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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재테크 복리

우제용 지음 | 굿인포메이션
만남

그날 오후 내내 짜증나는 일이 계속되었다. 건물주는 임대기간이 아직 남아 있는 사무실을 비워달라고 하고, 대출 신청을 했던 은행에서는 승인 거부 전화를 걸어왔다. 날씨도 흐리고 마음도 흐려 나는 일부러 블랙커피를 만들어 마셨다. 내 처지가 블랙커피를 마신 입맛처럼 쓴맛을 내고 있었다. '재테크 카페라도 가입해 둘 걸, 자존심만 내세우면서 배곯는 양반이 딱 내 모습이 아닌가? 그동안 괜한 곳에 돈을 너무 당겨 써버렸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전화벨 소리가 들려왔다. 이면지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친구 강호섭이었다. 호섭이는 고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내내 같은 학교를 다닌 동창이었다.

내가 호섭이에게 이면지라는 별명을 붙여준 이유는 그의 독특한 생활습관 때문이었다. 그는 자주 복사실에서 나오는 이면지를 얻어다가 노트를 만들어 쓰고는 했다. 또한 학창시절 내내 늘 후줄근한 옷만 입고 다녀서 내가 핀잔을 주곤 했었다. 그런데 남몰래 어려운 동창들을 돕는다는 소문이 떠돌기도 했고, 그의 집이 큰 부자라는 소문도 들렸다. 어쨌든 나는 그를 '이면지'라고 불렀다. 이면지가 그날 내게 전화를 한 것은 특별한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자신의 할머니가 재단을 세우는 일을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학교를 다니지 못하셨기 때문에 어려운 말을 쓰는 변호사와 직접 접촉하는 것을 싫어하신다고 했다. 나는 작가이기도 한 데다가 사법시법을 준비한 경력도 있기 때문에 변호사가 하는 말을 할머니에게 쉽게 이해시키기에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내가 이면지를 따라간 곳은 시장의 한 모퉁이였다. 시장 입구 모퉁이에 있는 세 평 남짓한 땅바닥에서 이면지의 할머니는 콩나물과 두부를 팔고 계셨다. 얼굴에 산맥처럼 자리 잡은 주름들이 할머니의 고생을 말해 주고 있었다. 사실 나는 할머니를 보고 적잖게 실망했다. 재단을 만든다고 해서 최소한 1억 원은 기부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시장 한 귀퉁이에서 콩나물을 파시는 할머니가 수억 원을 모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데 할머니의 통장을 보고 하마터면 커피를 쏟을 뻔하였다. '헉, 이게 얼마야.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억, 십억 그리고 ….' 나는 놀란 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시선을 창밖으로 옮겼다. 그리고 할머니의 주름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할머니가 돈을 어떻게 모으셨는지가 궁금했다. 할머니는 내 생각을 눈치 채셨는지, "그냥 오래 살다 보니 그렇게 돈이 모였어." 라고 말씀하셨다.



이면지의 할머니는 당신처럼 돈이 없어 배우지 못한 한을 평생 품고 살아야 할 사람들을 한 사람이라도 줄이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잘 아는 변호사를 통해서 재단 설립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이면지는 내게 재단 이사장을 맡아볼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조건을 제시했다. "네가 우리 할머니와 함께 한 달 동안 콩나물 장사를 해야 해." 어쨌든 나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는 장사였다. 사회적인 지위도 얻고, 매달 이사장 월급도 나올 터였다. 나는 이게 웬 횡재인가 싶어 이면지의 제안을 수락했다.



원두커피

처음으로 콩나물 장사를 배우러 나간 날, 할머니가 나를 보고 하신 첫 말씀은 옷을 갈아입으라는 것이었다. 내 나름대로는 최대한 낡은 옷을 챙겨 입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여기서 장사하려면 여기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야 해."라고 하시며 시장 한쪽에 가서 5천 원짜리 면티셔츠와 면바지를 사 오셨다. 내가 옷을 갈아입자 할머니는 콩나물 통 하나를 따로 내주시면서, 시장 반대편 골목에 가서 팔고 오라고 하셨다. 나는 콩나물 통이 그렇게 무거운지 처음 알았다. 플라스틱 통도 있을 텐데 할머니는 굳이 나무판자로 엮은 통을 쓰고 계셨다.



