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혁신, 마케팅으로 승부하라
데이비드 커프 지음 | 지식의날개
서론 21세기 신종 대학의 출현
돈은 항상 미국 고등교육의 수레바퀴에 윤활유 역할을 해 왔다. 300년 전, 하버드 칼리지나 윌리엄 앤드 메리 칼리지(William and Mary College)의 개교 이래, 돈은 항상 대학 세계 최고의 관심사였으며, 1862년 모릴 법(Morrill Act)에 따라 '랜드 그랜트 유니버시티(land grant university : 미국 정부가 제공하는 토지를 기반으로 형성된 대학)'가 출범한 이래 실용성 높은 교육, 활용 가능한 교육이라는 것은 미국 공공정책의 주요 테마였다. 따라서 '실용성 있는 지식'이 '쓰레기처럼 추잡한 거래'라고 여겨지는 그런 시절로 되돌아가는 일은 앞으로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순수한 연구만이 유일하게 대학에 적합한 활동이며 연구 결과를 활용할 방법을 고안하는 것, 예를 들면 학문적 연구 결과를 학부 학생에게 가르치는 것과 같은 활용방법은 한 단계 낮은 일로 여겨지던 시절로 회귀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사태에 뭔가 새로운 점이 있다면 그리고 뭔가 곤란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고등교육에서 돈이 직접적으로 위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기업가적인 야망은 한때 학계에서는 필요악 정도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하나의 미덕으로 여겨진다. 코네티컷 대학교(University of Connecticut) 학장은 단호하게 '우리 대학은 하나의 사업체'라고 말하면서, '우리 대학의 주주는 학생, 교수, 그리고 코네티컷 주'라고 덧붙인다.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교(University of California)의 총장은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교는 하나의 비즈니스다"라고 선언하였다. 예전에는 일류대학을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도 강력한 리더십이라고 여겨졌으나, 오늘날의 경우 대학 총장들은 끝도 없이 이어지는 기금 마련에 기력을 소진하고 있다. 대학의 학과는 하나의 '수입 항목'이며, 학생은 소비자, 교수는 기업가, 각 집단은 주주들이고, 각각의 학교는 현금 자본에 있어서든 지적 자본에 있어서든 이윤을 추구하는 존재들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시장 개념을 아예 벗어던짐으로써 경쟁에서 탈피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교육에서는 오로지 교육의 질이 중요할 뿐이라고 생각하는 대학이 있다면, 그런 학교들은 자기 파괴의 길로 접어든 셈이다. 성공이 성공을 부르고 실패가 실패를 부르는 '승자 독점주의의 시장(winner-take-all market)'인 고등교육의 현실에서 엘리트 대학들조차도, 아니 어쩌면 그런 학교일수록 라이벌에게 우위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더욱 경계심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시대의 시대정신은 시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일이 순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제학자 아서 오쿤(Arther Okun)이 말한대로 세상에는 시장의 자리가 있고, 시장은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고등교육에서도 시장은 시장의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시장의 힘에 이끌려가는 일부 학교는 대학은 비즈니스가 아니라는 명백한 사실을 망각한 반면에, 어떤 학교는 더욱 강하고 좋은 곳으로 변모하고 있다. 진정한 대학, 최선의 대학이 가지고 있는 대학 정신은 시장체제에서 환영받는 가치와는 무관하다. 대학은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집합체가 아니다. 대학의 가치는, 학자들의 공동체라는 믿음, 소유 의식보다는 개방성을 추구하는 정신, 사업가가 아니라 진리 탐구자로서의 교수, 학생은 구매 욕구를 만족시켜 주어야 하는 소비자가 아니라 아직 특정 색깔을 띠지 않은 신참내기라는 개념에서 나온다.
