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돈은 여자를 비켜 가는가
한동철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
왜? 돈은 여자를 비켜 가는가
한동철 지음
미래를소유한사람들 / 2013년 5월 / 316쪽 / 13,800원
1장 돈! 왜 여자만 비켜 가는 걸까?
미모와 돈의 경제학
백설공주가 독이 든 사과를 깨물어 먹고 깊은 잠에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 백설공주의 미모에 반해 그녀의 입술에 살포시 입맞춤을 한다. 백설공주가 깨어난다. 그리고 백설공주는 돈 많고, 권력 짱짱한 그 왕자님과 함께 행복한 표정으로 숲 속을 떠난다. 이야기의 논리적 적합성이나 완성도를 떠나 이런 경우가 세상 어디에 있나. 백설공주는 왕궁에서 쫓겨난 뒤 일곱 난장이의 도움을 받아 생계를 꾸렸다. 일곱 난장이는 정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 백설공주를 도왔다. 그런데 정작 백설공주는 이 일곱 난장이를 내팽개쳐 둔 채 돈 많은 왕자님을 따라 떠나가 버린다. 그러면 기껏 열성을 다해 공주를 도운 일곱 난장이는 뭐가 되는가?
어렸을 때부터 읽었던 대부분의 동화가 다 이런 스토리들이다. 신데렐라는 유리 구두 한 짝 잘 벗어 둔 공로(!)로 최고 권력자인 왕자와 결혼을 한다. 도대체 신데렐라가 뭘 했기에 이런 영광을 누리나? 라푼젤은 그 긴 금발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왕자와 결혼을 한다. 물레 바늘에 잘못 찔려 100년 동안 잠만 자는 저주에 걸린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역시 한 왕자의 끝없는 노력 끝에 입맞춤을 당하고(응?) 권력자의 아내가 된다. 그 왕자가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구하겠다는 일념을 갖게 된 것은 오로지 ‘성 안에 최고로 예쁜 여자 공주가 잠들어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야기들을 듣고 자라나니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모름지기 여자는 예뻐야 한다’는 환상이 자리 잡는다. 3류니, 막장이니 욕을 하면서도 수많은 ‘신데렐라 신드롬’을 그린 TV 드라마가 수십 년째 인기를 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요가 없으면 공급도 없다. 그 신드롬을 열망하는 뜨거운 수요가 있기에 그에 걸맞은 공급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동화는 동화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현실이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다는 것이다. 남자로서, 아니 부자학 교수로서 감히 장담하건대 지금까지 이야기한 이 동화 같은 환상들은 모두 냉혹한 진실을 감추고 있는 허상들이다.
여기서 우리가 진지하게 살펴봐야 하는 것은 ‘미모’와 ‘부’의 상관관계다. 많은 여자들은 예쁘기만 하면 백설공주나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멋진 백마 탄 왕자님이 나를 부유한 삶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수많은 ‘조건 괜찮은 남자’들이 미모의 여자에 환장하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예뻐지겠다는 열망을 가진 여자와, 예쁜 여자를 만나고자 하는 부유한 남자의 결합은 과연 그 두 사람을 진실로 행복의 꽃마차 안으로 안내하는 것일까?
여자의 미모와 남자의 부(富), 이 두 요소는 분명 현실 속에서 접점을 찾는 경우가 자주 일어난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미모의 여자를 찾는 부자 남자의 수요와, 그 미모를 완성한 아름다운 여자의 공급이 어떤 가격 지점에서 일치하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 일치하는 접점에는 큰 함정이 있다. 여자의 미모와 남자의 부가 만나는 그 접점은 분명히 존재할 수 있지만, 이 만남은 ‘접점’이라는 표현대로 그야말로 ‘점(點)의 만남’이라는 것이다. 점의 만남은 순간적일 뿐 지속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이 두 만남은 지속적인 ‘선(線)의 만남’이 되지 못할 숙명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부는 근본적으로 계속 불어나려고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반면, 미(美)는 근본적으로 계속 감소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백설공주를 창작한 그림 형제도 아니고, 신데렐라를 지은 페로도 아니니 원작자가 실제로 생각하는 그 뒷이야기가 무엇인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상식을 총동원해 그 뒷이야기를 채워 나가자면 내 생각은 이렇다. 유리 구두 들고 열심히 신데렐라를 찾은 그 왕자는 신데렐라와 결혼한 뒤 한 8개월 정도는 행복해한다. 그리고 이듬해 무렵, 신데렐라에 싫증을 느끼고 또 다른 예쁜 여자를 찾아다닌다. 혹시 이랬을지도 모르겠다. 그 왕자가 신데렐라에 싫증을 느끼고 또 다른 여자를 찾아 숲 속을 헤매다가 독이 든 사과를 입에 물고 잠이 든 백설공주를 만났을지도.
