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치킨의 탄생
스티브 로빈슨 지음 | 이콘
위대한 치킨의 탄생
스티븐 로빈슨 지음
이콘 / 2023년 8월 / 400쪽 / 19,800원
들어가며나는 미국의 테크기업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놀이공원 식스플래그스오버조지아(SFOG)를 거쳐 칙필레에 둥지를 틀었다. 칙필레에 합류한 초창기 시절 나의 직업관은 고정관념에 갇혀 있었다. 조직에 성공적으로 봉사할 수 있는 내 능력이 영리하고 혁신적인 마케팅, 브랜드 전략, 프로그램 등에 크게 좌우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무용지물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당연하지만 그런 것들은 내가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어준 요소들이었다. 다만,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디어와 실행을 보완하는, 심지어는 그것들보다 더 우선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바로 조직 문화였다. 오늘날의 칙필레는 업계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었다. 칙필레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했던 전략과 사업 아이디어는 트루엣 캐시가 창조한 문화에서 잉태되었고 칙필레의 브랜드 본질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그것은 ‘탁월함이 고귀함과 만나는 곳’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하나님이 내 삶과 커리어, 그리고 칙필레에 베풀어주신 은혜에 경의를 표하고 영광을 돌리고 싶다. 칙필레의 문화는 위대한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그런 문화에서 칙필레에게, 매장 운영자에게, 트루엣 캐시에게 봉사하는 것은 정말이지 특권이었다. 나는 내게 그런 특권이 주어진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아울러 나는 그 여정에서 칙필레 문화가 내게 얼마나 귀중한 선물을 주었는지도 깨달았다. 나의 직업적 성장만이 아니라, 나의 개인적이고 영적인 성장을 촉진하는 비옥한 토양이 되어주었다. 이 책은 그런 나의 발견과 여정에 관한 이야기다.
브랜드의 탄생위대한 브랜드를 만드는 비결은 무엇일까? 미국의 ‘국민 치킨’이자 치킨샌드위치의 대명사 칙필레(Chick-fil-A)에서 성공 법칙 하나를 유추해볼 수 있다. 위대한 브랜드는 위대한 문화를 자양분으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나는 칙필레에서 35년 가까이 CMO로 일하면서 위대한 문화적 토양의 진가를 보고 듣고 느꼈다. 참고로 창업자인 트루엣 캐시는 두 가지 진실한 바람이 있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첫째였고, 칙필레를 통해 관계를 맺는 모든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그 다음 소망이었다. 말인즉 제품과 수익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언제나 우선했다.
1946년 조지아주 애틀랜타 외곽에서 드워프그릴로 요식업에 뛰어든 캐시가 2014년 세상을 떠났을 때, 칙필레의 매장 수는 1887개로 늘었고 총매출은 57억 달러에 이르렀다. 그의 사후 2년간에도 매출은 해마다 10억 달러씩 증가했고, 구성원들은 그가 구축한 문화 속에서 번성했다. 그리고 그의 문화적 유산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오늘날 미국 전역의 칙필레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을 합치면 10만 명에 육박하고, 일요일은 문을 닫는데도 하루 평균 300만 명, 연간 11억 명이 칙필레를 찾는다. 칙필레라는 브랜드의 기본 골격은 ‘목적 선언문’에서 시작한다. 칙필레의 경영진은 오랜 시간에 걸쳐 사내 의사결정과정을 규정하는 기본 원칙을 확립했는데, 칙필레 문화의 구성 요소들로 뿌리내린 이 원칙들이 칙필레 브랜드의 기본 골격이 되었다. 그렇다면 목적 선언문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다음과 같은데, 두 마디로 요약하면 청지기적 사명이다. ‘우리의 목적은 우리에게 맡겨진 모든 일을 완수하는 충직한 청지기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칙필레와 관계를 맺는 모든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칙필레의 ‘왜’, 즉 존재 이유다. 심지어 이 경영이념은 칙필레와 관련 있는 상징적인 어떤 시각적 장치에도 구현되었는데, 바로 만인의 사랑을 받는 칙필레의 마스코트 ‘젖소’다.
