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와 함께 경매에 빠진 사람들
안정일, 김민주 지음 | 지상사
설마와 함께 경매에 빠진 사람들
안정일, 김민주 지음
지상사 / 2014년 10월 / 272쪽 / 16,800원
1막 열전列傳
절망의 늪에서 경매를 통해 희망을 찾은 김광수 씨
“저 혼자 잘 먹고 잘살지 않고, 주위 사람 모두 행복해지는 경매를 하고 싶어요.”
2년 전 우연히 알게 된 경매는 절망의 늪에 빠져 있던 김광수 씨(39)에게 유일한 탈출구이자 숨 쉴 공간이었다. 공대 출신의 김광수 씨는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그래머이다. 대학 졸업 후 4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개인사업체를 차리고 직원을 4명까지 둘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믿었던 직원에게 배신을 당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직원은 회사의 소중한 자산이었던 소프트웨어를 빼돌렸고, 그로 인해 그와 거래하던 거래처들까지 모두 끊기고 말았다. 10년 동안 쌓아왔던 땀과 노력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앞이 캄캄했다. 다행히 김광수 씨에게 끝까지 의리를 지켜준 거래처 한 곳 덕분에 김광수 씨는 그곳에서 아직까지 프리랜서로 일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믿었던 직원의 배신은 김광수 씨의 마음에 깊은 절망과 상처를 남겼다.
우연히 읽은 책 한 권으로 인생이 바뀌다!: 세상에 혼자 있는 것 같은 외로움 속에서 방황하던 그때, 우연히 화장실 옆 책장에서 집어든 책 한 권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3000만 원으로 22채 만든 생생 경매 성공기』를 정독한 김광수 씨는 왠지 모를 희망에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그렇게 김광수 씨는
이란 다음(Daum)의 경매 카페 문을 두드렸고, 운영자 겸 저자인 안정일 씨와 인연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스터디를 통해 안정일 씨를 처음 만났는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저에게 좋은 말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 말들이 많은 위로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안정일 씨를 ‘사부님’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사부님에게 가서 하소연을 하면, 제 넋두리를 모두 받아주거든요. 친구들에게도 못하는 이야기까지 다 들어주니 감사할 따름이에요. 스터디 이후, 2011년 9기로 실전팀까지 들었던 것도 사부님과의 인연을 더욱 오래 유지하고 싶어서였죠.”
상처를 치유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다: 김광수 씨는 이제 경매카페에 있는 다른 회원들과도 긴밀하고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경매에 나온 좋은 물건에 대해 의견도 나누고, 점차 마음속 깊이 담아두었던 고민들까지 털어놓는 사이가 됐다. 사람들과의 만남을 즐기다 보니 가까운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정기적인 모임을 갖게 됐고, 김광수 씨는 본의 아니게 모임을 주도하는 ‘대장’이 돼 있었다. “제가 원래 사람을 많이 만나는 직업도 아니었고, 사교적인 성격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이 경매카페에서 만난 분들은 왠지 친근하고 편안해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게 돼요. 사람들과 만남을 자주 가질수록, 제 성격도 밝아졌고 마음도 편안해졌죠. 이 없었다면, 과연 제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을지 의문이에요. 저에게 이곳은 힐링 그 자체죠.”
김광수 씨는 2년 동안 7건의 문건을 낙찰 받았고, 착실히 수익을 높여가고 있는 중이다. 4건은 월세를 놓으면서 매달 80만 원의 수익을 얻고 있으며 3건은 매매를 하기 위해 대기 중이라 높은 수익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3건의 물건 중 한 곳은 그가 직접 임차인으로 거주하고 있는 중인데, 여기서 김광수 씨의 남다른 노하우를 엿볼 수가 있었다. 김광수 씨는 3곳 중 한 곳에 2천 5백만 원의 전세로 살고 있었다. 요즘 같은 때에 이처럼 저렴한 전셋집이 또 있을까 싶어서 냉큼 들어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전셋값이 저렴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김광수 씨가 전세로 들어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집이 경매에 들어간 것이다. 이미 경매에 대해 잘 알고 있던 김광수 씨는 소액임차인이 2천만 원까지는 보호받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당황하지 않았고, 결국 그 집을 직접 낙찰 받는 데 성공했다. 1억 9천만 원에 낙찰 받은 이 아파트는 현재 시가가 2억 3천만 원이기 때문에 꽤 높은 시세 차익을 남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셋값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는 요즘, 2천 5백만 원으로 서울 시내 아파트에서 전세를 살고 있다니, 진정한 고수가 아니면 쉽지 않은 일이다.
