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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지펀드

다니엘 스트래치맨 지음 | 아침이슬
헤지펀드

다니엘 스트래치맨 지음/박광수 옮김

아침이슬/2003년 3월/264쪽/11,900원



1장 헤지펀드란 무엇인가

헤지펀드의 역사

헤지펀드라는 용어는 알프레드 윈슬로우 존스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 사회학자이자 작가였던 존스는 1949년에 최초의 헤지펀드를 시작했으며, 자신의 투자스타일과 운용, 그리고 조직 구조를 바탕으로 그 용어를 정의하였다. 헤지펀드의 개념과 매니저에게 보상을 주는 방법과 공식 등을 고안한 사람이 누구인가에 관해서는 의견이 다를 수도 있지만 헤지펀드의 역사와 헤지펀드가 어디서 나왔는지를 따질 때 사람들은 항상 알프레드 윈슬로우 존스를 생각한다.

존스가 그의 펀드 A.W.Jones & Co.를 시작한 이래 헤지펀드 업계는 상당히 많이 변화했는데 가장 중요한 변화는 그가 창조한 헤지펀드에 대한 정의이다. 존스는 헤지펀드란 제너럴 파트너(펀드매니저)에게 유한책임의 파트너의 돈으로 번 이익에 대한 지분을 주도록 짜여진 합병회사(유한책임의 파트너십)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한 헤지펀드는 항상 레버리지를 사용하고 항상 일정한 숏포지션을 수반한다. 존스는 그의 투자기관을 ‘헤지된 펀드(hedged fund)'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롱포지션과 숏포지션을 결합하여 시장의 변동으로부터 보호되는 헤지된 펀드라는 의미이다. 월스트리트의 큰 기관들이 ’d‘를 떼고 쓰는 관행에 따라 ’헤지펀드(hedge fund)‘가 된 것이다.

이익을 나누는 방법은 헤지펀드의 수수료 체계에서 정의된다. 존스의 시나리오 하에서 매니저는 포트폴리오 이익의 20%를 받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그들은 승리자가 되어야 할 강력한 동기를 가지고 있다.

최근 헤지펀드 매니저는 20%의 성과보수에 1~1.5%의 관리보수를 추가했다. 수수료를 추가하는 것을 누가 처음 시작했는지는 불명확하나 이는 곧 월스트리트의 관행이 되어 다른 사람들도 관리보수를 추가했다. 이 수수료는 기본적으로 매니저에게 약간의 봉급을 줄 뿐 아니라 펀드 운용 유지비를 충당하는 데 사용된다. 하지만 존스의 회사는 파트너에게 관리보수를 부과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 존스의 모델은 상승장과 하락장 모두에 작동하였으며, 그렇게 되도록 구성되었다. 20년 동안의 운용기간에도 그 시스템은 잘 작동했으므로 존스의 펀드는 결코 연간 손실을 내지 않았다. 손실을 낸 것은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의 하락장에서였다.

헤지펀드 산업은 너무나 크게, 너무나 빨리 성장해왔다. 실제로 많은 뮤추얼펀드매니저와 트레이더, 애널리스트가 자신의 헤지펀드를 시작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이 헤지펀드라고 부르는 회사를 세우고 그 업계에 있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헤지펀드 매니저라고 자칭하지만 실제로는 아니라는 점이다. 자칭 헤지펀드라고 하면서 헤지하지 않는 회사들은 매우 비싼 뮤추얼펀드에 불과하다.

많은 매니저들은 아직도 레버리지를 사용하고 상승장-하락장 모두에서 리스크를 제한하면서 수익을 극대화하도록 롱-숏 포지션을 가지는 전통적인 존스의 모델을 따르고 있다.

헤지펀드 산업의 창시자, 알프레드 윈슬로우 존스

1949년 알프레드 윈슬로우 존스는 이후에 ‘헤지펀드’라고 알려지게 된 것을 처음 시작하였다. 그의 기본적인 투자전략은 시장이 그에게 불리하게 바뀔 때 리스크를 헤지하기 위해서 롱-숏을 레버리지와 결합하여 사용한다는 것이다. 존스는 월스트리트의 위대한 트레이더 및 브로커들의 방법을 배우면서 당시에는 극히 적은 사람들만이 하던 헤징(hedging)이라는 개념에 기초해서 투자한다는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고안하였다. 마침내 그는 49세의 나이에 3명의 파트너와 함께 헤지펀드를 출범시켰다.

