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와 주식,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
권오상 지음 | 미래의창
고등어와 주식,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
권오상 지음
미래의창 / 2015년 6월 / 280쪽 / 14,000원
起: 익스포지션
고등어와 주식
수요-공급의 원칙을 따르는 실물시장: 고등어는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의 아열대와 온대 해역에서 서식하는 어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동해, 서해, 남해를 가리지 않고 잡힌다. 어획량이 풍부하고 가격이 저렴하여 서민들의 밥상에 특히 자주 올라 ‘국민생선’이라는 영광스러운 호칭도 갖고 있다. ‘금융 에세이라는 책에 갑자기 웬 고등어 타령이지?’ 하고 의아해하는 독자들이 있겠지만 내가 이제부터 하려는 얘기는 사실 시장 얘기다. 이제 그 얘기를 본격적으로 해보자.
시장은 거래가 일어나는 곳이다. 거래의 대상은 실로 다양하다. 우리가 입고, 먹고, 쓰는 생필품에서부터 주식이나 채권과 같은 금융상품, 토지와 아파트 같은 부동산, 고가의 미술품이나 보석 등 가격이 매겨지는 것들은 다 거래 대상이 될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개인의 노동력을 판매하는 노동시장도 빼놓을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지만 회사와 근로계약을 맺는 행위는 내 노동력을 확정된 가격, 즉 연봉에 판매하는 행위다. 일당을 받는 공사장 인부나 알바생의 경우라면 노동력의 판매 행위가 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시장은 결국 매수자와 매도자가 만나서 적정 가격으로 거래하는 행위를 상징적으로 지칭한다. 처음 생겼을 때부터 이러한 시장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경제학, 좀 더 구체적으로는 미시경제학이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경제학의 뼈대인 고전경제학이 곧 미시경제학이기도 하다. 수요와 공급이 만나 가격이 결정되고 이를 통해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어 사회가 안정된 균형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이론 말이다.
미시경제학의 수요-공급의 법칙 원리는 다음과 같다. 시장과 가격은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는 (거의) 전지전능한 기구다. 수요의 법칙은 물건 값이 오르면 수요가 줄고, 반대로 물건 값이 내리면 수요가 늘어난다고 말한다. 한편 공급의 법칙은 가격이 오르면 공급이 늘고, 반대로 가격이 내리면 공급이 준다고 한다. 이 수요와 공급이 시장에 의해 저절로 조절되어 결국에는 균형가격을 찾고, 이로써 사회가 균형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 수요-공급의 법칙이 얘기하는 전부다.
고등어를 예로 들어 위의 수요-공급 법칙을 설명해보자. 이 글을 쓰고 있는 2014년 2월 기준, 300그램 정도 되는 고등어 한 마리의 가격은 2,500원이다. 공급은 2월 한 달간 2,935톤이었다. 여기서의 공급은 실제로 바다에서 잡혀 수산시장에서 팔려 나간 고등어 전체를 말한다. 그러므로 말할 것도 없이 수요도 2,935톤이다. 만약, 가격이 2,500원이 아니라 3,000원이라면? 수요-공급의 법칙에 의하면,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어드니 실제로 팔리는 고등어는 2,935톤보다 적어야 한다. 그리고 수지가 더 맞으니 어부들은 고등어를 24시간 조업을 해서라도 더 잡으려 한다. 그러면 필연적으로 고등어는 2,935톤보다 더 잡히고 사 가겠다는 양은 2,935톤보다 적어, 고등어가 남아돌게 된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남아도는 고등어를 주체하지 못하는 어민들은 이를 3,000원보다 싼 가격에 내놓게 되고, 그러면 조금씩 수요가 다시 증가해서 결국 다 팔고 나면 고등어 가격은 2,500원으로 수렴된다! 반대로 가격이 2,500원보다 낮은 경우도 원리상 유사한 과정을 거쳐 결국은 다시 2,500원으로 회복된다.
시장의 원리는 불규칙적이며 아름답지 않다: 위에서 설명한 고등어 시장처럼, 실물시장에서는 미시경제학의 수요-공급 법칙이 성립된다. 그리고 그러한 실물시장에서 균형가격을 찾아가는 과정은 미학적인 관점으로 보아도 흠잡을 데 없이 근사하다. 그런데 이게 전부는 아니다. 시장에 이토록 아름다워 보이는 원리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요-공급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예외(anomaly)적인 경우들이 있는데 기펜재와 베블렌재가 그 대표적인 예다.