"콩나물 좀 사세요." 모기 소리만 하게 겨우 한마디 하고 있을 무렵,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자기 자리라며 시비를 걸었다. 시장에 '자기 자리가 어딨냐'며 내가 따지자 아주머니는 세상물정 모른다며 더욱 큰 소리를 쳤다. 결국 자리를 옮겼으나 그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나는 이리저리 쫓겨 다니며, 해가 질 무렵에서야 겨우 콩나물 한 통을 팔 수 있었다. 할머니께 빈 콩나물 통을 가져다드리자 할머니는 내일 새벽에 집으로 오라고 하셨다. 사실 나는 하루 종일 쫓겨 다니느라 기운이 다 빠져있었다. 나는 할머니께 '오늘은 첫날이니 좀 봐 주세요'라고 사정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바람이 불고 비가 올 것 같다고 해서 장사를 미루면 되겠나? 게으른 사람이 늘 상황 탓을 하는 법이네.'라고 말씀하시며, 내일 새벽에 오면 할머니가 돈을 번 비법을 가르쳐주겠다고 하셨다.



정성

새벽 5시 경에 할머니 집에 도착하니, 할머니는 지하창고가 있는 집 모퉁이로 나를 데려가셨다. 축축한 기운이 창고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어두운 전등불 아래 항아리로 만든 콩나물시루가 가득하였다. 할머니는 항아리로 만든 빈 콩나물시루들을 씻어내셨다. 그리고 짚을 시루 밑바닥에 깔더니 어디선가 한 소쿠리 담아온 재를 지푸라기 위에 덮으셨다. 그 위에 콩을 골고루 뿌리시더니 다시 재를 깔고 또 콩을 뿌리고, 이런 식으로 할머니는 재와 콩을 다섯 층 정도 쌓으셨다. 할머니는 시골에 살 때부터 써온 방법인데, 이렇게 해야 콩나물이 고소하다고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실 때마다 '아이고, 내 새끼들. 하루 동안 몰라보게 자랐네' 라며 연신 아이들 대하듯이 하셨다. 할머니는 탐스런 포도송이를 거두기 위해서는 일 년 내내 정성을 기울여 포도나무를 돌봐야 하는 것처럼 콩나물도 정성을 기울여야 잘 자란다고 하셨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다 자신만의 포도나무가 있다고 하셨다. 나는 할머니가 콩나물에게 쏟는 정성만큼, 내 사업과 직원들에게 정성을 쏟아보았는지를 생각해보았다. 나는 사업을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지 않았는가? 직원들에 대해서는? 정성은 할머니가 돈을 번 비법 중에 하나인 듯이 보였다. 그런데, 사실 '정성을 쏟으라'는 말은 너무도 상식적인 원칙이 아닌가? 이것이 무슨 비법이 될 수 있을까?



지름길

나는 궁금증을 숨기지 않고 할머니께 바로 여쭈었다.

"할머니, 정성을 쏟으라는 말은 너무 상식적인 말씀 아닌가요?"

"그래? 그게 왜 상식적이지?"

"모든 사람들이 아는 너무 뻔한 이야기잖아요."

"너무 뻔한 이야기라. 사람들은 너무 뻔한 길을 놔두고 꾀를 부리지."

"꾀를 내야 이 치열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요."

할머니는 나를 빤히 쳐다보시더니 되물으셨다.

"정직이 뭐라고 생각하나?"

"정직이란 바르고 곧은 것 아닌가요?"

"그러면 굽고 곱은 길을 가야 빠른가, 아니면 곧고 바른 길을 가야 빨리 갈 수 있나?"

"그거야 당연히 곧고 바른 길을 따라가야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겠죠."

"그런데 왜 곧고 바른 길을 놔두고, 굳이 굽고 곱은 길로 가려 하지? 정성을 기울이라는 말은 바로 곧고 바른 길을 가라는 것이네"



나는 콩나물시루로 머리를 한 방 크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누구나 다 잘 아는 정직한 원칙들. 이 원칙들이 너무 상식적이어서 그 길로 가면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었던 것이다. 내가 유치원에서, 초등학교에서,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내내 배워왔던 도덕적인 기준들, 상식적인 원칙들이야말로 곧고 바른 길을 가르쳐주고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나는 왜 늘 무엇인가 영악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을까? 할머니는 '정성을 쏟는다'는, 너무도 당연한 상식을 가르쳐 주셨다.