“많은 시장 애널리스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관심은 시장의 내부적인 특성이고, 그들은 하락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예측력을 얻기 위해서 그들은 매일매일 주식시장 자체가 만들어내는 통계자료를 연구한다. 정교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새로 구성되고 해석된 이런 데이터들은 20개의 주식시장 서비스만큼 많이 팔리고 있고, 수백 수천 명의 개인들이 독자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증권사는 이들 데이터를 엄청나게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자료의 사용자들이 자료를 신뢰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영업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펀드에 대한 존스의 모델은 매우 단순한 공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마켓타이밍보다는 주식선택에 집중하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레버리지와 숏세일(공매)을 사용했다.

헤지펀드를 발전시키는 것 이외에 존스의 조직은 브로커가 아이디어를 주는 것에 대한 보상기법을 완성시켰다. 그 회사가 노이버거 베르만 증권사를 통해 주문의 대부분을 실행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디어를 내는 브로커에게는 보상을 했다. 브로커가 존스 회사의 매니저에게 전화를 해서 만약 그 아이디어를 매니저가 사용한다면 그 주문이 어디서 실행되든 관계없이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브로커들은 알았다.

“우리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우리 회사를 위해 일하느냐에 관계없이 그에게 수수료의 절반을 주곤 했다. 그 당시는 그 교환에 대한 대가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의심도 없이 그렇게 했고, 그것은 그들에게 완전히 정당한 것이었다.”

존스 조직의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을 해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만약 매니저의 성과가 나쁘다면 그는 단지 관리할 돈을 더 주지 않고 서서히 자금을 빼냄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했다. 그러면 결국 그 매니저는 떠나야만 했다.

존스는 헤지펀드의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1. 항상 숏을 쳐야 한다.

2. 항상 레버리지를 사용한다

3. 매니저는 모든 이익의 20%를 수수료로 받는다.



존스는 공격적으로 매수할 주식을 골라내고, 또한 숏으로 시장의 변동을 중립화시킴으로써 리스크를 감소시키는 반면, 엄청난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존스의 펀드는 항상 시장의 하락에 대응하여 헤지를 할 수 있도록 많은 숏포지션을 유지했고, 그것은 하락 위험을 어느 정도 막아 주었다. 그 펀드의 과거 실적자료를 완벽하게 계산하는 것은 펀드의 운영과 투자자의 비밀에 해당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1977년까지 헤지펀드 업계는 20억 달러가 넘는 데서 대략 2억 5천만 달러로 자산규모가 급감하였으며, 업계의 많은 사람들이 헤지펀드라는 개념은 낡은 것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시장과 관련된 모든 일들처럼 헤지펀드는 매우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그러나 사이클은 곧 호전되었다.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에 이르러 헤지펀드 업계는 바닥을 쳤지만 1990년대에 헤지펀드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오늘날 주식의 롱과 숏의 결합은 월스트리트의 생초보들도 잘 알고 있는 개념이지만 30년 전에는 매우 생소한 개념이었다.



2장 헤지펀드는 어떻게 운용되는가

헤지펀드의 설립

돈이 필요한 사람은 헤지펀드를 쉽게 시작할 수 있다. 지금 한창 떠오르는 매니저는 헤지펀드를 세우기 위해 초기 자본과 법적인 요건을 충족시키는 데 1만 5천 달러에서 3만 5천 달러 사이의 돈이 필요하다. 과거 몇 년 동안 이루어진 기술의 발달 덕분에 전화 수화기를 드는 것만큼이나 손쉽게 투자 아이디어를 모으는 것이 가능해졌다.

