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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모듈레이션

신승학 지음 | 더봄


브랜드 모듈레이션

신승학 지음

더봄 / 2021년 1월 / 310쪽 / 18,000원



들어가는 말 - 모듈레이션(Modulation): 조율하여 증폭시키다




종이 한 장을 들어 앞으로 던져보자. 종이는 중력과 공기 저항을 받아 몇 번 휘날리다가 곧바로 앞에 떨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종이로 멋진 비행기를 접어 바람을 타게 만들면 어떨까. 던지는 힘에 바람의 힘까지 더해지며 종이는 더더욱 먼 곳까지 날아갈 것이다. 바람만 멈추지 않고 계속 불어줄 경우 어쩌면 종이는 무한대로 비행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종이의 이동 거리를 늘리듯, 특정 개체에 에너지를 더해서 전달 거리를 증폭시키는 행위를 모듈레이션이라고 부른다.

모듈레이션은 신호나 정보가 보다 멀리 확산되는 환경을 조율하는 행위로서 오늘날 라디오, 무선통신 등에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는 기술이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청취 가능한 음성 신호는 보통 20Hz에서 20kHz 내외의 짧은 거리 대역폭을 가지고 있는데, 신호의 진폭과 주파수를 변조시키고, 높은 안테나를 세우는 등의 모듈레이션 과정을 거치면 아주 먼 곳까지 음성 신호를 보낼 수 있게 된다.

브랜드가 전파되는 과정에서도 이런 모듈레이션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아무리 좋은 내공을 가진 브랜드라 해도 본연의 에너지만으로는 대규모 외부 확산을 기대하기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보조하기 위해 마케팅이라는 활동이 수반되지만, 브랜드가 실생활에 파고들어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파급력을 마케팅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단순히 좋은 마케팅과 좋은 브랜드가 스스로 가공해낸 현상이 아닌 브랜드가 탄생한 시점의 시대상, 이를 관통했던 사회, 정치적인 현상들이 복합적으로 모듈레이션을 일으킬 때 브랜드 본연의 잠재력을 넘어 거대한 시장의 파급력을 보인 경우가 많다.

예로 세계 대전을 통해 유럽이 초토화되며 포드, GM 등 다분히 ‘미국적인 브랜드’들이 대량으로 등장했던 시대나, 달러를 기축통화로 한 국가 간의 무역이 전 세계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으며 ‘글로벌 브랜드’들의 탄생을 불러왔던 것 등이 그렇다. 또 1970년대 이후 미국 제조업이 몰락하면서 일본과 독일 그리고 중국 등 ‘제3국 브랜드’들이 전 세계를 휩쓸었던 사례, IT 기술 혁신과 함께 구글, 페이스북 등 새로운 형태의 브랜드들이 시대를 거듭하며 등장한 케이스도 이러한 맥락을 뒷받침한다. 모듈레이션이 동작한 브랜드들은 항상 다양한 사회, 경제적 현상의 연속된 상호작용 속에서 나타났다.

개척자들의 브랜드




생산성 증가가 브랜드를 모듈레이션하다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시작되었지만, 본격적인 규모의 경제를 달성한 것은 미국의 포드였다. 포드는 자동차 산업을 통해 최초로 대량 생산이라는 개념을 실현해냈고, 이를 산업계 전반으로 전파시켰다. 인류는 이 시점부터 풍족한 내구재 공급을 경험하게 되었으며, 할부 제도라는 소비촉진 방안을 만들어 기업의 생산을 뒷받침했다. 이후 GM이 대량 생산 시스템 내의 상품성 다변화에 성공하면서, 대량 생산과 소비가 균형을 이루는 최고의 호황기가 펼쳐지지만, 1920년대 후반에 시작된 대공황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게 된다.

대공황 발생 후 3년 동안 미국 시장의 소비 중 40%가 사라졌고, 창고에는 악성 재고가 쌓여갔다. 기업들은 판매를 위해 더욱 치열한 경쟁에 내몰렸는데, 이 같은 과정에서 현대적인 브랜드의 개념이 나타난다. 소비자 중심으로 변해버린 시장은 대량 생산 시스템의 구축에만 기대던 대다수의 기업에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이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던 기업에는 둘도 없는 성장의 기회이기도 했다. P&G는 소비자와의 밀접한 관계 형성을 전제로 한 브랜드 충성도 구축에 성공했고, 듀폰과 같은 기업들은 막강한 자본력을 이용해 세상을 바꿔놓을 만한 브랜드들을 선보였다.

