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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평 가게로 백만장자되기

홍일태 지음 | 열매출판사
천직 - 한 우물을 깊이 파라

빈농의 가정에서 어렵게 자라나 어떤 상황에서도 잘 적응하는 데 길들여져 있어서일까. 처음 서울에 도착했을 때나 지금이나, 내게는 촌놈의 순정이 가슴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서울에서는 바닥을 기는 노가다 일을 해도 좋다. 최소한 고향에 내려갈 때는 화려한 귀향을 해야 한다. 초라한 귀향은 내 사전에 없다' 그것이 스무 살 적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뒤 무작정 밤차를 타고 서울 영등포역에 내렸을 때 나의 다짐이었다. 춥고 배고픈 시절이었다. 큰형이 서울에 살고 있었지만 종로의 빵집에서 기술을 배우고 있을 때라 형에게 얹혀살 엄두를 내지 못했다.



형에게 별 기대를 할 수 없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나는 용기를 내어 형이 일하는 빵집에 들렀다. 형은 가게 안쪽의 주방에서 하얀 작업복과 머리에 요란스런 모자를 쓰고 빵을 굽고 있었다. 문가에 서서 형의 작업을 지켜보고 서 있자니 코끝이 시큰해져왔다. 한참만에 도넛을 만들기 위해 설탕을 한 움큼 쥐던 형이 흘끗 뒤를 돌아봤다. 형은 보조해주는 총각에게 튀긴 도넛에 설탕을 묻히라고 얘기하곤 나를 가게 안쪽으로 안내했다. 먹음직스러운 빵과 콜라를 내놓았다. 형은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내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일자리를 구한다는 인상을 받았는지 불쑥 말했다. "건너편에 보이는 것이 뭐냐?" "떡집이잖아." "유명한 낙원동 떡집거리야.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제삿날이나 생일날 떡을 내놓는 풍습은 사라지지 않는다. 떡집에 가서 기술을 익혀봐라. 밥은 굶지 않고 살 수 있어. 먹고 자고 일하고 돈 벌고 기술을 배워 익힐 수 있는 것으로 저만한 직업이 흔치 않다. 게다가 떡집은 가게에서 잠을 자도 누가 뭐라 하지 않아. 오히려 주인 입장에서는 기술자가 가게에서 자면 더 좋지. 젊은애들은 늦잠이 많은데, 가게에서 자면 새벽에 늦게 나올 염려가 없잖냐?"



나는 뜻밖의 소득을 얻었다. 먹고 자고 일할 수 있는 곳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셈이었다. 그 길로 건너편 상가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나는 처음부터 떡집에 불쑥 들어가지 않고, 인근의 조그만 가게와 허름한 해장국집에 들러 시장조사를 했다. 어떤 떡집 직원들에게 잘해주고, 장사도 잘하는가를 귀담아 들었다. 나는 제일떡집이라는 가게에서 떡 만드는 기술을 배우면서, 가게 구석의 좌판에서 잠을 자는 조건으로 떡집과 인연을 맺었다. 나의 사정을 이실직고하고 도움을 요청했는데, 의외로 쉽게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주인의 신임을 받는 일은 쉽지 않았다. 떡을 만드는 기술은 차근차근 하나에서 열까지 가르쳐주면서, 웬일인지 떡을 파는 일은 내게 맡기려 하지 않았다. 난 그저 떡 기계에서 가래떡을 뽑고 시루떡을 안치는 등 떡 만드는 일에만 열중했다. 하지만 주문 배달을 시킬 때는 반드시 수금까지 하도록 했다. 나를 아주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나보다. 어쨌든 떡을 파는 일은 한복을 곱게 입은 아가씨들이나 주인아주머니가 직접 했다. 한복을 입은 아주머니는 오십대 나이에 비해 젊고 부티가 나서 손님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아하! 만일 이 다음에 내가 떡집을 개업하게 되면 내 마누라는 떡장사를 시켜야겠다. 내 얼굴에 떡까지 팔았다가는 장사를 말아먹겠구나.'



떡을 만드는 기술에 재미를 붙이던 이듬해 1984년 5월 24일, 입대 영장이 나와 해병대에 입대하게 되었다. 해병대 500기인 나는 400기 후반 기수들에게 군기 차원에서 유난히 매를 많이 맞고 제대하였다. 1986년 12월, 해병대 만기 제대를 한 나는 그 길로 다시 제일떡집으로 돌아왔다. 주인 아주머니가 제일 먼저 반겨 맞았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다. 니 정말로 떡 만드는 기술을 제대로 배워라. 성공할 거다." 아주머니는 살붙이인 내 누이들이나 형보다 더 살갑게 나를 대했고, 나는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해병대에서 경험한 거친 훈련과 엄격한 규율을 익히면서 배운 술이 문제였다. 나는 일이 파하기가 무섭게 월급을 털어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셨고, 아주머니는 그런 내가 못마땅한 듯 나를 나무랐다. "자네, 군대 갔다오더니 나쁜 습관이 생겼구먼." 하지만 한번도 떡쌀을 씻는 것을 게을리하거나 배달을 나가 늦게 오는 법은 없었다. 일만큼은 철저하게 해냈다. 언젠가는 내 힘으로 떡집을 개업해서 살리라는 강한 신념마저 없으면 내가 이 고생을 하는 보람이 없어질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도 나를 믿어주는 주인 아주머니와 직원들이 좋아서 열심히 일했다.



