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토피아 미래에 중독된 사람들
마이클 달렌 지음 | 미래의창
넥스토피아 미래에 중독된 사람들
마이클 달렌 지음
미래의창 / 2013년 11월 / 224쪽 / 12,000원
기대사회로의 초대
“당신은 큰 기대를 품었지. 나에게 영혼까지 팔 기세였어.” ‘Great expectation’ 중에서, 키스: 애플의 아이패드, 디즈니의 만화영화 <카> 그리고 타임스퀘어 광장에 있는 코카콜라 광고판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이 모두는 인류의 행동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는 신호이자 새로운 방향으로 사회가 진화하고 있다는 징표로 통한다. 20세기 중반부터 대부분의 지역에서 이러한 진화가 시작됐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그 기세가 거세지면서 20세기 마지막 몇 년 동안은 떠들썩하게 증폭돼 나타나기도 했다. 이러한 징후들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보여 주는 핵심 특성이기도 하다. 또 우리의 삶과 일 그리고 사랑이 미래에는 어떤 방식으로 펼쳐질지를 가늠하게 해 주는 일종의 ‘미리 보기’와도 같다. 이를 통해 우리는 기대사회의 모습이 어떨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엿볼 수 있다.
오늘 밤, 당신이 원하던 상대와 데이트하러 간다고 상상해 보라. 십중팔구 몹시 흥분되고, 이번 데이트가 지금까지 중에서 최고로 멋질 거라는 기대로 한껏 부풀 것이다. 기대사회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오늘 있을 데이트를 기대하면서 이른바 ‘넥스토피아(Nextopia)’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이곳에서 최고의 데이트는 바로 ‘다음번’의 만남이다. 넥스토피아는 우리에게 약속한다. 다음 데이트, 다음날, 당신이 구매할 다음 제품 등 바로 다음의 것들이 예전의 것들보다 더 나을 거라고. 오늘 무언가가 충족되고 나면 그다음 것에 더 관심이 가게 마련이다.
그렇게 넥스토피아의 영역으로 들어가면서 우리는 스스로 ‘기대’라는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 가며 ‘기대사회’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기대사회는 사람들에게 행복해질 기회를 아주 많이 제공한다. 그 어느 곳보다 성공하기 쉬운 세상, 하지만 그 성공을 유지하는 것 역시 가장 어려운 곳이 바로 기대사회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아직 하지 않은 결혼에 대해 잔뜩 기대한다. 그러나 막상 결혼을 하는 그 순간부터 결혼이 주는 행복은 사라져 버린다. 지금 것이 다음 것보다 더 나을 수 없는 사회, 언제나 다음 것이 더 나은 곳이 바로 기대사회다.
2007년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 출시를 발표했다. “아이팟, 전화기, 모바일 인터넷 통신기, 이 세 가지를 합친 제품, ‘아이폰’을 소개합니다.” 출시까지 한 달이나 남았지만 아이폰에 대한 문의가 폭주했다. 애플의 주가 역시 두 배 이상 뛰었다. 그리고 마침내 전 세계가 고대하던 그 제품이 뉴욕에서 출시됐다. 아이폰은 나오자마자 바로 동이 났다. 한 대에 599달러나 되는 신제품을 확보하려고 모두가 아우성이었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나자, 가격은 399달러로 떨어졌다.
애플이 다른 기업들보다 유독 돋보이는 부분은 ‘사람들의 기대 심리를 제어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에 있다. 애플은 신제품 개발과 출시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를 야금야금 푸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기대감을 극대화했다. 하지만 이렇게 극대화된 기대감은 제품이 실제로 출시되는 순간을 기점으로 대개 실망으로 바뀐다. 그 제품이 넥스토피아에 존재하는 동안에만, 사람들은 그 제품을 갖고 싶어 한다. “아이패드를 언제 손에 넣을 수 있을까?” 이것이 기대감의 핵심이다. 긴 기다림, 선주문, 제한된 공급 그리고 품절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기대감은 계속해서 또다시 증폭된다. 그리고 마침내 고대하던 그 제품을 손에 넣었을 때, 사람들은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제품에는 자신이 기대했던 몇 가지 사양들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때 애플은 또다시 ‘기대 게임’을 시도한다. 즉, 성능이 한층 개선된 제품이 출시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말하는 것이다. 다음번에는 사람들이 바라는 모든 것을 다 충족시킬 수 있다고 장담하면서 말이다. 결국 우리는 완벽한 제품에 한 걸음씩 다가갈 때마다 기다리고 실망하고 또 기다리고 실망하기를 반복할 뿐이다.
