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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이 찾아오는 세일즈 브랜딩 법칙

유은지 지음 | 이새


고객이 찾아오는 세일즈 브랜딩 법칙

유은지 지음

이새 / 2023년 6월 / 288쪽 / 18,000원





돈도 인맥도 없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하지?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것들


학창시절 공부엔 젬병이었다. 차라리 일찍 취직해 사회에 발 들이는 게 낫겠다 싶어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취업했다. 첫 직장은 안산에 있던 ○○ 전자. 월급은 그 나이에 받기엔 많은 것 같았다. 스무 살부터 내 힘으로 돈을 벌고 살아간다니! 자부심이 생겼다. 계약직이었던 나는 정직원이 되기 위해 애썼다. 일찍 출근해 사무실 문을 열고 잔업이 있으면 일이 다 끝날 때까지 붙들고 앉아 마무리했다. 결국 나는 동료들보다 일찍 정규직으로 발령받았다. 급여가 오르자 꼬박꼬박 적금을 불리는 재미도 덩달아 커졌다. 친구들이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고 풋풋한 연애에 빠져들 무렵, 나는 공장과 사무실에서 종일 돌아가는 기계처럼 살았다.

사실 그렇게 쭉 살아도 괜찮겠다 싶을 만큼 만족스러운 생활이었는데, 입사한 지 2년 만에 회사가 부도로 무너졌다. 유령처럼 사라질 회사에서 나의 미래를 꿈꾸었다니! 억울했지만 어디에다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당장 급여가 들어오질 않으니 모아둔 돈이 순식간에 줄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린 듯 절망감에 휩싸였다. 회사는 내 앞날을 보장해줄 수 없구나,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새로운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두려움에 몸서리가 났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좌절하고만 있을 순 없었다.

이후 애견미용실과 의상모델을 거쳐 헤어디자이너를 목표로 설정하고 미용사 스태프로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일하던 미용실이 파리만 날리다가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기술도 답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을 해야 평생 소득을 창출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물음표가 꼬리를 물고 늘어질 때 아버지로부터 뜻밖의 말을 들었다. “영업을 해보는 건 어떻겠니?” 당시 아버지는 중고차 관련 일을 하고 있었다. 영업이라…. 진입 장벽이 낮으니 시작하기가 어렵지 않고,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는 내게도 잘 맞으니 도전할 만했다. 마침내 ‘영업’이라는 신세계에 마음이 도달하던 순간이었다.

“다음엔 제가 일등 할게요!”


아버지의 권유로 자동차 캐피털 대리점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캐피털’이란 중고차 할부 구매 서비스를 판매하는 일을 말한다. 하지만 캐피털 영업은 돈은 벌지언정 큰 보람이 없어 계속하고 싶지 않았다. ‘중고차 영업을 해보면 어떨까? 그 일은 어떻게 하는 거지?’ 주변 딜러들을 살펴보니 나처럼 조직에 속한 노동자가 아니라 일인 기업가가 대부분이었다. 도전해보고 싶었다. 월급 사슬에서 벗어나 짊어진 책임이 무거운 만큼 성장의 기회 또한 무궁무진하지 않을까?

<교차로>의 구직 광고를 뒤져 중고차 매매상사 면접을 보았다. 캐피털 영업이 영 쓸모없는 경험은 아니었는지 수월하게 합격해 중고차 매매상사의 영업사원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포부는 컸고 열정도 뜨거웠지만 어떻게 영업해 누구한테 차량을 팔아야 할지 막막했다. 주변 딜러들은 전화통에 불이 났고, 그 와중에도 고객 만나러 가랴, 차량 출고하랴 자리를 비우기 일쑤였다. 텅 빈 사무실에 앉아 허수아비처럼 일주일을 보냈다. 그러다 오기가 일었다. ‘할 수 있다!’고 마음속으로 외치고 일단은 전화로 ‘나’라는 브랜드를 알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딱 15일 만에 첫 계약을 따냈다. 혼자 펄쩍펄쩍 뛰며 ‘야호’를 열 번이나 외친, 인생 최고의 희열을 느낀 순간이다.

월말이 되어 부서 회식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대표님에게 불쑥 이런 질문을 던졌다.

“대표님, 실적 일등을 하려면 계약을 얼마나 따내야 하나요?”

“조 부장이 지금 일등인데, 매달 20대 정도 판매하고 있어요.”

“다음엔 제가 일등 할게요!”

