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되는 과학적 방법
월러스 워틀스 지음 | 이담북스
부자가 되는 과학적 방법
월러스 워틀스 지음
이담북스 / 2013년 2월 / 302쪽 / 14,000원
부자가 되는 것은 권리: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목적은 자라는 것, 바로 발전이므로 살아 있는 모든 것에는 가능한 한 모든 형태로 발전을 할 천부적인 권리가 있다. 그리고 사람은 자신의 정신적ㆍ영적ㆍ신체적 잠재력을 활짝 꽃피우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아무런 제한 없이 자유롭게 소비할 권리가 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내가 이 책에서 말하는 부는 상징적인 의미의 부가 아니다. 진정으로 부유하다는 것은 작은 것에 만족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좀 더 갖고 좀 더 즐길 능력이 있다면 작은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삶의 발전과 발현은 자연의 섭리이므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섭리에 순응하여 고귀하고 아름답고 풍족해야 한다.
부유한 사람이란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진 사람, 그래서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돈이 충분하지 않으면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수가 없다. 인생에서 성공한다는 것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다. 그런데 원하는 대로 되기 위해서는 뭔가를 사용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뭔가를 자유롭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살 수 있을 만큼 돈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부자가 되는 과학적 방법을 이해하는 것은 지식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지식이다. 부자가 되고자 하는 것은 조금도 잘못된 것이 아니다. 부자가 되고자 한다는 것은 좀 더 부유하고, 좀 더 충만하고, 좀 더 풍요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칭찬을 받을 일이다.
사람은 세 가지를 위해 산다. 몸과 정신, 영혼이 그것이다. 이 셋 사이에 우열은 없다. 세 가지 모두 숭고하고 바람직하다. 그리고 셋 중 어느 하나라도 온전히 발현되지 않으면, 나머지 것들도 온전히 발현될 수 없다. 영혼만을 위해 살며 몸과 정신을 부정하는 것은 옳은 일도 고귀한 일도 아니다. 정신만을 위해 살며 몸과 영혼을 부정하는 것도 잘못이다. 그리고 우리는 정신과 영혼은 부정하면서 오직 몸을 위해서만 사는 삶이 얼마나 끔찍한 결말을 가져오는지 잘 알고 있다.
좋은 음식과 의복, 따뜻한 보금자리, 과도한 노동으로부터의 자유가 없는 사람은 신체적으로 충만하게 살 수 없다. 책이 없는 사람, 책은 있는데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 여행이나 관찰, 지적인 교류를 할 기회가 없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충만하게 살 수 없다. 영혼이 충만한 삶을 살려는 사람에게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사랑의 표현은 가난에 의해 방해를 받는다. 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남편이나 아버지, 시민으로서 자신의 본분을 다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사람은 물질의 소비를 통해서 몸과 정신, 영혼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최고로 중요한 것은 바로 부자가 되는 것이다.
부자가 되는 과학적 방법: 부자가 되는 과학적 방법은 존재한다. 그것은 대수학이나 산술처럼 엄밀한 과학이다. 부를 획득하는 과정을 지배하는 특정법칙, 일단 이 법칙들을 배우고 실천하게 되면 누구나 수학 문제가 풀리는 것처럼 확실하게 부자가 될 수 있다. 돈이나 재산은 특정한 방식으로 일을 해야 생긴다. 알고 했든 모르고 했든 이 특정방식대로 일을 하는 사람은 부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방식대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고 아무리 재능이 있더라도, 가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리고 부자가 되는 것은 환경 때문이 아니다. 만약 환경 때문에 부자가 된다면 어떤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부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같은 환경에서 나란히 사는 것은 어디에서건 볼 수 있다. 또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 같은 일을 하는 두 사람 중에서도, 어떤 사람은 부를 쌓고 어떤 사람은 실패하는 것을 보면, 부자가 되는 것은 일을 어떤 특정한 방식에 따라 한 결과이다.
또한 재능이 있다고 해서 특정방식에 따라 일을 하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뛰어난 재능이 있으면서도 가난한 사람들도 많고, 별 재능도 없으면서 부자인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는 것은 근검절약의 결과도 아니다. 극도로 절약을 하는 사람들도 가난한 경우가 많으며, 아무런 제약 없이 돈을 쓰는데도 부유한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해내지 못하는 일을 해내기 때문에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같은 업종에서 똑같은 일들을 하는 경우에도 그중 하나는 부자이지만 다른 하나는 가난을 면하지 못하거나 파산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들로 미루어 부자가 되는 것은 일을 특정한 방식에 따라 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다.