제1부 고등교육이라는 시장
니체를 파는 니치마켓: 시카고 대학교
시카고 대학교는 미국의 다른 어느 고등교육 기관보다도 자기도취적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스스로에 대한 강박관념이 강하다. 허친스는 "시카고는 그저 상당히 좋은 대학 정도가 아니다. 시카고는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최고의 대학이다"라고 선언하였다. 시카고는 옥스퍼드나 버클리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시카고 대학교의 열렬한 추종자들은 정치원은 하버드나 예일 출신들이 채우고 있을지 몰라도 사상이라는 영역에서는 단연 시카고가 지배한다고 말한다. '아이비리그'라는 말이 조롱거리가 되는 곳은 시카고 대학교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험하지만 치열한 곳'이라는 스스로의 찬사와는 달리 시카고 대학교는 '정체성 위기'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고, 심지어는 "시카고 대학교, 갈림길에 서다"라는 헤드라인 기사로 《뉴욕 타임즈》 1면을 장식하기에 이르렀다. 그 기사의 표현에 따르면, 시카고 대학교에 대한 지원자는 너무 적은 편이고, 입학한 학생들도 중도탈락률이 높고, 자부심을 채우기에는 기본 자산이 너무 빈약하고, 캠퍼스는 쓰러져 가는 고딕양식 더미였다. 실제로 1990년대 후반 시카고 대학교는 지원자의 약 62퍼센트에게 입학 허가를 내주고 있었는데, 이는 미국 상위 25개 대학교 중에서 가장 높은 합격률이었다. 게다가 시카고 대학교에 왔던 학생 가운데 도전정신이 강한 학생들은 많은 수가 중간에 마음을 바꾸고 학교를 그만두거나 다른 학교로 옮겨갔다. 시카고 대학교는 일단 입학한 학생이 졸업 때까지 남아 있는 비율이 다른 주요 사립대학 가운데 가장 낮은 편이었다. 재정 분야의 문제도 심각했는데 1994년 연말에 학교 회계과는 시카고 대학교가 매년 5,500만 달러 적자를 내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이미 부채가 기본 자산인 15억 달러를 갉아 들어가기 시작하였는데, 그 15억 달러가 제대로 있다고 해도 일류 사립대학 가운데 가장 적은 액수였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1997년 대학 부총장이자 학부 학생 등록을 전담, 지휘하는 책임을 맡은 마이클 벵크(Michael Behnke)는 비장의 마케팅 전략을 꺼냈다. 그는 맥킨지의 분석 결과에 따라 시카고 대학교가 잠재적인 지원자들에게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고등학생들에게 직접 홍보 우편물을 발송하는 비율을 세 배로 늘렸다. 그는 2학년을 타깃으로 삼았고, 특히 PSAT(고교 2년생이 치루는 대학입학 예비 시험) 최고 수준의 득점자들을 집중 공략해서 메시지를 보냈다. 벵크는 이처럼 일찌감치 홍보물을 보내는 것이야말로 시카고 대학교로 하여금, 마케팅 용어로 표현하면 '선발자(first mover)'로서의 이익을 누릴 수 있게끔 해 준다고 믿었다. 그는 또 기존의 특징 없는 학교 홍보 책자였던 『꿈과 선택(Dreams and Choices)』을 없애고 『지성의 삶(The Life of the Mind)』을 새로 만들어 미래의 지원자들에게 보냈다. 이 새 책자에는 학생들이 책에 머리를 박고 있는 사진은 예전보다 줄였고, 춤추고 놀고 풋볼게임을 하는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는 사진을 더 늘렸다. 공부하느라 야윈 얼굴이 아름다운 얼굴이고, 새벽 3시에 니체를 읽거나 강의 첫날부터 니체 철학의 세밀한 부분을 토론하는 것이 영광의 상징인 학풍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홍보 책자는 경악할 만한 것이었는데, '지성의 삶'이라는 제목이 학교의 자체적인 이미지에 부합하였기 때문에 마지못해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지성의 삶』이 처음 나온 1999년에는 그 이전 해에는 2퍼센트 정도 떨어졌던 지원자 수가 22퍼센트까지 올라갔다. 시카고 대학교가 지원자 가운데 절반 미만에게만 합격허가를 내주는 일도 역사상 처음으로 일어났으며, SAT 1400점 이상인 지원자가 거의 30퍼센트 이상 증가하는 등 지원 학생들의 수준도 이전보다 더 높아졌다. 또한 전체 신입생 숫자가 2퍼센트 증가하였을 뿐만 아니라, SAT 점수가 1500점 이상인 학생 수가 64퍼센트 증가하였고, 고등학교 시절 내신 성적이 상위 5퍼센트인 학생 수는 47퍼센트나 증가하였다.