예전에 마케팅 컨설턴트로 칙필레와 인연을 맺은 앨프 누시포라는 이 젖소 캠페인이 칙필레가 어떤 회사인지 엿볼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그는 결정이든 방향이든 일단 정해진 다음에는 고집스럽게 밀고 가는 뚝심을 칙필레의 강점 중 하나로 꼽으며 말했다. “기업 목적과 운영자 개념에서 보듯 칙필레는 흔들리지도 변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뚝심은 신선하고, 마케팅 관점에서 보면 매우 귀중한 자산일 수 있죠. 대표적인 경우가 젖소 캠페인입니다. 칙필레는 젖소 캠페인을 미화하거나 변형시키거나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물론이고, 그것에 모순되는 무언가를 하고픈 충동까지 이겨냈습니다.” 한편 칙필레는 주인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가맹점주 또는 가맹점 사업자 대신에 ‘운영자’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아무튼 칙필레는 청지기 정신에 입각한 기업 목적에 문화의 토대를 두고 성장했고, 이것은 브랜드 구축에 재량권을 가져다주었다. 브랜드 구축을 위해 따로 혁신적 전략을 모색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치킨전문점이 젖소를 전면에 내세운 파격적인 캠페인을 전개하고, 대학미식축구 행사를 후원하며, 그릴에 구운 치킨샌드위치를 출시한 것을 전략적 돌파구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에게는 그런 활동이 단순한 전략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진정한 변화는 샌드위치에 주력하는 프랜차이즈업체에서 벗어나 고객에게 경험을 제공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것이었다. 칙필레에서 그런 변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가족적인 분위기를 접목시킨 캐시의 친절한 고객 응대 철학과 고객충성도와 만족에 방점을 두는 관계 마케팅(Relational Marketing)을 패스트푸드업체에서 구현하는 방법을 우리가 이해한 덕분이다. 칙필레의 기업사명은 이런 이해에 바탕을 두었다. “고객이 이야기하고 싶은 브랜드가 되라” 우리의 목표는 고객 모두에게 자랑하고 싶은 브랜드 경험과 평균을 뛰어넘는 긍정적 인상을 주는 것이었기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명백했다.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싶은 경험을 창조하자.
이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3가지에 집중하는 ‘광팬 전략’을 수립했다. 먼저 ‘운영 탁월성’을 구현했고, ‘정서적 연결감’을 생성시키는 마케팅 기법을 도입했다. 또한 “1마일을 가자는 이에게 2마일을 함께 가라”는 성경 구절에서 영감을 얻은 ‘2마일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이는 고객이 1마일 수준의 서비스를 기대한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 2마일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뜻이었다. 이것들은 상위 개념인 칙필레의 전사적 운영전략을 떠받치는 핵심적인 하위 전략들로 목적은 하나다. 바로 운영자가 칙필레 브랜드를 마음껏 표현하고 구축하는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자인데, 이는 패스트푸드업계에서는 유일한 접근법으로 깊이 새겨들을 가치가 있다. 최일선에서 고객을 만나는 칙필레의 매장 운영자야말로 브랜드를 대표하는 얼굴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요컨대 오직 운영자만이 완전한 광팬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참고로 보통의 요식업체는 고객을 점포로 끌어들이는 수단으로 마케팅과 광고에 의존하는 반면, 칙필레는 운영자와 그들이 채용한 매장 직원을 앞세워 고객을 유인한다. 쉽게 말해 타 브랜드는 호객하지만, 칙필레는 고객을 유인한다. 캐시는 이런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여타 프랜차이즈와 확연히 구분되는 독특한 매장 재무 모델을 확립했다. 초기 비용을 현저히 낮춰 본사나 회사 소유주보다 매장을 경영하는 운영자에게 훨씬 유리한 재무 모델이었다(트루엣 캐시를 비롯해 창업주 일가는 하나님이 칙필레의 소유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법적으로 보면 예전에는 트루엣 캐시가, 오늘날에는 창업주 일가가 칙필레의 소유자다). 그리고 이 재무 모델은 정확히 캐시가 의도한 힘을 발휘한다. 고객을 진심으로 환대하고 문화를 구축하는 리더를 유인하는 것이다.
칙필레라는 브랜드의 거의 모든 측면은 트루엣 캐시의 따뜻한 진심에 뿌리를 둔다. 내가 아는 한 겸손함과 관대함, 그리고 현명함에서는 그를 따를 자가 없다. 이것이 칙필레 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이 문화는 칙필레가 번성하는 비옥한 토양이 된다. 캐시는 다수의 브랜드 전문가조차 수년에 걸쳐서야 배우고 깨치는 무언가를 직관적으로 알았다. 그것은 브랜드를 구성하는 3대 요소가 장기적으로 꽃피울 토대를 놓는 브랜드가 성공한다는 사실이다. 참고로 브랜드를 구성하는 3대 요소는 사람들과의 관계(Relationship), 경쟁자와 차별화되는 연관성(Relevance), 그리고 평판(Reputation)이다.
