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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향한 끝없는 도전

이기찬 지음 | 중앙경제평론사
프롤로그 - 가난과의 싸움



1965년 6월에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우리 가족과 가난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결국 어머니는 집을 처분하고 홍은동 산비탈에 자리잡은 무허가 흙집으로의 이사를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그 때 형은 중학교 3학년이었고,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동생은 2학년이었다. 그러던 중, 서울중학교를 졸업하고 무난히 서울고등학교에 진학한 형은 3학년이 되자 책을 놓고 운동만 하기 시작했다. 자기는 공부에 적성이 없는 것 같아 해군사관학교에 지망하기로 했다고. 자기 한 사람 희생해서 동생들의 앞길을 열어주겠다는 장남으로서의 형의 속셈을 모를 리 없었지만 어머니는 못이기는 체하고 형의 계획에 동의했다. 어머니와 형의 기대는 나에게로 모아졌다. 내가 대학교에 들어가고 얼마 되지 않아 우리 가족은 잠실에 새로 지은 13평짜리 서민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볼품 없이 작은 집이었지만, 우리에게는 그 어떤 화려한 저택보다도 멋진 보금자리가 아닐 수 없었다. 어느새 가난이 우리 곁에서 서서히 물러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인 1977년 당시 잘 나가는 종합상사 중의 하나였던 율산실업에 입사해서 직장생활을 시작하였다. 율산실업은 재계의 신데렐라로 불리던 신선호 회장이 이끌던 율산그룹의 모회사로서 그 성장속도는 대우그룹의 기록을 무색케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게 욱일승천하던 율산의 기세는 1979년 4월, 그룹 총수인 신선호 회장이 외국환관리법 위반 및 업무상 횡령협의로 구속되면서 하루아침에 날개를 접고 말았다. 일세를 풍미했던 율산의 신화는 그렇게 허망하게 막을 내리고 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져야만 했다. 결국 나는 율산실업에서의 소중한 경험을 지워버리고 신입사원 공채시험을 통해 현대그룹에 입사하게 되었다. 마침 중동건설 붐을 타고 새로운 인력의 충원이 절실했던 현대건설로 발령 받아 해외업무부에 배치를 받았다. 나는 입사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해외근무 명령을 받고 1980년 3월에 사우디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사우디 발주처와 미국의 기술감독회사와의 업무를 조율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는데, 현장에 부임한 지 4개월만에 형이 사망했다는 비보를 접했다. 헬기를 몰고 서해 상공에 출격했다가 갑작스런 기상악화로 추락했다고 한다. 좁아터진 땅 위에서 아옹다옹하며 사느니 푸르른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싶다던 형은, 만 29세의 한창 나이에 더 이상 가난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세상으로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형의 장례를 마치고 다시 사우디로 돌아간 나는 사우디 송유관공사 현장에 마지막까지 남아서 철수작업을 마무리짓고 1981년 8월에 귀국했다가 다시 1982년 8월 젯다에 있는 현장에 장기출장으로 나가서 6개월간 근무하고, 1983년 2월에 본사로 복귀하였다. 장기출장에서 돌아온 나는 1983년 약혼식을 하고 1년 후에 결혼식을 올렸다. 우여곡절 끝에 1985년 10월, 나는 다시 사우디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또 다시 전쟁터와 같은 건설현장에서의 쫓기는 삶이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1986년 봄에 입사한 지 7년도 되지 않아 입사동기 중에 가장 먼저 과장으로 진급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그렇게 지긋지긋하던 가난으로부터 차츰 벗어나고 있었고 대기업의 과장이라는 안정된 자리도 차지했다. 그런데도 마음이 편안하기는커녕 무엇인가에 쫓기는 듯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마치 너무 일찍 중간 기착지에 도착한 사람이 앞으로의 여정을 걱정하듯이.

