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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의 브랜드

김승범 지음 | 흐름출판
1. 외길전략 -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한다

쓰리쎄븐 : 손톱깎기 하나로 세계를 정복하다




쓰리쎄븐은 매년 8,000만~1억 개의 손톱깎이를 만들어, 이 중 90%를 미국, 중국, 유럽 등 92개국에 수출하여, 2004년 현재 세계 시장 점유율 1위(43%)를 기록하고 있다. 쓰리쎄븐의 창업자인 김형규 회장은 한국전쟁 때 고향인 황해도 해주에서 월남해 충남 천안에 자리를 잡고 잡화상을 운영하다가, 1960년대 중반 형과 함께 손톱깎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첫 제품은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드럼통을 자르고, 자동차 휠로는 지렛대를 만들고, 미군 천막에 붙은 두꺼운 비닐창을 뜯어다 꽃무늬를 붙여 완성했다. 지속적인 품질 개선이 이루어졌고, 1975년 김형규 회장은 한 손톱깎이 회사를 인수해 '대성금속'을 세워 독립했다. 1976년 40만 달러 어치를 미국에 수출했는데, 처음에는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으로 수출했지만, 품질이 입증되자 '킹스타'라는 브랜드로 수출했다. 하지만 1978년 우리 특허청에서 '킹스타' 상표를 쓰는 회사가 있으니 다른 상표로 바꾸라는 통보가 왔고, 그래서 만든 게 '쓰리쎄븐(777)'이다.



쓰리쎄븐 손톱깎이는 저렴한 가격과 우수한 품질을 무기로 미국 시장의 75%를 점령했는데, 미국의 트림, 베이츠, 라크로스, 레블론 등 4대 손톱깎이 기업은, 1990년 베이츠사가 자체 생산을 중단한 것을 시작으로 모두 생산 중단 또는 폐업을 했다. 그리고 중국 수출은 1994년부터 시작됐는데, 1998년에는 수출액이 1,000만 달러에 이르기도 했다. 김상묵 쓰리쎄븐 사장은 "중국에서 쓰리쎄븐 손톱깎이 세트는 중국 내 다른 제품보다 10배 비싼 가격(한화 4~5만 원)에 팔리고 있고, 대형 백화점 1층에 전시돼 명품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으며, 중국에서 공무원에게 주는 선물로 인기"라고 말하고 있다.

쓰리쎄븐의 성공 비결은 사훈(社訓) -신용, 품질, 창의, 경쟁력- 에서도 잘 드러난다. 손톱깎이의 날은 쉽게 닳지 않아야 하고, 아래 위 이빨이 잘 맞물리도록, 정교하면서도 높은 경도(硬度)를 유지해야 하는데, 쓰리쎄븐은 열처리와 도금, 연마 공정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자랑하고 있다. 이런 기술은 손톱깎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날에서 더욱 빛이 나는데, 외국 제품이 날의 위와 아래가 정확히 맞물리는 것과 달리, 쓰리쎄븐 제품은 아랫부분이 0.02mm 길게 설계돼 있다. 즉 아랫날이 조금 길기 때문에 손톱 절삭면이 손톱 안쪽의 살점을 향하게 돼 손톱이 매끄럽게 깎이게 된다.



아무리 좋은 품질이라도 늘 똑같은 모양이라면 소비자들은 싫증을 낸다. 그래서 쓰리쎄븐은 늘 변신한다. 1980년대 중반 쓰리쎄븐은 손톱깎이 외에 족집게, 버퍼(손톱 표면을 갈아 광을 내는 도구) 등 5~6개의 품목을 넣어 '세트 제품'을 개발했는데, 세트를 개발한지 얼마 안 되어, 미국의 유명 화장품 방문 회사가 쓰리쎄븐에 100만 개를 주문하는 등 세트의 인기는 높아갔다. 또 1990년대 중반에는 제품을 원통에 꽂아 뽑기 쉽도록 한 '원통형 세트'도 개발했고, 중국 시장을 겨냥,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붉은색을 사용해 호리병 모양으로 제작하는 등 세트 제품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아울러 쓰리쎄븐은 몸체를 플라스틱으로 제작한 신제품을 개발, 본격적인 시판에 들어갔는데,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은 쓰리쎄븐이 세계 처음이다. 현재 쓰리쎄븐은 손톱깎이 관련 신안과 의장이 130여 건에 달하고, 손톱깎이 외에도 손톱 미용 도구 등 각종 미용용품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쓰리쎄븐에도 걱정거리는 있는데, '모방 상품' 때문이다. 김상묵 사장은 불법 복제품이 현지에서 대규모로 유통되자, 2001년 중국 산둥성 지방에서 이를 사들여 고철 처리 공장의 용광로에 쏟아 부었는데, 이 모습이 중국의 현지 지방 TV에 방영되어,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하지만 가짜 상품 제조업자를 일일이 잡을 수는 없는 만큼, 쓰리쎄븐은 정품을 살 수 있는 매장을 많이 설치한다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전략은 쓰리쎄븐에 대한 인지도가 높기 때문에 비싼 값이라도 정품을 사려는 사람이 많다는 분석에 근거하고 있으며, 나아가 쓰리쎄븐의 '브랜드 사업'과도 연결된다.



