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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 최고의 투기꾼 이야기

리처드 스미튼 지음 | 새빛인베스트먼트
역자서문



제시 리버모어가 위대한 이유는, 사람들이 '투기'라고 부르는 방식을 통해 가난한 농부의 아들에서 일약 미국 최고의 부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투기를 백안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수익이라는 목표 앞에서 '투기'와 '투자'의 구분은 쥐를 잡는 데 흰 고양이와 검은 고양이를 구분하는 것과 같다. 그래도 말이 나온 김에 투기와 투자를 한번 구분해보자. 투자의 달인 워렌 버핏은 주가동향보다는 기업동향에 주목했다. 즉 경영진의 자질이나 자기자본 수익률 등 기업의 내재가치에 주목했을 뿐, 하루하루 등락을 거듭하는 주가의 움직임에는 초연했다. 워렌 버핏을 방문한 피터 린치는 그의 집무실에 그 흔한 주가현황판 하나 없는 데 놀랐다고 한다. 그렇다면 투기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해, '가치'보다는 '가격'에 주목하는 것이다. 지금 가격보다 비싸게 사줄 사람만 있다면 당장 주식을 사야 한다. 합리적이지 않은가? 투기가 나쁜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



주식매매가 불확실성을 다루고 있는 한, 투자와 투기는 경계도 모호할뿐더러 굳이 구분할 필요도 없다. 다만 '현명한 투자'와 '어리석은 투기'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투자'와 '현명한 투기'도 있을 수 있다는 점만 기억하면 된다. 제시 리버모어는 스스로 '현명한 투기'의 방식을 고안하고, 자신이 발견한 투기의 원칙을 평생 고수한 인물이다. 소설 형식으로 구성된 이 책이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그의 인생을 철저하게 파헤치는 동안,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그의 주식매매원칙을 흡수하게 된다. 동시에 청년기 미국 금융의 중심지 뉴욕과 부자들의 휴양지 플로리다에서 벌어지는 상류층의 풍속도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위대한 개츠비』가 1920년대 주식시장의 투자열기에 휩쓸린 한 미국 청년의 순수한 사랑을 이야기했다면 이 책은 동시대 가장 유명한 금융계 영웅들과 주인공의 가족사를 다룬다.



보스턴의 꼬마 승부사



제시 리버모어는 1877년 7월 26일, 매사추세츠주의 쉬루즈베리에서 태어났다. 리버모어의 아버지는 뉴잉글랜드의 척박한 땅을 일구며 생계를 꾸려가는 가난한 농부였다. 어린 제시 리버모어는, 온통 돌로 뒤덮인 뉴잉글랜드의 땅을 갈아 농사를 짓고 산다는 것이 어떤 인생인지를 재빨리 알아차렸다. 쟁기에 걸려 나오는 큰 돌멩이를 치우는 것이 그의 생애 첫 번째 일이었다. 20세기 초반, 미국 매사추세츠의 조그만 땅뙈기를 일궈 목구멍에 풀칠한다는 것은 매우 고단한 일상이었다. 등허리가 휘는 고된 노동 뒤에 남는 것이라고는 알량한 한 끼 식사가 고작이었다. 오래지 않아 그는 뉴잉글랜드의 혹독한 농사일로는 결코 인생의 성공에 도달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리버모어가 14세가 되자 아버지는 그를 학교에서 데려와 작업복을 입혔다. 그의 아버지는 리버모어에게 농부가 될 것을 명령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어린 리버모어는 어머니가 쥐어 준 5달러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농장을 몰래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지나가는 마차를 얻어 타고 보스턴으로 내달렸다. 그는 자기가 하려는 일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세상으로 나가 그의 야망을 펼쳐보고 싶었다. 비록 당장은 아무런 계획도 없었지만 그는 자신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확신했다. 어른들의 세상인 보스턴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제 겨우 14세였다. 그러나 그때부터 이미 그만의 삶의 태도가 프로그램되어 있었고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그는 어렸지만, 성공과 부와 명성은 육체가 아니라 머리를 쓸 수 있을 때 보다 빨리 얻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라는 점도 깨달았다. 이 소중한 교훈은 아버지로부터 배운 것이었다.