당찬 선언에 대표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햇병아리 사원이 건방져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남들 앞에서 목표를 공표하는 건 일종의 공적 선언으로, 내뱉은 말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라도 목표에 매진하게 된다. 이후 나는 정말로 일등을 하겠다는 목표로 일에 매달렸다. 궁리하고 또 궁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의 결혼식에서 근사한 웨딩카 주위에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아! 저거다. 웨딩카를 활용해야겠다.’ 머릿속에 섬광이 번쩍였다. 지인들 결혼식에 무조건 참석하면서 선물로 웨딩카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이때 웨딩카는 누가 봐도 이목을 끌 만한 차량으로 빌렸는데, 회사에서 매입한 차량 중 최상급 수입차만 고른 것이다. 결혼식장 앞에서 웨딩카를 장식하며 지나는 하객들에게 나를 알렸다. “어머, 차가 멋지네요.” 하고 반응을 보이면 인사하며 내 명함을 건넸다. 몇 달이 지나자 문의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동식 스팀 세차 장비를 구해 내게서 차량을 구입했던 고객의 회사 앞에서 세차를 시작했다. 그리고 사장님과 약속하고 정확히 한 달 만에 나는 회사의 최고 계약 ‘34대’를 달성했다.

절실함은 가장 큰 무기


영업에 눈을 뜨자 일할 맛이 났다. 금방 부자 되겠다 싶어 마음도 들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또 두려움이 몰려왔다. 일등의 압박감에 짓눌렸고, 순위에서 밀려난 달이면 자책의 채찍을 휘둘렀다. 인맥의 광맥을 다 캐내고 나니 매출은 점차 밑바닥을 드러냈다. 차량 판매만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하다 ‘매입’을 떠올렸다. 그런데 이미 보유한 물건을 파는 ‘판매’와 달리 매입은 발품 팔며 물건을 사들여야 하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여기저기서 판매자를 찾아 돌아다니는 수고를 해야 하니 한숨부터 나왔지만 바닥을 친 매출을 끌어올려야 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매입의 본보기를 찾아 수소문하던 중 안산에서 수입차를 가장 많이 매입하는 업체를 운영하는 김병혁 대표님을 소개받았다. 알고 보니 아버지와 가까운 사이였다. 이른바 ‘아빠’ 찬스로 식사 자리를 마련해 온갖 질문을 퍼부어댔다. 새로운 일을 잘해내려면 스승이 필요하다. 롤모델을 정해놓고 그 성향, 습관이나 행동방식만 잘 따라 해도 절반은 성공한 배움이라 본다. 아침마다 따뜻한 카페라테 한 잔을 대표님 자리에 놓아드렸다.“오늘 일정 어떻게 되세요? 회의 가실 때 저도 따라가면 안 될까요?”

그렇게 현장을 따라다니며 매입 시장을 파악해나갔다. 얼마 후 대표님은 ‘영업 비밀’까지 알려주셨다.“나는 매입은 신차 영업소에서 하고 있어.”

신차 영업소에서 영업사원들이 신차를 판매하면서 고객의 중고차를 정리해주기도 한다. 그렇게 입수한 중고차를 딜러에게 넘긴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대표님이 신차 영업소 지인을 소개해주는가 하면, 본인의 곳간과도 같은 거래처를 나누어 주셨다.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초기에 잠시 도움을 받더라도 ‘나만의 터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일즈란 끊임없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매사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시장과 고객이 어떻게 급변할지 모르므로 긴장해야 하고 그때그때 대응책도 미리 마련해두어야 한다. ‘고객에게 나는 어떤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까? 영업은 전략이고 창조다!’ 나는 진정한 전문가가 되기 위해 스스로 공부하고 부지런히 뛰었다.

서울·경기 영업소를 샅샅이 뒤지고 다니며 명함을 돌렸지만, 수도권은 중고차 영업사원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터라 썩 효과를 보지 못했다. 무슨 수라도 있을까 싶어 다른 지역 영업소를 돌아다닐 무렵 뜻밖의 현장을 목격했다. 딜러와 딜러 간 거래가 이뤄지는 현장이었다. 귀를 쫑긋 세웠고, ‘이거다!’ 싶었다. 2,000만 원 이상 되는 중고 수입차는 지방 외곽에서는 수요가 적었기에 차를 수도권으로 올리는 거래가 많았다. ‘아, 이것이 틈새시장이구나.’ 새로운 프로젝트가 머릿속에서 돌아갔다.

