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할 용기
이현호 지음 | 서울문화사
실패할 용기
이현호 지음
서울문화사 / 2016년 1월 / 256쪽 / 12,800원
1장 영업, 가슴 뛰는 나의 일
촌놈, 화려한 서울 데뷔
내가 세일즈로 첫 단추를 꿴 곳은 글로벌 기업 존슨앤존슨의 계열사 올소 클리니컬 다이어그노스틱스이다. 지금이나 그때나, 청춘이라면 누구나 입사하고 싶은 기업 중 하나다. 명문대 출신들이 구름 같이 몰려들었기 때문에 강원도에서 대학을 마쳤던 나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25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하였다. 나에게 이런 기회가 찾아왔던 건 우연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나에겐 영어 실력과 발표력, 체력이라는 세 가지 무기가 있었다.
존슨앤존슨에 입사 지원했을 때 나의 토익점수가 965점이었는데 입사 후 평가에서는 만점을 받았다. 나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성적이었지만 가정 형편상 춘천 소재의 강원대학교에 진학했었다. 대학 초반에는 특별한 꿈도 의욕도 없이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마음속에 꼭꼭 숨겨두었던 꿈의 불씨가 살아나는 계기를 만났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을 때 라디오 뉴스에서 화제의 인물이 소개되었다. 모 지방대 학생이 우수한 영어 성적을 바탕으로 외국의 명문 대학에 유학을 가서 공부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사람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자신의 비전을 말했다. 그 뉴스를 듣고 있던 나는 갑자기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 사람은 글로벌 무대에서 청춘을 펼치겠지만, 나는 지방 한 구석에서 젊음을 흘려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씁쓸해졌다. 도중에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으면서 생각에 빠졌다. 그 대학생의 패기 넘치는 목소리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하면서, 나는 속으로 결심했다. ‘우선, 영어를 마스터해 보자. 외국 무대에서 활동하는 걸 대비해서 말이야. 청춘을 이대로 흘려보낼 수 없지!’
이후로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건축 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회화 테이프를 들었고, 군대에서도 시간만 나면 영어 공부를 했다. 제대 후에는 막노동 알바를 해서 모은 자금을 들고 친척이 있는 미국으로 건너가 2년 정도 생활했다. 그곳에서 짧은 어학연수를 마치고 뉴욕시립대에서 마케팅을 공부했다. 또 담당 교수님의 주선으로 뮤지컬 퍼포먼스 회사의 현장에서 일하면서 실무적인 지식과 함께 영어실력을 키웠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춘천에서 영어 동아리를 만들어 이끌면서, 더욱 영어 실력을 높여 간 끝에 토익 만점을 받을 수 있었다.
나의 또 다른 무기는 발표력이었다. 대학교 때 과대표를 맡는 등 앞장서서 일을 추진하는 편이었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 앞에 서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또박또박 전달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사실, 지금에 와서 고백하는 것이지만, 워낙 부끄러움을 타는 성격이라 사람들 앞에서 말 한마디 못하던 성격을 개조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발표력이 향상되어왔다. 어찌 보면, 성장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끝에 얻어낸 후천적 장기이지 타고난 재능은 결코 아니다.
마지막 무기는 체력이었다. 경쟁에서 다른 건 몰라도, 체력에서는 뒤지지 않으리라는 각오가 있었다. 때문에 대학 재학 중에 205특공여단에 자진 입대해서 힘든 훈련을 받으며 체력을 단련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5특공마라톤과 205특공수영이다. 완전군장을 하고 7킬로미터를 전력 질주하는 205특공마라톤에서 나는 참가자 500명 중 1등을 했다. 205특공수영대회에서도 1등을 해서 포상 휴가를 받기도 했다. 이렇게 기초 체력을 다져온 결과, 나는 40대 중반이 지난 지금도 25킬로미터 수영을 할 수 있다. 내가 이렇게 장거리 수영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가난한 가정을 이끌던 아버지가 소양강에 빠져 익사하셨다. 이 일을 겪은 나는 많은 시간을 수영에 투자했고, 누군가 물에 빠지게 되면 내가 직접 구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각오로 오랫동안 장시간 수영연습을 수없이 반복해 왔다. 그 결과 25킬로미터 수영을 완주하는 강철 체력을 얻을 수 있었다. 슬픔과 한이 만들어 낸 기초 체력인 셈이다.
