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작전세력들
김정환 지음 | 한스미디어
한국의 작전세력들
김정환 지음
한스미디어 / 2009년 5월 / 240쪽 / 13,000원
1부 작전, 그리고 작전세력지상최대의 작전 / 작전이란 무엇인가 / 작전세력 그들은 누구인가
1815년 6월 19일 새벽, 영국 포크스턴 해변가에는 한 신사가 누군가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곧 젊은 청년 하나가 다가와 한 통의 편지를 건네주었고, 급히 편지 봉투를 뜯고 훑어본 신사는 지체하지 않고 런던 주식거래소로 달려갔다. 신사가 주식거래소로 들어서자 모든 이들이 숨을 죽이며 그를 지켜보았다. 곧 신사는 자신의 거래원들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고, 거래원들은 창구로 다가가 영국의 국채를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를 지켜본 다른 수많은 이들도 서로 의논을 주고받는가 싶더니 덩달아 국채를 팔기 시작했고, 영국 국채는 삽시간에 곤두박질쳐 액면가의 5%까지 대폭락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줄기차게 팔아치우던 신사의 거래원들은 다시 매수하기 시작했다!
6월 21일 밤 11시, 영국 웰링턴 장군의 특사 헤닐 퍼시가 런던에 도착했고, 그는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이 이겼다는 소식을 전했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영국의 승리는 영국 국채의 승리를 뜻하며, 방금 전까지 자신들이 정신없이 팔아치운 영국 국채가 이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을 걸 알아챘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향후 세계 경제는 그 신사 가문의 지배를 받게 되는데, 그 신사의 이름은 로스차일드의 셋째 아들인 네이선 로스차일드였다.
워털루 전투의 결과를 이용해 로스차일드 가문이 세계 금융시장의 절대 강자로 떠오르게 된 사건은 작전의 본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네이선 로스차일드는 누구보다 정보의 파괴력을 잘 아는 인물이었고, 당시 세계정세에 결정적 역할을 할 정보를 먼저 가로챘다. 하지만 그는 정보를 단순히 알아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철저히 이용할 줄 아는 탁월한 상술도 소유하고 있었다.
작전과 투자의 가장 큰 차이는 '사기', 즉 불법적인 방법을 통해 투자 행위를 했느냐 안 했느냐에 있다. 그런데 사기를 기본 속성으로 하는 작전의 목적은 단순명쾌하다. 돈, 그것이 전부다. 돈을 벌기 위해서 시세를 조작하는 것,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다. 따라서 작전세력이란 오로지 자신들의 목적, 즉 돈을 위해 온갖 사기를 치는 집단일 뿐이다. 그렇다면 작전을 펼치는 '작전세력'들은 누구인가? 작전세력을 알려면 먼저 작전세력과 세력을 구분해서 알 필요가 있다. 세력이란 말 그대로 힘 있는 존재인데, 주식시장에서 힘이란 일차적으로 돈이고, 아니면 로스차일드의 영국 국채 사건처럼 돈이 되는 정보일 수도 있다. 따라서 세력이란 바로 주식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작전세력과 세력의 구분은 아주 쉽게 이루어진다.
작전세력이란 세력은 세력인데 작전, 즉 사기를 치는 세력인 것이다. 그러면 또 세력들은 누구인가 하는 의문이 도출되는데, 우리가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나는 증권사, 자산운용사, 은행, 보험사와 연기금 등이 주식시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큰손이자 세력들이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세력이 또 하나 있다. 외국인들인데, 골드만삭스나 피델리티, UBS, 씨티은행, 론스타 같은 외국계 증권사와 은행, 자산운용사, 투자은행, 그리고 헤지펀드 등이다. 나는 편의상 이 두 세력을 '기관세력'과 '외국인세력'이라 부르기로 하겠다. 그 외 '일반세력'이 있는데, 일반세력은 최근 국내에서도 활성화되기 시작한 사모펀드를 비롯해 언론에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이른바 '슈퍼개미'들을 가리킨다.
