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가난을 경영하라
김광주 지음 | 원앤원북스
당신의 가난을 경영하라
김광주 지음
원앤원북스 / 2014년 1월 / 320쪽 / 14,000원
1장 100년의 가난이 밀려온다
100세를 산다는 것은 가난과 싸워야 한다는 의미다
“자신의 수명이 언제까지라고 생각하세요?” 필자가 고객과의 첫 번째 재정상담에서 항상 던지는 질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반드시 돈이 필요하다. 또한 사람의 수명에 따라 필요한 돈의 액수가 달라지므로 자신의 수명을 예상해보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물론 모든 일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재정계획을 하기 위해서는 예상이 꼭 필요하다. 예를 들어 돈은 사람보다 오래 살아야 한다. 사람이 돈보다 오래 사는 것, 즉 힘없는 노후를 돈 없이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앞으로 남은 인생을 계산해서 필요한 돈을 따져보고, 그 돈을 어떻게 마련해 어떤 형태로 보관할지, 그리고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을지를 잘 생각해서 재정계획을 세워야 한다.
자신의 수명을 묻는 질문을 들은 고객의 반응은 연령대에 따라 많이 다르다. 한창 젊은 20~30대는 큰 고민 없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90세일 수도 혹은 100세일 수도 있지만 대중매체의 영향 때문인지, 대체로 100세 수명에 쉽게 동의하는 편이다. 아직 젊기 때문에 자신감도 충분하다. 하지만 40세만 넘어서도 같은 질문에 대해 표정이 어두워지는 사람들이 많다. 어느 정도 은퇴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면서 직장ㆍ자녀ㆍ재정ㆍ건강 등의 현실적인 문제로 불안을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은퇴가 당장 눈앞에 닥친 50대만큼 당황스러워하지는 않는다.
52세에 은행 지점장을 희망퇴직하고 편의점을 잠시 운영하다가 힘에 부쳐 아파트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는 57세 K씨를 살펴보자. 그는 두 자녀의 대학 등록금과 해외 어학연수 비용을 일부 지원한 후 지난해 딸의 결혼식을 치렀다. 그러고 나니 퇴직 당시에 있던 재산의 절반이 사라져버렸다. 그런 K씨에게 벌써 3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아들은 여간 부담스런 존재가 아니다. K씨는 자신의 수명을 80세로 예상했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K씨는 앞으로 23년을 더 살 수 있다. 그런데도 K씨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80세까지 살지 못할 것 같아서가 아니다. 앞으로 23년을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그러나 그 걱정조차 틀렸다. 비교적 건강관리를 잘하고 있는 K씨는 앞으로 23년이 아니라 33년 이상을 더 살 수 있다. 혹은 100세까지 살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현재 45세 성인이 101세까지 살 수 있는 확률이 23%라고 하니 벌써 40대 4명 가운데 1명은 100세를 넘어서까지 살아야 하는 시대다. 사정이 이렇다면 그보다 젊은 20~30대는 이미 120세 시대에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근로활동을 처음 시작한 이후부터 은퇴할 때까지 나이가 들면서 경력도 쌓이고 소득도 함께 오른다. 따라서 20대보다는 30대가, 30대보다는 40~50대가 소득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실제로도 우리나라 50대의 평균 소득은 다른 연령층에 비해 가장 높다. 그런데 소득과 함께 지출도 덩달아 늘어난다. 월 소득에서 지출한 돈을 빼고 남는 돈을 뜻하는 가계수지는 39세 이하보다 40세를 넘는 연령층에서 적자인 경우가 더 많다. 즉 2012년 기준으로 적자가구 비율은 가구주가 39세 이하인 가구가 20.6%인 반면에 40대 가구는 24.5%로 상승하고 50대 가구에 이르러 21%로 다소 감소하다가 가구주가 60대 이상인 가구에서 28.6%로 급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소득이 가장 높은 50대의 적자가구 비율이 40대에 비해 다소 낮긴 하지만, 자녀들의 대학 교육과 결혼에 필요한 목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50대의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중은 121.6%에 이른다. 세금 등을 납부하고 자신이 쓸 수 있는 돈이 1천만 원이라면, 갚아야 할 빚은 1,216만 원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생활비 같은 다른 필요지출에도 많이 쓰이기 때문에 50대 가구는 적자가 날 수 밖에 없다. 특히 50대가 은퇴하는 평균 나이는 53세로 50세 평균 기대여명이 83세인 점을 감안하면, 퇴직 이후 30~40년을 더 살아야 한다. 하지만 정작 그 긴 시간 동안 편안한 삶을 지탱해줄 재정적인 준비는 턱없이 부족하다. 은퇴 후에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아도 터무니없이 낮은 소득은 목돈이 필요한 50대의 재정적인 요구를 충당하기에는 많이 모자란다. 그 결과 50대의 경제적 행복지수는 100점 만점에 36.4점으로 여러 연령대 가운데서 가장 낮은 것은 물론이고, 평균인 40.4점보다도 낮다.