애플의 이러한 방식은 참으로 기발한 마케팅 기법, 바로 ‘넥스토피아 마케팅’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기계 장치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열광하기도 하고 앞으로 4년 후에 개봉될 영화에 흥분하기도 한다. 기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이미 했거나, 벌써 일어난 일에는 흥미를 잃는다. 대신 곧바로 다음 할 일에 더 주목한다. 어제 기대했던 ‘그날’이 오늘이었듯이, 이제 오늘의 새로운 관심사는 바로 ‘내일’이다. 명성은 과거의 ‘성과’가 아니라 ‘기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기대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의 성과이다. 꼭 오스카상을 받고 레드 카펫을 걸어야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오스카상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해 준다.
물론 기대사회에 좋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성과를 중요시 여기던 그 자리를 미래의 성과가 차지한 것일 뿐, 그 두 가지 모두가 우리를 힘들게 만든다는 점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대사회에서는 기대감이 주는 행복감에 내내 취해 있을 수가 없다. 오래도록 행복을 느끼고 싶다면 계속해서 새로운 기대감을 품어야만 한다.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난 몇 년 동안 행복한 순간을 점점 더 많이, 더 자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스트레스 수준도 덩달아 높아졌다. ‘미래’라는 가장 강력한 약물에 중독된 우리는 전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열심히 일하며, 더 오래 살게 될 것이다. 기대사회에서는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넥스토피아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우리에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의 삶, 일, 사랑이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점이다.
순현재가치의 상실
기대사회는 조바심을 이용한다: 인간의 의지력에 관한 고전적인 실험 하나를 소개하겠다. 이 실험에서 아이들은 탁자 앞에 혼자 앉아 있다. 그 탁자 위에는 벨을 놓아두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다가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을 때, 탁자 위의 벨을 울려 사람을 부르면 그 방에서 나갈 수 있다고 일러둔다. 이렇게만 한다면 보상으로 마시멜로 1개를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만약 끝까지 벨을 울리지 않고 더 기다린다면 마시멜로 2개를 주겠다고 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들 대다수는 조금 더 기다리는 쪽을 택했고, 끝까지 벨을 누르지 않고 참은 다음 마시멜로 2개를 받았다. 다음에는 방법을 약간 달리하여 실험해 보았다. 아이들은 역시 벨이 놓인 탁자 앞에 앉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탁자 위에 마시멜로를 올려놓았다. 그러자 대부분의 아이들이 마시멜로의 유혹을 참아 내지 못하고 벨을 울렸다. 눈앞에 보이고 게다가 그것을 가질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조바심을 낸다.
오늘날 우리는 언제(anytime), 어디서든(anywhere), 누구나(anyone),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anything) 살 수 있다. 요컨대 사람들은 시간과 장소 그리고 모든 것이 가능한 any의 세상, 즉 애니월드(world of any)에서 살아간다. 애니월드에서 우리는 더 이상 무언가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글로벌 도달성, 24시간 배달, 엄청난 속도로 끊임없이 출시되는 신제품들의 개발 속도 등은 단 몇 년 만에 사람들의 대기 시간을 엄청나게 단축시켰다. 기대사회에서는 스페인에 사는 아이들도 <슈렉5>가 개봉되는 날 곧바로 바르셀로나에서 이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과거에는 스페인에서 그 영화를 보려면 6개월은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미국에서 처음 상영되고 나서 2~3일 후면 스페인에서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빨리 보고 싶어서 기다리는 이틀 내내 잠을 못 이룰 정도가 된다. 기대사회의 모순은 기다리는 시간이 짧을수록 기다림이 더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가지지 못한 것이 더 매력적이다: 애니월드에서는 동네 패스트푸드 매장이나 슈퍼마켓에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햄버거, 잼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저 멀리 도쿄, 오슬로 등지에서 최신 제품을 주문할 수도 있다. 이런 세상에서라면 무엇을 선택하고서도 어딘가에 분명 더 좋은 것이 있다는 확신이 들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우리는 선택지가 많을수록 자신이 내린 결정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다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무언가를 선택하는 행동 자체는 자신이 갖지 못한 것들에 대한 매력을 증가시킨다. 물론 이때 우리가 잡은 기회나 손에 넣은 제품에 대한 매력은 반감된다.
