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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5시간 일하고 연 10억 버는 엄마사장입니다

신유안 지음 | 예문


하루 5시간 일하고 연 10억 버는 엄마 사장입니다



신유안 지음

예문 / 2021년 10월 / 207쪽 / 12,000원





아이를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는, 나는 엄마 사장입니다



내가 만약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최근 나는 내 인생에 생기리라곤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일들을 겪고 있다. ‘우리 가게를 어떻게 아셨지’ 싶을 정도로 먼 지역 분들이 과일을 살 수 있느냐고 연락하는가 하면, 기업 고객으로부터 선물 세트 주문이 거의 폭주하여 나와 동생(내 동업자이기도 하다)의 역량만으로는 힘에 부칠 정도다. ‘한 달에 백만 원만 벌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동네 장사인데, 매일 통장에 찍히는 과분한 숫자를 보면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든든한 조력자인 가족들, 나를 믿고 우리 가게를 찾아 주시는 고객님들 덕분에 가능한 일이란 걸 알기에 항상 감사한 마음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고마운 사람을 꼽는다면 우리 아이들이라고 하고 싶다. 사실, 이 모든 일의 가장 큰 공은 나의 두 아이에게 있기 때문이다. 내가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나아가 양육에 있어 정서적인 책임감과 금전적인 책임감 등등 복합적인 압박감을 느끼지 못했다면 나는 절대 이 사업을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육아와 일,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하란 법은 없다


30살 이전까지 내 삶은 불운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혼자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을 수 있는 나이, 그러니까 겨우 3살 무렵 맞이한 부모님의 이혼 이후 곧장 충북 음성의 할아버지 댁에 맡겨진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한동안 엄마도, 아빠도 없이 자랐다. 그러다 얼마간 친아버지와 살기도 했었지만…, 아버지의 폭력과 새어머니의 구박으로 뒤덮여 깜깜했던 나날들은 떠올리는 것만으로 몸서리가 쳐진다.

여하튼 그 시절, 살아계신 부모님이 내겐 없는 사람들이나 마찬가지였다. 엄마와는 연락하며 방학마다 보기도 했지만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같이 살지 않았다. 그러한 부재로 인해 사춘기 무렵부터 나는 누가 봐도 까칠한 아이가 되었다. 학업을 돌봐주는 어른이 없는 상황에서 공부에 관심이 있었을 리 만무하다. 그렇게 중학교 시절을 지나 상업계 고등학교에 거의 꼴찌로 입학했고, 그 곳에서 내 인생의 은인이라 할 사회 선생님을 만났다. “이번 중간고사에서 사회 딱 한 과목만 백 점 맞아 와라. 그러면 떡볶이 사줄게.”라는 선생님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 나는 반신반의하며 공부를 시작했다. 곧장 백 점을 맞자, 다음 약속은 좀 더 스케일이 커졌다. “전교 oo등 안에 들면 소원 하나 들어줄게.”

성과와 보상이 반복되면서 나는 점차 바뀌어갔다. 떡볶이 한 그릇 얻어먹기 위해 시작한 공부에 날이 갈수록 재미가 붙은 것이다. 알고 보니 나는 암기 과목에 꽤나 재능이 있는 편이었다. 나중엔 수학이나 과학 같이 암기 외의 과목들은 어떻게 해야 성적이 날지 공부법을 연구해서 석차를 올릴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비록 시골의 작은 상고였지만 전교 10등 안에 드는 데도 성공했다.

얼마 후엔 내 상황을 알고 있던 선생님의 배려로 인문계 학생들의 야간자율학습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집을 벗어나 기숙사에도 들어갈 수 있었다. 그 결과 상고조차 꼴찌로 입학했던 내가, 3년 후에는 충북 소재 4년제 대학 도시계획과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은 정말 쉴 틈 없이 살았다. 학교에 다니기 위해서는 전액 장학금을 받는 수밖에 없어서 공부에 목숨을 거는 한편으로, 자취하며 생활비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연애도 하고 학생회 활동도 했으니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리 바쁘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졸업 후에는 S은행에 계약직 텔러로 입사했다. 그리고 입사 1년 후에는 정규직 전환 시험을 한 번에 통과했다. 당시만 해도 지방대 출신 계약직이 S은행 정규직 전환에 성공한 케이스는 상당히 드물다고 했다. 그럼 여느 동화의 해피엔딩처럼 ‘그렇게 오래오래, 정년까지 행복하게 S은행에 다녔습니다.’ 하면 될 일 아니냐고? 그런데 현실은 업무 강도와 적성에 맞지 않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다고 느낄 무렵, 때마침 맞이한 육아휴직은 내게 평범한 일상을 마음 편히 누리는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행복감과는 별개로, 육아는 또 다른 현실이었다.