가슴 뛰는 사명 의식
존슨앤존슨에서 시작된 나의 세일즈맨 생활은 순탄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어느 날 한 대학 병원에서 프레젠테이션을 마치고 나오는 내게 누군가 명함을 내밀었다. 그날은 검사 장비 입찰 경쟁 프레젠테이션이 있는 날이었는데, 나는 일개 사원 신분으로 발표를 진행했다. 경쟁업체인 대기업과 글로벌 기업에서는 다들 부장급 간부가 발표를 했다. “프레젠테이션을 참 잘하시네요. 처음엔 못 보던 부장이 새로 영입되었나 생각했어요. 아직 사원이라면서요? 그렇게 좋은 재능을 더 큰 기업에서 펼쳐보는 게 어떻습니까?” 그분은 로슈 다이어그노스틱스 간부였다. 업계 1위 업체 간부의 솔깃한 요청에 마음이 흔들렸다. 존슨앤존슨의 자회사 올소 클리니컬은 국내 비즈니스를 축소하고 있는 상황이라 내 꿈을 맘껏 펼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었다. 결국 로슈의 영업이사님과 면담을 하고 이직을 결심했다.
이후, 나는 로슈 다이어그노스틱스 세일즈 책임자로 서울대병원, 충남대병원, 고려대병원 등 국내 굴지의 병원을 대상으로 마음껏 영업을 펼쳤다.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세일즈 감각과 선진화된 글로벌 기업 문화를 익힐 수 있었다. 무엇보다 글로벌 기업이 능력 위주로 직원을 선발하고 보상해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세일즈 실력을 인정받자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글로벌 기업에서는 누구에게나 CEO의 기회가 열러 있어. 한국 기업과는 완전히 달라. 세일즈로 최고 성과를 낸다면 내가 CEO가 되는 게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야. 아니, 가능하고도 남아.’ 나는 퇴근 후에 강남 역삼동에 있는 학원에서 MBA 과정을 목표로 GMAT 공부를 해나갔다. 언젠가 글로벌 기업 대표가 되었을 때, 꼭 필요한 전문 지식을 미리 쌓아두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중 2005년에 글로벌 금융회사에서 이직 제안이 들어왔다. 제안을 한 곳은 푸르덴셜생명이었다. 사실, 그때만 해도 보험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다. 어머니는 나의 이직을 극구 반대하셨다. “동네 아줌마나 하는 일을 왜 네가 하냐? 그 좋은 회사를 놔두고 하필 보험회사냐?” 이런 식이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다국적 기업에서 근무하는 전도유망한 남편을 늘 자랑스러워했는데, 그런 자랑스러운 남편이 어떻게 보험 영업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고심 끝에 푸르덴셜생명 한얼지점의 이성훈 지점장과 면담하기로 했다. 아직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사무적인 만남이었는데도 소탈하게 대해주셨다. 그래서 어렵지 않게 가족사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러나 힘들었던 가족사를 이야기하던 중 나는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꺼이꺼이 통곡하고 말았다.
내 말을 경청하던 지점장님이 내 등을 토닥이며. 자신도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고학했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슬며시 이런 말을 꺼냈다. “이제, 앞으로 자네가 할 일은 자네와 같은 불행한 가정이 생기는 걸 막는 거야. 세상의 수많은 가정을 지키고 있는 아버지가 만에 하나 쓰러져 버리면 남은 가족은 누가 책임지느냐는 거지. 남은 가족에겐 고생길이 펼쳐질 수밖에 없지 않겠어? 그러니까, 자네가 할 일은 그런 가정의 불행을 막는 수호천사가 되는 거야. 누구보다 그런 가정의 불행을 잘 알고 있는 자네야말로 이 일이 제격인 셈이지. 잘 생각해보게. 만약, 자네 아버지가 1억 원짜리 종신보험에 들었더라면 가족들은 그 고생을 하지 않았겠지? 자네도 안정되게 공부를 해서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겠지. 자, 이제 알겠나? 내가 자네에게 권하는 일은 사명감을 갖고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일이야.”