2장 미모와 학벌, 착한 성품은 ‘돈’이 안 된다
무엇이 나의 핵심 경쟁력인가?
몇 년 전 어느 온라인 커뮤니티에 빨간 패딩 재킷을 입은 한 남자의 사진이 올라왔다. 게시물의 제목은 ‘제가 요새 입고 다니는 건데…’였다. 사진을 올린 이는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한 뒤 ‘졸업 여행 때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구요. 어떤가요??’라며 자신의 패션 감각에 대한 평가를 네티즌들에게 구했다. 댓글로 달린 네티즌들의 반응은 처참 그 자체였다. ‘니 눈엔 괜찮아 보이냐?’ / ‘옷 좀 사 입어. 쓰레기통에서 주워 입지 말고.’ / ‘어디 낚시 가냐?’
그런데 며칠 뒤 극적인 반전이 이뤄졌다.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된, 붉은 색의 촌스러운 패딩 재킷을 입고 있던 그 인물의 얼굴이 공개된 것이다. 모자이크가 벗겨진 사진 원본에는 배우 조인성이 당당히 서 있었고, 며칠 전까지만 해도 ‘쓰레기통에서 주워 입은 패션’으로 매도되던 그 붉은 색 패딩 재킷에 대한 평가도 완전히 뒤바뀌었다. 사람들은 ‘사진에서 광채가 난다’, ‘조인성은 서 있기만 해도 화보다’라며 그 사진을 재평가했다. 이때 등장한 말이 바로 ‘패완얼’이라는 은어다. 패완얼이란 바로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는 뜻으로 잘생기기만 하면, 예쁘기만 하면 뭘 걸쳐도 광채가 나 보인다는 의미다. 이후 조인성을 비롯해 현빈, 원빈, 공유, 이동건 등 꽃미남들이 군 복무 시절 군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 돌아다니면서 ‘패완얼 신드롬’은 더 확산됐다. ‘쟤들 입은 군복은 디자이너가 디자인했냐?’, ‘원래 군복이 멋있는 옷이었구나’라는 반응이 봇물을 이뤘다.
이 글을 읽고 난 독자들의 소감은 어떤가? 여기까지 읽고 나서 ‘역시 사람은 얼굴이야. 얼굴이 멋있어야 뭘 해도 빛이 나 보이는 거야’라는 생각이 든다면 지금까지 이 책을 헛 읽은 것이다. ‘패완얼 신드롬’의 핵심은 ‘잘생기면 모든 것이 용서가 된다’는 외모 지상주의가 아니다. 아니, 설혹 이 신드롬의 핵심이 외모 지상주의와 관련이 있더라도 우리는 이 신드롬을 그렇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우리가 이 현상에서 배워야 할 것은 ‘사람을 빛나 보이게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그 사람을 도드라지게 만들어 주는 것은 패션이 아니라, 장식품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의 ‘핵심 경쟁력’이라는 사실이다.
조인성이나 원빈은 배우다. 잘생긴 것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의 핵심 경쟁력은 얼굴이기에 몸뚱이에 촌스러운 패딩 재킷을 걸쳐 놓아도, 군복을 걸쳐 놓아도 빛이 난다. 현빈에게 동대문에서 산 3,000원짜리 추리닝을 입혀 놓아 보라. 그렇다고 현빈이 안 멋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 패완얼 신드롬에 호응하기 위해 더더욱 얼굴을 성형하고 고치는 것에 매진해야 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나는 여성 부자가 추구하는 핵심 경쟁력은 절대 미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우리의 핵심 경쟁력은 뜨거운 정신이고 그를 통해 축적해 나갈 남다른 자산의 크기에 있다.
만약 우리가 꿈을 이뤄 100억 원대 자산가의 반열에 올랐다고 하자. 장담하는데, 이 정도 반열에 오른 사람들은 면 티셔츠 쪼가리 한 장 걸치고 거리에 나가도 절대 무시당하지 않는다. 괜히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나 명품 핸드백을 걸치고 거리에서 폼을 잡는다. 하지만 ‘패션의 완성은 비싼 옷’이 아니듯이, 명품 백 또한 사람들에게 경외심을 얻기 위한 핵심적인 요소가 아니다. 나의 핵심 경쟁력을 키우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그 경쟁력을 통해 부자의 반열에 오르면 내가 굳이 피하려고 해도 경외의 시선은 자연히 따라오기 마련이다. 조인성이 굳이 명품 옷을 걸치지 않아도 빛이 나는 것처럼, 부자도 굳이 멋 부리고 온몸에 돈 발라가며 치장하지 않아도 주변으로부터 경외의 시선을 받는다.