당신은 고급 식당에서 근사한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 이제 후식을 골라야 하는데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먹을 것인가, 달콤한 초콜릿 케이크를 택할 것인가? 이렇게 두 가지 중에서 하나만 선택하게 한 다음, 사람들에게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초콜릿 케이크를 선택하지 않은 쪽은 초콜릿 케이크를 먹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 실험의 결과가 보여 주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제품을 사지 않거나 기회를 잡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은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가치를 높게 매기는 경향을 보였다.
미래의 제품과 경쟁하기: 기대사회의 근본 토대는 앞으로 더 좋은 무언가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에 있다. 지난 10년 동안의 눈부신 기술 발달 등에 힘입어 앞으로 시장에 나올 제품은 그것이 무엇이든 기존 제품보다 더 좋을 가능성이 충분히 커졌다. 기술의 발달로 하루 만에라도 원래 제품에는 없던 새로운 기능까지 추가된 신제품이 나오는 세상이다. 그러다 보니 전자제품 매장에서 플라즈마 TV 한 대를 사려고 해도 이런 생각이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조금만 기다리면 해상도도 더 좋고 디자인도 더 세련된 더 큰 화면의 텔레비전을 더 낮은 가격에 살 수 있을 텐데.’ 이제 진열대 위의 플라즈마 TV는 기존 제품들뿐 아니라 미래의 제품들과도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로 인해 역설적이게도 이런 생각이 든다. ‘오늘의 가치는 내일의 가치보다 떨어지잖아. 그럼 오늘 사려는 제품의 가격을 조금 더 할인해 줘야 하는 거 아냐?’ 기대사회에서는 현재로서는 분명 최선의 구매였는데도 가까운 미래의 시점에서 보면 최선의 구매가 아니었다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다.
이자율이 흥미율이 되다: 애니월드에서는 돈의 가치를 정할 때 통상적인 이자율은 그냥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상황이라면 이자가 왜 중요하겠는가? 기대사회에서 관건은 이자율이 아니라 흥미율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제품이나 기회가 얼마나 흥미로운가 하는 점이며, 오늘 흥미로웠던 것이라도 내일은 흥미롭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과 같은 변화 속도라면 방금 전까지 흥미로웠던 것도 3시간 후면 그 흥미가 떨어질 수도 있다. 지금은 조금 생소한 표현이지만 머지않아 은행가와 투자가들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이것은 꽤 큰 투자 건이고 시간 주기도 매우 깁니다. 그러니 그 제안의 순현재가치를 한번 계산해 봐야겠네요. 흥미율이 너무 높아서 현재가치가 많이 감소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모두가 행복하다
삶의 만족도는 대체로 일정하다: 아프리카 마사이 부족 사람들과 경제 잡지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의 400대 부자 그리고 그린란드 이누이트족과 스웨덴 사람,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 사는 암만파 교도들, 이렇게 각기 다른 환경에 있는 5개 집단 사람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해 보았다. 각 집단은 ‘나는 내 삶에 만족한다’는 문항에 대해서 1점(매우 불만)부터 7점(매우 만족)까지, 7점 척도로 그 정도를 평가했다. 그런데 모든 집단의 평점이 6점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으로 거의 비슷하게 나타났다. 스웨덴 사람들은 5.6점으로서 5.8점을 얻은 이누이트족보다 삶의 만족도가 약간 낮게 나타났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0.2점 정도는 무시해도 좋을 만큼 미미한 차이다. 결과적으로 부유한 미국인과 아프리카 마사이족 등 각 집단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 수준은 거의 비슷하다. 결국 사람들은 주어진 상황과 관계없이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것 같았다. 어느 시대에 어디서 살든 사람들은 삶의 만족도를 7점 척도상에서 6점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으로 평가할 것이다.
