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투자가 부의 지도를 바꾼다
홍춘욱 지음 | 원앤원북스
홍춘욱 지음
원앤원북스 / 2007년 9월 / 275쪽 / 13,000원
Part 1 역동적인 주식투자 시대에 적극 대비하라
은퇴 후 30년의 삶,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 주식투자, 위대한 혁명은 진행 중이다우리나라는 2018년에는 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보이며, 국민연금에 대한 불안감은 지금보다 더 고조될 것으로 예측된다. 따라서 연금 이외에 다른 노후 대비책을 만드는 것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라고 할 수 있겠다. 한편 우리나라 가계의 주식투자 비중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낮은데, 그동안 우리나라의 가계가 주식투자에 무관심했던 이유로는 주식투자 성과의 부진, 높은 부동산투자 비중, 기업의 낮은 투명성, 위험자산 기피 심리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 주식투자를 저해했던 요인들이 하나씩 제거되고 있어 앞으로 가계의 주식투자 비중은 갈수록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 근거로 다음의 3가지 요인을 들 수 있다. 첫째, 주식시장은 2001년 이후 6년 동안 연평균 20.9%의 놀라운 수익률을 기록하면서 다른 모든 자산의 수익률을 압도하고 있다. 둘째, 최근 부동산시장의 거품 논란이 벌어질 정도로 일부 지역 부동산가격이 상승한 것도 우리나라 가계의 주식투자를 지속적으로 촉진시킬 요인이다. 셋째, 기업 경영의 투명성 문제도 점차 개선되고 있다.
시장수익률보다 수익률이 못한 이유를 파악하라 / 주식시장에서 승자가 되기 위한 핵심 원리 2가지개인투자자들은 왜 시장의 패자가 됐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개인투자자들이 경제의 흐름에 무관심한 채 지나치게 단기 매매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주식투자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2가지 핵심 원리 - 시장의 추세를 파악하고, 단기적 순환에 늘 신경을 써야 함 - 를 꼭 기억해야 한다. 덧붙이면 영원불멸의 진리는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주식시장을 설명하고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원리는 존재한다. 이를테면 '한 사회의 인구 변화는 잠재성장률 등 경제의 장기적인 추세를 결정하며, 경기순환은 주식시장의 주기적인 상승과 하락의 원인이다' 등이다. 이런 핵심 원리를 이해하면 무엇보다 인내심을 가지고 주식투자를 할 수 있게 된다.
Part 2 대한민국 주식시장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1장 : 1980년대, 대한민국 주식시장의 첫 번째 전성기우리나라 주식시장도 1980년 이후에 세 차례의 큰 추세를 경험했는데, 주식시장의 제1기는 석유파동의 충격이 진정된 1980년대 중ㆍ후반(1984~1989년)으로, 당시 코스피지수는 약 5년 동안 무려 10배가 넘는 놀라운 상승을 기록했다. 그러나 1989년을 정점으로 주식시장은 상승 추세를 벗어나 본격적으로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 이후 제2기인 1990년대 내내 우리 주식시장은 코스피지수 500~1,000포인트의 좁은 수준에서 정체돼야만 했다. 특히 1997년 발생한 외환위기의 충격으로 코스피지수는 280포인트까지 떨어지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제3기는 2001년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 2000년의 정보통신(IT) 버블 붕괴 이후 가계의 주식투자 비중이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는 등 주식투자에 대한 비관론이 세상을 덮었으나, 2001년을 기점으로 시장은 지칠 줄 모르는 상승세를 시작했다. 자세히 살펴보자 제1기 주식시장은 빠르게 성장한 중산층 개인투자자들이 주도했는데, 198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 주식시장과 경제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세계적인 물가 하락 때문이었다. 그리고 세계 주요 선진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안정될 수 있었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국제 원자재가격이 1981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하락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의 물가가 하락하면서부터 경제 전반에 강력한 선(善)순환이 발생하기 시작했는데, 먼저 미국 등 선진국의 물가가 안정되면서부터 전 세계의 채권금리가 일제히 하락했고, 미국 등 선진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금리도 본격적으로 하락해 1980년 3월에 32.6%에 달하던 시장금리는 1983년 3월에 12.9%까지 하락해 3년 만에 금리 하락폭은 무려 19.7%에 이르렀다.
한편 저금리 이외에 가계의 주식투자를 더욱 촉진시킨 요인은 정부의 국민주 발행 정책이었는데,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 공약으로 한국전력과 포항제철(현 포스코) 등 대형 공기업 주식들의 일반 매각이 실시된 것은 가계의 주식 보유 규모를 급격히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성공의 순간은 너무나 빨랐다. 국민주 열풍을 계기로 전 국민이 주식시장에 뛰어든 것까지는 좋았지만, 엄청난 주식 공급 물량의 확대로 인해 주식 매도 압력이 점점 더 강화됐던 것이다.