착해지지 마라, 착한 여성 부자는 없다
여성 부자가 되기 위해 배척해야 할 또 하나의 인습은 현모양처에 대한 유혹이다. 남자들은 현모양처라는 콘셉트를 ‘예쁜 외모’를 대체할 수 있는 또 다른 ‘여자의 매력’으로 규정짓는다. 물론 요즘 같은 외모 지상주의 사회에서 현모양처는 미모에 비해 그 콘셉트가 다소 약하긴 하다. 하지만 아직도 “제 이상형은 예쁜 여자가 아니에요. 제일 중요한 건 착한 성격이죠!”라며 자신의 호방함을 과시하는 남자들이 심심찮게 나타난다.
‘예쁘지 않으면 성격이라도 좋아라!’라는 남자들이 만들어 놓은 또 다른 굴레, 여성 부자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이런 소리를 듣는 순간 빛의 속도로 무시해버려야 한다. 성경 말씀에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만큼 어렵다’고 나와 있다. 부자가 천국 들어가기가 진짜로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만큼 어려운지는 모르겠으나, 내 경험상 착한 여자가 부자가 되는 것은 경부선 KTX 열차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다.
착한 성품의 소유자가 자신의 품위를 유지하면서 혼자서 이 세상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평생 최대로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은 기껏해야 몇 억 원 정도이다. 평범한 인생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무조건 독해져야 한다. 필자가 인터뷰를 하기 위해 만난 한 여성 부자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말이 “저같이 독한 년은 이 세상에 없을 겁니다.”였다. 그녀는 결혼 당시 시집에서 빚 없이 온전히 구매한 아담한 아파트를 한 채 장만해 주었는데, 그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결혼하자마자 그 집을 월세로 돌리고 굳이 싫다는 남편의 등을 떼밀어 시집으로 밀고 들어갔다. 살림은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그녀는 직장에 다녔다. 생활비는 단 1원도 내놓지 않고 꼬박꼬박 저축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그녀는 고기 집을 차려서 대박을 냈다. 부자의 반열에 오른 이후에야 그녀는 시집을 나와서 독립했다. 그리고 계절마다 가족행사를 열어 시댁 식구들을 식당으로 초청한 뒤 팔다 남은 고기(!)로 정성스럽게 대접했다.
이렇게 살아온 여인이 좋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겠는가? ‘살아 있는 부처님’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시어머니를 빼고는 모든 시댁 식구들이 이 며느리에 대한 악담을 늘어놓았다. 독한 년, 미친 년, 괘씸한 년, 은혜를 모르는 년…. 이 정도 욕은 욕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자신의 길을 갔다. 그 결과 이 ‘부자’ 여자는 아들을 미국 최고의 명문 고등학교로 유학 보내고, 딸은 프랑스 최고의 아트스쿨에 입학시켰다. 그리고 지금도 대한민국 상위 1%에 속하는 여성 부자로 당당히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말아 달라. 독해지라는 말이 세상의 법과 도덕쯤은 다 무시하고 부처님과 예수님의 말씀이라면 모조리 거역할 각오를 하라는 뜻이 아니다. 법과 도덕의 테두리 안에서 독해지라는 것이다. 지금 그저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당신의 몸속에 들어 있는 착한 면을 독한 면으로 바꾸고, 당신의 자비로운 행동을 냉혹한 행동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착한 여자는 부자가 될 수 없는 것일까?
첫째, 착한 여자는 남의 감정을 거스르는 행동을 하기 싫어한다. 이런 사람은 절대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가족이 반대하면 그만두고, 친한 친구들이 힘들다고 하면 그냥 포기한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으려면 남편에게는 비밀로 하고 집을 판 뒤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배짱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남의 감정을 거스르는 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여자는 이런 일을 해낼 수 없다. 게다가 이렇게 남의 감정을 거스르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세상과 타협을 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약간의 멋 정도는 좀 부리면서 살아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에 젖게 된다.
둘째, 착한 여자는 자신에게 혹독한 훈련을 시키지 못한다. 우리가 여성 부자라고 말할 때 이는 대한민국 여자 중 최소 상위 5%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중 태생적으로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부자와 이미 부자가 된 사람들을 빼고 나면 자수성가형 부자에게 주어진 자리는 3% 남짓이다. 즉 부자가 되는 확률은 100분의 3이 채 안 된다는 사실이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자신에게 혹독하고, 자신의 세포를 특공훈련시키듯 단련할 각오를 하지 못하는 착한 여자는 절대 이 상위 3%에 들 수 없다.
