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불황은 없다
전현미 지음 | 태인문화사
나에게 불황은 없다
전현미 지음
태인문화사 / 2018년 5월 / 264쪽 / 14,000원
chapter 1 절실하면 이루어진다
연봉 1억의 백화점 매니저
나는 백화점 근무 8개월 만에 매니저가 되었다. 백화점 구경조차 해본 적 없던 내가 서울 한복판 최고의 백화점 매니저가 된 것이다. 경력 10년의 베테랑도 못하는 어려운 일을 말이다. 나 스스로도 내가 어떻게 ‘판매계의 신화’ 대접을 받으면서 억대 연봉의 매니저로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는지 믿기지 않는다.
내가 백화점 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2002년 겨울이었다. 그해는 한국 축구가 월드컵 4강 신화를 만들어 낸 덕분에 온 나라 안이 축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나 우리 가족에게는 남편의 부도라는 날벼락이 떨어졌다. 큰 사업체를 경영한 것은 아니었으나 착하기만 한 남편이 빚보증을 잘못 선 탓에 사업은 거덜이 났다. 부자는 망해도 3년 먹을 것이 있다는데 우리는 무거운 채무만 짊어졌을 뿐, 먹고살기 위한 최소한의 돈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해 10월, 우리 네 식구는 충북 제천에서 야반도주하듯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어떤 희망이 서울에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딸은 초등 3학년이었고, 아들은 고작 세 살짜리 젖먹이 어린아이였다. 나는 아이들과 먹고살기 위해서 처절하게 몸부림을 쳤지만 서울 하늘은 어둡기만 했고 빌딩숲은 현기증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방 한 칸짜리 반지하에 화장실도 밖에 있는 집에 이사를 온 날,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어쩔 줄 몰랐다. 나는 설움을 참으며 “수정아, 서울은 집값이 비싸서 당분간 여기서 살아야 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딸아이가 밝게 웃으며 “와, 엄마! 사실 나 이런 방에 살아보고 싶었어요.”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겨우 열 살짜리 아이의 속 깊은 생각에 나는 가슴이 미어졌다.
누추한 단칸방에 앉아 있으려니 나의 청소년 시절이 떠올랐다. 여섯 식구가 셋방살이를 하며 살던 그 어려웠던 시절, 나는 중학교를 간신히 졸업한 뒤 바로 근처 방직공장에서 일을 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친구들은 깨끗한 옷을 입고 다닌 데 반해 나는 시커먼 기름 묻은 몸빼바지를 입고 가난에 찌들어 일해야 했다. 어쩌다 길에서 친구들을 마주치게 되면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그들을 피하거나 외면하며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다짐하면서 이를 꽉 물었다. 가난하게 태어난 건 죄가 아니지만 가난하게 사는 것은 죄라는 말을 되새기며…….
그런데 내가 반지하 단칸방에 처박힌 두 아이의 엄마 신세라니 정말 믿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 돌이켜 보면 운명은 나의 편이었던 것 같다. 나는 미아리에 있는 백화점 주부사원 모집 광고를 보고 이거다 싶었다. 백화점 아르바이트 경력은 없었지만 결혼 후 신사복 매장에서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었고, 남편의 식당 등 서비스업의 일들을 도와준 경험이 있었기에 나는 당당하게 이력서를 들고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관은 당시 그 백화점의 대리였는데, 까만 피부에 깐깐해 보이는 외모를 지닌 인물이었다. 그분은 내가 경력도 없는 데다 판매사원을 구하는 브랜드가 젊은 친구들을 주로 상대해야 해서 합격시킬 수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 이력서에 적어낸 경력은 경력으로 인정도 해 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난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벼랑 끝에 매달리는 절박한 심정으로 그분을 붙잡고 늘어졌다.
“대리님,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저는 뭐든지 잘할 수 있어요.” “이러시면 곤란해요. 안 된다니까요.” 나는 난처해하는 그의 얼굴에서 일말의 희망을 보았다. “한 달, 한 달만 일하게 해 주세요. 한 달만 해 보고 제대로 못하면 그땐 내 발로 나갈게요.” 대리님은 아주 곤혹스런 표정을 짓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좋아요, 한 달입니다. 한 달짜리 단기 아르바이트니까 그렇게 아세요.” “네, 고맙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잘하겠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 달만이라도 일할 수 있게 해 준 대리님이 날 살려 준 은인이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한 달짜리 단기 아르바이트생으로 백화점 업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날 이후로 자존심 따윈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가족들과 먹고살기 위해 반드시 백화점에서 살아남으리라 다짐, 또 다짐했다.