젖소를 타고 전국적인 브랜드가 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다1990년대 초 칙필레의 매장은 전국으로 퍼져나갔으며 500호 매장을 목전에 두고 있었지만, 우리의 마케팅 노력은 여전히 개별적인 매장과 각각의 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묻기 시작했다. “언제쯤이면 운영자와 시장을 지원하는 것을 넘어 칙필레를 지역적인 브랜드로, 그런 다음 전국적인 브랜드로 만드는 일을 시작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그 시점을 35번째 주에 매장을 오픈할 때로 정했고, 1990년 중반 정도면 35개 주에서 칙필레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한편 우리는 지역적인 마케팅과 전국적인 마케팅을 구상할 때조차 우리 한계를 잘 알았다. 그것은 전사적 매출과 광고비 지출 사이에 정비례 선형 관계를 구축할 만큼 충분한 광고비를 절대 투자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어차피 매출과 광고비 투자를 직결시키는 것은 거래 중심형 전략으로 우리와는 맞지도 않았다. 오히려 우리로서는 칙필레의 최초 상기 인지도(Top-of-Mind Awareness)를 쌓는 데 도움이 되는 독특한 성격을 창조함으로써 브랜드를 구축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지난 19년간 칙필레는 고객 입장에서 궁극적인 목적지, 즉 쇼핑몰의 일부였고 포로 청중 환경의 수혜자였다. 반면 독립 매장은 마케팅 관점에서 새로운 도전을 야기했다. 1986년 최초로 가두 매장을 시작했을 때 두 가지 문제가 전면으로 부상했다. 하나는 브랜드 인지도였고, 다른 하나는 우리 브랜드가 지지하는 가치가 무엇인가였다. 각 매장이 매출을 증대하도록 도와주는 일에 계속 매진해야 하는 것은 타협의 여지가 없는 필요였다. 동시에 우리는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브랜드에 투자해야 했다. 이처럼 마케팅 노선에 변화를 꾀하는 조직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모두에게 재미있는 경험이면서도 벅찬 도전이기도 했다. 매출 증대라는 단기목표와 브랜드 인지도 구축이라는 장기목표 사이에는 생산적인 긴장이 조성되기 마련이다. 그런 긴장의 땅에 발을 들인 이상 슬기롭게 헤쳐 나아가야 했다.
한편 우리가 이제까지 손잡았던 광고대행사는 쇼핑몰에 특화된 마케팅활동에 집중했다. 다시 말해, 소매 상품화 계획에서 역할을 훌륭히 완수했고 효과적인 매장 홍보물, 메뉴판을 개발했다. 하지만 매장 내부에서 벗어나 옥외 광고판과 라디오에 마케팅을 집중함에 따라 그런 마케팅활동이 고객의 기억에 충분히 각인되는지가 의심스러웠다. 이제는 샌드위치만 전면에 내세우는 광고에서 탈피할 때가 되었다. 우리는 칙필레 자체를 최종 목적지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게 만드는 차별화된 광고가 필요했다. 그런데 그런 광고가 어떤 건지는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히 알았다. 단순 음식 사진을 보여주는 것으로는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마침내 몇몇 도시에서 독립 매장이 충분히 많아졌을 때 우리는 공격적인 광고를 시험해보기로 결정했다. 1993년에 앞에서 소개했던 마케팅 컨설턴트 앨프 누시포라를 고용했고, 그에게서 두 가지 역할을 기대했다. 첫째는 우리가 미래의 광고와 크리에이티브의 밑그림을 그리도록 그가 도와주는 것이었다. 또한 우리가 적절한 마케팅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그가 힘이 되어주기를 기대했다.
우리는 누시포라와 회의를 진행한 끝에 ‘1999년 시장 모델’을 탄생시켰다. 먼저, 애틀랜타에 독립 매장 100개와 쇼핑몰에 입점한 매장 10개가 위치한다고 가정한 모의실험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앨라배마주 버밍햄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컬럼비아에도 인구 대비 비슷한 수의 매장이 침투한다고 예상했다. 마지막으로 그런 수치를 바탕으로 그들 세 도시에서 전개할 마케팅과 광고 전략을 수립했다. 계획을 수립했으니 이제는 계획의 유효성을 검증할 차례였다. 아울러 우리가 그 계획을 성공적으로 구현할 역량을 갖췄는지도 시험해야 했다. 이에 우리는 그들 도시에서 2년간 진행할 마케팅과 광고 캠페인을 출범시켰다.