보스턴에서 마차를 내리자마자 그는 패인웨버(Paine Webber) 증권사 사무실 밖에서 한참 동안 내부 풍경을 구경하였다. 객장에 앉아 주가테이프를 점검하는 고객들이나 증권사 직원이 큰 소리로 현재가를 외치면 어린 서기들이 즉시 시세판으로 달려가 분필로 주가를 적어 넣고 있었다. 그는 숨을 깊게 한 번 들이쉰 다음 매니저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40대쯤으로 보이는 매니저는 첫눈에 그가 촌뜨기임을 알아본 듯했다. 칠판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향후 리버모어의 성공에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브로커들이나 고객들, 또는 신문들이 말해주는 정보들이 아니라 오직 주가테이프가 말해주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진리를 터득했다. 주가테이프는 그 자체가 독자적인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그것이 가장 중요한 생명체이기도 했다. 주가테이프에 담겨 있는 시세는 '최종 판결'을 의미했다. 마침내 그는 숫자 안에 살아 있는 반복적인 패턴을 구분해내기 시작했다. 저녁이면 그는 혼자 사무실에 남아 기억에 남을 만한 몇 가지 특이점들을 기록하곤 했다. 그는 숫자로 된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특별하게 반복되는 수리적 패턴을 발견했다. 오랫동안 주가를 추적하는 일지를 기록하는 동안 그는 연이어 새로운 현상을 발견해냈다. 한 패턴 안에 또 다른 작은 패턴이 있는가 하면, 어떤 때는 그 안에서 더 큰 패턴이 출현하기도 했다. 그는 이를 비밀리에 일기를 적었고 누구와도 자신의 발견에 대해 토론하지 않았다. 그는 태생적으로 비밀스러운 사람이었다.



어린 리버모어는 가격의 '변화' 에만 관심을 가졌지 그 변화의 '이유'에 대해서는 관심을 쓸 수 없었다. 그는 하루에 몇 백 번, 일주일에는 몇 천 번이나 누군가 소리쳐 불러주는 주가를 듣고, 가격을 지우고, 새로운 숫자를 적어 넣으며 시세판 앞에서 일했다. 그에게는 주가의 흐름에 논리를 부여하려고 노력하면서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가격이 변하는 것에는 백만 가지의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더구나 그 '이유'라는 것들은 가격이라는 명백한 '사건'이 지나간 후에야 밝혀진다. 그 이유들이 알려지고 이해될 때쯤이면 변화는 이미 역사적인 사건이 되어버린다. 돈을 벌기에는 이미 늦은 타이밍인 것이다.

어느새 그는 직장보다 주식방을 통해 더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당연히 직장을 그만두고 보스턴의 주식방들을 돌며 전업투자자로 나섰다. 그리고 16세가 되기 전에 1천 달러가 훨씬 넘는 현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젊은 시절의 리버모어는 앳된 용모와 과감한 베팅이라는 비대칭적 이미지 덕분에 '몰빵소년(Boy Plunger)'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승률이 지나치게 높은 도박꾼이 카지노에서 출입을 금지당하는 것처럼, 계속되는 성공으로 리버모어는 결국 보스턴의 모든 주식방으로부터 출입을 금지당하게 된다. 보스턴의 주식방 업계로부터 추방당한 리버모어는 이 기회에 좀더 큰물에서 놀아볼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바로 뉴욕이었다.



지진, 그리고 대박



리버모어는 객관적으로 자신의 지난 실수들을 분석해보았다. 훗날 그는 자기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곤 했다.

"주식시장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실제로 돈을 투입하고, 매매를 기록하고, 실수를 분석하는 거란다."

실수를 반추한다는 것은 감정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특히 투기꾼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자신이 저지른 뼈아픈 과거의 거래와 실수들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봐야 하기 때문이다. 투기꾼들에게 한 번 실수란 그냥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곧 금전적 손실이다. 한 번이라도 어설프게 투자했다가 돈을 잃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복기(復碁)의 어려움을 절감하게 된다. 하지만 실패한 투자를 분석하는 것이 아무리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선 필수 불가결한 과정이기도 하다. 다른 모든 이들처럼 리버모어도 시장의 기본 법칙을 알고 있었다.



― 주식시장에서 불변의 진리는, 내가 틀렸을 때 나는 돈을 잃는다는 것이다.

