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의 승부사 제시 리버모어
리처드 스미튼 지음 | 새빛에듀넷
역전의 승부사 제시 리버모어
리처드 스미튼 지음
새빛에듀넷 / 2009년 7월 / 296쪽 / 13,000원
리버모어의 인생역정제시 리버모어는 1877년 미국의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났다. 소년 시절 그는 비쩍 마른데다 병치레가 잦았고, 덕분에 많은 독서를 했으며, 오래지 않아 혹독한 농사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한편 학교에서 그는 수학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는데, 그의 아버지는 농부의 삶에는 더 이상 교육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그가 14살이 되자 그를 학교에서 데려와 작업복을 입혔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도망칠 궁리를 했고, 결국 어머니가 쥐어준 5달러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농장을 몰래 빠져나와 지나가는 마차를 얻어타고 보스턴으로 내달렸다.
보스턴에서 마차를 내리자마자 그는 패인웨버 증권사 사무실 밖에서 내부의 풍경을 구경하다가 전율을 느꼈고, 그곳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시세판 서기로 일하면서 그는 모든 일들을 유심히 관찰했고, 주가표시기와 시세판에 숨겨진 암호를 풀고 자신만의 거래방식을 개발할 수만 있다면, 큰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저녁이면 혼자 사무실에 남아 기억에 남길 만한 몇 가지 특이점들을 기록하곤 했고, 그 안에서 특별하게 반복되는 수리적 패턴을 발견했다.
당시에는 주식방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투기꾼들이 10%의 증거금만으로 시장에 참여할 수 있었다. 즉 10%의 현금을 걸고 주식을 매수함으로써 '베팅'하는 것이었다. 매수전표는 즉시 인쇄되어 매수자에게 전달되는데, 이 주문표에는 매수시간, 매수가격, 매수 주식수량이 적혀 있었다. 만약 가격이 10% 하락하면 즉시 주식방의 직원이 재빨리 돈을 가로채고, 반대로 주가가 오르면 투기꾼은 직원에게 가서 주문표에 적혀 있는 최종주가를 확인받아 경리에게 돈을 받는 시스템이었다.
리버모어가 15살이 되던 해, 어느 날 함께 일하는 빌리가 말했다. "제시, 돈 좀 있어?" "왜?" "US스틸에 대한 정보가 있어. 함께 투자할 사람이 필요해서." "어떻게 살 건데?" "주식방." 리버모어는 공책을 보며 US스틸의 행적을 확인했더니, 숫자들의 흐름이 전형적으로 상승 직전에 있어 투자를 했고, 이틀 후 리버모어는 3달러 이상의 순익을 얻었다. 그 뒤 그는 혼자 주식방을 드나들기 시작했고, 어느새 직장보다 주식방에서 더 많은 돈을 벌고 있었다. 당연히 직장을 그만두고 보스턴의 주식방들을 돌며 전업투기꾼으로 나섰고, 16살이 되기 전에 1,000달러가 훨씬 넘는 현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승률이 지나치게 높은 도박꾼이 카지노에서 출입을 금지 당하는 것처럼, 계속되는 성공으로 리버모어는 결국 보스턴의 모든 주식방으로부터 출입을 금지 당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했다. 처음에는 잃다가 막판에 크게 한탕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업주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이러한 방법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결국 보스턴의 주식방 업계로부터 추방당한 리버모어는 좀 더 큰물에서 놀아볼 결심을 하기에 이르고, 마침내 자신의 이론, 자신의 시스템, 자신의 원칙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2,500달러를 가지고 뉴욕으로 진출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뉴욕에서도 자신의 주무대인 주식방에는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별수 없이 그는 뉴욕증권거래소의 정규 주식거래에서 승부를 시작했다. 먼저 그는 허튼의 증권사에 거래를 텄고, 처음에는 그도 썩 잘해냈다. 그러나 결국 모든 돈을 잃고 말았다. 실패의 연속으로 돈은 모두 날린 리버모어는 장이 끝난 어느 날 허튼을 찾아가, 지금 당장에는 월스트리트를 당해낼 수가 없어 다시 주식방으로 돌아가 거기서 돈을 좀 모아서 돌아오겠다며 천 달러를 빌렸다, 하지만 주식방에서 거래하겠다는 리버모어의 선택에는 여전히 많은 제약이 따랐다. 일단 동부에 있는 주식방 업주들은 모두 그를 꺼려했기 때문에 별수 없이 중부로 눈을 돌려야 했다. 결국 그는 두 개의 대형 주식방이 성업 중이라는 세인트루이스로 향했고, 그곳에서 가명을 사용하고 보수적으로 베팅하며 몸을 사리는 방법으로 1,000달러를 3,800달러로 만들었다. 하지만 3일째 되던 날 정체가 탄로나 첫 번째 주식방에서 쫓겨났고, 두 번째 주식방으로 달려갔지만, 그곳에서도 쫓겨났다. 할 수 없이 다음날 그는 뉴욕으로 돌아왔고, 빌린 돈 1,000달러는 갚았다. 뉴욕으로 돌아온 그는 다시 몇 개월간 거래에 집중했다. 그런데 막상 계좌를 까보니 본전에 불과했다. 자신감은 여전했지만, 그는 아직도 주식방에서처럼 일관된 성공기법을 개발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객관적으로 자신의 지난 실수들을 다시 분석해 보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학습을 했다.