이후 우리가 창조성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어느 아침 댄 캐시가 데이비드 샐리어스와 광고책임자 그레그 잉그럼에게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우리는 어째서 더 나은 광고를 만들지 못하는 거죠?” 아무도 그의 말에 대꾸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유구무언이었다. 당시 칙필레의 현실을 전체 역사의 관점에서 반추해볼 필요가 있는데, 그때까지도 칙필레의 전략적인 우선순위는 운영에 집중되었고 마케팅은 뒷전으로 밀려 있었다. 질책인지 한탄인지 헷갈리는 댄 캐시의 질문에 대해 샐리어스가 정공법을 택했다. “위대한 크리에이티브를 원한다면 초일류 크리에이티브회사를 고용해야 합니다.” 샐리어스가 에둘러 말했지만 탁 까놓자면 “일단 돈부터 내놓으시지!”라는 뜻이었다. 이에 댄 캐시 역시 단도직입으로 말했다. “자네가 그런 대행사를 찾아오시게. 돈은 우리가 만들어올 테니.”
마케팅의 2막이 오르다그렇게 되어 우리는 초일류 크리에이티브회사를 찾기 시작했고, 10개 대행사로 압축해서 그들에게 광고기획안에 관한 상세한 정보와 크리에이티브 샘플을 요청했다. 샘플은 옥외 광고, 라디오 광고에 초점을 맞춰달라고 요구했다. 또 그들로부터 받은 광고기획안을 토대로 잉그럼과 샐리어스는 텍사스주 댈러스에 위치한 더리처즈그룹(TRG)을 포함해 최종 후보 세 곳을 선정했다. 그런데 최종 후보 중에서 TRG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잉그럼과 샐리어스는 TRG 사람들과 상당한 시간을 함께했는데도 단기적인 문화의 증거는 하나도 보지 못했다. 솔직히 그들은 그 회사에서 정반대를 보았다. 창업자이자 CEO 스탠 리처즈의 직원 채용 기준도 트루엣 캐시와 같았다. 오랫동안 함께 일할 수 있는 ‘식구’를 뽑았다. 그리고 칙필레에서처럼 이직률이 극히 낮았다. 우리가 TRG를 선택한 것은 그들이 1차 발표에서 보여준 크리에이티브만을 근거로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우리에게는 결정적 요소가 따로 있었다. 우리 광고의 최종 책임자가 누구인가였다. 그날 참석했던 스탠 리처즈는 자신이 모든 것을 챙기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칙필레와 관련된 크리에이티브의 모든 측면에 직접 관여하겠다는 약속이었다. 그것은 훨씬 대단한 일이었다.
젖소가 외친다, “닥고기 마니 머거”광고기획안 발표 당시 TRG팀은 칙필레에 4개의 입체 광고판을 포함해 총 12가지 광고판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가장 재미있던 아이디어는 “칙필레가 아니라면 그냥 뻥이야(If it’s not Chick-fil-A, it’s a joke)”라는 문구가 써진 약 15미터 너비의 광고판에 부착된 거대한 입체 고무닭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칙필레의 첫 번째 입체 광고로 골랐고 댈러스의 가로지르는 주요 간선도로에 그 광고판을 세웠다. 처음에는 고무닭만 설치했다. 광고 문구도 로고도 없었다. 그런데 그곳을 지나가던 수만 명의 사람들이 그 닭을 보고 미소 지었으며 도대체 무슨 광고인지 궁금해 했다. 그런 다음 그 광고판을 소개하는 매체가 급격히 늘어났다. 이제 우리는 광고 문구와 로고를 추가해 사람들의 호기심을 풀어주었고, 우리 광고판은 댈러스 시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러자 칙필레 운영자들이 그 닭과 문구가 인쇄된 티셔츠를 제작해 판매했는데, 그 티셔츠까지 매진되자 우리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두 번째 입체 광고판은 애틀랜타에 등장했다. 자동차 2대가 광고판을 뚫고 통과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림과 인근 칙필레 매장의 2차선 드라이브스루를 홍보하는 문구를 실은 광고판이었다. 이 광고판은 ‘자리 덕’을 톡톡히 보았다. 75번 주간고속도로에서 아주 잘 보여 결과적으로 입소문을 유발시킨 것이다. 당시 그 광고판 아래에 위치한 매장을 운영했던 제이슨 빌로티는 고객들이 매장 주차장에서 광고판 사진을 찍던 모습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런 다음 댄 캐시도 드디어 염원 하나를 풀었다. 코카콜라 사장에게서 드라이브스루 광고판을 축하하는 서한을 받은 것이다. 마치 일전에 그가 아무도 칙필레의 광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한탄하던 것에 대한 반응 같았다. 아니, 코카콜라 사장만이 아니라 댈러스에 이어 애틀랜타도 칙필레 광고판 하나에 관한 이야기로 뜨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