58회 패찰로 얻은 노하우 사람들과 공유할 터: 김광수 씨가 이렇게 집에 대해 남다른 통찰력을 갖게 된 데에는 그만큼 피눈물을 쏟았던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무려 58회의 패찰! 입찰이 있는 날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법원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58회를 입찰하기 위해서는 1,000건의 물건을 검색하고, 그 중에서 2~3백 건의 물건을 임장(현장 답사)해야 돼요. 그리고 그중에서 입찰에 들어가는 거죠. 그런데도 낙찰이 안 되니까 중간에 포기하고 싶더군요.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제가 서서히 보는 눈이 생겼기 때문이죠. 결국 59회째부터 연속으로 4번이나 낙찰을 받았다니까요. 처음 낙찰 받았을 때는 얼떨떨하고, 제대로 한 게 맞는지 정신이 없었죠(웃음).”
김 씨는 58회의 패찰을 하는 동안 임장과 입찰 과정에서 늘 혼자 다녔다. 한 번이라도 낙찰을 받기 전까지는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자존심 문제이기도 하고, 자신감 문제이기도 했다. 하지만 뒤돌아보니 괜히 그렇게 혼자 외롭게 지냈구나 싶었다. “경매라는 것이 혼자 가도 되는 길이에요. 하지만 사람들과 같이 하면 2~3배 이상 즐거워지더라고요. 잘되면 함께 기뻐해주고, 명도를 성공적으로 끝내면 짜장면 파티도 하거든요. 잘 모르는 부분은 서로 물어보면서 힘이 되어주기도 해요. 수익도 중요하지만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서 즐겁게 할 수 있는 재테크라는 게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현재 김광수 씨는 경매로 인해 생긴 빚이 무려 10억 원이고, 그에 따른 대출 이자가 매달 3~4백만 원씩 지출된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숨 넘어갈 금액이다. 그 많은 금액이 빚과 대출이자라니 말이다. 하지만 김광수 씨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다. “은행에 빚이 많아질수록 마음이 오히려 여유로워지고 있어요. 이상하죠? 빚이 많고 이자가 많이 지출되어도, 월세에서 이자가 충당이 되니까요. 집에서 혼자 등기권리증 7장을 쭉 펼쳐놓고 대화도 한다니까요(웃음).”
김광수 씨가 경매를 시작하면서 설정한 첫 목표는 등기권리증 10개 만들기였다. 지금까지 7개를 만들었으니 그 목표가 얼마 남지 않았다. 등기권리증 10개를 채운 후에는 6~7백만 원을 월세로 받는 것이 두 번째 목표이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위로를 받고, 힘을 얻은 김광수 씨. 앞으로도 그는 혼자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경매를 하지 않고, 주위 사람 모두가 행복해지는 경매를 하겠다고 말한다. “제가 58회의 패찰을 하면서 경험했던 좋지 않았던 일들을 주위 사람들이 겪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경매카페의 좋은 사람들에게 최대한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특히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간단한 부분도 힘들어할 수 있거든요. 저 혼자 잘되지 않고, 주위 사람 모두 행복해지는 그날까지 경매는 쭉 계속할 겁니다. 모두들, 마음의 여유를 갖고 롱런합시다!”
2014년 9월, 김광수 씨에게 온 편지 - 인터뷰… 그 후: 인터뷰 이후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먼저 그간의 결과를 말씀 드리자면 소액으로 살던 아파트는 2억 3천 5백만 원이라는 훌륭한 가격에 괜찮은 수익을 남기고 연세 지긋하신, 평생 전세로만 살아오셨다는 할머니와 그 딸에게 넘겼다. 평생의 숙원인 내 집 마련의 감격에 겨워하는 그분들께 현재는 2억 4천 5백만 원을 가볍게 넘긴 매매가까지 선물해 흐뭇하기까지 하다. 내 목표였던 등기권리증 10개 보유는 이미 이루었고 현재도 8채를 보유 중이며, 낙찰 받고 팔고를 반복하다 보니 8~10채는 항상 보유 중인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만큼 유동 자산이 커진 탓이리라. 어디 예전 같으면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집 10채가 내꺼라니… 그런데 이게 가능하다는 사실! 경험해보시면 알 수 있을 거라 판단된다.
