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향한 끝없는 도전
이기찬 지음 | 중앙경제평론사
나는 일단 가까운 친구나 지인(知人)들에게 명함을 뿌리고 다녔다. 직접적으로 말은 하지 못했지만, 은연중에 새로운 아이템이나 거래처를 찾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 주었다. 얼마 후, 보람이 있었는지 한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먼 친척뻘 되는 사람이 골프용품을 생산하는 하청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오더를 주던 원청회사에서 직접 생산하게 되어 일감이 끊어졌다며 자기 물건을 수출해줄 만한 사람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얘기를 듣고 보니 일거리가 될 것 같아 연락처를 받아 직접 공장까지 찾아가 보았다. 수출할 때 필요한 갖가지 정보들 - 포장이라든지, 주문접수 후 생산 완료까지 걸리는 시간, 가격 등을 꼼꼼히 체크하고 샘플까지 한 박스 얻어 가지고 왔다. 이제 팔 물건은 확보가 되었는데 문제는 어떻게 살 사람을 찾느냐 하는 것이었다. 한동안 고민하던 나는 오퍼상을 하고 있는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친구는 "무역에 관한 자료라면 무역협회나 KOTRA에서 운영하는 무역자료실을 따라갈 곳이 없지. 가서 자료실 직원에게 자네가 원하는 자료를 찾아 달라고 부탁해 보게. 그래도 여의치 않으면 직접 찾아야 하는데 일단 가서 시도해 보면 방법이 있을 걸세."
친구가 일러준 대로 무역협회에서 운영하는 자료실에 가니 어렵지 않게 골프용품 액세서리 바이어 명단을 입수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입수한 것은 그동안 무역협회에 골프용품에 대한 인콰이어리를 보내온 바이어들의 명단이었다. 상대측에서 먼저 한국의 공장을 찾아 달라고 의뢰한 것으로 보아 실제로 구매의사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사무실에 돌아오자마자 입수해온 명단에 나와 있는 꽤 많은 업체들 앞으로 편지를 작성했다. 골프용품을 수출하는 회사인데 관심이 있다면 가격과 함께 샘플을 보낼 것이니 연락해 달라는 내용으로 작성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돌아다녔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실제 거래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그쪽에서 먼저 한국의 제조업체를 소개해 달라고 접촉했던 회사들이라 은근히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회신을 보내온 회사는 몇 군데에 지나지 않았다. 내용도 자기네는 골프용품 중에서도 다른 아이템을 취급한다거나, 이미 다른 공장과 거래를 하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 대부분이었고, 그나마 샘플을 보내 보라는 회사가 한 군데 있어 샘플을 보내 보았으나 별다른 성과 없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렇게 바이어를 잡지 못하고 허둥대는 사이에 얼마 남지 않은 퇴직금도 다 쓰고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별 수 없이 오퍼상을 하고 있는 친구에게 그동안 겪었던 일들을 소상히 털어놓고 그의 조언을 구했다. "수입 쪽으로는 전혀 시도를 안 해본 것 같은 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수입은 어쩐지 생소하고, 이왕이면 수출 쪽으로 일하는 것이 나라에 보탬이 될 것 같기도 해서…." "그거야말로 편견이 아닐 수 없네. 생소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수입 업무를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일 텐데, 오히려 서류작성이라든지 대부분의 무역절차를 수출자가 진행하고 수입자는 대금을 지급하고 물건을 찾아서 통관만 하면 되므로 해보면 별 것 아니라는 것을 절감할 걸세.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수출하는 상당수의 전자제품이나 기계류는 외국으로부터 수입된 부품을 사용해서 만드는 것인데 그런 부품들을 어떻게 경쟁적인 가격에 수입하느냐에 따라 해당 수출품의 경쟁력이 좌우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되네. 그리고 아무런 연고가 없이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라면 수입 쪽에 비중을 두고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얘길세."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수출의 경우 유망한 아이템을 잡기가 쉽지 않네. 우리나라의 수출 주력상품은 자동차, 선박, 전자제품 등 주로 덩치 큰 아이템들인데 대부분 대기업들이 생산하는 물건들이라 자체적으로 해외시장을 관리하기 때문에 오퍼상이 중간에 끼여들 여지가 없다네. 자연히 수출오퍼상들은 잡제품이나 아이디어 상품 속에 승부를 걸게 마련인데 잡제품의 경우 우리나라 제품의 품질이나 가격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져서 새로운 바이어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고, 아이디어 상품의 경우 실제 오더로 연결되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어렵사리 시장을 개척해 놓으면 제조업체에서 직접 수출하겠다고 나서는 문제로 해서 지속적인 오더로의 연결이 쉽지 않네. 거래금액도 크지 않고 커미션도 많이 붙일 수 없기 때문에 고생만 하다가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네. 반대로, 수입 쪽은 잡제품의 경우 전체 수입금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낮을뿐더러 아이템의 특성상 대개는 해외 공급업체들과 국내 수입판매업자들이 직접 거래를 하기 때문에 순수한 오퍼상이 개입할 여지가 적고 오히려 중화학제품이나 산업용품처럼 거래규모가 큰 아이템일수록 국내 시장조사라든지 국내 거래처 개발 등을 위해서 에이전트를 통해서 국내시장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네. 이런 아이템일수록 단발성 오더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오더로 연결될 확률이 높아서 오퍼상으로서는 안정적인 일감과 함께 지속적인 수입을 기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일세."