현대적인 브랜드는 이렇게 그 시작점을 찾아들어 갈 경우 인류의 총생산량 증폭의 과정과 맞물리며, 소비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현되었다. 브랜드는 생산과 소비의 연결 관계를 꿰뚫어 본 기업들이 만들어낸 일종의 근대화된 판매전략 중 하나였지만, 동시에 급격한 생산성 증가가 모듈레이션해낸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포드와 GM, P&G와 듀폰 등은 브랜드를 개척한 1세대 기업이라고 부를 만하다. 몇몇 사례를 보다 자세히 살펴보자.

대량 생산이 모듈레이션을 일으키다


현대적인 브랜드를 유발시킨 최초의 근대화된 대량 생산 시스템은 미국 자동차 산업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1903년 포드 자동차를 창업한 헨리 포드는 1908년 극도로 간소화된 생산 공정과 단일한 옵션으로 850달러짜리 모델 T를 내놓는 데 성공한다. 모델 T는 경쟁사 대비 약 1200달러 이상 저렴했음에도 포드는 이에 만족하지 않았고, 더욱 낮은 가격의 자동차를 만들기 위한 생산 공정 개선을 이어갔다. 이때 탄생한 것이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인데, 이 시스템은 자동으로 돌아가는 생산라인에서 작업자가 같은 일만 반복하면 되는 공정으로서 차량 1대의 조립 시간을 88% 이상 줄일 수 있었다.

모델 T 생산량은 1912년 6만 대의 규모에서 1914년 20만 3천여 대로 늘어났다. 이렇게 대량 생산으로 인해 규모의 경제가 만들어지자 가격 역시 빠르게 하락했는데, 1920년 이후 모델 T의 가격은 대다수 미국 급여생활자들의 구매력을 충족시키는 300달러 선으로 떨어졌다. 포드의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은 자동차를 대량 생산하기 위한 방편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산업화가 한창이던 전 세계 제조업에 대량 생산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했고, 이때부터 인류는 공산품의 풍족한 공급을 경험하기 시작한다.

P&G가 최초로 현대적인 브랜드를 말하다


대공황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식의 시장 접근이 필요했다. 극도의 침체기 속에서 소비를 담보로 한 대량 생산 유지는 자멸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비자 중심의 시장 변화를 주시하고 있던 기업들은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들은 시장이 깊은 침체기에 들어가더라도 제품의 경쟁력만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다면, 오히려 후발주자들을 고사시켜 더욱 독보적인 점유율 차지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이때부터 브랜드는 단순히 상품을 구분 짓는 물리적인 속성을 넘어, 소비자와의 무형의 관계 속에서 호감과 신뢰를 쌓아가는 현대적인 개념에 좀 더 가까워진다.

이런 시각을 경영 일선에 가장 먼저 반영한 기업은 P&G다. 미국의 생필품 제조사인 P&G는 고품질 세탁비누 옥시돌 출시 2년 만에 대공황을 겪게 되는데, 신제품 홍보를 위한 기존의 대규모 마케팅이 더 이상 동작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제품을 알릴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모색한다. 그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것이 광고 에이전시와 함께 제작한 Ma Perkins라는 라디오 드라마였다. 1933년부터 미국 NBC를 통해 송출된 Ma Perkins는 여성과 주부층을 겨냥한 휴먼 드라마로, 주인공들이 극중 옥시돌을 언급하는 방식으로 제품을 노출했으며, 방송 앞뒤로 광고를 붙여 주요 청취자들이 옥시돌 브랜드에 익숙해지게끔 했다. 드라마의 회차가 증가할수록 청취자들은 옥시돌을 주인공들이 사용하는 우수한 품질의 비누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브랜드에 대한 막연한 호감이 형성되면서 매출 역시 빠르게 늘어났다.

