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가 되라
더글라스 홀트, 더글라스 캐머런 지음 | 지식노마드
컬트가 되라
더글라스 홀트, 더글라스 캐머런 지음
지식노마드 / 2012년 3월 / 632쪽 / 32,000원
블루오션 다시 생각하기
공학도와 경제 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시장 혁신을 신봉해왔다. "더 좋은 쥐덫을 만들어라. 전 세계 소비자들이 알아서 구매할 것이다!" 기능을 강조하는 이러한 관점은 분명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법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는 혁신에 관한 독특한 관점이 있다. "더 좋은 이념을 정립하라. 전 세계 소비자들이 알아서 구매할 것이다."
혁신적인 이념을 도입하고 발전시켜 얻을 수 있는 시장 지배력은 비즈니스에만 적용되는 원칙이 아니다. 예로부터 정치인, 예술가, 사회 운동가 같은 이들에게는 혁신적인 이념이 활동의 중심이었다. 마틴 루터 킹, 넬슨 만델라, 존 웨인, 그린피스 등을 떠올려 보라. 이들은 혁신적인 이념을 주창하고, 그 결과 충직한 추종자들이 생겨나면서 막대한 영향력을 거머쥐었다. 똑같은 현상이 소비자 시장 전반에 걸쳐 목격된다. 오늘날 문화혁신자들은 신화(myth)와 문화코드(cultural code)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소비자의 선호도를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문화혁신(cultural innovation)이라 부른다. 문화혁신을 통해 큰 성공을 거둔 비즈니스는 바디샵, 말보로, 할리데이비슨, 스타벅스, 리바이스 등 셀 수 없이 많다.
문화혁신의 궁극적인 목표는 혁신적인 문화표현을 전달하는 것이다. 문화표현은 이념으로 구성되고, 이념은 다시 적절한 신화와 문화코드를 통해 생명력을 얻기 때문에 한 가지라도 무시하면 안 된다. 문화적 관점에서 블루오션은 이념에 대한 잠재수요로 정의된다. 이념적 기회가 나타나려면 먼저 해당 업종의 문화적 통념을 뒤흔드는 중대한 역사적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사회적 파괴라고 불리는 이러한 변화는 기존 브랜드와 소비자들을 이어주던 고리를 끊고, 새로운 대안을 찾도록 자극한다. 문화혁신은 '더 좋은 쥐덫 모델'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문화혁신은 모든 소비자 접점을 통해 브랜드가 전달되는 특수한 문화표현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문화혁신이 우연히 발견되는 횡재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문화혁신이론은 새로운 전략접근법으로 이어지는 문을 활짝 열었고, 그런 접근법은 성공 가능성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
나이키, 아메리카 드림을 재창조하다
나이키는 1964년 오리건대학교 육상 팀을 이끌던 빌 바우어만 감독과 육상 선수 출신 필 나이트가 공동 창업한 회사이다. 초창기 나이키는 런닝화 전용의 혁신적인 소재를 개발하여 큰 인기를 끌었다. 이에 고무된 바우어만과 나이트는 자신들의 기술적 전문성이 나이키가 대중시장에서 성공하는 데 크게 일조할 것이라고 자신하고 대대적인 마케팅을 했지만, 결국 참담한 실패를 맛보고 말았다. 당시 나이키를 비롯한 대부분의 런닝화 제조업체들은 '최고 선수의 최고 플레이 신화'라고 부르는 마케팅 접근법을 사용했다. 스타 운동선수와 스폰서 계약을 체결하고, 그들을 광고에 등장시킨 다음, 자신들의 제품이 이런 위업을 달성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전략은 운동선수가 아닌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브랜드의 뛰어난 기능성이 일반 소비자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문화혁신이 시급했다.
전후 미국인들은 미식축구, 농구, 야구 같은 팀 스포츠에 열광했지만 1970년대 말부터 가장 개인주의적 스포츠인 달리기가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불확실해진 경제 상황에서 미국인들은 신체와 정신 모두를 경쟁이 치열한 노동환경에 맞도록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에 대한 최고의 해결책이 바로 조깅이었다. 조깅이 인기를 더해감에 따라 런닝화의 인기도 급상승했다. 많은 소비자들은 쇼핑이나 산책을 할 때도 런닝화를 착용했다. 규칙적인 달리기를 생활방식 개조 프로젝트로 선택한 미국인은 많은 런닝화 중에서 유독 나이키를 신었다. 왜일까? 경쟁자들과 달리 나이키는 더 좋은 쥐덫 모델과 최고 선수의 최고 플레이 신화에서 탈피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뛰어난 달리기 선수들은 결의와 내적 욕구가 매우 강하다. 그래야 살인적인 훈련 스케줄과 잦은 부상을 참고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반권위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노력하고, 성공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지는 것은 온갖 종류의 제도적 함정이 가득한 단체 스포츠의 팀 일원이 되는 것보다 훨씬 보람 있는 일이다. 달리기 선수들의 이런 독특한 이념을 공유한다는 강렬한 믿음이 나이키 브랜드의 이념적 토대가 된다. 이런 이념을 '솔로 투혼(combative solo willpower)'이라고 한다.