― 만약 내가 옳다면 나는 돈을 번다.

― 따라서 돈을 벌면 나는 옳은 것이고, 돈을 잃으면 나는 틀린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투기의 법칙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자기 손을 떠난 행운을 돌이킬 수 있는 것처럼, 또는 그렇게 해야만 실패의 고통을 감당할 수 있다는 듯이 끊임없이 시장에 관한 진지한 수다를 떨고 있다. 이러한 태도를 경계하여 리버모어는 거래에 관한 한 항상 침묵을 지켜왔던 것이다. 이기면 옳다. 만약 잃었다면 틀린 것이다. 왜 불평하는가.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한가. 거래와 관련하여 그가 지난 일을 돌이켜 보는 것은 어째서 돈을 벌었으며 왜 돈을 잃었는가를 찾아내기 위함이었다.



리버모어의 매매기법은 시장에 직접 참여하여 끊임없이 분석하는 실전경험으로부터 개발되었다. 그가 분석한 첫 번째 문제는 '시간'과 관련된 것이었다. 리버모어에게 있어 '시간'이란 평생의 화두이자 분석대상이었다. 월스트리트에서 살아남으려면 중장기 전망을 수용하고 미래에 대응하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해야만 했다. 일단 베팅을 하고 난 다음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것이다. 리버모어의 최종 결론은 명백했다. 시장을 예상하는 것은 도박이다. 인내심을 갖고 시장의 신호에 반응하는 것이 투기다. 이 최종 결론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월스트리트에서 실제로 돈을 걸어보는 것이라는 사실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이제 그는 새로운 자세와 해법을 가지고 시장으로 돌아온 것이다.



어쨌든 그는 이제 거래를 하기 전에 우선 시장의 전체적인 방향에 대해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일단 한 번 베팅을 했으면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팔아야 할 적당한 이유가 생길 때까지는 팔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시장의 일반적인 추세가 내 편에 서 있고 특별히 참조할 만한 시장변수도 없다면 끝까지 해봐야 하는 것이다. 그가 반면교사를 연구하며 내린 결론도 '진짜 대박은 큰 움직임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판단이 정확하고 인내심이 있으며 부정적인 변동성과 주가 재조정이라는 역경만 견뎌낼 수 있다면 주도권도 쥘 수 있게 된다. 물론 고집스럽게 버티기만 하고 심각한 시장 하락에도 복지부동하라는 말은 아니다. 주식방에서 체득한 10%의 규칙은 평생 그와 함께 했다. 처음 매수가보다 10% 이상을 잃게 되면 그는 곧바로 포지션을 청산하곤 했다.

1906년, 해변가의 화창한 어느 봄날, 한참동안 주가테이프만 관찰하던 리버모어는 지점의 직원에게 걸어가 이렇게 말했다.

"유니온퍼시픽 1천 주 공매도."

친구가 놀란 얼굴로 다가왔다.

"제이엘! 왜 공매도를! 지금 올라가고 있다니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어. 그냥 이렇게 해야 될 것 같아서."

그는 세 번째 주문표를 받아 쥐고 나서야 친구에게 끌려 나갔다.



정확히 1906년 4월 18일 새벽 5시, 리버모아가 뉴욕에서 막 잠에 빠졌을 무렵 샌프란시스코의 지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 리버모어는 뉴스 헤드라인을 읽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주가는 충격적인 소식에도 불구하고 몇 포인트만 하락."

강세장 분위기에서 발생하는 악재가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잡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이미 부정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는 약세장 속에서 약재가 퍼지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길다는 것을 리버모어는 알고 있었다. 지진이 일어난 지 3일째 되던 날, 드디어 시장이 급속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유니온퍼시픽은 급전직하했고 리버모어는 25만 달러의 수익을 손에 쥔 채 유유히 난파선에서 빠져나왔다. 그러나 그는 어째서 자신이 '내면의 소리'가 시키는 대로 행동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그 이유를 깊게 분석하지 않았다.