그러나 100세 인생을 가장 걱정해야 할 연령층은 다급한 50대가 아니다. 지금 당장은 수월해 보이는 20~30대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초고령화 사회인 한국에서 노인을 부양하는 주체가 바로 20~30대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10년 후에는 핵심 생산 인구인 25~49세에 해당하는 젊은이 2명이 1명의 노인을 부양하게 되지만 20년 후에는 젊은이 1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 결과 월급에서 떼이는 세금은 늘어날 수밖에 없고 국민연금보험료는 지금보다 몇 배로 인상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노인이 되었을 때 돌려받는 혜택은 지금보다 훨씬 줄어든다. 예를 들어 1968년생 남자는 2,630만 원의 국민연금보험료를 내고 7,300만 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 반면에 1990년생 남자의 경우 총 5,520만 원의 국민연금보험료를 내지만 돌려받는 돈은 7,300만 원으로 비슷하다. 결국 특정 세대의 이익을 위해서는 누군가 손해를 봐야 하는데 그 대상이 바로 지금의 20~30대인 것이다.
물론 소득이 많으면 국민연금보험료를 많이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오랫동안 지속되던 글로벌 성장의 잔치가 끝난 지금 20~30대의 미래는 불안하기만 하다. 2013년 5월, 전체 취업자 가운데 청년층의 비율은 15%에 불과한데, 이것은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30년 전에 비해 절반이나 떨어진 수치다. 특히 비슷한 기간 청년층의 인구 비중이 30.4%에서 20.9%로 대폭 하락한 것을 감안하면 청년 취업자 수의 감소 속도는 심각하다. 이뿐만 아니라 20~30대가 당장 취업하지 못하는 것도 커다란 문제다. 부모 세대인 50~60대와 일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현실은 100세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지금의 20~30대가 나이를 먹을수록 가난에 성큼성큼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문제다.
그렇다면 적자가구 비율이 두 번째로 높은 40대는 어떨까? 50~60대처럼 자녀들이 성인이 된 것도 아니고 당장 은퇴를 앞둔 연령대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20~30대처럼 운신이 가벼운 청춘도 아니어서 정부 정책의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한 세대가 곧 40대다. 40대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적자가구도 많고 직장이 그들의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 자녀들도 어리고 특히 전세자금이나 주택자금대출 등 떠안고 있는 부채도 많아 뾰족한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 치고 올라오는 20~30대와 위에서 누르는 50~60대 사이에서 힘겹게 자리보전이나 하면서 막연한 기대만을 붙들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40대가 많다. 대한민국 40대,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이 훨씬 많으면서도 ‘당장’에 지쳐 ‘나중’을 준비할 만할 여유가 없는 그들이 어쩌면 100세 인생의 가장 큰 피해자일 수도 있다. 이와 같이 각 세대들마다 서로 다른 입장 때문에 일자리와 복지 등 한정된 재원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저마다의 피해의식을 앞세워 충돌하고 있다. 세대갈등을 넘어 심지어 ‘세대전쟁’이라는 말까지 등장하고 있는 이유다. 이는 곧 세대를 불문하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난해지는 우리의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100년의 가난이 거침없이 밀려온다
가난은 비단 우리나라의 문제만은 아니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의 공공지출은 시간이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던 복지국가 영국조차 공공지출을 지속적으로 삭감하고 있다. 영국의 공공지출 비율은 이제 G7의 평균보다 떨어지며, 2015년에는 가장 형편없는 복지라고 조롱받던 미국보다 낮아질 전망이다.