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렌 버핏 투자법
로버트 해그스트롬 지음 | 청림출판
합리적인 투자자의 조건45년 동안 버핏의 투자 성과는 시장 수익률을 밑도는 경우가 거의 없이 항상 뛰어났다. 특히 그의 투자 성과가 뛰어난 것은, 시장의 상황이 매번 바뀌었음에도 투자 전략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는 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다른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선택한 기법과 버핏의 투자 기법을 서로 비교해보면 세 가지 측면 - 주식을 분석하는 방법,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방법, 주식시장에 대한 사고방식 - 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 번째 교훈은 그의 주식 분석 방법에서 얻을 수 있다. 그는 주식을 분석할 때 주가는 무시하고 기업의 특성 - 회사의 영업요소, 경영요소, 재무요소 등 - 을 살펴보는 데 역점을 기울인다. 이것이 그의 투자 분석의 핵심이다. 그런 다음 버핏은 그 회사의 내재가치가 어느 정도 되는지 계산하고 비로소 주가를 살펴본다. 즉 주식이 아니라 기업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교훈은 그의 포트폴리오 관리 방법에서 배울 수 있는데, 집중적이고 거의 변동이 없는 포트폴리오를 운용한다. 홈런을 치려면 모든 볼에 무조건 방망이를 휘둘러서는 안 되는 것처럼, 시장 수익률을 능가하려면 수천 개의 종목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가장 좋은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단기적인 주가 변동으로 판단하지 말고 그 기업의 근본적인 가치를 관찰하고, 주식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체를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세 번째 교훈은 그의 주식시장에 대한 사고방식에서 배울 수 있다. 버핏은 "만일 당신이 투자자라면 자산이 - 여기서는 사업을 의미함 - 어떻게 될 것인지 살피겠지만, 투기꾼이라면 사업과는 관계없이 주가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만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항상 투자와 투기의 차이점을 인식하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투자원칙을 수립하라는 것이다.
집중투자가 현재 일반화되어 널리 사용되고 있는 투자모델과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집중투자 기법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으려면 사고방식에 있어 남들보다 조금 많은 개념과 모델을 구축해두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여러 가지 사고방식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것을 빨리 습득하는 동시에 잘 이해하는 일이다.
세계 최고의 투자자와 그의 기업워렌 에드워드 버핏(Warren Edward Buffett)은 1930년 8월 30일, 미국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셨고, 아버지는 주식 중개인이었다. 버핏은 네브래스카 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했으며, 재학 시절 콜롬비아 대학의 교수 벤저민 그레이엄이 쓴 『현명한 투자자(The Intelligent Investor)』를 읽고, 감명을 받아 그레이엄 교수에게 직접 배우기 위해 콜롬비아 대학 경영대학원에 지원했다. 콜롬비아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레이엄 교수는 자신이 경영하던 회사, 그레이엄-뉴먼 사로 워렌 버핏을 부른다. 버핏은 2년 동안 그 회사에서 근무하며 그레이엄 교수의 투자방식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1956년 그레이엄-뉴먼 사는 해체되고, 버핏은 고향 오마하로 돌아오게 된다. 그 뒤 그레이엄에게서 배운 지식으로 무장한 버핏은 친구들과 친척들의 재정적인 지원과 자신이 가지고 있던 100달러를 모아 주식회사 형태의 자그마한 투자펀드를 시작하게 된다.
이후 13년 동안 버핏은 매년 평균 29.5퍼센트의 수익률을 달성했다. 버핏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점점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자산관리를 의뢰하게 되었다. 고객과 연루된 비리 의혹으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주가가 거의 하룻밤 사이에 65달러에서 35달러로 추락하였을 때, 버핏은 대담하게도 1천 300만 달러(이 규모는 투자회사 총 자산의 40퍼센트에 해당하는 자금이다)를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 쏟아 부었다. 2년 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주가는 3배로 뛰어올랐으며, 펀드의 주주들은 2천만 달러의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이후에도 버핏은 여러 기업의 소액지분을 사들였다. 1969년 버핏은 그가 관리하고 있던 펀드의 운용을 마감하기로 결심했다. 버핏을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은 배당받은 지분을 버크셔 해더웨이라는 섬유회사 주식에 투자하여 경영권을 장악하기에 충분한 주식을 사들이고, 버핏은 1985년 섬유사업 부문을 정리했다.
