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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퍼센트의 부자들과 99퍼센트의 우리들

태비스 스마일리, 코넬 웨스트 지음 | 소담출판사
1퍼센트의 부자들과 99퍼센트의 우리들

태비스 스마일리, 코넬 웨스트 지음

소담출판사 / 2014년 4월 / 264쪽 / 13,800원





서문

2011년, 우리는 미국 공영라디오방송 PRI를 통해 주 1회 방송되는 〈스마일리&웨스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그들에게 따집시다’라는 코너를 마련했는데, 이디스는 ‘그들에게 따집시다’에 전화를 걸어서 빈곤에 관한 우리의 태도에 이의를 제기한 청취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우리가 가난에 대해 설교하고 불평하는 것을 들었다. 또 우리가 느끼기에 가난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거나 그것과 관련한 조치와 언급을 피하고 있는 정치인들과 다른 사회 지도자들의 행태를 우리가 꼬집어 말하는 것도 그녀는 다 들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그 문제와 관련해서 무슨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나요?” 그 질문은 화살처럼 날아와 우리 가슴에 꽂혔다.

우리는 진지하게 자문했다. 철학자와 방송인이 가난에 대해 더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해답은 간단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대화의 창을 활용해서 의식을 끌어올리고 빈곤 문제를 국가 주요 현안으로 제기하는 것이었다. 열정에 불이 붙으면서 우리는 ‘빈곤층 순방: 양심에 외치다’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그리고 2011년 8월 6일부터 버스를 타고 18개 도시를 돌면서 인종과 종교에 상관하지 않고 가난한 모든 미국인들의 고단한 삶을 조명해보자고 계획을 세웠다. 우리는 순방 일정을 끝낸 후,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간추려서 미국 공영방송 PBS의 심야 텔레비전 토크쇼인 〈태비스 스마일리〉의 특별 기획으로 일주일간 방송을 내보냈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무척 긍정적이었지만 오히려 우리는 빈곤의 복잡한 양상을 깊이 있게 살피지 못했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이 중요한 대화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미국 내 최고 지성인들 몇몇을 모아 세계에서 가장 잘산다는 미국에서 왜 빈민이 증가하는지, 그 난제를 분석해보기로 결심했다. 이러한 우리의 뜻이 힘을 발휘하여 2012년 1월 12일 워싱턴 D.C.에 위치한 조지워싱턴 대학교에서 ‘미국 재건하기: 빈곤에서 번영으로’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심포지엄에 관한 자세한 일정을 조정하던 중에, 우리는 출판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우리가 빈곤층 순방을 통해서 보고 듣고 경험한 바를 책으로 써보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이 책이 나오게 되었다.



빈곤의 실상

노스캐롤라이나 주 길퍼드 카운티에 사는 다이앤 스트루블은 미국 내 빈곤이 새로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그 지역의 지역신문 독자들이 이해해주길 바랐다. 21세기 미국의 빈곤층은 영원히 취업하기 힘들거나, 최근에 징역을 살았거나,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다. 누군가 버린 듯한 물건으로 가득한 쇼핑 카트를 덜덜 끌거나, 길바닥 환기구 옆에 드러누워 잠을 자거나, 발 디딜 틈 없는 노숙자 쉼터에서 시간을 보내는 꾀죄죄한 모습의 부랑자들은 더 이상 빈민의 전형이 아니다.

지역신문에 실린 다이앤 스트루블의 칼럼은 신빈곤층의 실상을 가슴이 아플 만큼 사실적으로 그려놓았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 토드는 마땅히 할 일들을 다 했다. 둘 다 대학을 나왔고 연봉 8만 5,000달러의 중산층 생활을 유지했다. CBS 뉴스 인터뷰 중에 이 부부는 2009년 11월 법률 보조원이었던 토드가 어떻게 실직을 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하고 그 이후로 안정된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스트루블 부부에겐 여덟 명의 자식이 있는데 그중 네 명은 아직도 부부와 함께 살고 있다. 학교 교사인 다이앤의 연봉 2만 2,000달러로 겨우 버티고 있지만, 빈곤선 이하의 생활임은 틀림없다. 다이앤은 401k 플랜 연금을 미리 당겨서 받았고, 토드도 연금에서 현금을 뺄 수 있는 만큼 전부 빼서 썼다. 인터뷰 당시, 그 부부에겐 현금 25달러와 은행의 100달러가 전부였다. 열네 살 된 아들 벤이 2주간 매일 수프만 먹었다고 회상하면서 “쪼금 걸려요”라고 실토했다.