나이키는 이러한 이념에 초점을 두고 과거와는 전혀 다른 비전통적인 광고를 제작하였다. 첫 번째 탄생한 광고 '발이 들려주는 이야기(word of feet)'는 놀랄 만한 혁신적인 광고 캠페인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 광고에는 유명 선수의 우승 장면이 없다. 대신 '결승선은 없다'는 슬로건을 앞세우고 무명의 달리기 선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경기에서 이기는 것은 무척 쉬운 일이다. 그러나 자신을 이기는 것은 결코 끝나지 않은 자신과의 약속이다." 나이키는 외로운 러너의 이념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도 제작하였다. 이런 광고와 다큐멘터리는 나이키가 생각하는 새로운 문화코드에 대한 최초의 탐구적 시도였다.
이후 나이키는 그 문화코드를 '솔로 투혼' 이념을 전달하는 매력적인 소통 수단으로 끊임없이 진화시킨다. 나이키가 꿈꾸는 문화 코드는 운동경기의 화려한 무대 뒤편에 숨겨진 힘든 과정을 찬미하는 것이었다. 나이키는 오래전부터 러너들의 하위문화를 대표하는 브랜드였고, 이제 나이키는 그런 브랜드의 권위를 털고 미국인에게 호소했다. 당장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달리기를 시작하라고, 그래서 솔로의 투혼을 본받은 삶을 살라고 촉구했던 것이다. 나이키는 조깅에 혁신적인 이념을 주입했고, 그 이념이 많은 미국인들을 조깅의 세상으로 끌어들였다.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런닝화가 사회경제적 시스템 전반에 걸쳐 미국인들의 일상화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잭다니엘스, 개척시대 남성상을 부활시키기 위해 신화가 되다
20세기 중반 미국 남성들은 위스키를 마셨다. 당시 위스키 시장을 장악했던 주요 브랜드의 이념적 초점은 '남성성-지위'였고, 이런 이념은 조직인간(organization man)으로 정형화된 편안한 중산층의 삶을 찬양했다. 1950년대 초반 잭다니엘스는 다른 위스키 제조업체들과 마찬가지로 브랜드를 조직인간의 상류층 생활방식과 연결하는 광고를 했다. 이런 상징주의는 숯을 이용하는 잭다니엘스의 독특한 여과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제품 편익 캠페인과 결합되었다. 하지만 이런 전략은 통하지 않았다. 당시 위스키 업종의 주요 브랜드 모두가 같은 전략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제품 판매가 부진하고 재고가 쌓이면서 잭다니엘스는 뭔가 혁신적인 전략이 필요했다.
당시 많은 미국 남성들은 경제적 지위를 획득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조직인간 이념에 비위가 뒤틀린 이들이 많았다. 사실 미국의 이상적인 남성상은 서부 개척 시대에 탄생했다. 강인함, 개인주의, 자립심, 솔직함, 실용주의 등은 변방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적 삶을 통해 축적한 고결한 성품들이다. 조직인간에 대한 문화적 반발은 냉전시대 하위문화와 사회적 운동의 형태로 나타났다. 대중매체가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했고, 문화 생산자들은 이에 반응하는 수단으로 서부영화를 만들었다. 이들 영화는 무법천지 서부에서 각자의 결투 매너에 충실하고, 자립적이고, 정력적이며, 솔직한 남성으로 총잡이들을 추켜세웠다.
브랜드는 제품이나 사용 환경 혹은 소비자들과 확실하게 연결된 이념만을 대변한다. 위스키는 서부 개척 시대 총잡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액세서리였다. 따라서 프런티어 정신을 표현하길 원하는 남성들에게 위스키는 완벽한 선택이었다. 개척 시대의 이념을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에 탄력이 붙자 대중매체는 그런 이념의 건재를 보여주는 하위문화를 찾았다. 그중 하나가 식민지 시대의 유산인 '증류소'였다. 식민지 시대 정착민들은 직접 수확한 옥수수, 보리, 밀 등으로 뒷마당에 있는 증류소에서 위스키를 직접 빚었다. 이런 전통이 잭다니엘스가 소재한 테네시 주를 비롯한 남부 지방에 고스란히 살아 있었던 것이다. 대중 매체는 잭다니엘스의 제조과정에 얽힌 진짜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다.