기회는 소수가 독점하고 있는가?: 기회가 없기 때문에 가난을 면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즉, 일부 사람들이 부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부자가 못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혹시 어떤 일부 업종에 뛰어드는 것이 불가능할 수는 있다. 하지만 다른 경로가 항상 열려 있다. 예로 철도 산업처럼 거대한 분야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분명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전기ㆍ철도 사업은 아직 커 나가는 단계라서 수많은 분야에 걸쳐 사업의 기회가 널려 있다. 시대에 따라 기회의 흐름도 달라진다. 전체 사회의 필요에 따라, 사회가 발전의 어느 단계에 와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 맞서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흐름을 따라가려는 사람에게 무한한 기회가 주어지는 법이다.
그리고 부의 공급이 부족해서 사람들이 가난을 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되고도 남을 만큼 부는 충분하다. 예로 미국에 있는 건축자재만 가지고도 지구상 모든 가족에게 워싱턴 국회의사당만큼 큰 대저택을 지어줄 수 있다. 눈에 보이는 부의 공급만 해도 실질적으로 무한대에 가까우며, 눈에 안 보이는 공급량까지 생각하면 부의 고갈이란 불가능하다. 부의 공급이 부족해서 가난한 것이 절대 아니다.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고 생각하려는 사람은 무형의 근원물질의 자원조차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제부터 좀 더 분명히 논증해보겠다.
부자가 되는 과학적 방법의 첫 원칙: 생각은 무형의 근원물질에서 유형의 부를 생산해낼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 자연에서 관찰되는 모든 형상과 과정은 근원물질의 생각이 구체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우리는 근원물질이 생각으로 만들어낸 세계, 생각으로 만든 우주에 살고 있다(세계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근원물질이 어떤 형상을 생각하게 되면 그 형상이 창조된다. 그러나 그 형상은 항상 (혹은 보통은) 이미 설정된 행동과 성장의 선을 따라 그렇게 된다. 어떤 형상을 가진 집을 생각했을 때, 만약 그 생각이 무형의 근원물질에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즉각적으로 집의 형상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때문에 거래와 유통 분야에서 이미 작용하고 있는 창조 에너지들이 어떤 경로를 따라 작동하여 (건축이라는 기존 경로로 움직여) 결국 신속하게 집을 만들어내게 될 것이다.
사람이 손으로 만들어내는 모든 형상은 먼저 그의 생각 내에서 존재해야 한다. 사람은 그가 생각해보지도 않은 것의 형상을 만들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태까지 인간은 손을 이용해서 하는 작업에만 노력을 기울여왔다. 즉 이미 존재하는 형상을 바꾸거나 수정하기 위해 육체노동을 한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무형의 근원물질에 적용하여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은 결코 해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 인간은 ‘무형의 지혜’와 협력하려는, 즉 ‘신과 함께’ 작용하려는 노력을 거의 혹은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특정한 방식에 따라 일을 하는 사람은 부자가 된다고 말해왔다. 특정방식에 따라 일을 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방식에 따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바라는 대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바라는 대로 생각하는 능력을 먼저 갖춰야 한다. 이것이 부자가 되는 첫 단계다. 바라는 대로 생각한다는 것은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본질, 즉 진실을 보는 것이다. 누구나 바라는 대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 즉 진실을 보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겉모습에 따라 생각하는 것보다 진실을 보는 것이 훨씬 더 힘이 든다. 특히 진실이 겉모습과 상충될 때 그렇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겉모습에 따라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진실을 꿰뚫어볼 줄 알아야 극복할 수 있다.
