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화폐가 이끄는 돈의 미래
라나 스워츠 지음 | 북카라반
디지털 화폐가 이끄는 돈의 미래
라나 스워츠 지음
북카라반 / 2021년 2월 / 328쪽 / 16,000원
돈은 어떻게 소셜미디어가 되었는가?
지폐에 나타난 ‘국가의 이미지’커뮤니케이션학자 제임스 케리는 커뮤니케이션을 “현실을 만들어내고, 유지하고, 수정하고, 바꾸는 상징적인 절차”로 규정한다. 커뮤니케이션은 정보의 공유이며, 따라서 공유된 의미, 더 나아가 공유된 사회를 만들어낸다. 요컨대 커뮤니케이션은 사회적 삶의 핵심 내용이다. 미국 실용주의 전통을 따르는 존 듀이 같은 사회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케리는 커뮤니케이션이 단순히 세계를 기록하고 그것을 공유하는 것에 머물지 않으며, 커뮤니케이션은 세계가 구조화되는 과정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이론을 구체화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을 전송으로 보는 관점과 의식으로 보는 관점으로 구별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커뮤니케이션을 전송으로 보는 관점은 공간을 가로질러 발신자에서 수신자에게로 정보를 운반하는 것과 그 운반 과정을 통제하는 것을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정의한다.
그가 활동할 당시에는 커뮤니케이션을 전송으로 보는 관점이 주류였다. 그래서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신호의 수리경제학으로 환원하는 사이버네틱 패러다임이나, 서로 떨어진 사람들을 관리하는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나, 매스미디어의 청취자나 시청자를 메시지의 수신자로 상정한 다음 메시지가 그들에게 예측 가능한 효력을 발휘한다는 가정 하에 매스미디어를 연구했다. 커뮤니케이션을 의식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 케리는 커뮤니케이션이 단순히 정보가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요컨대 커뮤니케이션은 정보를 건네는 행위가 아닌 공유된 신념을 표현하는 행위라고 본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을 전송으로 본다면 신문은 소식과 지식을 퍼뜨리는 도구다. 의식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신문을 읽는 행위가 정보를 전달하거나 수집하는 행위라기보다는 모임에 참가하는 행위가 된다. 이 모임에서는 새로운 것이 학습되지는 않지만 특정 세계관이 표현되고 강화된다. 케리는 커뮤니케이션에 의식이라는 렌즈, 즉 문화적 접근법을 적용해야만 실제로 중요한 상징이 창조되고 이해되고 사용되는 사회적 절차를 연구할 수 있으며, 그런 연구를 통해 궁극적으로 우리의 공통 문화를 재형성하는 데 기여하는 커뮤니케이션을 분석하는 틀을 복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폐는 인쇄 미디어이므로 당연히 상징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거래(去來)는 말 그대로 무언가가 오가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이론가 존 더럼 피터스는 “돈은 결국 미디어이며, 교환 미디어일 뿐 아니라 표현 미디어”라고 말한다. 한 국가의 통화 디자인을 보면 그 국가가 어떤 이미지를 추구하는지 알 수 있다. 미국 독립전쟁 중에 매사추세츠 주에서 발행한 지폐에는 검을 휘두르는 애국자가 마그나카르타(대헌장)를 펼쳐들고 있는 그림과 함께 ‘미국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발행함’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캐나다가 건국 초기에 발행한 지폐들은 캐나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 풍경은 투지가 넘치기보다는 목가적이었고,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보다는 지극히 소박했다. 유로는 특정되지 않은 ‘유럽적인 것’의 느낌을 내고자 했다. 유로에 인쇄된 상상 속 다리는 유럽 국가들이 공유하는 과거의 건축 양식을 보여주지만 사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형상화는 지폐가 청중을 전제로 하는 인쇄 미디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현금 없는 사회가 가능할까? 국가 통화가 당장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비트코인과 항공사 마일리지의 가치는 여전히 달러로 표시된다. 현금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현재 디지털화가 진행되고는 있지만, ‘현금 없는 사회’는 ‘종이 없는 사무실’만큼이나 요원해 보인다. 우리는 앞으로도 어떤 거래는 현금으로 하고, 어떤 거래는 신용카드로 하고, 어떤 거래는 벤모(개인 간 모바일 결제와 소셜네트워크의 기능이 통합된 모바일 앱)로 할 것이다. 벤모를 사용하더라도 여러 가지 돈이 오간다. 벤모로 친구에게 지불할 때, 그 돈은 체크카드로 결제되고 그 거래 금액은 예컨대 달러 단위로 표시된다. 마찬가지로 많은 디지털 지갑이 스마트폰 화면에 신용카드 이미지를 띄운다. 미국의 인류학자 빌 모러가 지적하듯이 결제 시스템의 혁신은 뛰어넘기가 아닌 더하기여서 결제 테크놀로지가 켜켜이 쌓이는 형태로 전개된다.