1951년 7월 《포춘》에 '숨은 보석, 잭다니엘스'라는 제목의 첫 번째 기사가 실렸고, 1954년 11월 《트루》에도 잭다니엘스의 기사가 실렸다. 이들 잡지의 기사는 장인정신으로 최고 품질의 위스키를 생산하는 전통적인 작업 방식에 얽힌 뒷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한 낭만적인 스토리텔링에 초점을 맞추었다. 전근대적인 기법을 고집스럽게 고수하는 별난 사람들과 위스키 제조과정에 대한 여운이 짙게 남는 소소한 사연들은 변방 개척지 삶의 진정한 자화상을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잭다니엘스는 프런티어 정신을 되살리고 싶어 하는 남성들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이는 이야기를 갖게 되었다.
이들 기사들의 가치를 알아본 것은 잭다니엘스와 손을 잡은 가드너라는 광고회사였다. 그들은 잡지에 실린 린치버그 증류소의 아름다운 사진과 서민적인 이야기를 마케팅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가드너가 만든 광고는 증류소에서의 일과와 린치버그의 사진으로 구성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잭다니엘스의 광고에서 바깥세상에는 관심이 없는, 낡은 작업복을 걸치고 오직 전통적인 방식으로 위스키를 만드는 반백의 남자들과 조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세월 속에 잊힌 사람으로 묘사되었고, 광고 속 영상과 예술적인 디자인은 변방 서부 개척 시대에 대한 미국인의 환상과 향수를 더욱 강화시켰다. 이 광고를 통해 잭다니엘스는 세련된 도시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던 경쟁 브랜드들과는 반대로, 진짜 증류소라는 명성을 얻었다.
스타벅스, 새로운 문화자본코드를 트리클다운시키다
세계 최고의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의 성공 비결에 대해서는 '명품 커피의 대중화', '제3의 공간' 같은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당시 미국에는 기존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하는 새로운 인구 집단이 생겨났는데, 그들은 훨씬 세련된 자신들의 생활방식과 어울리는 제품과 서비스를 원했다. 우리는 그들을 문화자본집단이라 부른다. 스타벅스의 성공은 바로 이러한 문화자본집단의 형성을 배경으로 한다.
20년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는 장인주의와 코스모폴리타니즘을 추구하는 엘리트 하위문화가 존재했다. 원조 스타벅스는 이 지역의 커피 하위문화에 매료된 세 명의 커피 매니아가 그 문화를 시애틀에 소개하기 위해 창업한 것이었다. 10년 뒤 스타벅스의 마케팅 매니저 출신인 하워드 슐츠가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 바를 벤치마킹한 '일 지오날레'를 창업하였다. 그는 시애틀 시민들에게 정통적이고 장인다운 에스프레소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면서 대중 시장의 소비자들이 문화자본의 사다리를 오르도록 이끄는 전략을 채택하였다. 하지만 최고급 커피는 문화 엘리트로 구성된 틈새시장에서만 어필했고 대중적으로 확산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후 슐츠는 회사 이름을 스타벅스로 바꾸고 엘리트 커피 하위문화의 코드를 트리클다운시켜 접근성이 크게 향상된 경험을 제공하는 것으로 새로운 스타벅스의 방향을 잡았다. 미국인의 입맛에 맞춘 커피를 제공하되, 새로운 집단이 요구하는 문화자본을 제공하기에 충분할 만큼 '장인주의와 코스모폴리타니즘적인 교양'으로 커피를 포장한 것이다.
슐츠는 원두를 판매하는 데 초점을 맞춘 원조 스타벅스 개념을 테이크아웃을 강조하는 카페 개념으로 전환했다. 이후 10년 동안 스타벅스는 포장, 로고, 고객 서비스 접점, 홍보자료, 디스플레이, 컵, 음악 등 매장의 모든 고객접점을 통해 장인주의와 코스모폴리타니즘적인 코드를 간단하고 교육적이며 보기에도 좋은 방식으로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스타벅스는 문화 엘리트들이 사랑하는 떼루아 커피를 직접적인 수익 창출원이 아니라 고객에게 독특한 매장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마케팅 재료로 사용했다. 이를 테면 아프리카 산 커피 라벨에 제품의 이국적인 특징을 강조하기 위해 야생동물과 지역 특산물을 설명하는 간단한 문구를 삽입하는 식이다.
