이란 시점의 문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