‘시크릿’ 프로젝트, 모험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나니 함께 일할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예전에 카센터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김 팀장님을 만나 내 아이디어가 사업성이 있는지 물었다. 이때 만난 김팀장님과의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당시 내 전략은 경쟁이 치열한 수도권을 벗어나 경기도 이천과 광주, 강원도 원주와 강릉에서 영업을 해보자는 것에서 출발했다. 프로젝트명은 ‘시크릿’. 신차 영업소 영업진은 아침 회의 후 7시 30분에서 8시 사이 밖으로 나와 담배를 태우고 커피를 마시는 루틴이 있었다. 김 팀장님과 나는 새벽 6시에 출발해 신차 영업소로 향했다. 아침마다 우리는 바구니에 우유와 샌드위치를 가득 담아 영업소 직원들에게 돌렸다. 석 달이 지나니 영업사원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아침 거르고 나왔는데, 든든하네요. 그나저나 누구세요?”

아침마다 간식을 돌리는 두 사람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생겨나고, 중고차 딜러라는 사실도 알려지면서 내가 구상한 프로젝트의 서막이 올랐다. 하루에 많으면 300통까지, 전화가 빗발쳤는데 주로 해당 지역에서 판매가 저조한 수입차를 매입해 서울로 가져와서 팔았다. 곧 나에게 지역 업계 내에서 ‘판매왕’, ‘매입왕’이라는 타이틀이 별명처럼 따라붙기 시작했다.

쉼 없이 전력질주를 하다 보니 숨이 찼다. 영업에다 매입까지 직접 하려니 몸도 힘들고 업무에도 차질이 생겼다. 인생이 그러하듯 혼자서는 오래갈 수 없었다. 조직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어 직원을 채용해 매입팀, 관리팀, 판매팀, 마케팅팀, 상담팀을 꾸렸다. 그렇게 사업체로서 구색을 갖추어갔다.

그런데 창업한 지 1년이 지났을 무렵 위기가 찾아왔다. 사업을 확장할수록 임대료와 직원 월급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는데 매출은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지출이 매출을 잡아먹었다. 급한 불을 끄려고 적금을 깨서 일단 직원들 급여를 지급했다. 하지만 매달 불어나는 손실액이 목을 조여 왔다. 마치 죄라도 진 사람처럼 언젠가부터 직원들과의 식사 자리를 피하게 되었다. 자신감으로 가득했던 내가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있었다. 하루하루 불어나는 부채를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차에 혼자 있을 때면 회사와 집에서 꾹꾹 눌러두었던 마음이 터져 나왔다. 꺼이꺼이 숨이 넘어갈 듯 울었다. 늦은 밤, 차마 들어가진 못하고 차창 너머로 회사 건물을 바라봤다. 야근하는 직원들, 늘 응원해주는 아버지…. 같이 달려온 이들과 더는 함께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슬픔이 복받쳤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문제는 ‘해결’하라고 있는 것


매출이 바닥을 치면서 내 사업에 심각한 위기가 찾아왔다. 사업을 접어야 할까, 유지해야 할까. 갈림길에서 머뭇거리던 어느 날, 고객에게 차량을 전달하고 난 뒤 귀가하던 길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같이 스마트폰에 붙들려 있었다. 영화를 보는가 하면, 포털의 기사를 읽고, 무언가를 쓰기도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절박한 심정 때문이었을까? 그동안 무수히 지나쳤던 그 광경이 그날만큼은 나의 머릿속 촉수를 건드렸다. ‘SNS 영업이 답이다!’ 귀가하던 나는 발길을 돌려 다시 사무실로 갔다. 텅 빈 사무실에 앉아 노트와 볼펜을 들고 새로운 구상을 정리해보았다. ? SNS에 나를 알린다. ? 어떻게 알릴 것인가. ? 무엇을 알릴 것인가. ? 내가 제공한 서비스? ? 좋은 차량을 SNS에 올린다?

어떤 식으로 광고해야 소비자에게 가닿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다 질문을 바꿔서 던져보았다. ‘좋은 차란 뭐지? 사고 없는 차? 침수 없는 차?’ 이건 중고차 딜러라면 누구나 강조하는 상품 설명 아닌가. 장사꾼들이 흔히 쓰는 문구 말고 고객에게 더 강렬하게 각인될 무언가가 필요했다. 무엇으로 나를 알릴 수 있을까?