목돈의 힘

그날 아침에도 할머니는 분주히 장사를 준비하고 계셨다. "어서어서 서둘러." 할머니가 독촉하는 사이 회사 직원이 자금문제가 다급하다며 연락을 해왔다. '무슨 수가 생기겠지' 회사일은 저녁에 생각해 보기로 하고, 일단은 할머니를 따라 나섰다. 생각보다는 시장에 사람들이 많이 없었다. 할머니는 오후가 되어야 주부들이 저녁 반찬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시장에 나온다고 했다. 세시가 지나자 할머니의 말씀대로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하더니 저녁이 되어갈 무렵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이 붐볐다. 콩나물 다섯 통이 다 팔렸다. "이제 정리하고 들어갈까요?" 내가 말하자, 할머니는 "무슨 소리야? 아직도 정신 못 차렸군!" 하셨다.



할머니는 점심때 자금문제로 고민하는 나를 보고 우리 회사에 투자하겠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투자를 빌미로 나를 너무 구박하시는 것 같아 조금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내 감정을 눈치 채셨는지 할머니가 말씀을 이으셨다. "내게 부자가 되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했지? 지금 수레를 끌고 가서 콩나물 다섯 통을 더 실어와. 그러면 부자 되는 법을 한 가지 더 가르쳐주지." 나는 콩나물을 더 실어 와서 장을 닫는 시간까지 남김없이 다 팔았다. 그러나 정작 번 돈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할머니가 콩나물을 싸게 파시기도 했지만, 콩나물 값을 깎으려는 사람들이 많았고, 심지어 500원어치를 사면서 100원을 깎아 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푼돈 100원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고 적잖게 놀랐다.

"할머니, 사람들이 너무 깎는 것 아닌가요?"

내 말을 들은 할머니가 또 핀잔을 주셨다.

"그래서 자네는 아직 멀었다는 거야. 내가 부자 되는 법을 또 하나 가르쳐준다고 했지? 지금 자네는 한 수 배운 걸세."

할머니는 지금 내 주머니에 잔돈이 얼마나 있냐고 물으셨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500원짜리 동전 하나가 있었다. 할머니는 그 500원으로 무엇을 할 수 있냐고 질문하셨다. 생각해보니 버스요금도 안되고, 튀김이나 핫도그 하나 정도 사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그 500원으로 해볼 만한 일을 찾기는 힘들 걸세. 하지만 500원을 열 번만 모아 5,000원이 되면 한 끼를 충분히 먹을 수 있고, 백 번 만 모아서 5만원이 되면 옷 한 벌을 살 수 있지."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 보니, 사람들이 장을 보는 동안에 100원씩 10번을 깎는다면 1,000원을 아끼게 되고, 또 1년에 백 번 정도 장을 본다고 하면 10만원을 모으게 되는 셈이었다. 푼돈 자체로서는 별 힘이 없지만, 목돈의 가치는 훨씬 커지는 것이다. 푼돈 500원을 천 번에 걸쳐서 쓰는 것과, 목돈 50만원을 한 번에 쓰는 것과는 큰 차이가 난다. 500원이라면 기껏해야 핫도그 하나를 사 먹을 수 있지만, 50만 원이라면 손님을 모시고 최고급 호텔에서 근사한 정찬을 대접할 수 있는 돈이었다. 핫도그 1,000개를 사주면서 협상을 하기는 힘들어도, 최고급 정찬 한 번으로 잘 대접받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목돈의 중요성을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밀스런 글귀

그날은 너무도 피곤하여 할머니의 집에서 자기로 하였다. 게다가 할머니의 투자 약속을 받은 터라 그것을 확실히 다짐받고 싶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바로 잠을 청하셨다. 나도 할 수 없이 잠자리에 들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이면지의 방으로 갔다. 이면지는 샤워를 하는지 방에 없었다. 정결하게 잘 정돈된 방 한쪽에 붉은 글씨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1. 공간은 그것의 제곱에 비례하는 힘을 낸다. 2. 시간은 그것의 제곱에 비례하는 힘을 낸다.' 이면지의 사고방식만큼이나 독특한 문장이었다. 글귀의 의미를 곰곰 생각해보니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질량-에너지 등가 공식과 비슷해 보였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이면지에게 벽에 붙여 놓은 글귀가 무슨 뜻인지를 물었다. 그러자 이면지는 오늘 할머니한테서 배운 목돈의 가치를 이 글귀를 통해서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면지의 설명에 의하면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질량-에너지 등가 공식인 'E=mc²'을 조금 바꾸어보면, 이 우주의 모든 에너지는 공간 크기의 제곱에 비례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공간이라는 것이 꼭 물리적인 공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사람들이 모인 조직, 돈이 모인 목돈도 다 공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직이 크면 클수록 그것의 제곱에 비례하는 힘을 내고, 목돈도 모이면 모일수록 그것의 제곱에 비례하는 힘을 낸다고 했다. 그런 현상 중의 하나로 란체스터 법칙이라는 것이 있는데, 무기성능이 같은 전투기들끼리 싸우면, 전투기 숫자가 많은 쪽이 제곱의 비율로 살아남는다고 했다.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발견되었고, 그 후 수학적으로도 검증되었다고 한다.