‘그 사람 참 착해’, ‘그 사람만 만나면 편해’라는 칭찬을 받으며 살고 싶은가? 그래서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으며 좋은 소리 많이 듣고 하루하루 보내고 싶다면 그냥 그렇게 살아도 된다. 그것도 하나의 인생이니까. 그렇다면 손 더럽히고, 마음 아프고, 무릎 관절이 닳는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살고 싶은 건가? 진실로 그렇게 평범하게 사는 것이 꿈인가? 만약 당신이 지금 착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살고 있거든 스스로에게 이 질문부터 진지하게 던져 보기를 바란다. 만약 가슴속에서 ‘아니야, 나는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라는 답이 꿈틀거린다면 이제 당신을 포장하고 있던 그 ‘착한 사람’이라는 가면부터 과감히 벗어 버려라!
3장 결혼은 부자의 밑천
인생의 하루뿐인 날, 결혼식!
이벤트 좋아하며 남자들에게 이벤트 강요하는 여자분들! 그러지들 마시라. 남자가 멋들어진 이벤트를 꾸미며 돈을 써서 당신을 현혹하면 그 순간 황홀해질 수는 있어도 나중에 살다 보면 그런 것들은 다 빚으로 돌아온다. 필자가 가장 황당하게 생각하는 말 중 하나가 “오늘은 내 생일이야, 1년에 하루뿐인 날이라고!”라며 환상적인 생일파티를 강요하는 젊은 여자들이다. 달력을 펼쳐 놓고 1년 365일을 하루하루 세어 보자. 그날 중에 1년에 하루뿐인 날이 아니라 이틀씩이나 되는 날은 도대체 어디 있나? 365일 모두 1년에 단 하루뿐인 날들이다. 삶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 하루하루는 더 말할 나위 없이 모두 소중한 시간들이다. 내 생일이니 그날만은 특별히 소중하다고? 제발 정신들 차리시라.
결혼식도 마찬가지다. ‘평생에 한 번 있는 결혼식인데 그래도 기억에 남게 해야지’라는 구닥다리 생각을 당장 머릿속에서 지워야 한다. 결혼식 하는 그날만 평생 한 번 있는 날이 아니다. 당신이 지금 살고 있는 ‘오늘’도 결혼식 올리는 날과 마찬가지로 평생에 단 한 번만 있는 소중한 날이다. 결혼식의 목적은 우리가 미래의 부자 후보로서 첫발을 내딛는 것에 있다. 쓸데없이 사람들 초청해 밥 한 끼 대접하는 것이 결혼식의 목적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다들 중학교는 졸업했을 것이다. 그런데 중학교 입학식 기억하는 사람 있나? 이처럼 ‘식’이라고 이름 붙은 것은 다 허례다. 시무식, 종무식은 싫어하고 귀찮아하면서 쓸데없이 결혼식에는 웬 정열을 그렇게 쏟아붓는가. 그리고 아주 솔직히 이야기해 보자. 지금 당신이 결혼식을 올린다고 하자. 당신의 가족을 제외하고 이 지구상에 당신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사람이 몇이나 될 것 같은가? 최소한 100명은 될 것이라고? 어림없는 소리다. 아무리 안 돼도 50명은 될까? 김칫국 마시는 소리다. 10명? 글쎄, 그것도 필자는 어렵다고 본다. 혈육을 제외하면 내 결혼식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사람은 많아야 서너 명이다. 당신이 이 세상에서 알고 지내는 수천 명의 사람들 중에서 당신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하러 오는 외부인은 서너 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아주 대놓고 말하면 필자는 ‘결혼식 같은 것은 안 해도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꼭 해야겠거든 그냥 깨끗한 한정식 식당 한 곳을 찾아 통째로 빌리는 것이다. 그리고 양가 식구들과 평소 존경했던 부들 모두 합해 약 50~60명 정도 초청해서 식을 올리면 된다. 깔끔한 한정식 집에서 단정한 옷을 입고 결혼식을 한다. 시간은 오후 2시부터 10시까지로 길게 잡는다. 하객들은 한정식 집 앞에서 커피를 마시며 환담을 하고, 신당에 들어와서 칠십세주와 남미산 와인으로 축배를 든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미리 준비한 약간의 축하공연을 함께 관람한 뒤 신혼부부가 떠나는 모습을 보고 헤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