수많은 건의 낙찰 및 명도 그리고 매도를 진행하면서 크고 작은 경험들로 노하우가 쌓여 아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시련들이 나를 단련 및 훈련시켜주었고 그런 기회를 카페를 통해 얻었다. 지금도 역시나 회원들과 함께하고 있고, 그들이 험난한 초행길을 걷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더 열성적으로 도와주며, 그들과 함께 나누려 노력하고 있다. 이를 통해 나 개인의 이익을 넘어선 보람도 느끼며, 지금은 그 보람이 내 삶을 지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보람은 순간순간 나를 깨우는 원동력이 된다. 마지막으로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나를 사람처럼 살게 해주고 ‘잘한다’ 칭찬해주고, 더욱더 뛰도록 채찍질 해주시는 336분들께 감사드린다. 과 함께한 시간들에 감사하고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만으로도 발걸음이 가볍다. 사부님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70번의 패찰쯤이야! 위핑, 정혜영 씨
“전 절대 특별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포기하지 않으면 누구든지 할 수 있어요.”
다음의 경매카페에는 무한긍정의 한 여자가 있다. 위핑(weepins cross)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정혜영 씨(35)이다. 이제 결혼 2년차 신혼인 그녀는 같이 있는 사람까지 기분 좋아지게 만드는 긍정바이러스의 소유자이다.
“40번을 떨어져도 난 왜 지치지 않는 걸까?”: 2013년 4월, 카페 운영자인 안정일(닉네임 설마) 씨와 함께 푸짐하게 저녁을 차려놓고 먹는 사진이 올라온 적이 있다. 언뜻 보기에는 남녀가 낙찰을 받고 안정일 씨에게 한턱 쏘는 느낌이었는데, 알고 보니 정반대였다. 40번째 패찰로 심신이 지쳐 있는 위핑과 그녀의 예비신랑에게 안정일 씨가 위로의 밥을 사주고 있었던 것이다. 40번의 패찰이라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정상인데, 위핑은 오히려 “난 40번이나 떨어졌는데, 왜 지치지도 않죠?”라며 “60번째 패찰에도 (맛있는 저녁) 또 부탁한다.”라고 넉살좋게 웃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패찰 행진은 60번째가 지나도 계속됐고, 결국은 70번의 패찰을 기록하면서 경매카페 내 최고 패찰 기록자로 등극했다. 그럼에도 위핑은 좌절하지 않았다. “70번이나 입찰에 떨어지면서 포기할까 고민도 했죠. 아마 설마님이 불러서 위로의 밥을 사주지 않으셨으면 포기했을지도 몰라요. 하하하. 그런데 이상하게 힘들어서 못하겠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언젠가는 되겠지. 다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은 했었죠.”
카페 내 최고 패찰의 주인공인 위핑은 결국 결혼 한 달 전 극적으로 낙찰을 받고, 현재 그 집을 신혼집으로 꾸며 살고 있는 중이다. 포기하고 좌절하지 않으며 기다린 결과, 웃는 날이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무한긍정의 에너지를 가진 위핑은 왜 경매를 시작하게 된 것일까. 위핑은 결혼 전까지 주식투자컨설팅 회사에 근무했다. 원래 부동산 쪽에 관심이 도통 없었는데, 결혼을 앞두고 남편의 권유로 재테크 공부를 시작했다. 카페 역시 남편이 소규모 커뮤니티가 잘되어 있다며 위핑에게 추천해줬고, 곧바로 스터디와 실전반(2012-8기) 수업을 듣기로 결정했다. 2013년 6월 결혼을 앞두고 있던 위핑은 결혼 전, 2건만 낙찰 받아서 단타로 수익을 내보겠다는 야무진 꿈을 품고 겁 없이 경매계에 발을 들였다. “보통 20번 입찰 끝에 한 번 정도 낙찰을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계속 낙찰이 안 되니까 결혼준비도 안하고 계속 입찰만 하러 다녔어요. 낙찰 받아서 신혼집으로 들어가려고 가구나 살림살이 준비도 하나도 안 하고 말이죠.”
직장을 다닐 때는 법원 근처에서 직장을 다니던 예비 시어머니께 입찰을 대신 부탁하기도 했다. 어머니가 일이 생겨서 못 가면, 동생을 시켜서라도 입찰에 절대 빠지지 않았다. 이렇게 온 식구들이 돌아가며 희생(?)을 하면서 70여 차례의 입찰 대기록을 세워준 결과, 위핑은 2013년 5월 1일 드디어 첫 낙찰의 행운을 잡게 됐다. “처음 낙찰을 받고, 너무 기뻐서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했어요. 시어머니가 ‘거짓말이지?’라며 안 믿으시더라고요. 결혼식 한 달 전에 낙찰을 받아서, 명도를 결혼식 1주일 전에 끝냈어요. 저희 부부의 거주지였던 인천 지역의 빌라였는데, 시세보다 2~3천만 원 정도 싸게 신혼집을 구입한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오랫동안 기다린 보람이 있었죠(웃음).”