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국 역시 천문학적인 금액의 달러를 풀었지만 상황을 개선시키기는커녕, 2013년 7월 19일 한때 미국의 4대 도시 가운데 하나였던 디트로이트가 오랜 재정 파탄을 견디지 못하고 파산을 선언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비록 자동차 산업의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탓이라고는 하지만 그동안 세계 최고의 자본국가로 군림해왔던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디트로이트는 파산 직전까지 전체 시민 가운데 1/3이 극빈층이었다. 재정난에 빠진 디트로이트 시 당국이 경찰관과 환경미화원을 줄이는 바람에 살인율이 거의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고, 거리는 흉악범과 쓰레기로 뒤덮였으며, 특히 8만 채에 이르는 주택이 버려진 상태로 방치되어 시 전체가 유령 도시처럼 변해버렸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그저 개인의 능력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한국의 가난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장수 위험 0.87이 보여주듯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공포로 다가오고 있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이 현재의 수급체계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2060년에 기금의 완전 고갈이 예상되며, 설령보험료 인상이나 소득대체율 조정 등을 실시한다고 해도 2080년 이전에는 기금이 완전히 바닥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에게 닥친 가난의 연쇄로 인한 100년의 가난을 손에 잡힐 듯 더욱 생생하게 비쳐주고 있다. 그러나 2012년을 기준으로 삼성전자와 현대ㆍ기아자동차의 순이익이 국내 전체 기업이 달성한 순이익 총액의 약 30%를 차지한 것처럼 한두 기업의 경영성과가 우리가 처한 현실을 가리는 착시효과는 한 치 앞으로 다가온 길고 깊은 가난을 눈가림하기에 충분하다.
100년의 가난이 다가오고 있다. 지금의 부모 세대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급격한 고령화와 부족한 은퇴자금으로 노년의 가난을 겪고 있고, 노인 빈곤율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반면에 부모 세대의 헌신과 고생으로 가난을 경험하지 않고 자란 성인 자녀 세대는 갑자기 맞닥뜨린 가난 앞에 무기력하다. 그런 현실은 사회 전체에 부메랑이 되어 젊은층이 결혼을 미루거나 결혼했더라도 출산을 포기해 2013년 기준으로 1.1명으로 추정되는 세계 최저의 출산율로 돌아왔다. 그 결과 앞으로 10년 후에는 핵심 생산 인구에 해당하는 젊은이 2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고, 20년 후에는 젊은이 1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급격한 노령화가 진행될 것이다. 게다가 과거의 불황기와는 차원이 다른 현재의 저성장이 맞물려 지금부터 3세대에 걸친 가난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는 앞에서 시커먼 장막처럼 길게 드리워진 가난의 원인을 2가지로 살펴보았다. 하나는 자본과 분배의 왜곡으로 해석되는 소위 1%의 탐욕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적어도 나에게 닥친 가난만큼은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분명 첫 번째 원인은 한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우리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1%의 탐욕을 탓하고만 있기에는 다가오는 추위가 너무 매섭다. 그러므로 2가지 원인과 동시에 싸워야 한다. 즉 첫 번째 싸움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두 번째 싸움은 ‘내’가 해야 할 일이다.
2장 가난에도 경영이 필요하다
가난을 포장할 것인가, 가난을 경영할 것인가?
예전에는 누구나 가난했다. 그래서 생계유지가 고통스러울지언정 자존심이 상하지는 않았다. 다 같이 벌을 받는 것과 나 혼자 벌을 받는 것은 자존심 측면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다. 혼자 벌을 받으면 육체적인 고통에 정신적 고통까지 더해져 괴로움이 커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금은 ‘함께’라는 개념이 사라졌다. 모든 것에 서열이 매겨진다. 각 가정의 소득을 1분위에서 8분위로 나누고, 빚을 내더라도 1등급부터 10등급까지 구분된 신용등급에 따라 대출금의 한도와 이자율이 달라진다. 성적순으로 순위와 등급을 나누는 학교 교육을 문제 삼다가도 학교보다 더 철저하게 서열을 따지는 사회를 보면, 학교에서 미리 서열화 경험을 쌓는 것도 괜찮겠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올 수밖에 없다.