“마지막으로 울었던 게 언제입니까?” CBS 뉴스 리포터 바이런 피츠가 다이앤에게 물었다. 양 볼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던 그녀의 근심 가득한 적갈색 두 눈동자에 눈물이 맺혔다. “어젯밤이요”라고 다이앤이 속삭였다. “우린 계속 번져가는 가난의 위기, 그 자체예요.” 토드가 끼어들었다. 그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가 더더욱 벌어지고 있다는 증거가 바로 자신들이라고 덧붙였다.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 미국 인구의 1퍼센트인 최부유층(최소 38만 달러 이상을 버는 자들)의 수입이 지난 20년간 33퍼센트 늘어난 것에 비해, 중산층을 포함한 90퍼센트 미국인들의 수입 증가율에는 사실상 거의 변화가 없다. 현재 미국 내 상위 1퍼센트에 속하는 소득층의 평균 연봉이 130만 달러인 반면, 일반인들은 1년에 고작 3만 3,000달러를 번다. 2011년 발표된 새 인구조사 수치에 따르면 빈곤층에 속하는 미국인의 수가 5,000만 명에 더욱 가까워졌다.

20세기 가난 대 21세기 가난: 미니애폴리스 세인트폴의 백인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크리스토퍼 젠크스는 영업 마케팅부에서 한창 잘나가다가 직장에 갑자기 문제가 생기면서 노숙자가 되었다. 빈곤층 순방 중에 우리는 마르게리트케이시 재단이 발행하는 《한 목소리(Equal Voices Newspaper)》라는 인터넷 신문의 팬이 되어버렸다. 이 특별한 온라인 뉴스는 가난한 가정들에 얽힌 여러 사연들을 공유하고 그 속내를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우리가 젠크스의 고달픈 삶을 알게 된 것도 《한 목소리》 덕분이었다. 억세게 자존심이 강한 젠크스는 공공 지원을 요청하지 않고 열심히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생활이 너무 힘들어지자, 그는 고속도로 나들목 부근에서 구걸을 하며 자가용에서 지냈다.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젠크스는 마침내 고집을 꺾고 정부 보조를 신청했다. 그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자신이 노숙자가 되어 푸드스탬프(Food Stamp, 미 정부가 식생활 복지 차원에서 빈곤층에게 제공하는 식료품 구입용 쿠폰)로 간신히 먹고살게 되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정부 보조가 없으면 죽는 수밖에요. 난 일하고 싶습니다. 이 비극에 말려든 다른 수많은 미국인들도 같은 심정일 거예요.”

젠크스와 마찬가지로 미국 중산층의 수백만 인구가 결코 상상해본 적이 없는 경제적 비극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고 있다. 2012년 미국 공화당 대선 예비선거를 앞두고 출마자들은 마치 자기 지역 유권자들이 현재 수백만 명에 이르는 빈곤층과 유사 빈곤층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을 듯이 가난에 대해 언급했다. 따라서 푸드스탬프를 손에 쥔 사람들의 사진은 큰 정부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어버렸다. 길퍼드 카운티의 다이앤 스트루블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자. 그녀가 자신의 경험을 편지로 써서 지역신문에 보낸 것은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의 심정을 애써 대변하는 것과 같았다. 스트루블은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거지와 자신을 구분함으로써 21세기 빈곤이 우리 부모나 조부모 세대의 20세기 빈곤과는 다르다는 점을 표현하려 했다.



기회의 빈곤

10년간 해군에 복무하고 1986년 명예 제대한 재향군인 잭은 수척했다. 그가 아주 오랫동안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지 못했음을 누구든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오하이오 주 애크런을 방문하는 중에 잭과 다른 참전 용사들을 만났다. 털이 희끗희끗한 거친 손으로 보아 잭은 고된 막일에 무척 익숙한 게 틀림없었다. 어쨌거나 그가 용기를 내어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내 이름은 잭이고 나는 노숙자입니다. 두 다리를 뻗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잠을 자요. 내 평생 일에서 손을 놓은 적이 없지만, 지금은 경제가 이렇다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또 몸에 문제가 많아서 실제로 일을 할 수도 없어요. 허리도 못 쓰고 무릎도 아픕니다.” 잭은 사회보장연금과 장애인보조금을 탈 날만 기다리는 중이라고 우리에게 말했다. 2011년 8월 우리가 그곳을 방문했을 당시, 그는 연금 신청의 기회를 막 놓친 상태였다. 정부 보조 신청을 다시 하려면 또 2년을 기다려야 할 거라고 걱정하고 있었다. 잭은 경제 때문에 자신의 상황도 좋지 않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자녀 양육비를 제때 지급하지 못하고 조금 늦어지고 있는 것을 포함해서 법적인 문제 상황에 놓여 있었다. 해당 지방법원은 포티지 카운티에 있는데 애크런에서 16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다.