한편 1994년 부임한 휴고 소넨샤인(Hugo Sonnenschein)은 대학이 당면한 재정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재빨리 비용을 절감하고, 기금을 모집하였다. 교수 임용은 중단하였고, 박사과정 학생에게 지급하는 장학금도 삭감하였다. 돈벌이가 될 만한 석사학위 프로그램을 새로 시작하였고, 1998년에는 다른 많은 일류대학과 마찬가지로 높은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는 유넥스트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이러한 해결책과 함께 그는 학부 학생 인원을 늘리고자 했는데 이는 시카고 대학교의 핵심을 건드리는 일로서 학생 수가 늘어나면 똑똑하지 못한 학생도 함께 많이 들어올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많은 반대를 불러 일으켰다. 결국 1999년 졸업식을 일주일 앞두고, 소넨샤인은 갑작스럽게 사의를 표명하였다. 그는 개인적인 싸움에서는 졌다고 할 수 있지만 조직의 싸움에서는 이겼다. 1992년과 1998년 사이에, 공격적인 기금활동과 주식시장의 붐이 맞물려서 시카고 대학교의 기본 자산은 두 배로 늘어나 23억 5천만 달러에 이르렀고, 예산 '위기' 이야기는 끝났다. 대학원생 장학금도 늘어나서, 시카고 대학교는 최고 우수한 박사과정 학생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으며 교수들의 보수도 경쟁력 있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MBA 과정의 학생과 로스쿨 학생이 늘어나면서 등록금 수입도 늘어났다. 또 수입이 될 만한 석사과정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였다. 소넨샤인의 마스터 플랜에서 언급한 신축 건물들, 예컨대 과학실험실, 기숙사, 종합 체육시설 등은 캠퍼스의 풍경과 성격을 바꾸어 놓았다. 이런 이유로 휴고 소넨샤인은 언젠가는 하이드파크의 영웅이자 시카고 대학교를 현대 세계로 이끌어 낸 구원자로 칭송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궁극적인 물음은 전통주의자들이 대학의 영혼이라고 일컬었던 것, 대학의 독자성이라고 불렀던 것이 과연 이런 변화를 견뎌 낼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스타교수들의 전쟁: 뉴욕 대학교(NYU)
1831년 뉴욕 대학교(New York University; NYU)가 세워졌을 때, 이 대학은 믿을 만한 자랑스러운 역사가 별로 없었다. 또한 최근까지만 해도 NYU는 그 지역 학생들이 진학하는 학교로서, 명문도 아니고 또 학비도 비싸지 않은 학교였다. 게다가 NYU는 1970년대 중반에는 도산의 위기에 몰려 지극히 불안한 곡예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단 한 세대 동안에 NYU는 어느 기업체라도 자부심을 느낄 만큼 확실하게 흑자로 전환하였으며, 미국 전체 명문대학으로서 '글로벌 대학'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NYU는 그야말로 현대 미국 고등교육의 성공 스토리다.
그저 그런 평범한 학교라는 기록을 뒤집기 위해서 NYU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스타급 교수를 새로 임용하는 것이었다. NYU는 유명한 교수들이 세인의 관심을 집중시킨다는 것, 이러한 관심은 곧 학과의 평판을 올리는 것으로 작용한다는 것, 그리고 우수한 학생들은 학문 시장에 있어서 이러한 신호를 예의주시하기 때문에 곧 반응을 보여 올 것이라는 것 등을 확신하였고, 상황은 이러한 예상에 딱 맞아떨어지게 돌아갔다.
스타급 교수의 영입을 통한 NYU의 괄목한 성장 중에서도 철학과의 변모가 가장 인상적이다. 1995년에 부임한 학과장 폴 보고시안(Paul Boghossian)은 드림팀을 만들 수 있는 권위를 부여받고, 본격적으로 스타급 교수 영입에 나섰다. 그는 스타급 교수들에게 보다 많은 연봉, 보다 가벼운 수업부담, 그리니치 빌리지의 아파트를 제공하는 유인책을 썼다. 거기에 특별한 철학자들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는 점이 작용했다. 우수한 스파링 파트너가 있다는 것은 논쟁 능력을 갈고 닦을 수 있게 해 주는 말할 수 없이 귀한 자산이다. 보고시안은 분석철학이라는 협소한 전문 영역을 중심으로 교수 임용정책을 전개한 덕분에 NYU에는 보기 드물게 동질적인 환경이 조성되었고, 교수들은 서로 동료 교수의 세미나에 정기적으로 참석할 수 있었는데, 이는 상당한 매력이었다. 이러한 노력으로 1995년만 해도 박사학위 과정조차 없었던 NYU의 철학과가 2000년에는 전국 최고의 철학과 가운데 하나로서 프린스턴과 같은 수준에 속하게 되었다.