‘차량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경제적 비용을 어떻게 줄여야 할까?’ 내가 소비자라 생각하고 나에게 질문하는 순간 머릿속이 번쩍했다. 할부 프로그램! 어딜 가나 차량 가격은 거기서 거기가 아닌가. 차량은 가격이 정해져 있다 보니 가격에 승부를 거는 건 시장에서 경쟁력이 없었다. 그렇다면 할부 프로그램을 변경해서 소비자가 부담해야 하는 이자율을 낮춰주는 건 어떨까? 그러면 딜러인 내가 받는 리베이트를 포기해야 했다. 리베이트는 고객이 차량을 할부로 구매할 때 캐피털사로부터 내가 받는 영업수당이다. 리베이트를 포기하면 고객의 할부 대출 금리가 낮아진다. 이튿날 아침, 할부 대리점이 문을 열자마자 찾아가 본부장님께 면담을 요청했다.“금리를 낮춘다고요? 회사 규정상 더 낮추는 건 불가능해요.”

일단 부정적 답변이 돌아왔지만, 그러면서도 본부장님은 새로운 가능성의 문은 열어두었다.

“은행 쪽에서도 중고차 할부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어요.”

그날부터 시중 은행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SNS와 은행 할부 프로그램을 연결시켜보자. 나의 미래를 움직일 두 바퀴가 머릿속에서 맞물려 돌아갔다. 직원들과 긴급회의를 열었다. “시대가 변했잖아요. 찾아다니는 영업은 한계가 있죠. 주머니 속에서, 손아귀 속에서 늘 동행하는 핸드폰이 우리 사업에도 동행할 겁니다.”

‘찾아가는 영업’에서 ‘찾아오는 소비자’ 만들기로


나는 ‘찾아가는’ 영업에서 ‘찾아오는’ 소비자로 영업의 방향을 획기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그런데 SNS를 통해 소비자가 찾아오게 만들려면 그 무엇보다 ‘브랜딩’이 중요하다. 그날부터 나는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 닉네임을 정하는 일부터 치열하게 고민했다. ‘편리’, ‘실속’ 같은 추상적이고 두루뭉술한 표현은 가급적 피했다. 구체적이고 흥미를 자극할 만한 이름이 없을까? 궁리 끝에 떠오른 이름이 ‘차파는걸’이었다. 차는 보통 남자가 많이 팔기 때문에, 젊은 여성을 뜻하는 단어 ‘girl’을 붙이니 신선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하는 걸’ 하는 구어체 어감을 주어 더 친근했다.

회의 탁자 위로 SNS 광고와 할부 프로그램에 관한 의견도 다양하게 오갔다.

“할부 프로그램에서 리베이트를 못 챙기면 우리 매출에 차질이 있다.”

“광고 지출을 더 감행했다가는 회사가 힘들어진다.”

할부 프로그램에서 고객을 위해 우리의 리베이트를 포기하자는 것에 대한 반대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꼬꾸라지는 사업을 일으키려면 어떻게든 판로를 열어야지 다른 방도가 없었다.“지금 가라앉고 있잖아요. 안전만 추구하는 건 의미 없어요. 새로운 지대로 재빨리 옮겨야 살아남죠.”

영업 방식을 바꿈에 따라 팀도 다시 꾸렸다. 그때만 해도 인스타그램은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기라, 카카오스토리와 페이스북이 SNS 세계의 신대륙이었다. 페이스북 마케팅에 관한 책을 독파해가며 타깃광고 전략을 익혔다. “중고차 싸게 사는 법”, “현직 딜러가 알려주는 ‘중고차 저렴하게 사기’”, “300만 원 아끼고 중고차 사는 법” 등 소비자의 눈을 사로잡는 문장,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을 제목으로 내세워 페이스북에 은행 할부 상품을 하나하나 올렸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고 광고효과가 예상보다 커서 문의가 제법 쏟아졌다. 그러나 동종 업계에서는 쓴소리를 내뱉었다. 시장을 교란한다는 둥…. 미운털이 박혔고 곤혹스러웠다. 내가 추구하는 핵심가치가 명확하지 않았다면 아마 꽤나 흔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시금 ‘핵심가치’를 되뇌었다. 내가 고객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소비자의 행복’ 아닌가.

나는 고객에게 어떻게 하면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만 고민했다.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서비스는 무엇일까? 출퇴근할 때도, 밥 먹는 시간에도 고객에게 제공할 이익만 생각했다. 당시는 금리가 높은 시절이었는데, 중고차를 구매하기 위해 은행 대출 상품을 이용하면 13~21%까지 금리가 나왔다. 반면 ‘차파는걸’을 이용하면 소비자 부담이 크게 줄었다. 적게는 500만 원부터 많게는 2,000만 원까지 이자가 줄어드니 고객 입장에서는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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