한 달짜리 시한부 아르바이트생에서 계약직 주부사원으로: 한 달짜리 단기 아르바이트생 신분이었기에 동료 직원들은 나에게 좀처럼 곁을 내어 주지 않았다. 먼저 다가가려 노력해도 단답형으로 대답하기 일쑤고, 모르는 걸 물어보려 해도 시큰둥하게 대답하거나 말꼬리를 흐리며 자리를 피했다. 그렇다고 해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일단 부딪혀 보고 깨져 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른 직원들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하고, 매일 직원들보다 한 시간 늦게 퇴근하기로 다짐했다. 백화점 업무 특성상 손님을 응대하느라 시간 안에 처리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아 뒷정리를 하는 데만 해도 족히 한 시간 넘게 걸리는 잔업들이 많았다.
나는 아침에 한 시간 일찍 출근하여 매장의 모든 청소를 도맡아 했고, 출근하는 동료 직원들에게 모닝커피를 타 주며 그들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퇴근시간이 되면 직원들을 보내고 난 후 남아서 전표 정리, 수선품 챙기기, 장부 정리 등의 업무를 꼼꼼하게 처리했다. 주변에서는 자존심도 없냐고 이야기했지만, 여기서 잘해 내지 못하면 가족들과 다시 한 번 길거리에 나앉아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에 더욱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나는 그 말을 간절하게 믿고 실행했다. 결국 한 달짜리 단기 아르바이트생으로 일을 시작한 나는 잘리지 않았다. 어느덧 세 달, 네 달 계속 일을 하고 있었다. 한 달짜리 단기 아르바이트생에게 계약직 주부사원으로 말이다. 그리고 일정 시간이 지나자 정직원과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되었다. 더구나 백화점 유니폼에서 브랜드 사복을 입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당시 백화점에서는 보통 계약직이나 주니어 사원은 검은색 단조로운 유니폼을 입고 일을 했고, 각각 차이는 있었지만 대부분 브랜드 사복은 5년 차 이상의 시니어와 10년 차 이상의 매니저인 정직원만 입을 수 있었다. 3개월 차 주부사원이 브랜드 사복을 입는다는 건 가히 파격적인 대우였다.
내가 그런 대우를 받게 된 데는 매장을 운영하는 나만의 방식이 성공을 거둔 덕분이었다. 내가 근무한 매장은 브랜드 특성상 이것저것 비교해 보기보다는 매장에 와서 물건만 집어 바로 포장해 가는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단일 품목 매출은 높았지만 두 제품 이상을 구매해 가는 고객은 드물었다. 여기서 나의 세일즈 감각이 빛을 발했다. 나는 한 손님에게 한 제품이 아닌, 두 개, 세 개, 혹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 착장을 판매해 보기로 결심했다. 일명 정성과 서비스를 가장한 ‘찰거머리 작전’이었다.
나는 물품 구매를 망설이는 고객 곁으로 다가가 끈질기게 구매를 유도하는 것은 물론, 셔츠를 걸쳐 보는 손님에겐 셔츠 단추 하나하나를 끼워 주고, 바지를 착장하는 경우엔 두 무릎을 꿇고 손님의 움직임에 따라 단 높이를 맞춰 가며 몸에 맞는 최적의 바지 길이를 찾아 주는 등의 서비스를 했다. 평소 이런 서비스를 받아 보지 못한 손님들은 연일 감동했다. 뿐만 아니라 손님이 셔츠를 하나 고르면 그에 맞는 바지와 니트, 카디건을 골라 주고 거기에 맞는 코디 응용법까지 안내하니 셔츠 하나 구매해 갈 작정이던 손님들도 매장 밖으로 나갈 땐 쇼핑백 서너 개를 들고 나가는 것은 기본이었다. 매출이 네 배, 다섯 배로 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백화점 선임자들 모두가 놀랄 정도의 실적을 아주 짧은 시간 내에 이루어 냈다. 당시 고객이 친절한 사원을 뽑아 주는 제도가 있었는데 나는 한 달에 한 번은 친절 사례가 올라 와서 몇 번의 친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 실적 덕분에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3개월 만에 정식직원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주위에서 일 잘하는 사람을 알아보는 나의 눈썰미 덕분이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배울 것이 있는 사람이라고 여겨지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고 따라 해 가며 배웠다. 가령 그들의 인사말도 좋아 보이면 바로 적용을 했다. 물건을 사고 나갈 때 그냥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가 아니라 “멋지게 입으세요”, “또 뵐게요” 하고 말했다. 처음엔 낯간지럽기도 하고 누군가를 따라 한다는 것이 창피하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더 당당하게 내 것으로 만드는 연습을 쉬지 않고 했다.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장점을 따라 하다 보니 어느새 나도 그렇게 변해 가고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생각놀이’에 빠져 있었다. 정직원 못지않은 대우를 받고는 있었으나 나는 아직 계약직 주부사원이었다.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머릿속으로 정직원이 되는 그림을 그렸다. 판매실적과 서비스 정신으로 업무 능력을 인정받으면서부터는 이왕 하는 거 ‘최고가 되자!’ 하며 다짐 또 다짐했다. 어이없게도 나는 멋진 매니저들을 보며 내가 매니저가 되어 있는 미래 모습을 하루도 빠짐없이 그려 보았다. 그런데 그런 꿈이 그렇게 빨리 현실로 다가올 줄을 그 누가 알았을까!