새로운 시작



"아니, 과장으로 진급한 지 얼마나 됐다고…." 8년 가까이 다니던 직장에 사직서를 제출했을 때 대부분의 주변 사람들이 보인 첫 번째 반응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과장으로 진급한 지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였으니 누가 보아도 이해가 가지 않을 일이었다. 나 스스로도 사직서 제출을 정당화시킬 만한 사유를 내세우기가 힘들 정도였다. 과연 회사를 그만두기로 한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무엇보다도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한마디로 남의 눈치를 보면서 회사라는 조직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신의 의지대로 일하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독립의 결정은 빨리 내릴수록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에겐 아무런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 무엇을 할 것인지는 나중에 생각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사직서를 제출해 놓고 귀국 날짜를 기다리면서 차츰 두려움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밤마다 잠자리에 누워 과연 무슨 일을 할 것인가를 궁리했다. 하지만 뚜렷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자본이 없다는 것이 큰 핸디캡이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혼자서 삼형제를 키우신 어머니, 한창 젊은 나이에 사고로 순직한 형의 가족들, 딸만 둘인 집안의 맏사위로서 외면할 수 없는 처가 식구들, 쥐꼬리만한 말단 공무원 월급으로 빠듯하게 살아가는 동생 식구들. 거기에 나 하나만 믿고 오랜 세월을 기다려 준 아내와 이제 막 첫돌을 맞이하는 아들까지. 그들 모두가 어렵게 살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그들 모두에게 도움을 주어야겠다는 마음이 절실했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잘나가던 직장생활을 접고 독립을 결심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의 과장 월급을 가지고서도 직계가족을 부양하는 데 급급할 정도여서 독립을 하지 않고서는 다른 가족들에게 평생 사람 구실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들 모두에게 큰 빚을 지고 있었다. 그들 모두에게 최소한의 사람 구실을 하기 위해서라도 가급적 많은 돈을 벌어야 했다. 하지만 회사를 떠난 후에 할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지만 뾰족한 아이디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어느새 비행기는 고국의 하늘을 날고 있었다. 이제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오퍼상과의 만남



귀국해서 며칠을 한가히 보내던 어느 날 우연히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같이 근무했던 동료를 만났다. 입사동기인데다 나이도 같아서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다. "아이고 반갑네. 이게 얼마 만인가?" "나는 얼마 전에 회사 그만두고 놀고 있네. 자네는 뭐 하나?" "나도 회사 그만두고 조그만 오퍼상을 시작했네. 저기에 우리 사무실이 있으니 잠깐 들렀다 가세나." 친구를 따라 사무실을 둘러보니 별다른 장식도 없이 책상 몇 개와 타자기, 텔렉스 시설 등이 전부였다. "오퍼상이 뭐 하는 건가?" "글쎄, 무역 복덕방이라고나 할까?" "무역 복덕방이라니?" "간단하게 말해서 국내외에서 서로 물건을 사고 팔려는 사람들을 연결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사람을 일컫는 것이지." "국내외의 거래당사자들끼리 직접 거래를 하면 되지 무엇 땜에 오퍼상을 끼고 거래를 하는가? 수수료만큼 손해를 보는 것일텐데." "그건 우리가 집을 사고 팔 때 복덕방을 통해서 거래를 하는 것과 마찬가질세. 복덕방이 없다면 집을 사고 팔 사람들이 직접 상대방을 찾아 나서느라 애를 먹는 것처럼 오퍼상이 없다면 전 세계의 수많은 수출상과 수입상들이 직접 자신이 취급하는 물건을 사고 팔 상대방을 찾아 나서야 할 텐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뿐만 아니라 직접 거래를 하려면 가격 흥정을 하기도 힘들고 특히 수출업체의 입장에서 보면 시장정보를 제공하고 일종의 로비스트 역할을 해줄 현지 에이전트가 필요하게 마련이지."

점점 오퍼상이라는 직업에 관심이 생겨서 실질적인 질문을 던져 보았다. "돈은 많이 들지 않나?" "별로 돈 들건 없네. 순수한 오퍼상이란 자기가 직접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이 아니라 중개역할만 하는 것이니까. 사무실 운영비와 통신비, 출장비 정도 든다고 보면 되는데 사무실이야 조그만 곳에서 시작해도 되고 정 돈이 없으면 집에서 해도 상관이 없으니 크게 문제될 것이 없지." 한창 바쁘게 일할 시간에 마냥 친구를 붙잡고 있을 수가 없어 그 정도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퍼상이라는 직업에 대해 호감이 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맘에 끌렸다. '이번 기회에 나도 오퍼상이나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아무리 창업자금이 필요 없다고 해도 당장 일할 사무실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퇴직금으로 받은 돈 중 남은 것이라곤 웬만한 사무실 임대료 보증금에도 턱없이 모자랐다. 다음 날 일찍 어제 만났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생각한 끝에 이미 오퍼상을 하기로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나도 오퍼상을 해야겠는데, 어디 사무실 싼 데 알고 있는 데 있나?" "보증금이 모자라서 그런다면 한 군데 알고 있는 데가 있네. 대신 임대료는 그다지 싸지 않을 걸세. 선진국에서 운영되는 소위 시스템오피스라는 곳이지. 별도의 보증금을 받지 않고 석 달치 임대료를 미리 받는다네. 게다가 사무기기는 물론이고 요즘 새로 나온 팩스도 사용할 수 있다네. 물론 다른 입주자들과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이지만. 참 비서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네. 임대료가 다른 곳보다 비싼 것은 이런 비용들이 포함되기 때문일세." "거기가 어딘가?"