내 인생에 새로 얹혀진 역할, 엄마라는 자리의 무게:
사실 아이가 막 태어났을 때까지만 해도 엄마라는 자리의 무게가 실감나지 않았었다. 그러다 아이가 점점 사람의 형태를 갖추어가고, 그 존재가 온전히 내게 의지하고 있다는 걸 일상 속에 경험하면서 중력보다 무거운 책임을 깨달았다. 나는 함부로 아플 수도, 죽을 수도 없었다. 내 아이에게 나는 세상의 전부이기에. 그런데 그 무렵 둘째가 생겼다. 첫 아이로 인한 육아휴직이 거의 끝나갈 즈음이었다. 큰아이 때와는 달리 나는 임신과 출산, 육아 모든 면에서 경험자가 되어 있었다. 적어도 생초보 엄마 레벨은 넘어선 셈이었다. 의욕은 넘치는 데 반해 행동은 허둥지둥 대느라 정신없던 첫 애 때와는 달리, 약간의 노하우와 함께 머릿속에도 여유가 생겼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관하여 내 미래 가능성을 연산해볼 겨를이 났다. 그렇게 엄마가 된 후, 내 인생의 새로운 방정식에서 두 아이는 변수가 아닌 기본값이 되었다.

육아 vs 커리어, 삶의 우선순위부터 찾는 것이 먼저다:
우리의 인생은 정해지지 않은 답을 내 선택과 의지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내 경우에는 두 아이가 ‘기본값’이자 ‘결정의 대전제’로서 인생의 최우선순위가 되었다. 그럼, 이를 바탕으로 답을 도출해야 하는 문제는? 아직 한참 어린 두 아들을 내가 직접, 부족함 없이 돌봄과 동시에 일정한 벌이가 가능한 일을 찾을 것! 복직은 이를 위한 여러 선택지 중 하나였지만, 시간 활용에 있어 최선의 것은 아니었다. 2020년 2월, 남은 육아휴직 기간은 이제 1년 남짓. 나는 그동안 머릿속으로 구상만 하던 사업을 구체화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애 둘을 키우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 사업, 그 막연한 전제에서 탄생한 것이 지금의 가게(화월청과)다. 만약 내가 육아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았다면, 두 아이 등하원을 모두 내 손으로 시키고, 하원부터 아이가 잠드는 시간까지 함께하면서도 높은 수익을 올리는 지금 같은 상황은 없었을 것이다.

생각의 초점을 바꾸면 기회의 폭이 넓어진다


화월청과는 동탄 신도시 아파트촌에 위치한 작은 과일 가게다. 특이한 점은 간판에 ‘청과’라는 단어를 보고서야 과일 가게인 줄 알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동네 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가게이지만, 매장에 와서 물건을 사는 분보다 네이버 밴드를 보고 주문하는 분이 훨씬 많으며, 사장이 매일 오후 2시 반이면 사라지는 조금 이상한 가게라는 것. 지금에야 주변인 대부분이 응원해주고 심지어는 가맹점을 내고 싶다는 문의도 많지만, 맨 처음 사업 구상을 밝혔을 때만 해도 반응은 좋지 않았다.

현실과 협상하고 양보해야 한다:
복직보다 장사에 더 마음이 기울게 된 데는 상황의 문제도 있었다. 육아에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독자 여러분 중에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이 계실 것이다. 어디서도 육아 도움을 받을 수 없는데, 벌이가 필요한 상황에 처한 분들이 말이다. 내 결론은 이랬다. 육아에서도 완벽하고 싶고, 직장에서도 예전에 받던 대우나 월급만큼 받고 싶은 그 두 가지 마음을 내려놓자. 우선순위를 생각하여 양보할 수 있는 것들은 양보하고, 그에 관해서는 마음을 비우자. 우선순위에 집중하면 그 뒤의 것들, 즉 차순위에 관해서는 일정 부분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그다음엔 내가 양보할 것들, 포기해야 할 것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복직을 선택한다면 육아도우미 비용, 필요에 따라서는 가사 도우미 비용 등 각종 헬퍼 비용을 앞으로 수년간 고정비용으로 놓아야 한다. 아이에게 엄마의 시간 제약에 관해서도 충분히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 한다. 필요할 때 항상 있어줄 수는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반대로 나처럼 사업을 선택한다면 초기 비용이 필요하며 실패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수입의 크기는 예상이 어려우며, 사람들의 시선 또한 과거 직장에 소속된 커리어우먼일 때와는 다르리란 점을 인식해야 한다.