인생은 만나면 헤어질 때가 있는 법. 그 날도 나는 멥쌀과 찹쌀을 구분하여 함지그릇에 씻어 물에 담가놓고 퇴근을 했다. 밤에 술을 마시고 가게로 들어가 새벽에 가게문을 열고 떡을 앉혔다. 담배 한 대를 태우고 나서 떡고물을 만들었다. 이상했다. 떡솥에서 김이 나오지 않았다. 멥쌀은 물 반죽을 해서 시루에 앉히면 김이 잘 올라온다. 통찹쌀도 찌자마자 바로 김이 올라와 도마에 놓고 치대면 곧바로 인절미가 된다. '이상하다. 내가 아무리 술을 좋아해도 일은 정확히 해내는데… 어제 분명히 떡쌀을 제대로 구분해놓고 퇴근했는데 이게 어찌된 노릇인가? 떡은 익었는데 김이 오르지 않는다' 밤 사이에 쌀그릇이 뒤바뀐 것이 분명했다. "아니, 뭐하는 거야? 빨리 인절미를 내놔야 썰지." 나는 자초지종을 말했다. 멥쌀로 인절미를 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인 아주머니는 대뜸 화부터 냈다. "그러게 내가 뭐라고 해? 허구한 날 술만 마시고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어떻게 떡집을 하겠다는 거야?" 다짜고짜 야단을 맞고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아무 소리 없이 밖으로 나가 담배를 한 대 태워 물었다.



그때 일하는 아주머니가 지나갔다. 나는 아주머니를 불러 세웠다. "아주머니, 혹시 어제 누가 쌀을 바꿔놓지 않았어요?" "응, 어제 총각이 술 마시러 나가기에 쌀을 구분하지 못할까봐 주인 아주머니와 내가 바꿔놓았지." "…" 나는 피우던 담배를 휙 내던지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당장 아주머니 앞에 가서 욕을 해댔다. "누구 마음대로 쌀을 바꿔놓은 거요? 한마디만 물어봅시다. 어제 아주머니가 쌀을 바꿔놨소, 안 바꿔놨소?" 아주머니의 안색이 변했다. 험악하게 질문하자 아주머니는 주인다운 위엄을 가장하며 툭 던졌다. "바꿔놨어. 자네가 하도 술을 마시고 다녀서 실수할까봐 그런거지." "아무리 미친놈이라 해도 제 밥줄조차 구분 못할 정도로 술을 마시고 다니겠소? 아줌씨를 부자로 만들어준 것도 다 이 홍일태의 떡 만드는 기술이요. 그것을 못 믿겠다니, 아줌씨는 복을 발로 차버린 거요. 젠장, 나 그만둘라요." 다른 것은 다 참아도 나를 믿지 않는 곳에서는 단 1분도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그 길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가게에서 나와 버렸다.



촌놈의 자존심이 나를 세상 밖으로 내몰았다. 나는 그 길로 다른 떡집으로 들어갔지만, 썩 만족스럽게 적응하지는 못했다. 몇 군데를 전전하다가 사당동 떡집에 머물러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입은 거칠고 술 실력만 늘어갔다. 하지만 새벽이면 언제나 말짱한 정신으로 죽기살기로 떡 만드는 데 신명을 바쳤다. '떡에 미친 녀석.' 동료들은 똑같은 월급을 받으면서 구태여 일을 만들어서 할 게 뭐 있느냐고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나는 어떤 말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홀로 떡을 만드는 순간만큼은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라는 자신감에 흥분이 되었다.





동업자 - 결혼부터 하자

1989년, 큰형과 나는 압구정동 소망교회 근처에 상원떡집을 개업했다. 종로의 빵집에서 열심히 일해 모은 돈으로 자수성가한 형의 모습은 나의 미래에도 반드시 있어야 할 자화상이었다. 내 꿈은 아내와 함께 독립한 가게를 가지는 것이었다. '부지런히 일하면 언젠가는 내 힘으로 가게를 가질 수 있어.'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었다. 언젠가부터 내게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아내만 있다면 지금 당장 노점 가게라도 차려서 떡장사를 하고 싶었다. 아무리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기술만 있으면 10년 안에 가족들과 밥은 먹고살 수 있다는 현실에 눈을 떴다.



