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서바이벌 2
로버트 하틀리, 장대련 지음 | 명인문화사
마케팅 서바이벌 Ⅱ
로버트 하틀리, 장대련 지음
명인문화사 / 2013년 8월 / 533쪽 / 28,000원
기업의 모험
구글: 거대한 벤처기업
모든 벤처기업 신화가 그렇듯, 1998년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친구네 차고에서 인터넷 회사 구글을 만들기 위해 스탠포드 대학 박사 과정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그 후 구글은 광고계의 혁명을 가져올 강력한 마케팅 툴을 개발해 냈다. 그리고 6년 뒤인 2004년 8월 19일, 인터넷 검색과 광고를 제공하는 이 회사는 주당 85달러로 주식시장에 상장되었으며, 1년 뒤 주가는 280달러까지 치솟았고, 2007년에는 700달러를 넘어서게 되었다.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돈을 벌게 되었지만, 이것은 회사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게 되었다.
분석
맨손에서 시작하여 불과 10년 만에 각각 185억 달러의 부를 축적, 미국에서 5번째 부자로 등극한 구글의 두 창업자의 경이로운 성공신화. 과연 어떻게 한 것일까? 그들만의 비결은 무엇인가?
성공의 방정식: 브린과 페이지는 혁신가였다. 이들이 인터넷 검색을 발명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하여 인터넷의 검색프로세스를 좀 더 넓은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그리고 정말 혁신적인 것은 검색을 통해 수익을 창출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인터넷 검색을 무료로 제공하길 원했다. 만일 사용자들이 무료로 자유롭게 인터넷 검색을 할 수 없었다면, 과연 인터넷이 지금과 같은 인기를 구가할 수 있었을까? 아마 그렇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용자들에게 돈을 받지 않고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었을까? 바로 그 점이 구글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최상의 마케팅 전략인데, 핵심은 구글이 처음 시도했던 라이센싱 사업이 아닌 바로 광고 사업에 있었다.
수많은 기업들이 매년 수천억 달러의 돈을 매스미디어 광고에 쏟아붓는다. 그러나 지난 백 년 동안의 광고에 대한 연구 결과를 보면, 매스미디어 광고는 별 효과를 나타내지 못했다. 대부분의 매스미디어 광고에 관한 연구를 보면 어떤 광고가 대중의 주목을 받고 기억에 남는지, 어떤 광고에서 유머가 통하고 사람들의 호감을 갖는지에 대한 분석은 있지만, 어떻게 대중의 인지와 호감도를 제품에 대한 수요와 기업의 매출로 연결시킬 수 있을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매스미디어 광고는 그 제품을 구매할 충분한 의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한테만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목표 고객에 접근하기 위해 특정 매체 - TV, 라디오 프로그램, 잡지, 신문, 주소록에서 엄선된 다이렉트 메일 등이 이용되어 왔다. 그러나 그렇게 엄선된 예비 고객들 중에서도 많은 수가 제품에 특별한 관심이 없거나, 이미 다른 제품을 쓰고 있기도 하고, 또 소비에서 우선순위가 밀릴 수도 있다. 따라서 기업이 좀 더 주의를 기울여 목표 고객을 정의하고 접근할수록 광고도 좀 더 효과적일 수 있으며, 지출하는 광고비용 역시 더 생산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브린과 페이지는 가장 효과적인 광고에 인터넷 검색을 접목시킬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타겟 광고를 통해 사람들이 가장 잘 볼 수 있는 위치에 광고를 노출시키는 것이었다. 사용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웹페이지는 검색하기 위해 특정 키워드를 입력하면, 그 주제와 관련된 짧은 광고문구를 함께 연결시켜 준다. 짧은 광고문구의 광고주는 이렇게 사용자들에게 제시된 링크를 통해 자신의 웹사이트로 들어온 클릭 수만큼 소액의 광고비를 구글에 지불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브린과 페이지도 이 작은 광고가 얼마만큼의 수익을 창출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 내다보지 못했다. 그러나 구글이 돌아가고 있는 스케일, 즉 매일 수억 건의 검색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광고주의 웹사이트로 클릭하는 데 아주 작은 돈을 부과한다고 하면, 검색어와 연관된 구글 광고를 클릭하는 비율이 아무리 적고, 클릭 1건당 1센트씩만 부과한다고 해도 그 결과는 엄청난 것이었다.