실제로 돈은 여느 미디어 테크놀로지와 마찬가지로 소셜 테크놀로지, 즉 사회적 기술이기도 하다. 가장 대중적인 형태를 띨 때조차도 외부에 특정한 의미를 전달하며 그렇게 전달한 의미는 다의적이다. 소셜미디어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결제 시스템은 특정 행동을 허용하거나 금지하는 등 다양하게 설계될 수 있다. 빌 모러의 말대로 “테크놀로지가 애초의 계획이나 의도와는 무관한 온갖 사용법을 낳듯이, 테크놀로지가 도용되거나 수정되거나 다른 테크놀로지와 결합해 다른 기능을 하는 새로운 파생종을 낳듯이, 돈도 그럴 것”이다. 결제 시스템의 미디어 테크놀로지는 지금 이 순간 신중하게 재설계되고 있다. 대부분은 소셜미디어의 형태로 실리콘밸리에 의해서 말이다. 돈은 늘 소셜미디어, 즉 사회적 미디어로 기능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돈을 소셜미디어로 받아들이는 과정에 있다.
실리콘밸리가 돈을 재설계하면서 통제에 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는 흔히 새로운 자유를 낳는다고들 여기지만, 현실에서는 새로운 제약도 낳는다. 현금은 국가의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이지만 접근은 쉬운 반면 통제와 감시는 어렵다. 그러나 새로운 돈은 그렇지 않다. 소셜미디어 모델을 토대로 삼았기 때문이다. 누가 이 새로운 돈을 통제할 것인가? 누가 이 새로운 돈을 감독할 것인가?
매스미디어 돈이 소셜미디어 돈으로 전환하면서 우리가 떠안게 될 위험을 이해하려면 새로운 결제 시스템이 새로운 거래 공동체를 창조하고 그 공동체 내에서 거래 정체성ㆍ거래 관계ㆍ거래 권력을 창조하는 방식을 이해해야 한다. 매스미디어 돈에서 소셜미디어 돈으로 전환하는 것은 곧 매스미디어 거래 공동체에서 소셜미디어 거래 공동체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셜미디어 돈은 새로운 사회적 차이를 낳는다. 그 차이는 국가(달러, 파운드, 유로 등)와 사회적 지위(현금, 프리미엄 신용카드 등)를 초월하고, 소셜미디어 데이터로 측정 가능한 우리에 관한 모든 것을 포함한다. 우리는 결제 시스템이 분열되거나 탈바꿈하거나 교체되거나 규제되는 사례를 관찰함으로써 이 시스템이 어떤 식으로 은밀하게 작동하는지를 추적할 수 있다.
돈의 역사
돈은 전 세계를 빛의 속도로 돌아다닐 것이다비자카드를 설립한 디 호크는 1970년대 말에 신용 카드의 미래를 예견하면서 다소 엉뚱해 보이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돈을 사회적으로 가치가 보증된 정보로 정의하며, 돈이 디지털화되면 엄청난 잠재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돈은 앞으로 글자와 숫자를 에너지 자극 배열 형태로 기록한 자료에 불과할 것이다. 전자기장 스펙트럼 전체에 퍼진 무궁무진한 경로를 따라 전 세계를 빛의 속도로 돌아다닐 것이고, 비용도 거의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디 호크의 이러한 말은 오늘날 비트코인 추종자들이 하는 이야기와 매우 유사하다. 돈이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라는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돈의 실체가 드러날 때마다 우리는 돈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돈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단순하고 복잡하고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먼저 커뮤니케이션으로서 돈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다른 커뮤니케이션도 그렇지만 거래는 미디어와 인프라를 통해 일어나고, 그것은 언제나 의미를 담고 있으며 권력관계에 의해 좌우된다. 이것은 돈이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조망할 수 있게 한다. 돈의 테크놀로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인쇄, 전신, 컴퓨터, 정보네트워크, 스마트폰 등 통신 기술로 분류되는 것들과 나란히 존재했다. 돈과 관련된 테크놀로지의 역사에서 반복되는 주제에는 정치뿐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도 있다. 돈의 역사에서 공간 대 시간, 일시성 대 영속성, 개인의 정체성 대 집단에 대한 충성, 사익 대 공익 등 끝없는 갈등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지폐는 우리가 가장 흔히 접하면서도 가장 간과하기 쉬운 인쇄 미디어다. 현금이 딱히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발행하는 지폐는 실제로는 비교적 신기술의 산물이다. 19세기 이전에는 돈이 산발적이고 계층적인 형태로 존재했다. 지폐는 표준화 과정을 거친 뒤에야 매스미디어가 되었다. 국가 통화도 19세기 들어 인쇄술이 눈부시게 발달하면서 등장했다. 신문 등 인쇄 문화의 다른 산물처럼 지폐는 미국의 사회학자 베네딕트 앤더슨이 ‘상상의 공동체’라고 부른 민족국가의 도구이자 민족국가 탄생의 주역이었다. 국가 통화는 국가를 공통 경제 미디어가 통용되는 경제 영토로 표시한다.