질병이라는 겉모습에만 집착해서, 질병이란 겉모습일 뿐이며 사실은 건강하다는 진실을 견지하지 못하면, 마음속으로 병이 들었다는 생각을 하게 돼 실제로 몸에도 병이 든다. 가난이라는 겉모습에만 집착해서, 가난이란 없으며 사실은 풍요뿐이라는 진실을 견지하지 못하면, 마음속에도 온통 가난만이 가득하게 될 것이다. 질병이라는 겉모습에 둘러싸여서도 건강을 생각하거나, 가난이라는 겉모습에 둘러싸여서도 풍요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한다. 이 힘을 얻은 사람은 마음을 다스릴 수 있고 운명을 정복할 수 있다. 즉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 이 힘은 겉모습에 감춰져 있는 근본적인 진실을 이해해야만 얻을 수 있다. 바로 생각하는 하나의 근원물질이 존재하며, 모든 것은 이 근원물질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다.
삶의 증폭: 땅에 떨어진 씨는 싹이 트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수백 개의 씨를 생산해낸다. 생명은 산다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증식시킨다. 이렇듯 생명이란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이 되는 것이다. 생명이 계속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생각 역시 끊임없는 증식이 필요하다. 어떤 생각을 하게 되면 그다음 다른 생각으로 넘어가게 되며 의식도 끊임없이 확장된다. 하나를 배우게 되면 그다음 다른 것을 배우게 되며 지식이 끊임없이 확장된다.
우리가 남을 위해 희생하기를 신이 바란다는 생각을, 그렇게 해야 신의 은총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라. 신이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신은 우리가 자신을 최대한 계발하기를 바란다. 이것은 우리 자신을 위하는 길이자 남을 위하는 길이기도 하다. 자신을 최대한 계발하는 것이야말로 남을 가장 많이 도울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최대한 발전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부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자가 되는 일을 우선시하고 최선으로 여기는 것은 옳으며 칭송받아 마땅한 일이다.
경쟁하려는 생각을 버려라.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일은 기존의 것들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다. 누구에게서 그 어떤 것도 빼앗아서는 안 된다. 인정사정없이 거래를 해서도 안 된다. 남을 속이거나 이용해서도 안 된다. 우리를 위해 일하는 사람에게 정당한 몫보다 적게 줘서도 안 된다.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것을 탐내서도, 눈독을 들여서도 안 된다. 남에게서 빼앗지 않으면 도저히 가질 수 없는 그런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경쟁자가 아니라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 창조를 통해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갖게 되면 다른 모든 사람도 그 혜택을 보게 된다.
부는 어떻게 다가오는가: 경쟁 단계를 벗어나 창조 단계로 들어서게 되면, 우리가 하고 있는 비즈니스 거래를 철저하게 조사해봐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파는 물품 중에 고객에게 그 가격만큼의 기여를 하고 있지 못한 물품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 거래를 중단하도록 하자. 경쟁에서 이겨야만 사업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경쟁에서 남을 물리쳐야만 하는 업종에 몸담고 있다면, 즉시 그 업종을 떠나라. 모든 거래에서 현금으로 받는 것 이상의 사용가치를 줘라. 그렇게 되면 모든 거래가 세상 사람들의 삶에 기여를 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직원을 고용해서 쓰고 있는 경우라면, 급료로 나가는 것보다 더 많은 현금가치를 직원들로부터 뽑아내야 한다. 그 대신 발전을 원하는 직원은 매일 조금씩 발전할 수 있도록 ‘진보의 원칙’이 가득한 업체로 만들어라.
당신이 이 책에서 얻는 것을, 당신 직원들이 당신의 업체에서 얻을 수 있게 하라. 수고를 아끼지 않는 직원들이 부를 향해 밟고 오를 수 있는 사다리 같은 업체가 되어라.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마다하는 직원들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의 책임이 아니다. 덧붙이면, 우리 주위에 가득한 무형 물질에서 부를 일궈낼 수 있다고 해서, 부가 허공에서 그냥 만들어져 우리 눈앞에 나타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재봉틀을 예로 들어보자. 지금 당신이 앉아 있는 방이든 어디든, 누가 만들지도 않은 재봉틀이 그냥 뚝 떨어질 때까지 ‘생각하는 근원물질’에 대고 재봉틀 생각이나 계속하라는 뜻이 아니다. 재봉틀을 원한다면, 재봉틀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그 재봉틀이 만들어지고 있거나 당신을 향해 오는 중이라는 강한 확신을 가져라. 일단 이미지 형성에 성공하면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신념을 가지고 그 재봉틀이 당신에게로 오고 있다고 믿어라. ‘재봉틀은 분명히 도착한다’는 확신을 흔들 수 있는 생각이나 말은 절대 하지 마라. 재봉틀을 이미 당신의 것으로 여겨라. 그럼 그 재봉틀이 당신의 것이 될 것이다.