나 자신을 잃어버린 것처럼 느낀다는 당신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가:
요즘엔 만나는 사람마다 어떻게 화월청과를 만들었는지 묻는다. 그러면 나는 아이를 낳고 키우며 내 삶의 가치관이 재정립되었고, 기존의 내 머릿속 프레임에서 벗어나 편견 없이 내가 가질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들을 검토한 덕분이라고 답한다. 무엇보다도 내가 무엇을 잘 할 수 있고 진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람이며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에 관해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음은 당시 내가 썼던 메모의 내용이다. ‘[20대 이전의 나는] 매사 까칠하고 화가 많고 불만이 많았다. 삶에 여유가 없어서 남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현모양처가 꿈으로, 부모가 준 결핍을 내 가정으로 채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 [20대 이후의 나는] 좋은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성격이 많이 둥글둥글해졌다. 여전히 직설적이지만 뒤끝은 없다. 사회생활하며 사람들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영업에 재능이 있다. 낯선 사람을 만나 대화하는 게 재미있고 덜렁거리지만 할 일은 제대로 한다.’ 독자 여러분도 한번 가벼운 마음으로 적어보시길 바란다.



목표는 작게, 마음은 가볍게, 실행은 빠르게



나 자신을 일으켜 세울 용기를 내야 할 때


육아휴직이 1년 정도 남은 무렵, 이제는 뭔가 결심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일의 목적(내 손으로 두 아이를 키우면서 돈도 버는 것)과 형태(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 동안 일하는 것)가 명확하니, 일단 시도해보고 만약에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면 1년 후 복직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머릿속에서는 계산이 끝나 이제 실행만 기다리고 있는데, 몸은 천근만근, 할 일은 하되 나머지 시간은 그냥 누워있고만 싶었다. 나의 무기력은 신체보다는 마음의 문제였다.

하던 일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일에 도전하려면 많은 면에서 변화가 필요했다. 그 변화에 저항이라도 하듯 마음이 무기력에 빠져버렸던 것이다. 눕고 싶은 마음을 일으켜 앉히기 위해 처음 한 일이 앞 장에서 이야기한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메모였다.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식탁 위에 노트를 펴고 앉아서 손으로 끄적였다. 그러자 매일 하던 일과 외에 뭔가 다른 일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함이 느껴졌다. 일상의 과제들을 마치 로봇처럼 해내느라 내일의 변화를 도모할 에너지가 방전된 상태였다면, 그 작은 일을 한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약간은 충전되기 시작한 기분이 들었다.

밑그림 그리기 - 나의 내적ㆍ외적 자원 찾기: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돌아보았다면,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차례다. 이 또한 거창하지 않다. 나라는 사람의 본모습(어떤 역할이나 페르소나와 관계없는 본래 나 자신)에 관해 생각해봤으니, 그렇다면 내가 가진 것은 무엇인지 쭉 한 번 적어보기로 했다. ‘[내가 가진 자원(내적 자원)] 한다면 한다는 실행력, 일단 부딪히고 보는 근성, 자신감, 온갖 알바와 사회생활로 다져진 영업력, 친화력, 전문가는 아니지만 최소한 트렌드에 뒤처지지는 않는 미적(디자인적) 감각 / [내가 가진 자원(외적 자원)] 육아와 인테리어 인스타그램(현재 팔로워 6천여 명), 블로그, 그리고 아직 한도가 남아있는 마이너스 통장’ ‘설마 이걸로 끝?’ 스스로도 믿기지 않아 머리를 굴려봐도 달리 가진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당시 무료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이 이유식과 간식을 하루하루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시작한 것이 호응이 좋아, 육아법과 인테리어에 관한 내용까지 범위를 넓히며 팔로워가 제법 모인 상황이었다. 그래서 진지하게 인스타그램으로 사업을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뜻밖의 커다란 자원이 눈에 띄었다.