지폐는 공유된 과거, 현재, 미래의 이야기를 전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미디어로 볼 수 있다. 교환 미디어이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대변하는 미디어’이기도 하다. 민족 국가 탄생 초기 보편 교육이 도입되기 전까지는 지폐가 그 국가의 공식적인 역사를 국민에게 유포하는 핵심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현대에 들어서도 미국 달러는 미국 국민이 매일 연방정부와 마주치는 유일한 접점일 것이다.
디지털 결제 서비스의 등장인터넷이 성장하면서 새로운 가상의 시장이 탄생했다. 이 시장에서는 단순히 국제 거래가 아닌, 지역을 초월한 개인 간 거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처음에는 영세 자영업자가 멀리 있는 고객의 카드를 결제 수단으로 받기가 어려웠고, 개인 간 거래는 말할 것도 없이 불편했다. 개인이나 영세 자영업자가 인터넷으로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고객에게 서명한 수표를 우편으로 보내달라고 해야 했고, 며칠 후에 수표를 은행에서 현금으로 바꾼 다음에 상품을 고객에게 보낼 수 있었다. 개인 간 거래에서 돈은 통신 속도를 쫓아가지 못했다.
1990년대 내내 개인 간 디지털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시도는 많았다. 1990년대 말 여러 스타트업이 합병하면서 페이팔이 탄생했다. 페이팔은 실리콘밸리의 테크놀로지 산업과 그 산업에 만연한 반기업주의, 사회적 자율성, 문화 보헤미아니즘 같은 가치를 시장주의와 묶은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페이팔의 프로젝트는 단순히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만이 아니라 개방된 세계 화폐 시장을 추구했다. 애초에 페이팔의 목표는 개인 간 거래가 가능한 글로벌 공동체가 아니라 민족국가의 간섭에서 완전히 해방된 글로벌 시장이었다.
역설적이게도 페이팔의 사업 모델이 성공한 것은 1970년대에 도입되어 여전히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관리하는 자동교환결제 시스템 덕분이었다. 이 시스템은 은행 고객이 수표를 액면가 그대로 전부 결제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공공 인프라다. 고객에게 수수료를 부과하지도 않았다. 페이팔은 기존 카드 네트워크를 이용할 때 수반되는 각종 비용을 내지 않기 위해 고객들에게 은행 계좌를 등록하도록 권장했고, 그 덕분에 자동교환결제 시스템의 거래 규정에 따라 고객의 계좌에서 직접 돈을 인출했다. 결론적으로 페이팔은 이미 존재하는 공공재를 활용한 것뿐이다. 사람들은 돈을 보내고 받을 때 그 인프라를 사용할 수 있었고, 커뮤니케이션과 같은 속도로 거래를 진행할 수 있었다.
2007년과 2008년에는 돈이 만들어내는 거래 공동체가 재조명되기 시작한다. 글로벌 금융 위기로 인해 정부와 금융기관에 대한 신뢰가 흔들렸고, 대규모 모바일 화폐 시스템인 엠페사가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아이폰 출시 이후 훨씬 더 값싼 안드로이드폰이 쏟아져 나오면서 세계 인구의 대부분이 네트워크에 연결된 컴퓨터를 들고 다니게 되었다.
2007년 이후의 시기를 결제의 ‘캄브리아기 대폭발’이라고 할 수 있다. 약 5억 4,100만 년 전, 지구상에 갑자기 온갖 복잡한 생명체가 한꺼번에 출현한 시기에 빗댄 표현이다. 비트코인이 등장했고, ‘차세대 비트코인’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이런 돈 중에 우리의 일상에 파고든 것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현금 없는 사회가 코앞에 다가와 있다고 말하지만 현금과 신용카드는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물론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돈의 형태와 기능이 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 변화가 요란하기보다는 소소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결제 시스템과 인프라의 역사에서는 이런 변화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인프라는 켜켜이 쌓이면서 조금씩 변형된다. 그리고 돈의 순환을 매개하는 인프라는 불이익을 불균등하게 배분한다.