친구의 소개를 받아 찾아간 곳은 제법 커다란 빌딩이었다. 얼른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분위기여서 임대료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가격을 물어보았더니, 여러 가지 크기의 방이 있는데 방의 크기에 따라서 그에 상응하는 이용료가 부과된다고 했다. 무조건 제일 작은 방을 보여달라고 했더니 비서가 웃으며 안내한 곳은 방이 아니고 간이 칸막이 안에 책상과 의자 하나씩만 달랑 놓여 있었다. 그야말로 사무를 볼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에 불과했다. 안내해준 좌석에 자리를 잡고 무엇부터 할까 생각하다가 우선 회사서식과 명함부터 만들기로 했다. 회사 이름부터 지어야 했는데 이 궁리 저 궁리 끝에 'You are my sunshine'이라는 노래제목에서 'You'와 'Sun'을 따고 뒤에 '무역'자를 붙여서 '유선무역'이라는 상호를 완성하였다. 이제 정식으로 한 회사의 대표가 된 것이다. 헌데 아이템도 없고 거래처도 없이 과연 무슨 일을 어떻게 시작한단 말인가?

풀리지 않는 실마리



나는 일단 가까운 친구나 지인(知人)들에게 명함을 뿌리고 다녔다. 직접적으로 말은 하지 못했지만, 은연중에 새로운 아이템이나 거래처를 찾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 주었다. 얼마 후, 보람이 있었는지 한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먼 친척뻘 되는 사람이 골프용품을 생산하는 하청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오더를 주던 원청회사에서 직접 생산하게 되어 일감이 끊어졌다며 자기 물건을 수출해줄 만한 사람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얘기를 듣고 보니 일거리가 될 것 같아 연락처를 받아 직접 공장까지 찾아가 보았다. 수출할 때 필요한 갖가지 정보들 - 포장이라든지, 주문접수 후 생산 완료까지 걸리는 시간, 가격 등을 꼼꼼히 체크하고 샘플까지 한 박스 얻어 가지고 왔다. 이제 팔 물건은 확보가 되었는데 문제는 어떻게 살 사람을 찾느냐 하는 것이었다. 한동안 고민하던 나는 오퍼상을 하고 있는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친구는 "무역에 관한 자료라면 무역협회나 KOTRA에서 운영하는 무역자료실을 따라갈 곳이 없지. 가서 자료실 직원에게 자네가 원하는 자료를 찾아 달라고 부탁해 보게. 그래도 여의치 않으면 직접 찾아야 하는데 일단 가서 시도해 보면 방법이 있을 걸세."

친구가 일러준 대로 무역협회에서 운영하는 자료실에 가니 어렵지 않게 골프용품 액세서리 바이어 명단을 입수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입수한 것은 그동안 무역협회에 골프용품에 대한 인콰이어리를 보내온 바이어들의 명단이었다. 상대측에서 먼저 한국의 공장을 찾아 달라고 의뢰한 것으로 보아 실제로 구매의사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사무실에 돌아오자마자 입수해온 명단에 나와 있는 꽤 많은 업체들 앞으로 편지를 작성했다. 골프용품을 수출하는 회사인데 관심이 있다면 가격과 함께 샘플을 보낼 것이니 연락해 달라는 내용으로 작성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돌아다녔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실제 거래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그쪽에서 먼저 한국의 제조업체를 소개해 달라고 접촉했던 회사들이라 은근히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회신을 보내온 회사는 몇 군데에 지나지 않았다. 내용도 자기네는 골프용품 중에서도 다른 아이템을 취급한다거나, 이미 다른 공장과 거래를 하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 대부분이었고, 그나마 샘플을 보내 보라는 회사가 한 군데 있어 샘플을 보내 보았으나 별다른 성과 없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렇게 바이어를 잡지 못하고 허둥대는 사이에 얼마 남지 않은 퇴직금도 다 쓰고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수입에의 입문