‘사명감’이라는 말과 ‘가정의 평화’라는 말이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그때까지 나는 특별한 사명 의식 없이 순탄한 영업맨의 길을 걸어왔다. 열심히 발로 뛰고, 목이 쉬도록 면담을 하고 프레젠테이션을 해서 높은 성과를 거두었고, 그래서 궁극적으로 다국적 기업의 CEO가 되는 게 목표였다. 순전히 나를 위한 계획뿐이었다. 그런데, 지점장님이 내게 제안한 것은 남을 위한 일이었다. 사회의 기본이 되는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지키는 일이었다. 가슴이 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게 바로 내가 가야할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이야말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으며, 또한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다시 아버지 묘소를 찾았다. 아버지에게서 내가 가정의 행복을 지키는 일을 해도 좋다는 무언의 응답을 받았다.
사명 의식을 안고 시작한 보험 세일즈라 처음부터 각오가 남달랐다. 입사하자마자, 내게 이직을 권했던 지점장에게 간곡하게 부탁했다. “지점장님, 세일즈의 모든 노하우를 전수해 주십시오. 단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제 것으로 만들겠습니다. 걱정하던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성공하고 싶습니다.” 이 지점장님이 내게 A4 한 장을 건넸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그대로 적고 사인을 하게. 나 이현호는 지점장이 시키는 일을 모두 완수하고 정해진 룰은 반드시 지키겠다.” 그 말을 그대로 받아 적은 후 사인을 하고 지점장님에게 주었다. 종이를 받은 지점장은 선물로 줄 게 있다며 작은 상자를 건넸다. 상자 안에는 시가 커터가 들어 있었다. 지점장님이 단호한 눈빛으로 말했다. “자네, 앞으로 날마다 하루에 일곱 명을 만난다면 1년에 1억을 벌 수 있네.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에 일곱 명을 만나야 하네. 만약, 일곱 명을 채우지 못하면 그 벌로 시가 커터로 손가락 한 마디를 직접 자르게.” 등에 얼음물을 끼얹은 듯 냉기가 쫙 끼쳐왔다. 시가 커터로 진짜 손가락을 자르는 일이야 있겠느냐마는 그만한 각오를 갖지 않고서는 보험 영업자로로 성공하기 힘들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이후로 처음부터 세일즈를 배우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했다. 지점장님이 가르쳐주는 것, 지켜야 할 룰을 하나도 빠짐없이 따랐다. 하지만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 해도 1년 내내 하루에 일곱 명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럴 때 나에게 심기일전 할 수 있는 ‘처벌’을 내렸다. 귀가하지 않고, 지점장님이 선물해 주신 회사 간이침대에서 잠을 잤다. 한겨울에도 화장실에서 얼음물로 세수를 했다. 악착같이 나를 다그치고 다그치면서 프로 세일즈맨의 길로 나아갔다. 3개월 뒤 평가에서 동기 62명 중 1등을 했다. 그리고 1년 만에 연봉이 1억 2,000만 원이 되었다. 전 세계 금융 보험 서비스 네트워크인 MDRT 컨퍼런스에 참가하는 영예를 얻기도 했다.
실패는 필수, 극복은 선택!
보험 영업자로 주가를 올리던 나는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에서 열린 MDRT 컨퍼런스 참가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북미, 유럽 등 선진국에서 활동하는 종합재무설계사들을 통해 선진금융서비스에 관한 정보를 들었고, 이를 통해 종합 재무설계사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병원장 자산관리 전문회사인 골든와이즈닥터스컨퍼니로 스카우트되었다. 영업자로 살아오던 내가 벤처 창업을 하게 된 건 이곳에서의 경험 덕분이었다.