물론 옥시돌의 품질이 뛰어났던 것도 큰 역할을 했지만, 소비자와의 관계 형성에 투자한 꾸준함이 점차 효과를 나타낸 것만은 분명했다. 이런 P&G의 전략은 소비자들이 경쟁사의 제품보다 P&G의 제품에 충성도를 갖게 하는 효과를 만들어냈으며, 실물경제의 어려움 속에서도 P&G가 50%에 가까운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는 원인이 된다. 이후 P&G는 브랜드를 하나의 무형 자산으로 간주하여, 소비자를 겨냥한 브랜드 평판과 신뢰에 주목하기 시작했으며, 이를 통해 더 이상 생산자가 우위에 설 수 없는, 소비자 중심으로 변해버린 대공황이라는 침체기를 버텨낼 수 있었다. 대공황이 P&G에게는 커다란 브랜드 모듈레이션의 장으로 작용했던 셈이었다.

대규모 자본이 새로운 브랜드를 창조하다


대공황을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했던 또 다른 사례는 미국 시장의 엄청난 호황 속에 축적된 막대한 자금력이 만들어낸 대규모 연구개발(R&D)을 꼽을 수 있다. 여기에 1920년대 황금기를 이끌었다는 자신감이 융합되며, 공격적인 투자로 대공황을 정면 돌파하려는 기조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최첨단 화학 산업이 있었다. 화학 산업은 원래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기업들이 주도해왔으나, 1차 대전 후 주 무대가 미국으로 옮겨지며, 엄청난 자본력을 가진 미국 기업들을 끌어들였다. 이 중에서 브랜드의 관점으로 바라볼 만한 가치가 있는 기업은 바로 듀폰이다.

듀폰은 1928년부터 미국 기업 최초로 내부에 연구개발 전문 부서인 중앙연구소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화학 산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후로 7년 간 무려 2700만 달러가 투자되었으며,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탄생한 것이 20세기 최대의 발명품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나일론 섬유이다. 이후 1940년 나일론 원료로 제작된 스타킹이 판매를 시작했을 때, 초기 물량 400만 켤레를 사흘 만에 매진시켰고, 다음 해까지 듀폰은 3400만 달러의 매출을 거둬들일 수 있었다. 이는 듀폰의 7년 동안의 연구개발비를 능가하는 금액이었다. 듀폰의 공격적인 투자가 드디어 거대한 성과로 나타난 것이다.

듀폰의 나일론 발명은 단순히 하나의 신소재가 세상에 등장한 것 이상의 의미였고, 막대한 자금력을 통해 혁신적인 브랜드를 창출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현이기도 했다. 이때부터 미국 시장은 혁신적인 제품이 창출해내는 엄청난 부가가치를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연구개발을 중심으로 한 수많은 브랜드를 배출하기에 이른다. 이후 시대의 패러다임을 주도하게 될 컴퓨터, 전자 산업 그리고 인터넷 및 모바일 등 세상을 바꾸는 첨단 브랜드들은 언제나 미국 시장에서 먼저 나타났다.



글로벌 브랜드 시대




달러가 주도하는 글로벌 브랜드 시대가 펼쳐지다


20세기 초 미국의 뛰어난 기업들이 대량 생산과 대중 소비를 통해 브랜드의 개념을 개척했다면, 2차 대전은 이런 브랜드들을 전 세계로 퍼트리는 역할을 했다. 전쟁 중 엄청난 양의 스팸과 코카콜라 같은 미국산 브랜드들이 뿌려졌고, 산업 기반을 잃게 된 많은 국가들을 미국산 브랜드의 영향력 아래 노출시켰다. 이후 미국이 브레튼 우즈 체제와 가트를 통해 달러 중심의 자유무역 기조를 정착시키면서 이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글로벌 브랜드의 시대가 펼쳐진다.

글로벌 브랜드 시대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국경에 관계없이 글로벌화된 브랜드를 능동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할리우드를 통해 문화적 헤게모니까지 장악했던 미국 브랜드가 가장 유리했고, 실제 글로벌 브랜드 시대는 다각적인 세계화라기보다 미국화에 좀 더 가깝게 진행되어갔다. 이런 현상을 종종 미국화(Americanization)라고 설명하기도 하는데, 미국화는 자본주의 진영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전 세계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많은 면에서 미국과 같은 양상으로 변해가는 현상을 지칭한다.

게다가 공산 진영과의 이데올로기 대결은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더욱 강하게 확장시켰으며, 주도권을 쥐었다고 판단한 미국 기업들은 효율과 합리성으로 대변되는 미국식 라이프스타일을 전 세계에 주입시켰다. 당시 수용자적 입장의 국가들은 이를 선진화된 브랜드 경험으로 받아들였고, 이 과정에서 글로벌 브랜드 시대는 미국스러움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양상으로 굳어지게 된다. 코카콜라 사례를 살펴보자.