“나는 이제 내가 투자하려는 지역에 있을 필요도 없으며, 회계 보고나 브로커 업무에 대해 걱정할 필요도 없다. 내게 필요한 기본적인 정보의 대부분은 블룸버그나 웹 사로 연결된 PC로부터 그야말로 클릭만 하면 쉽게 얻을 수 있다. 발달된 기술로 인해 헤지펀드의 설립은 훨씬 더 수월해졌으며, 투자과정은 관리하기가 훨씬 더 용이해졌다. 과거에 비해 훨씬 더 빨리 더 많은 투자 기업을 직접 조사할 수 있게 되었다.” 기업을 직접 조사하는 것은 오늘날의 열성적인 매니저가 자신의 투자 아이디어를 실현시킬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헤지펀드 매니저와 헤지펀드에 대한 서비스 제공자들이 과거 몇 년 동안 급속하게 성장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기관투자업계 전체와 비교하면 그 규모는 작다.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매니저, 변호사, 브로커를 포함해서 헤지펀드 업계의 종사자들은 대부분 서로서로 알고 지낸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몇 십 년 동안 헤지펀드 업계의 최선봉에 있었던 많은 유명인사들이 이제는 서서히 물러나고 그 자리에 자식들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서서히 헤지펀드 업계의 창시자들은 다음 세대에게 바통을 넘겨주고 있으며, 젊은 세대들은 의심할 바 없이 부모가 만들어놓은 유산을 계승하기 위해 매우 열심히 일할 것이다.

헤지펀드 산업의 기하학적인 증가에 매료된 많은 서비스 제공자들은 그들의 조직을 펀드 매니저들의 필요조건 모두를 충족할 수 있는 원스톱 쇼핑 장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영업하고 있다. 프라임 브로커들은 제3차 마케팅 전문회사, 회계사 및 변호사와 팀을 이루어 말한다. 물론 각각의 서비스에는 수수료가 부과된다.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사람들은 독특하고 더 큰 수익을 줄 투자기회를 찾고 있다. 헤지펀드는 수익을 증대시키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수단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투자자와 매니저 모두에게 매우 매력적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이루어진 많은 연구에 따르면 헤지펀드는 평균적으로 S&P 500이나 다른 벤치마크 수익률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냈다. 지속적으로 시장을 능가하는 이런 능력은 더 높은 수익을 추구하면서도 높은 수익에 수반되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잠재적 개인투자가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반면 시장을 이기는 헤지펀드의 능력은 과장되었다고 믿는 반대자들도 아직 있다. 종종 헤지펀드 업계의 베테랑은 헤지펀드를 둘러싸고 있는 열광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며, 오늘날의 많은 매니저들은 하락장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기도 하다.

헤지펀드에는 돈, 변호사, 회계사, 프라임 브로커라는 필수적인 네 가지 퍼즐조각이 필요하다. 일단 변호사를 찾고 나면 다음 단계는 대개 프라임 브로커이다. 프라임 브로커는 사무실 관리자, 후선 지원부서, 체결 사무원 등과 같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회계사는 출발할 때는 최소한의 요건밖에 되지 않지만 첫해가 지나 가장 중요한 마케팅 수단이 되는 과거 실적을 공인하는 단계에서는 가장 중요한 부문이 된다. 회계사가 그것을 모두 공인하기 때문이다. 돈은 생각 외로 별로 중요하지 않다.

헤지펀드 사업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비용은 펀드를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이다. 관리비용은 데이터서비스 비용과 체결비용부터 렌트비, 전화사용료까지도 포함된다. 새로 시작한 펀드매니저들은 이런 서비스 모두를 하나의 패키지로 제공하는 프라임 브로커와 일함으로써 이 비용을 낮추려고 한다. 일단 펀드가 세워지고 운용되면 많은 매니저들은 정성을 들여 사무실 집기들을 갖추고, 운용사를 관리할 커다란 조직을 만드는 경향이 있다.

프라임 브로커 서비스는 헤지펀드 운용 중에서 아주 세련된 분야 중 하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비즈니스와 마찬가지로 현실적으로 헤지펀드 운용의 기본은 매우 간단하다. 대부분의 경우에 프라임 브로커 서비스에는 세 가지 측면이 있는데 마케팅과 자본 모집, 법적․회계적인 일, 투자와 트레이딩 등이다. 대부분의 매니저들은 처음 두 가지에는 별로 관여하지 않으려 하므로 외부에 그 업무를 위탁하게 된다. 지난 몇 년 동안 매니저들은 회사 내에서 자체적으로 업무를 시행할 때 드는 비용의 일부만 들이면 아웃소싱을 통해 그들의 거래를 실행시키고 법적인 업무와 회계적인 기능이 수행되게끔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날의 경쟁적인 시장환경 하에서 생존의 핵심은 투자자를 모으고 유지하는 능력이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매니저는 분기별로 견실한 수익을 올려야만 하고 마케팅 담당자들은 투자자가 될 만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외부투자자와는 상관없이 처음 시작하는 펀드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매니저 자신이 넣는 투자액이다. 기존의 펀드들도 만약 매니저가 그 펀드에 상당한 지분을 가지지 않는다면 돈을 모으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누구도 매니저와 같이 투자하기를 강요받지는 않는다. 개인이나 기관 모두 자신의 선택이다. 모든 경우에 투자적격심사를 하는 것과 매니저의 투자철학과 기준이 자신의 투자목표와 꼭 맞는지 결정하는 것은 투자자에게 달려 있다.