위핑이 3번 입찰한 것 중 2번 낙찰!: 신기한 일은 70번의 입찰 동안 시어머니와 동생 등 가족들이 갔을 때는 그렇게 낙찰이 안 되더니, 위핑은 단 2번의 입찰에 낙찰이 됐다는 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위핑은 결혼 1주일 전, 3번째 입찰에 빌라 한 채를 또 낙찰 받았다. 본인 스스로 법원을 찾았던 3번의 기회 중 2번을 잡은 것이다. 이때도 위핑 혼자 입찰을 갔었는데, 남편에게 낙찰 받았다고 전화를 했더니 역시 믿지 않았다. 그렇게 결혼을 앞두고 기적처럼 2번의 낙찰이 위핑에게 찾아오고 정신없는 몇 개월이 흘렀다. 하지만 명도와 매매 역시 결코 쉽지 않았다. “70여 차례 입찰을 다닐 때는 낙찰만 받으면 모든 게 끝인 것 같았어요. 입찰봉투에 서류를 써서 내면 끝이니까요. 그런데 알고 보니 낙찰이 제일 쉽더라고요. 낙찰 이후부터는 다음에는 사람과 직접 부딪쳐야 하니까 산 넘어 산이었던 것 같아요.”
신혼집으로 낙찰 받았던 첫 번째 집은 결혼 선물처럼 명도가 무척 쉬었다. 세입자가 소액임차인이라, 배당을 전부 받을 수 있는 케이스였다. 덕분에 세입자를 찾아갔을 때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담소를 나누며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 집의 명도는 만만치 않았다. 아버지뻘 되는 세입자와 자꾸 말다툼이 일어났다. 거주기간과 이사비용을 협상하면서 위핑의 남편과 잦은 언쟁이 생겼던 것이다. “남편 나이가 어려보이니까 자식뻘 되는 사람이 자꾸 본인의 이름을 부른다고 화를 내더라고요. 그래서 남편 대신 제가 나섰죠. 어르신 기분도 달래드리고,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최대한 불쌍한 자세를 취했지만, 그럼에도 똑 부러지게 우리가 원하는 바를 이야기했죠. 결국 이사비용도 무난히 합의를 봤어요.”
위핑의 남편 ‘주로’(카페 닉네임)는 스터디와 실전반 수업을 먼저 듣자고 권유할 정도로 경매에 관심이 있었지만 막상 실전에 들어가니 힘들어했다. “남편은 부동산에 들어가서 거짓말하는 게 싫대요. 그래서 ‘당신은 회사를 열심히 다녀라. 경매는 내가 할게’라고 말했죠. 제가 다니던 회사는 출산 휴가가 없어서 빨리 그만두고 전업으로 경매를 하자는 결심을 했거든요. 결혼을 하고 신혼을 즐기면서 잠깐 쉬고 있는데, 이제 다시 시작해야죠(웃음).”
인터뷰를 하면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주식투자컨설팅 회사에 근무했던 위핑의 이력이었다. 아무래도 부동산보다 전문 분야인 ‘주식’으로 재테크를 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위핑은 “부동산이 더 안전하다.”는 답을 내놓았다. “부동산은 제가 본전을 잃을 위험이 크지 않아요. 그런데 주식은 위험한 부분이 있거든요. 물론 주식 투자를 아예 안 하지는 않지만, 비중이 작아요. 부동산이 월급이면, 주식은 보너스 같은 느낌이에요.”
경매를 시작하고 위핑도 여러 가지 상황이 달라졌다. 일단 인간관계! 직장 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면 점점 새로운 인간관계 형성이 힘들다. 하지만 의 카페는 정보뿐만 아니라, 좋은 사람도 만나게 해준다. 경매라는 공통 관심사가 있고, 힘들고 지칠 때는 도와주기도 하며, 낙찰 받고 매도하면 맛있는 밥도 얻어먹을 수 있다.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 여유로운 사람들과 만나서 그런지 저도 카페 회원들 만나는 게 좋아요. 매도하고 나면 다들 한턱씩 쏘잖아요. 그 ‘턱’ 먹기 바빠 죽겠어요. 하하하.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함께 직장 스트레스를 받으며 전투적으로 돈을 벌지 않아도 연봉 정도의 돈을 벌 수 있다는 자신감이 경매의 가장 큰 장점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