친구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명심하게. 순수한 오퍼상으로서 수월하게 자리를 잡고 큰 돈을 벌려면 수입 쪽에 승부를 걸어야 하네." 나는 곧바로 무역협회의 무역자료실로 향했다. 그동안 주로 수출에 관련된 자료만을 이용했으므로 수입에 관한 자료는 생소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내년부터 문구 수입시장 개방"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눈에 띄었다. 금지되었던 시장이 내년부터 개방된다고 하니, 아직 이를 취급하는 오퍼상이 많지 않을 것 같기도 하여 해볼 만한 아이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급하는 외국업체를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사무실에 돌아온 나는 한국 시장을 관리할 에이전트로 일하고 싶다는 취지의 편지를 작성했다. 편지를 발송하고 나서 한 달이 가까워오자 이곳 저곳에서 답장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보낸 수백 통의 편지 중에 쓸 만한 내용은 영국에서 보내온 것으로 자기네 동남아시아 에이전트가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 있으니 한번 만나보라는 것뿐이었다.
며칠 뒤, 미팅을 갖기로 한 팔레스 호텔로 향했다.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존(John)이라고 합니다. 우리 회사는 영국 굴지의 문구사무용품 제조회사로서 규모도 어마어마할뿐더러 아이템이 수천 가지가 넘습니다. 아직 한국에는 소개된 것이 없으니 관심이 있으면 검토해 보십시오." 그는 회사의 규모 등을 설명하면서 여러 권의 카탈로그를 펼쳐 보았다. "저는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구체적으로 추진 중인 아이템이나 사업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맡겨주신다면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카탈로그를 주고 갈 테니 검토해보시고 한국에서 수입해서 팔 만한 아이템을 선정해서 오더를 발주하면 해당 아이템에 대해서 일정 기간 동안 한국 내 판매 독점권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상당히 합리적인 제안이었다. 나는 제안을 수락하고, 존과 헤어지고 나서 카탈로그 속의 각종 문구사무용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템 가격이 비싸서 한국시장에 진출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나마 일반적인 문구나 사무용품 외에 각종 색연필도 공급하고 있다는 것이 다소 위안이 되었다. 문제는 색연필을 어떤 경로로 들여다 파느냐 하는 것이었다. 고민하던 중에 업종별 전화번호부에 눈이 갔다. 전화번호부를 뒤져서 미술이나 디자인 용품을 취급하는 업체들을 찾아보았다. 화방이라는 업종으로 분류된 곳에 여러 곳의 상호와 함께 전화번호가 인쇄되어 있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전화 다이얼을 돌렸다. 다행히 사장과 직접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일단 샘플을 가지고 한번 들어오라고 했다. 첫 번째 시도치고는 대성공이었다. 나는 즉시 영국 본사에 텔렉스를 보내서 샘플을 보내 달라고 했다.런던에서의 일정을 끝으로 오퍼상으로 독립해서 처음으로 장도에 올랐던 유럽 비즈니스 여행에서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혁혁한 성과를 거두고 돌아가게 되어 가슴이 벅차 올랐다. 이탈리아 미술용품 업체의 동남아시아 전체를 관장하는 에이전트가 되었고, 스위스의 제약업체 사장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았으며, 영국의 문구사무용품 제조업체와 정식 독점계약을 맺었음은 물론 미국 제지업체의 수출사무소장과의 미팅을 통해 인쇄종이 부분에도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잡았으니 그야말로 대성공이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성공적인 출장이었다. 나는 새로운 희망을 안고 업무에 매진할 수 있었다. 새삼스레 앞으로 내 앞에 펼쳐질 미래를 상상해 보았다. 