작전세력, 그리고 전문 작전세력 / 작전세력의 본거지, 부띠끄 / 작전이 가르쳐주는 1% 비밀작전세력은 사기집단이다. 그렇다면 누가 사기를 칠까? 돈이 급하게 필요하든지, 크게 한탕 해먹고 싶은 자들일 것이다. 그런데 작전세력 중에는 한두 번으로 끝나는 세력들이 있는가 하면, 지속적으로 작전을 펼치는 이들이 있다. 속된 말로 '꾼'이다. 이들은 일반 작전세력들 사이에서 작전을 중개하거나 설계하는 작전세력들인데, 이들이 바로 진짜 작전세력이다! 그러므로 이들 특정 작전세력들과 일반 작전세력을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부띠끄(boutique)는 프랑스어로 '작은 가게'라는 뜻이다. 이 부띠끄란 단어가 주식시장에서는 '사설 투자회사'란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작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왜냐하면 전문 작전세력의 대부분이 바로 이 부띠끄와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띠끄의 기본적인 업무는 어떤 기업이 자기 회사를 팔려고 할 때 그 기업을 살 만한 사람이나 기업을 물색해주고 거래를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부띠끄는 회사를 사고파는 일, 즉 M&A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수 자금 마련부터 시작해서 회사에 필요한 온갖 자금 조달(예로 증자, CW나 BW 같은 회사채 발행, 부동산 담보대출, 주식 담보대출 등)을 맡아 진행한다.
한편 나는 시간나면 EPL을 보는 편인데, 맨유의 호나우도는 오른쪽으로 갈 듯싶더니 어느새 몸이 왼쪽으로 가 있고, 자기편에 패스하는 것 같다 싶으면 이내 그대로 돌진하곤 한다. 이런 호나우두의 발놀림에 상대 수비수는 애를 먹고, 그런 그의 발재간에 우리는 감탄의 환호성을 지른다. 그런데 호나우두가 상대 수비수를 제치기 위해 쓰는 속임수를 보면서, 우리는 사기라고 말하지 않는다. 축구뿐만 아니라 모든 스포츠의 핵심은 속임수다. 배구선수는 스파이크를 하는 모션만 취함으로써 상대 블로커들을 따돌린다. 팀을 운영하는 감독이나 코치들도 마찬가지다. 훈련 방법이 극비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경기 전날 갑자기 선수명단을 교체하기도 한다. 아무도 이에 대해 '사기다', '불법이다'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막힌 전술이다', '허를 찌른다'라며 찬사를 보낸다.
스포츠뿐만 아니다. 비즈니스에서도 속임수는 핵심 중의 핵심이다. 현대의 마케팅과 경영은 속임수를 옹호하는 이론들로 가득하다. 그렇다면 주식은 어떤가? 마찬가지다. 명백한 사기인 작전은 말할 것도 없고, 합법적인 투자 역시 일종의 속임수로 가득하다. 매수하는 척 괜스레 물량을 깔아놓기도 하고, 가격을 떨어뜨리기 위해 일부러 대량으로 물량을 내놓기도 한다. 중요한 건 현실에서 이러한 속임수 같은 플레이에 많은 투자자들이 격분하면서, '공평해야 한다. 정정당당하게 플레이해야 한다. 민주주의 나라에서 돈 많다고 우대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하곤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주식이란 게임에 절대로 참여해서는 안 된다. 하루빨리 짐 싸들고 하산해야 한다. 주식시장이 공평해야 한다는 생각은 애당초 잘못된 생각이다. 그리고 잘 생각해보자. 도대체 무엇이 공정한 것인가? 우리는 민주주의 나라지만 동시에 자본주의 나라이기도 하다. 자본이 더 많은 사람이 우대를 받는 건 당연하다. 실제로 여러분도 그렇게 하고 있다.
주식이란 공개적이고 공정한 게임이다. 하지만 동시에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시장이고, 난다 긴다 하는 고수들의 현란한 속임수들이 난무하는 곳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자. 과연 그들이 속인 것인지, '나의 욕심'이 나를 속인 것인지. 만 원짜리 옷 하나를 사면서도 몇 번씩 입어보고 재보고 따져보면서, 마냥 돈 벌 욕심에 수백, 수천만 원을 순간적으로 질러버리고 만 것은 바로 당신의 탐욕이 내린 결정이 아닌가? 세력이 되고 싶은가, 아니면 세력들에게 당하는 하수가 되고 싶은가. 세력이 되고 싶다면 고수들의 기술, 세력들의 속임수 플레이에 분노하지 말고 그들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
2부 주식의 역사, 작전의 역사작전세력의 무기 HTS의 탄생 / 작전의 진화 / HTS의 두 얼굴 / 작전세력의 황금어장 코스닥시장1980년대 중반 전까지, 즉 주식의 대중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주식시장은 투기장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제한된 사람들만 참가하는 시장이었기에 투기의 피해도 제한된 사람들에게만 미쳤다. 그리고 대부분 세력들 간의 힘겨루기나 거짓 루머를 퍼뜨리는 단순한 방식이었기 때문에 작전이라고 부르기보다 그냥 투기라고 부르는 게 맞았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주식의 대중화가 시작되고, 1990년 전산화와 맞물려 HTS(홈트레이딩 시스템)가 탄생하면서 이른바 작전이 등장했다.