이면지는 경영에서도 마찬가지라며 설명을 계속했다. 어떤 상품 시장의 50%를 점유하는 회사가 있고, 10%를 차지하는 두 회사가 있을 때, 두 회사의 힘은 5대 1이 아니라 25대1로 발휘된다고 했다. 예를 들어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자산 가치는 그곳에 가입한 회원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이었다. 돈도 마찬가지로 10억 원을 가진 사람과 1억 원을 가진 사람의 힘은 10대 1이 아니라 100대 1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저마다 가진 백만 원은 별 의미가 없지만, 4,000만 인구가 다 백만 원씩 저축하면 40조 원이 되고, 이것을 현재 환율로 따지면 약400억 달러라는 큰 자본이 된다는 것이다. 이면지의 말은 한마디로, 뭉치면 훨씬 더 큰 힘을 낸다는 것이었다.



이면지는 마지막으로 농부의 비유를 들었다. 농부는 씨앗을 베고 누운 채로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씨앗을 먹지 않는다고 했다. 씨앗은 다음해에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주는 기회이고 가능성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목돈은 종자돈이고, 종자돈은 기회를 가져다주는 것이라고 했다. 푼돈을 어딘가에 투자하기는 어렵지만, 목돈은 투자할 곳이 많아지는 것이었다. 나는 무릎을 탁 쳤다. 목돈의 힘은 바로 기회라는 모습으로 찾아오는 것이었다. 군중들이 모인 곳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듯이, 회원이 많은 인터넷 카페에 더 많은 회원이 모이듯이, 목돈이 있는 곳에 돈이 더 달라붙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마치 중력의 법칙과 비슷하였다. 물질이 뭉친 곳에 중력이 생기고, 중력이 또 다른 물질들을 끌어와 뭉쳐내는 것이었다.



푼돈

다음날 할머니는 내게 새로 만든 통장과 전날 번 돈 5만 원을 쥐어주셨다. 그리고 앞으로 한 달 동안 할머니 대신 내게 콩나물을 팔아 저금하라고 하셨다. 어제같이 잘 팔리는 날은 그다지 많지 않으며 기껏해야 2만원에서 4만 원 벌이가 고작이라는 점도 명심하라고 하셨다. 나는 그날부터 할머니를 대신해서 콩나물을 열심히 팔고 저금을 해나갔다. 할머니는 하루도 어김없이 시장 안에 있는 새마을금고로 나를 데리고 가셨다. 그리고 전날 번 돈은 반드시 그 다음날 장사를 시작하기 전에 저축하게 하셨다. 비록 내 돈은 아니었지만 매일 돈이 모인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였다.



그날도 전날 번 돈을 저금하기 위해 새마을금고에서 순번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할머니는 포도나무 비유로 또 가르침을 주셨다. '포도 한 송이로는 술을 담글 수 없지만, 포도송이를 여러 송이 모으면 술을 담아 묵힐 수 있다네. 나처럼 매일 버는 사람은 그날 번 돈이 포도 한 송이가 되고, 월급쟁이는 한 달에 한 번씩 포도송이 여러 개를 딸 수 있지.'라는 할머니의 비유를 듣다보니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는 얼마 남지 않은 전답을 다른 사람에게 소작하게 하셨는데, 연말이면 들어오는 소작료를 일 년이 채 가기도 전에 모두 탕진해 버리셨다. 아버지는 소작료를 받으시면 머리맡 돈 궤짝에 넣어두시고는 틈나는 대로 꺼내 써버리셨다. 아버지의 포도송이는 그렇게 썩어갔던 것이다. 통장을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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