한편 주로 신생기업의 초기 단계에 투자를 하는 벤처투자자들은 창업 후 몇 년이 지나면 능력 있는 최고 경영자를 영입하여 회사 경영을 맡기라고 창업자들에게 요구하게 된다. 구글에서도 영입된 슈미트가 창업자인 페이지와 브린과 함께 일하면서, 좋은 회사 시스템과 정책의 도입, 적절한 통제를 아주 효과적으로 수행했다. 또한 구글과 미국 정부 사이에서 성숙한 중간자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였다. 슈미트를 영입하지 않았다면, 구글의 두 창업자의 재능과 시간만으로 구글이 현재의 반열에 올라갈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슈미트 본인 역시 구글을 통해 큰 혜택을 입었다. 그리고 업무 환경은 더할 나위가 없었다. 회사의 분위기는 젊고, 고학력의 전문직으로 대부분 미혼에다가 야망에 가득 찬 직원들에 맞춰져 있었다. 그래서 회사는 한 배를 탄 것처럼 모두 행복했고, 인재를 영입하는 것도 쉬웠다. 창의성과 혁신을 자극하는 근무환경과 스톡옵션을 통한 부의 보장이 언제나 인재를 기다리고 있었다.
위협: 구글은 아직 성장을 계속하고 있지만, 구글을 위협할 몇몇 요소들도 다음처럼 찾아볼 수 있다.[소송] 구글과 같이 큰 규모로 성장한 회사들은 주목받기 쉽고, 각종 소송과 규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불이익을 봤다고 주장하는 경쟁업체, 직장 내에서 차별 당했다고 생각하는 직원, 혹시 독과점을 하거나 경쟁 제한적인 행위를 하지 않았을까 의심하는 연방 및 지방 정부, 그리고 뭐 하나라도 꼬투리를 잡아서 한 방 크게 터뜨려 보겠다고 생각하는 변호사들까지 너 나 할 것 없이 덤벼든다. 예로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의 유능한 인재들을 구글이 회유하여 고용계약을 위반하게 만들었다고 소송을 걸었다. 위협의 조짐은 항상 있었고, 이를 대처하는 데 회사의 귀중한 시간과 비용을 써야 했다. 구글은 대부분의 소송 건에서 승리하였지만, 회사 홍보 측면에서는 이 같은 소송이 악몽과 같은 일이었다.
[성장의 한계] 회사가 커짐에 따라서 높은 성장률에도 어느 정도 제동이 걸리게 되었다. 2002년 구글의 성장률은 409퍼센트였지만, 2003년에는 234퍼센트, 그리고 2004년에는 118퍼센트로 떨어졌다. 그리고 구성원 대부분이 젊은이들로 이루어져 있는 구글의 특성상, 회사가 커지면서 시기와 질투도 난무하게 되었다. 간부들, 직원들, 정부 기관 등 사이에서 문제들이 끝없이 발생했다.
[오만 방자한 분위기?] 구글에 대해 통찰력 있는 책을 쓴 베텔은 2002년 말 구글에서 발생한 심각한 문제점을 목격했다. 그의 책 한 섹션인 “이 아이들은 자기들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에서 구글은 성장의 여파로 무책임하고 자기중심적이며 위험할 정도로 건방지게 되었다고 기록하였다. 2002년 중반 실리콘밸리는 2년째 침체기를 맞고 있었고, 수만의 인력들이 일자리를 잃은 와중에 채용을 하는 유일한 회사는 구글 하나뿐이어서, 매주 수천 통의 이력서들이 구글로 쏟아져 들어왔지만, 대부분은 어떤 통보도 없이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그 과정에서 구글에 대한 나쁜 소문들이 돌기 시작했다.
몇 년간의 높은 성장세는 구글의 이미지를 과거 IBM이나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차세대 독점기업으로 비춰지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런 이미지는 구글과 함께 일을 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매력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결코 바람직한 존재가 될 수 없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과 천재숭배 같은 정서들이 구글의 조직 내부에 아직도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2002년부터 2004년 사이에 분명히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업데이트 (2008년~2011년)
사회사업: 구글은 사회사업을 위해 20억 달러에 달하는 자산을 Google.org에 배당하였다.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구글의 헌신은 칭찬받아 마땅하고, 또 회사의 모토인 “악이 되지 말자(Don’t be Evil)”를 실천하는 분명한 증거이기도 하지만, 회의적인 시각들도 있었다. 일부에서는 세계의 여러 가지 제반 문제들을 풀려는 구글의 노력이 대부분 문제의 복잡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도되는 것이고, 결국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재생에너지와 전기자동차 등에 투자하는 것은 결국 석유와 석탄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그 결과 그 산업의 기업들이 구글에서 온라인 광고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하는 시각도 있었다.