코카콜라가 미국을 상징하다


스팸만큼 전쟁에 필수적인 자원은 아니었지만, 미군이 진입한 곳이면 어디든 보급되어 미국적 이미지를 강력하게 각인시킨 브랜드가 있다. 전쟁 중 무려 50억 병 이상이 뿌려진 코카콜라였다. 사실 코카콜라는 1930년대 말까지 캐나다와 남미 일부 국가들을 제외하면 거의 국제적인 영향력을 나타내지 못했는데, 2차 대전은 이런 코카콜라를 단숨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브랜드로 만들어 놓았다.

코카콜라는 1886년 약사 존 펨버턴이 여러 약재를 혼합해 만든 강장제에 가까운 약품이었다. 이를 약재상이자 사업가인 아사 캔들러가 1898년부터 사업권을 사들여 청량음료로 변화시켰고, 1919년 우드러프 가문에 인수된 뒤에는 미국 최대 음료 제조 회사로 성장했다. 이런 코카콜라는 1차 대전 중 경영상의 큰 위기를 겪게 되는데, 미국 정부가 설탕을 전쟁 자원으로 분류해 공급을 제한한 탓이었다. 때문에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코카콜라 경영진은 필사적으로 대정부 로비에 뛰어들어 코카콜라를 전시 우선 품목으로 인정받는 데 성공한다. 청량음료가 군인들의 사기 진작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가 통했던 것이다. 또한 연합군 총사령관 아이젠하워와 군 고위층이 코카콜라를 전쟁터로 직접 주문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코카콜라는 2차 대전 중에도 공장의 가동을 멈추지 않고 생산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병에 담긴 코카콜라를 전쟁터로 수송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수송선의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군은 코카콜라를 현지에서 직접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1944년부터 세계 각지의 총 59곳에 코카콜라 보틀링 공장이 설치되었고, 이를 통해 무려 50억 병의 코카콜라가 전 세계로 뿌려졌다. 이는 당시 그 어떤 공산품보다도 많은 생산량이었는데, 물자 부족에 시달리던 많은 이들에게 미국의 패권과 자본주의의 위력을 각인시키는 역할을 했다.

코카콜라의 해외 진출은 무임승차나 다름없는 특혜였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생산 공장은 그대로 남아 코카콜라의 해외 진출기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코카콜라에게 길들여진 사람들이 계속해서 코카콜라를 찾았기에 코카콜라의 판매량은 지속적으로 늘어날 수 있었다. 이렇게 2차 대전은 미국의 압도적인 산업 생산력을 바탕으로 코카콜라, 스팸과 같은 미국산 제품들을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시켰다.



제3국 브랜드들의 등장




미국 제조업이 붕괴하고 그 자리를 일본과 유럽 브랜드들이 파고들다


브레튼 우즈 체제는 달러를 기축통화로 인정하는 자유무역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금본위제에서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했던 한계 때문에 미국은 만성적인 무역적자에 시달려야 했고, 고평가된 달러는 미국 브랜드들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졌다. 여기에 2차 대전의 피해를 극복해낸 일본과 서유럽 브랜드들이 시장에 진입하면서부터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브랜드 시대는 막을 내린다. 일본 자동차 브랜드들은 엄청난 효용성으로 미국 소형차 시장을 장악했고,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일본의 전자제품 브랜드들도 미국 기업들을 차례로 쓰러트렸다. 동시에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성장한 유럽의 브랜드들 역시 전 세계 시장에서 미국 브랜드를 위협했다.

결국 미국 경제는 침체의 터널로 빠져들어 갔으며, 빠르게 유출된 미국의 금 보유량은 달러에 대한 금태환마저 정지시켰다. 30년 가까이 이어온 브레튼 우즈 체제가 닉슨 쇼크로 인해 해체되면서, 이런 화폐 시장의 위기는 현물시장으로 옮겨가 두 번의 오일 쇼크를 초래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 폴 볼커는 20%의 높은 금리로 위기를 탈피하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수익률이 악화된 미국 제조업 브랜드들을 연쇄적으로 무너트리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게 브랜드 개척의 시대로부터 이어져온 미국 브랜드들의 위상은 점차 무너졌고, 그 자리를 급격히 성장한 일본과 서유럽 브랜드들이 차지하게 된다. 일본의 전자제품 사례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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