1899년, 22살이 된 리버모어는 7년간의 투자경험과 1만 달러의 밑천을 갖고 있었고, 여전히 주가테이프가 지시하는 대로 시간 단위, 일 단위로 매매하는 단타원칙을 고수하고 있었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그는 1900년 10월, 미 중서부지역의 주식방을 드나들던 시절에 만났던 인디애나폴리스 출신의 네티 조단과 결혼했다. 한편 1901년 미국 주식시장이 달아오르면서 모두들 제정신이 아니었다. 강세장이 계속되는 가운데 리버모어도 당연히 강세론자의 위치에 있었고, 그로서는 예외적으로 노던퍼시픽에 밑천 1만 달러를 '장기투자'하여, 5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 뒤 그는 시장의 큰 휴식, 급격한 조정 또는 하루짜리 초단기 급락에 이은 랠리를 기다렸는데, 5월 초, 드디어 기회가 왔다. "100달러에 US스틸 1,000주 공매도!" 어느 날 개장을 몇 초 앞두고 리버모어가 직원에게 소리쳤다. "80달러에 산타페 주식 1,000주 공매도 추가!" 주문을 받은 직원은 거래소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사라졌다. 장이 열리자 리버모어는 자신이 공매도한 주식들의 가격이 추락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가격은 무섭게 폭락하고 있었다. 그의 예측이 들어맞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리버모어는 거래량을 확인해보고 갑자기 공포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실로 엄청난 거래량이었다. 장이 열리자마자 소위 '선수'들이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난 것이다. 매수에서 매도로의 손바뀜이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과부하로 인해 주문체결은 15분, 30분, 1시간, 2시간으로 점점 더 늦어졌다. 최종 체결가격은 투자자들이 애초에 원했던 가격과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그의 손에 들어온 체결상황은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100달러에 공매도한 주식은 85달러에 체결되었고, 80달러에 공매도한 주문은 65달러에 체결되었다. 그러한 가격은 원래 그가 공매도를 청산할 때 되사리라 작정한 가격이었다. 리버모어는 즉시 포지션을 청산하기로 결정하고 직원에게 소리쳤다. "US스틸과 산타페 각 1,000주씩 시장가매수!"
하지만 리버모어는 자신의 주식들이 급반등하는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모골이 송연해졌다. 이번에는 급반등이 최고조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의 공매도와 청산은 엄청난 손실로 끝나고 말 것이 분명했다. 그는 투기꾼이 해서는 안 될 최악의 실수를 한 셈이었다. '바닥'에서 팔고 '꼭지'에서 산 것이다. 잠시 후 직원이 주문표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는 US스틸을 85달러에 팔고 110달러에 되삼으로써 총 2만5,000달러의 손해를 보았다. 산타페 거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그의 판단은 옳았고, 시장도 그의 예상대로 움직였다. 그런데도 그는 부도가 나고 말았다. 그의 두 번째 파산은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그는 주식투자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고, 의기소침해졌다. 유일한 위안은 뼈저린 방식으로나마 실패의 원인을 알아냈다는 것뿐이었다. 그 뒤 리버모어는 재기할 밑천을 마련하려고 다시 보스턴으로 갔고, 그곳에서 재기할 밑천과 몇 가지 기본 지침들을 갖고 월스트리트로 돌아올 수 있었다. ① 항상 일반적인 시황을 먼저 평가하고 난 다음에 추세선을 결정하라. 상승장인가, 하락장인가? 또는 추후 향방을 결정짓기 전에 옆으로 흐르는 횡보장인가? ② 시장의 전반적인 흐름이 내 편이 아니라면 극히 불리한 상황에서 거래하게 되는 셈이다. 흐름을 따르고 추세에 순응하라. 불어오는 바람을 거스르지 마라.