쓰리쎄븐의 브랜드 전략은 1990년대부터 시작됐는데, 쓰리쎄븐은 1993년 미국 특허청에 상표 등록을 출원했지만 이듬해 불허 통보를 받았다. 왜냐하면 보잉사가 보잉 777의 정식 출항에 대비, 1990년 상표 등록을 해놓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쓰리쎄븐은 미국이 '선(先)등록주의'가 아닌 '선 사용주의'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을 활용하여, 이미 쓰리쎄븐이 1980년대부터 '777'상표로 수출했다는 사실로 보잉사를 공격했다. 결국 1998년, 보잉사는 3년여에 걸친 싸움 끝에 상표를 같이 사용하자는 쓰리쎄븐의 제안을 수락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이다.



2003년 3월, 쓰리쎄븐은 홍콩의 하나야카사에 '777'브랜드를 사용해 중국과 홍콩에 물건을 팔 수 있는 권한을 주는 대가로 5년 동안 제조 원가의 8%를 로열티로 받기로 했는데, 한국에서는 고급 제품을 만들고 중국 공장에서는 중저가 제품을 만드는 이원화 전략도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손톱깎이는 한 번 사면 오래 사용하게 되는 '금속 제조업'인데, 과연 전망이 밝을까? 이에 대해 김상묵 사장은 "아직도 세계 인구의 60%는 손톱깎이를 쓰지 않고 있으며, 손톱깎이는 필수품에서 기호품으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에, 디자인과 기능성을 강조한 제품, 목욕탕에서 쓰는 일회용품 등 손톱깎이의 개발 여지는 많다"고 말하고 있다.



최고의 브랜드에게 배우는 성공 브랜드 전략 1

외길전략 : 선택과 집중이 글로벌 브랜드의 지름길



자신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브랜드 파워를 자랑하는 노키아, 씨티뱅크, 나이키의 성공에는 어떠한 공통점이 있을까? 그것은 바로 그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사업 분야를 선택한 뒤 그 영역에 핵심 역량을 집중했다는 것이다. 즉 외길전략을 활용했다는 점이다. 노키아는 사업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통한 선택과 집중 전략을 활용해 휴대폰 시장을 석권한 대표적 성공사례이고, 씨티뱅크는 자신의 몸집을 줄임으로써 위기를 기회로 바꾼 사례다. 스포츠 의류와 신발 브랜드의 디자인을 주도하는 나이키의 경우를 보면, 디자인은 미국 본사에서, 생산은 아시아 각지에서 담당하도록 하여, 핵심역량을 기반으로 한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쳤다. 그 결과 나이키는 세계 스포츠 용품 시장의 트렌드를 이끄는 문화적 코드로까지 성장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기업 중에서도 선택과 집중, 즉 외길전략으로 성공을 거둔 브랜드가 많다. 락앤락(Lock & Lock)이라는 밀폐용기로 세계의 주방을 점령한 하나코비의 경우에는, 1985년 설립 이후 1998년 락앤락이라는 브랜드에 올인 할 때까지 600가지 제품 라인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1997년 무조건 많은 종수가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세계인이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으며 하나코비만의 독특한 기술로 승부할 수 있는 상품을 개발했는데, 그 제품이 바로 락앤락이었다. 이후 하나코비의 매출은 끝없이 수직 상승해왔다. 앞에서 예로든 하나코비와 전기밥솥으로 유명한 쿠쿠, 공기청정기 분야 판매량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청풍, 세계적인 기업인 내셔널과 필립스를 누르고 헤어드라이어 시장의 절반을 점유하고 있는 유닉스전자는 외길전략을 통해 명문 브랜드로 거듭난 대표적 사례다. 앞으로 이러한 외길전략을 선호하는 국내브랜드들은 더욱 늘 것으로 전망되며,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전문기업들이 세계시장에 나섰을 때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상기 내용 외에 이 장에는 '유니더스-세계는 우리를 필요로 한다', '에이스침대-가구가 아닌 과학으로 42년 한우물', '피존-치밀한 전략으로 대기업도 이긴다' 등의 사례가 서술되어 있다.