그해 봄, 내 생활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매일 비슷한 시간에 움직이듯이, 아침 출근 시간이면 어김없이 가게에 들르는 아가씨가 있었다. 상냥한 미소를 짓는 그 아가씨는 옷차림은 수수했지만 얼굴은 늘 화사했다.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소리 - '항상 맘속에 소원을 빌어봐라.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 다 맘속의 조화인 것이다. 간절하게 매달리면 부자도 되고 좋은 연분도 만나서 팔자 고친다.' - 처음 떡집에서 일할 때 주인 아주머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 얼른 자리를 떴다. 건물 안의 화장실에서 나와 소망교회를 향해 발길을 옮겼다. 그곳은 아침마다 가게에 들러 백설기를 사가는 그 아가씨가 근무하는 경복궁뷔페가 있는 길목이었다. 주말마다 예약이 밀리는 것으로 소문난 뷔페였다. '저 여자와 떡장사를 하면 금방 부자가 되겠다.' 그런 예감이 가슴에 와 닿았다. 내 관심사는 오로지 떡집을 개업하는 것이었다. 내가 떡을 만들면 그것을 팔아줄 여자는 내 아내가 될 사람이어야 했다.



'저 아가씨는 거기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궁금증은 가까운 곳에서 풀렸다. "삼촌, 아침마다 우리 가게에서 떡을 사 가는 그 아가씨와 맞선 보실래요? 경복궁뷔페에서 예약을 담당하는 아가씨인데, 장사를 잘한다고 소문이 자자해요. 얼굴도 그만하면 예쁘고, 성격도 싹싹하고, 무엇보다도 손님이 오면 그냥 내보내는 법이 없대요." 그 말에 나는 귀가 번쩍 뜨였다. '손님들을 꽉 잡는 여자라면!' 여름 휴가철이 끝나고 떡집에 손님이 뜸할 무렵이었다. 형수의 소개로 그 아가씨와 맞선을 보았다. 미정은 스물넷의 꽃다운 나이였다. 부모님이 조부를 모시고 사는 전남 장성이 고향이고, 형제는 딸 둘 아들 둘에 미정이 맏딸이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오빠와 남동생을 뒷바라지하며 시골집 생활비까지 미정이 책임지고 있었다. 첫 만남에서 나는 청혼이랍시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보아하니 떡장사를 할 팔자네. 난 가진 것도 없고 많이 배우지도 못했어요. 하지만 나에겐 부자가 되고 싶은 강한 욕망과 세상에서 떡을 제일 잘 만드는 기술이 있어요. 당신은 떡장사만 해줘요. 날 부자로 만들어주면 당신도 부자가 되는 거요. 어때, 인생이 흥미로울 것 같지 않소?" 그녀의 얼굴이 창백하게 일그러지는 것을 보았다. 상대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했지만 나는 그때 아가씨들과 커피나 홀짝거리면서 알콩달콩 연애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젠장!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니, 여자가 자기밖에 없나'하는 생각에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어느덧 시월 상달이 지나고 11월로 접어들었다. 고민 끝에 남자로서 인생을 건 도박을 하기로 결심을 굳히고 장안동 중고차 시장에 갔다. 술값을 아껴가며 조금씩 모아둔 돈으로 중고차를 구입했다. 그 차 뒷자리에 예비군 훈련에 동원될 때 입는 해병대 군복이며, 명찰, 예비군 훈련 때 봉사활동 차원으로 준비한 나무 방망이를 걸어두었다. 퇴근 후에는 그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면서 작전을 짰다. 난 비장한 결심을 하고 그녀의 집 앞에 차를 세우고 앉아 있었다. 피가 마를 것 같았다. 캄캄한 밤중이 되자 미정이 종종걸음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골목 안쪽 전봇대 앞에 이르는 그녀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미정은 날 보자 깜짝 놀라며 단박에 경계하는 눈빛을 보냈다. 나는 가능한 한 불쌍해보이는 얼굴로 말을 건넸다. "인간적으로 한 가지 부탁이 있어서 왔어요. 솔직히 난 미정씨를 아내로 삼고 싶은데, 미정씨는 내가 그토록 싫다니 가슴이 아픕니다. 이제 다시는 당신을 괴롭히지 않을 테니까 인간적으로 한 가지만 들어주세요." "뭔데요?" "끝나는 마당에 우리 마지막으로 드라이브나 합시다." "피곤해서 안되겠어요." 그녀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 정도로 물러설 것이라면 시작도 하지 않았다. "에이,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헤어지는 마당에 마지막으로 드라이브나 합시다." 거듭 제안을 하자 미정은 추위에 떨며 말했다. "그럼 잠깐만 기다리세요."



