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마케팅 성공신화
노희운 지음 | 형설라이프
대한민국 마케팅 성공신화
노희운 지음
형설라이프 / 2009년 1월 / 248쪽 / 12,000원
보석상자 속의 과학 - 현대카드 M국내 신용카드 시장은 2002년 이전까지 매년 100% 이상 고속으로 성장했으나, 내수부진으로 인한 경제성장의 둔화를 계기로 국내시장에 거품이 빠지면서 카드대란이 일어나, 고객들에게 각종 카드 발급이 제한되었고 심사도 대폭 강화되었다. 이에 따라 국민들의 소비가 위축되면서 카드회사들의 실적도 급격히 악화되었는데, 현대카드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다급한 시기에 현대카드의 경영진들은 흔들리지 않고 반전을 모색했다. 드디어 2003년 봄, 현대카드는 대반전을 위해 비공식 TFT(Task Force Team)를 구성하고 엄선한 사원들을 집결시켰는데, 팀의 명칭은 엑스칼리버(아더 왕과 기사들처럼 힘을 합해 카드업계의 난세를 평정하고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자는 뜻)였다.
그때부터 원탁의 주인공들은 최고의 카드를 만들기 위해 하나가 되었고, 고도의 과학적 분석 끝에 주력 상품인 현대카드 'M'의 전면개편이라는 역발상 전략을 선택했는데, 우선 시급한 것은 카드의 성패를 좌우하는 획기적인 서비스의 개발이었다. 그래서 경제활동인구의 소비 패턴과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타깃을 세분화하는 작업을 실시한 끝에, 고객의 모든 소비활동에 혜택을 부여할 때 고객 로열티를 확보하고, 또 해당 카드를 고객의 주 사용 카드로 만들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최대 적립처, 최고 적립률'로 대표되는 포인트 마케팅을 전면에 부각시키는 전략을 채택했다.
문제는 '네이밍'이었는데, 소비자 분석결과 다양하고 복잡한 메시지보다 알파벳이나 숫자와 같은 간단명료한 기호를 더 잘 인식하고 기억한다는 점에 착안해,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알파벳에 대입시키는 전략을 채택했다. 그렇게 하여 금융권 최초의 알파벳 마케팅이 탄생했고, 이후 신용카드업계 최고의 히트 상품이 된 현대카드 'M'의 질주가 시작되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003년 5월, 엑스칼리버는 구 현대카드와 구 노블레스카드를 하나로 통합해 리뉴얼된 현대카드 'M'의 첫 번째 모델을 내놓았는데, 새 카드는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서비스를 들고 나왔다. 예로 자동차를 살 때 카드 포인트를 선지급함으로써 엄청난 비용을 절감하도록 했고, 고객들에게 국내 최고의 포인트를 지급하고, 현대 계열 포인트를 한데 묶어 쓸 수 있게 하는 등 그야말로 파격 일색이었다. 그 결과 카드 출시 한 달 만인 6월에 카드 발급 신규회원의 수가 6배로 늘어났다는 낭보가 전해졌다. 그러나 본격적인 승부는 지금부터였다.
지속적으로 카드 사용자들의 높은 충성도를 확보하려면 남다른 관리가 필요했다. 곧 카드이용자 3백 명을 모집해 '브랜드 사절단'을 발족시켰고, 그들을 통해 각종 서비스에 대한 고객들의 목소리를 모니터해 불편사항을 즉각 시정했다. 그리고 미녀 테니스 선수 샤라포바를 비롯해서 로저 페더러, 피겨 요정 김연아 등 세계적인 선수들을 초청한 슈퍼매치나 일디보, 비욘세 등 세계적 팝페라 가수의 슈퍼 콘서트를 개최하는 등 각종 이벤트를 열어 현대카드 고객들만을 위한 '특별한 경험'을 제공했다. 그렇게 하여 결국 현대카드는 'M' 출시 2년 만인 2005년에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되었는데, 이는 카드의 네이밍, 고객 선호도 조사, 차별화된 서비스 전략, 디자인, 브랜드 사절단, 콘서트부터 슈퍼매치 등의 프리미어 마케팅, 각종 매체를 이용한 광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현대카드는 2006년 말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 푸어스(S&P)에서 아시아권 카드사 최초로 트리플 B를 받았는데, 이는 현대카드의 기업가치가 제1금융권 수준으로 성장했음을 뜻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발 없는 맛이 천 리 간다 - 청정원 홍초웰빙 산업이 활성화되면서 현재 우리나라의 식초음료 시장은 약 400억 원 규모로 성장했는데, 그 가운데 식초음료의 원조 격인 청정원의 홍초는 60% 이상의 경이적인 시장점유율을 자랑하며, 시장 선도 기업으로서의 프리미엄을 톡톡하게 누리고 있다. 하지만 청정원은 처음 홍초를 개발하고 나서 소비자들로부터 OK 사인을 얻기까지 고된 통과의례 과정을 거쳐야 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식초는 음식 맛을 내는 첨가제였지, 음료수라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998년 청정원이 마시는 식초를 표방하며 홍초를 내놓았을 때 시장의 반응은 냉랭했다. 일본에서는 인기 있는 웰빙 상품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쉽게 입을 대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청정원은 절망하지 않고 식초음료의 천국인 일본에 직원을 파견해 더욱 면밀하게 제품조사를 실시하고, 일본의 기술자를 초빙해 일본전통 발효법을 배웠다. 그러한 엄청난 노력으로 청정원 개발팀은 마시는 식초의 제조기술을 완벽하게 터득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도 개발팀은 국민들의 식초에 대한 오래된 편견을 극복해야 했고, 또 새로운 음료용기라인을 만드는 일도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식초의 대량발효와 유통문제 등 산 넘어 산이었다.