속속 늘어나는 오더와 함께 커미션 수입이 늘어나면 직접 수출입거래를 할 수 있는 무역회사를 설립하고 세계 각국에 지사를 설립해서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무역회사로 성장시킨 다음 거기서 축적한 자본으로 각종 산업에 투자해서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유선그룹을 탄생시킬 것이다. 유선그룹의 총수로서 기업 내부의 모든 부조리와 부정부패를 추방하고 자유롭고 합리적이며, 조직원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는 새로운 경영이념을 도입해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기업으로 키울 것이다.드디어 영국산 색연필에 대한 오더가 확정되었다. 화방에서 수개월에 걸친 시장조사 끝에 오더를 발주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영국 제조업체와는 첫 번째 오더가 발주됨과 동시에 해당 아이템에 대해서 1년간 독점권을 주기로 약속되어 있었기에 자동적으로 내가 한국 독점 에이전트가 되고 오더를 발주한 화방이 독점 수입판매원이 되었다. 처음으로 순수한 오퍼상으로서 영국 업체를 대신해서 오더를 따낸 것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의미 있는 오더가 아닐 수 없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화방에서는 색연필 외에 수입할 만한 아이템과 해외의 제조업체 이름까지 알려주면서 견적을 받아달라고 했다. 확실한 구매 의사를 가진 바이어로부터 견적을 받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으니 오퍼상이 할 일의 반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탈리아의 유화물감을 비롯한 종합 미술용품 업체, 미국의 미술용지 업체 등과 상담이 진행되었고 일부 시험 오더가 발주되기도 했다.
한동안 미술용품의 해외 제조업체를 개발하느라 바쁘게 지내고 있는데 스위스로부터 텔렉스가 날아왔다. 현지 상공회의소에서 발간하는 간행물에 실린 한국에 에이전트가 필요한 회사를 찾는다는 광고를 보고 편지를 보낸 지가 한참 되었는데 답장이 없어 다시 연락했다는 내용이었다. 오래 전에 각국의 상공회의소장 앞으로 서신을 보냈을 때 그 중 한 곳의 상공회의소에서 자기네 회원들에게 배포되는 뉴스레터에 그런 내용의 광고를 게재한 모양이었다. 오래 전의 일이라 기억이 감감해서 파일을 뒤져보니 스위스 회사에서 보내온 편지가 있었다. 내용인즉 자기네는 특수한 제약원료를 공급하는 회사로서 자기네를 대신해서 한국시장을 개발해 줄 에이전트를 찾고 있으니 관심이 있으면 연락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때서야 스위스 회사에서 공급하는 원료를 쓸 만한 제약회사 몇 군데를 접촉해 보았다. 그 결과 그 원료가 국내에서 인기가 높은 약의 필수 원료로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남미와 유럽 등이 주산지이나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주로 홍콩의 무역회사를 통해 수입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나는 즉시 스위스 회사에 답신을 보내서 아이템에 대해서 보다 자세한 정보와 가격 등을 알려 달라고 했다. 바로 다음 날 스위스 회사로부터 해당 아이템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함께 무역거래에 필요한 각종 자료를 받았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판단이 들어 국내에서 해당 원료를 제일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제약회사에 전화를 했다.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샘플을 가지고 들어오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스위스 회사에 샘플을 보내 달라고 했더니 며칠 되지도 않아 국제특송편으로 샘플이 도착하였다. 워낙 귀한 약재라 당시 1kg당 가격이 3만 불에 육박할 정도로 고가여서 샘플이래 봐야 콩알보다 약간 클 정도의 크기였다. 샘플을 들고 제약회사에 들어가니 담당부장은 스위스 회사에서 경쟁적인 가격을 오퍼할 수만 있다면 거래를 해볼 의향이 있음을 비췄다. 예상 외로 큰 성과에 가슴이 두근대기까지 했다. 그 회사 한 군데서만 못 써도 연간 100kg은 쓴다고 하지 않았는가? 100kg이라면 금액이 300만 달러에 커미션으로 3%를 받기로 했으니 9만 달러라는 당시로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어마어마한 거금이 생기는 것이었다.