내 엄마는 구리농수산물 시장에서 과일 중도매인으로 일하신다. 과일 장사 경력만 무려 20년이 넘었다. 그 덕분에 아이를 키우며 한 번도 과일을 사다 먹인 적이 없었다. 이렇듯 친정엄마로부터 조달받다 보니 엄마가 가져다주는 과일의 퀄리티가 당연한 줄만 알았다. 그런데 우리 집 과일을 먹어본 주변 사람들이 하나 같이 묻는 것이었다. “이거 어디서 샀어?” 그래서 동네 언니들로부터 부탁을 받아 엄마의 과일을 심부름하기 시작했고,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니 어느 날부터인가 차 뒷좌석에 한가득 과일을 싣고 나르게 되었다. 이 집 저 집 과일 심부름을 해주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라 그만할까도 싶었는데, 다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자기네 과일을 먹다 보니까, 이제 다른 과일은 못 먹겠어. 좀 부탁할게.” 그래서 ‘우리 엄마 과일이 그렇게 특별한가?’라는 생각이 의구심에서 확신으로 점점 바뀌어 가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든든한 자원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내가 가진 자원(외적자원)도 다음과 같이 수정했다.

‘[내가 가진 자원(외적 자원) - 수정판] 육아와 인테리어 인스타그램(현재 팔로워 6천여 명), 블로그, 아직 한도가 남아있는 마이너스 통장, 그리고 최상의 상품(과일)을 제공받을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공급처’ 과일 인생 20년의 경력에서 나오는 초능력이라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엄마의 과일은 맛과 질이 일정하게 최상 수준이었다. 게다가 중도매인이라는 직업상 충분한 양을 확보하는 데도 무리가 없다. ‘이거야말로 프리미엄이란 단어에 어울리는 퀄리티지!’ 프리미엄 과일 가게라는 콘셉트는 내가 가진 내적 자원과 외적 자원 모두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사업 아이템에 대한 확신이 섰다.

구체화하기 -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할 조건 확인하기:
내가 가진 자원들을 검토함으로써 밑그림을 그렸다면, 그다음에는 조건을 붙여 그림을 구체화해야 한다. 이때 조건은 내가 가진 제약들, 고려해야 할 한계점으로 대체해도 무방하다. 다시 노트의 다음 장을 펼칠 때이다.

‘[내가 가진 제약점]

① 시간적 제약 : 오전 9시 반~오후 2시 반 + 아이들이 잠든 후

② 금전적 제약 : 마이너스 통장을 한도까지 쓴다 해도 8천만 원이 한계’



앞과 같은 제약 사항, 즉 조건 안에서 사업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로써 과제는 확실해졌다. 모든 비용을 합쳐 8천만 원의 자본금 안에서, 하루 5시간 과일을 팔아 남들 월급만큼의 순수익을 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처음에는 가능할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에는 언제나 해법이 존재하는 법. 답은 분명히 있으니 찾아 나가면 된다는 마음으로 도전을 이어갔다.

목표를 작게 잡아야 도전이 쉬워진다

출발하는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려면:
주부가 사업을 한다고 하면, 듣게 되는 고정 레퍼토리가 있다. “그거 해서 얼마나 벌려고 그래?” 때로는 냉소적이기까지 한 이런 주변 말들에 내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벌이에 대한 내 목표가 워낙 소박했기 때문이다. 계산은 이랬다. 내가 복직하면 한 달 월급이 400만 원. 복직을 하면 당연히 시터 분의 도움을 받아야 할 테니 그 비용이 200만 원 이상, 그리고 회사에 다니면서 쓰게 되는 이런저런 부대 비용들을 합치면 월급에서 남는 금액은 100~150만 원. 나의 하루를 내 최우선순위(육아)에 맞춰 운용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 월 100만 원 이상만 가져가도 만족할 만하다. 복직해서 내 수중에 들어오는 돈이나 사업해서 버는 돈이나 똑같다면, 기왕이면 하루 5시간 일하는 쪽이 낫지 않은가? 이처럼 현실적으로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최소한의 마지노선을 정해놓으니, 운신의 폭이 넓어지고 마음이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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