만족할수록 더 행복해진다: 또한 전 세계 43개국의 만족도 패턴을 비교해 본 결과 조사 대상 국가의 86퍼센트에서 사람들의 만족도 수준이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좋은 조건과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나 모두가 행복감을 느끼고 있고 결혼에서부터 직장, 여가 생활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고 답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산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이는 우리가 자기 삶에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요컨대 사는 것이 좋아서 우리의 삶에 대해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에 사는 것이 좋아지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삶에 만족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삶의 만족도가 높은 사람들은 소득 수준이 더 높고 또 결혼할 가능성도 더 크다. 만족감은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짝짓기에 성공하도록 힘을 실어 준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의 유전자 속에서 그 특성은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유전적 기질 가운데 80퍼센트가 다음 세대로 유전된다. 2만 2천 명이 넘는 핀란드인들을 대상으로 20년간 관찰ㆍ조사한 결과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질병이나 상해로 인해 사망할 확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최대 2배는 높았다. 게다가 만족도가 높은 사람들이 통증을 더 잘 견뎌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삶의 만족도가 낮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감기에 걸릴 확률도 2.9배나 높았다. 즉, 만족감을 느끼며 사는 사람들은 신체적 기능도 더 우월하다.
우리가 느끼는 행복감의 실체: 행복이 주는 황홀감은 매우 빠르게 사라진다. 행복감은 몇 시간이나 며칠 혹은 몇 주 후면 사라진다. 행복의 황홀감이 몇 달을 갈 수도 있지만 그래 봐야 3개월 남짓이다. 이 기간이 지나면 우리는 다시 평상시와 같은 정서 상태로 돌아간다. 결혼 혹은 임신이 우리 삶에서 최고의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사건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승진, 합격, 급여 인상 등도 일시적으로 행복감을 주지만 이 새로움 혹은 변화가 주는 행복감이라는 것도 결국 길어야 3개월이면 끝나 버린다. 결국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실은 근사한 직장에 ‘다니는’ 것 자체가 아니라 (최근에) 그 근사한 직장을 ‘구한’ 것이다.
넥스토피아
미래를 사는 것, 그것이 바로 넥스토피아다: 현재의 만족도가 ‘최저점’을 나타냈다고 해서 지금이 정말 최악의 상태라는 뜻은 아니다. 지금의 ‘현재’도 다음 조사 때는 ‘3개월 전’으로 표기될 것이고 또 반대로 지금은 눈부셔 보이는 미래도 3개월 후에는 만족도가 ‘최저점’인 시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코 미래에 도달할 수가 없다.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현재뿐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미래라는 것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미래가 아니다. 우리에게 미래는 늘 계속 멋져 보일 수 있지만, 우리가 실제로 평가할 수 있는 현재는 그렇게 멋지지 않다.
그렇다면 미래를 살아가는 기분은 어떨까? 아마도 미래의 삶은 사람들에게 현재를 사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행복감을 안겨 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한 순간 미래에 도달할 수는 있어도 실제로 그 미래 속에서 살아갈 수는 없다. 미래에서의 삶은 늘 넥스토피아 안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달리지 않으면 꿈꿀 수도 도달할 수도 없는 곳, 혹은 그러한 상태가 바로 넥스토피아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절대로 그곳에 ‘도달’할 수는 없더라도 ‘생각’은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 자체가 우리를 계속해서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우리를 긍정적으로 만드는 힘이 된다. 결국 넥스토피아는 행복이 임박해 있다는 희망이자, 미래는 분명 멋질 것이라는 믿음이 만들어 내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