스위스로부터 부장이 요청했던 답변자료를 받고 보니 더욱 확신이 생겼다. 문제가 되는 품질에 대해서는 만에 하나라도 품질에 이상이 있다고 판명될 때에는 즉시 새 물건으로 대체해 주겠다고 보장했으며, 가격에 대해서는 경쟁력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스위스 회사의 답변자료를 부장에게 설명하니 그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스위스 사람들이라 철저하군. 한두 달 정도 있다가 시험 오더를 발주해 보도록 하겠네." 나는 스위스 회사에 회의 결과를 통보했더니 그들도 놀란 듯이 수고했다는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스위스 회사로부터 독점 에이전트 계약서가 날아왔다. 뜻밖이었지만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그리고 독점 계약서를 받자마자 제약회사로부터 시험 오더가 발주되었다. 그리고 시험 발주한 물품의 품질을 분석한 결과 아무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제약회사에서는 총 물량 25kg, 인보이스 금액 미화 625,000불에 이르는 대형 오더를 발주했다. 나에게 돌아올 커미션만도 18,750불에 이르렀으니 당시 웬만한 회사원의 연봉보다도 훨씬 많은 금액이었다. 이렇게 많은 돈을 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단 한 번의 오더로 벌 수 있다니. 기쁨에 겨워 가슴이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한동안 대형 오더를 수주한 기쁨에 들떠 지내고 있는데 화방 사장으로부터 한 번 나오라는 전갈이 왔다. "실은 내가 도움을 청할 일이 있는데…." "항상 사장님의 도움만 받고 살고 있는데 어떤 부탁을 제가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미술용품 전시회를 참관하고 싶은데 혼자서 엄두가 나야지. 괜찮다면 나와 동행해 주지 않겠나? 내가 자네 출장비까지 대는 것으로 하겠네." 예상치 못한 얘기가 나오자 내가 얼른 말을 막으며 말했다. "그러지 마시고, 출장비를 빌려주시는 것으로 하지요." "정 그렇다면 그렇게 하세." 결국 화방 사장이 비행기표와 호텔을 예약하기로 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왕에 비행기 타고 나갈 거면 그동안 연락을 주고받은 업체들을 직접 방문해서 인사라도 나누는 것이, 비즈니스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화방에 전화를 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일정과 여행코스는 편할 대로 정하라며 선선히 응해주었다. 나는 여행사와의 협의를 걸쳐 서울 - 런던 - 밀라노 - 취리히 - 런던 - 서울로 일정을 확정하였다. 런던에서는 문구사무용품 제조회사를 방문한 다음 미국 제지회사의 수출사무소장을 만나고, 이어 밀라노에 가서 미술용품 전시회를 관람하고 이탈리아 미술용품 공장을 방문한 후, 취리히로 가서 스위스 제약원료 공급업체를 방문하고 런던을 경유해서 돌아오는 것으로, 완벽한 일정이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사우디에서 입국할 때 이후로 처음 타보는 비행기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장 먹고살 걱정만 안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내친 김에 사업을 크게 일으켜서 한국에서 제일가는 무역상이 되고 말겠다는 당찬 청사진을 그려보게 되었다. 활주로를 박차고 하늘로 솟구치는 비행기의 엄청난 추진력처럼 나의 사업도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가자! 기회의 땅, 유럽으로.1993년 10월에 사무실을 이전했다. 집과 사무실이 나뉘어 있다보니 출퇴근에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장기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사무실을 꾸미고 직원도 두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6년간에 걸친 시스템오피스 생활을 청산하고 지하철 역에서 바로 연결되는 새로 지은 오피스텔로 사무실을 옮겼다. 처음으로 독립적인 사무실을 꾸미려니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만 했다. 그런 대로 오퍼상으로 자리를 잡아 갈 무렵 오퍼상이라는 직업에 대해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허구한 날 국내외 거래처 사이에서 고물이나 챙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큰돈을 벌려면 자신이 직접 물건을 사고팔아야 하지 않을까?
한창 그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삼풍백화점에서 전화가 왔다. 11월에 영국 상품전을 열려고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