“어디 사세요?” “무슨 차를 타세요?” “아이들은 어느 유치원을 보내나요?” “남편 분은 어느 직장에 다니세요?” “골프는 치나요?” 이런 몇 가지 질문에 답하고 나면 그 사람의 서열이 결정된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상대방의 서열을 따져보기 위해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아니다. 서열을 위한 경쟁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자신도 모르게 ‘대화’를 가장해 서로를 서열화하고 있다. 그래서 누구랄 것도 없이 자신을 포장하려 애쓰면서 가난을 숨기는 데 기꺼이 돈을 쓴다. 뻔한 월급에 무리인 줄 알면서도 유행하는 신상품을 구입하고, 자녀에게 무리하게 사교육을 시킨다. 게다가 이웃의 시선을 핑계 삼아 적금을 깨서라도 해외여행을 갔다 오고 멀쩡한 자동차를 바꾸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의 가난은 소득이 적거나 지금 당장 직장이 없어서가 아니라, 서열이 매겨지는 사회적 관계에서 당황하지 않으려는 몸부림 때문일 수도 있다. 가난을 숨기는 데 드는 비용이 계속 누적되면서 점점 더 많은 소득이 필요해지고 결국 가난을 숨기다 보니 점점 더 가난해지게 된다. 절반만 소유해도 마음먹기에 따라 커다란 하나가 될 수 있지만, 경쟁과 비교의 덫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은 모든 걸 가졌음에도 늘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포장은 결국 본질에 수렴된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텅 빈 통장과 바닥을 보이는 잔고 앞에서 허망해진 자신을 발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가난을 포장하면 포장할수록 우리는 점점 더 가난의 늪에 빠져들고 만다.
지속가능한 소득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가난경영은 ‘돈’을 무시하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므로 그동안 지출했던 돈의 규모가 과연 어떤 기준으로 계산된 것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가난경영에 성공하려면 돈 없이도 충분히 잘 사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마지막 날까지 필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지속가능한 소득을 확보하는 데 이르러야 한다. 그렇다면 가난경영의 시작은 먼
저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 될 것이다. 세상이 부추기는 비교와 경쟁의 프레임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유일하고 독특한 자신의 가치를 인식해야 한다. 나 자신만의 가치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소득을 집요하리만큼 생각해보고 발견하는 일은 가난경영의 목표 가운데 하나다.
소득에는 2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내가 직접 버는 돈, 예를 들어 월급(근로소득)이나 사업을 통한 수입(사업소득)이다. 나머지 하나는 자산소득, 즉 돈을 잘 굴려서 생기는 수입이다. 자산소득에는 은행 이자, 주식이나 펀드 수익, 부동산 거래 차익, 임대료 등이 있다.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면 나머지 99%의 경우는 내가 직접 버는 돈, 특히 월급이 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이 생을 마감할 때까지 지속되는 경우는 드물다. 소득의 흐름을 크게 나누어보면 대체로 은퇴 전까지는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으로 가계를 꾸리고, 은퇴 후에는 자산소득에서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러나 자산소득이 은퇴와 동시에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에서 일정 부분을 꾸준히 투자해나가야 한다. 자산소득 형성을 위한 저축이나 투자 없이 소득을 매번 소비해버린다면, 은퇴 시점에서 자산소득은 없을 것이다. 결국 50년 이상 남은 인생을 정부의 복지 프로그램에 따라 최저생계에 만족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자산관리 프로그램은 소득 흐름 기간과 연계되는 다음의 3단계를 기초로 설계된다. 첫 번째 단계는 돈을 버는 소득생산 기간, 두 번째 단계는 소득을 불려나가는 자산형성 기간, 세 번째 단계는 형성된 자산이 만들어주는 자산소득으로 생활하는 자산관리 기간이다. 대체로 소득생산 기간과 자산형성 기간, 자산형성 기간과 자산관리 기간은 구간에 따라 겹친다고 보면 된다. 물론 사람에 따라 소득생산기와 자산형성기, 자산관리가 동시에 겹치는 구간도 많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해당되는 구간을 알고, 그 구간에서 필요한 행동을 제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할 수 있다고 해서 10년, 20년 뒤에도 똑같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재정 전문가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사례를 통해 각 구간에서 해야 할 가장 이상적인 행동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그 경험을 고객에게 실행하도록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