나중에 통계 전문가로 인정받은 기펜은 19세기 스코틀랜드 태생의 언론인으로, 그의 이름을 딴 기펜재는 가격이 올라가면 오히려 수요가 늘어나는 물건을 가리킨다. 실제로 기펜재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아 19세기 아일랜드의 감자가 거의 유일한 사례다. 당시 감자는 서민들의 주식이었는데, 감자 가격이 오르자 제한된 소득으로 고기까지 사 먹기가 부담되어 오히려 고기 소비를 줄이고 감자 소비를 늘린 것이 아닐까 설명하고 있다. 20세기 초반, 미국의 경제학자 베블렌이 주장한 베블렌재 또한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증가되는 양상을 보인다. 하지만 그 원인이 사뭇 다른데, 가격이 높을수록 졸부적 신분을 드러내기 쉽고 그렇기 때문에 수요가 증가한다고 설명된다. 우리 사회에서 이른바 ‘명품’이라고 불리는 에르메스, 루이뷔통 등이 딱 베블렌재다.
기펜재와 베블렌재를 언급하면서 이들은 예외에 불과하다고, 별로 신경 쓸 게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면에는 사실 다른 의도가 있을 수도 있다. 근본적인 문제를 숨기기 위해 미미한 문제를 자진신고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 바로 자산시장의 존재다. 주식시장은 가장 대표적인 자산시장이다. 그런데 문제는, 주식시장과 같은 자산시장이 앞에서 본 실물시장과 전혀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이를 그냥 시장이라고만 부르려 든다. 마치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 수요-공급의 법칙이 성립하는 대상인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왜 자산시장이 실물시장과 다른지 살펴보자. 가령, 삼성전자 주식이 100만 원에 거래된다고 하자. 누군가가 삼성전자 주식을 사면 주가가 조금 올라가게 된다. 그래서 101만 원이 됐다고 하자. 그런데 주식시장에는 투기거래자가 존재한다. 그들의 눈에는 뭔가 자신이 모르는 호재가 있어서 주가가 오르는 걸로 보인다. ‘늦기 전에 올라타야지!’ 하는 생각이 그들을 사로잡는다. 그래서 매수 주문을 낸다. 다시 말해, 수요가 증가한다! 그러한 수요 증가로 인해 가격이 102만 원으로 오르면, 더 많은 투기거래자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른바 양의 피드백 루프라는 전형적인 양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은 그런 식으로 부양된 가격이 모두의 눈에 불합리해 보일 때까지 지속될 수 있다. 자산시장의 이러한 불안정성은 가격 하락기에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주가가 떨어지면 뭔가 악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래서 늦기 전에 내다 팔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그 결과 공급이 증가되고, 그러다 보니 가격이 더 떨어지는 악순환과 죽음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자산시장에는 불합리한 버블 형성과 과도한 폭락으로 대변되는 불안정성이 내재돼 있다. 균형가격을 찾아가는 교과서적 시장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냉탕과 온탕을 무의미하게 오락가락하며, 관찰되는 어느 가격에도 본질적 가치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 그런 시장. 시장이라는 말은 이처럼 흰색도, 검은색도 될 수 있다.
承: 디벨롭먼트
투기와 모험, 우연과 행운
운에 대한 해석의 변천: 재무론 교과서에 의하면 금융의 모든 문제는 리스크의 문제로 귀결된다.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확실하지 않다는 사실은 인간에게는 피해갈 수 없는 숙명과도 같다. 다시 말해, 리스크는 결국 운과 우연의 문제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역사를 살펴보면, 사람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는 운이나 우연 같은 일을 이해하는 방식이 항상 똑같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금융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그러한 역사적 변천을 살펴보는 것이 꽤 도움이 된다.