그 가운데 가장 높은 장애물은 역시 식초는 조미료라는 인식이었다. 당시 음료시장에는 웰빙 분위기로 인해 검은콩, 검은깨 등 색깔과 건강을 연결하는 일종의 컬러마케팅이 유행이었고, 청정원도 붉은 감식초를 시판하고 있었기에, 청정원의 신제품 바람몰이는 자연스럽게 붉은색으로 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확실한 목표를 설정한 청정원은 20대 후반~40대 초반의 주부 모니터 요원을 통해 관능검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 감식초는 더욱 세련되고 매혹적인 빛깔로 바뀌었다.
청정원 마케팅팀은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양손에 홍초를 들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갔고, 청정원은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그들에게 홍초를 권하고 마시게 했다. 그런데 한 번 홍초를 맛본 사람들은 반드시 홍초를 다시 찾았다. 마케팅팀은 자연스럽게 홍초의 효능이 입소문으로 퍼지기를 기대했다. 다행히 건강한 몸매를 원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식초가 최고의 음료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그녀들의 즐거운 수다를 통해 홍초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나아가 청정원은 타깃인 젊은 여성들이 선망하는 S라인의 소유자인 한채영, 김아중 등 8등신 미녀들을 TV광고모델로 활용했다. 또 마케팅팀은 입소문을 전국으로 퍼뜨리기 위해 트럭을 카페처럼 개조한 다음, 시도 때도 없이 전국의 피서지, 대학가, 고시촌 등을 누비고 다녔다. 그렇게 미친 듯이 24개월을 뛰어다니고 보니, 식초는 맨입에 먹을 수 없다는 고정관념이 거짓말처럼 깨져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지속적인 매출 창출을 위해 다양한 계층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홍초를 홍보해 나갔다. 예로 마케팅팀은 아이스크림, 케이크, 셔벗, 얼음 등 다양한 레시피를 개발해 전파하는 데 주력했고, 또 온라인 아카데미를 만들어 수료증을 증정하기도 했으며, 홍초 홈 파티, 홍초 카페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총동원했는데,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카페에는 회원들이 올린 홍초를 이용한 사진들이 줄을 이었고, 리플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여유가 생긴 마케팅 팀원들은 밤의 주인공인 주당들에게 시선을 돌렸고, 식초는 본래 피로회복과 간 기능 활성화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에 착안해, 팀원들은 마시는 홍초를 회식 도중 소주와 섞어 마셔 보았다. 그 결과 취기도 늦게 올랐고, 평소 2병을 마시던 사람이 4병을 너끈히 마셨다. 그때부터 회사의 전 부서에서는 회식 때 홍초부터 챙기는 것이 기본이 되었고, 이 현상은 입소문을 타고 널리 퍼져갔다. 그렇게 하여 신맛의 조미료에 불과했던 식초는 마시는 식초에서 맛있는 식초로, 나아가 남녀노소의 건강을 돕는 팔방미인으로 진화하게 되었고, 결국 홍초는 출시 9개월 만에 1백억 원의 매출을 올린 데 이어, 2006년에는 총 240억 원 매출을 달성해 음료시장의 블루오션을 정복했다.