하지만 다시 돌아온 뉴욕에서도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는 올리지 못했다. 첫째 이유는 그의 매매기법이 아직 그가 원하는 만큼 완벽한 것은 아니었고, 두 번째 이유는 주위에 있는 다른 투기꾼들에게도 너무 귀를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기간의 깊은 분석을 통하여 리버모어는 서서히 진화하고 있었다. 그는 주식시장과 상품선물시장에서 자신만의 기법을 발전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리버모어는 자신이 개발한 규칙을 활용하여 대박을 터뜨리게 된다.
리버모어가 29살이던 1906년 봄, 애틀랜틱시티에서 휴가를 보내던 리버모어와 그의 친구는 약간 지루한 나머지 주가나 확인해볼 겸 허튼 증권사 애틀랜틱 지점으로 걸어 들어갔다. 장은 매우 강했고, 리버모어의 친구는 상승 쪽에 많은 포지션을 쌓아두고 있었다. 그는 침묵 속에서 주가테이프만 계속 관찰하고 있었다.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리버모어는 간혹 이해할 수 없는 충동과 예감, 직관적인 압박 따위에 사로잡힐 때가 있었는데, 대부분의 경우 그는 이러한 직감들을 무시하지만, 계속 염두에는 두고 있었다. 그러다 보면 결과적으로 대부분이 맞아떨어지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한참동안 주가테이프만 관찰하던 리버모어는 지점의 직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유니온퍼시픽 1,000주 공매도." 친구가 놀란 얼굴로 외쳤다. "제이엘! 지금 올라가고 있다니까!" "유니온퍼시픽 1,000주 추가 공매도." "제이엘! 미쳤어?" 그러나 리버모어는 세 번째 1,000주 공매도 주문을 냈다. 하지만 그날 오후 장이 마감될 즈음, 유니온퍼시픽 주가는 그가 공매도한 가격에서 2달러나 올라 있었고, 다음날 주가는 추세대로 약간 더 올라 있었다. 그러나 장 마감 무렵이 되자 갑자기 매도세가 출현했다. 그는 2,000주를 또 공매도하고, 그날 저녁 뉴욕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새벽 샌프란시스코의 지반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아침에 그는 다음과 같은 조간의 헤드라인을 읽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주가는 충격적인 소식에도 불구하고 몇 포인트만 하락."
강세장 분위기에서 발생하는 악재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세장 속에서 악재가 퍼지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길다는 것을 리버모어는 알고 있었다. 실제로 그날 장이 끝나기 전에 주가는 오히려 전일 수준으로 반등했다. 그리고 다음날 샌프란시스코로부터 뉴스들이 밀어닥치자 시장이 표류하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주가가 급격하게 빠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리버모어는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고, 특별 신용거래로 유니온퍼시픽 5,000주를 추가로 공매도했다. 마침내 지진이 일어난 지 3일째 되던 날 시장은 급락하기 시작했다. 특히 유니온퍼시픽은 급전직하했는데, 리버모어는 25만 달러의 수익을 손에 쥔 채 유유히 난파선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후 리버모어는 하락을 향한 거대한 방향성을 감지하고, 모든 시장 관련 변수들을 주의 깊게 살펴본 다음, 추세가 아직 상승중이긴 해도 시장은 이미 상투를 찍었다고 결론 내렸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을 확인하기 위해 다양한 주도주에 '정찰병'을 보내 자신만의 독특한 매매전략을 적용해보았는데,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그가 공매도한 주식의 가격은 떨어졌으며, 반등을 할 때도 전고점을 돌파하지 못하고 비실거리며 고작 몇 달러 오르다가 다시 빠져 고점에서 멀어져갔다. 리버모어는 큰 베팅을 앞두고 일단 당분간 시장을 잊기로 했다. 팜비치에서 휴가를 보내고, 파리로 향했고, 그곳에서 쾌속증기선을 타고 뉴욕으로 돌아왔다. 리버모어는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추세에 대한 자신의 판단이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공매도에 나섰고, 추세를 확인한 후 지속적으로 공매도를 감행해 약세포지션을 쌓아놓았다. 그 후 1907년 10월 24일 오후 12시, 혼란이 객장을 엄습했다. 브로커들이 단기대출을 얻어내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자금을 구할 수 없었고, 브로커들은 신용을 메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포지션을 청산해야 했다. 하지만 이 와중에 주식을 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리버모어는 그날 난생 처음으로 100만 달러를 단 하루 만에 벌어들였고, 게다가 '그날'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만약 다음날 아침 장에 공매도를 세게 한방 먹인다면, 100만 달러가 아니라 1,000만 달러, 2,000만 달러도 순식간에 벌어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그가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차례였다. 시장을 떠받칠 것인가, 아니면 정치인들이 거래소를 닫아버릴 때까지 시장을 끌어내릴 것인가? 리버모어가 다음으로 취할 행동에 대해 숙고하고 있을 무렵, 공교롭게도 주식브로커이자 그의 친구인 워런 리드가 그를 방문했다.