2008년의 불황: 2008년 3월 주식시장이 폭락하고 실업률이 증가하면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경제가 불황에 들어섰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구글의 경영진들은 불황에 개의치 않고 2007년 4분기에 미국 내에서만 엔지니어를 포함 889명을 신규 채용했으며, 지출도 전년대비 85퍼센트나 늘렸다. 포브스지에 따르면 이 같은 행보, 즉 신규채용과 비용지출을 늘리는 것은 회사를 키우겠다는 뜻이며, 구글 이외에 7개 회사가 이런 패턴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안드로이드OS의 급성장: 구글은 2008년 10월 모바일 기기용 개방형 플랫폼인 안드로이드를 오픈소스로 선언하였다. 안드로이드는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여, 2010년 1분기에 10%에도 미치지 못했던 시장 점유율이 2012년 4분기 기준으로 68.4%를 기록했다. 이러한 모바일 운영체제(OS) 시장에서의 구글의 시장지배력 강화는 모바일 검색광고 시장 등 구글의 수익기반을 공고히 해줄 뿐 아니라, 미래 수익 창출의 기반이 된다. 구글 맵스, 구글 앱스 등 구글의 잇단 유료화 정책과 구글 플레이에 대한 통제 강화는 이러한 시장 지배력에 근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래리 페이지의 복귀: 2001년 에릭 슈미트에게 CEO의 자리를 내어주고 물러난 래리 페이지가 2011년 1월 자신이 세운 구글의 CEO로 복귀했다. 그러나 기대와 우려가 섞여 있었다. 즉, 커진 회사 내 관료주의 분위기를 일신할 것이란 기대가 높아진 반면, 세계 최대 인터넷기업을 이끌어갈 선장으로 아직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를 그는 경영실적으로써 시원하게 날려버렸다. 래리가 복귀한 후 구글이 전년 동기보다 36% 증가한 25억 1,000만 달러의 순익을 올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앞으로 전통적인 구글의 사업인 검색에서 탈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울 점
조직 내 혁신적 사고의 중요성: 새로운 접근법과 기회를 찾는 혁신적 사고는 어떤 산업이나 기업에서든 바람직한 일이다. 성숙기에 들어선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구글같이 신기술의 경계에 있는 기업에서는 혁신적 사고가 더욱 중요하며, 이는 경쟁사 대비 결정적 강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혁신적 사고를 발전시키는 법: 구글은 인터넷이라는 신기술의 첨단에 서서 혁신적 사고를 극단까지 끌고 간 대표적인 회사이다. 최고경영층은 창의성을 장려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 주도해 나갔다. 구글보다 더 창의적 사고를 하게 만들 수 있는 업무환경이 존재할 수 있을까? 기술 인력들은 업무시간의 20퍼센트를 자신만의 개인 프로젝트를 추구하는 데 사용할 수 있으며, 잠재성이 있는 아이디어들은 언제라도 회사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대부분의 기업이 회사 직원들에게 구글 정도의 규모로 혁신적 사고를 하도록 뒷받침해주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 장려는 해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최고경영층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수용할 수 있는 마음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혁신적 사고를 위해 경영상 통제가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구글의 브린과 페이지는 혁신적인 천재들이었으나 회사 경영능력은 부족했다. 그리고 회사 운영에서 자신들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벤처캐피탈 회사들이 창업자들에게 외부에서 최고경영자를 영입하도록 강력히 요구했고, 결국 슈미트가 CEO로 입사하게 되었다. 구글로서는 최고의 선택이 된 슈미트는 창업자들의 창조적인 꿈을 현실로 만들어줄 성숙함과 조직운영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젊은 조직의 독특한 분위기에 잘 맞지 않았다면, 그의 영입은 구글 최대의 악재가 될 수도 있었다.