카페 디자인에 있어서도 스타벅스는 문화 엘리트의 아지트인 보헤미안 카페를 단순화시킨 디자인을 선보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보헤미안 카페는 예술가, 작가, 음악가들이 사교생활을 하는 중심지 역할을 했지만 이곳은 대중 시장의 커피 소비자들이 선뜻 다가가기에는 낯선 환경이었다. 이런 이유로 스타벅스는 낡은 가구 대신 색상이 절묘하게 배합된 깔끔한 가구를 사용하고, 시 낭송회나 지식인 토론 같은 모임 대신 종이컵에 엘리트 지식인의 말을 인쇄해 넣었다. 벽에는 무명 예술가의 난해한 그림 대신 깔끔하게 표구된 포스터를 걸었고, 매장에서는 인디 카페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보다 훨씬 편한 종류의 음악을 틀어주었다. 이렇게 스타벅스가 제공한 제3의 공간은 문화자본집단의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문화 엘리트의 아방가드로적인 아지트를 대중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가벼운 버전으로 순화시켜 제공했기 때문이다. 스타벅스의 문화혁신은 우리가 '접근하기 쉬운 교양'이라고 부르는, 상업적 연금술을 발휘한 것이다.
비타민워터, 신화를 통해 '더 좋은 쥐덫'을 창조하다
2007년 코카콜라에 41억 달러라는 엄청난 돈에 인수된 비타민워터는 2000∼2006년 사이에 발생한 '사회적 파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브랜드이다. 당시 사회적 파괴의 창조자는 언론이었다. 언론은 미국인들의 식습관을 공격했고, 특히 가당 탄산음료가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관심을 유발했다. 미국인들이 마실 거리에 대해 전혀 새로운 관점으로 생각하게 되면서 음료회사들은 이 기회를 붙잡기 위해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다. 다국적 기업을 비롯하여 수십 개의 브랜드가 출시되었으나 작은 벤처 기업 제품인 비타민워터가 천하통일을 이루었다. 경쟁 제품에 비해 별다른 특성이 없는 비타민 음료가 성공한 것은 기술혁신이 아니라 '신화'를 소비자에게 제공했기 때문이다.
제품이나 기술적인 관점에서 볼 때 획기적인 혁신이 전혀 없고, 겉보기에는 순수한 마케팅 제안처럼 보이는 비타민워터가 어떻게 미국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음료가 될 수 있었을까? 비타민워터의 문화혁신은 두 가지 차원에서 진행되었는데, 이는 언론이 청량음료에 두 가지 낙인을 찍었기 때문이다. 바로 '건강'과 '사회계층'이다. 건강에 대한 소비자들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비타민워터는 자사 제품이 매우 건강한 음료라는 점을 분명히 약속하는 동시에, 탄산음료가 주는 만족감에 근접하는 '쾌락적 경험'을 제공했다.
또한 비타민워터라는 브랜드명은 브랜드의 핵심제안을 매우 간결하게 전달했다. '비타민+워터', 이처럼 간단한 브랜딩 장치는 소비자들에게 비타민이 함유된 생수를 구입한다는 함축적인 의미를 전달했다. 이런 주장의 이념적 힘은 미국 사회에서 대중 매체가 만들어 낸 강력한 두 가지 신화에서 비롯된다. 하나는 매일 비타민을 섭취해야 한다는 신화였고, 다른 하나는 수분공급 수단으로서 생수 신화였다. 비타민워터는 달달한 음료를 마시는 습관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미국인들의 건강 불안증과 사회적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성공했다. 아방가드로 풍의 전위적 디자인과 영리한 슬로건을 통해 비타민워터는 자사 제품이 설탕이 함유된 경쟁 브랜드보다 훨씬 세련된 음료라는 사실을 분명히 표현했다.
1990년대 말 미국과 영국에서는 뉴디자인 운동이 일어났다. 뉴디자인 운동은 대량 생산 개념을 수용했고, 모든 사람이 아름답게 디자인된 물건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믿었으며, 일상적인 디자인 소비재에도 세련된 미학적 감각을 주입하려고 노력했다. 비타민워터는 뉴디자인 코드와 만나 파격적인 디자인을 탄생시켰고, 비정통적인 광고 문구를 통해 다른 브랜드와는 비교가 안 되는 세련된 음료로 자리매김했다. 뉴디자인은 미술세계의 디자인 코드를 영리하게 들여옴으로써 단맛이 나는 음료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처음으로 성공적으로 피해갔을 뿐만 아니라, 쿨에이드 같은 음료를 어른들조차 세련된 선택이라 생각하는 음료로 깜짝 변신시켰다. 일종의 문화자본 트리클 전략을 적용한 것이다. 비타민 음료는 이처럼 남보다 한발 빠르게 움직인 덕분에 탄산음료는 저소득층 음료라는 오명을 깨끗하게 씻어줄 대안 음료를 찾고 있던 소비자들에게 강하게 어필할 수 있는 문화코드를 획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