그렇다면 1989년 4월 한국전력의 매각을 전후해 주식시장이 상승세를 접고 본격적인 하락세에 접어들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국민주 매각의 영향으로 시가총액의 15.5%에 달하는 너무나 많은 주식이 주식시장에 풀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급의 악화뿐만 아니라 1987년부터 빠르게 상승한 시장금리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기업의 실적이 악화되고 있던 것도 문제였다. 그런데 1987년부터 시장금리가 빠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던 이유는 먼저 1987년부터 시작된 강력한 임금 상승에서 찾을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론 부동산가격이 급등세를 보이며 근로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크게 부각된 것도 원인으로 들 수 있다. 즉 '지가 상승 임금 상승 물가 상승 금리 상승'의 악순환이 진행되면서 주식투자의 매력은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989년 4월에 주식시장이 붕괴된 두 번째 원인은 경상 수지가 급격히 악화된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1988년을 고비로 경상수지가 크게 악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해외 및 국내의 모든 경제 요인이 부정적으로 변하기 시작했기 때문인데, 해외의 경우 미국 경제가 1987년 10월 겪은 주가폭락 사태(Black Monday)의 영향으로 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데다, 그간 안정세를 보이던 국제 유가도 중동지역의 불안정이 대두되면서 상승세로 돌아섰고, 특히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크게 늘어나면서 높아진 수입시장 개방 압력과 원/달러 환율 하락도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2장 : 1990년대, 대한민국 주식시장이 부진했던 이유1989년 3월 31일 1,003.31포인트를 기록했던 코스피지수는 그해 12월 11일에는 793.88포인트까지 폭락해 주식시장은 물론 경제 전반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는데, 주가 폭락 사태에 당황한 정부는 1989년 12월 12일, '증권시장 안정화 대책'을 발표하며 주식시장을 부양하기 원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은 힘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주식시장의 수급 균형이 공급 과잉으로 인해 이미 무너진 데다, 경상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서는 등 기업 실적마저 빠르게 악화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주식시장 폭락 과정을 간단하게 돌이켜본 것만으로도 중요한 하나의 결론을 내릴 수 있는데, 시장의 추세와 정부의 정책은 큰 연관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12ㆍ12대책에 이어 다양한 증시 부양 정책을 쏟아냈지만, 개인투자자들의 투기적인 거래를 부추겼을 뿐 주식시장의 폭락을 막지 못했는데, 1989년 당시 정부가 주식시장을 부양하고 싶었다면, 경상수지를 관리하고 시장금리를 안정시키도록 미리 선제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게 더 나은 방향이었을 것이다.
공격적인 경기 부양 정책이 결국 실패로 돌아가다1989년부터 시작된 주식시장의 폭락 사태에 놀란 정부는 1992년 1월 외국인에게 주식시장을 개방하는 등 적극적인 증시 부양 정책을 연이어 내놓았지만, 주식시장의 추세를 돌려놓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왜냐하면 주식시장에 실망한 우리나라의 개인투자자들이 주식을 계속 매도한 데다 기업 실적마저 고금리의 영향으로 부진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경제와 주식시장의 침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정부는 1993년 '신경제 100일 정책'이라는 대단히 공격적인 경기 부양 정책을 펼치기에 이르렀는데, 이 정책은 분명히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발휘했으나, 1994년 10월 코스피지수 1,300포인트를 정점으로 주식시장은 다시 부진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경제성장률도 떨어지는 등 신경제 100일 정책은 장기적으로 볼 때 실패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를 두고 1990년대 중반에 우리나라 경제가 저성장국면에 접어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성장이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리한 정책을 시행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주류를 이룬다. 참고로 우리 경제가 저성장국면으로 접어든 것은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에 근접하면서 '후진국의 이점'을 서서히 잃어버리기 시작한 데다, 인구 구성마저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방향으로 바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경상수지 악화가 1997년 외환위기로 이어지다199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의 수출경쟁력이 점점 약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우리나라의 두 번째 수출 시장, 즉 일본이 심각한 불황에 빠져들었기 때문인데, 1990년 이후 일본 경제가 몰락한 것은 생산활동인구의 감소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즉 1990년을 고비로 1930년대에 태어난 약 2천100만 명의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기 시작하면서 일본 경제는 과거의 활력을 점차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당시 미국 시장의 여건도 그리 만만치 않았다. 결국 우리 수출기업의 실적은 1995년을 정점으로 서서히 악화되기 시작했고, 무리한 설비 증설 경쟁의 영향으로 경상수지 적자 규모는 날로 확대돼 일부 경제 전망 기관을 중심으로 금융위기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러한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원화의 평가절하를 단행해야 했지만, 당시 정부는 이를 도외시함으로써 결국 환투기 세력이 공격할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는데, 환투기 세력들이 다른 나라도 아닌 우리나라의 원화를 공격한 이유는 당시 원화가 경제 체질에 비해 너무 높은 수준을 유지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1997년 7월 태국 금융기관의 경영위기를 계기로 시작된 외환시장의 혼란은 그해 10월에는 홍콩으로 옮겨 붙었으며, 이어서 11월에는 우리나라가 희생양이 됐다.