별 수 없이 오퍼상을 하고 있는 친구에게 그동안 겪었던 일들을 소상히 털어놓고 그의 조언을 구했다. "수입 쪽으로는 전혀 시도를 안 해본 것 같은 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수입은 어쩐지 생소하고, 이왕이면 수출 쪽으로 일하는 것이 나라에 보탬이 될 것 같기도 해서…." "그거야말로 편견이 아닐 수 없네. 생소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수입 업무를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일 텐데, 오히려 서류작성이라든지 대부분의 무역절차를 수출자가 진행하고 수입자는 대금을 지급하고 물건을 찾아서 통관만 하면 되므로 해보면 별 것 아니라는 것을 절감할 걸세.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수출하는 상당수의 전자제품이나 기계류는 외국으로부터 수입된 부품을 사용해서 만드는 것인데 그런 부품들을 어떻게 경쟁적인 가격에 수입하느냐에 따라 해당 수출품의 경쟁력이 좌우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되네. 그리고 아무런 연고가 없이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라면 수입 쪽에 비중을 두고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얘길세."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수출의 경우 유망한 아이템을 잡기가 쉽지 않네. 우리나라의 수출 주력상품은 자동차, 선박, 전자제품 등 주로 덩치 큰 아이템들인데 대부분 대기업들이 생산하는 물건들이라 자체적으로 해외시장을 관리하기 때문에 오퍼상이 중간에 끼여들 여지가 없다네. 자연히 수출오퍼상들은 잡제품이나 아이디어 상품 속에 승부를 걸게 마련인데 잡제품의 경우 우리나라 제품의 품질이나 가격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져서 새로운 바이어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고, 아이디어 상품의 경우 실제 오더로 연결되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어렵사리 시장을 개척해 놓으면 제조업체에서 직접 수출하겠다고 나서는 문제로 해서 지속적인 오더로의 연결이 쉽지 않네. 거래금액도 크지 않고 커미션도 많이 붙일 수 없기 때문에 고생만 하다가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네. 반대로, 수입 쪽은 잡제품의 경우 전체 수입금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낮을뿐더러 아이템의 특성상 대개는 해외 공급업체들과 국내 수입판매업자들이 직접 거래를 하기 때문에 순수한 오퍼상이 개입할 여지가 적고 오히려 중화학제품이나 산업용품처럼 거래규모가 큰 아이템일수록 국내 시장조사라든지 국내 거래처 개발 등을 위해서 에이전트를 통해서 국내시장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네. 이런 아이템일수록 단발성 오더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오더로 연결될 확률이 높아서 오퍼상으로서는 안정적인 일감과 함께 지속적인 수입을 기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일세."

친구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명심하게. 순수한 오퍼상으로서 수월하게 자리를 잡고 큰 돈을 벌려면 수입 쪽에 승부를 걸어야 하네." 나는 곧바로 무역협회의 무역자료실로 향했다. 그동안 주로 수출에 관련된 자료만을 이용했으므로 수입에 관한 자료는 생소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내년부터 문구 수입시장 개방"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눈에 띄었다. 금지되었던 시장이 내년부터 개방된다고 하니, 아직 이를 취급하는 오퍼상이 많지 않을 것 같기도 하여 해볼 만한 아이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급하는 외국업체를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사무실에 돌아온 나는 한국 시장을 관리할 에이전트로 일하고 싶다는 취지의 편지를 작성했다. 편지를 발송하고 나서 한 달이 가까워오자 이곳 저곳에서 답장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보낸 수백 통의 편지 중에 쓸 만한 내용은 영국에서 보내온 것으로 자기네 동남아시아 에이전트가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 있으니 한번 만나보라는 것뿐이었다.

며칠 뒤, 미팅을 갖기로 한 팔레스 호텔로 향했다.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존(John)이라고 합니다. 우리 회사는 영국 굴지의 문구사무용품 제조회사로서 규모도 어마어마할뿐더러 아이템이 수천 가지가 넘습니다. 아직 한국에는 소개된 것이 없으니 관심이 있으면 검토해 보십시오." 그는 회사의 규모 등을 설명하면서 여러 권의 카탈로그를 펼쳐 보았다. "저는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구체적으로 추진 중인 아이템이나 사업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맡겨주신다면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카탈로그를 주고 갈 테니 검토해보시고 한국에서 수입해서 팔 만한 아이템을 선정해서 오더를 발주하면 해당 아이템에 대해서 일정 기간 동안 한국 내 판매 독점권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상당히 합리적인 제안이었다. 나는 제안을 수락하고, 존과 헤어지고 나서 카탈로그 속의 각종 문구사무용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템 가격이 비싸서 한국시장에 진출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나마 일반적인 문구나 사무용품 외에 각종 색연필도 공급하고 있다는 것이 다소 위안이 되었다. 문제는 색연필을 어떤 경로로 들여다 파느냐 하는 것이었다. 고민하던 중에 업종별 전화번호부에 눈이 갔다. 전화번호부를 뒤져서 미술이나 디자인 용품을 취급하는 업체들을 찾아보았다. 화방이라는 업종으로 분류된 곳에 여러 곳의 상호와 함께 전화번호가 인쇄되어 있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전화 다이얼을 돌렸다. 다행히 사장과 직접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일단 샘플을 가지고 한번 들어오라고 했다. 첫 번째 시도치고는 대성공이었다. 나는 즉시 영국 본사에 텔렉스를 보내서 샘플을 보내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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