돈의 정치학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면, JP 모건 체이스가 결제한다상인은 누구나 돈을 받기 위해 돈을 낸다. 고객이 카드를 사용할 때마다 수수료를 내고, 그 외에도 정보 처리비와 POS 단말기 대여료 등을 낸다. 은행도 고객을 공급한 신용카드사에 수수료를 낸다. 그리고 이 수수료를 상인에게 떠넘기면서 자신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비용까지 청구한다. 비자카드와 마스터카드 같은 카드 네트워크는 발급인과 은행의 중개인 역할을 한다. 카드 네트워크는 회원 은행에 표준화된 메시지를 전송해 결제의 규칙과 지침을 실행한다. 또한 그런 메시지를 전송하는 컴퓨터 네트워크와 정보 시스템을 운영한다.
대형 상인은 일반적으로 대형 은행과 직접 거래한다. 이들은 대부분 결제를 관리하는 내부 전담팀을 운영하며 심지어 결제 소프트웨어를 자체 개발하기도 한다. 따라서 중소 상인처럼 정보 처리 등의 부가서비스를 제공받을 필요가 없다. 반면 중소 상인은 은행과 직접 거래하지 않는다. JP 모건 체이스 같은 대형 은행은 일반적으로 상인 전담 고객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며, 중소 상인과 거래하지 않는다. 그래서 중소 상인은 독립 영업 조직인 ISO를 통한다. ISO는 쉽게 말해 결제 서비스 도매업자다. 은행에서 결제 관련 서비스를 묶음으로 사들인 다음 작은 단위로 나눠서 상인에게 재판매한다.
실제로 내 단골 카페는 웰스 파고의 결제 서비스를 재판매하는 소규모 ISO업체와 거래한다. 이 ISO는 내 단골 카페를 위해 스타벅스의 내부 부서가 담당하는 업무 대부분을 대신 수행한다. POS 단말기를 관리하고 그 정보가 업계의 표준과 법규를 준수하도록 감독하고 결제 처리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해결한다. 은행은 결제 서비스 외에 위험도 판매한다. 상인이 고객의 카드를 받으며 은행은 단기로 그 대금의 지급을 보증한다. 내가 커피값을 결제하려고 카드를 사용하면 JP 모건 체이스는 2.1달러에서 수수료를 뺀 금액을 스타벅스에 빌려주는 셈이 된다. 그런 다음 버지니아주립대학 신용조합이 스타벅스가 JP 모건 체이스에 빚진 결제액 전부를 정산한다. 마지막으로 버지니아주립대학 신용조합은 커피값 2.1달러를 포함해 그동안 카드로 결제한 금액과 이자를 내게 청구한다.
사기나 불만 등 어떤 이유로든 내가 커피값 2.1달러의 지급을 거절하면 버지니아주립대학 신용조합은 지급을 거절한다. 내가 단골 카페에서 낸 커피값 지급을 거절하면 버지니아주립대학 신용조합은 그 돈을 웰스 파고에서 받아내고 웰스 파고는 그 돈을 커먼웰스 머천트 솔류션스에서 받아내고 커먼웰스 머천트 솔루션스는 그 돈을 단골 카페에서 받아낸다. 은행의 업무, 즉 상인에게 대가를 받고 제공하는 서비스 중 하나는 상인 대신 위험을 떠맡는 것이다.
돈과 빅데이터
나는 전 남친이 한 일을 알고 있다2017년 《뉴요커》에 올리비아 드리카의 만화가 실렸다. 그는 벤모 거래 내역 몇 개를 손으로 그려가며 나열한 다음 각 거래 내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일일이 주석 달았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널리 이용되는 개인 간 결제앱인 벤모를 통하면 개인도 친구에게 직접 돈을 지불할 수 있다. 벤모는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서 유독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룸메이트들끼리 매달 발생하는 경비를 나누거나 식당에서 여러 명이 함께 식사했는데 웨이터가 한 명씩 음식값을 계산하는 것을 난감해할 때 벤모로 각자의 몫을 낸다. 벤모로 친구에게 돈을 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청구할 수도 있다. 거래 내역의 ‘소셜 피드’도 제공한다.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돈을 지불하면, 그 거래 내역이 두 사람의 친구들에게 공개된다. 페이스북의 뉴스 피드나 트위터의 스트림을 떠올리면 된다. 벤모 사용자는 벤모가 제공하는 양식에 따라 거래할 때마다 메모를 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