어느 날 내가 근무하던 브랜드의 경쟁사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나이도 있는 분이 왜 여기서 주부사원으로 있어요?” 처음에 나는 그가 하는 말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함께 일해 보자고 제안을 했다. 성실하고, 잘 웃고, 친절하고, 판매도 제일 잘한다는 소문을 들었다며 파격적인 스카우트 제안을 한 것이다. 일개 임시직 주부사원인 나에게 어떤 직급도 거치지 않고 바로 매니
저 자리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몹시 흥분되기도 했지만 그보다 당황스러웠다. 타 백화점 경쟁 브랜드의 매니저로 간다고 생각하니 잘할 수 있을까 싶어서 덜컥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나에겐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 두려운 마음이 앞섰으나 나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론다 번의 저서 『시크릿』에는 ‘끌어당김의 법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내가 이루어진다고 강렬하게 믿고 생각하면 우주가 호응을 해 오고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놀이’에 빠져서 정직원이 되고 매니저가 되는 꿈을 막연히 머릿속으로만 그렸는데 이렇게 빨리 이루어지다니 정말 믿기지가 않았다. 그 후 나의 ‘생각놀이’는 소원을 이루는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 나는 하고자 하는 일의 결과나 내가 되고자 하는 나의 모습을 그림을 그리듯 머릿속으로 그려 보고 생각을 집중시켜 그렇게 되기 위한 행동을 반드시 했다. 내가 계속 매니저의 꿈을 꾸고 간절하게 행동했더니 진짜 믿기지 않게 빠르게 그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렇게 나는 8개월 만에 경쟁 브랜드 매니저 최고 호봉을 받으며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다.
chapter 2 고객은 내 삶의 동반자이다
고객의 마음을 홀딱 반하게 하라
접객 혁명 시대가 왔다. 백화점에 VR(가상현실) 기술을 적용한 ‘VR 스토어’를 오픈하기도 하고, 로봇이 매장 입구에 서서 고객을 안내하는 등 다양한 접객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우리 매장은 고객이 찾아오면 상품을 보여 주기보다 그날의 이슈나 새로운 소식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고객과의 소통을 시도한다. 한 번 물건을 팔고 마는 손님이 아니라 지속적인 인연을 맺는 고객을 원하기 때문이다. 『성공하는 기업의 8가지 습관』이라는 책을 보면 100년이 넘도록 영속하는 기업에는 ‘핵심 가치’라는 공통분모가 있다고 나온다. 그것은 시장 변화나 시대 상황이 바뀌어도 절대 바뀌지 않는 가치다.
나는 작은 매장이지만 우리 매장에도 ‘핵심 가치’를 도입했다. 그것은 바로 ‘행복’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인간이 살아가는 목적이 행복이라고 설파하지 않았던가. 나는 우선 그 행복을 우리의 사업장인 매장 중심으로 생각했다. 직원의 행복, 나의 행복이 있어야 고객의 행복도 얻을 수 있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나는 일단 나 자신부터 많이 웃으려고 노력했다. 즐거운 일이 있어야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해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나는 조금 우울한 일이 있어도 내가 먼저 웃으면서 밝은 분위기를 만들어 나갔다. 일찍 출근하여 청소도 하고, 직원들에게 커피를 타 주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도 행복이라는 우리 매장의 미션을 실천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매장의 식구들은 매일이 축제인 것처럼 근무를 하니 인사도 자연스럽고 출근할 때도 신날 수밖에 없다.