우연과 행운은 원래 성스러운 신의 영역에 속했다. 고등학교 영어시간에 배운 숙어 ‘a lot of’에 나오는 lot이란 단어는 ‘묶음, 대지’ 등의 뜻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운명, 운’이라는 뜻도 갖고 있다. 이 단어의 어원은 튜튼어 ‘hleut’로, 제사장들이 분쟁을 중재하고 결정하기 위해서 던지던 조약돌을 의미했다. 패스트푸드 체인점 ‘롯데리아’는 괴테의 소설 속 여주인공 이름인 샤를로테에서 따왔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탈리아어로 ‘lotteria’는 복권이다. 로또(lotto)와 전적으로 동일한 단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로마를 접수하기 위해 루비콘 강을 건너면서 했다는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말은 바로 운과 확률이 신적인 존재에 의해 결정된다는 당시의 인식을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도 점집 등에 가면 막대기나 동전, 쌀알 등을 던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신의 뜻을 확인하기 위해 조약돌, 막대기 혹은 주사위를 던진 것을 미신으로만 치부할 일은 아니다. 구약의 잠언 16장에 보면 “(사람이) 조약돌(lot)을 무릎 사이로 던지더라도, 그 나타나는 바는 주 하느님의 뜻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운의 결과가 무작위적이지 않고 신성하다는 선언인 것이다. 이 외에도 조약돌을 던진 다른 사례들은 구약에서 발에 채일 정도로 많다. 예를 들자면, 왕을 선출할 때(사무엘상 10장), 속죄 의식을 위한 제물을 정할 때(레위기 16장), 반역을 일으킨 족속을 첫 번째로 공격하기 위한 병사를 정하려고(판관기 20장), 땅을 나누고 상속자를 결정하기 위해(민수기 26장), 성직자의 의무를 나누기 위해(역대상 24장) 등등 경우도 다양하다.
이러한 행위는 근대에도 드물지 않았다. 16세기 영국에서는 조약돌을 던져서 관리들을 결정했다. 1653년 영국 국교회는 경건한 기도를 올린 후에 조약돌을 던져서 관리들과 영국 의회 의원들을 선출하자고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심지어 법원조차도 이를 반대하지 않았다. 1665년 배심원단의 의견이 갈리는 경우 조약돌을 던져 결정하겠다는 것을 재판부가 허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다 16, 17세기에 접어들면서 운과 우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운과 우연이 더 이상 신의 뜻이 아니라 오히려 배격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한 주장은 개신교 성직자들로부터 나왔다. 대표적인 사람이 청교도혁명으로 유명한 장 칼뱅이었다. 칼뱅이 활동하던 시기는 시민혁명 등으로 인구가 대폭 증가하면서 기존 사회체제가 흔들리던 때였다. 그런데 칼뱅이 주장한 예정설은 새롭게 형성된 중산층 부르주아 계급의 입맛에 맞았다. 각 개인의 구원 여부는 신의 의지로 이미 결정되어 있고, 근면과 절제로 재산을 축적하는 것 자체가 신에게 선택받았음을 증명한다고 설파했던 것이다. 돈을 모으는 행위가 예정된 구원을 입증해준다니, 청교도 원리주의자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교리는 없었으리라.
이제 운과 무작위성은 신의 뜻을 확인하는 수단에서 신의 부재를 의미하는 건전하지 못한 것으로 하루아침에 입장이 바뀌었다. 청교도적인 관점으로 보자면, 금욕적 축적을 통해 마련되지 않은 부는 불경스러운 요물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러한 불경스러운 재산 획득의 수단이 될 수도 있는 도박, 내기, 투기 등은 사라져야 할 악덕이자 죄악이었다. 예정설이라는 동전의 앞면이 근면을 통해 형성된 재산을 신의 뜻으로 확인해주었다면, 그 뒷면은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이 근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아가 그들이 신의 선택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가난하다는 해석을 가능케 했다. 당연히 빈자들은 그러한 해석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들이 보기에 자신들의 빈곤은 신의 예정이기보다는 단순한 불운과 우연의 문제였다.
계산과 예측이 가능한 대상: 한편, 운과 우연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이 나타났다. 이 관점에서 보면 운은 신의 뜻도 불건전한 것도 아닌, 객관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다시 말해, 운이란 확률적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것으로, 그 방법론인 확률론과 통계학은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 가능한 것이었다. 금융도 물론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금융에서의 문제는 미래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런데 확률로 미래의 가격 변동 등을 표현할 수 있다면 운은 이제 통제 가능한 리스크가 된다. 급기야 사람들의 입맛대로 우연마저 길들여버린 것이다. 그러나 확률로 표현이 됐다고 해서 우연적 요소가 모두 사라지지는 않는다. 동전을 던질 때 앞면이 나올 확률은 물론 2분의 1이다. 하지만 다음번에 던져서 앞면이 나올지를 누가 확신할 수 있겠는가. 또한 데이터를 열심히 분석하다 보면 뭔가의 통계적 법칙 정도는 찾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모델을 만들었다고 해서 미래의 불확실성이 어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상에서 운과 우연을 바라보는 세 가지 시각을 설명했지만, 확실한 것은 미래는 어쨌거나 확실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를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든, 사라져야 할 죄악으로 바라보든, 아니면 계산과 예측이 가능한 대상으로 보든 그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세 가지 관점 모두 각각의 쓰임이 충분히 있으리라. 이 중 꼭 하나만 맞고 나머지 두 가지는 틀렸다는 생각이 더 독선적이고 위험한 것이 아닐까? 또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러한 불확실성을 제거만 하려고 들면 사회는 정체되기 마련이라는 점이다. 불확실성 없이는 발전도 없다.