“난 포티지 카운티에 갈 수가 없어요. 거기까지 걸어갈 수가 없는 데다 그 외 다른 방법도 없으니까요. 이런 형편 때문에 법을 어기게 생겼어요. 이것 때문에 난 당장에 감옥에 갈 수도 있어요. 그런 곳에 가고 싶지 않아요.” 병든 몸을 이끌고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잭은 어떤 일이라도 들어와서 더 이상 길거리나 노숙자 보호시설에서 지내지 않아도 되기만을 바랐다. “제발 일이 좀 생겼으면 좋겠어요. 오바마는 자신이 말한 대로 우리한테 일자리를 만들어줘야죠. 난 사회보장비를 받아서 포티지 카운티 법원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나는요…… 이것 말고는 달리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어요.”

미국 내 기회 부족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잭의 사연이 분명히 보여주었다. 우리 국가와 국민들, 참전 용사들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까지 절망 상태에 빠져 있다. 미국의 부의 대부분이 극히 일부의 소수를 살찌움으로써 정의의 저울은 한쪽으로 심하게 치우쳐 있다. 다른 한쪽에는 먹고살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잊힌 사람들이 있다.

충분한 기회 제공은 경제적 균등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런 상황에서는 잭과 같은 사람들에게도 적당한 임금의 일자리들이 주어지기 때문에, 이들도 숨을 쉬고 꿈을 꾸고 가족 및 지역사회 사람들과 강한 유대감을 쌓고,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해결해서 그 관계를 계속 유지시킬 수가 있다. 미국은 흔히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 모든 서구 국가들 중에서 최고, 자유세계의 선두라고 평가된다. 그러나 이런 미국의 정체성이 지금도 여전할까? 미국인 둘 중 하나가 가난에 시달리거나 빈곤선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예전처럼 가장 위대한 나라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미국 곳곳에서 수백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자신도 머지않아 미국의 빈민층에 속하게 될 거라는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는 시점에서 세계의 지도자라는 미국의 명성에 의문을 품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참전 용사가 비참전 용사보다 노숙자로 전락하기 쉬운 나라에서 과연 얼마나 애국심을 기대할 수 있을까? ‘노숙자가 된 참전 용사를 위한 국립 연합회’에 따르면, 평균 6만 7,000여 명의 참전 용사들이 매일 밤 노숙하고 있으며 가난, 사회 지원망의 부족, 비참한 생활환경 및 불량 주택 등의 이유로 노숙의 위기에 처한 참전 용사는 대략 15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공식적으로 실업이 인정된 미국인의 숫자만 1,400만 명에 이르고, 실제로 실업 상태에 있는 사람도 수백만 명이 넘는 상황에서 아예 구직을 완전히 포기해버린 무수한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는데, 과연 이런 곳을 진짜 기회의 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긍정의 빈곤

미시시피 주 콜럼버스 시의 주민, 브렌다 캐러다인은 러닝머신 위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열심히 뛰던 중 커다란 흰 버스가 근처 코트스퀘어타워스 건물 앞에 멈춰 서는 것을 보았다. 순간 감정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며 캐러다인은 버스 측면에 적힌 파랗고 붉은 글자들을 찬찬히 읽었다. ‘빈곤층 순방: 양심에 외치다.’ 나중에 그녀는 그 순간을 두고 “신이 기적을 보여줬다”라고 전했다. 캐러다인은 빈곤층 순방 버스가 콜럼버스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듣기 바로 며칠 전, 《커머셜 디스패치》라는 지역신문사 앞으로 항의 편지를 썼다. 캐러다인은 순방단이 콜럼버스를 방문하기로 예정된 사실이 전혀 반갑지 않다고 썼으나 그 편지는 게재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순방 버스가 진짜로 모습을 나타내자, 캐러다인은 당장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녀는 악에 받쳐 우리를 호되게 질책하려고 했고 실제로 그리했다. “당신들이 우리 시에 오명을 씌우고 있어요. 여긴 못사는 지역이 아니에요. 어째서 콜럼버스를 찾아왔죠? 당신들, 여기에 왜 온 거예요?” 불만 가득한 그녀의 힐난은 계속되었다(예의상 이렇게만 표현하겠다). 어쨌거나 그녀의 이야기에 동조하는 시민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는 점잖게 그녀가 하는 말을 귀담아들었다. 많은 사람들은 가난을 곧 개인의 실패를 선언하는 것으로, 또는 개인이 근본적으로 쓸모없음을 나타내는 척도로 여긴다. 캐러다인의 경우에는 빈민이 건실한 지역사회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와 같았다.