1907, 대폭락의 해



리버모어는 줄곧 자신만의 매매전략을 탐색해왔다. 이제 서서히 그것이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제1단계는 매매 전에 전체적인 시장상황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제 그는 추세선을 쫓아 오르는 강세장에서 매수하고, 내리는 약세장에서 공매도할 것이다. 만약 시장이 횡보세를 보이면 그는 현금을 쥐고 명백한 추세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그는 저가매수 기회나 싸구려 주식을 찾는 데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는 헐값이 된 주식만 찾아다니는 하이에나가 아니었다. 그는 추세 추종자였다. 그는 자신이 '최소저항선'이라고 이름 붙인 추세를 쫓는 데에만 유일하게 관심이 있었다. 리버모어는 진정한 1세대 '모멘텀 투자가'였다.



시장이나 주식이 '움직일까 아닐까'의 문제가 아니라 정확하게 '언제' 움직일까가 늘 관건이었다. 타이밍이 전부인 것이다. 물론 어느 누구도 정확하게 언제 시장이 움직이게 될지 예측할 수는 없다. 그래서 리버모어는 새로운 시장조사 방법을 고안했다. 전략은 간단했다. 몰빵하지 말라. 작전장교가 척후병을 보내 적진을 정찰하고 정보를 수집하듯이 본격적으로 매매하기 전에 정찰대를 먼저 보내라. 리버모어는 이 기초적인 군사전략을 역시 전장이랄 수 있는 월스트리트에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리버모어는 처음에 전체 포지션의 20%를 매수하고, 두 번째로 20%, 그리고 세 번째로 다시 20%를 매수한다. 그리고 확신이 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마지막 40%를 매수한다. 리버모어는 전체 포지션을 구성하는 데 있어 각각의 매수 단계를 저마다 중요한 단계로 여겼다. 언제라도 주가가 자신의 예측과 반대로 움직이게 되면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가 '10% 손절매(損切賣) 원칙'이 유지되는 선에서 모든 포지션을 청산하였다.



아직 그는 모르고 있었지만, 1907년 대공황이 목전에 당도해 있었다. 점점 누적되던 문제점들이 1907년 10월 24일에 마침내 폭발했다. 주가는 폭락했다. 리버모어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공매도를 감행해 약세 포지션을 쌓아놓고 있었다. 10월 24일 오후 12시, 혼돈이 객장을 엄습했다. 주식시장이 연출할 수 있는 최악의 악몽이었다. 돈은 한 푼도 없었고, 주식을 사려는 사람도 없었다. 모두 순식간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완벽하게 절망적이고 노골적인 형태의 공포가 증권가와 은행가를 휩쓸었다. 월스트리트에서 돈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 그날, 1907년 10월 24일은 리버모어의 기억에도 깊게 각인될 날이었다. 리버모어는 그날 난생 처음으로 1백만 달러를 단 하루 만에 벌어들였다. 게다가 '그날'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리버모어로서는 자신의 새로운 규칙을 이용하여 승리한 날이었다.



그날 장이 끝나갈 무렵, 리버모어는 시장을 훑어보면서 여전히 매수주문이 전무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가격을 불문하고 사자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면, 시가에 공매도를 시작함으로써 기념비적인 투매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게 되었다. 주도주들을 두들기면 그가 조장하는 하락압력이 더 깊은 하락을 야기하게 될 것이었다. 그날 장이 끝나기 전, 리버모어가 다음으로 취할 행동에 대해 숙고하고 있을 때 공교롭게도 그의 친구인 워런리드가 그를 방문했다.

"제이엘……. 시장을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하려면 이쯤에서 태도를 멈추고 더 이상의 출혈을 막아야 하네. 매도세가 멈추지 않는 한 시장이 남아나지 않을 거란 말일세. 혼돈만 계속될 거야."리버모어는 잠시 자신의 포지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자네 회장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전해주게. 내일 장에서 더 이상 매도는 하지 않겠네."



실질적으로 시장을 붕괴시킬 수 있는 힘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리버모어는 전율했다. 그는 서른한 살이었다. 다음날 아침, 리버모어는 약속대로 공매도 포지션을 청산함으로써 랠리에 불을 지폈다. 시장이 지속적으로 상승하자, 그는 1십만 주의 다양한 종목을 매수했다가 돌아온 매수자들에게 떠넘겼다. 그날 장이 끝나자, 장부상이 아닌 따끈따끈한 현금으로 3백만 달러가 그의 수중에 떨어졌다.

"인생은 대단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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