1967년 3월 버크셔 해더웨이는 860만 달러를 투자하여 오마하에 본점을 두고 있는 두 개의 보험회사, 내셔널 손해보험과 내셔널 화재해상보험의 주식을 매수했다. 그것이 버크셔 해더웨이가 보험업에 투자하여 성공을 거둔 출발점이 되었다. 보험회사의 프트폴리오를 관리한 지 2년 만에 버핏은 3천 190만 달러였던 두 보험회사의 주식과 채권 포트폴리오를 4천 200만 달러로 늘려놓았다. 덩달아 보험사업 그 자체도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가 보험사업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사업의 본질을 누구보다도 정확히 파악했기 때문이며, 그가 투자하고 있는 보험사들을 프랜차이즈의 위치로까지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1950년대부터 1960대에 걸쳐 공무원 보험회사(GEICO)는 크게 성장했다. 그러나 이후 위기를 맞았다. 몇 년 동안 회사는 고객층을 넓히기 위해 무리하게 보험료를 인하했으며 보험금 지급요건도 완화했기 때문이다. 한때 주당 61달러 수준이던 주가가 1976년에 2달러까지 하락하자, 버핏은 GEICO의 주식을 매수하기 시작했다. 버핏은 이 회사의 경쟁력은 변함없을 것이라는 점을 확고히 믿었기에 이후 5년 동안 4천 570만 달러를 GEICO에 투자했다.
버핏이 GEICO의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한 다음해인 1977년부터 회사는 다시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0년 동안 GEICO의 손해율(지급 보험금에 대한 보험료 수입의 비율)은 단 한 해를 제외하면 항상 흑자였다. 1991년이 되자 버크셔는 GEICO 지분의 거의 절반(48퍼센트)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 뒤 버크셔는 나머지 발행주식을 모두 23억 달러에 사들이기로 합의하고, 1996년 초에 모든 서류작업이 마무리한다. 그때부터 GEICO는 공식적으로 버크셔 해더웨이의 한 사업부로 변모했다.
1998년 그는 160억 달러를 들여 제너럴 재보험이라는 재보험사를 인수했다. 버크셔 해더웨이가 제너럴 재보험사를 인수·합병한 직후, 이 회사는 최악의 해를 보내게 된다. 워렌 버핏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사람이다. 제너럴 재보험사의 경쟁력은 버크셔 해더웨이의 재무적인 건실함과 잘 맞아떨어지며, 두 회사는 서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궁극적으로는 두 회사의 미래를 동시에 개선할 것으로 버핏은 확신했다. 버크셔 해더웨이는 지주회사라고 생각하면 정확하다. 보험회사 외에도 버크셔는 신문사, 캔디회사, 아이스크림/햄버거 체인, 여러 가구점, 카펫 제조회사, 페인트 회사, 건축재료 회사, 전용 제트기 회사, 보석가게, 백과사전 출판사, 진공청소기 회사, 공공설비 회사, 구두 회사, 유니폼 제조회사 등을 소유하고 있다.
버핏은 버크셔 해더웨이의 주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신과 같은 입장에 있는 버크셔 해더웨이의 소유주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버핏은 그들의 입장에서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을 영업보고서를 통해 최대한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버크셔에는 버핏의 철학이 다소 특이하고 신선한 기업정책으로 반영되어 있다. 대표적인 두 가지 사례는 자선단체 기부정책과 임원보수 규정이다.
버핏은 버크셔의 주가가 오르든 내리든 뛰어난 실적을 낸 임직원에게는 마땅히 그에 걸맞는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임직원들의 연봉은 그가 책임진 분야에서 목표치를 달성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해마다 연말에 버크셔는 스톡옵션을 나누어주지 않고 대신 수표를 직접 준다. 하지만 대다수 임직원들은 그 돈으로 버크셔 해더웨이의 주식을 산다. '주주지명 기부 프로그램'으로 불리는 버크셔의 자선단체 기부정책처럼 버핏의 인간 됨됨이를 잘 설명하는 일도 없다. 버크셔의 주주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주식의 비율에 따라 버크셔의 자선기금 수혜자를 지정할 수 있다.