하루는 모 병원장과의 면담이 끝난 후 차를 마시고 있었다. 누군가와 통화를 마친 원장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 팀장님, 이번에도 도와주세요.” 무슨 말인지 직감했다. 병원에서는 직원들이 갑자기 일을 그만두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번에도 나에게 좋은 직원을 소개해 달라는 것이었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병ㆍ의원들이 몸살을 앓고 있는 문제가 바로 직원 이직 문제였다. 병ㆍ의원은 경력직들이 오차 없이 맡은 바 소임을 착착 진행해야 하는 조직이다. 그런데 어제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근무하던 간호사가 다음 날 자리를 비우게 되면, 만만치 않은 타격을 입게 된다. 그러니 병원으로서는 직원 한 명 한 명이 매우 소중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내가 만나본 수많은 간호사, 치위생사들은 하나같이 볼멘소리를 했다. “원장님이 우리를 머슴 부리는 듯 하는 게 못마땅해요. 말로는 한 가족이다, 비전을 공유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달라도 너무 달라요. 원장님은 직원들과 소통을 하는 데도 서툴고, 일한 보람을 느낄 수 있게 제대로 대우를 해주지도 않아요.” 이렇듯, 병ㆍ의원 직원들은 한곳에서 오래 만족하면서 근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시도 때도 없이 다른 병원으로 이직을 하는 일이 발생하곤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내가 직원을 소개해준다 한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마찬가지였다. 내가 좋은 경력을 갖고 있는 직원을 이 병원에 소개해주더라도 1~2년을 못 버티고 그만둘 게 뻔해 보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결심하듯이 병원장에게 말했다. “원장님 벌써 제가 직원을 네 번 소개해 드린 것 같은데요, 사후약방문식 처방 말고 근본적으로 직원이 이직을 하지 않게 하는 방안을 강구해야겠어요. 다음에 올 땐 제가 대책을 마련하겠습니다.” 병원장의 표정은 기쁨 반 의구심 반이었다. 과연 그런 게 있을 수 있을까 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꼭 그걸 만들어내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솔직히 내가 이렇게 병원장의 어려움을 해결하겠다고 나선 건 궁극적으로 내 본업을 위해서였다. 병원장을 대상으로 종합재무컨설팅을 하는 나는 금융 상품을 더 많이 팔기 위해 병원장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어야 한다. 다년간 병ㆍ의원 세일즈를 해본 결과 의사들에게는 공통된 꿈이 있었다. 그건 바로 자신의 이름을 건 병원을 개업하는 것이다. 성공 개원을 위해 의사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음의 여섯 가지 정도이다. 1. 입지, 상권 분석 컨설팅 2. 홍보 마케팅 컨설팅 3. 직원 선발 및 교육 컨설팅 4. 자산 관리 컨설팅 5. 부동산 컨설팅 3. 리더십 컨설팅
나는 이 여섯 가지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대부분 병원장은 여섯 가지 중 서너 개를 해결해주길 바란다. 그게 파악되면 나는 팀원들과 함께 해결책을 고민한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병원장과의 교류가 이어지면, 비로소 병원장은 나에게 마음의 문을 연다. 이렇게 되면 내 본업인 금융 상품 세일즈는 순풍을 만난 돛단배처럼 흘러간다. 이렇듯 병원장에게 먼저 도움을 주는 게 결국 내 본업에 도움이 된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병원장들이 가장 골머리를 앓고 있는 직원 문제는 나에게도 큰 숙제였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인재 풀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보다 근원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치위생사 200여 명과 네 명의 대학교수를 초청하여 세미나를 개최했다. 세미나가 끝날 때 쯤 이직의 이유를 묻는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설문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직의 원인을 파악한 결과 세 가지 문제가 도출되었다. 첫 번째는 짐작대로 소통의 부재였다. 병ㆍ의원의 경우 특히 직원과의 수평적인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 못했다. 두 번째는 노동의 강도에 비해 낮은 급여였다. 세 번째는 보잘것없는 처우와 복지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6개월 동안 조사하고 연구했다. 결론은 어렵지 않게 나왔다. 대책은 이직 원인 세 가지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쌍방향으로 정서적 소통이 가능하게 하고 두 번째 재무컨설팅과 교육 등으로 실질 소득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해주고 세 번째 복지를 높여주는 것이었다. 이를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신개념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나는 이런 신개념 복지 프로그램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IT 벤처를 창업하기에 이르렀다. 적은 비용으로 복지 혜택을 최대한 누릴 수 있는 복지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직원 이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비즈니스를 시작한 것이다. 내가 아는 한 병ㆍ의원을 대상으로 한 복지 프로그램은 대한민국 최초였다. 2008년 10월, 나는 종합재무설계사의 커리어를 접었다. 영업자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나였기에 실패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시장에 대한 분석과 그 타당성 조사에 기초한 논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성공을 확신했다. 그러나 이론과 현실 사이의 벽이 너무나 높았다. 그리고 모든 게 예측 불허였다. 결국, 첫 번째 병ㆍ의원 복지 프로그램 기반 비즈니스(V1.0 CWS)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실패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앞선 프로그램을 보완한 V2.0 TEAP, 고객 관리 상품으로 내세운 V2.0 HCS가 모두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