조지 소로스-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투자자

전 세계의 재무장관들이 어떠한 연유로 헤지펀드가 비난을 받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헤지펀드에 대한 나쁜 감정이 언제 어디서 생겼는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가장 유력한 가정은 1992년 영국 파운드화의 평가절하 과정에서 생겼다는 것이다. 조지 소로스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두려운 투자자로 알려지게 된 것이 바로 이 사건 이후이다. 소로스의 성공으로 그의 펀드는 9억 8천 5백만 달러를 벌었다. 그것은 정말 믿을 수 없는 배팅이었고, 그를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투자자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상황을 논의할 때 간과하는 점은 그 배팅에 관련된 리스크의 크기이다. 소로스가 거래를 착수하던 당시 그는 100억 달러 이상의 돈을 위험포지션에 두었다. 만약 실패하였다면 그는 아마 완전히 파산해버렸을 것이다. 소로스는 회사 전체를 배팅하였고, 그가 승리하였던 것이다.

그 이야기는 영국이 새로운 유럽통화시스템에 가입하기로 결정했던 1990년에 시작된다. 당시 소로스는 영국의 경제가 통일된 독일만큼 강하지 못하고 따라서 보호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좋은 정책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유럽통화제도 협정 하에서는 영국은 환율을 1마르크 당 2.95 파운드로 유지해야 했다. 경제가 계속 악화됨에 따라 파운드는 상승 압력을 받게 되었으나 협정 때문에 영국은 움직일 수 없었다. 1992년 여름 내내 존 메이저 총리의 토리 행정부는 세계에 파운드가 회복될 것이며, 평가절하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신시켰다.

9월 중순에 내부의 경제적인 압력 증가에 직면하던 이탈리아가 협정의 가이드라인 내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리라를 평가절하 하였다. 이것은 유럽통화시스템이 환율을 결정할 능력을 상실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탈리아의 행동은 조지 소로스라는 이름을 전 세계 방방곡곡에 알리는 거래를 착수하게 하였다.

1992년 9월 15일 메이저 정부는 영국은 유럽환율 메커니즘을 탈퇴하고 파운드를 절하한다고 발표했고, 그 뉴스는 전 세계 외환시장을 뒤흔들었다. 트레이더들은 포지션을 커버하여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어다녔다. 그러나 한 명의 트레이더들은 웃으면서 은행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 발표 이전 소로스는 백억 달러에 달하는 파운드화를 팔았다. 그 뉴스가 나왔을 때 소로스의 헤지펀드는 거의 10억 달러에 달하는 이익을 올렸다. 단 한 번의 거래, 단 한 사람, 단 하나의 헤지펀드로 말이다. 그후 세계는 헤지펀드나 조지 소로스를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다. 지금 세계는 과거에는 모호하였던 이러한 투자기관을 마이더스의 손을 가진 트레이더가 있는 상당한 세력으로 보고 있다.



3장 헤지펀드매니저와 운용스타일

스티브 왓슨

왓슨 인베스트먼트 파트너의 스티브 왓슨은 전 재산이 자신의 헤지펀드에 묶여 있다. 그의 펀드는 소형주에 투자함으로써 나스닥 지수를 이긴다는 단 하나의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일이 상당히 순조로웠다. 출발 3년 동안 나스닥이 1.45% 오른 데 반하여 왓슨의 펀드는 복리수익률로 12.5%를 달성했다. 1998년 말에는 37%의 수익률을 보였는데 이는 같은 기간 러셀 2000 지수가 2.55% 하락한 데 비하면 놀라운 수익률이었다. 1999년 3분기까지 왓슨은 29.26%의 수익을 냈고, 러셀 2000 지수는 1.3% 오르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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