외환위기를 견디지 못한 우리나라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대신 IMF가 내놓은 가혹한 처방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IMF는 고금리 정책을 통해 해외로 빠져나간 자본의 회귀를 촉진시키는 한편, 부실 금융기관의 폐쇄 및 해외 매각 등 대단히 강력한 금융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IMF의 고금리 정책으로 인해 우리 기업의 실적이 급격히 악화되긴 했지만, 적어도 경상수지를 크게 개선시키는 효과를 발휘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예로 1998년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무려 403.7억 달러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1999년, 저금리의 축복 속에 주식시장이 살아나다이와 같은 경상수지의 급격한 개선은 경제 전반에 대단히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했다. 먼저 원화가치가 상승하기 시작했고, IMF가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도 긍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에 힘입어 고금리 외채를 상환하고, 외화를 원화로 환전하면서 시중에 풀리는 돈도 점점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1997년 말에 25%에 달하던 회사채 금리는 1998년 9월에는 12.5%, 1998년 말에는 8.3%까지 떨어져 우리 경제는 역사상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던 저금리국면을 경험하게 됐다. 즉 '고금리 수입 감소 경상 수지 흑자ㆍ환율 하락 물가 안정ㆍ금리 하락'의 선순환이 우리나라 경제에 본격적으로 펼쳐지게 된 것이다. 그러자 주식시장도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9월 말을 기점으로 정책금리를 세 차례 연속해서 내리면서 전 세계 주식시장은 동반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우리 주식시장도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 정책에 힘입어 코스피지수 1,000선을 돌파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데 1999년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1980년대 말에 저질렀던 실수를 또 다시 반복하기 시작했다.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대규모의 기업공개와 유ㆍ무상 증자가 단행되면서 주식시장의 수급이 서서히 악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악재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미국 주식시장의 거품 징후였다. 미국 주식시장의 거품이 1980년대 말의 일본처럼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확대되자 연준은 경제 전반에 치명적인 충격을 줄 것을 우려하여, 1999년에 5.5%이던 정책금리를 2000년 5월 16일에는 무려 6.5%까지 인상했다. 지칠 줄 모르는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주식투자의 상대적인 매력이 떨어진 것은 물론, 금리에 민감한 주택 건설과 소비자 금융기업의 실적이 빠르게 악화되면서 주식시장은 폭락세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미국 주식시장의 주가 폭락 사태는 우리나라 주식시장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지금까지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변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2가지의 중요한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인구 구성의 변화와 주식시장이 대단히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물가와 경상수지의 동향이 주식시장의 추세를 결정한다는 점이다. 아무튼 1990년대의 교훈을 바탕으로 이제부터 3장에서는 2000년대 주식시장의 추세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3장 : 2000년대, 대한민국 주식시장의 부활과 장기 호황의 원인
2000년대 초의 주가 하락 원인 3가지 / 경제와 주식시장은 중앙은행이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2000년대 초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긴 시간 동안 부진했던 이유는 크게 3가지 요인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것은 소비 위축, 투자 감소, 테러와의 전쟁으로, 이 가운데 주가 폭락으로 시작된 전 세계의 소비 위축은 다른 2가지의 요인을 합친 것보다 더 큰 충격을 미쳤다.
주식시장의 폭락세가 3년째 이어지고 테러와의 전쟁으로 인해 국제 유가마저 상승해 불황이 전 세계로 전염되자 미국의 연준과 유럽의 유럽중앙은행(ECB) 등 전 세계의 중앙은행들은 일제히 정책금리를 인하하며 경제 전체에 엄청난 돈을 퍼붓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한국은행도 전 세계적인 금리 인하 분위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는데, 저금리 정책의 혜택을 가장 먼저 받은 곳은 바로 부동산 시장이었고, 부동산가격의 상승은 주식시장에도 큰 호재로 작용했는데, 먼저 부동산경기 회복의 수혜가 집중된 주택 건설 및 건자재업체의 주가가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에 부동산 담보대출이 크게 증가하며 이자수익이 늘어난 금융기관의 실적도 빠르게 개선됐다. 또한 시장금리가 빠르게 떨어지자 채권투자자금의 일부가 주식시장으로 이동하면서 주식시장의 수급 여건도 서서히 개선되기 시작했는데, '중앙은행에 맞서지 말라'는 월가의 오래된 격언은 이 경우에도 사실로 입증된 것이다. 아무튼 중앙은행의 금리 정책 변화는 처음에는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 있지만, 효과가 서서히 누적됨에 따라 경제와 주식시장은 중앙은행이 원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저물가ㆍ저금리 구조가 정착된 이유 3가지 / 강력한 중국 효과로 두 마리 토끼를 잡다2003년부터 시작된 주식시장의 강세는 2007년까지 4년째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증시가 차이나 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