당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삶을 증진시키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다른 물건들도 당신이 원한다면 확실히 가질 수 있다. 주저 말고 더 많이 요구하라. “아버지께서는 기꺼이 너희에게 왕국을 주신다”라고 예수는 말했다. 당신 내부의 근원물질은 당신이라는 형상을 통해, 가능한 것은 모두 실현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풍족한 삶을 살기 위해 당신이 가질 수 있는 것, 사용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당신이 갖기를 바란다. 부자가 되고자 하는 당신의 갈망은 전능한 존재가 좀 더 완벽하게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갈망의 하나이다. 이 사실을 명심한다면 당신의 신념을 꺾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제 어떤 학생의 경우를 떠올려보기로 한다. 나는 그 학생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마음속에 분명하게 떠올리고, 그것들을 획득하고자 하는 열망을 무형의 근원물질에 강하게 투영하라는 말을 해줬다. 그는 아주 가난했고 셋집에서 살았으며, 그날 벌어 그날 먹고사는 처지였다. 그에게 모든 부가 그의 것이라는 사실은 도무지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는 말이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한 끝에, 그는 그렇다면 너무 과하지 않은 것, 즉 자신이 사는 집에서 가장 좋은 방에 깔 새 카펫과 추운 날씨에 난방용으로 쓸 무연탄 난로를 바라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책에서 얘기한 대로 따라 한 그는 몇 달 만에 이것들을 장만하게 됐다. 그러자 이제 애초에 너무 조금 바랐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을 샅샅이 조사한 그는 필요한 곳들을 모두 수리할 계획을 세웠다. 이곳에는 퇴장(밖으로 내밀어 난 창)을 하나, 저쪽에는 방을 새로 하나 내고…… 하는 식으로 그는 마음속에 이상적인 집을 지었다. 그 후에는 가구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 마음속으로 그림을 다 완성한 후에 그는 특정방식대로 살며, 그가 바라는 것들을 얻고자 노력했다. 현재 그는 세를 내던 주택의 소유자가 됐으며, 자기가 마음속에 그리던 이미지대로 집을 고치고 있다. 이제 더 확고한 믿음을 갖게 된 그는 더 큰 것들을 얻고자 전진하려 한다. 그의 믿음이 실제로 이뤄졌듯이 당신이나 우리 모두에게도 우리의 믿음대로 이뤄지는 것이다.
감사하라: 마음을 가다듬고 속죄하는 모든 과정은 단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감사’가 그것이다. 첫째, 하나의 지적인 근원물질이 있으며 이로부터 다른 모든 것이 비롯됨을 믿어라. 둘째, 이 지적인 근원물질이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준다는 것을 믿어라. 셋째, 당신 자신을 이 지적인 근원물질과 연결시켜라. 이는 진심에서 우러나는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만 가능하다. 다른 면에서는 삶을 제대로 꾸려가는 수많은 사람이 감사의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은 신으로부터 선물을 하나 받고도 감사의 마음을 갖지 못해 신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만다. 좋은 것들이 생길 때 신에 감사하면 할수록 좋은 것들을 더 많이, 더 빨리 얻게 될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 자세가 축복을 가져다주는 원천과 우리를 더욱 긴밀하게 연결해주기 때문이다.
감사하는 마음을 통해 우리의 온 마음이 우주의 창조 에너지와 밀접한 조화를 이루게 된다는 말이 새삼스럽더라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말이 사실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좋은 것들은 특정법칙에 따라 행동한 결과 우리 것이 된 것들이다. 감사하는 마음은 이러한 좋은 것들이 오는 길목으로 당신을 이끌어줄 것이며, 창조적인 생각과 조화를 이루게 하여 당신이 경쟁 모드로 빠져들지 않도록 해줄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면 현재 처한 상황에서 불평불만을 갖지 않고 지내기가 어렵다(즉, 감사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 만족하는 마음을 갖게 해 준다). 현재 상황과 관련하여 불평불만을 갖기 시작하는 순간 모든 것을 잃기 시작한다. 우리의 의식이 흔한 것, 평범한 것, 가난한 것, 지저분한 것, 야비한 것에 머물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