결론적으로, 사업적 도박, 새로운 아이디어에 돈 걸기, 투자, 모험사업가 기질 등은 표현이 다를지언정 결코 다른 것이 아니다. 종이 한 장만큼의 차이도 없다. 1921년에 사망한 머천트뱅커 어니스트 카셀(Ernest Cassel)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내가 어리고 별 볼 일 없을 때, 사람들은 나를 도박사(gambler)라고 불렀다. 내 사업 규모가 커지자, 사람들은 나를 투기거래자(speculator)라고 불렀다. 지금은 은행가(banker)라고 부른다. 사실, 내가 하는 일은 하나도 변한 게 없다.”
轉: 클라이맥스
아파트 가격에 대한 투기와 헤지
아파트로 돈을 버는 여러 가지 방법: 금융의 관점으로 보면 아파트는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다. 우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듯이 생활 터전으로서 역할을 갖는다. 쉽게 말해, 숙식을 위한 주택이라는 의미다. 이 경우의 아파트는 일차적으로는 실물시장에 속한다. 또한 아파트는 투자 혹은 투기 대상으로서의 성격도 갖고 있어 주식이나 채권처럼 취급되고 거래된다. 이 경우의 아파트는 자산시장에 속한다. 이러한 양면성 때문에 아파트는 다루기가 무척 까다롭다.
실물시장에 속한 아파트는 정상적인 수요-공급의 법칙에 의해 지배된다. 그렇기 때문에 아파트 가격이 올라가면 수요가 줄어들어야 한다. ‘여기는 너무 비싸니, 싼 아파트에 가서 살아야겠어’ 하고 생각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런 경우 공급이 증가되어야 할 텐데, 땅의 면적은 한정되어 있고 용적률과 건설 기간 등의 제약으로 단기간 내에 증가되기는 쉽지 않다.
한편으로, 실제로 거주하는 실물적 관점의 아파트라고 하더라도 다른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 가령, 주변에 학원가가 형성되어 있다거나 점잖은 동네라고 인식되면 그 자체가 수요를 자극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가격이 올라가게 되는데 비싸더라도 그 값을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생기고, 또 비싸다는 것 자체가 욕망을 더 자극하여 무리해서라도 특정 동네에 진입하겠다고 고집하는 경우도 생긴다. 실제 거주하는 아파트라고 하더라도 수요-공급의 원리가 전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거주 의도 없이 단지 가격 상승의 기대만으로 빚을 내서 매수하는 자산적 성격의 아파트 거래는 가격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이러한 자산적 성격의 아파트는 대개 캐리 트레이드의 도구로써 이용된다.
‘캐리(carry)’라는 말을 금융에서 사용할 경우에 두 가지 의미로 쓴다. 하나는 어떠한 자산을 ‘갖고 있다, 들고 있다’는 의미다. 사전적인 캐리의 뜻이다. 다른 하나는 그렇게 갖고 있는 자산에서 발생되는 이익 혹은 갖고 있음으로 해서 발생되는 비용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하여 캐리 이익 혹은 캐리 비용이란 말도 사용되며, 이익이 나는 경우 양(+)의 캐리라고 부른다.
나중에 9억 원, 10억 원 올라갈 것을 기대하고 8억 원에 아파트를 매수하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음(-)의 캐리 거래다. 왜냐하면 매년 재산세 등의 세금을 납부해야 하고, 그 외에도 아파트 관리비 등의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갖고 있는 돈이 3억 원뿐이어서 나머지 모자라는 5억 원을 대출받았다면 음의 캐리 규모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빌린 돈 5억 원에 대한 이자 비용이 매년 적어도 연 4%에서 5% 정도는 발생하기 때문이다. 아파트 가격 상승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음의 캐리가 발생되는 거래를 감행하기란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부채 레버리지를 일으킨 만큼 더 위험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