배타적인 오만과 천재숭배 사상을 경계할 것: 구글이 기록적인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을 무렵, 브린과 페이지뿐 아니라 구글 내 대부분의 조직에 대한 외부의 시각은 분명히 “구글은 무책임하고, 자기중심적이며, 위험할 정도로 건방지다”라는 것이었다. ‘천재숭배’ 사상은 어느 조직에서든 위험한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 이는 고객, 공급자, 언론, 정부 등 회사와 접촉하는 다른 모든 사람들을 따돌리게 된다. 그러므로 최고경영진부터 말단직원까지 좀 더 부드러운 자세로 임해야 한다.
마케팅 재기
MBC 나는 가수다: 일요일 저녁의 신화
1990년대 이후 2007년까지 일요일 저녁 예능의 최강자 자리는 두말할 것도 없이 MBC의 ‘일요일 일요일 밤에’였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200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예능프로그램의 대세인 ‘리얼 버라이어티’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뒤처지게 되었다. 그 후 KBS의 ‘해피선데이-1박2일, 남자의 자격’, SBS의 ‘패밀리가 떴다’ 등에 밀리면서 완전히 주도권을 내 주었고, 프로그램 시작 20주년이 되던 2009년에는 2.5퍼센트까지 밀려 주말 황금시간대의 애국가 시청률이라는 오명까지 쓰게 되었다.
2011년 2월 MBC는 시청률 1위를 탈환하겠다고 선언하고 ‘일요일 일요일 밤에’라는 프로그램 이름을 ‘우리들의 일밤’으로 고치고, 새롭게 준비한 야심작 ‘나는 가수다’의 예고편을 방송하기 시작했다. ‘나는 가수다’는 국내 최정상급 실력파 가수 7명이 출연하여, 한 곡씩 노래를 부르고, 방청인 500명의 평가를 받아, 그중 최하위가 탈락하고, 다시 다른 도전자로 채워지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나는 가수다’의 기획배경에는 2009년부터 우리나라에 불기 시작한 서바이벌 경연 프로그램 열풍이 있었다.
나는 가수다
서바이벌 오디션의 한계를 넘어: ‘나는 가수다’는 기존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과는 확연히 다른 차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알려지지 않은 신인 혹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치러진 데 비해, ‘나는 가수다’는 이미 노래실력으로 최정상급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데뷔 10년 이상의 쟁쟁한 가수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점이다. 둘째, 가장 낮은 점수를 얻은 가수를 탈락시키는 서바이벌 형식을 유지하기는 하지만, 점점 경쟁자의 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자가 충원되어 7명 경쟁체제가 유지된다는 점이다. 이런 차별성은 일반 시청자들이 인정할 만한 출연진들의 품질이 보증되어 신인 오디션 프로그램과는 차원이 다른 긴장감과 몰입도를 제공했다.
가수들의 참여 동기: ‘나는 가수다’는 최고의 실력을 가진 가수들로 소위 드림캐스팅을 하였는데, 그중에는 지난 10여 년간 TV방송 특히 예능프로그램이나 심지어 음악프로그램조차 거의 출연하지 않았던 ‘은둔형’ 가수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드림캐스팅의 성공은 전적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한 김영희PD의 몫이었다. 김영희PD는 2000년대 초에도 ‘게릴라콘서트’라는 기획을 통해 가수들의 경쟁 심리와 진정성의 호소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또 음악계의 현실에 대해서도 정확히 읽고 있었다.
2008년 이후 한국 대중음악계는 몇몇 대형기획사들에 의해 키워진 ‘아이돌’ 그룹의 전성시대였다. 아이돌들이 예능프로그램까지 진출하면서, 실력파 가수들은 미디어에 노출되는 기회 자체를 봉쇄당해왔다. 그러나 기계음과 댄스로 점철된 아이돌그룹의 퍼포먼스에 싫증을 내고 진정한 가수를 보고자 하는 수요 역시 물밑에 잠복하고 있었다. 따라서 실력 있는 가수들에게는 본인의 실력에 걸맞은 대우를 받는다는 전제하에서 대중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하였다. 또 디지털화된 음반제작 환경 또한 ‘나는 가수다’로 실력파 가수들을 불러 모은 동기가 되었다. 이 같은 환경에서 가수가 완성된 연주를 가지고 완성된 노래를 부를 기회는 거의 없으며, 유일한 기회는 콘서트인데, 이 역시 관중동원력을 확보하지 않은 가수들에게는 불가능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