이러한 '스타 찾기' 전략에는 물론 장점이 얼마든지 있지만, 동시에 그 대가도 치러야 한다. 최근 NYU 상황을 보면 이러한 문제점이 나타난다. 2001년, 길고도 불쾌한 투쟁 끝에 NYU는 사립대학으로서는 최초로 노사관계위원회로부터 대학원생 학생회와 협상하도록 명령받았다. 또한 비정년 트랙 교수들, 즉 시간제 교수이자 박봉에 시달리는 강사들이 조합을 만들었는데, 이는 전국 대학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비정년 교수 조합이었고, 사립대학에서는 최초였다. 비전임 교수가 증가하는 것은 미국 전체 대학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므로, 슈퍼스타의 기용이 반드시 비정년 교수 조합 형성이라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슈퍼스타를 영입하면 그 과정이 빨라지는 것은 사실이다. 과중한 업무를 지고 있는 중견급 교수들은 종종 수업부담을 줄여 달라는 요구를 한다. 교수에 대한 평판이야말로 믿을 만한 자산인데, 이는 교수가 어떤 논문을 써내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얼마나 잘 가르치고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업에 대한 부담은 대학원생 수업 조교와 비전임 교수에게 돌아가곤 한다. NYU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여서, 수업에 대한 부담을 상당 부분 시간제 강사에게 돌려 버린다. 전임 트랙에 있는 교수와 거의 맞먹는 2,700명이라는 숫자의 비전임 교수들이 학부 학생 수업의 70퍼센트를 맡는다.
넓게 보면, NYU의 워싱턴 스퀘어 캠퍼스에서 벌어지는 이런 상황은 미국 전체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30여년 동안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점차 비전임 교수의 책임으로 바뀌고 있다. 2002년 비전임 교수는 전체 교수의 43퍼센트를 차지한다. 비전임 교수들이 받는 보수는 푼돈에 불과하다. 비전임 교수는 직장에 대한 보장도 없고(학기 초에 갑자기 강의가 취소되기도 한다), 사무실도 없고("사무실을 등에 매고 다닌다"고 한 시간강사를 비유한다), 교원복지나 의료보험도 안 되고 학교 일에 대하여 아무런 발언권도 없다. 1993년에서 1998년까지 단 5년 동안 전국 고등교육 기관의 40퍼센트가 풀타임 교수 숫자를 줄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 22퍼센트의 학교가 그 자리를 시간제 강사로 대체하였다. 이런 현실에 대해 하버드 교육학과 리처드 체잇(Richard Chait) 교수는 "풀타임에 정년을 보장받는 교수가 오늘날 고등교육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교수라는 것은 오지와 해리엇(미국의 인기 시트콤)이 미국 사회를 대표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라고 말한다.
NYU는 탑다운 방식에 의해 고속성장을 기록하였다. 막강한 학장, 막강한 학과장들이 자기 자신만의 전략을 가지고 움직인 것이다. 이 방식이 단 30년 동안에 NYU를 여러 학과에 걸쳐 미국 최고의 수준으로 올려놓았다는 점은 인정한다. 이는 다른 어떤 미국 대학도 해낼 수 없었던 일이다. 그러나 그 결과, 공동체 의식이 전혀 없다. NYU가 충원해 온 석학들에게 연봉이나 주택, 또는 뉴욕 시에서의 생활에 대한 충성심은 있어도 학교 그 자체에 대한 소속감으로 인한 충성심은 없다. 또한 이미 최고봉에 다다른 학자들에게만 집중함으로써 차세대 학자들이 더 이상 학교에 설 자리가 없도록 만들고 있다. 어느 분야에서든 제일 좋은 것은 모두 쓸어 담아서 소수의 유명인사에게 보내 주고, 나머지 젊은 세대는 굶어죽게 만든다면, 그 직업세계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겠는가? 그것은 대학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제2부 대학을 경영한다
버지니아 주와의 이별: 다든 비즈니스 스쿨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의 유서 깊은 터전에 자리 잡은 루스 홀. 이 곳에는 버지니아 대학교 경제학과가 위치해 있다. 이 건물은 배수와 난방공사는 물론 구조 보수도 필요하지만 만성적인 자금부족 때문에 대학 행정본부에서 간단한 겉치장만 간신히 할 뿐이다. 경제학과 에드가 올슨(Edgar Olsen) 교수는 "건물 모양새가 너무 한심해서, 여기서 내가 일한다고 우리 어머니께 말하기가 부끄러운 지경"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