2. 명품전략 - 기술혁신이 명품을 만든다

한국타이어 : 지구의 모든 땅은 우리가 접수한다




한국타이어는 포드, 볼보, 폴크스바겐, 르노 등 세계적 자동차회사에 타이어를 납품하고 있는데, 2004년에는 미국 최고 권위의 소비자 조사 기관지인 <컨슈머 리포트>가 실시한 타이어 성능 비교 테스트에서 최우수 제품군에 올랐고, 2003년 독일의 유력 자동차 전문지 가 공동으로 주관한 세계 타이어 테스트에서도 1위로 선정되었다. 한국타이어는 1941년 국내 최초의 타이어 제조업체로 출발한 이래, 타이어 산업의 외길을 달려 왔고, 이제 초당 2개(연간 5,800만 개)의 타이어를 생산하는 세계 10대 기업으로 성장했는데, 2004년의 경우 이 회사 전체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62.1%로, 내수(37.9%)를 크게 앞지르고 있다.



한국타이어의 수출 전략은 외환위기 때 빛이 났는데, 다른 기업들이 투자를 줄일 때 중국 진출을 감행했고, 1999년에는 3,000억 원을 들여 장쑤와 자싱에 공장을 지었다. 그 결과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진출 3년만인 2002년에 첫 흑자(209억 원)를 기록한데 이어, 2003년부터는 승용차 타이어 시장에서 점유율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는 중국의 열악한 도로 사정에 맞게 내구성이 강한 타이어를 만드는 한편, 중국 각 지역의 기후에 맞춰 타이어의 고무 성분 비율을 다르게 하는 등 철저한 현지 전략과 우수한 품질로 대응했기에 이룩할 수 있었던 성과이다.



2003년 세계 9위(생산량 기준)의 타이어 메이커 자리에 올랐던 한국타이어는 2005년 한 단계 상승할 전망이고, 동유럽 공장이 가동되는 2008년에는 생산량 면에서 미쉐린, 브리지스톤, 콘티넨털, 굿이어에 이어 업계 5위로 올라서게 될 전망이다. 서승화 부사장은 "타이어의 외길을 달려오며, 전문성을 쌓고 노하우를 다져온 것이야말로 한국타이어가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온 비결"이라고 말하고 있다.

타이어는 간단해 보이지만 제동력·마모·연비 등 3가지 요소의 균형이 요구되는 첨단 기술의 산물인데, 한국타이어는 끊임없는 연구의 결과 차별화 된 기술을 보유할 수 있다. 참고로 한국타이어는 대덕을 비롯하여, 미국·독일·중국·일본 등 4개국에 연구소를 설치하여, 500명의 연구원이 연구개발에 매달리고 있는데, 외국 연구소에서는 해당 국가의 기후와 지형을 연구하고 현지 연구 인력도 채용하고 있다. 중동과 유럽에 수출하는 타이어가 국내의 제품과 차이가 있는 것은 현지에 맞는 타이어를 개발하기 때문이다.



문정수 홍보팀장은 마케팅 전략도 장수 비결로 꼽고 있다. 자동차 경주 차량에 타이어를 공급하는 스포츠 마케팅도 주요 전략인데, 2004년 북미 최대의 자동차 경주인 '미국 스포츠자동차클럽 내셔널챔피언십'에서 한국타이어를 장착한 경주차가 1위와 3위를 차지했다. 또한 한국타이어는 유럽 최대규모의 자동차 경주대회인 독일 F-3 대회의 공식 타이어로 지정돼, 2005~2006년 2년 동안 6,000개의 타이어를 독점 공급할 예정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한국타이어의 품질 관리는 철저하다. 재고품의 경우 타이어의 고무에 이상이 생겼을 것을 우려, 2년이 지난 것은 폐기 처분하고 있다. 한편 한국타이어 자싱 공장은 2005년 5월 중국 타이어 공장 가운데 처음으로 포드의 품질 인증인 'Q1 어워드'를 받았는데, 미쉐린, 브리지스톤 등 세계적 메이커만 이 인증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타이어 공장이 인증을 받은 것은 2000년 아시아 최초로 대전 공장이 인증을 받아 그 품질을 인정받은 이후 두 번째다.