매장의 분위기가 좋다 보니 지나가던 고객들이 들어오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서 혼연일체가 되는 경우도 많아졌다. 처음에는 제품을 구매할 의사가 없던 분들도 미소 띤 얼굴로 “웬일이죠? 이 매장에서는 뭐라도 꼭 사서 나가야 할 것 같아요.” 하면서 고객이 되기도 했다. 단골고객들은 우리 매장에 들르시면 사소한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회사 이야기, 자식 이야기, 사는 이야기 등 다양하면서도 소소한 이야기를 하다 가곤 한다. 요즘은 혼자 사는 분들도 많으셔서 그런지 누가 조금만 이야기를 경청해 주면 고객도 진심으로 우리 매장을 걱정해 주기도 하고, 매출을 올려주는 등 서로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이가 되었다. 고객 감동은 멀리 있지 않다. 그들의 고통과 불편함을 해소해 줄 수 있고, 그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것이 고객을 내 편으로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젠 가식은 통하지 않는다. 진심만이 전달될 뿐이다. 그렇게 진심을 주고받을 때가 고객과 판매사원 모두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다.
“이 매장은 에너지가 참 좋아”: 10여 년째 관계를 맺고 있는 고객 한 분이 계신다. 그분은 원래 L백화점 정장 브랜드 고정 고객이셨는데, 무슨 까닭인지 S백화점의 우리 매장을 방문했다. 사실 우리 매장을 찾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매장을 처음 찾는 분이었으나 나는 그가 제법 손이 큰 고객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한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다 보니 과연 그분은 사업체도 크게 하고, 사회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둔 분이셨다. 게다가 그분은 타 백화점 VIP 고객이었다.
그런데 그분은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다. L백화점 제품이나 서비스에 불만이 있어서 우리 백화점을 찾으신 것 같기는 한데 영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고 말을 빙빙 돌리면서 핵심을 피해 갔다. 최선을 다해서 한 시간 이상 우리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서 설명을 했으나 고객은 만족하지 못하셨는지 계속 질문만 했다. 그때 나의 뇌리에 필살기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는 그분에게 차를 한잔 더 대접하면서 일단 소파에 다시 앉으시라고 말했다. “고객님, 쇼핑이 많이 힘드시죠? 원래 쇼핑은 힘든 거예요.” 이렇게 운을 떼고 나서 나는 그분에게 이렇게 말씀을 드렸다. “고객님, 우리 브랜드도 못 믿겠고 백화점도 못 믿겠고……. 음, 그렇다면 고객님, 그럼 제안을 하나 드릴게요. 아무것도 믿지 못하시겠으면 고객님 앞에서 한 시간 동안 함께한 전현미라는 매니저를 한 번만 믿어 보실래요?”
그러자 그분의 얼굴에 화색이 번지시더니 “지금 하신 말씀 대박입니다.” 하시며 내 손을 꽉 잡는 것이 아닌가. 그때부터 대화의 창이 열리고 우리의 대화는 일사천리로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많은 비즈니스 경험을 했지만 자신을 파는 매니저 처음 봐요! 그래, 전현미라는 매니저를 믿어야지. 하하하하. 대신 매니저도 나를 믿어 보세요.” 그러더니 그분은 단숨에 제품 구매 결정을 했고, 첫날 구매가 지금까지 인연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이미 10년 전의 일이지만 나는 그날 그분이 툭 던진 말을 아직까지도 잊지 못한다. “이 매장은 에너지가 참 좋아.”
그분은 한 시간 이상 애를 먹이기는 했으나 우리 매장의 분위기를 떠보려고 그토록 오래 말을 빙빙 돌리면서 앉아 계셨던 것이었다. 그날 그분은 매장을 떠나면서 매장이 이렇게 좋은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며 칭찬을 해 주셨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나는 항상 고객의 행복과 직원의 행복을 매장의 미션으로 만든 나의 혜안에 진정한 행복을 느꼈다. 우리 매장은 행복한 분위기로 고객을 홀딱 반하게 만드는 마법을 가진 매장이 된 것이다. 나는 오늘도 시골 마을회관 같은 매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