집에 들어갔다가 나온 미정은 그새 화장을 손질했는지 화사한 얼굴로 나타났다. 나는 미정을 차에 태우고 곧바로 올림픽대교로 접어들어 속력을 내서 달렸다. 잠실 종합운동장을 끼고 한강둔치에 도착한 나는 드디어 작업에 들어갔다. 차안의 실내등을 켰다. 아무 말 없이 차안을 둘러보던 미정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권총이 있고, 해병대 군복이 걸려 있고, 순찰용 방망이가 뒷좌석에 놓여 있는 것을 본 순간 그녀는 문을 열려고 했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당신이 정 떡장사를 하기 싫으면 날 죽이고 가. 난 당신이 좋은데 당신은 싫다니 내가 무슨 재미로 살아가겠어요?" "이러지 마세요. 난 아직 결혼할 수 없어요. 오빠와 남동생이 학생이라서 뒷바라지를 더 해야 되고, 또 시골에 계신 부모님도…" 하지만 나는 더 거칠게 나갔다. "나한테 시집을 오든가 아니면 평생을 편히 살기 위해서 나를 이 총으로 쏘고 3년 동안 감옥에 들어갔다 나오든가, 양단간에 결정해라." 실탄이 장전되었다고 하면서 권총을 내밀자 미정은 사색이 되었다. 미정은 안절부절못했다. 순간 난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그녀를 보쌈 해버렸다. 다음날 아침 천호동의 한 모텔을 나서는데 세상은 함박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미정을 보니 햇살을 배경으로 한 모습이 너무나 예뻤다. "천생 선녀 같네." 1992년 11월 8일이었다.

그 뒤 미정의 본가인 장성집에 가서 결혼 허락을 받아내기까지 호된 홍역을 치렀지만, 그것마저 배짱으로 위기를 넘겼다. "집안이 어려워서 3년 후에나 시집을 보낼 수 있네." 예비 장모님의 말씀에 나는 말했다. "3년 후에도 어차피 저한테 시집을 오게 될 텐데요. 3년 후에 미정 씨가 제게 시집을 올 때는 60평 아파트를 채울 세간을 다해서 와야 돼요. 그때 1억 5천만 원 정도의 혼수품을 갖고 오든가 지금 맨손으로 보내주든가 양단간에 알아서 하세요." 그것이 약속이라는 것을 장모님은 단박에 알아들으셨다. 거칠게 말씀을 드려도 사람의 진심을 꿰뚫어볼 줄 아는 혜안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지난 봄 매일 백설기를 사러 오던 나의 고객을 여름에 만나, 흰눈이 백설기처럼 내리는 날 아내로 맞이하는 이 기쁨! 11월 8일에 작업을 들어가 47일 만에 결실을 맺은 쾌거였다.





종자돈 - 마이너스 부채로 백만장자를 꿈꾼다

팔불출이라고 해도 좋다. 나는 아내를 얻자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내 편을 얻었다는 자부심, 나도 가정을 가졌다는 뿌듯함에 날아갈 것만 같았다. 둘 다 가진 게 없어 결혼해서도 나는 형네 가게에서 떡을 만들고, 아내는 경복궁뷔페에서 예약담당 일을 했다. 누군가를 진실로 사랑하게 되면 마음이 맑아진다. 그것은 하늘이 정한 이치다. 아내와 함께 생활하면서 마음과 몸, 영혼이 일치되는 것을 느끼면서 언제나 내면에 활력이 솟구쳤다. 그러다가, 가게를 열어야겠다는 소망이 간절해지면서부터 나는 자주 꿈을 꾸었다. 처음에는 재미로 꿈해몽 책을 뒤적거리며 꿈풀이를 하던 나는 갈수록 약간의 저력을 느꼈다. 전날 밤 꾼 꿈들은 항상 사흘이 지나기 전에 어김없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결혼 1년째에 셋째 누나가 집에 들렀다. 나는 순복음교회에 나가는 정이 누나가 신앙심이 돈독한 것을 알고 마주 앉았다. 간밤에 꾼 꿈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는데, 우리집에서는 그중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누나의 방문이 뭔가 결정을 내릴 때라는 직감으로 전해졌다. "누나, 오랜만에 만났으니 꿈풀이나 좀 해봐." "그러자." "농수로에 물이 내려가는데 가끔씩 고기가 한 마리씩 툭툭 튀어나오는 꿈을 꾸었어." 정이 누나는 영적으로 민감해서 상대가 말하지 않는 이면의 세계까지 통찰력있게 들여다볼 줄 알았다. "너 상원이 집에 간 지 얼마나 되었냐?" "4년." "너희들이 계약을 맺은 게 몇 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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