원래 HTS는 증권사 직원들만 쓰던 주식 매매 프로그램이었는데, 이를 일반 투자자들에게 공개한 것이다. 따라서 그 전에는 증권사 직원들만 사용하던 고급 정보를 이제는 누구나 맘 편하게 집에서 몇 시간이고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시간과 장소의 벽을 허물며 고급 정보를 제공하는 HTS의 편리함은 일반 투자자들뿐만 아니라, 작전세력에게도 좋은 도구가 되어주었다. 즉 HTS의 등장으로 좀 더 교묘하고 현란한 작전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른바 차트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HTS를 켜면 가장 먼저 보는 것이 차트다. 참고로 우리의 뇌 구조는 숫자보다 이미지에 더 빨리 반응한다. 그래서 매출액 같은 것도 연도별로 숫자로만 보는 것보다 그래프로 보면 훨씬 더 빨리 이해한다. 이렇게 차트의 영향력이 커지자 기업 분석보다는 차트 분석이 점점 투자의 중요한 기준으로 떠올랐고, 수많은 차트 기법 매매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졌다. 작전세력들이 이를 놓칠 리 없다.
그들은 차트를 원하는 대로 만들어나갔다. 투자자들이 사고 싶어 안달이 나도록 예쁘게 그려나갔다. 오를 듯 오를 듯 안 오르게 꾸준히 매집하다가 일순간 상한가를 치면서 몇 번의 상한가를 연출한다. 그러면 너도나도 달려들어 매수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거래량도 보기 좋게 올려놓는다. 그런데 어느 정도 올랐다 싶으면 이젠 반대로 물량을 쏟아내 가격을 하락시킨다. 그러면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몇 십만, 몇 백만 주 쌓여 있던 상한가 매수 잔량이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주가는 뚝뚝 떨어진다.
다음날, 일시적인 조정이겠지 하고 생각해보지만 기대와 달리 주가는 폭락한다. 주가는 더 하락하고 어느새 처음 상한가 가격에 와 있게 된다. 그 뒤 며칠간 주가가 출렁거리며 횡보를 하다가 다시 상승을 그린다. 손실 때문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투자자들, 혹시나 하고 기다리던 투자자들이 기회다 싶어 올라탄다. 아니나 다를까 전 고점을 넘어서면, 한 치의 어그러짐도 없이 주가는 연일 상한가를 치며 상승행진을 이어가는데, 지난번의 하락은 단순한 조정이었구나 하고 믿을 만큼 주가는 충분히 상승한다. 그 뒤 작전세력들이 물량을 조금씩 털어 주가가 빠져도 다들 제2의 조정장으로 알고 오히려 저점매수의 기회로 삼고, 연일 상한가 행진에 배 아파 하던 투자자들이 두 번 다시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너도나도 뛰어 들어오게 된다.
그러면 주가는 모두의 기대대로 조정을 멈추고 다시 상승한다. 하지만 상승의 기쁨도 잠시, 며칠간 오른다 싶더니 다시 거꾸러진 주가는 하염없이 내리막길로 치닫는다. 전 저점은 물론이고 처음 상승 초기의 가격도 뚫고, 현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은 가격까지 오고야 만다. 그런데 차트를 그리는 것, 즉 차트의 임의대로 조작하는 게 가능하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물론 가능할 수 있다. 문제는 기업의 덩치, 즉 시가총액이 작아야 하는데, 1990년대 후반, 이런 기업들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작전세력에게는 그야말로 축복인 사건이 터진다. 코스닥(KOSDAQ) 시장이 탄생한 것이다. 한편 현재 코스닥시장 거래 비중의 90%를 개미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조급한 개미들이 주도하는 코스닥시장은 작전세력에겐 더 없이 좋은 황금어장이라 할 수 있다.
테헤란밸리, 그리고 부띠끄의 탄생 / 부띠끄의 모체, 명동 사채 / 명동 사채와 주식시장
1980년대 초만 하더라도 테헤란로는 비포장도로에 높은 빌딩 하나 없는 서울의 변두리 중의 변두리였다. 그러나 불과 20년도 안 돼 고층빌딩이 테헤란로의 스카이라인을 점령하고 벤처기업들이 그 고층빌딩의 사무실을 속속 점령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자금을 대주는 벤처캐피털과 창투사들도 재빠르게 테헤란로에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 부띠끄가 탄생했다. HTS와 코스닥, 부띠끄. 오늘날 작전을 이해하는 데 이 셋의 함수관계는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들의 태생은 근본적으로 한 뿌리다. 모두 1990년대 말부터 일기 시작한 IT버블에 근거하고 있다. IT산업의 발전으로 인한 증권시장의 전산화로 말미암아 탄생한 HTS 시스템, IT산업을 발전시키고자 정부의 지원 속에 태어난 코스닥시장, 그리고 IT기업들로 대표되는 벤처기업에 자금 조달 역할을 맡게 되면서 생겨난 부띠끄.