서승화 부사장은 "우리가 안고 있는 숙제는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문정수 홍보팀장은 "포드, 폴크스바겐 등 세계적인 명차에 타이어를 공급하면서 브랜드 파워가 높아지고 있어 2004년의 경우 전년보다 10% 이상 비싼 가격에 수출했다"고 말한다. 한국타이어는 고급 타이어의 매출을 늘릴 계획이다. 서승화 부사장은 "브랜드 가치 상승을 위해 '많이 파는 것'보다 더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드는 '질적 성장'을 추구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최고의 브랜드에게 배우는 성공 브랜드 전략 2

명품전략 : 기술에 가치를 더해 브랜드를 차별화하라



명품이란 이미 많은 소비자들에게 그 품질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를 다르게 표현한 말이다. 조금 더 보태자면, 소비자는 명품 브랜드를 구매함으로써 그들의 품질과 문화 그리고 가치를 사는 것이다. 참고로 이탈리아의 페라가모는 '구두점에는 없는 구두'라는 칭송을 받으며, 독특한 디자인으로 세계인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브랜드다. 페라가모의 성공 비결은 스타 마케팅이나 멋진 디자인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페라가모는 무엇보다 품질 관리에 철저했으며, '착용감이 좋은 구두'를 만들기 위해 수공으로 구두를 생산하는 시스템을 마련하였으며, 발바닥이 편할 수 있도록 장심을 부착하거나 발이 앞으로 밀리지 않는 장치를 마련하기도 했다. 심지어 오래 신으면 구두의 모양이 변형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마지막 공정에서는 구두를 오븐에 넣어 굽기까지 했다.



명품 브랜드로 오랜 시간 소비자들에게 사랑을 받으려면, 꾸준한 품질 관리와 끊임없는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혁신 및 R&D 투자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술을 시장과 연결하여 소비자들이 제품을 구입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술에 가치를 더하고, 브랜드의 차별화 요소를 만들어 경쟁사가 모방할 수 없게 하여 가격경쟁을 피하는 것이, 브랜드를 롱런시키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상기 내용 외에 이 장에는 '팬텀-빠르고 정확하게 세계를 향해 쏜다', '귀뚜라미보일러-43년 된 한국 보일러의 명품', '도루코-50년 동안 기술투자에 올인하다', '제비표페인트-이름은 친근하게, 개발은 치열하게' 등의 사례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3. 일관전략 - 컨셉은 하나, 꾸준하게 밀고 나간다

쏘나타 : 대중적인 중형차로 세계를 평정한다




2~3년이 멀다 하고 브랜드와 모델이 없어지는 한국적 토양에서, 1985년 처음 선을 보인 쏘나타는 그 이름을 20년 동안 이어가고 있다. 디자인과 성능을 업그레이드하며 '쏘나타-쏘나타Ⅱ-쏘나타Ⅲ-EF쏘나타-뉴EF쏘나타-NF쏘나타'로 진화해 온 쏘나타는, 2005년 4월 누적 300만대의 생산기록을 세우고 있다. 한편 현대자동차는 국내 자동차업계 최초로 미국 앨라배마에 공장을 건설하고 2005년 5월 '미국산(Made in USA) 쏘나타' 생산을 시작했다.



'SONATA'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85년 11월로, 당시 '포니'를 중심으로 소형차 시장을 평정하고 있던 현대자동차가 중형차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내놓은 모델이었는데, 당시 중형차 시장은 대우의 로얄 시리즈가 아성을 구축하고 있던 때였다. 처음 한글 표기는 '소나타'로, 스텔라의 차체에 2,000cc급 엔진을 달고 몇 가지 옵션을 붙인 차였기에, 로얄의 적수가 되지는 못했다. '소(牛)나 타는 차'라는 비아냥 속에 '쏘나타'로 이름을 바꾸는 등 대책을 마련했지만, 결국 2만 6,369대 생산이라는 초라한 기록만을 남기고, 출시 2년여만에 생산라인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하지만 쏘나타는 1988년 다시 태어나게 된다. 현대는 1983년부터 5년 간 3,000억 원을 들여 기존의 중형차와는 다른 차를 만들었는데, 수출 전략용으로 개발된 이 신차는 국산 중형차로는 처음으로 앞바퀴 굴림 방식(전륜구동)을 채택해 실내 공간을 넓히고 편의성을 높였으며, 직선적인 디자인 대신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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