"제이엘, 자네에게 작금의 시장상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공매도를 자제해줄 것을 요청하라는 특별한 지시를 받았네." "자네 회사로부터 받은 지시인가?" "아니." "그럼… 모건인가?" "그분의 개인적인 부탁일세." "자네… 그 사람들이 지난 몇 달 동안 시장에 물량을 떠넘기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나?" "알고 있네. 하지만 주가가 너무 높으면 항상 그런 식이지 않은가. 똑똑하고 시장에 정통한 사람들이 덜 똑똑하고 시장에 무지한 개미들에게 파는 거지." "맞아." "제이엘, 시장을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하려면 이쯤에서 매도를 멈추고 더 이상의 출혈을 막아야 하네." "자네 보스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전해주게." 다음날 아침 리버모어는 약속대로 공매도포지션을 청산함으로써 랠리에 불을 지폈고, 그날 장이 끝나자 현금으로만 300만 달러가 그의 수중에 떨어졌다.
한편 리버모어는 비치클럽에서 '코튼킹(Cotton King)' 즉, '면화의 제왕'이라 불리던 퍼시 토마스를 만났는데, 토마스는 틈날 때마다 심혈을 기울여 리버모어에게 면화에 관한 특강을 해주었다. 처음 토마스를 만났을 때 리버모어는 면화시장의 약세를 예상하고 약간의 공매도포지션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 달간에 걸친 토마스와의 대화 끝에 그는 시황관을 바꾸기에 이르고, 입장을 바꾼 그는 '몰빵'으로 돌아섰다. 소규모의 공매도를 청산하고 반대로 6만 포의 매수포지션을 구축한 것인데, 이는 그 어떤 '정보'도 취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원칙을 깨뜨리고 만 것이었다. 이후로도 그는 같은 실수를 몇 번 더 반복하게 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면화는 그의 예상과 반대로 움직였고, 또 팔아치워야 할 때, 평균 매수가를 낮추기 위해 추가매수를 단행했다. 이른바 '물타기'를 한 것이다.
그나마 다행으로 대량 보유하고 있던 밀 포지션에서는 이익이 나고 있었는데, 무리를 하는 사이 신용거래의 규모가 너무 커지자, 그는 이익을 보고 있던 밀 포지션을 청산해, 손실을 보고 있던 면화 포지션을 부양했다. '패자를 팔고 승자를 보유하라'라는 원칙을 깨고 만 것이다. 그런데 그가 밀 포지션을 팔아 치우자마자 밀은 20퍼센트나 더 올랐고, 이 사건은 그의 판단력을 더욱 흐리게 했다. 그러자 분별없는 행동이 거듭 늘어갔다. 그는 면화를 매수할 때마다 이번이 바닥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만기일이 되었을 때 그의 계좌에는 44만 포의 면화가 쌓여 있었다. 뒤늦게 리버모어는 자기가 얼마나 바보였는지를 깨닫고 포지션을 청산했는데, 그 거래의 손실규모가 270만 달러나 되어 그의 금고엔 이제 겨우 30만 달러만 남게 되었다. 그가 전처럼 포지션을 구축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손실을 만회하겠다는 조바심으로 그는 다시 올인했고, 급기야 마지막 남은 자본마저 모두 날려버리고 자신을 밀어준 사람들에게 100만 달러에 달하는 큰 부채를 지게 되었다. 그는 또다시 밑바닥으로 떨어졌다. 시카고로 가서 주식방을 찾아보거나 곡물거래소에서 돈 되는 일이 있는지 알아볼 작정이었다. 하지만 시카고에서도 리버모어의 영혼은 쉽게 치유되지 않았다. 그렇게 낙담의 시간이 몇 개월 흐른 뒤, 리버모어는 마침내 용기를 내서 자신의 실수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일생동안 부정해왔던 감정과 느낌, 즉 자신의 '인간적인 부분'과 맞닥뜨려야 했다. 그는 시장의 기술적인 측면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는 무시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위대한 J. P. 모건이 리버모어에게 선처를 호소하던 바로 그날부터 그는 교만해졌던 것이다. 하루에 100만 달러를 벌어들였던 그날의 대박은 결과적으로 그의 근본까지 흔들어놓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