역발상으로 틈새를 노려라 - 매일유업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2003년 국내 가공유 시장은 몹시 시끄러웠다. 딸기 우유, 바나나 우유 등 가공유에 당분이 너무 많이 들어가 소비자들의 건강을 위협한다는 언론의 지적 때문이었다. 특히 음료에 과일 빛깔을 내는 색소의 유해 여부가 연일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 가운데 2006년 7월부터 매일유업 기획팀에서 하반기 신제품 개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개발팀의 팀원들은 얼어붙은 가공유 시장에 어떤 방법으로 도전해야 할지 쉽게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개발팀의 이인기 과장은 유치원생 딸이 그린 그림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왜 반달을 빨간색으로 칠한 거니?" "아빠, 이건 반달이 아니라 수박이에요." "수박? 수박은 파란색이잖아." "에이, 아니에요. 수박은 원래 속이 빨갛잖아요." 그 순간 이 과장은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튿날, 회의석상에서 그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우리 색깔이 하얀 바나나 우유를 만들어 봅시다." "하얀 바나나 우유? 바나나는 노랗잖아요."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 하지만 잘 생각해 봐. 껍질은 노랗지만 속은 하얗잖아."
그때까지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바나나 우유는 껍질 빛깔처럼 노란색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은연중에 바나나 우유는 노란색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이 과장이 내놓은 아이디어의 초점은 역발상에 있었다. 이인기 과장의 아이디어는 팀원들 사이에 거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기존 제품이 만들어 놓은 이미지를 깨뜨리려면 엄청난 투자가 따라야 하고 성패 여부도 불확실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난상토론 끝에 팀원들은 당분간 색소의 유해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색소를 뺀 우유로 도전한다면 경쟁력이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게 해서 신제품 개발이 결정되었다.
신제품 개발이 확정되자 본격적으로 제품 개발이 시작되었는데, 저지방에 무설탕에 갈변 없는 과즙까지, 순수한 바나나 우유를 만드는 과정은 실로 난관의 연속이었다. 산고 끝에 2006년 12월 6일,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가 탄생했다. 고객에게 솔직하게 다가서자는 아이디어 하나로 만들어진 전혀 새로운 바나나 우유였다. 하지만 회사 경영진은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 (이하 '바ㆍ하'로 표기)에 확신을 갖지 못했다. 그리하여 책정된 광고비는 겨우 5억 원, 실패를 예감한 최소한의 투자였다.
개발팀은 이제 마케팅이라는 산까지 넘어야 했다. "'바하'의 타깃은 젊은층, 그렇다면 비상구는 인터넷밖에 없다." 본래 과일향이 들어간 가공유의 고유 타깃은 초ㆍ중ㆍ고등학생들이었지만, '바ㆍ하'는 중고생과 대학생으로 올려 잡았는데, 그들에게 최소의 비용으로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은 최근에 각광받고 있는 인터넷 UCC였다. 그렇게 해서 2006년 여름, 개발팀은 뜨거운 열정으로 '바ㆍ하'의 UCC 광고 제작에 돌입했다. "에이, 바나나가 어떻게 하얘?"라는 광고의 내용은 실로 파격이었다. 고객들의 관점에서 자사 제품을 네거티브하게 표현했던 것이다. 그러나 직원들은 그 안에 담고 있는 진정성을 고객들이 알아주리라 굳게 믿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UCC는 전국 극장의 영화상영 전 광고시간을 활용해 선을 보였고, 연이어 인터넷에 유포되었다. 그러자 반응은 예상 외로 엄청났다. 처음 내놓은 제품, TV 광고에서 본 적도 없는 제품 UCC에 하루에 댓글이 100여 개가 넘게 올라왔다. 감격한 직원들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2006년 12월에 '바ㆍ하'가 출시는 됐지만, 영업점들이 제품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서둘러 '한 병 더' 행사가 추진되었다. '바ㆍ하'에서 '한 병 더'라는 글자가 새겨진 뚜껑이 나오면 공짜로 한 병을 더 주는 행사였다. 여기에 참여한 슈퍼마켓에는 물건을 20% 더 공급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시장에서 또 하나의 장벽은 1,000원이라는 비싼 가격이었다. 소비자를 설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영업팀 직원들이 곳곳에 돌며 판촉물 행사를 벌였고, 각종 행사에 '바ㆍ하'를 협찬했다. 그 결과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는 출시 초기 월 2억 원도 안 되던 매출에서 7개월 만에 판매량 2,500만 개, 월 20억 원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독특한 발상이 가져다 준 가공유 시장의 일대 돌풍이라 할 수 있다.