전설적인 금융전문가들의 교훈워렌 버핏은 세 사람의 뛰어난 금융전문가, 즉 벤저민 그레이엄, 필립 피셔, 찰리 멍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기에 그는 이 세 사람의 합성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레이엄은 1934년에 출판된 『증권분석(Security Analysis)』과 1949년에 출판된 『현명한 투자자(The Intelligent Investor)』라는 불후의 명저를 남겼다. 『증권분석』의 요점을 한마디로 말하면 합리적인 가격을 바탕으로 엄선되고 분산된 주식 포트폴리오야말로 가장 건전한 투자라는 주장이다. 투자를 정의하는 일이 복잡하다는 것을 감안하여 그레이엄은 이렇게 독특한 정의를 내렸다. '투자는 철저한 분석을 거쳐야 하며, 원금이 보장되고 만족할 만한 수익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일은 모두 투기이다.' 투자와 투기를 구별하는 일 다음으로 그레이엄이 이룩한 두 번째 업적은 보통주를 매수하는 방법론을 정립했다는 것이다.
무조건 싼 가격에 매수하려는 전략은 그리 적절한 방법이 아니므로, 이런 일에 쓸데없는 에너지를 소모하느니 시장의 상황이 어떻든 저평가되어 있는 종목을 골라서 매수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그레이엄은 말한다. 시장의 상황이 어떻든 저평가되어 있는 종목을 매수한다는 아이디어는 1930년대나 1940년대까지만 해도 색다른 것이었다. 그레이엄이 『증권분석』에서 강조하려 했던 주제 중 하나는 바로 그런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레이엄은 건전한 투자라는 개념을 그가 '안전의 최저한도'라고 명명하는 모토로 축소했다. 즉, 어떤 주식이 내재가치에 비해 낮은 수준으로 거래되면 그 주식은 안전의 최저한도를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기법을 현실적으로 활용하려면 애널리스트는 기업의 내재가치를 산출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의 내재가치는 미래 수익전망에다 일정한 가중치 - 가중치를 좌우하는 것은 수익의 안정성, 자산, 배당정책, 재무구조의 건전성 등이다 - 를 곱하여 정해진다. 그렇지만 그레이엄은 내재가치라는 말이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개념이라고 말한다. 기업의 가치를 정확하게 따지려면 순자산뿐만 아니라 향후 이러한 자산이 창출할 수익까지도 포함하여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레이엄의 견해로는 투자에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첫 번째 원칙은 '절대로 손해 보지 말 것'이고, 두 번째 원칙은 '절대로 손해 보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절대로 잊지 말 것'이다. 이러한 '절대로 손해 보지 않기' 전략은 주식을 매입할 때 두 가지 접근법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결국 안전의 최저한도 기법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첫 번째 접근법은 주가가 기업의 순자산가치보다 2/3 이하인 주식을 매입하는 것이고, 두 번째 접근법은 PER(price earnings ratio, 주가수익비율 : 주식의 1주당 시장가격인 주가와 1주당 수익액의 비율)이 낮은 주식을 매입하는 방법이다.
첫 번째 방법, 즉 순자산가치 이하로 거래되는 주식을 매입하려면 주식시장이 약세가 되기를 기다려야 하는데, 이는 그다지 합리적인 방법이 아니다.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그레이엄은 다음과 같은 개선책을 내놓고 있다. 주식의 PER에 주목하는 방법이다. 다시 말해 주가수익비율이 낮은 주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주가수익비율이 낮은 주식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순자산가치가 있는 기업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어떤 방법을 취하든 그레이엄이 선호한 주식은 주식시장에서 사람들의 관점에서 멀어진 주식들이었다. 그레이엄은 이처럼 '비정상적으로 낮은 시세에 거래되는' 주식이야말로 좋은 투자처가 된다고 확신했다.
그레이엄이 『증권분석』의 집필에 열을 올리고 있을 즈음, 필립 피셔는 투자 컨설턴트로서의 길에 막 들어선 참이었다. 필립 피셔는 기업가치 분석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그 요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장기간에 걸쳐서 매출액과 순이익 모두 시장 평균 이상의 성장률을 지속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만이 투자의 성공을 보장한다. 단기간의 성장률만 참조하면 속기 쉽다. 둘째, 경영진이 뛰어난 기업은 실적도 좋다. 셋째, 보통 수준의 여러 기업체에 투자하는 것보다 소수의 뛰어난 기업체에 투자하는 편이 낫다. 다른 장점들도 많지만 무엇보다 시간이 절약된다.