빈곤에 관한 진상은 반드시 긍정되어야 한다. 등에 칼을 맞았지만 아무 도움을 받지 못하고 거리의 인파 속을 비틀비틀 헤매는 사람처럼 지금껏 빈민층은 무관심의 칼날에 다치고 또 다쳤다. 자꾸 그 진상을 긍정함으로써 우리는 그 고통과 출혈을 서둘러 막아야 한다는 사실을 더불어 깨닫게 된다. 진상의 긍정은 검증으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적절한 조치를 이끌어낸다.

빈민층은 그들이 사회를 해치는 게으르고 무책임한 빈대와 같다는 악의적 비난과, 그들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에서 비롯한 수치심에 오랫동안 시달렸다. 정치인들은 빈곤을 검은색이나 황갈색 등의 특정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만의 문제로 치부해왔다. 이렇듯 빈민을 둘러싼 사회적 인식이 선입견에 물든 탓에 개인적으로, 사회적 일원으로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들이 ‘빈곤’이라는 꼬리표를 한사코 마다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우리가 그 지역의 재단법인 프레리 오퍼튜니티를 방문하는 동안 캐러다인이 동행해주기만을 바랐다. 만약 캐러다인이 우리와 동행했다면, 그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내 빈곤의 실상을 마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조앤 코튼의 처지를 직접 전해 들을 수 있었을 테니까. 다음은 코튼의 말이다.

“제 전공은 마케팅이에요. 지난 3년간 실직 상태죠. 남편은 몸에 장애가 있어요. 퇴행성 디스크가 너무 심해져서 30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네요. 둘이 합쳐 1년에 6만 달러씩 벌다가, 하룻밤 사이에 연 소득이 1만 5,000달러 이하로 줄었어요. 지금 우리 부부는 어떻게 해서든 압류당한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일만큼은 막아보려고 애쓰고 있는데…… 힘드네요. 몹시 힘들어요.” 코튼의 남편은 만성 폐 질환을 포함해서 여러 질병을 함께 앓고 있다. 그러나 필요한 약물 치료를 전부 받지는 못한다. “치료를 다 받을 순 없어요. 돈이 없어서…… 일부만 받고 있어요.” 이 부부는 푸드스탬프를 제공받고 있는데, 그런 처지가 지옥만큼이나 우울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참담한 그녀의 취업 사정보단 나을 것이다. 자동차 기름 값 때문에 마음껏 면접을 보러 다니기도 힘들다. 코튼은 300여 군데에 입사 지원서를 넣었고,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더러 받기도 했단다. 하지만 매번 면접관들은 그녀의 오랜 경력을 치켜세우면서도 면접 후에 다시 불러주진 않는다. “스물대여섯 살 난 애들을 고용해서 그만큼 월급을 덜 주려는 걸 제가 왜 모르겠어요”라고 설명하는 코튼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제가 바라는 건, 뭐라도 좋으니 일단 시작만이라도 하게 해달라는 거죠. 일하게 해주세요.”

순방 중에 캐러다인과 같은 사람들과 여러 번 부딪치면서 우리는 실제로 이 땅에서 우리를 가로막는 부정의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었다. 빈곤을 달갑잖은 것으로 마냥 내버려둔다면, 이 땅에서 가난한 인간으로 산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참모습을 어떻게 그려보겠는가? 사람들이 빈곤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해야 할 전염병 대하듯 하기를 그만두고, 대신 가난한 사람들의 위엄과 인간성을 긍정하는 날이 과연 오긴 올까? 빈곤을 둘러싼 허구와 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서 우리가 어떻게 경제적 박탈에 시달리는 궁핍한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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