이야기 마케팅의 정수 - LG텔레콤 기분존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건곤일척 맞붙어 싸우는 이동통신시장은 한순간에 생사가 좌우되는 죽음의 전장이다. 서비스 하나에 수십만 명의 가입자들이 영광의 탈출을 감행하고, 그것을 막기 위해 또 다른 서비스로 응수한다. 이러한 이동통신시장에서, 2006년 당시 LG텔레콤은 경쟁사인 SKT와 KTF의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인해 고객 유치가 지지부진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LG텔레콤의 IMC팀은 사내 전략회의실 '놀이터'에서 어떻게 하면 합리적으로 요금을 낮춰 기존 고객은 지키고 신규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을까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 보았지만, 딱히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문득 한쪽에서 아이디어 하나가 조용히 고개를 내밀었다. "휴대폰 요금이 집 전화보다 더 저렴하다면……. 그런데 그게 과연 가능할까?" 그것은 당시 통신업계의 기술력이나 시장 상황으로 볼 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과감히 그 의견을 현장에 적용해 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해서 신개념 요금제 서비스인 '기분존'의 런칭에 들어갔는데, 무엇보다도 혁신적인 서비스로 포지셔닝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유선사업자들의 반발이 예상되었지만 그 정도의 분쟁은 각오해야 했다. 하지만 서비스를 위해 무선망 구축, 전용 단말기 개발 등 실질적인 문제들을 하나 둘씩 풀어나가야 했는데, 그 방법을 찾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역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무선 기술에는 단말기와 다른 제품 간에 실시간 통신이 가능한 블루투스 기능이 있었던 것이다.
기분존 서비스의 요체는 블루투스가 서로 반응하면서 특정한 지역에 있는 LG텔레콤 기분존 서비스에 가입한 고객을 확인해 준 다음, 그들 고객이 미리 등록한 특정구간에서 통화를 할 경우 유무선을 막론하고 집 전화보다 싼 혜택을 누리게 해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를 실용화하려면 휴대폰과 휴대폰을 교신할 중계기가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개발된 중계기가 '알리미'였는데, 알리미 도달 범위는 설치 지역 기준 반경 30m 이내로, 웬만한 가정에서는 자유롭게 통화하기에 충분한 거리였다.
유선전화 못지않은 파격적인 저렴한 요금의 기분존 서비스가 본격화되자, 예상대로 유선전화 회사인 KT에서 반발하고 나섰다. 하지만 LG텔레콤은 이런 KT의 민감한 반응이 오히려 고객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고 판단하고, '기분존'의 경쟁자를 아예 공룡업체라고 할 수 있는 KT로 상정하고 마케팅 전략을 수립했는데, 바로 회심의 스토리 마케팅 전략이었다. 첫 번째 작전으로 최대한 유치하게 만들어진 집 전화 가출 전단지(전단지에는 "가출한 집 전화를 찾습니다"라는 문구가 있음)가 호외처럼 거리에 살포되었고, 얼마 후 그 전단지 속에 있던 집 전화 인형들이 도심 한복판에 나타나 "기분존 때문에 우리가 갈 곳이 없어요"라며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하소연을 했고, 심지어 자기 몸에 달린 수화기를 던져버리기까지 했다. 이처럼 황당무계한 거리 퍼포먼스는 감각적인 청소년층에도 크게 어필했으며,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담은 버즈 마케팅도 기대 이상의 효과를 올렸다. 그리고 드디어 더 이상 대한민국에서 설 자리가 없어진 집 전화들은 TV CF를 통해 태국으로 밀항하고야 말았다.
마침내 기분존 서비스의 실체를 알게 된 많은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1시간을 꼬박 통화해도 780원, 엄청난 가격 할인에 사람들의 입이 딱 벌어졌다. 결국 2006년 5월부터 시작된 새로운 개념의 집 전화 대용 휴대폰 요금제 '기분존'은 8개월 만에 15만 명의 가입자를 유치했다. 또 캠페인 가동기간 동안 22%의 인지도 상승효과까지 얻었다.
LG텔레콤은 2006년 하반기 KT의 소송으로 주춤했던 기분존 서비스에 대한 마케팅을 2007년 들어 다시 시작했는데, IMC팀에서는 '기분존'의 집 전화 가출 이벤트 과정을 면밀하게 분석한 결과, 당시 '기분존'의 타깃은 휴대폰을 많이 쓰면서 혼자 사는 2030층이었는데, 실제 서비스 가입자들 중에는 가정주부가 다수를 차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때부터 LG텔레콤은 주부들 가운데 가장 구매력이 있는 3040 전업주부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요소를 찾는 데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