그리고 찰리 멍거는 누구보다도 현실적인 투자 파트너였다. 버핏과 멍거의 관계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발전한 것이며, 정형화되어 있는 것 이상으로 매우 긴밀하고 절친하다. 멍거가 버크셔에 합류하기 이전부터 두 사람은 서로 협의하여 투자결정을 내렸다. 두 사람의 관계에 있어 멍거는 금융적인 면에서 아이디어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법률적인 면에서도 든든한 조언자였다.
금융지식, 변호사로서의 배경, 다른 학문에 대한 관심, 이 세 가지 요인이 결합된 멍거의 투자철학은 버핏과는 사뭇 차이가 있다. 버핏은 여전히 내재가치보다 낮은 주식을 매수할 기회를 노리는 반면, 멍거는 뛰어난 회사라면 비싼 가격을 지불해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버핏과 멍거가 서로 잘 맞았던 이유는 두 사람 모두 사업상 상식적인 원칙을 지키는 데 단호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버핏은 보험영업이 부진할 때도 원가보다 낮은 보험료로는 결코 보험계약을 하지 않았으며, 멍거가 웨스코의 CEO로 재직하면서 신용금고 업계가 혼란에 빠지자 과감하게 대출중단을 선언했던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멍거 기법을 요약하면 높은 순이익을 내고 있으나 자본지출은 낮은 회사를 찾아야 하고, 괜찮은 회사를 비싼 값에 사들이느니 훌륭한 회사를 괜찮은 값으로 사들이는 편이 훨씬 낫다는 것이다.
버핏이 벤저민 그레이엄, 필립 피셔, 찰리 멍거에게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레이엄은 투자의 기본적인 지식, 즉 안전의 최저한도 기법을 일러주었으며,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여 주가의 비합리적인 움직임을 오히려 이용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 피셔는 유망한 장기 투자처를 선별할 수 있는 방법론을 가르쳤으며, 장기간에 걸쳐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방법을 버핏에게 전수해주었다. 그리고 멍거는 뛰어난 회사를 인수하고 보유함으로써 어떤 경제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는지를 인식시켜주었다. 버핏의 투자전략이 종종 일관성 없는 것처럼 비쳐지는 이유도 버핏이야말로 이들 세 사람의 투자철학을 합성해놓은 인물이기 때문이며 버핏이 다른 투자자들보다 뛰어난 것은 그레이엄과 피셔, 그리고 멍거의 투자철학을 종합하여 하나의 일관된 투자전략으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종목 선택의 12가지 기준버핏이 가진 진정한 능력은 주식 종목이 아니라 '회사'를 선별하는 힘에 있다. 주식을 새롭게 매수할 때면 버핏은 그가 오랜 세월에 걸쳐 확립한 평가기준을 이용하여 주식이 아니라 회사 전체를 인수하는 것처럼 그 기업을 샅샅이 분석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버핏이 매입하거나 투자했던 회사들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을 검토해보면 어떤 일정한 공통점, 다시 말해 일정한 요소들을 추려낼 수 있다. 물론 버핏의 모든 투자행위가 이 12가지 요소를 완벽하게 만족시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이 요소들이 버핏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고 버크셔 해더웨이를 경영하는 원칙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버펫이 기업을 평가하는 12가지 요소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기업요소 분야에선, '회사의 활동은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가?, 향후 전망은 밝은가?'를 평가하고, 둘째, 경영요소 분야에선 경영자가 합리적인지, 경영자가 솔직한지, 경영자는 업계의 관행에 도전할 용기가 있는지를 평가한다. 셋째, 재무요소 분야에선 주당 순이익보다 자기자본 수익률을 중시하며, 기업가치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 '주주이익(owner earn -ing)'을 산출하고, 또 높은 매출액 수익률(high profit margin)을 가진 회사를 선택하고, 사내에 유보금을 남긴다면 그 이상으로 시가총액이 증가하는지를 살핀다. 넷째, 시장요소 분야에선 내재가치를 산출하고, 주식을 내재가치보다 충분히 낮은 가격으로 매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