물론 모든 작전이 반드시 이 셋과 연결된 것은 아니다. 즉 작전이 반드시 HTS를 통해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코스닥시장에서만 발생하는 것도 아니며, 부띠끄가 개입되어야만 가능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 작전의 대부분은 이 셋의 주도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이 셋이 결합된 1990년대 말부터 작전의 형태는 기존의 작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철저히 점조직화되고, 차트를 흔들고, 훨씬 더 복잡해지고 치밀해졌다. 그중에서도 부띠끄는 이 셋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된다. HTS라는 도구를 활용하고, 코스닥시장에서 작전의 대상인 먹잇감을 고르는 것도 결국은 작전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부띠끄의 역할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자금 조달하면 명동 사채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실제로 부띠끄는 명동 사채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초창기 우리나라 은행들은 모두 명동을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고, 어음을 할인받기 위해 은행을 찾았다가 퇴짜 맞은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은행 주위에 사채업자들이 생겨나면서 자연스럽게 명동이 사채시장의 메카가 됐다. 명동에서 거래되는 어음은 대부분 물품이나 용역, 서비스 같은 실거래를 동반한 진성어음이다. 하지만 단순히 돈을 빌리기 위해 발행한 어음도 있는데, 이를 융통어음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도저히 돈을 구할 수 없어 차용증을 쓰고 돈을 빌리는 것이다.
하지만 사채시장에서 융통어음을 발행했다는 것은 회사가 갈 데까지 갔다는 얘기다. 법적으로야 대출이자가 최고 49%를 넘을 수 없다고 돼 있지만(물론 이것도 살인적인 이자율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1분 1초가 아쉬운 기업들로서는 돈 빌려주는 '갑'의 조건을 무조건 들어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돈이 급한 회사의 사정을 잘 아는 사채업자들로서는 그들의 절박한 심리를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다. 결국 법의 테두리를 넘는 무수한 이면계약들이 존재하게 된다.
이면계약의 대표적인 통로가 바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다. 제3자 배정 증자는 말 그대로 회사에서 추가로 발행하는 주식을 누가 받을지 미리 지정한다는 소리다. 공시 같은 데서는 특정 투자자로 표기되고 대주주 주변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백이면 백 사채업자다. 제3자 배정 증자는 그 자체가 특혜다. 받는 쪽이 이미 정해져 있고, 증자할 때도 현 시세보다 싸게 발행된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사채업자들은 여기에다 특정 수익률을 보장받는 갖가지 이면계약까지 요구한다. 예컨대 배정받은 주식이 1000원짜리면 최소 4000원까지 4배는 튀어야 하고, 3개월 수익률이 최소 10% 정도는 나야 한다는 조건을 다는 것이다. 게다가 어음이나 당좌수표를 담보로 잡는다. 약속한 수익률이 나오지 않으면 사채업자들은 담보로 잡은 어음이나 당좌수표를 돌려 부도를 내겠다고 경영자를 협박한다. 증자 결의에서 자금 조달까지 단 2주면 가능한 제3자 배정 방식은 자본 잠식을 당했거나 부도 징후가 나타나는 등 벼랑 끝에 처한 기업들이 주식시장에서 택하는 전형적인 최후의 수단이다.
기업들이 사채시장에서 돈을 빌릴 때 자주 사용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는 주식담보대출이 있다. 물론 현 주가를 반영해서 돈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다. 대개 코스닥기업인 경우 50% 정도로 잡아주는데, 경기가 어렵고 회사 사정이 안 좋으면 심한 경우 30~40%까지 담보율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돈을 빌렸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살인적인 이자가 기다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명동 사채시장에서 주식담보 이자율은 월 2.5~3%에 형성된다. 물론 수수료 3%는 따로 지불한다. 대여 기간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2개월이 대부분이다. 가장 큰 문제는 담보로 잡아놓은 주식이다. 사채업자들은 주가가 담보가치 이하로 내려오면 가차 없이 팔아버린다. '대주주 지분 장내매각' 조회공시가 나간 코스닥시업의 경우 거의 대부분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 명동 사채업자의 담보권 행사로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